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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지오 디 오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0.12.1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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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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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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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쪽

지오 디 오리진 -79화-

DUMMY

고소의 나라, 고소의 천국 미국에서 변호사는 발에 채는 돌멩이만큼 흔했다. 제프리 하그리브스는 나름 똑똑한 변호사라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실적의 반을 국선변호와 경범죄로 채우는 속된 말로 가비지타임에 매몰돼버렸다.

한마디로 들어가는 품에 비해 돈이 안 된다는 뜻.

한국인은 ‘사’자 직업을 향한 동경이 있다.

의사, 판사, 검사, 변호사, 회계사 등 사회지도층과 기득권의 핵심을 이루는 전문직을 향한 뜨거운 갈망이 있다. 옛날로 따지면 과거시험으로 입신양명을 이룬 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미국의 현실은 다르다.

말했다시피 이 나라에서 변호사는 길가에 널린 흔한 돌멩이나 다름없다. 변호사 대다수가 환경미화원보다 연봉이 낮을지도 모른다. 벤틀리와 페라리를 모는 변호사는 상위 1%의 1%에 불과했다.

법률지식이 깊고 넓다고 좋은 변호사가 아니다.

친절하고 정의로운 변호사? 그딴 변호사는 필요 없다. 오직 승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용주를 이기게 만드는 것이 미국에서 변호사로 성공하는 유일한 길이다.

민간조사원, 사설탐정 등 뭐라 부르던 대가를 받고 남을 위해 일하는 이들은 동류였다. 변호사는 다를까? 고급스러운 어휘로 포장할 뿐 본질은 같다.

변호사는 양복을 빼입은 청부업자다.

인권변호사?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인권 타령했다간 테러당하기 딱 좋다. 뭐 목숨 걸고 좋은 일 하는 분도 있고 절반 이상은 대중을 대상으로 좋은 이미지를 만들려는 쇼였다.

휴머니즘에 헌신하는 사람은 자신을 인권변호사가 아닌 인권운동가로 소개할 테니까. 미국에서 인권을 들먹이는 변호사는 99% 정치에 야망이 있는 자다.

제프리 하그리브스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자격을 가진 야망 가득한 남자. 큰 꿈을 품고 열정을 다하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하지만, 열정의 방향이 어긋나면 그저 법을 잘 아는 한낱 범죄자일 뿐이다.

제프리 하그리브스는 아슬아슬한 선을 타고 있었다.

든든한 배경 없는 신출내기 변호사가 명성을 얻으려면 결국은 실적을 쌓아야 했다. 각계각층에 막강한 인맥을 거느린 거물이야 앉아만 있어도 일거리가 몰려들지만 제프리 같은 신출내기는 구두가 해지도록 뛰어야 했다.

단돈 5달러.

제프리가 낼 수 있는 정보료.

전직 경찰, 용병, 탐정 등 고급인력을 고용하는 로펌의 정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미국에서 변호사는 결코 혼자 일하지 않는다. 아니, 일할 수가 없다. 전산電算이 놀랍도록 발달한 한국과 달리 미국은 현장 혹은 관공서 방문을 강제하거나 규격화된 문서로 처리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전직 경찰, 용병, 탐정 등을 단돈 5달러에 움직일 수 있나?

불가능했다.

그럼 제프리가 고용할 수 있는 정보원과 심부름꾼은 누구일까. 당연히 단돈 5달러도 감지덕지할 노숙자와 약쟁이, 창녀나 가출청소년 같은 부랑자였다.

매춘혐의로 붙잡힌 창녀를 무료로 변호해주거나 마약혐의를 받는 약쟁이와 경범죄를 저지른 노숙자를 도와주는 건 선의가 아니다. 필요할 때 그들을 써먹기 위해서다.

슈퍼마켓을 털다 체포된 흑인놈들을 변호한 것도 같은 이유다. 거지 같은 니거새끼들도 언젠가는 쓸데가 있겠지. 근데 그 흑인새끼들에게 청부한 건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Fuck!’


몇 안 되는 LA 경찰 인맥 중 한 명의 전화를 받는 순간 제프리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깜둥이들이 식당을 습격하다!

뭐 평범한 LA의 일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하필 조카와 함께 있던 사람이 제니퍼 카윈이었다.


‘병신같은 깜둥이들!’


눈치껏 조카의 동행자를 손봐주고 자수하라곤 말했지만 상대는 캘리포니아의 어떤 로펌보다 더 악질인 SNK 엔터테인먼트다.

A.K.A. 아리엘

본명은 더스틴 카마이클이다.

미국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이자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의 상남자는 심지어 머리도 좋았다. 유능한 변호사이자 에이전트로 거듭난 그가 할리우드에 자리 잡고 세운 제국이 바로 SNK 엔터테인먼트다.

아리엘은 제프리의 롤모델이었다.

그리고 그 아리엘로부터 미팅 제안을 받았다.

기분이 좋아야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그가 청부한 깜둥이들이 제니퍼를 습격하다 체포됐단다. 아리엘 정도의 거물이라면 깜둥이들 뒤에 누가 있는지 금방 알아냈을 것이다.

다 버리고 도망칠까?

그래도 되지만 덩치들을 보내는 대신 전화로 미팅을 제안했다는 사실에 작은 희망을 품었다.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모른다. 아리엘을 동경한 만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자부했으니까.


‘열정을 높이 사는 사람이지.’


아리엘은 타고난 싸움꾼이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변호사Shark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상어.

제프리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SNK 본사를 찾았다.


“뭘 도와드릴까요?”


SNK 데스크 여직원은 주급 600달러도 안 되는 그의 비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품이 흘러넘쳤다.


“약속이 있습니다.”

“성함이?”

“하그리브스, 제프리 하그리브스.”

“미스터 하그리브스... 확인했습니다. 안내자가 곧 내려올 겁니다.”


안내자는 금방 내려왔다.


“미스터 하그리브스?”

“Yes.”

“따라오시죠.”


성인 남성 허벅지만큼 굵은 팔뚝을 가진 보안요원의 위압감에 살짝 지렸다. 재수 없으면 저 팔뚝에 몸이 반으로 접힐 수도 있다.

대표실로 직통하는 승강기를 내리자 이름 모를 아시안과 스쳐 지나갔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지만 상대가 눈인사하자 제프리도 아는 척 슬쩍 끄덕였다.


“들어오시랍니다.”


배우 뺨 싸대기 후릴 미모의 비서가 환한 미소와 함께 문을 열어줬다. 제프리는 배에 힘을 빡! 주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리엘은 잡지와 뉴스로 본 것 이상으로 거대한 덩치를 가졌다.

얼굴을 몰랐다면 보안요원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앉지.”

“감사합니다.”

“티? 커피?”

“커피로 하죠.”

“낸시. 여기 커피 두 잔.”


인터폰에서 손을 땐 아리엘은 제프리 하그리브스를 빤히 쳐다봤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 같진 않은데...”

“네?”

“아니, 혼잣말이야.”


아리엘은 쓰게 웃다가 정색했다.


“내가 왜 불렀다고 생각해?”

“...죄송합니다.”

“어떤 정신머리를 가져야 조카를 테러할 계획을 짜? 사이코패스야?”

“다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자기 조카는 안 되고 동행자는 다쳐도 된다?”


아리엘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작게 웃었다.


“그래서 이유가 뭐야?”

“...”

“그래도 부끄러움은 아나 봐? 그럼 내가 말해볼까? 당신 조카를 팔아먹을 계획이지?”

“아닙니다.”

“아니긴... 딱 봐도 견적이 나오는구먼. 레이첼이라... 사내놈들이 환장할 얼굴과 몸매야.”


아리엘은 레이첼 하그리브스의 모든 것이 담긴 파일철을 한 장씩 넘겼다. 괴한에게 습격당한 제니퍼 소식을 들은 팀 레이튼은 누군가를 갈아 마시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아리엘은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누구랑 같이 있었는지 진즉 알았기 때문이다.


‘제이랑 같이 있었다고?’


b-52 전략폭격기로 블록을 날리지 않는 한 상처 하나 입을 리 없었다. 다른 의미의 블록버스터가 필요한 상황.


“제프리 하그리브스.”


아리엘은 딱히 상대에게 유감은 없었다. 도리어 불쌍할까?


‘날벼락은 우리가 아니라 상대가 맞은 꼴이지.’


카르텔과 군벌을 가지고 노는 친구한테 동네 양아치를 들이밀어 봐야 이도 안 박힌다.


“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딱 두 가지야.”


아리엘의 의문은 지오가 눈앞에 있는 이 얼간이를 관대하게 용서했다는 점이다. 그의 성질머리를 아는 아리엘로선 의아한 선택이었다.

왜?

하지만, 의문은 제프리 하그리브스를 만나보고야 깨달았다.


‘귀여운 놈이군.’


굳이 평가하자면 제프리는 악당이다.

제 조카를 팔아먹을 정도로 욕망에 심취했으니 당연히 악당이다. 그러나 아리엘의 눈에는 이제 막 태어난 귀여운 수준의 악동이었다.

지오는 이 녀석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 제니퍼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제프리 하그리브스를 제거하는 건 너무 쉽다. 사회적으로 매장하든 청부폭력을 고발하든 보내버리는 건 쉬웠다.

문제는 제프리가 망가지면 레이첼 하그리브스도 망가진다는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가족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좆같은 형제자매라도 가족은 가족이다.


“하나, 캘리포니아를 떠나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

“둘, 내 밑에서 노예처럼 구른다. 자! 뭘 선택할 거지? 미스터 하그리브스.”

“두, 두 번째를 선택하겠습니다.”

“그래? 좋은 선택이군.”


하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다. 겨우 터를 닦은 캘리포니아를 떠나 타지에서 새로 시작한다? 변호사 자격은 차치하고 몸 성히 캘리포니아를 떠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했다.

팀 레이튼이란 인간도 아리엘 못지않은 또라이였다.


“낸시. 이 친구 데려가서 고용계약서 써.”


비서를 불러 제프리를 데려가게 했다. 허둥거리며 멀어지는 제프리를 보던 아리엘은 폰을 들었다.


“나야. 채용하기로 했어.”

“내 말대로 웃기는 변호사지?”

“웃기는 변호사? 그냥 소시오패스 같던데?”

“마치 자기는 아닌 것처럼 말하네. 아리. 유능한 법꾸라지는 다 성격파탄자라고.”

“법이란 게 원래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야.”

“그래서 내가 변호사란 놈들을 안 믿어요.”

“회계사는 믿나?”

“안 믿지.”

“그럼 누굴 믿어?”

“내 마누라? 아들? 딸?”

“아주 로맨티시스트 나셨구먼.”

“로빈이 여성편력을 누구한테 배웠을까? 여자친구를 다달이 바꾸는 너한테 배웠겠지. 아리. 아랫도리 간수 못 하는 건 둘이 똑같거든.”

“...”

“자기 몸에 의리가 없는데 남에게 충성을 강요할 자격이 있을까?”


한마디로 너나 잘하세요!

양키놈들이 비즈니스와 사생활을 엄격히 구분한다고 열심인 건 문란한 성벽性癖을 포장하려는 변명에 불과했다. 파티피플로 가득한 LA에서 정조를 지키는 건 대단한 인내를 요구했으니까.


“레이첼은 건드리지 마. 아리.”

“어린애를 건드릴 만큼 굶주리진 않았어.”


지오의 소개로 레이첼 하그리브스는 SNK와 계약했다. 단순히 제니퍼를 위해서 한 일은 아니다.


-그놈이지? 셀링 선셋.

-네. 맞습니다. 하이타웝니다.


하이타워

데스 사이드 최고평의회를 지배하는 5대 최고의원 중 하나.

아, 물론 지금은 일개 변호사일 뿐. 제프리 하그리브스가 최고의원 하이타워로 거듭나기까지는 장장 10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미래 미 동부 환락가를 장악한 이 범죄왕국이 탄생하려면 조카를 팔아먹은 제프리의 계략이 성공했어야 했다.


-해리스 가문은 데스 사이드의 명령을 따릅니다. J.


온 세상을 백인 아래 두어라!

이것이 데스 사이드의 행동강령이다.

극단적인 백인우월주의자로 구성된 데스 사이드는 21세기판 네오나치였다. 깊이 들어가면 나치완 다르지만 아리아인이 백인으로 바뀐 부분만 빼면 거의 비슷했다.

데스 사이드의 창시자는 한스 크루거다.

중국에 왕 서방이 있으면 미국에는 존이 있고 독일에는 한스가 있다. 한스 크루거라는 이름을 가진 북유럽계 남성은 전 세계에 수만 명이 넘었다.

흔하기에 도리어 특별한 것.


-어쩔까?

-하이타워를 대신할 하수인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잘할 수 있는 자는 드물지.

-Positive.


아리엘은 제프리의 악행을 귀엽게 봤다. 맞다. 당장은 귀여운 수준이다. 하지만, 경험을 쌓아 언젠가 데스 사이드 최고평의회 의원이 됐을 미래를 고려하면 확실히 재능이 있다.


-아리엘이란 거물의 눈에 든 제프리 하그리브스는 더는 해리스 가문에 미련을 두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필립 해리스의 생각은 다르겠지.

-필립 해리스는 데스 사이드에 심취했습니다. 그는 장차 미국이 백인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 중입니다. 우선은 할리우드가 목표죠.

-빵과 서커스인가...


해리스는 부동산으로 일어선 가문이다.

그들은 캘리포니아를 넘어 미국에서도 손꼽는 농산물기업을 경영했으며 경마협회의 이사이자 큰 목장을 운영했다. 해리스 가문의 가주는 아직 필립 해리스가 아니다. 그러나 능력을 입증한 장남 필립 해리스가 물려받으리란 사실은 명확했다.

단지 시간이 더 필요할 뿐.


-필립 해리스를 제거하면?

-데스 사이드의 성장에 제동이 걸립니다. 다음 전쟁엔 얼라이언스가 압도적으로 승리할지도 모르죠.

-이놈이나 저놈이나.


데스 사이드와 경쟁하는 얼라이언스는 선일까? 아니다. 그쪽도 나쁜 놈인 건 매한가지다. 다만 데스 사이드와 비교하면 참고 넘어갈 수준이다. 주인공의 부친 오태양은 얼라이언스의 핵심 중 한 명이다. 고로 주인공 역시 얼라이언스에 속했다고 봐야 옳다.


-제거해.

-얍.


필립 해리스의 운명이 정해졌다. 교통사고 따위의 사고사로 처리될 것이다. 후회는 없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럴 땐 아빠의 피로회복제 러블리 마이 도털의 사진을 두 번 봐야지 세 번 봐야지.

후우, 기분이 조금쯤 나아졌다.


“제이.”

“일라이자.”


검은색 정장과 코트는 누가 봐도 보스의 아우라를 팍팍! 풍겼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검은색 일색은 흔치 않았다. 쪄 죽을 일 있나? 아니면 나 공무원이오! 광고하고 싶은 걸까.


“미안해.”

“다짜고짜 사과라... 잘못한 거 있어?”

“모니카는 재배치될 거야.”

“걸렸군.”


모니카 그레이스는 직속상관을 배제했다.

정보국 명령계통이 아무리 느슨하고 자율권을 우선해도 직속상관을 무시하는 건 자살행위다. 엘레나 화이트와는 다르다. 그녀는 지오란 단단한 동아줄을 붙잡았고 모니카는 앤드류 캠벨과 일라이자 레인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시도했다.


“미안해.”

“사과는 그만하고. 캠벨이랑은 그만 자려고?”

“...”

“어떻게 아냐고 묻진 마.”

“넌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제이.”


직장동료끼리 잠자리를 같이하는 건 흔했지만 비밀이 공개되면 좋은 꼴 보긴 힘들다. 일반윤리보다 직업윤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 공무원사회다.


“회사를 나올 거야. 나.”

“백악관으로 가?”

“...”

“어떻게 아냐고 묻진 마.”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야망이든 뭐든 일라이자 레인은 더 큰물로 나아간다.


“캠벨에게 한 제안은... 기각됐어.”

“그렇겠지. 정신이 똑바로 박혔다면 초능력을 믿을까.”

“...”

“믿는군?”

“본 게 있으니까.”

“전엔 안 믿는다며?”

“거짓말은 스파이의 기본소양이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뻔뻔함에 기가 막힌다.

내 딸은 절대 저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믿는데... 기각이라? 꿍꿍이가 있나 봐.”

“내가 회사로 다시 돌아오는 날... 그때 똑같은 제안을 해줬으면 해.”

“그러니까 나중에 국장 취임선물로 혈청을 달라?”

“샘플은 지금 줘도 좋고.”

“와! 진짜! 너... 대다나다!”


진심으로 대단하다! 대단해!

통수녀의 최종진화단계는 철판녀다. 아리엘도 안면철판신공을 대성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여자는 한술 더 떴고 10성을 넘어 12성 극성으로 연마했다.


“캠벨은?”

“런던 지국장으로 영전했어.”

“영전, 맞아?”


일라이자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작전국에는 부국장급 간부만 일곱 명이고 앤드류 캠벨은 일곱 명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분석국엔 부국장급이 셋뿐이었으니 부국장이라고 다 같은 부국장은 아니었다.


“모니카는 놔둬.”

“...그런 스타일 좋아해?”

“헛소리하지 말고. 모니카 그레이스는 엘레나 화이트와 같은 대우를 받을 거야.”

“모니카는 엘렌과 달라. 걔는...”

“처리반이지? 알아.”


Service-Action, 요원을 구출하기 위한 요원 혹은 이중작전에 투입되는 비밀요원.

엘레나도 한때 블랙으로 활약했지만 모니카가 수행했던 작전의 난도는 한참 높았다. 계약을 어긴 파파라치 앨런 토드를 무자비하게 처리한 것만 봐도 그녀의 성정은 스파이에 특화됐다.


“대신 좋은 정보를 주지.”

“정보?”

“닉 홀츠.”

“...”


닉 홀츠

전前 CIA 중동지부 책임요원이자 변절자다. CIA는 즉시 암살프로그램을 가동했지만 번번이 그를 놓쳤고 이제는 아예 흔적도 못 찾는 수준에 이르렀다.

대답 없는 일라이자에게 쪽지를 건넸다.


“살펴봐. 아마 재밌는 걸 발견할 거야.”

“대가는?”

“모니카 그레이스.”

“닉과 모니카라... 균형이 안 맞는데?”

“그럼 부탁 하나 하지.”

“가능하면.”


지오를 쪽지를 하나 더 건넸다.


“애슐리 터너?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에이프릴의 가출팸이었어.”

“아.”


에이프릴 강, 지오의 처제는 일라이자도 안다.


“걔는 왜?”

“남자를 잘못 만나 신세 망쳤거든. 거기다 빚도 50만 달러나 있고.”

“당신이 해결할 수 없는 상대는 아닐 테고...”

“영화나 드마라를 보면 노숙자나 창녀, 범죄자놈들을 잡아가서 빡센 스파이 훈련을 막 시키고 그러잖아?”

“...퍽킹, 할리웃.”

“아니야?”

“그래서 잡아다 스파이 훈련을 시키라고?”


일라이자는 말을 돌렸다.


“바닥을 쳐도 정신 못 차리는 인간이 있어. 애슐리는... 그보다 더 바닥을 쳐봐야 정신 차릴지도 몰라.”

“못 차리면?”

“그럼 어쩔 수 없지. 훈련 중엔 사고가 날 수도 있잖아.”

“...아끼는 거 아니었어?”

“누구에게나 선이 있는 거야. 일라이자.”


애슐리와 나 사이에 선은 딱 이 정도다.

제니퍼나 케이트와는 쌓아온 역사가 다르니까. 일라이자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그를 맞이한 건 소파를 짚고 일어난 딸이다. 걸음을 떼진 못했지만 선 채로 후들후들 떠는 모습조차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지오는 바닥에 엎드려 사진을 찍었다.

오오! 좋아! 좋은 포즈다!

피사체가 좋으니 사진빨도 잘 받았다.

필립 해리스의 부고가 전해진 건 두 달 뒤였다.

고속도로 추돌로 현장에서 즉사했는데 이 불행한 사고의 진실을 아는 이는 그밖에 없었다. 이틀 뒤 지오는 아리엘의 초대를 받았다. SNK 창립기념 겸 아리엘의 생일파티였다.

유모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부부 동반으로 파티에 참석했다.

참가자는 지오·선아 부부뿐만이 아닌데 LA패밀리와 윤소희 등 그와 관련된 전원이 참석했다. 케이트&썬 컴퍼니에서 인턴을 마친 이수진, 전국에서 여전한 유명세를 자랑하는 에밀리야 코르센코도 보였고 어린 연습생을 농락한 국민쌍년으로 등극해 도망치듯 한국을 떠났던 아내의 친구 전예림은 놀랍게도 패션디자이너로 뉴욕에서 이름을 날렸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더니 그녀의 아메리칸드림은 한동안 한국에서 논란이 된 적 있었다.

『성폭행 프로듀서의 진실!』

죽일 년으로 손가락질할 땐 언제고 흥분을 가라앉히고 진실을 마주한 대중은 금세 손가락 방향을 바꾸었다.

『유명 연예기획사의 만행!』

전예림은 어느새 지독한 탄압을 당한 열사로 대표됐다. 정치에 뜻이 있다면 한국 여성의 몰표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전예림은 한국이란 말만 나오면 진저리를 쳤다. 이미 국적도 변경했고 양키 남편도 얻었으니 미련 따윈 없었다.

LA 최고부촌에 있는 저택답게 어마어마한 넓이를 자랑했는데 그 대저택이 좁아 보일 정도로 많은 손님이 몰려들었다.

댄스에 진심인 사람들

비즈니스에 열중인 사람들

취기와 열기에 취해 짝을 찾는 사람들

자유분방함과 엄격함이 공존하는 이상한 공간이지만 완전히 무질서하진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지인에게 둘러싸인 강선아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개 쳤다. 그런 아내를 미소로 바라보는 지오에게 다가서는 이가 있었다.


“제이.”

“미스터 스트라스버그.”

“혼자서 뭐하나?”

“잠시간의 여유를 즐기는 중이죠.”


북적북적한 것도 좋지만 혼자만의 여유도 좋아한다. 육아다 뭐다 근래엔 거의 가져보지 못한 시간이다. 설계로 주문한 캠핑카는 내년쯤에야 나오니 그전에 열심히 포인트를 벌어야 했다. 가족을 데리고 아메리카 일주를 하기 전에 캠핑고수가 돼야 한다.

칼 스트라스버그는 앓는 소릴 내며 앉았다.


“후!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늙었으니까.”

“뼈아픈 말이군.”


늙은이에게 늙었다고 말하면 늙은이는 슬프다.


“영화는 봤나?”

“하도 성화라서 세 번 봤습니다.”


제니퍼와 레이첼이 함께한 영화는 평단과 대중 모두의 호평을 끌어냈고 흥행도 나쁘지 않았다. 여기서 상 하나 타면 명실상부 1티어로 올라서도 손색없다.


“그럼 아그네스 배역도 알겠군.”

“포주로 나온 배우 말입니까?”

“그래. 일라이자 존스. 응? 왜 그러나?”

“아니요. 비슷한 이름을 알거든요.”


일라이자란 이름이 흔했던가.

하긴 읽는 방법이나 문화권에 따라 엘리제, 엘리자, 엘리자베스 등 여러 변형이 있다. 예를 들면 그가 아는 케이트만 넷이 넘는다.

LA패밀리의 케이트, 주인공의 새엄마 케이트, 할리우드 톱스타 케이트, 팝의 여왕, 어? 아니. 팝의 여왕은 케이트가 아니라 캐서린이다. 어쨌든 케이트는 엄청나게 흔했다.


-일라이자 존스.

-일라이자 존스, 일라이자 캐서린 존스.

-캐서린?


캐서린도 존나 흔한 이름이었다.


-친할머니 이름을 미들네임에 넣었습니다.


배우 일라이자(32)

중견치곤 젊은 편이지만 아역부터 시작했으니 경력은 17년이 넘었다. 17년 동안 험난한 연예계에서 살아남았다는 건 대단한 커리어다.


-예쁘네.

-할리우드에 못생긴 여배우가 있을까요.


있긴 있다. 뚱뚱한 몸매를 무기로 활약하는 여배우도 있으니까. 못생김도 개성으로 내세우면 훌륭한 무기가 된다.


“미스 존스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일라이자에겐 동생이 한 명 있네. 근데 이 녀석이 사고뭉치지. 하지만, 악의는 없어. 기껏 해봐야 떨을 하는 정도니까.”


떨, 대마다. 10대 청소년놈들의 환각제 남용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문제다. 10대만 그럴까? 20대든 30대든 약을 할 놈은 어떻게든 하고 비아그라는 4, 50대를 위한 떨이었다.


“그래서요?”

“라이언이 마이애미에서 실종됐네.”


사고뭉치지만 누나에겐 잘했단다.


“친구들이랑 마이애미로 여행을 갔고 매일 누나에게 전화했지. 근데 어느 날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어. 일라이자는 숙소에 전화했고 동생이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실종신고를 했네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네.”

“유명한 여행지에다 젊은 남자놈이 하루 비웠다고 실종이라 여기는 현지 경찰은 없겠죠.”


웃프게도 마이애미는 넘치는 여행자만큼 실종자도 많다. 아마 전국에서 제일 많은 실종신고가 발생하는 곳일 것이다. 환락을 즐기러 찾아온 외지인들, 하루 소비되는 술의 총량은 천문학적이다.

마약은? 매춘은? 불법도박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하지만, 라이언은 돌아오지 않았네. 그제야 경찰도 실종이라고 인식한 거지.”

“폰은요?”

“해변에서 발견됐네. 경찰은 술에 취한 라이언이 파도에 휩쓸렸을지도 모른다고 가정했지.”

“친구랑 같이 갔다고 하지 않았나요?”

“다들 취해서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했더군.”

“숨기는 게 있네요.”

“맞아.”


취하면 인사불성이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기억을 깡그리 잊었다는 건 개소리다. 인간의 뇌는 그렇게 단순하지도 연약하지도 않았다.


“마이애미 현지 사설탐정을 고용했네만... 별 성과가 없어.”

“미스 존스와는 어떤 관곕니까?”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야.”


돈 많은 돌싱 칼 스트라스버그의 여성편력도 일리야 못지않았다. 아니, 이제 둘은 멱살을 잡기보단 애인을 놓고 은근슬쩍 경쟁심을 불태웠다.

애새끼들인가?

젊으나 늙으나 굽힐 수 없는 자존심이 있다.


“당장은 무린 거 알죠?”

“알지.”

“내일 전화하겠습니다.”

“고맙네.”


일리야 로빈과 그의 새 애인이 다가오자 칼 스트라스버그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마이 프렌드!”

“로빈, 스테이시.”

“안녕. 제이.”


스테이시 휘트먼이 끌어안자 지오는 어쩔 수 없이 볼키스에 응했다. 일리야 로빈과 스캔들이 난 그녀는 보그 편집장의 새 뮤즈이자 영화판에서도 주목하는 신예며 제니퍼의 경쟁자다.


“저 영감은 안 끼는 곳이 없네.”


일리야는 스트라스버그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꿍얼거렸다.


“왜 심술이 났어?”

“맥심에서 로빈을 깠거든.”


답은 본인이 아니라 스테이시가 했다.


“난 남자한테 인기가 없는 게 아니야! 여자들이 날 더 좋아하는 것뿐이야!”


남성잡지 맥심에서 일리야 로빈을 씹는 건 달마다 돌아오는 일상이다. 여자보다 예쁜 남자는 여자에게 인기 많을지는 몰라도 남자한텐 거부감이 들기 딱 좋다.

스테이시는 금방 떨어져 나갔다.


“캐럴은?”

“집.”

“넌 애인이랑 놀아나고 걘 네 아이를 돌보고?”

“...”

“나라면 니 면상에 샷건을 갈겼을 거야.”


캐럴 브린

일리야 로빈이 가진 혼외자의 친모다.

본인의 동성애 의혹을 해소하려고 친구에게 아이를 낳게 했다. 그녀는 바보일까? 물론 아니다. 사기를 치려다 발각된 캐럴도 제정신은 아니니 어쩌면 이 둘은 환상의 콤비일지도.

스테이시는 다 알면서도 이 스캔들에 합의했다.

왜?

지금보다 더 유명해질 테니까.

이러다 몇 개월 뒤에 우리 헤어졌어요! 기자를 불러 회견을 열든 토크쇼에서 전前 남자친구의 좆이 작다고 까든 인지도가 오를 건 확실했다.


“캐럴은 좋은 여자지.”

“장담하건대 나중에 니 새끼는 널 부끄러워할 거다.”

“에이! 말도 안 돼. 나 일리야 로빈이야. 아빠가 일리야 로빈인데?”

“...”


미친놈들!

지오는 이 새끼들의 정신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자정이 넘기 전에 아내를 데리고 난장판이자 좆장판을 탈출했다.

다음 날

오늘은 강선아가 아들을 돌보는 날이다.

오랜만에 자유를 얻은 지오의 계획은 미루어두었던 조종사 연수를 받는 것. 프로펠러 기종의 비행훈련 시간을 채우지 않으면 면허를 딸 수 없다. 물론 G를 이용해도 되지만 취미생활에 치트키를 쓰는 것도 애매했다.

자기부상열차와 궤도 엘리베이터, 초광속 워프가 일상이 된 제국의 관점으론 원시나 다름없지만 우주군 특히 행성에 최초로 투입되는 강하부대 일부는 여전히 내연기관을 중용했다.


-같은 내연기관이라도 성능과 연비는 제국우주군의 장비가 압도적입니다.

-그래도 이게 다루는 맛이 있네.


달달거리는 이 진동은 손맛이 있다.

같은 내연기관이라도 AI보조를 받는 것과 온전히 내가 운전하는 것은 스릴이 달랐다. 비행교육과 실습 및 훈련이 끝나고 스카이다이빙 강습을 받은 건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지오의 취미는 더 있다. 이건 한국에서도 꾸준히 즐긴 취미다. 바로 좆롤. 북미에도 좆롤을 즐기는 유저는 많았다. 다행인 점은 미국으로 넘어온 뒤 내 등급이 두 배 정도 향상됐다. 뭐 그래봤자 아이언이 브론즈로 올라온 거지만(괴물이 득실거리는 한국 서버가 이상한 거다)

시간이 남자 오후에 세리나의 학교를 방문했다.

세리나는 영어를 꽤 잘했다. 일본인 특유의 쪼가 있긴 한데 심하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녀는 어디서나 밝고 유쾌한 슈퍼인싸였다.

일본인 삼촌으로 오해받았지만 별로 정정할 필요를 못 느꼈다. 뭐 눈을 찢는 등 거슬리는 새끼가 몇 놈 있었지만 그건 G가 알아서 조치할 것이다.


-사고사?

-목숨을 뺏는 건 가혹하니 적당히 부러지는 정도?

-잘못 부러뜨리면 장애인이 됩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뒤로 넘어져서 코 깨지는 건 본인이 감당할 운명이다. 어딜 가든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인종이든 뭐든 차별은 영원하리라.

제국은 출신 행성으로 차별했는데 수도행성 출신을 최고 엘리트로 대접했다. 같은 빈민가라도 수도행성 출신은 특별했다. 제국법은 차별을 금지했지만 수도행성 명문名門 출신이 고위직을 독식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리나를 데리고 PnC 로스앤젤레스 지사를 찾았다. 거장 막스 도너의 영화에 출연해 일본에선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아직은 검증이 필요한 외국인이었다.

아이돌이든 배우든 연예인을 꿈꾸는 그녀를 위해 PnC와 계약을 주선했다. 아리엘이 탐냈지만 깠다. SNK의 푸시를 받으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어린애에겐 독이 될 것이 뻔했다.


‘나쁜 물이 들면 곤란하지.’


주관적으로 봐도 세리나는 예뻤다. 미모는 연예인 지망생이라면 무엇보다 우선되는 장점이다.


-EDH4의 흡수율이 90퍼센트를 넘었습니다.

-대단하네.


솔직히 말하면 세리나의 예쁜 미모는 G가 만들었다.


-칼을 댈 필욘 없겠어.

-약물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얘는 어릴 때 시작했으니 됐고... 나머지는?

-약물과 가벼운 시술로 뼈대를 갖추는 중이죠.


내 여자들?이 받는 에스테틱 프로그램은 전부 G의 손을 거쳤다. 오지랖일까? 그럴지도. 그래도 이 정도면 착한 오지랖이다. 세리나를 트레이너에게 맡긴 지오는 PnC LA 지사장 기현철과 만났다.


“오디션은 어떻게 됐습니까?”

“제작사와 마지막 미팅이 남았습니다. 도장을 찍는 건 거의 확실하고... 남은 건 몇 자리나 차지할 수 있는가죠. 윤소희라는 카드를 안 받고 배기겠습니까.”

“너무 밀어붙이진 마세요.”

“주의하겠습니다.”


다른 애들이야 성인에 가까운 나이니 덜 신경 써도 되지만 세리나는 일일이 챙겼다. 막스 도너 감독의 새 작품이 거론되자 할리우드를 들썩이게 했다.

옥상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던 지오는 뜻밖의 등장에 놀랐다.


“헬로.”


윤소희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손 흔들었다.


“뭐야? 뉴욕 아니었어?”

“아침에 돌아왔어.”

“왜?”

“오디션. 도너 감독이 새 영화를 찍는데.”

“난리겠네.”

“난리지. 오스카 단골인데.”


거장 막스 도너의 오스카 5관왕은 난다 긴다는 할리우드에서도 특별했다.


“주연?”

“안타깝게도 주연은 이미 정해졌고.”


새 작품의 주연은 케이트 에버그린.

내가 아는 톱스타 케이트와는 또 다른 케이트다.


‘뭔 놈의 케이트가 이렇게 많은지...’


모델 출신의 할리우드 신예는 지난 몇 년 사이에 급격한 몸값 상승을 보였는데 그 계기는 일리야 로빈의 사각 스캔들 덕분이었다.


“케이트 에버그린?”

“몰라?”

“영화는 잘 안 보니까.”

“와! 엘에이에 살면서 케이트 에버그린을 몰라? 너도 참 대단하다. 친구야. 로빈이랑 스캔들 났었잖아. 몇 년 전인가.”

“아, 문어발.”


일리야 로빈과 3인의 여성.

하이디 잭슨, 장리시, 케이트 에버그린.

스캔들 당시엔 그냥 핫한 모델 중 한 명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블록버스터 여주인공이 됐다. 괄목상대에 어울리는 인물이다. 막스 도너 감독의 차기작은 스파게티 웨스턴 즉 이탈리아식 서부극이었다.

과거엔 진짜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인 감독이 촬영해서 그리 불렀다는데 지금은 그냥 서부극 자체를 뜻했다. 고증을 따지면 여배우만 잔뜩 몰린 출연진은 말도 안 된다. 서부개척시대에 여성인권이 어디 있었겠는가?

현대 감성이 녹아든 퓨전 서부극에 가까웠다.


“중국인이나 인디언을 연기하는 건 아니지?”

“인종은 의미 없어. 남주가 흑인이거든.”


서부개척시대에 흑인이 주인공이다? 고증은 진짜 개나 줘버렸다. 윤소희는 바쁜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원샷 때리고 가버렸다.

되찾은 여유를 한참 즐기던 지오는 폰을 들었다.


“미스터 스트라스버그.”

“제이.”

“도너 감독이 새 영화를 오라이온이랑 찍는다는 얘기가 들리네요.”

“...”

“내 조건은 이겁니다.”


오스카 5관왕은 못 참지!


“주연은 안 바랍니다. 조연 두 자리, 딜?”

“...딜.”

“Good.”

******



일라이자 존스는 손톱을 깨물었다.

벌써 한 달째다. 한 달째 동생의 생사를 모른다. 에이전트는 비싼 돈을 들여 전직 경찰, 용병, 사설탐정 등 전문가를 고용했지만 성과는 미비했다.

배우의 길을 걸으며 수사물도 몇 편 찍은 경험으로 미루어 실종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안전하게 돌아오기 어려웠다. 영화와 드라마가 아무리 판타지라도 그 속엔 시청자는 알기 어려운 디테일이 숨어있다.

일라이자는 실제 경찰보고서로 캐릭터를 연구하고 공부했었다. 실종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그 끝은 참담하단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떡하지? 어떡해.’


그녀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땅에 묻은 날 자기 자신에게 맹세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린 동생을 지키겠다고.


“일라이자!”

“아저씨!”


칼 스트라스버그의 등장에 창백하던 그녀의 얼굴에 잠시나마 혈색이 돌아왔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남매를 후원한 사람이 바로 부모님의 친구였던 칼 스트라스버그다.


“이제 걱정하지 마. 그가 올 거야.”

“그요? 그가 누구죠?”

“제이.”

“제이?”

“전에 말했잖아. 도너 감독 아들도 실종됐었다고.”

“아!”

“그것도 남미 어딘가에서 실종됐어. 근데 무사히 돌아왔지.”

“그냥 소문 아니었어요?”

“소문? 하하. 아니야. 일라이자. 그는 소문보다 더한 친구야. 내가 아는 얘기만 언론에 풀어도 특종일 걸? 하지만, 어떤 기자도 파파라치도 그에 대해 떠벌리고 다니지 않아.”


칼 스트라스버그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SNK가 쌓은 악명 중 절반 이상은 지오의 손을 거쳤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그의 보스는 그 새뮤얼이다.


“그가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어. 네 동생을 찾아줄 거야.”


그 험난한 남미 정글에서 실종자를 찾아냈는데 목격자도 카메라도 많은 마이애미에서 못 찾을 리 없었다. 무능한 경찰과 달리 지오는 가능하리라 굳게 믿었다.


‘암살자도 찾아내는데... 사람 하나 못 찾을 리가...’


전처가 고용한 킬러도 찾아내는 친구가 아니던가.

띠이이-

벨소리에 먼저 움직인 건 젊은 일라이자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향해 다가갔다. 초울트라슈퍼만능해결사는 어떤 사람일까 상상해본다. 6.6피트가 넘는 덩치를 가진 근육질 남성? 얼굴에 난 칼자국과 비밀을 간직한 슬픈 눈동자의 전직 특수부대? 아니면 표정 하나 없는 냉혹한 전직 정보요원?

상상의 나래를 편 일라이자는 문을 활짝 열었다.

거기에는...

거기는...

아들과 딸을 양손으로 안은 사내가 있었다.


“일라이자 존스?”

“네? 예... 네.”

“머리를 받치고 조심스럽게 안으면 됩니다.”

“아, 네.”


일라이자는 여자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미스터 스트라스버그.”

“어?”

“조심히.”


남자아이는 칼 스트라스버그가 안았다.

사내는 마치 제집인 듯 부엌으로 향했다. 가방을 내려놓더니 거기서 분유와 우유, 모유? 뭔가 알 수 없는 기물들을 꺼냈다.


“디켄터 있습니까?”

“두 번째 찬장에...”

“Good.”


그는 100달러짜리 생수를 꺼내 물을 끓이더니 분유와 우유, 모유? 등 뭔가를 섞어 디켄터에 따랐다.

으아아니잇!

하얀 실이 늘어지며 디켄터에 떨어진다.


‘뭐지?’


와인이 아니잖아? 저건...

그래도 뭔가 전문가의 우아한 몸짓 같다. 분유병에 담긴 내용물을 종지에 몇 방울 떨어뜨려 맛보더니 엄지를 세웠다.


“음. 완벽하군. 딜리셔스.”


사내는 삽시간에 완성된 분유병을 돌려받은 여자애에게 물리며 소파에 앉았다.


“자! 본론으로 넘어가죠. 실종자를 찾는다고요?”


일라이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칼 스트라스버그를 쳐다봤다.

뭐지?

초울트라슈퍼만능해결사라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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