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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웹소설 > 일반연재 > 게임, 무협

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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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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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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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9.11.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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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25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25화




거목 뿌리 아래에 있는 던전이 이토록 거대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행들은 변형 두더지와, 대형 어스웜들을 상대하며 처음에는 당황했었지만, 어느덧 익숙한 손놀림으로 척척 잡아냈다. 천마는 어느덧 제일 후방에서 팔짱을 끼고서 일행을 따라가고 있었다. 슬기의 명령이었다.

첫 진입 후에 천마가 몇 마리인가 몹을 잡았드랬다. 그런데 그 결과가 매우 아쉬웠다.

“아저씨가 잡으니까, 경험치가 과자 부스러기만치 들어오는거 같아. 미안하지만 파티에서 좀 빼놔야 할 거 같아.”

정말로 999레벨인건지 어쨌든 천마가 손 하나 까딱 안하고, 그저 숨만 쉬는대도 경험치의 대부분을 가져가 버리자 내려진 특단의 조치였다. 다행히도 몹들은 천마를 빼놓고도 일행의 능력만으로 충분히 잡을 만 했다.

“저.. 사부님. 심심하지 않으십니까?”

가장 저렙이다 보니 한창 광렙중인 광개토가 혼자만 너무 신난 거 같아 죄스러운 마음으로 천마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천마는 이번에도 무시했다. 무안해진 광개토는 대체 자신이 뭘 잘못한 걸까 하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아, 보스 방에 도착한 거 같은데요.”

여리여리한 몸매를 가졌지만, 성기사라는 계열과 탱커 역할에 걸맞게 파티의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해 온 제이제이가 눈앞의 고풍스런 나무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스 방을 알리는 특유의 문장이 그려진 문이었다.

총사의 의견에 따라 문 앞에서 일행은 잠시 휴식을 가지며 각자의 상태를 점검했다.

가방에서 힐링 포션을 꺼내 상처에 바르던 초능력자가 파티를 돌아보며 말했다.

“힐러가 없는 게 유일한 흠이네.”

“침이라도 발라주랴?”

총사가 농을 던졌지만, 초능력자의 말마따나 일행들은 여기저기 감아 놓은 붕대로 겨우 체력저하를 막고 있었다. 힐링 포션이 있다지만, 전투 중에 포션을 마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여차하면 천마 카드를 쓰면 된다는 생각에 슬기는 던전 탐험을 강행하는 중이었다.

가볍게 식사를 마친 일행은 문을 열고 보스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은 상당히 넓은 지하 공터로 지름이 50미터는 됨직한 반구형의 공간이었다.

“뭐가 보스죠?”

랜턴을 든 초능력자가 슬기의 질문을 듣고서 염력을 이용해 랜턴을 위쪽으로 날렸다. 그러자 랜턴의 빛을 통해 희미하게나마 반구형의 내부 공간이 모두 시야에 잡혔다. 분명히 보스 방이었는데, 한쪽 벽에 울퉁불퉁 튀어나온 나무뿌리들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 보였다.

“저것이지 않느냐.”

천마의 나지막한 대꾸와 동시에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히끗하며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쨍그랑~!

일행들이 뭔가를 보기도 전에 랜턴이 깨져버렸다.

“엇, 뭡니까!”

광개토가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의 앞길을 예비하시는 주시여, 그 길을 밝히소서.”

성기사의 나지막한 기도문이 끝나자 그녀의 앞에 그리 크지 않은 광원 하나가 나타났다.

“앞길을 보여준다면서 빛이 왜 이렇게 쪼꼬만 해요?”

초능력자가 희미한 빛을 두고 투덜거리자, 총사가 대꾸했다.

“이게 니놈 앞 길 아니겠냐, 인마.”

모두들 총사의 농담에 가볍게 웃자, 긴장으로 굳어가던 몸이 한결 편하게 풀렸다.

또다시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성기사 앞에 띄워진 빛을 가르는 것이 있었다. 어린아이 팔뚝 굵기 만한 긴 나무 뿌리였다. 하지만 신앙심으로 만들어진 빛은 나무뿌리가 지나간 다음에도 멀쩡했다.

그렇게 지나가려는 나무뿌리를 초능력자가 염력으로 붙들었다. 243렙 초능력자의 염력으로 간신히 붙들만큼 나무뿌리의 힘은 강력했다. 붉게 빛나는 슬기의 주먹이 허공에 멈춘 뿌리를 가격하자, 곧 표적이 산산이 부서졌다.

총사가 어둠 너머로 서서 쏴 자세로 조준을 하더니 한 발을 쐈다.

투앙~! 강렬한 화약소리가 실내를 맴돌아 더욱 크게 들렸다.

“아저씨, 뭐가 보여요?”

성기사의 말에 총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눈먼 총알에 간절한 바램을 담아봤지, 뭐.”

그리고 성기사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불현듯 어둠속에서 쑥하고 튀어나온 나무뿌리 하나가 총사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으앗! 아저씨!!”

초능력자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총사는 목숨을 잃은 후였다. 일행들은 생각보다 너무 강한 보스의 공격력에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방어태세를 취했지만, 적의 공격이 어디로 어떻게 날아오는지 볼 수가 없는 탓에 두려움이 커져갔다.

유일한 조명인 성기사의 빛은 너무 작아서 이런 넓은 공간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연약한 빛이 어둠을 향해 뻗다가 금세 어둠에 잠식되어 버리는 모양새였다.

“이..게임.. 장르가 공포였습니까?”

광개토가 벌벌 떨며 말하는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다시 부웅 하는 소리가 따라왔다.

그 소리에 헉~ 하고 헛바람을 들이키는 순간 광개토의 머리도 날아가 버렸다. 광렙을 했지만 여전히 쪼렙은 쪼렙이었다.

“이거 혹시?”

성기사가 입을 열자, 이번에도 나무뿌리가 날아왔고, 성기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방패로 뿌리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면서 그녀가 생각을 말했다.

“아무래도 보스가 소리를 듣고 공격하는 거 같은데요?”

초능력자가 성기사를 공격하고 어둠속으로 도망치듯 사라지려는 뿌리를 염력으로 붙잡았고, 슬기가 그것을 박살내 버렸다.

한숨 돌린 초능력자가 일행에게 물었다.

“이 놈, 대체 뭡니까?”

시온의 여러 곳을 두루 여행다녀 본 슬기가 대답했다.

“이건 죽은 엔트의 뿌리예요.”

“엔트라면.. 불사의 능력으로 고대부터 살아왔다는 나무 정령 아닌가요?”

성기사가 아는 체를 했다. 그 와중에도 일행들이 입을 열 때마다 뿌리가 공격을 해왔지만, 일행은 한결 능숙한 형태로 방어와 공격을 이어나갔다. 소리가 난 곳으로 공격을 하는 뿌리의 공격은 빠르기만 할뿐 단조로워 일단 익숙해지고 나니 별것 아니었다.

순식간에 대여섯 개의 뿌리를 박살내자, 천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던 슬기도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비록 총사와 광개토가 죽었지만, 남은 이들로도 보스를 잡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불사인 엔트가 죽어서 언데드가 된 셈인가? 뭔가 앞뒤가 안 맞는데?”

초능력자가 피식 웃으며 말하고, 성기사가 곧 날아올 공격을 기다렸다. 슬기는 둘의 뒤에서 곧 나타날 뿌리를 공격하기 위해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푹!!

슬기는 자신의 등을 뚫고 가슴 쪽으로 튀어 나온 뿌리 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이게 무슨 일이야. 이..새끼..설마..일부러..? 약을 팔고 있었어...”

슬기는 죽어가며 깨달았다. 죽은 엔트의 뿌리는 소리가 난 곳으로만 공격하는게 아니라, 소리가 난 곳으로만 공격하는 척을 한 것이었다.

‘몬스터 주제에..이런 사기를 치다니, 혹시 이거 사람이 조종하고 있는 거 아냐?’

슬기는 쓰러지며 뒤쪽에 가만히 서 있는 천마를 쳐다보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아..저씨.. 왜 가만...?”

“아가씨야, 네 년이 빠져 있으라 하지 않았더냐?”

무심한 천마의 말에 슬기는 똥꼬가 저릴 듯 한 빡침을 느꼈다.

“씨발..내 말, 졸라..잘 듣네...”

슬기가 사라지고 나자, 남은 둘의 손발도 금세 어지러워졌다. 죽은 엔트의 뿌리가 이제 구라는 그만 치기로 했는지, 소리와 상관없이 기습적인 공격을 마구 날려댔다.

“저기, 우리 좀 도와주세요!!”

제이제이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천마에게 부르짖었지만 그는 옆집에 개가 짖냐는 표정으로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애초에 천마에게 명령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슬기가 유일했고, 그동안은 슬기의 명령대로 뒤에 빠져 있었으며, 이제는 그에게 명령할 존재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니키가 죽었고, 원망스런 눈빛으로 천마를 바라보던 제이제이도 죽어버렸다. 성기사가 죽자 그녀가 불러냈던 성스러운 빛도 사라지고, 어둠속에 남은 것이라곤 천마와 죽은 엔트의 뿌리뿐이었다.

이윽고 뿌리가 부웅 소리를 내며 혼자 남은 천마를 향해 강력한 일격을 휘둘렀다.


*


부활지점인 산적 마을의 여관방에서 부활한 슬기가 곧장 1층으로 내려왔다. 그 곳에는 먼저 죽었던 광개토와 총사가 있었다.

“아놔, 이 아저씨가 일을 대~충대충 하네!!”

천마의 험담을 하며 일행 곁으로 가려는데, 문득 일행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뭐지? 하고 발걸음을 멈추려는데, 목덜미에 날카롭고 단단한게 느껴졌다.

“남의 던전을 탐하니깐 이렇게 뒤지는 거야.”

익숙하지만 반갑지는 않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몇 차례 죽여 버렸던 바로 그 사기단, 그 중에서도 가장 말이 많던 전사, 굿프리먼의 목소리였다.

전사가 칼을 겨누고 있는 가운데, 정령사가 다가와 능숙하게 슬기의 손을 뒤로 묶었다. 그리고 광개토의 옆자리에 앉히는데, 슬기가 보아하니 총사와 광개토도 손이 묶인 상태였다.

“와, 개토야,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인질이 되었으면 되었다고 경고를 해줘야지.”

슬기가 이를 꽉 깨물며 작게 푸념하자, 개토가 눈짓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광개토의 눈빛을 따라가자 그곳에는 검붉은 둥근 구체, 어둠과 죽음의 정령, 귀요미가 납작하니 그들의 머리 위 천장에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경고하거나 신호를 보내면 바로 죽인다고 해서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기어들어가는 광개토의 말을 들으며, 슬기는 그가 너무 소심하다고 생각했다.


“권사님, 어떻게 우리가 잡히도록 한마디 경고도 안 해 주실 수 있어요?”

피니키가 슬기를 노려보며 말하자, 슬기는 잠자코 천장으로 눈짓을 주며, 말했다.

“미안해요. 제 코가 석자라 어쩔 수 없었어요.”

변명을 하는 동안 광개토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듯 했지만, 슬기는 애써 외면했다.

의도치 않게 한 명씩 한 명씩 죽어서 부활했더니 한 명씩 차례대로 사기단 놈들에게 붙잡혀 버렸다. 초능력자인 피니키는 눈까지 가려졌다. 시야만으로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초능력자라서 취해진 조치였다.

슬기는 천마에게 귓말벌레를 보낼 틈을 찾으려 했지만, 사기단 놈들의 시선이 도무지 떨어지질 않았다.

“야, 그 까만 잡놈은 왜 안와?”

사제가 어울리지 않게 표독스러운 말투로 욕설을 내뱉었다.

“혹시 엔트 뿌리 잡고 있는 거 아냐?”

다소 걱정스러운 듯이 말하는 굿프리먼을 보며 정도령이 손사래를 쳤다.

“죽은 엔트의 뿌리는 언데드 몬스터 중에서도 물리력에 있어서는 거의 최상급 보스인데, 대체 어떤 플레이어가 일대일로 그걸 잡아내겠냐?”

그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정도령은 생각했다.

“그럼 이 새끼들은 어떻게 할까? 일단 한 번씩 죽여버리는게 어때?”

굿프리먼의 말에 사제가 화를 냈다.

“야, 이 병신아, 생각 좀 하세요. 생각 좀! 기껏 잡아서 무력화 시켰는데. 죽이면! 다시 이렇게 예쁘게 모셔놓을 수 있겠어요? 네?!”

면박을 당한 굿프리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거 왜, 항상 그렇게 했잖아?”

지난날을 떠올리며 굿프리먼이 대꾸하자 정도령이 한숨을 쉬며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

“그때는 우리 편이 마을에 가득해서 이 놈들이 한 놈이든, 다섯 놈이든 부활하는 족족 다 잡을 수 있었으니까 그랬지. 지금은 우리 밖에 없잖냐!”

그러면서 원래 우리 무리였던 산적들이 다 어딜간걸까 하고 정도령은 생각했다.

그렇게 사기단 세 연놈이 슬기 일행 5명의 처우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그 때 갑작스레 어마어마한 변고가 발생했다.


*


처음 변고를 느낀 것은 정도령이었다. 아니 죽음의 정령인 귀요미가 자신이 느낀 것을 정도령에게 전달한 것이니까 사실상 귀요미가 가장 먼저 느꼈다고 할 수 있었다.

머릿속을 울리는 귀요미의 두려움에 찬 메시지를 듣고 정도령이 깜짝 놀라 혼잣말을 했다.

“뭐? 악마의 군대가 들어왔다고?”

“뭔 생뚱맞은 소리예요?”

가식적인 표정을 지을 필요가 없어진 양인이 짜증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정도령의 혼잣말에 반응해왔다.

그와 동시에 귀요미에게서 수많은 정보들이 정도령의 머리로 쏟아져 들어왔다. 하나같이 두렵고 섬뜩한 정보들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정도령이 말을 더듬었다.

“어..대장..그러..니까. 지금..우..우리마을에 아..악마의 군대가 도..착했..다는데?”

두 번째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인과 굿프리먼은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는 눈치였다.

“악..마의 군대?”

둘이 정도령의 말을 똑같이 따라 하는 순간,

쿠와아앙~~~!!

하는 폭발음과 함께 한쪽 벽이 폭발해서 사방으로 파편이 튀어 나갔다. 묶인 채로 앉아 있던 슬기 일행 중 몇몇은 꼼짝없이 돌 파편을 얼굴이나 몸에 맞아야만 했다.

“아저씨다!! 니들 이제 사망각임!”

날아온 파편에 이마를 정통으로 가격당했지만 슬기는 너무 기쁜 나머지 아픔도 잊고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벽을 부수고 들어오는 건 천마가 분명했다. 생각해보면 항상 천장을 부수고, 벽을 부수고, 아저씨는 제일 먼저 등장했을 때를 빼고는 문 따위는 가뿐하게 무시 했었었다.

하지만 뿌옇게 일어났던 돌가루가 가라앉자 뭔가 달랐다.

천마는 항상 자기 몸집만하게만 벽을 뚫었었는데, 지금 생겨난 구멍은 거의 한쪽 벽이 거의 통째로 날아가다시피 했다.

그리고 천마가 아닌,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 부서진 벽 사이로 보였다. 까만 흑의에 흑발인 점은 언뜻 비슷했지만, 체격 자체가 어마어마한 큰 사내였다. 흑의의 거한이 두른 망토에서는 검푸른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그가 거친 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흐흐흐, 이곳 사마의 무리들은 모든 사마의 지존이시자 주인이시며, 하늘이신 천마의 다섯 번째 제자, 권마 앞에 앙복하라. 너희 산채에게 이 권마님의 전초 거점이 될 은혜를 내리노라.”

그가 고개를 숙이며 여관으로 성큼 들어오자, 묶인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저 들어왔을 뿐인데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벌한 기세는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정도령은 거의 난동과 다름없는 수준으로 공포감을 전달해오는 귀요미의 영향으로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미 바깥 뉴스를 통해 천마의 제자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입수했던 굿프리먼은 애써 진정하며 그를 접대했다.

“천마님의 제자이신 권마님을 뵙습니다.”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를 하던 굿프리먼의 몸뚱이가 별안간 폭발할 듯 터져나갔다.

“우악!!! 뭐, 뭐예요!!”

사제의 비명을 뒤로 하고,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뭉개졌던 굿프리먼의 시신이 곧 사라졌다.

뻗었던 주먹을 회수하며 권마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모든 사마의 지존이시자 주인이시며, 하늘이신 사부님의 존성대명을 함부로 부르다니. 이는 3대가 멸족당할 중죄니라.”

그 말을 들은 모두의 머리에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새끼는 미쳤다. 아니, 천마교가 미쳤다!!’

“으흐흐, 이 불손한 눈빛들이라니, 미천한 것들에게 천마군을 모실 은혜를 베풀려 했거늘, 싸그리 죽여버려야 겠구나.”

느릿느릿한 어조로 살벌한 내용의 대사를 내뱉은 권마가 홀의 사람들을 차례대로 훑어보았다. 그리고서 가장 가까이 있는 정도령을 향해 슬쩍 손을 들었다.

그 움직임에 정도령이 기겁을 하며 귀요미를 불렀다.

“나를 지켜라, 귀요미!!”

그러자 천장에 달라 붙어있던 귀요미가 몸을 펼치며 빠른 속도로 권마를 향해 떨어졌다. 마치 슬라임이 먹이를 덮치는 듯한 형태의 공격이었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그 속도나 기세는 한낱 슬라임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권마에게는 이거나 그거나 였다.

“하급 주제에.”

권마가 쳐다만 봤을 뿐인데도, 퍽하고 귀요미가 터져버렸다. 그 충격에 정도령이 쓰러졌고, 권마는 무심하게 쓰러진 정도령의 머리를 밟아 터뜨려버렸다.

순식간에 사기단의 둘을 죽여버린 권마가 하나 남은 사제를 쳐다보았다.

“소녀여, 네 년 무리들은 다 어딜 가고, 네 년 혼자 남았느냐?”

“어..저... 그..그게..”

“뭐냐, 두목 년이 말더듬이였던가?”

플레이어면서 산적 무리의 두목이었던 양인은 자신의 정체를 알아챈 권마를 보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그 보다는 그 잔인한 손속이 더욱 두렵기 그지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권마라는 작자가 무정하고도 광기에 찬 폭력으로 사기단들을 하나하나 죽이는 걸 보며 슬기는 크게 긴장하고 말았다.

슬기는 나지막하면서도 다급한 목소리로 귓말을 시도했다.

“아저씨, 여기 좀 얼른 와줄래? 좀 급해.”

슬기의 말에 어느새 떠오른 귓말벌레 한 마리가 슬기의 입 앞에서 수신인을 말해주길 기다리며 머물렀다.

“천마에게 귓말.”

하지만 귓말벌레는 그저 슬기의 눈앞에서 그 작은 날개를 부르르 떨며 날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천마에게 귓말이라고, 천마..아!!”

슬기는 깨달았다. 천마는 그저 광개토랑 둘이서 그렇게 부르기로 정한 이름일뿐, 그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른다는 사실을...

문득 어두워진 바닥을 보며 슬기가 고개를 들자,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바닥에서 천장까지 시야를 완전히 채우고 선 흑의의 사내, 권마가 보였다. 딱딱하게 돌처럼 굳은 얼굴로 권마가 섬뜩하게 중얼거렸다.

“어디서 못생긴 년이 모든 사마의 지존이시자 주인이시며, 하늘이신 사부님의 존명을 함부로 입에 올리느냐, 그것도 세 번씩이나! 이는 중죄중의 중죄이니,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번쩍 치켜 든 그의 솥뚜껑만한 주먹에 검푸른 기운이 모여들었다.

“아저씨, 얼른 좀 오라고...”

하지만 아저씨는 뭘하고 있는지 지금 이곳에 없다. 단신으로 레이드팀을 다 때려부수던 잔인하고, 포악하고, 듬직하던 그를 생각하며 슬기는 괜시리 이곳에 없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어쨌든 슬기의 간절한 중얼거림에 아랑곳 않고 권마는 치켜든 주먹을 그대로 내려꽂았다. 아니, 꽂으려고 하던 그의 주먹이 돌연 멈추었다. 권마의 얼굴에 이채가 떠올랐다.

“호오, 이것은 뭐지?”

맞을 각오로 눈을 질끈 감았던 슬기가 권마의 말에 살짝 눈을 떴다. 푸른 불길에 감싸인 권마의 주먹이 그녀의 머리 바로 위에 멈춰진 채로 가만히 있다.

‘왜 멈춘거지?’

의아해 하는 그녀의 감각에 뭔가 다른 것이 느껴졌다. 권마의 말마따나 이건 뭐지...?

땅바닥에서 희미한 진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드...........드...드..드..드드득~~!!!!


진동이 점점 강해졌다.


작가의말

분량 조절을 실패해서 이번 화는 좀 많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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