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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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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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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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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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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22,955

작성
19.11.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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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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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4쪽

29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29화




선방 필승을 진리로 믿고 있는 슬기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 죽이려는 의도는 아니었고, 다만 따끔하게 혼쭐을 내줄 생각이었다.

화염과도 같은 붉은 기가 어린 슬기의 주먹에 가까이 있던 단발머리 여자의 면상이 돌아갔다.

“어맛!!”

단발머리녀가 짤막한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자, 웨이브 진 갈색머리 여자가 황급히 검을 뽑아들었다. 검사였다.

“이 년이 마을에서 사람을 쳐?”

노성을 지른 여검사가 빠르게 한발자국 전진해오며 검을 빠르게 위에서 아래쪽으로 죽 휘둘러 베어왔다. 슬기는 슬쩍 왼쪽으로 몸을 돌려 검을 피하고는 왼손을 뻗어 검 든 팔꿈치를 강하게 후려쳤다.

깡~

여검사가 슬그머니 팔을 굽히자 그녀의 팔꿈치 보호대와 슬기의 주먹이 부딪혔다. 그리고 그 기세로 여검사의 어깨 보호대가 슬기의 가슴을 향해 맹렬히 다가왔다. 연속기를 쓰려던 슬기는 황급히 공격을 그만두고 오른손을 펼쳐 손바닥으로 가슴을 보호했다.

쿵~ 소리와 함께 슬기의 몸이 붕 뜬 채로 뒤로 밀려나갔다. 꽤나 강력한 숄더 어택이었다. 초근접전에서 불리한 검사들의 초근접전 전용 스킬. 단순하지만 제대로 맞으면 상당한 데미지를 입고, 운이 나쁠 경우, 단번에 가슴뼈 골절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기술이었다.

“오호, 죽일 기센데?”

벽을 밀치며 몸을 곧추 세운 슬기가 여검사를 향해 맹렬하게 튀어나가려는 순간, 방안에 있던 다른 이의 제지를 받았다.

“숙녀분들, 여기는 제 사무실입니다만?”

나긋하면서도 지극히 사무적인 남성의 목소리에 슬기와 여검사의 고개가 상담실 안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왜소한 체구의 안경 낀 사내가 팔짱을 끼고서 서 있었다.

“GM 구모네입니다. 와와촌 일대를 담당하고 있죠. 당연히 여기는 와와촌이고요. GM앞에서 더 싸우시겠다면 경비대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살인이 난 것도 아니니 치안대를 부를 리는 없겠지만, 경비대의 감옥도 꽤나 패널티이긴 했다.


느긋한 표정의 지엠이 세 여자를 쳐다보더니 물었다.

“어느 숙녀분이 먼저 오셨습니까?”

슬기가 번쩍 손을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엄청 급하다고요!!”

단발머리가 소리를 질렀다. 슬기가 흘깃 보니 짤막한 마법 로드를 허리에 차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법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마법 로드를 가진 걸로 보아 단발머리는 사제 아니면, 마법사다.

하지만 지엠은 단발머리가 내는 소음에도 인상 한번 쓰지 않고, 사무적으로 말했다.

“그럼 먼저 오신 분은 신청서를 주세요.”

슬기는 아차 했다. 기다리는 동안 작성했어야 하는 건데, 너무 오랜만에 들린 GM사무실이라 깜박했었다.

지엠이 손을 내민 포즈를 유지하고서 단조롭게 신청서를 요구했다.

“어떤 일이 생겼으며, 어떤 의문이 있고, 어떤 해결을 원한다는 내용을 짤막하게 기재해주셔야만 문제들을 처리해드릴 수 있습니다.”

지엠이 슬기와 나머지 두 여자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나직한 한숨과 함께 다시 말했다.

“빨리 신청서를 작성하시는 쪽부터 봐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슬기가 빠르게 신청서가 비치된 책상으로 몸을 날리려 했지만, 이미 캐스팅을 해놓은 상태였는지 단발머리의 순간이동이 보다 빨랐다.

신청서 묶음에서 한 장 죽 찢어내며 단발머리는 일부러 미끄러진 척 연기하며 나머지 신청서 묶음을 계단쪽으로 휙 던져버렸다.

“어머~손이?”

“이 년이~~ 돌았나?!”

슬기가 쌍심지를 키며 주먹을 들었지만, 여검사가 슬기의 앞을 막아서며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 틈에 단발머리가 잽싸게 신청서를 써나갔다.

잠깐 붙어봤지만,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았던 여검사. 슬기는 잠시 그녀를 째려본 후 계단으로 가 신청서 묶음을 챙겨들었다.

그리고 두어줄 썼을까, 단발머리가 ‘여기요!’ 하면서 지엠에게 신청서를 제출했다.

“저이 일앵이 마비에 거러써요. 이거 맞춤법이 틀린 거 같습니다만?”

“아씨, 뜻만 통하면 되잖아요. 얼른 가요!”

단발머리가 귀엽게 윙크를 하며 지엠의 팔을 붙잡았다.

“그래서 몬움지기는거가다요. 여기도 이거 ‘티읕’을 써야 하는데...”

지엠은 사실 국문과출신이었다. 이 신청서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정면 도전과 다름없었다.

그 틈에 슬기가 신청서 작성을 완료했다.

“자~ 여기 맞춤법 안 틀린 신청서가 있어요!”

하지만 슬기의 얼굴을 한번 힐끗 본 지엠은 더 열심히 단발머리의 난해한 신청서를 해독하기 시작했다. 난해한 신청서일지언정, 못생긴 신청서보다는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결국 슬기의 신청서는, 슬기가 팔이 아프도록 꿋꿋이 내밀고 있었음에도 외면당했고, 결국 지엠과 두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근처에 여관에서 일어난 일이군요. 그럼 외근을 한번 해볼까요?”

슬기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나가는 그들을 뒤따라 슬기도 신청서를 들고서 사무소를 나왔다. 지엠과 두 여자가 향하는 곳이 아무래도 슬기 일행이 묵고 있는 그 여관인 듯해서였다.


예상대로 그 여관이었다. 여관으로 들어가니 일층 주점 공간에 아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가만히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세 남자가 있었다.

‘역시 이 남자들의 일행이었구나.’

슬기의 예상이 맞았다. 두 여자가 산송장 같은 세 남자를 가리키며 뭐라고 하자, 지엠이 곧 고개를 끄덕이며 세 남자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잠시 살펴보던 지엠이 말했다.

“저도 이분들이 대체 어떤 오류에 걸리셨는지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어떤 악질적인 디버프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므로 일단 상급 안티 디버프를 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끝냄과 동시에 지엠이 합장 자세를 취하는데, 곧 마주한 손사이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회 부조리 타파, 양극화 해소!”

지엠이 나지막하게 자신만의 주문을 외치며 두 손바닥을 앞으로 뻗자, 손바닥에 어려 있던 빛이 세 남자에게로 옮겨 가더니 남자들의 온 몸을 감싸고 돌았다.

“제발~~ 살려주세요!! 엇?!!”

세 남자의 몸이 움직이고, 말문이 트였다. 한명은 계속 말을 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던 듯, 마비가 풀림과 동시에 말이 튀어나갔다. 이어서 나머지 두 남자도 마구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지엠님!! 마비가 사라졌어요. 무슨 놈의 마비가 지속시간이 3일이나 돼서~!!”

“마비에다가 침묵까지 걸려서 정말 무서웠습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그들의 말을 듣던 지엠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정말 마비랑 침묵의 지속시간이 3일이었다고요? 잘못 보셨겠죠. 마비 디버프는 원래 최장시간이 30분에 불과하고요. 침묵도 똑같이 최장 30분입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꼼짝도 못하고, 말도 못한 게, 30분은 훌쩍 지나갔는데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지엠은 단호하게 단정 지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정말로 침묵이나 마비 같은 치명적인 디버프의 지속시간은 최고 세팅 값이 30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디버프는 걸렸다간 로그아웃도 할 수 없고, 봉변을 당하기에 딱 좋아서 절대 길게 설정할 수 없었다. 길게 세팅했다가는 유저 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클레임이 들어올 수 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설혹 30분이 넘었다하더라도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지엠의 입장이었다.

그때 세 남자 중 한 남자가 뒤에 서 있던 슬기를 발견했다.

“앗~~ 저 취두부, 그래, 저 여자가 일행입니다. 저 여자의 일행인 남자가 저희한테 온 순간, 버그에 걸렸어요!!”

이제는 아예 버그로 단정하고서 소리를 지르는 형국이었다.

“역시!! 어쩐지 못생겼다 했어!”

단발머리가 소리를 지르며 슬기를 째려봤다.

“아니, 이건 대체 무슨 논리야!!”

슬기도 소리를 질렀지만, 못생긴 소수가 잘생긴 다수를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맞춤법도 제대로 모르는 년이 논리를 펴는 것도 아주 엉터리 개판이구나!!”

“못생긴 거 보다는 낫거든?”

세력적으로나 뻔뻔함으로나, 무논리로나 슬기가 너무 밀리는 싸움이었다.

적대 세력이 슬기에게 달려들었다. 그 선두에는 짧은 마법 로드를 든 단발머리가 있었다. 슬기는 순식간에 주점 구석으로 몰려 버리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살계를 열 수밖에 없는 노릇인데, 그랬다간 틀림없이 다구리를 당하고 죽을터였다. 일대일로는 여기 있는 누구라도 싸워볼만하다고 생각했지만, 다수 앞에서 개인의 무력은 무력하다.

아니다. 개인이지만 아무리 쪽수가 많은 다수라도 개발라 버리는 사람이 한 명 있긴 했다.

“아저씨!!”

싸움에서 진 꼬맹이가 엄마를 불러오는 심정으로 슬기가 외쳤다.

‘나 좀 도와줘, 아저씨!’

“자라고 할 땐 언제고.”

바로 옆에서 들려온 냉기 충만한 목소리에 슬기는 전신에 찬물을 끼얹은 마냥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천마의 모습에 깜짝 놀란 것은 슬기만이 아니었다. 두 여자와 세 남자로 이루어진 적대세력 외에도 실내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지엠도 예외가 아니었다.

천마의 시선이 사람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훑어보다가 지엠에게 머물렀다.

“저 놈은 요괴주제에 자연기를 사용하는 녀석이구나.”

“엥, 자연기?”

슬기는 천마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만 마음에 안 드는 놈이라면 여하를 막론하고, 이유를 불문하고, 전후를 무시하고, 닥치고 패고 보던 천마가 가만히 서 있는 걸보니 뭔가 문제가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럼 저 사람이 센 거야? 아저씨가 머뭇거릴 정도로?”

그 말에 천마가 슬기를 쳐다보았다. 앞머리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두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슬기는 분명히 느꼈다.

“아가씨야, 길을 가다가 개미를 한 마리 발견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개미가 손가락이 6개인거야. 그렇다면, 과연 손가락을 6개나 쓴다고 해서 그 개미가 위협적이겠느냐?”

“그렇지는...않겠지?”

애초에 개미가 손가락이 있나? 하고 생각하며 슬기가 대답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천마도 대답했다.

“바로 그러하니라.”

슬기가 가만히 천마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보기에 천마는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는 나쁜 버릇이 있어보였다.

“그냥 안 세다고 하면 안 돼?”

“그렇게 너무 짧게 얘기하면 안되느니라.”

슬기로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굳게 다문 천마의 입매는 반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굳은 심지가 엿보였다.


천마와 슬기의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적대세력, 즉 3남 2녀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었다.

이 못생긴 여자와 비리비리해 보이는 남자를 그 겉모습으로만 판단하고서 가차 없이 갈아버릴 것인가, 아니면 뒷덜미로 찌르르 울려오는 경고의 감각을 믿고, 그냥 꼬리를 말 것인가?

하지만 이들은 첫인상대로 그다지 생각 없고, 안하무인격에 충동적인 플레이를 즐기는 플레이어들이었다. 결코 현실에서는 할 수 없을 무례한 행동과 행위에 상대적 해방감을 느끼며 즐거운 시온 라이프를 즐기는 평범한 유저일 뿐인 것이다.

바로 옆에 지엠도 있는데, 지가 어쩔 거야? 버그를 쓸 거야? 애써 조금 전의 악몽 같았던 마비의 기억을 무시하며, 3남 2녀는 마음 내키는 대로 활동하기로 했다.


“참 사이좋은 커플이구나, 죽을 자리로 이렇게 사이좋게 기어들어오다니 말이야.”

물론 실제로 죽일 생각은 없었다. 3남 2녀는 이 거슬리는 커플을 그저 몇 차례 쥐어박고, 마음의 평온을 얻고 싶을 뿐이었다.

여검사와 남자 한 명이 검을 뽑아 들었고, 단발머리가 짧은 마법 로드를 꼭 움켜쥐었다.

이어서 나머지 남자 둘이 각각 길다란 지팡이와 단궁을 꺼내들었다.

지엠, 구모네는 매뉴얼대로라면 경비대를 불러야 되겠지만, 너무나도 무심해 보이는 슬기와 천마의 모습에 흥미가 동해 그저 지켜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세 남자가 주장했던 3일짜리 마비, 침묵의 진위여부도 이 기회에 알았으면 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적대 파티를 보며 천마가 나지막히 물었다.

“본좌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느냐? 다 죽여버리는게 좋겠느냐, 그저 점혈만 하길 원하느냐?”

잠시 생각한 슬기가 말했다.

“그냥 한 대씩만 때렸으면 좋겠어. 죽이지는 말고.”

“실로 어려운 요구구나.”

대체 어떻게 때려야 이놈들이 안 죽게 때릴수가 있을까? 평범한 주먹질조차 초강력 필살기급 데미지를 가지고 있는 천마로서는 정말 힘든 요구가 아닐 수 없었다. 슬기의 요구는 마치 실제로는 때리지 말 되, 상대에게는 맞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주라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때리면 되겠느냐?”

슬기를 쳐다보며 허락을 구하듯 말하면서, 천마의 발이 살짝 남전사의 허벅지를 차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만 그 발길질에 남전사의 왼쪽 다리의 허벅지 아래부분이 툭하고 떨어져 나갔다.

“으악!!”

균형을 잃고 넘어진 전사는 바닥을 뒹구는 자신의 다리를 보고서 깜짝 놀라 마구 비명을 질러댔다.

천마의 잔인하고 포악하며 강력한 공격을 본 모두의 눈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다들 공포로 수군대는 가운데, 지엠 역시 저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서고야 말았다.

“시끄럽다, 이것아.”

천마의 허공을 가르는 짜증섞인 싸대기질이 그저 허공을 격했을 뿐인데, 비명을 질러대던 전사의 머리가 사라졌다.

“헉!!”

이번에는 지독한 침묵이 주점 내부를 가득 채워버렸다.

“죽이지는 말랬잖아!”

하지만 그렇게 외치는 슬기의 표정이 왠지 의기양양해보였다. 예전처럼 천마가 살인 할 때마다 안절부절해 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힘센 남친의 힘자랑에 흐뭇해하는 여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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