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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지오 디 오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0.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3.04.25 21:13
연재수 :
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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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086
추천수 :
18,148
글자수 :
839,717

작성
20.12.1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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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지오 디 오리진 -2화-

DUMMY

“이사 가자.”

“이사?”

“응. 새 출발은 새집에서 해야지.”


오빠 품에 안겨 울고 난 뒤로 이수진은 지오를 편하게 대했다. 예전에는 말을 아끼고 신중한 모습만 보였다면 이제야 제 나이에 어울리는 싱그러운 미소로 가득했다.

언니의 극적인 변화에 두 꼬맹이는 당황스러웠지만 좋은 것이 좋다고 그냥 넘어갔다. 수영과 수현 자매를 학교로 보내고 지오는 수진과 함께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예전이라면 반대부터 했을 텐데 방어막이 걷힌 그녀는 지오보다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여기 좋다! 오빠. 방도 네 개고 화장실도 두 개네.”

“넷이 살기엔 작지 않나?”

“집이 너무 커도 안 좋아.”

“그래?”

“응. 아파트가 살기엔 좋다니까. 나중에 되팔기도 좋고. 빌라나 단독은 거래가 힘들어.”

“그럼 계약할까?”

“아니, 그건 아니야. 더 돌아보자. 일단 킾.”


쇼핑만이 지옥이 아니다. 부동산도 지옥이다. 급기야 학교를 마친 수영 수현 자매의 합류 후 열흘은 지나서야 결정을 내렸다.


“우와! 이제 여기서 사는 거야?”

“우왕!”


각방을 가지게 된 수영과 수현은 방방 뛰고 난리도 아니다. 오랜 고심 끝에 계약한 집은 방이 여섯 개에 화장실이 세 개나 딸린 60평대 아파트였다. 가성비를 추구하던 수진의 결심이 흔들린 계기는 다름 아닌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전망이다.


“이 집은 수진이 명의로 계약했다.”

“네? 콜록콜록.”


이사가 완료된 날 짜장면과 탕수육을 흡입하던 이수진은 지오의 말에 사레가 들렸다.


“언니 휴지, 휴지!”

“언니, 물. 물 마셔.”

“콜록콜록!”


겨우 진정한 수진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눈빛을 던졌다.


“이 집 수진이 네 명의라고.”

“네?”

“집주인이 너라고. 이수진 씨.”

“우악!”


얼빠진 수진과 달리 수영과 수현은 괴성을 질렀다.


“진짜? 집주인이 언니라고?”

“증여세는 다 냈으니까 상관없고, 왜냐고 물으신다면... 졸업선물이라고 해두지.”

“쌌다! 브로.”

“우와! 졸업선물 클라스 지리고요! 오지고요! 오지오고요!”


마지막에 이상한 말이 들렸지만 지오는 웃기만 했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수진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 오빠.”

“그동안 찾지 못한 미안함을 그냥 돈으로 때우는 거야.”

“그래도 고마워.”

“우리! 우리는 뭐 엄습니까? 브로.”


큰 병아리, 작은 병아리 두 마리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지오를 쳐다봤다. 입술에 묻은 짜장이나 좀 닦지. 그는 품에서 폰을 꺼내 뭔가를 눌렀고 이윽고 두 병아리의 폰이 짧게 진동했다.

계좌이체는 언제나 옳다.


“으앗! 감사하옵니다! 형님오라버니!”


아니, 짜장 묻은 입술로 내 볼에 뽀뽀하지 말라고.

다음 날 중딩 고딩 대딩 세 자매 모두를 등교시킨 그는 다시 이태원의 클럽 메릴랜드를 찾았다. 브라이스는 하품을 쩍쩍하며 그를 마중했다.


“아침부터 웬일이야?”

“아침? 1분 후면 정오다만?”

“하암, 졸려. 용건만.”

“돈세탁 한번 하자.”

“인? 아웃?”

“인.”

“달러?”

“엔이랑 달러, 5대5.”

“엔화가 요즘 강센데... 수수료는?”

“20.”

“20프로는 너무 짠데? 30.”

“25.”

“오케이. 분산할 거지?”

“계좌 열 개로 나눠.”

“얼마나?”

“달러는 2천만.”

“달러가 2천만이면 엔화는... 22억 엔?”

“그쯤 될 거야.”

“뭐할 건데 이런 거금을 들여오는 거야?”

“말했잖아. 당분간 한국에 머물 거라고.”

“마음에 들었나 봐?”

“다들 착하더라고.”

“네 부친이 알면...”

“어린애도 아니고. 아빠 무섭다고 형제를 버려?”

“진짜 마음에 들었나보네. 음. 금액이 커서 시간 좀 걸릴 거다.”

“언제까지?”

“일주일.”


지오는 손을 흔들며 클럽을 나왔다.

꽃집에 들러 빨간 장미 한 송이와 맛집으로 소문난 수제 빵집에서 마카롱을 샀다. 지오가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대저택이다. 벨을 누르자 한 1분 뒤에 정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사내가 마중했다.


“아저씨.”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

“그 도련님 소리 좀 안 하면 안 돼?”

“은퇴하면 고치겠습니다.”

“할매는?”

“여사님은 안뜰에 계십니다.”


집이 얼마나 넓은지 한 3분쯤 걸어서야 안뜰에 도착했다.


“할매.”


젊었을 적 한 미모 했을 것 같은 노인은 지오가 건네는 장미를 받아들고는 작게 웃었다.


“뇌물이더냐?”

“항상 말했잖아. 꽃을 든 남자는 무죄라고.”

“마카롱은?”

“그게 진짜 뇌물이지.”

“애미는 잘 보내줬느냐?”

“알았어?”

“그럼 몰랐을까. 네 할아비도 알면서 모른 척할 뿐이다.”


다들 엄마가 성조의 안주인이 되리라 믿었다. 그 믿음이 배신당했을 때 제일 크게 화를 낸 건 어쩌면 외가가 아니라 전미란 여사가 아니었을까.


“대근이 뒤는 왜 캐는 게냐?”

“그것도 알았구나. 그럼 내 대답이 뭔 줄도 알겠네.”

“이충재는 사고가 맞다.”

“알아본 거야?”

“어쨌든 성조와 관련될 수도 있으니까.”

“할매는 역시 철두철미해.”

“할미가 그를 죽였을까 봐?”

“그건 아니야. 할매 성격상 이충재를 죽여야겠다고 판단했다면 증거나 증인 따위를 남길 리 없으니까.”

“하하.”


전미란의 웃음은 남자라 믿을 만큼 화통했다.


“상관도 없는데 작은할배를 시켜서 사람을 붙인 이유가 뭘까?”

“맞혀봐라.”

“음. 아버지 때문에?”


전미란이 빙그레 웃자 지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도 끼고도는 거야?”

“물가에 내놓은 애 같거든.”

“아버지도 곧 환갑인데 너무하네. 할매.”

“강단 있는 녀석이었다면 마누라도 안 뺏겼겠지.”

“그 말을 들었으면 울었을 거야.”

“아직도 잘 우니?”

“남자도 갱년기가 온다고 해.”

“하긴 네 할아비도 요즘 눈물이 많아졌지.”

“유전인가 봐.”

“태식이나 널 보면 그런 거 같지도 않아.”


삼촌 오태식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다.


“삼촌이 있는데 회장 자리를 왜 고모한테 줬어?”

“태식이는 회장 깜냥이 아니야. 녀석은 2인자가 어울려.”


제 자식인데도 평가는 냉혹했다.

삼촌의 성격이 어디서 왔는지 잘 알겠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할머니보단 할아버지를 더 닮았다.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호구는 아니었는데 아버지의 대책 없는 호구 기질은 격세유전이 아닐까 싶다.


“고모가 힘들다던데.”

“왜? 그래서 도와주려고?”

“내가 경영을 뭘 알겠어. 그래도 문제를 일으키는 놈을 잡아내는 건 잘하긴 하지.”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

“문제는 많아. 일단 왕좌에 미련이 남은 삼촌들?”

“태식이?”

“어디 한 사람만 그러겠어? 아버지가 특이하지 다들 미련이 많을 거라고. 더구나 고모는 막내잖아.”

“능력 있으면 여자든 막내든 상관없어.”

“당신들 살아있을 때야 삼촌들도 아무 말 못 하겠지.”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할 땐 들은 척도 안 하더니... 걔들 때문이더냐?”

“만나 보니 착한 애들이더라고. 괜히 휘말려서 더러운 꼴 보기 바라지 않아.”

“난 애미를 용서하지 않았어.”

“아니, 할머니는 오래전에 엄마를 용서했어.”


당신 성격상 엄마를 진심으로 미워했다면 재혼하게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전미란은 눈을 감았다. 재벌가 여자의 삶은 지독하게 화려하고 또 지독하게 외로웠다. 친구를 사귀기도 어려울뿐더러 있는 친구도 의심해야 할 판이다. 타고난 정신력과 강인한 의지가 없었다면 그녀도 누구처럼 젊은 애인을 끼고 쾌락을 탐닉했으리라.

돈 있는 남자 못지않게 돈 있는 여자의 일탈도 무섭다.


“됐고. 채령이는 언제 만날 거니?”

“고모는 미국 가기 전에 만나려고.”

“미국은 언제 가려고?”

“다음 달?”

“그럼 가기 전에 걔네 데려와.”

“왜?”


할머니는 내가 건넨 장미의 향기를 맡았다.


“애미의 불행을 반복할 필욘 없지 않겠니?”


지오는 갸웃거렸다. 불행의 반복? 무슨 뜻일까.


“윤종오, 그 욕심 많은 늙은이가 예쁘게 잘 자란 상품을 가만 놔둘 거 같으냐.”

“아.”


윤종오, 딸자식을 팔아먹는데 거리낌 없는 잔인하고 냉혹한 외조부.


“고마워. 할매.”

******




“언제 오는 거야! 샘.”

“곧.”

“나, 나! 축구부에 들어갔단 말이야! 드리블 연습 도와줘.”

“나, 나는 걸스카우트! 불 피우는 거 알려줘! 캠프 배지 받고 싶어.”


화상통화 속 쌍둥이는 서로 카메라에 보이려고 치열했다.

급기야 폰이 땅으로 떨어지자 새엄마 케이트가 둘을 떨어뜨리고는 미안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애들의 성화는 계속됐다.


“다시 전화할게. 샘.”


쌍둥이들의 성화를 버티지 못한 케이트가 통화를 종료했다.

지오는 괜찮다고, 좀 있다가 통화하자고 문자를 남겼다. 그녀들은 여전히 건강해 뵈니 다행이다. 에이프릴과 줄리아나에 비하면 수영과 수현 자매는 그리 떼쟁이도 아니었다.

결혼 12년만에 태어난 쌍둥이는 부부의 보물이었다.

다행이라면 새엄마를 많이 닮았다. 그는 아쉬워했지만 쌍둥이에겐 천만다행이다.

성조그룹 회장 오채령과의 만남은 자정에 가까운 늦은 시간에 이뤄졌다.


“오랜만이네. 우리 조카.”

“우리 고모는 갈수록 아름다워져. 뱀파이어처럼 양기를 빨아들여서 젊어지는 거야?”


오채령은 깔깔거리며 입을 가릴 생각도 안 했다. 품위를 중시하는 재벌가 습성상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대화는 오랜만이었다.


“할매한테 들었어. 문제가 있다고.”

“내가 부탁할 땐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어쩐 일이야.”

“할매랑 똑같은 말을 하네. 알잖아.”

“고생했다.”

“내가 고생했나. 애들이 고생이지.”

“언니는...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성조가家 여자들은 의외로 엄마를 미워하지 않았다.

꿈과 사랑을 찾아 왕비 자리를 걷어찬 그녀의 용기를 높게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중매나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으니까.


“네 엄마는 멋진 여자야. 그렇게 다 버리고 갈 수 있는 여자가 몇이나 되겠어.”

“나 같으면 호구지책은 마련하고 일을 저질렀을 거야.”

“낭만이 없구나.”

“낭만 찾다 쪽박 차.”


오채령은 혀를 차다 피식거렸다.


“어쨌든 도와준다니 고마워.”

“일은 미국에 다녀와서 시작하고 싶어. 제대로 정리 안 해두면 아버지 성격에 백 프로 삐쳐.”

“오빠는 여전한가보구나.”

“그 양반은 죽어서도 안 변할 걸?”


오씨집안에서 오태양은 돌연변이였다.

성조왕국의 하나뿐인 왕좌를 뒤로한 건 왕비 자리를 걷어찬 엄마의 일탈보다 더 파격적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자기 뒤를 이를 유일한 후계자라 굳게 믿었으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본격적인 일은 미국에 다녀와서 시작하겠지만... 일단 분위기는 살펴야겠지?”

“자리는 마련해놨어.”


오채령이 내민 건 출입카드와 서류철이다.


“감찰?”

“응. 본사 감찰부장은 임원급이라 바로는 힘들어.”

“임원은 나도 사양이야. 팀장이면 괜찮네. 권한은?”

“무제한.”

“응? 그게 임원보다 더 어렵지 않아?”

“아버지가 허락했으니 사장들도 뭐라 못 해. 어쨌든 넌 장손이잖아.”


혈연을 중시하는 이 나라에서 장손은 큰 메리트다.


“날 너무 믿는 거 아니야? 고모.”

“그래서 내 등에 칼 꽂을 거니?”

“아니.”


재벌총수라니 그런 귀찮은 일을 왜 한단 말인가? 돈으로 산을 쌓아도 즐거움을 누리기는커녕 보호를 빙자한 답답한 감시 아래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농담이 아니라 자살 마렵다.

아버지가 한 일 가운데 제일 잘한 일이 왕좌를 걷어차고 뛰쳐나온 것이다. 능력은 몰라도 야망도 의지도 없는 자가 톱의 위치에 있는 조직은 금방 몰락했다.

출입카드와 서류철을 챙긴 지오가 떠나자 오채령은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심호흡했다.


“어때 보여?”

“사진보다 실물이 나은데?”

“미친놈아. 얼굴이 아니라 사람을 보라고.”


오채령이 회장 자리에 오르며 비서실도 파격적인 인사가 이뤄졌다.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할 비서실은 당연히 오채령에게 절대충성하는 인물로 채워야 했다.

성준일은 오채령과 중학교부터 질긴 인연을 이어왔다. 남녀가 오래 붙어있으면 정분이 나는 것이 순리인데 둘 사이는 핑크빛 기류는커녕 암울한 오라로 가득했다.


“젊은 녀석이 분위기가 있어.”

“분위기?”

“사람을 누르는... 갈무리된 기세가 있어. 미국에서 탐정 일을 한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군대를 다녀왔단 기록은 보지 못했는데...”


성준일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중령으로 예편하기까지 20년이 가까이 특수전사령부에서 근무했다. 그는 지오를 보자마자 오싹한 위협을 느꼈다.


“왜?”

“아니, 이건 확인하고 말해줄게.”

“싱겁긴. 엄마는 허튼소리 할 분이 아니야. 그녀는 장남보단 장손에게 기대하는 바가 커.”

“가업을 잇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어른들이 애들 말을 들어? 어차피 나도 회장을 길게 할 생각은 없어. 한 10년쯤 하다 넘겨줄 계획이야.”

“그럼 관건은 그를 회사에 묶어둘 구실이군.”

“맞아. 오빠들이 사고 치길 기도해야 판이지.”


왕자의 난이 터져도 성조그룹이 위태로울 확률은 제로에 수렴했다. 시가총액 7천억 달러짜리 기업집단 지분 51%를 오천명 명예회장이 꽉 쥐고 있으니까.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서 이런 괴물그룹이 탄생한 것이 신기했다.


“내부에서 총질하는 건 상관없어. 아무 데미지도 없거든. 하지만, 외부인을 끌어들이면 대중의 쓸데없는 관심을 불러. 그러니 확실하게 해야 해. 우리 조카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말이야.”

“며칠만 시간을 줘.”

“좋아.”

******




‘이상해.’


지오는 오채령과의 만남에서 굉장한 위화감을 느꼈다.

거대그룹을 이끄는 회장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뭘까? 차라리 충성경쟁이라든가 파벌싸움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고모를 회장으로 인정한 순간 저항은 무의미했다. 스스로 똑똑하다 믿는 어떤 엘리트도 51%의 지분을 가진 오너 앞에 고개를 빳빳이 세울 수 없다.

너 해고! 한마디면 그걸로 끝이다.

고모는 회장을 오래 할 맘이 없어 보였다. 애초에 오채령이란 사람 자체가 야망에 불타는 성향은 아니었다. 징검다린가? 이제껏 할머니의 언행을 보건대 내게 다음 회장을 바라는 것 같다. 여기서 변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남은 수명이다.


‘10년 안에 결판이 나겠군.’


회장이 될 생각은 없지만 지분은 탐난다. 솔직히 준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분들은 내 어디가 마음에 들었을까?


“이수진 씨는 성인이니 상관없고 미성년자인 이수영, 이수현 양의 후견인이 되려면 직업과 재산을 증명할 기록이 필요합니다.”


서초동의 가족법 전문변호사를 찾아 상담했다. 성인인 이수진과 달리 이수영과 이수현에겐 보호자가 필요했다. 원래라면 친언니인 수진이 보호자로 나섰겠지만 아무리 친족이라도 경제활동이 거의 없는 대학생이 두 동생을 부양하는 건 어림없는 일이다.


“어?”


보호자등록절차를 진행하며 뭔가를 확인하던 변호사는 곤란한 얼굴로 돌아왔다.


“수영 양과 수현 양 둘 다 보호자등록이 진행 중이네요.”

“혹시 윤종오란 이름으로 진행 중입니까?”

“그러네요. 윤종오, 외조부로 나오네요.”

“알겠습니다.”


일단 등록절차는 중지하고 남은 비용을 치렀다.

변호사 사무실을 나온 지오는 폰을 들었다.


“오랜만입니다. 삼촌. 시간 좀 내시죠.”


약속을 잡고 찾은 곳은 서초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남 신사동이었다.

SJ글로벌시스템

구 신영건설이 제일시스템엔지니어링과 합병 후 탄생한 국내 도급순위 5위의 대형건설사다. 지오가 본사 로비로 들어서자 이미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SJ글로벌시스템 사장 윤성종, 외조부 윤종오의 아들이자 엄마의 남동생이다.


“오랜만이다. 우리 조카님.”

“거의 1년만인가?”

“벌써 그렇게 됐네. 자자 내 방으로 올라가자.”


사장이 직접 로비로 내려오자 오가는 직원들은 허리를 굽히기 바빴다. 지오는 속으로 혀를 찼다. 굳이 내려올 필요가 없는데도 과장된 퍼포먼스를 보였다.

사장실로 들어오자 입가에 머금은 미소는 싹 거뒀다.


“누나 때문이냐?”

“장례식은 찾지도 않은 양반들이 누구 허락으로 보호자등록 절차를 밟는데?”

“내 뜻은 아니야. 알잖아.”

“삼촌도 그러는 거 아니야. 아무리 미워도 마지막 가는 길은 찾아왔어야지.”

“미안하다.”


윤성종은 그래도 양심은 있었다.


“그럼 내가 깽판 쳐도 막지 마.”

“아버지랑 싸우려고?”

“빌어먹을 영감탱이는 욕심이 과해.”

“후우, 모르겠다 나도.”


구 신영건설이 자기보다 덩치가 컸던 제일시스템엔지니어링을 합병하는데 성조그룹의 도움은 결정적이었다. 딸 팔아 팔자 폈다는 주변의 비아냥이 꼭 근거 없는 헛소리는 아닌 셈.


“애들은 괜찮아?”

“이제야 관심을 가져?”

“가끔 찾아가기는 했어. 만나지는 않았지만...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더라고. 마지막 한 걸음 딱 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거든.”

“영감이 무서워서?”

“그럴지도... 잃을 게 많으면 겁쟁이가 되지.”

“지분은 여전히 영감이 쥐고 있는 거야?”

“어.”

“죽을 때 싸 짊어지고 가려나보군.”

“그게 아버지의 자존심이니까. 그걸 놓는 순간 뒷방늙은이가 될 거라고 두려워해.”

“그 정도면 정신병이야.”


돈의 망자, 아니 가족조차 믿지 못하는 의심병은 치료 불가능했다.


“갈게.”

“입적은 막아보마.”

“영감탱이가 싫어할 텐데?”

“네 말대로 우리에게 무슨 자격이 있을까.”

“알았어. 안 될 거 같으면 무리하지 마. 삼촌.”

“내 걱정하는 거냐?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영감이랑 당신은 다르니까.”

“안 나간다.”

“어. 간다.”


-Stop!


세상이 멈췄다.


-이거 이야기가 너무 진부하지 않아?

-그런 감이 있습니다.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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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지오 디 오리진 -59화- +18 22.06.02 4,449 207 12쪽
58 지오 디 오리진 -58화- +23 22.06.01 4,444 184 15쪽
57 지오 디 오리진 -57화- +25 22.05.31 4,710 189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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