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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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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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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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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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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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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8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38화




단정하게 올백으로 넘긴 흑발머리에 은색 브릿지가 양옆으로 들어가 언뜻 보기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사내가 멋들어지게 꾸며진 검은 색 나무의자에서 일어났다.

그가 느릿한 동작으로 고풍스러운 거대한 목재 책상을 옆으로 돌아나오자 응접 소파에 앉아 있던 은색 장발의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흑발의 사내, 더 원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크로우 더 그레이’가 노인의 맞은 편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우리가 움직여야 하겠는가?”

길드 마스터의 말에 소파에 앉아 있던 노인, 길드 총 군사 ‘미스란디르’가 은색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아니면 그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대안이 없다는 군사의 말에 크로우가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얹었다. 잠시 손가락을 까닥이던 그가 혼잣말처럼 작은 소리로 물었다.

“본부의 인원만으로는 부족하겠지?”

미스란디르가 여전히 은색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정말로 수염을 기르면 이런 느낌일까? 허허. 아, 미안하네. 자네의 질문에 대답하자면, 그렇네. 우리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 그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천마삼군은 그 수만 무려 천명일세. 게다가 용군이라는 것들이 생겨나고 있다하니.”

“그게 뭔가? 플레이어라는 말은 들었는데, 언데드 같은 건가?”

안 그래도 많이 들어왔던 ‘용군’이 궁금했던 크로우가 관심어린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의 질문에 군사가 잠시 침묵을 지켰고, 크로우가 열을 내기 직전에야 군사는 입을 열었다.

“그저 우리와 다른 식으로 시온을 즐기는 이들일세. 다른 편인거지. 일찍이 천마군에 의해 점령된 지역에서 못 빠져 나온 플레이어들이 겜을 접니 마니 말이 많았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이 용군이 되는거더란 말이지. 일단 용군이 되면 천마기라는게 생기는데, 이게 마치 초인이 된 듯한 능력을 선사한다고 하더군.”

“흥, 버그 플레이어들.”

크로우가 단정짓 듯 말하자, 군사가 그 늙은 팔로 손사레를 쳤다.

“시온에서 정식으로 서비스하는 걸세, 버그가 아니라.”

“그딴 것에 굴복하다니, 나약한 것들.”

크로우의 말에 군사가 다시 딴지를 걸었다.

“나약한 것도 아닐세. 듣자하니 3일 밤낮동안 이루어지는 고문과 실험을 견뎌내야만 용군이 될 수 있다고 하더군.”

그 말에 크로우가 다시 감정을 여과하지 않고 내뱉었다.

“마조히스트 놈들. 틀림없이 피학적 성애자일거야.”

군사는 그만 쓴 웃음을 내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길드 마스터란 어떻게 해서든 자기 식대로 한 판단을 고수할 자였다. 융통성도 부족하고, 고집도 세지만, 그만큼 추진력이 강하기도 한 그였다.

“그렇다면 천마삼군 천 마리에, 이상성애자들이 수십? 수백? 어쨌든 합세해서 오고 있다는 건데. 그에 대한 대책은 뭔가, 군사?”

턱을 처든 길드마스터가 군사를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 나눈 짧은 대화만 보자면 분명 쉽지 않은 상황이건만, 크로우는 이번에도 미스란디르가 뭔가 해결책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었다.

길드마스터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미스란디르가 다시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2, 3, 7 공격대를 불렀네.”

“허, 이제 불러서 언제 도착하겠나?”

대륙의 동쪽으로 파견 갔던 3공격대와 남동쪽으로 파견 갔던 2공격대, 7공격대는 모두 여기서 3주일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다.

군사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1주일전에 연락을 해놓았네. 성 슈드의 성좌로 오라고 말일세.”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크로우는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다.

“역시!”

“그저 자네는 3공격대장이랑 7공격대장간에 싸움 안 나게 중재나 잘하게.”

3 공격대장 ‘니긴마’와 7 공격대장 ‘아라곤’의 불화는 길드 내에서 유명하기에 군사가 마스터에게 당부했다.

“열살 먹은 애도 아니고, 대체 7공장은 3공장의 이름이 뭐가 그리 마음에 안든다는 겐가.”

귀찮다는 듯이 마스터가 투덜거렸다.

“둘 다 한국인이라지 않나, 한국어로는 뭔가 뜻이 있는 모양이더라고.”

군사는 굳이 무슨 뜻인지 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길드마스터는 두 공격대장의 다툼이 그다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모 욕하는 것만 아니면 좀 참고 넘어갔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더 원 길드는 최소한의 경비병력만을 남겨둔 채, 소울 시를 떠나 남동쪽으로 일주일 거리에 있는 남끝별의 성좌, 즉 성 슈드의 성좌를 향해 출발했다.


그것이 이틀 전의 일이었다.


*


슬기와 헤어진 광개토는 곧장 GM 사무실로 향했다. 시온 남대륙의 최거대도시 ‘소울’답게 멋지게 지어진 사무실이 잘 뻗은 상가거리 한 가운데 떡하니 위치해 있었다. 마침 사무실 지하가 계열 판정실이었다.

‘일단 계열 심사를 다시 받아보고, 그래도 안 되면 지엠한테 가야지.’

그렇게 생각한 광개토는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서 길게 서 있는 줄을 보았다.

“저 여기 무슨 줄입니까?”

줄 맨뒤에 서있던 20대로 보이는 남자에게 묻자, 퉁명스런 대답이 들려왔다.

“계열 심사 줄인데요.”

광개토는 깜짝 놀랐다. 대충 봐도 바깥엔 선 인원만 20명은 되어 보이는데, 이 사람들이 모두 뉴비라고?

광개토는 다소곳이 그 남자 뒤에 섰다. 그러자 광개토를 훑어보던 남자가 물어왔다.

“그쪽도 뉴비예요?”

간단한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려던 광개토는 곧 혼란에 빠졌다.

‘나처럼 124랩인 뉴비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하지만 난 아직 계열이 없는데. 게다가 시온을 시작한지 보름정도 밖에 안 지났고. 그래, 난 뉴비야. 클리어한 던전이 한 열다섯개쯤 되는 뉴비... 웬만한 오크, 고블린 쯤은 가뿐하게 처리해버릴 수 있는 뉴비...난 대체 뉴비인걸까, 아닌걸까?’

광개토가 머뭇거리는 동안 남자가 광개토를 살펴보더니 말했다.

“아, 알겠다. 게임은 예전에 시작했는데. 마음대로 대충 게임하다가 벽에 부딪혀서 이제야 계열 받으러 오셨구나. 하여튼 사전 조사안하고, 매뉴얼도 안 읽고 꼭 자기 맘대로 좌충우돌하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정곡을 찔린 광개토는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30분쯤 서 있었을까,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절반 정도 줄어들어, 건물 안으로 막 들어서려던 참이었다. 머릿속으로 파천무의 동작을 그리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슬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개토야!!”

깜짝 놀란 광개토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슬기를 찾아냈다. 잠깐 도시를 거닐며 그새 선남선녀들을 보며 안구정화가 되었는지, 슬기의 얼굴이 썩어보였다.

“아, 아가씨.”

광개토의 대답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아가씨? 저 여자가 그래도 돈은 많은 여자인가봐.”

“아니면, 신분이 높던지. 어쨌든 플레이어는 아니겠지?”“그런데 만약 플레이어라면?”

“야, 너라면 얼굴 저렇게 만들고 게임하겠냐?”

주변의 반응을 듣고 있자니 광개토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벌게졌다.

‘아가씨는 하필이면 얼굴을 저렇게 만들다 말아가지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슬기가 손을 까닥이며 오라는 손짓을 했다.

“안됩니다. 아가...씨.”

아가씨라고 말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아무래도 주변의 시선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광개토는 이번에는 기필코 계열을 받겠노라 결심했기 때문에 슬기의 손짓을 거부했다. 그러자 슬기가 눈을 부라리며 다가왔다.

“개토야! 개토야!”

광개토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다가오는 슬기의 모습이 마치 던전의 히든 보스 같아 보였다. 슬기의 그 서슬에 광개토 주변에 줄 선 모든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마침내 광개토 앞에 도달한 슬기가 그녀보다 머리통 한 개 반 정도 큰 광개토를 올려다보며 이죽거렸다.

“너 인마, 아가씨가 빨리 가자는데, 지금 안 가고 개기는거야?”

슬기는 마음이 급했다. 더 원길드의 모든 인원이 이미 이틀 전에 소울 시를 떠났다고 하니, 급히 서둘러 쫓아가야 했다. 하지만 슬기가 간과한 것이 있으니, 광개토는 슬기의 이러한 사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한편 광개토에게는 계열을 받는 일이 실로 중요했다.

“아가씨, 아시잖습니까? 제가 지엠 만나려고 얼마나 벼르고 별렀는지.”

“그래서 이 아가씨의 말을 안 듣겠다는 거니?”

둘이서 열띤 대화를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점차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 여자, 자기 입으로 자기를 아가씨라고 부르는 거야?”

“대체 무슨 아가씨일까, 오크 아가씨?”

주변의 목소리에 슬기는 그만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그녀도 자신의 외모가 형편없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일부러 스스로 그런 얼굴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이런 비웃음을 당할때면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게다가 몇 주간 거의 천마, 광개토랑만 지내다보니(실리엔은 합류한지 얼마 안되었다), 본인을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평소처럼 자신을 아가씨라고 자칭하고 말았으니 더욱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특히 광개토 앞에 있던 남자의 비웃음이 노골적이었다. 이미 도적 계열을 받고 50랩까지 올렸다가, 도저히 재미가 없어 다시 계열을 받기 위해 찾아온 터라, 계열을 받으러 온 사람들 중에서는 나름 강자라는 자신이 있었기에 꽤 큰 목소리로 낄낄거리며 비웃어 재꼈다.

“낄낄낄~”

다른 사람들이 그래도 입을 가리며 웃는 거에 반해 대놓고 웃어대는 이 버르장머리 상실한 초짜(계열 심사 줄에 서 있으니 당연히 뉴비라고 생각했다) 새끼를 보자 슬기는 부끄러운 나머지 폭발하고 말았다.

“어디 이빨 몽땅 털린 다음에도 그렇게 웃을 수 있나 보자!!”

슬기가 괴성을 지르며 비웃는 놈에게 벼락같이 주먹을 내뻗자, 광개토가 황급히 그 주먹을 옆으로 튕겨냈다. 주먹은 아슬아슬하게 비웃던 남자의 면상을 지나 벽에 박혔다.


쾅~


“끼...끌헙.”

남자는 비웃다 말고 그대로 딸꾹질을 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왼뺨을 풍압만으로 찌그러뜨린 주먹이 그의 얼굴이 아닌 벽에 박힌걸 보고서 해연히 놀랐다.

박힌 주먹을 천천히 뽑아내며, 주변인들의 시선에서 느낀 모든 부끄러움을 모조리 분노로 승화(?)시킨 슬기가 광개토를 향해 해맑게 웃어보였다.

“이야, 우리 개토가 이제 이 누님의 주먹도 튕겨내고, 어? 많이 컸다, 어? 이 누님이 어제 보스전에서도 이 한 몸 희생해서 우리 개토 안 다치게 잘 보살펴주고 그랬는데, 어? 이제 누님의 행사에 훼방을 놓네, 어? 아, 누님이 아니라 형님이지?”

슬기는 아직도 그날의 그 기억을 잊지 않았다.

광개토는 얼얼한 손바닥을 다른 손으로 움켜쥐며 급히 변명했다.

“그게 아니라, 아가씨. 여기는 대도시잖습니까? 여기서 다른 플레이어를 때렸다간..”

“때렸다간 뭐? 때렸다간 뭐 되는데, 그깟 치안대? 죽이는 것도 아니고, 때리는 건데 뭐, 때렸다간 뭐 되는지 한번 해보자, 해봐.”

엄청난 부끄러움이 분노로 바뀌며 슬기는 약간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슬기의 발차기가 냅다 광개토의 허벅지를 향해 날아갔고, 광개토는 다리를 번쩍 들어 그녀의 발차기를 피해냈다. 하지만 피해 낸 순간, 재빠르게 발차기 한 발을 내려놓으며 슬기가 그대로 어깨치기를 해 들어오자, 미처 들었던 발을 내리지 못한 광개토는 그 몸통 공격을 고스란히 받고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쿠웅~~

날아간 광개토가 지엠 사무소의 입구를 통과해 복도 벽에 강하게 부딪히자, 복도 가득히 충격음이 울려퍼졌다.

등을 통해 전해오는 통증을 느끼기도 전에 광개토는 즉시 옆의 지하 계단으로 몸을 날렸다. 역시 예상대로 훌쩍 점프해온 슬기의 강력한 플라잉 니킥이 방금까지 그가 있었던 벽을 가격했다.

“아가씨 잠깐만 기다려 주시지 말입니다!”

“지랄한다.”

계열 검사를 받기 위해 줄 서있던 사람들이 둘의 싸움질에 우와, 거리면서 황급히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광개토는 지하 계단을 급히 뛰어 내려갔고, 맹렬히 따라온 슬기의 발차기를 양팔로 막았다가 그대로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쾅~


날아간 광개토는 계단 끝에 위치한 문을 부숴버리고 계열 검사실로 데굴데굴 굴러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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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2화 19.11.24 533 5 12쪽
41 41화 19.11.24 549 5 12쪽
40 40화 19.11.23 566 5 12쪽
39 39화 19.11.23 546 6 11쪽
» 38화 19.11.23 57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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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19.11.21 589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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