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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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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104,585
추천수 :
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19.11.27 12:00
조회
496
추천
5
글자
12쪽

51화

DUMMY

(51편)


슬기가 로키와 아직 제대로 격돌하지 않고 노려만 보고 있을 무렵, 광개토와 스텐이 한차례 맨손 격투를 끝냈을 때에 레인과 실리엔도 손을 섞기 시작했다.

레인은 단검 한 자루를 역수로 쥐고서 눈 앞에 선 소녀, 실리엔을 탐색하듯 훑어 보았다. 일단 이 곳에 어울리지 않는 하얀 미니 드레스 복장이 조금 이상했고, 그녀의 손에 아무런 무기도 없는 걸로 보아, 초능력자이거나 권사, 혹은 숨길 수 있을 만한 특별한 기병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왕 손을 섞는 김에 예쁜 소녀와 하게 된 것에 대해서 딱히 불만은 없었지만, 오랜 무림의 격언이 떠올라 왠지 기분이 싸했다.

‘노인과 여자와 아이를 조심하라.’

레인은 절대로 눈 앞의 소녀를 만만하게 보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그와 함께 이제 한 몸이 된 듯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천마기를 믿었다.

그래서 그는 평소 자주 사용하던, 그늘 속으로 들어간 다음 암습을 하는 패턴을 버리고, 과감하게 앞으로 달려들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실리엔도 눈 앞의 조그마한 도적이(그래봐야 비슷한 키였다) 날렵한 움직임을 보이며 다가오자 물러서지 않고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레인의 단검이 재빠르게 휘둘러졌고, 실리엔은 아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그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둘의 공격이 맞부딪히기 직전에 레인은 단검을 슬그머니 거두며 빙글 돌면서 실리엔 곁을 지나갔다. 그 바람에 실리엔의 손가락에서 뻗어나온 손톱은 목표를 잃고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그리고 실리엔 옆을 빠져나오던 레인이 단검을 번개처럼 움직여 실리엔의 옆구리와 허벅지에 한 차례씩 푹 푹- 두방의 칼질을 먹이고는 이내 옆으로 이동해 거리를 벌렸다. 천마기가 있기에 가능했던 번개같은 움직임이었다.

자신이 생각한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한 것에 대해 기뻐하며 고개를 돌리던 레인은 깜짝 놀랐다. 실리엔이 마치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듯 어느새 바로 그의 등 뒤까지 다가와 있는 것이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새하얀 피부를 가진 소녀의 움직임은 마치 귀신과도 같아서 레인은 정말 귀신을 보는 기분이었다.

“어엇!”

하지만 레인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련한 도적이었다. 신음을 내면서도 움직임은 신속하기 이를 데 없어 갑작스런 실리엔의 손톱 공격을 차분하게 피해내며 다시 두 번의 단검 공격을 성공 시켰다.

하지만 네 번의 공격을 성공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데미지를 입지 않은 듯한 실리엔의 변함없는 표정과 속도에 레인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 년 뭐야? 미친 년이야? 왜 전혀 안아파하는 거지?”

분명 크리티컬도 터졌고, 안 아플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눈썹 한번 안 찡그릴 수 있지? 대체 피통이 얼마인거야!? 라는 의혹이 레인의 머릿속에 뭉글뭉글 솟아났다.

몇 번의 공방이 더 이루어지고 나서도 양상은 똑같았다. 천마기를 적극 활용한 레인은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고서 무려 10번의 공격을 적중시켰지만, 여전히 쫓기는 신세였고, 그렇게 많은 공격을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던전 보스급의 피통을 가지고 있는 실리엔은, 여기에 모기가 왜이렇게 많아? 하는 듯한 표정으로 계속 도적놈을 쫓았다.

그때, 스텐의 맹공을 버텨내지 못한 광개토가 허벅지에 심각한 상처를 입으며 뒤로 넘어졌다.

“흐억!! 아픕니다!!”

광개토의 신음 소리에 실리엔의 고개가 돌아갔다.

“주인님.”

실리엔의 마음 속에 고작 그 정도에 넘어지고 징징 짜는 광개토에 대한 못마땅함이 마구 차올랐지만, 그래도 주인님은 주인님이었다. 그녀는 뭔가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걸 느꼈지만, 도저히 그걸 토해낼 수가 없어 답답했다. 그녀는 주인님을 보호하기 위해 상대하고 있던 도적을 내버려두고 주인님 앞으로 몸을 날렸다.

로키 일행 최고의 스피드를 가진 레인과 붙어서 상대적으로 느려 보였을 뿐, 사실 실리엔의 움직임도 상당히 빨랐다. 광개토를 향해 날아들던 스텐의 다음 공격은 어느새 가운데 끼어든 실리엔의 손톱에 의해 저지 당했다.


투캉-


손톱과 금속이 부딪혔는데, 검과 검이 부딪힌 듯한 소리가 났다. 스텐은 눈 앞에 갑자기 나타난 하얀 소녀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이, 도적아. 니꺼 제대로 안챙길래?”

스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실리엔의 뒤로 레인의 그림자가 솟아났다. 그리고 그림자에서 돋아나온 두 개의 단검이 벼락같이 실리엔의 뒷목에 꽂혀들어갔다.


푹푹-!


“제대로 하고 있는 중인데?”

그림자 밟기 공격을 크리티컬로 성공시킨 레인이 살짝 비틀거리는 실리엔을 보더니 뒤로 훌쩍 몸을 날리며 웃었다.

“리엔!!!”

광개토가 절규하듯 실리엔을 불렀고, 실리엔은 그런 광개토를 보며 한걸음 더 비틀거리더니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싸움 비슷한 걸(?) 하고 있던 슬기마저 1톤짜리 나뭇가지를 맞고 넘어졌다.

동시 다발적으로 천마 일행 중 세 명이 넘어지거나 주저앉아 버렸다.


“으으윽”

슬기가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으며 괴로워했다. 특히나 가슴 위에 올려진 나뭇가지의 무게에 그녀는 숨쉬는 것조차 괴로워했다. 하지만 광개토는 슬기가 왜 그렇게 괴로워하는지 도무지 알지를 못했다. 광개토의 눈에는 그저 나뭇가지가 가슴에 올려져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보다는 그가 허벅지에 입은 깊은 검상이 훨씬 더 고통스럽다고 생각했다.

한편 무수히 많은 공격을 허용한 실리엔은 여전히 피가 많이 남아 있었지만, 일시적인 큰 피해에 잠시 쇼크가 온 상태였다.

“쯧, 생각보다 강한 상대가 아닌데?”널부러진 슬기와 광개토, 실리엔을 내려다보며 스텐이 혀를 찼다.

“우리가 강해진거죠. 솔직히 용군이 안되었더라면 못이길 상대였어요.”

레인은 말을 하며 실리엔을 보고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그녀가 정말 귀신 같았었다고 생각했다.

“긴장 풀지 말아라. 아직 한 놈 남았다.”

로키가 팔짱을 끼고서 미동도 없는 천마를 쳐다보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말했다.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거나 위압감이 느껴지는 사내는 아니었지만, 일행들이 모두 쓰러지는 동안에도 아무 미동이 없는 걸로 보아, 생각이 없거나 혹은 일행이 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위기감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강자일거라고 로키는 생각했다.

‘바보냐, 강자냐?’

로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 천마는 이 기분 나쁨을 어떻게 풀어낼까 하고 고민 중이었다. 당장 그가 움직인다면 상황을 종료될 것이고, 적들은 사라져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 정답일까?’

천마는 점점 생각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언제부터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불과 얼마 전부터 생겨난 변화였다.

슬기가 주문했던 말,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해줘.’

그 말은 영원히 그가 그녀와 일행을 지켜달라는 말인것인가, 아니면 다치지 않을 정도의 힘을 기르게 해달라는 말인가?

그런 고민을 하며 우두커니 서 있는 천마의 모습를 살피던 로키가 결정을 내렸다.

‘아직까지도 가만히 있는 걸 보면 바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원래 강자는 잘 참지 않는 편이다. 왜냐하면 강자니까. 로키는 그런 의미에서 천마가 강자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소 꺼림칙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런 걸 일일이 신경쓰다간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할 수 없는 법이었다.

“죽여.”

로키의 말에 레인과 스텐이 움직이려는 순간, 천마가 손을 들며 말했다.

“꺼져라.”

“크억!!”

로키, 레인, 스텐이 동시에 신음을 터뜨리며 뒤로 튕겨져 버렸다. 돌연히 발생한 거센 압력에 허공을 허우적대며 날아간 세 사람은 멀찌감치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디에스와 쟈넷의 발치까지 날아가서야 바닥에 형편없이 널부러졌다.

“뭐, 뭐야!! 이건!!”

“초, 초능력자? 그런데 이건 너무 개~사기적인 파워잖아!!”

레인과 스텐이 호들갑을 떠는 가운데 로키 역시 경악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강력한 염동력이라니!! 저 자는 분명히 히든 랭커가 분명하다!!’

자신의 정보를 숨기고 다니는 강자들, 공인 랭킹에는 등록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는 자들이 히든 랭커들이었다.

그 자신이 초능력자 최상위 랭커인 로키는 자신의 판단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능력을 선보인 이상, 이제 게임은 끝났다! 초능력자는 태생적으로 약점이 뚜렷한 계열. 한가지 능력에 있어서 만큼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지만, 말 그대로 단 한가지의 능력에서만 강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파티 플레이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계열이었다.

“염동력의 약점은 말 안해도 알지?”

로키의 말에 레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염동력은 시각을 바탕으로 하는 초능력. 시각의 사각지대에서 이루어지는 공격에는 취약할 수 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도적의 그림자 공격. 레인은 곧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천마가 눈 앞의 잔챙이들을 단번에 다 죽여버리지 않은 것은 좀전의 사고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판단이었다.

‘다치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이들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천마의 손짓에 슬기를 누르고 있던 나뭇가지가 옆으로 치워졌다.

한결 숨이 편해진 슬기 옆으로 광개토와 실리엔이 다가왔다.

“괜찮습니까, 아가씨?”

광개토의 말에 슬기가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괜찮겠냐? 아파 죽겠는데. 개토야, 내 상처 좀 빨리 꼬맹이한테 옮겨.”

하지만 광개토가 잠시 살펴본 슬기의 상처에는 천마기가 실려있지 않았다.

“안됩니다. 이건 천마기에 의한 상처가 아니고... 지금 우리 리엔이도 많이 다쳐서 그럴수 없습니다.”

슬기가 살며시 실리엔을 돌아보니, 하나도 아픈 기색이 없어보였다.

“야, 어짜피 니네 꼬맹이는 피통이 바다처럼 커서 하나도 안아플거야. 게다가 NPC가 무슨 고통을 느낀다고..아야, 씨발. 아파 죽겠네.”

슬기가 엄살을 피웠지만, 그 산적처럼 건강하기 이를데 없는 얼굴로 하는 엄살은 광개토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아가씨, 차라리 제가 받겠습니다.”

“뭐, 니가? 이거 엄청 아플텐데?”

하지만 광개토는 자신에게 있는 또 하나의 사제 스킬 ‘자연 치유력 강화를 아직 안써본 참이라 과연 어느 정도의 효과일지 자못 궁금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나뭇가지에 맞고 생겨난 상처가 그렇게 아파보이지도 않았다. 슬기가 그저 엄살을 피우는거라 생각한 광개토는 크게 선심을 한번 쓰기로 했다.

광개토는 먼저 자신에게 ‘자연 치유력 강화’를 펼쳤다.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천마 ..힘이 솟아나요?”

사제마법의 시동어를 읽으면서도 광개토는 정말 이 문구가 맞나? 하는 의구심에 빠졌다.

곧 허벅지의 상처에서 고통 외에 간질간질하는 느낌이 느껴지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한 느낌적인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광개토는 이어서 상처 전이를 위해 슬기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야, 뭐하냐, 뒤질래?”

광개토의 손길에 슬기가 정색하고 묻자, 광개토는 그제야 현실을 깨닫고 당황했다.

‘아, 그러게 누가 얼굴을 산적처럼 만들랬나?’

광개토는 마음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아무튼 꼭 상처 부위에 손 댈 필요는 없다는걸 알게 된 광개토는 그저 어깨를 붙잡은 채 슬기의 상처를 전이 받았고, 주문이 완성됨과 동시에 전해오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서 몸부림 쳐대기 시작했다.

“으허헉, 저 .... 그르륵, 가슴이... 너무.. 말이 안나올.. 정도로.. 아파...”

허벅지 상처보다 훨씬 아픈 가슴의 통증에, 광개토는 슬기의 상처를 가볍게 여긴 자신의 판단을 저주했다.

“으으, 못 생긴게 더럽게 아프네!!”

광개토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서 다만, 다시는 자신에게 상처를 전이하지 않겠노라고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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