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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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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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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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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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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19.11.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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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8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28화




“죄송합니다, 사부님. 저는 시간이 되어서 나가봐야겠습니다.. 저녁에 뵙겠습니다.”

천마가 화를 낼지언정, 그것은 어디까지나 게임. 현실 세계의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광개토는 그런 천마를 뒤로 하고 급히 2층으로 올라갔다.

“요즘 젊은 것들이란~.”

천마의 혀 차는 소리에 슬기는 뭔가 까실까실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아저씨가 로그아웃 하는걸 한 번도 못 본거 같네.”

“잠이라면 본좌는 마신지체이므로 더 이상 그런 동물적인 휴식수단이 필요하지 않느니라.”

천마의 대답에 까실까실한 느낌이 더 올라와서 슬기는 목덜미를 벅벅 긁어대며 대체 뭐가 문제인건가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잠 말고 로그아웃 말이야. 아저씨는 생업 없어?”

“생업?”

“먹고 사는 일 말야.”

“본좌는 마신지체이므로 사실 더 이상 먹을 필요도 없느니라.”

“미치겠네.”

본좌의 동문서답에 슬기는 목에 이어 뒤통수까지 긁어대고,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말고, 밖에서는 뭐하고 사시냐고요?”

슬기의 질문에 천마가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음.. 밖이라면... 설마..?”

불현 듯 깨달아지는 뭔가에 천마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요괴들은 잠을 청하면 요괴들의 세상으로 돌아가는구나!”

천마의 목소리에는 가벼운 놀람이 깃들어있었다. 슬기의 반응을 통해 그의 추측이 맞았음을 알게 된 천마가 나직히 탄식했다.

“어허, 마신지경인 본좌도 아직 접하지 못한 별천지의 세계를 요괴년놈들은 이미 잠을 통해 자유로이 오가고 있었구나. 어허.”

그때 옆 테이블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시오, 도 닦소? 마치 도를 아십니까 같은 소리 들을 하고 있소.”

들려온 목소리를 따라 슬기가 고개를 돌리니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험가 일행이 보였다. 남자 셋으로 구성된 플레이어 파티인 듯 했다. 하나같이 잘생긴 얼굴들이 그 증거였다. 잘생긴 것들은 9할 이상이 플레이어다.

그 중 천마에게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은 갈색 장발머리가 천마에게 빈정거리고 있었다.

“신선이 어떻고 요괴가 어떻고 하는 걸 보면 딱 도인인데? 별천지로 가고 싶은가 봐?”

그의 말에서 욕 같은 건 감지되지 않았기에 천마는 딱히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되려 천마의 폭력적인 손속을 걱정한 슬기가 나서서 상대 파티에게 한 소리 했다.

“거기 오빠들!”

슬기는 그 말에 이어서,

‘딴 파티의 얘기는 한 귀로 흘려 버리라는 소리 몰라요?’

라는 시온의 유명한 격언을 전하려 했지만, ‘오빠들’이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미 옆 파티 남자들이 난리가 났다.

“이런 미친!! 오크 년이!!”

“우엑, 형님이라고 불러랏!”

“씨발, 왜 이러세요. 누님!”

우당탕탕, 거칠게 저항하는 남자들 탓에 의자들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 반응들인데 슬기의 얼굴이 벌게졌다.

하지만 그녀는 관대했다.

“아저씨, 일단 우리도 올라가자. 아무래도 여기서 할 얘긴 아닌 거 같으니까.”

슬기가 천마의 옷깃을 끌며 2층 계단으로 향했다.

“뭐냐!! 못생긴 오크 년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냐? 크크크”

“둘이 올라가서 잠을 자겠다고? 크크 퍽이나 퍽이 되겠다?”

조용히 물러가는 둘을 보며 남자 일행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도망치는 년놈들의 꼬락서니를 보며 그들은 만족스러운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특히나 저렇게 생긴 여자 친구는 차라리 없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남자들의 웃음소리에 슬기의 인내심이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 어차피 그리 크지도 않았던 인내심이었다.

하지만 막 화를 내려는 순간, 슬기의 손아귀가 허전해졌고, 천마가 이미 그들 앞에 도달해 있었다.

“흐흐흐, 산송장 세 구가 주둥이를 놀려대니 시체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구나.”

방금 여자 손에 이끌려 계단쪽으로 가고 있던 흑의인이 눈 깜짝할 새에 자기네 코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세 남자는 깜짝 놀랐다.

“아저씨! 죽이면 안 돼!!”

슬기가 소리를 치는 가운데, 천마의 손이 한차례 희번득 거렸다.

그리고 돌아선 천마가 슬기의 곁으로 휘적휘적 걸어왔다.

“아가씨야, 어디로 올라가면 되겠느냐?”

방금까지 썩은 혓바닥을 놀리던 세 남자가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듯 우뚝 서버린 모습을 보던 슬기는 천마의 물음에 놀라서 대꾸했다.

“어? 어, 위층으로 가자. 따라와.”

천마와 슬기는 이층으로 올라갔고, 세 남자는 그냥 그대로 식탁 앞에 선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어..버..”

남자들은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 밖으로 아무 소리도 나가지 않는 기이한 현상에 까무러칠 듯 놀랐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이보시오들, 왜 그러고 있는 거요?”

딴 테이블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이 세 남자를 보고서 참다 참다 결국 물어왔다.

“아니, 갑자기 마비라도 걸리셨나? 왜들 그러고 서 있는 겁니까?”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세 남자는 마구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지도 말을 하지도, 걷지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세 남자의 시야 왼쪽 상단에 조그마한 아이콘 두 개가 떠있었다.


-침묵 3일-

-마비 3일-


‘이런 씨발!!!! 이게 뭐야!!! 누구 내 목소리 좀 들어주세요!! 흑흑흑 엉엉엉’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래?!! 누구야, 대체 누가 나에게 이런 몹쓸 짓을 한 거야?!’

‘이게 말로만 듣던 버그인가?!! 누가 좀 우리 일행 좀 불러주세요!! 나 버그 걸렸어!!’

세 남자의 피의 절규는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않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그저 눈알만 뒤룩뒤룩 굴리는, 천마 말대로 진짜 산송장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저씨, 여기 누워 봐.”

슬기의 말에 천마의 눈과 콧구멍이 각성 이후 가장 큰 크기로 떠졌다.

“아, 일단 누워보라고!”

슬기의 가벼운 주먹질을 받은 천마가 주섬주섬 신발을 벗고 침대에 눕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슬기는 자신의 주먹을 보고 깜짝 놀라고 있었다.

‘나 미쳤나봐!! 이 괴물한테 주먹질을 하다니!!’

하지만 다행히도 천마의 반격은 없었다.

‘하긴 이 괴물 아저씨가 나한테만 이상하게 관대하단 말야.’

생각해 보면 괴물은 자신의 행동에 엄청 관대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욕도 아닌 욕에도 때리니 죽이니 하며 길길이 날뛰는 이 괴물이 자신의 욕에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좀 무례하게 행동해도 다 받아주었었다. 오히려 자신의 부탁(이라 쓰고 명령이라 읽는다)도 잘 들어주는 것이 아주 칭찬할 만 하면서도 기이했다.

침대 옆 동경에 얼굴을 비춰본 슬기는 역시나 상상대로 추하디 추한 그녀의 얼굴과 마주했다.

‘예쁜 얼굴도 아닌데, 이 괴물이 왜 이러지?’

천마의 불퉁한 목소리가 슬기의 상념을 깨뜨렸다.

“누웠다. 이제 본좌를 어쩔 셈이냐?”

“어쩔 셈이냐니!!”

왠지 능글맞게 느껴지는 천마의 말에 슬기는 그만 얼굴이 벌게졌다.

“네년 말대로 누웠으니 이제 뭘 하면 되겠냐는 말이다.”

슬기는 저 혼자 괜시리 이상한 상상을 한 듯해 무안했다.

“어, 음, 저 그러니까 이제 눈을 감고.”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 살짝 천마의 감은 눈이 보였다.

“잠을 자도록 노력을 해보자.”

슬기의 명령에 천마가 뭔가 말을 하려다가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입매가 한 번씩 실룩거리는 게 영 잠을 이루지는, 그러니까 로그아웃에 이르지는 못하는 듯 했다.

‘그냥 이곳을 떠나겠다고 생각만 하면 되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

이윽고 천마가 불평을 늘어놓으려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잔잔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는 아가의 평안한 잠과 행복한 꿈을 청하는 엄마의 바람이었다.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과 아가양도~♬


그렇게 천마는 슬기의 자장가를 들으며, 각성 이후 처음으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잠이든 천마의 모습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던 슬기는 이내 경악하고 말았다.

천마의 몸이... 사라지지 않는다?

잠이 드는 순간, 강제 로그아웃이 벌어지고, 정신은 현실로 향하고, 남아 있는 캐릭터의 몸은 빛으로 화해 사라지는 것이 정상적인 수순이다.

천마처럼 이렇게 그냥 쿨쿨 거리면서 잠이 들면 안 된단 말이다.

벌떡 일어선 슬기는 조용히 쿨~ 거리며 자고 있는 천마를 바라보다가 더 이상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잠은 가장 부작용이 없으면서도 확실한 로그아웃 수단인데, 이 아저씨는 어찌된 일인지 그냥 진짜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뭐지, 이건?!

플레이어에게 로그아웃을 못하는 것보다 더 큰일이 어디 있겠는가? 슬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급히 방을 나섰다.


여관에서 나온 슬기는 금세 GM 사무소를 찾았다. 마침 여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3층 목조 건물의 2층이었다.

도시의 사무소였더라면 그럴듯한 대기실에 약간의 다과와 차까지, 게임 내 불만을 가진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만한 편의시설들이 갖춰져 있었겠지만, 이런 시골 촌구석의 사무소는 이열로 설치된 낡은 가죽 소파가 전부였다. 게임답지 않게 현실적인 환경이었다.

슬기의 엉덩이가 닿자 소파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 슬기는 피식 웃고 말았다.이런 현실성 넘치는 디테일이라니.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시온을 있게 한 특징 중 하나였다. 제2의 삶, 최대한 현실 같은 가상현실.

조그마한 촌구석에도 플레이어가 있고, 불만이 있다. 슬기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는 플레이어 두 명을 보고서, 느긋하게 차례를 기다리기로 했다.


*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가운데 천마의 눈 아래로 길바닥에 쓰러진 두 남녀가 보였다.

“지혜야, 정신 차려. 지혜야~!”

남자가 외쳐보지만, 남자 앞에 엎어져 있는 긴 생머리의 여자는 미동도 없었다. 그녀의 머리에서 벗겨진 헬멧의 깨진 파편이 길거리에 가득 뿌려져 있었다. 남자는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여자와의 거리가 점점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아주 멀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슬퍼하는 그의 주변으로 어느 샌가 일곱 남녀가 서 있다.

“사부님,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가 꼭 성좌에 성스러운 불꽃을 피워내겠습니다.”

일곱 남녀가 마치 한 목소리인 냥 동시에 말했다. 그리고서 그 중 한 명이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남자의 손에 들린 검을 움켜쥐었다.

“이건 내가 좀 가져갈게.”

하지만 어느새 남자의 입장이 되어버린 천마는 북어같이 생긴 놈의 손을 뿌리쳤다.

“뭐 하냐, 이 잡놈의 새끼가!”

천마가 검을 뽑아 눈앞의 도적놈을 베어버리자, 도적놈은 곧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윽고 천마는 어둠 속에 홀로 남았다.

하지만 천마에게 이 어둠은 결코 음침하거나,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의 태 안 인양 평온하고, 따뜻한 공간이었다.

이 공간 속에서 그는 가만히 아무 생각하지 않고 서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저 격렬하게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


20여분의 기다림 끝에 이윽고 슬기의 차례가 되었다. 막 상담실의 문을 열려는 데, 다급히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타난 여자 둘은 다짜고짜 슬기를 밀치고 상담실 문을 열었다.

“저기요, 지엠님!! 저희 동료들이 꼼짝을 안 해요!!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다고요! 대체 왜 이런 거죠!? 도와주세요!”

찢어질 듯 한 고성으로 다짜고짜 따지고 드는 여자들의 위세에 저도 모르게 밀려난 슬기가 주먹을 쳐들며 짜증을 내려다가 여자들의 상담 내용에 슬그머니 손을 내리며 말했다.

“아, 그 싸가지 없는 새끼들의 일행분들이신가 봐요.”

그 말에 두 여자의 매서운 눈초리가 휙 하고 슬기에게 향했다.

“아하, 문제가 생기기 직전에 살짝 다툼이 있었다는 추녀가 네 년이로구나?”

“사람들 말로는 네 년이 취두부 같이 생겼다고 하더니, 표현이 모자란 감이 있구나.”

두 여자가 경쟁하듯 더욱 자극적인 험담을 슬기에게 해댔다.

그녀들의 험담에 슬기가 상큼하게(라고 쓰고 험악하게라고 읽는다) 웃으며 대꾸했다.

“이 북극곰 같은 년들이 서로 털 깎아주는 소리하고 있네!”

슬기도 그렇게 성질 좋은 년은 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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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4화 19.11.25 540 4 11쪽
43 43화 19.11.24 527 5 12쪽
42 42화 19.11.24 532 5 12쪽
41 41화 19.11.24 548 5 12쪽
40 40화 19.11.23 565 5 12쪽
39 39화 19.11.23 546 6 11쪽
38 38화 19.11.23 569 6 12쪽
37 37화 19.11.22 597 8 13쪽
36 36화 19.11.22 589 8 12쪽
35 35화 19.11.22 598 8 12쪽
34 34화 19.11.21 587 8 12쪽
33 33화 19.11.21 575 8 12쪽
32 32화 19.11.21 588 7 13쪽
31 31화 19.11.20 623 6 13쪽
30 30화 19.11.20 616 9 12쪽
29 29화 19.11.20 587 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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