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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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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104,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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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19.11.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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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7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27화




공터 한가운데 홀로 선 천마에게 슬기가 천천히 다가갔다. 일주일동안 같이 다니며 그를 어느정도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방금 보여줬던 그의 능력은 그녀의 상상을 초월했다.

“아..저씨, 진짜....”

살짝 피로한 기색의 천마가 슬기를 쳐다보았다.

“..진짜 괴물 맞구나. 아니, 이 정도면 괴물이라는 말로도 부족해. 대체 힘이 얼마길래? 혹시 버그 플레이어야?”

슬기는 단언컨대, 시온에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50미터짜리의 굵디 굵은 나무를 턱하니 골프채처럼 휘두르는 사람이라니. 마기를 줄줄 뿜어내던 천마군들이 나무에 처 맞는 꼴을 보니 마치 파리채에 맞아 죽은 파리 같았다.

게다가 소름끼칠 정도로 정확성까지 갖춰 불과 다섯 번의 스윙에 삼백에 이르는 천마군의 9할이 사라졌다. 마지막에 남은 몇 놈들은 천마에게 달려들다가 결국 천마의 꿀밤에 모두 머리가 터져 죽고 말았다.

“이건 뭐.. 랭킹이 무의미한 강함인데?”

전사 랭킹 1위 백명이 덤벼도 안 될 것 같은 이 강함. 슬기의 머릿속에 그동안 애써 눌러놓았던 의문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대체 아저씨는 누구야?’


천마군 삼백명과의 충돌이 충격은 충격이었는지, 나무 언데드의 몸뚱아리도 만신창이였다. 여기저기 부서지고 구멍 난 나무를 내려놓던 천마의 손이 갑자기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나무를 집어들려는 천마. 그 모습에 슬기가 긴장했다.

“뭐, 뭐야? 적이 또 나타났어?”

호들갑을 떠는 슬기를 슬쩍 옆으로 민 천마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머지 일행들에게 나지막히 경고했다.

“이 호로 잡놈들이, 감히 본좌의 물건에 손을 대어 보시겠다? 북금곰 털깎는 짓거리를 하고 있구나!”

천마군들이 죽으며 드랍한 아이템들을 집어들려던 총사를 비롯해 네 명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슬기가 물었다.

“북극곰이 털깎는게 무슨.?”

“북극곰이 털을 깎으면 어찌 되겠느냐?”

“...춥겠지...?”

“그리고?”

“추워서 얼어 죽겠지?”

“그래, 네놈들이 죽을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니라.”

천마의 마지막 말에 슬기는 다소 어이가 없었다.

“그냥.. 죽고 싶냐고 하면 안돼?”

“...크흠.”

천마도 슬기의 말에 동의했다. 왜 죽고 싶냐는 말을 이렇게 빙빙 돌린걸까?

천마는 모르는, 창의적 욕설 키트의 부작용이었다.


총사 일행은 여기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우리는 이만 떠나는게 좋겠소.”

천마를 바라보는 초능력자와 성기사의 눈에 두려움이 역력했다.

“우리 아저씨가 생각보다 나쁜 사람이... 음.”

슬기가 천마를 두둔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진실이야말로 세상을 밝히는 힘인 법. 그래도 왕년에 기자였던 그녀는 거짓말을 하기가 영 껄끄러웠다.

“그래도 크게 피해를 주진 않았잖아요.”

“하지만 그는 버그플레이어지, 안 그렇소?”

총사의 날카로운 추측에 슬기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모르겠어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버그 플레이어의 힘을 빌려서라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은 슬기는 진실을 회피했다.

“좋아요. 어차피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없다면, 헤어지는 게 맞는 거죠. 다만...”

슬기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총사가 그윽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에게 천마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겠노라는 무언의 약속이었다. 버그 플레이어라는 존재는 그만큼 같이 지내기에도, 신고하기에도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렇게 의견을 조율한 후 그들은 조용히 마을을 떠났다.


천마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광개토가 열심히 아이템들을 모아왔다.

하나 같이 ‘천마기로 물든’ 이라는 수식이 붙은 물건들로, 창, 검, 도, 추, 조 와 같은 병장기로부터 재질을 알 수 없는 가벼운 가죽 갑옷 세트들까지 다양한 아이템들이 수거되었다.

땀을 흘려가며 수백개에 이르는 아이템을 주워 온 광개토를 본 천마가 마침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오늘 네 놈은 본좌의 말을 듣지 않고, 무시했다. 마음 같아서는 무공을 회수해버리고 싶다만,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 이번만은 용서하겠다.”

슬기와 광개토의 눈이 동시에 동그래졌다.

“우와, 아저씨! 그런 말도 알아?”

“사부님, 제가 어떤 말씀을 무시했다는 건지..?”

천마가 슬기의 말을 무시하고는 착 가라앉은 어조로 광개토에게 말했다.

“네놈에게 다시 한번 말하노니,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천마의 목소리에 담긴 강력한 위엄과 위협이 광개토의 심장을 움켜쥐는 듯했다.

“매일 두 차례, 새벽 미명과 황혼이 질 때, 즉 음과 양이 혼재하는 시간에 반드시 파천무를 수련해라. 이단공에 오를 때까지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느니라. 이를 어긴다면 너는 칠공에 피를 통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될 것이니, 차라리 그전에 내가 네놈의 목숨을 취할 것이다.”

그저 게임일 뿐인데, 왜 이렇게 엄포를 놓나 싶기도 했지만, 그 살벌한 기세에 광개토는 찍 소리도 못 내고 그저 고개를 조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매일 그 시간에는 꼭 게임을 해야 하는군요?”

“절대 빠지면 안되느니라.”

게임이라는 말에 천마는 살짝 두통을 느꼈지만, 그 단어를 무시하려고 하자, 곧 두통도 가셨다.


“아저씨? 개토야? 다들 선업점수가 얼마야?”

“그게 뭐냐?”

광개토가 주섬주섬 상태창을 살피는 동안, 천마가 당당한 눈빛으로 슬기를 쳐다보았다.

“아니, 그.. 왜 있잖아? 착한 일하면 올라가고 나쁜 짓거리 하면 내려가는 점수. 혹시 자릿수가 너무 커서 한 번에 말하기가 어려워?”

어쩌면 숫자가 세 네자리 정도가 아니라 대여섯자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슬기가 깐죽거렸다.

“마이너스 만 넘어? 혹시 십만? 백만? 흐흐흐”

깐죽대며 실실 쪼개는 슬기의 얼굴을 지그시 내려다보던 천마가 대꾸했다.

“본좌는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러운 일을 한적이 없고, 관대한 성품을 지녔으니 네년보다는 높을 것이니라.”

“미친~”

슬기는 미친 정도를 점수로 표현한다면 이 자식은 아마도 일억쯤 될 거라고 생각했다.

“농담하지 말고, 아저씨 상태창을 한번 봐봐.”

“네년의 말을 들을수록 머리가 아프구나.”

아닌게 아니라, 정말로 천마는 두통을 느꼈다.

하지만 슬기는 천마의 그 모습을 그저 회피 내지는 귀찮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마디하려는데 마침 둘의 대화가 끊긴 틈을 타 광개토가 겨우 말을 내뱉었다.

“저기.. 마이너스 371점입니다.”

“아직도 마이너스야? 이런 젠장~”

슬기는 괜히 선업점수에 욕심 부렸던 자신을 남몰래 탓했다. 진작에 광개토 몫으로 산적들을 남겨두었을 것을 후회했다.

슬기가 품에서 반투명한 얇은 가면 세 장을 꺼내 둘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고, 한 장은 자신이 가졌다. 광개토가 가면을 알아보았다.

“어? 이거 사기치던 놈들이 드랍했던 그 가면이라는 거 아닙니까?”

“맞아. 착한 사람의 가면.”

“이름은 참 선한 거 같은데...”

광개토의 중얼거림에 슬기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딴지를 걸었다.

“개토야, 생각해봐! 착한 사람의 가면을 쓰는 건 누굴까? 착한 사람이 쓰는 걸까, 착한 척하고 싶은 나쁜 사람이 쓸까?”

광개토가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군요. 선한 이름이 꼭 선한 걸 보장하는 건 아니군요.”

“그렇지, 착한 사람의 가면이라는 게 이름부터 완전 사악한 거야.”

“그럼 선인의 목걸이라든지, 광명의 갑옷 이런 이름들도 모두 사악한 이름인 거군요!?”

‘그걸 그렇게 받아들인다고?’

광개토의 성급한 일반화 오류에 슬기는 이마를 긁적였다.

“꼭 그런 건 아니고~”

슬기의 마무리 멘트로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일행은 인근의 마을로 진입했다. 천마의 마을 탐지 레이더가 이번에도 빛을 발했고, 가면 덕에 일행은 아무 제지도 받지 않았다.

슬기가 일행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 가면이 완전 만능은 아니야. 상급 경비 등급을 가진 NPC한테는 안 통하거든.”

“그게 누굽니까?”

“경비대장이나 상급 경비대원들이 그런 녀석들이야. 그러니까 경비병들이 보이면 웬만하면 근처에 가지 말도록 해.”

“그런데 방금 정문에서는...”

“뜨거운 한낮에는 보통 말단들만 보초를 서거든.”

역시 상급자의 갑질은 게임 안에서도 여전했다.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천마가 천천히 물었다.

“그런데, NPC가 무엇인가?”

슬기와 광개토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이 사람은 이렇게 강하려면 꽤나 오랫동안 게임을 했을 텐데, 어찌 이런 기본 중의 기본 용어를 모르지?’

“논 플레이어 캐릭터를 줄여서 NPC라고 합니다.”

광개토의 대답에도 천마는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슬기가 주변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아줌마 보이지? 저게 NPC야. 그리고 또 저기 저 사람보이지, 그 옆에 사람이랑 그 옆에 나무 밑에 있는 사람. 저 사람들이 모두 NPC야.”

슬기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주던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흠, 저런 사람들을 NPC라고 하는군. 알겠다. 아가씨야.”

사람 형태를 하고 있는 NPC인 까닭에, 슬기는 그들을 사람이라고 칭하는 천마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천마가 이어서 손을 들어 마을 광장 여기저기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저 사람, 저 사람. 저 사람 모두 NPC인 것이냐?”

슬기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 사람도?”

“저 사람도?”

“저 여자도?”

“저 늙은이도?”

몇 번 대답하던 슬기는 질리기 시작했다. 이건 뭐, 마을 내의 모든 사람 수 만큼 질문할 기세이지 않은가!!

‘이 아저씨는 입도 안 아프나!?’

속으로 궁시렁거리던 슬기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개토야, 이 마을 이름이 뭐라디?”

역시나 ‘엄마 손잡고, 세상 모든 간판 읽기에 도전하는 7세 아동 같은’ 천마에 질려가던 광개토가 바로 질문을 받았다.

“네, 아가씨! 마을 이름이 와와랍니다. 와와촌. 누운 두꺼비라는 뜻인 거 같은데 좀 웃기지 말입니다.”

뭐가? 라며 슬기가 묻자 광개토가 대답했다.

“게임 제목은 시온이라 영어 같은데, 어째 마을 이름들은 전부 한자어 입니까?”

한 제국이라는 나라 이름하며, 처음 시작했던 마을 이름도 ‘노송촌’이었던 광개토에게는 당연한 의문이었다.

“시온은 대륙 곳곳의 나라마다 문화가 달라서, 어디는 영어권 작명을 쓰고, 어디는 한자어를 사용해서 이름을 짓기도 해. 심지어 아프리카나 북유럽 문화권 나라들도 있어.”

역시나 많이 돌아다녀본 슬기가 대답했다.

그런 슬기의 눈치를 슬쩍 본 광개토가 나지막히 자신의 사정을 얘기했다.

“저기 아가씨. 여관부터 가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오후에 수업이 있어서 말입니다.”

“아, 개토는 대학생이었지?”

고개를 끄덕인 슬기가 일행을 바로 앞의 여관으로 안내했다. 자연스레 갈 곳 잃은 천마의 질문은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럼 저는 저녁에 다시 접속하겠습니다.”

저녁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광개토가 천마의 눈치를 살폈다.

“어딜 가려는 게냐.”

“로그아웃을 해야 해서 말입니다.”

광개토의 대답에 천마가 발끈했다.

“이놈~! 해가 아직 중천인데, 벌써부터 잠을 처자겠다는 거냐!! ”

천마에게 로그아웃이란 곧 잠을 잔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대낮부터 잠을 자겠다는 광개토가 한심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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