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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넘기 방.

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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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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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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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22,955

작성
19.11.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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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9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39화




부서진 문과 함께 지하실로 들어온 광개토는 그 여력을 이용해 한바퀴 뒤로 구르며 벌떡 일어섰다. 마침 둥그런 계열 판정대 위에 서 있던 여자가 갑작스런 광개토의 등장에 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 죄송합니다. 문이 좀 부실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슬기가 날 듯이 달려와 그런 광개토를 다시 걷어차버렸다.

세게 걷어차인 광개토가 계열 판정을 받고 있던 여자를 덮쳤다.

“꺄악!”

여자가 뒤로 넘어지고, 방금 여자가 섰던 자리에 광개토가 뒹구는 순간 옆에 서 있던 계열 판정 담당지기가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의 계열은 사제입니다.”

그리고 눈부신 빛이 판정대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왔다. 하얀 빛은 마치 레이저쇼의 조명처럼 바깥에서 안으로 오므려지며 엉거주춤하게 일어서고 있는 광개토를 비추었고, 이 기이한 상황에 당황한 광개토는 그저 어어, 하다가 빛에 감싸였다.

“축하드립니다. 예비 사제님. 이제 가까운 신전이나 종교관, 혹은 수행사제를 찾으시면 되시겠습니다.”

상냥하게 말해도 좋을 법하건만, 담당지기는 여전히 건조한 말투를 고수했다.

“이게..무슨?”

광개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판정대를 내려왔다.

슬기도 눈앞의 기이한 광경에 어느새 화가 가라앉아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었다. 그저 지나친 부끄러움에 잠시 이성을 잃었을 뿐.

슬기가 광개토의 어깨를 두드리며 대견한 듯 말했다.

“이제 광개토 사제님이신가, 좋겠다. 계열 받아서.”

광개토는 자신에게 밀려서 넘어졌던 여자를 돌아보았다. 왠지 사제라는 계열이 저 여자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여자가 계열을 받으려는 순간 자신이 끼어들어서 대신 받아버린 것이다.

“이 계열은 제 것이 아닌 거 같습니다만..”

하지만 슬기는 아무래도 좋았다. 얼른 더 원 길드를 쫓아야 했다.

“왜이래, 계열 받았으면 된 거 아냐? 개토야, 너 다른 사람 돕는 거 싫어하니?”

슬기의 질문에 광개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렇지? 좋아하지? 이 누님이 딱 보기에도 광개토 너는 다른 사람 도와주고, 착한 일 하고, 그렇게 속인 다음에 등 쳐 먹고 사기치기.. 아 아니다, 뒷말은 못들은 셈 쳐라. 암튼 넌 사제가 딱 일 거 같아. 그러니까 얼른 이 누님의 바쁜 일부터 같이 처리하고, 그 다음에 정식으로 머리깎고 산으로 들어가. 아, 아니 이번에도 못들은 셈 쳐주라.”

슬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몇 번 네? 하고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광개토는 슬기에게 붙잡혀 지엠 사무실을 나왔다.

하지만 나온 순간, 둘을 기다리고 있는 풍경은 예상과 사뭇 달랐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30대 미녀가 여섯 명의 경비병을 대동하고서 슬기와 광개토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지엠 캐리라고 합니다. 방금 본 사무실에서 난동을 피우신 분들 맞으시죠?”

대뜸 단정짓는 여 지엠의 말에 아니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주변에 둘러 서 있는 자들 중에 목격자가 너무 많았다.

“젠장.”

“일단 신원조회부터 할까요.”

지엠이 슬기 앞으로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손을 마주 잡는다는 행위는 파티를 맺거나, 거래를 하는 등의 서로간의 신원을 알아야 할 때 하는 행위였다.

지엠의 손을 바라보며 슬기는 망설이다 물었다.

“저기, 저희는 어떤 처벌을 받나요?”

슬기의 얼굴을 보고 살짝 인상을 쓴 지엠, 캐리가 국어책을 읽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도시 내 위반사항 중, 지엠 사무실 내에서 난동 법규에 따라 최대 48시간 이하의 경비소 감옥 체험이 있습니다.”

“48시간요?”

“네, 현행범이시니까요.”슬기는 48시간씩이나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무려 2주간의 걸쳐 쫓아왔던 목걸이의 행방이 간신히 눈앞으로 다가왔는데, 또다시 이틀을 연기하라니.

잠시 캐리의 내밀어진 손을 노려보던 슬기가 말했다.

“아저씨. 여기로 와서 우리 좀 꺼내줄래?”


가까이 있었던 탓에 캐리는 여자의 말을 모두 똑똑히 들었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캐리가 남녀 현행범을 번갈아 보았다.

‘저 자가 아저씨인가?’

캐리는 남자의 이름을 몰랐기에, 그런 오해를 했다가 곧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주변의 구경꾼들을 둘러보았다.

대체 눈앞의 이 여자가 말하는 아저씨가 누구길래 현행범으로 체포된 이들을 경비병의 포외를 뚫고 도시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 있다는 말일까?

“여자분, 신원조회에 응해주시겠어요?”

캐리는 이미 내민 손을 살짝 더 들어 올리며 여자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캐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광경을 목격해 버렸다.

땅에서 솟았는지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난데없이 남녀 현행범 사이에 흑의를 입은 사내가 나타났다.

흑발에 흑의까지 온통 새까만 사내가 한기가 풀풀 풍기는 목소리로 말했다.

“꺼내긴 뭘 꺼내?”

그 말에 못생긴 여자가 벌컥 화를 냈다.

“아니, 뭘 꺼내는 게 아니라 우리를 이 도시 바깥으로 데리고 가달라고.”

“흐음.”

흑의의 사내는 마치 뭔가를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캐리는 급히 흑의의 사내를 불렀다.

“이보세요. 당신은 누구..?”

하지만 캐리가 한 호흡의 말을 내뱉기도 전에 일진 광풍이 불었고, 흑의의 사내와 남녀 현행범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세요?”

캐리는 망연한 표정으로 빈자리를 쳐다보았다. 캐리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귀신을 본 것 같았다.




멀리 소울 시가 바라보이는 구릉에 일행이 모였다.

슬기가 더원 길드 본부를 방문하고서 알게 된 사실들을 일행에게 알렸다.

“아, 이틀 전에 벌써 떠나버렸다고 말입니까? 어디로 갔습니까?”

실리엔 곁에 착 달라붙은 광개토가 실리엔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슬기에게 질문했다.

그런 광개토를 혐오감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슬기가 천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천마는 한결같은 팔짱 낀 포즈에 멍하게 살짝 벌린 입으로 슬기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긴 앞머리 때문에 눈은 안보였지만, 틀림없이 슬기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저 멍청해 보이는 꼴 좀 봐, 신기한 게 저 입만 다물면 대단한 카리스마가 생긴단 말이야.’

슬기는 천마를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빠졌다가 광개토의 질문을 상기해냈다.

“남끝별의 성좌로 갔다더라.”

“그게 뭡니까?”시온을 시작한지 이제 갓 보름이 넘어가는 시알못 광개토가 질문했다.

“남끝별, 성 슈드의 성좌. 천마님의 일곱 봉인 중 하나가 있는 성좌입니다.”

광개토의 손끝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있던 실리엔이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우와, 우리 예쁜 실리엔이 아는 것도 많나 봐!!”

광개토의 손이 실리엔의 머리를 쓰다듬느라 바빠졌다.

슬기는 그 꼬락서니가 참으로 보기 싫었다.

‘내 머리 만져주던 남자는 간 곳 없는데, 저것들은!’

“아저씨, 저기 실리엔 옆에 가서 잠시 서 있어봐.”

슬기의 묻지마 요청에 천마가 아무 말 없이 실리엔 옆에 가 섰다. 그러자 실리엔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반푼아, 밥 먹을 때 양 손바닥으로 숟가락 잡고 싶으냐? 열 개 다 끊어 먹기 전에 손가락 철수해라. 변태 새끼야.”

“아하하, 우리 실리엔이 배가 고픈 모양입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내 손가락을 탐낼까?’

광개토가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실리엔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손을 천천히 빼냈다. 그리고 천마에게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우리 실리엔에게서 조금만 떨어져 주시겠습니까?”

그 말에 천마의 고개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광개토를 향해 돌아갔다. 갑자기 공기의 무게가 한없이 무거워지며, 모두들 얼어붙어 버렸다. 이윽고 빙굴에서 기어나온 듯 한 천마의 목소리가 무거워진 공간을 채워갔다.

“본좌에게 감히 일해라절해라 라고 하다니, 제자 놈이 잠시 못 본 사이에 파천무 육단공이라도 대성한 모양이로구나.”

“아..아닙니다.”

광개토는 너무나도 무거워진 공기의 무게에 엎드리지도 못하고서 간신히 고개만 숙이고서 덜덜 떨었다.

요즘 화기애애하게 지내기도 했고, 아가씨의 쓸데없는 요청들에도 마치 동네 바보형처럼 잘 들어주길래 잠시 사부의 본질을 망각했다.

그의 사부는 60미터짜리 나무몽둥이로 천마 오군 사백여명을 파리잡듯이 모조리 때려잡고, 천마의 오제자라는 권마를 주먹질 몇 방에 골로 보낸 남자였다.

광개토는 이대로 있다간 큰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힘을 다해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굽히고, 사부에게 엎드렸다.

“사부님, 잘못했습니다. 제자가 멍청해서 사부님께 불손을 저질렀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광개토는 바닥을 쳐다보며 천마의 표정을 상상했다. 여전히 멍한 얼굴을 하고 계실까,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을 하고 계실까, 아니면 머리를 조아린 이 제자의 모습을 보시며 조금이나마 측은해하실까?

하지만 천마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원샷 원킬, 천마의 잔인한 손속을 알고 있는 광개토는 다시금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


쿵쿵쿵


‘무협지 같은 걸 보면 이렇게 머리까지 박아가면서 용서를 구하면 다들 용서해주던데.’

이마가 살짝 아팠지만, 이런 생각을 하며 광개토는 같은 행동을 몇 차례 더 반복하고는 크게 소리쳤다.

“사부님, 저에게는 사부님 뿐이십니다. 그저 사부님을 너무 존경하고, 좋아한 나머지, 경솔하고 어리석게도 예의 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부디 사부님의 선처를 바라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하지만 이번에도 천마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사부님, 이 세상에서 제자가 가장 존경하고, 의지하고 믿는 사람은 사부님 뿐이십니다.”

그제야 천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좌를 존경하고, 믿는다고?”

그때였다.

두둥.


-천마를 당신의 신으로 믿고 섬기며, 천마의 사제로 헌신하시겠습니까?


광개토의 눈 앞에 갑작스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헉, 이건 뭐야?’

다시 천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좌를 존경하고, 믿는다고 했느냐?”

대답을 바라는 듯한 사부의 말에 광개토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네, 넷.”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가 변했다.


-당신은 이제부터 천마의 사제입니다.


‘아니, 이게 뭐냐고?’


작가의말

이번 편 분량이 조금 적네요.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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