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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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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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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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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8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48화




대체 어찌하여 자신의 권(拳)이 장(掌)보다 약하며, 장은 또 왜 지(指)에 약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천마는 그저 놀이의 규칙이라는 것에 대해 굳이 따지려 들 정도로 소심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권에서 패배를 맛본 천마는 자신 있게 지를 내었고, 그의 두 손가락은 실리엔의 장보다 강했다.

홀로 보를 내서 진 실리엔이 살짝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주인님, 소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목숨을 취해도 되나요?”

간만에 듣는 실리엔의 목소리에 취한 광개토가 호쾌하게 물론이지,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실리엔은 옷을 벗기느라 넘어져 있던 니긴마의 머리와 한쪽 팔을 잡더니, 재빠르게 목을 깨물려고 했다.

“아, 아니! 그건 말고!”

뜻밖의 광경에 모두 놀란 가운데, 특히나 깜짝 놀란 광개토가 소리치자, 행동을 멈춘 실리엔이 특유의 하얗고 순진한 듯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왜요, 주인님?”

실리엔의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귀엽게 돋아난 송곳니가 번들거렸다.

‘그래, 나의 실리엔은 언데드 군주, 뱀파이어였지.’

광개토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실리엔이 살풋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인님, 소녀는 너무너무 배가 고프답니다. 먹고 싶어요.”

이빨이 썩는 것을 알면서도 단것을 먹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사탕을 줄 수 밖에 없는 아빠의 마음이 그러할까, 광개토는 실리엔의 애교(라고 광개토는 느꼈다)띤 미소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래.. 많이 먹어. 실리엔.”

반쯤 넋이 나간 광개토의 기운 없는 대답에 니긴마의 눈이 크게 떠졌지만, 입 안 가득한 돌멩이 때문에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저씨, 혹시 이거 가릴 수 있어?”

슬기는 실리엔의 흡혈 장면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천마에게 물었다.

천마는 잠시 슬기를 내려다보더니 손으로 슬기의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행들의 귀에도 하나하나 기로 이루어진 귀마개를 붙인 다음, 한차례 크게 숨을 들이키고서 천마의 사자후, 천마후를 내뱉었다.


갈------!!!


천마로부터 폭발적인 소리의 파동이 뻗어나가며 무방비 상태로 있던 모든 공격대원들의 귀와 머리를 강타했다.

“크억!!!”

“아아악!”

무방비 상태였기에 더욱 효과가 좋은 천마후였다.

천마 일행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귀를 붙잡으며 쓰러지자, 천마가 말했다.

“당분간은 아무도 못 볼 것이다.”

일행의 도움으로 실리엔은 깨어난 지 일주일 만에 핑크색 불량식품으로 행복한 첫 끼니를 때웠다.


죽였던 니긴마는 뜻밖에도 곧 다시 파티원들 앞에 나타났다. 알고 보니 부활 지점이 같은 진영안에 있는 그의 천막이었다. 당분간 그를 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슬기와 광개토는 꽤나 당황했지만, 다행히도 천마 일행에게 호되게 당한 그는 천마 일행 근처로 오지 않았고, 천마도 굳이 그를 찾지 않았다.

다만, 일행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가끔 날카로워질 때가 있었지만, 일행들은 무시했다.

일행을 위한 천막이 준비가 되었고, 일행은 천막 안에서 크게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잠시나마 내려놓았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를 고민하던 슬기가 한 켠에 우두커니 서 있는 천마를 보고는 그 옆으로 다가갔다.

천마가 주변의 모든 소리를 듣는다는 걸 아는 슬기가 그에게 물었다.

“아저씨, 그렇게 모든 소리가 다 들리면 너무 시끄럽고 그렇진 않아?”

“무시하면 그뿐이니라.”

두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로 천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슬기는 그런 그가 살짝 측은해보였다.

‘원치 않는 잡음이 하루 종일 떨어지지 않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어쨌든 슬기는 천마의 놀라운 청력을 이용하여 나쁜 짓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니긴마라는 작자가 우리한테 앙심을 품고 못된 짓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이것은 이른 바 초고성능 도청장치를 이용한 개인 사찰이자 표적 수사! 하지만 슬기는 과정만큼 결과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른 바 스스로를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슬기의 물음에 천마가 슬쩍 눈을 떠 그녀를 응시했다. 잠시 그렇게 쳐다보던 천마가 입을 열고는 단조로운 어조로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 씨발 놈, 개새끼, 개년, 아오~ 열 빡쳐, 그년은 성형 수술하다가 부작용이라도 왔나 그걸 얼굴이라고 달고 다니는 걸 보면 용기인지 만용인지 모르겠군. 그리고 소녀인 척 하는 변태나, 그 어린 년이 좋다고 찰싹 달라 붙어 있는 로리콘 변태까지. 하나같이 더러워, 더럽다고.”

마치 컴퓨터가 읽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의 그 욕설들에 깜짝 놀란 슬기는 이내 천마가 니긴마가 지금 하고 있는 말들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중간에 섞인 자신과 광개토 실리엔 등에 대한 욕설까지 아저씨의 입으로 들으니 기분이 좀 이상했지만, 어쨌든 천마표 도청장치의 놀라운 성능과 모든 소리들을 사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안도가 되었다.

‘이 맛에 도청기를 설치하고 불법 사찰을 저지르는 모양이야.’

“아저씨, 혹시나 그 새끼가 나쁜 짓을 모의하고 있다거나 실행하려고 하면 바로 나한테 알려줘야 해?”

천마는 모의가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물어봤다간 틀림없이 이 여자가 화를 낼 것이며, 이제는 대충 문맥으로 때려 맞출 줄도 알게 되어 그냥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슬기가 보기에 현재 그들의 상황은 백척간두(백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서다)의 상황과 같았다. 드래곤 공격대와는 애초에 원수 사이이고, 이제 니긴마의 도깨비 소굴과도 원수 사이이며, 퍼스트 클래스의 공대장 에릭과도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수염성애자 할배의 억지스런 요청만 아니었더라면 절대 이들과 함께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무튼 단 3일동안만 협조하면 더 원 공격대가 다시 올 것이고, 우리의 계약은 끝이 날 것이라고 슬기는 생각했다.


*


잠시 방치되었던 천마 일행은 작전 회의를 한다는 명목으로 에릭의 천막으로 인도되었다.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 가운데는 커다란 네모진 탁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자, 우리 이제 과거의 좋지 못한 기억들은 접어두도록 하고, 성좌 탈환의 기치 아래 올바른 협력 관계를 쌓아가도록 합시다.”

에릭이 양 팔을 넓게 펴고, 마치 모든 것을 포용하기라도 하겠다는 포즈로 각 공격대장들, 부공격대장들과 천마 일행을 향해 선언하듯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커다란 탁상 위에 펼쳐진 지도를 들여다보며 작전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적군의 분포를 살펴보자면 성좌의 내 외성을 지키는 방어 병력이 오백 마리이고, 성좌 앞 넓은 평지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것이 역시나 오백 마리 가량이라고 한다.”

“와, 그렇게나 많습니까? 반으로 나누고도 오백 마리라니. 흡.”

천마 삼군의 병력수를 처음 알게 된 광개토가 입을 쩍 벌리며 말하다가 주변의 눈총을 받고서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우리 역시 두 개의 군으로 나누어 먼저 전투군인 드래곤과 도깨비는 평지의 군진을 상대하고, 점령군인 퍼스트와 군사가 보내신 별동대는 각기 좌우로 우회하여 성탑을 공략하도록 하겠다.”

작전 설명을 한 에릭이 이어서 당부 사항을 말했다. 먼저 에릭은 아라곤과 니긴마에게 당부했다.

“적의 본진을 상대하는 드래곤과 도깨비의 전투군은 최대한 병력을 잃지 말고, 그들의 발을 그곳에 묶어 두어야 한다. 만일 그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회군하게 된다면 성탑을 공략하던 점령군이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지고 말 것이다.”

상급 공격대장의 말에 두 공격대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첫인상이 무척 경박스러워 보였던 니긴마도 지금은 실로 공격대장다운 면모를 보였다.

이어서 에릭이 퍼스트 클래스의 부 공대장과 천마 일행을 쳐다보며 당부했다.

“점령군 역시 신속하게 점령을 해야 하오. 그래야만 적의 사기가 떨어질 것이고, 전투군이 수월하게 전투를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오.”

슬기와 광개토가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을 보였다.

에릭이 지도를 보느라 굽혔던 허리를 펴고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두 가지요. 첫 번째는 천마군을 격멸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성 가운데에 있는 성좌의 불꽃을 살리는 것이오. 점령군은 외성을 점령하면 곧이어 내성을 공략하고, 성좌의 불꽃을 살려낼 것이오.”

에릭은 천마 일행을 두고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면, 당신네들은 당신들의 판단대로 움직여도 좋소. 전투군을 지원해도 좋고, 혹은 내성으로 빠르게 진입하여 성좌를 공략해도 좋소.”

“그럴 거 있나요? 바로 내성을 공략해서 불꽃을 살리면 되지 않나요?”

벽 따위 무시하고 직선통행만 하는 아저씨라면 성좌에 도달하는 것도 순식간일 거라고 생각하며 슬기가 말하자, 에릭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정보에 의하면 성좌는 천마의 세 번째 제자인 괴마라는 자가 지키고 있다 하오. 게다가 그의 정예군들도 함께 있다고 하니, 만약 괴마라는 자가 소천마와 같은 수준의 강자라면 우리는 반드시 힘을 합하여 공략해야 할 것이오.”

에릭은 여전히 슬기의 뒤에 선 흑의 사내가 소천마보다는 약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리고 괴마고 머시고 나발이고 간에 아저씨가 더 셀 거라고 생각하는 슬기도 가정으로나마 위험부담을 안고 싶지는 않았다.

슬기가 살짝 물러서는 걸 보며 에릭이 하던 말을 계속 했다.

“또한 성좌의 불길을 살리는 것으로 우리의 임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그때부터가 우리 임무의 시작이라 할 수 있소.”

“그렇죠. 그때부터 성좌를 탈환하려고 천마군이 기를 쓸테니깐요.”

아라곤의 말에 무슨 임무냐고 물으려던 슬기가 입을 다물었다.

‘아, 그래서 3일만 버텨달라고 그랬구나.’

간략하게 작전 내용을 공유한 에릭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물었다.

“자, 질문 및 건의사항?”모두들 대답이 없자, 에릭은 10분 뒤에 출발하겠다며 작전회의를 종료시켰다.


전투군으로 배정된 두 개의 공격대가 열과 오를 갖춰 서서히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 군세의 위용이 사뭇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건너편 오른쪽으로는 퍼스트 클래스가 가볍게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렇다 해도 역시나 100명이 이동하는 거라 꽤 볼만한 장관이었다. 그들은 오른쪽으로 우회해서 성탑을 칠 예정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천마 일행은 좌측 우회로로 어슬렁 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인원을 체크하자면 전방으로 진격하는 인원이 199명(드래곤에 슬기의 물건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장기 미접속자가 한 명 있었다), 우측으로 돌아가는 인원이 100명, 그리고 좌측으로 돌아가는 인원이 4명이었다.

“오른쪽으로만 100명이 가면 좀 많지 않겠습니까? 이쪽으로도 좀 나눠주지...”

광개토가 투덜거렸지만, 슬기는 일행 외의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좋았다.

이윽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그들만 남자, 천마 일행은 하늘을 날아 순식간에 성좌 외성의 가장 좌측에 위치한 성탑 근처의 얕은 구릉에 도착했다. 지도상으로 보자면, 서북 방향에 위치한 성탑이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했겠지? 조금만 쉬었다가 출발하자.”

슬기의 생각에, 전투력만 놓고 보자면 아저씨만 보내는 것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불안했다. 천마의 돌발적이고 생각 없는 행동이 언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고, 부족한 융통성하며, 천마의 상황판단 및 작전 수행력에도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천마에게 지시만 잘 내려준다면 위험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 이제 붙겠습니다!”

저 멀리 남쪽 평지 지대를 바라보고 있던 광개토가 전투군과 천마군의 충돌을 알려왔다.

곧이어 병력들의 외침과 아우성이 은은하게 이곳까지 들려왔다.

“한 2킬로미터는 떨어져 보이는데도,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지 말입니다.”

광개토의 말을 듣던 슬기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리도 들어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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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화 19.11.23 569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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