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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지오 디 오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0.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3.04.2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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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6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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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2쪽

지오 디 오리진 -81화-

DUMMY

세계 최대의 민간군사정보기업 코쉬 인더스트리얼의 고용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바로 분쟁의 강도剛度다. 저강도 분쟁과 고강도 분쟁, 총과 같은 살상무기가 동원되는 경우 고용계약과 임금 수준이 달라졌다.

24시간 날을 세울 수밖에 없는 전쟁터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도심 속 경호나 경비 임무가 같을 순 없다. 그러므로 스트레스 누적을 고려한 순환근무는 필수였다.

코쉬가 자랑하는 1티어급 전투원들이 알게 모르게 선호하는 비정기 고용계약이 하나 있는데 일명 LA 패키지로 불렸다. 다름 아닌 지오의 그녀들?을 경호하는 임무였는데 보통 계약기간은 6개월쯤, 1티어급 전투원들은 일종의 휴가로 치부했다.

미 서부 해안의 따듯한 햇살과 평온한 일상은 극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던 스트레스를 잊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평화에 찌들 때쯤 다시 전쟁터로 돌아갔다.

왜? 그들은 전쟁에 중독됐으니까. 그 중독적인 쾌감을 한번 맛보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죽든지 아니면 어딘가 망가져 강제로 은퇴하든지 전쟁을 지옥이라 욕하면서도 끝내 끊지 못했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극한의 위기에 도리어 살아있음을 느낀다. 섹스와 마약보다 더한 쾌락이 거기에 있다.


“대기하랍니다.”

“들었지? 각자 위치에서 대기.”


별도로 움직이는 패키지 5팀은 경호나 경비보단 심부름꾼에 가까웠다. 전직 1티어 특수부대 출신의 씹마초가 누군가의 잔심부름이나 하니 보고도 못 믿을 노릇이지만 의외로 재미있었다.

5팀장 게일은 코쉬를 은퇴하면 개인적으로 고용돼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급여는 높고 위험은 적으니 가족을 LA로 이주시켜도 좋고 무엇보다 고용주의 인품이 마음에 들었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남자는 훌륭하지.’


아내를 존중하고 아이들을 아낀다.

말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고 그걸 끝까지 관철하는 건 더더욱 어렵다. 많은 부호와 정치인, 연예인을 경호한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건대 이 클라이언트는 대단히 명예로운 남자였다.

미녀로 가득한 할리우드 사교계에서 한눈팔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존경할 만했다. 무엇보다 클라이언트는 나약한 남자가 아니었다. 그의 명성과 평판은 쉬쉬할 뿐이지 업계의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코리안은 신기하단 말이야.’


한국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본 한국인 중 제일 이상한 건 단연코 새뮤얼이고 두 번째는 고용주다.


-게일?


침묵 중이던 무전채널이 열렸다.


-Why?

-비번인 친구들이 심심하다는데?

-...

-전력은 많을수록 좋잖아?

-로레인인가?

-뭐... 알잖아.

-소총은 안 돼.

-롸져.


권총은 몰라도 연사가 가능한 소총은 안 된다. 아무리 총에 환장한 미국이라도 본토에서 기관총은 유통도 소지도 전부 불법이었다. 오직 공권력을 투사하는 정부만이 라이선스를 가진다.


‘이건... 클라이언트의 평소 행실 덕분이군.’


제너럴 코르센코라는 불세출의 무인武人이자 우두머리를 잃은 코쉬 인더스트리얼이 분열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버틴 이유는 고용주 덕분이다.

위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후계자는 너무 어리고 나약했고 반란의 조짐이 우후죽순 감지됐다. 뉴콘티넨탈 그룹의 리더이자 황금성 웬텔가家 대리인의 후원과 보호를 받더라도 업계는 코쉬 해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 여겼다.

근데 코쉬는 분열하지도 해체되지도 않았다. 아니, 예전보다 더 무섭게 성장했다. 사실 코쉬 인더스트리얼의 ‘산업’이란 칭호는 너무나 과장된 호칭이었다.

죽은 알렉산더 코르센코도 알고 있었다.

군사와 정보는 결코 국가를 넘어설 수 없다. 코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들은 미국의 일개 기업일 뿐이다. 물론 국가를 뛰어넘는 괴물기업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코쉬처럼 인적 자산에 발목 잡힐 일은 없었다.

군사와 정보는 결국 거느린 사람의 질과 양으로 결정된다.

고용주가 코쉬의 고문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뒤 이사회는 해체됐다. 처음엔 엄청난 반발을 샀지만 효과는 탁월했다. 초·분 단위로 수주된 사업의 계약과 일정을 파악하고 적절한 명령이 내려오니 임무를 수행하는 현장은 편해졌다. 제공되는 정보의 질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고 또 다가올 위협을 경고하니 죽을 목숨 여럿이 산 셈이다.

이는 자연히 높은 애사심과 충성으로 되돌아왔다. 수익사업의 다양화, 적절한 급여와 복지, 재취업 프로그램, 주기적 인·적성 검사를 통한 인력 재배치 등 코쉬의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이 혁신의 결과 코쉬 산업의 두 번째 도약을 이뤄냈고 이제 누구도 후계자를 위협하거나 반란을 모의하지 못했다. 이제껏 코쉬 인더스트리얼이 강점으로 내세웠던 전쟁비즈니스는 여전히 넘사벽이고 거기에 더해 민간 수요도 폭증했다.

특히 화려한 의전 경호를 좋아하는 졸부와 셀럽들의 허영을 충족시키는데 세계 최대 민간군사정보기업의 명함은 절대적이었다. 기업이 왜 명품과 브랜딩에 목숨 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예전 코쉬가 총이나 매캐한 화연에 가까운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멋진 의전과 안전의 대명사가 되었다.


-3팀이 들어옵니다.

-전원 대기.


게일은 밴의 문을 열고 나왔다.

차량 행렬이 다가와 멈추자 고용주가 내렸다.


“게일.”

“보스.”

“도망가는 놈이 있으면 잡아.”

“비번인 녀석들이 기어 나왔습니다.”

“왜?”

“심심하답니다.”

“...돌아갈 시간이네.”


일상이 지루해졌다면 전쟁터로 돌아갈 시간이다.


“이번 계약이 끝나면 은퇴할 계획입니다.”

“은퇴? 흠. 아쉬운데... 개인으로 고용될 생각은 없어?”

“고려해보겠습니다.”

“Good.”


게일은 몸값 협상을 고려해 바로 승낙할 생각은 없었다. 지오도 그걸 알지만 굳이 따지진 않았다. 비즈니스는 원래 그런 거니까.


“로버트 경위가 도착했답니다.”


이어폰으로 정보를 받은 게일이 말했다. LA 경찰국 소속 로버트 케인 경위와 함께 온 이는 지오도 익숙한 얼굴이다.

마이클 해리스

전직 경찰이자 몇 년 전 아리엘의 추천으로 제시카 허몬 살인사건에 함께했던 사립탐정이다. 이후로도 여러 사건을 함께했었다. 입이 무거울 뿐만 아니라 LA 토박이답게 지역사회에선 알아주는 정보통이다.


“경위님. 마이클.”

“제이.”


우리는 악수로 인사했다.


“기동대를 요청했고 일대를 차단했네. 제이.”

“고맙습니다.”

“시장님이 직접 지휘한다는 걸 국장님이 뜯어말리는 중이야. 대체 무슨 일인가?”

“그건 제가 설명하죠.”


새롭게 등장한 인물은 FBI 조끼를 입고 있었다.


“스페셜 에이전트 리처드 포텁니다.”

“연방수사국이 왜...”


경찰과 연방수사국의 관계는 지역과 사람에 따라 달랐고 할리우드에선 별로였다.


“테러 자금이 유입됐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오피셜입니까?”

“상당한 근거가 있는 정봅니다. 경위.”

“그래도 우리에게 먼저 통보했어야죠.”

“테러는 우리 소관입니다!”

“우리 도시에서 앞장서야 하는 건 당연히 우리요!”

“자자! 싸우지들 마시고.”


마이클 해리스가 양쪽을 중재하려고 진땀을 뺐다. 만나자마자 얼굴 붉히는 LA 경찰과 FBI의 승강이 사이 마지막으로 등장한 건 온몸을 금으로 장식한 깜둥이?였다.


“요 브로.”


흑인 특유의 껄렁거리는 자세로 손인사하는 이는 24번지 옐로우 몽키란 갱단을 이끄는 자였다. 한마디로 조폭 보스란 뜻이다. 흑인갱단 이름이 옐로우 몽키라니? 어처구니없는 노릇.

그보다 더 황당한 건 경찰과 연방요원 사이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배포랄까.


“물건은?”

“저 뒤에.”


경찰과 연방요원을 남기고 주차장 뒤편으로 이동했다. 거기에는 허름한 밴 한 대가 서 있었다. 우두머리가 오자 깜둥이 부하 하나가 밴의 옆문을 열었다.


“읍!”

“읍읍!”


거기엔 사지가 결박되고 재갈을 문 남자 둘이 짐짝처럼 실려있었다.


“몸 성히 데려오면 두 배로 쳐준다고 들었는데, 맞지?”

“게일.”


게일이 007 가방 두 개를 깜둥이에게 넘겼다. 가방을 열어 본 깜둥이 보스는 휘파람을 불며 부하에게 다시 넘겼다.


“좋은 거래였어. 제이. 아! 밴은 선물로 줄게.”


깜뚱이들은 희희낙락하며 떠났다.

지오는 사지가 결박된 두 놈을 보며 싱긋 웃었다.


“우리 구면이지? 친구들.”

“읍읍!”

“뭐? 풀어달라고? 안 돼. 200만이나 썼다고.”


200만 달러가 좆으로 보이냐? 오늘 일의 원인을 꼽자면 애슐리와 미셸을 꾄 겉만 번지르르한 이 두 개새끼였다. 이름은 알 필요 없는 개종자들.


“니들이 오늘 해야 할 일은 하나야. 저기 들어가서 메시지를 전하는 거지. 누굴 만나야 하는진 말하지 않아도 알 거야.”


남자에게 속은 순진한 그녀들의 과실일까? 두 개새끼가 아직 살아 숨 쉬는 이유는 내 무관심 때문이니 과실이라면 내게도 조금쯤은 있었다.


“몰래 들여보내.”


게일의 부하들이 두 개종자의 결박을 풀고 가방을 든 채 건물로 보냈다. 도망친다? 그렇게 용감한 친구들은 아니었다. 물론 가방 속 내용물을 알았다면 용기 냈을지도 모르지만.

LA 경찰과 연방수사국은 주도권을 놓고 여전히 승강이했다. 좀 더 자세한 테러 정보라면 연방수사국 윗선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겠지만 로컬 폴리스를 존중하지 않고 마구 파헤치다 흐지부지하면 FBI 입장만 난처해진다.

G는 딱 그 정도 선에 그치도록 정보를 통제했다.

LA 경찰과 연방수사국이 애매한 포지션을 취하도록 만들었다. 왜냐면 두 집단이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전력은 다하지 않고 적당히 힘만 빼면 내 운신의 폭이 그만큼 넓어진다.


-중계할까요?

-그래.


두 개종자를 마주한 포주새끼는 어떤 표정일까 궁금했다.

실사에 가까운 정교한 3D 모델링이 눈앞에 펼쳐졌다.

******



“네. 네. 알았습니다. 네. 다음에 대접하죠.”

“뭐래?”


고문변호사는 성질 급한 고용주의 질문에 마른침을 삼켰다.


“연방수사국까지 가세했답니다.”

“아니! 대체 왜! 뭘 잘못했는데!”


창문 밖으로 가득한 유니폼을 보는 보스의 눈동자엔 분노와 절망, 아직 놓지 못한 실낱같은 희망으로 번들거렸다.


‘그래! 내가 뿌린 돈이 얼마인데!’


고급 에스코트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재력이든 권력이든 둘 중 하나는 빵빵했다. 재력가도 있고 정치인도 있고 톱스타도 있다. 음지를 나와 양지를 지향한 그는 뇌물이든 특혜든 아낌없이 뿌렸고 성공적으로 자리 잡아 지역유지 행세를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압수수색이 들어왔다.

아직 영장 집행은 하지 않은 채 회사를 둘러싸고 있지만 인맥을 동원해 알아본 결과 진입은 시간문제다. 직원들이 부랴부랴 증거를 인멸하는 중이지만 제일 큰 증거는 바로 그 직원들이었다.


‘누구 한 명이라도 입을 열면?’


직원의 충성심을 믿을 수 있나? 경찰만 왔다면 어떻게든 로비할 수 있지만 연방수사국이 끼어드니 변호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FBI의 악명이 괜히 높은 것이 아니다.

미합중국 엘리트 최전선에 자리한 무시무시한 기관이 FBI고 수사국을 은퇴한 혹은 더 좋은 제안을 받고 자리를 옮긴 전직 FBI 요원은 이 나라 핵심에 널리고 널렸다.


“보스!”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왜?”

“메신저란 자들이 찾아왔습니다.”

“들?”

“두 명입니다.”

“어디서 보냈는데?”

“그게... 케빈과 에릭입니다.”

“케빈? 에릭? 설마 내가 아는 놈들?”

“네.”

“하하.”


벌써 배신자가 나온 건가? 보스는 어처구니없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들어오라고 해.”


그런데 막상 마주한 배신자들 꼴이 말이 아니었다.


“너희들... 꼴이 뭐야?”

“보스! 저희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걸 전하라고 협박했습니다.”

“누가?”

“...모릅니다.”

“몰라?”


보스는 썩 미심쩍었지만 일단 가방을 받았고 조심스럽게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곤 하마터면 심장마비에 걸릴 뻔했다.

고객의 난잡한 난교 파티가 찍힌 사진들.

유출되면 목 여럿 날아갈 스캔들이다.


“Fuck!”

“보스?”

“케빈! 에릭 빼고 다 나가!”

“네?”

“다 나가라고!”


보스가 악을 쓰자 변호사와 비서가 나갔다. 그는 한참을 가슴을 쓸어내리다 입술을 뗐다.


“누가 보냈는지 정말 몰라?”

“그게...”

“사실대로 말해!”

“애슐리의 예전 후견인입니다!”

“애슐리? 애슐리 터너?”

“네! 맞습니다. 보스.”

“젠장! 진작 말했어야지! 새꺄!”

“윽!”


보스는 케빈의 정강이를 걷어찼고 케빈은 대번에 바닥을 굴렀다. 애슐리 터너, 기억난다. 왜 그녀를 기억하냐면 백그라운드 체크에 아주 기가 막힌 정보가 긁혔기 때문이다.

이용하기에 따라 충분히 이득이 되는 정보다.

‘일리야 로빈과 친분 있음!’

더불어 할리우드 거물 에이전트 아리엘과도 친분이 있으며 그녀가 예전에 거주했던 저택은 슬레이어 사社 명의였다. 암흑가에 몸담은 범죄자치고 더스틴 슬레이어를 모르는 자는 없었다.


‘새뮤얼...’


아메리칸 갓스피드

아시안이 어떻게 그런 대단한 명성을 쌓았는지 그 속사정까지 알 순 없지만 상대는 워싱턴D.C.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자였다.

코쉬 산업은 분명 세계 최대 민간군사정보기업이지만 그들은 많은 부분이 양지에 드러난 상태다. 사고가 나거나 이슈가 생기면 당장 상원 청문회에 소환돼도 이상하지 않을 스케일이란 뜻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더 선호했다. 은밀함을 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대중의 관심을 끌고 싶지 않으니까. 그들은 명함을 뿌리고 다니는 탐정이나 길거리에 널린 힘깨나 쓰는 양아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도시에서 날고 긴다는 유력자 고객을 두면 알게 모르게 듣는 이야기가 있었다. 평범한 시민은 알기 힘든 어두운 세계의 비밀들,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풍문이 태반이지만 어쨌든 남들은 알지 못하는 정보를 접했다.


‘얼라이언스와 데스 사이드.’


세계최강대국 미합중국 내부의 주도권을 놓고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그리고 크림슨 앤 맥켄지는 LA를 잠식하려고 내세운 데스 사이드의 첨병 중 하나였다.

이건 직원들은 모르는 보스만의 비밀이다.


‘그만큼 조심했는데...’


두 번 세 번에 걸쳐 체크한 결과 애슐리 터너나 미셸 베넷과 더스틴 슬레이어와의 연결고리는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띠리리-

가방 안쪽에 있는 낡은 블랙베리가 울자 얼른 받았다.


“Hello.”

“...누구?”

“네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지.”

“...”

“비윤리적인 향락을 제공하고 엘에이 권력층의 약점을 잡는다? 흔한 발상이지만 실행에 옮기는 건 쉽지 않아.”


왜냐면 유력자 고객들이 바보일 리 없기 때문이다.

회원제 클럽이 왜 철저한 비밀보장을 내세울까? 비밀을 철저히 지키려면 우선 회원 정보가 정확해야 했다. 회원과 회원이 서로의 신원을 보증함으로써 비밀이 보장되는 것.

만약 이 룰이 깨지면 어마어마한 보복에 직면했다.


“내가 손쓸 필요도 없어. 그냥... 작은 소문만 흘러나와도 널 찢어 죽이고픈 사람은 차고 넘칠 테니까.”

“위에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데스 사이드? 그들은 움직이지 않아. 넌 그렇게 가치 있는 자원은 아니거든.”

“그럴 리가!”

“내기할까? 난 내 손모가지를 걸 수 있는데 넌? 넌 네 모가지를 걸어야 해. 그래야 균형이 맞아.”


크림슨 앤 맥켄지의 보스 잭 라이먼은 LA에서 나름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제프리 하그리브스가 필립 해리스에게 넘어갔다면 직면할 미래랄까. 얼라이언스든 데스 사이드든 예비회원을 가장한 하수인을 늘리는 작업에 여념 없었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난 얼라이언스는 아니야. 평범한 개인사업자지. 양키 왕좌를 놓고 대가리 터지게 싸우든 말든 나랑은 상관없어. 단!”

“...”

“내가 아끼는 걸 건드리면 누구든 좆되는 거야.”


지오가 미국인이 됐을 때 간을 본 건 FBI나 CIA 같은 공무원만이 아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행세깨나 하는 유지들, 지역 갱단과 카르텔, 부와 권력을 좇는 하이에나는 한둘이 아니다.

파파라치 따윈 큰 위협도 아닌 셈.

지오는 선을 넘는 이들에게 아주 호된 맛을 보여줬다. 폭력에는 폭력으로 법에는 법으로 돈에는 돈으로 은근슬쩍 엉기려는 씹새끼들의 뺨을 사정없이 올려붙였다.

어이쿠! 손이 헛나갔네!

손이 헛나간 김에 발길질도 했다. 발길질에서 멈췄을까? 아니다. 박치기, 엘보, 자이언트 스윙, 코브라 트위스트 등 온갖 기술을 난사했다.


“이 난장판에서 벗어날 기회를 주지.”

“...미셸 베넷을 돌려보내겠습니다.”

“그건 당연하고.”

“...보상도 해드리죠.”

“그게 끝이면 실망스러운데.”

“...처리하겠습니다.”

“Good.”


누굴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개새끼들이 다시 얼쩡거리다 내 눈에 띄면 난 당신을 찾아갈 거야. 미스터 라이먼. 그리고 오늘 연장한 빚까지 몽땅 받아낼 거야. 샤일록은 실패했을지 몰라도 난 아니거든.”

“...”

“아, 조사는 성실히 받고. 뭐 별다른 일은 없겠지.”


압수수색을 위해 경찰과 연방수사국까지 튀어왔으니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 순 없었다.

콰득-

블랙베리를 바닥에 패대기친 잭 라이먼은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자근자근 밟아 부숴버렸다.


“로버트! 줄리안!”


보스의 외침에 밖에 있던 덩치들이 들어왔다.


“이것들 치워.”

“보, 보스!”

“영영 안 봤으면 좋겠군.”

“보스! 보스! 보스으으!”


케빈과 에릭은 비명을 지르며 끌려 나갔다.

잭 라이먼은 거울을 보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압수수색은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좋은 인상을 수사관들에게 어필할 필요가 있다.

그는 로비로 내려가며 미소를 연습했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지!’


어떻게 일군 기업인데 이렇게 무너질 순 없다.

******




-사냥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저런 피라미를? 사냥감은 따로 있지.


G의 의문에 지오는 피식 웃었다.


-전부 정위치 했어?

-얍!


그가 잡으려는 고래의 핵심은 양복쟁이가 아니었다.


-Go.

-Go!


사병을 양성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장학금을 주어 배움에 목마른 인재를 키우는 방법.

어렸을 때부터 생활 전반을 책임져 세뇌하는 방법.

계약자가 요구하는 것을 제공하는 방법.

보통의 조직은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계약을 택하고 대다수 계약자가 필요한 건 돈이다. 임금, 급료를 지불하고 사람을 부리는 형태가 제일 보편적인 셈.

데스 사이드와 얼라이언스를 포함한 패권 지향적 집단은 세 가지 방법을 모두 쓴다. 장학금도 주고 생활비도 주고 적절한 연봉을 제안하며 인재를 꼬드긴다.

그들은 철저하게 인재의 급을 나눴는데 쓰고 버려야 할 자원, 계속 써도 좋을 자원, 반드시 지켜야 할 자원을 나누어 관리했다.

잭 라이먼은 어디에 속할까?

계속 써도 좋을 자원이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자원은 아니었다. 필요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버려질 수 있는 패.

그걸 본인은 몰랐다.


-그 친구는 자기만 비밀을 안다고 철석같이 믿지만... 실제로 크림슨 앤 맥켄지를 운영한 건 다른 놈이거든.

-그림자군요.

-압수수색만으로도 고객들은 불안에 떨 거야. 내가 굳이 소문낼 필요도 없어. 비밀을 지키고 싶은 누군가는 잭 라이먼을 제거해야 두 발 뻗고 잠들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얼굴마담일 뿐이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부속이지.


얼굴마담이 사라지면 다른 얼굴마담이 등장할 것이다.

압수수색이 벌어지는 크림슨 액 맥켄지 본사 건물과 두 블록 떨어진 어느 건물 내부는 한바탕 피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테이저와 전기충격기, 진압봉 등으로 무장한 1티어급 전투부대를 힘 좀 쓰는 양아치들이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크헉!”


의자에 앉은 사내의 머리채를 잡아 들자 코피가 주르륵 흘렀다. 지오는 혀를 끌끌 찼다.


“아주 떡을 만들어놨네.”

“저항이... 심했습니다.”


게일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 쪽은?”

“부상자는 없습니다.”

“다행이네. 추가수당을 기대하라고 해.”

“다들 좋아하겠네요.”


서로를 보며 끌끌 웃다가 의자에 앉은 놈을 보곤 정색했다.


“보 맥카시.”

“...”

“누구였더라? 아, 워커. 마이클 워커.”


피를 게워내던 놈의 눈동자가 커졌다.


“분수를 모르고 설치던 놈의 최후에서 별 교훈을 얻지 못했나 봐.”

“...”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내가 죽인 건 아니니까. Anyway.”


말했듯 얼라이언스와 데스 사이드는 경쟁자다. 그들은 미합중국 내부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지만 또 어떤 사안에는 협력했다. 왜냐면 추구하는 사상은 달라도 스스로 애국자라 굳게 믿으니까. 조국을 위협하는 적이 있으면 손잡기도 했다.

얼라이언스가 데스 사이드를 끝장내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지오가 보기엔 같잖은 위선이다.

위선자들!


“숨을 거면 끝까지 숨었어야지 왜 슬금슬금 기어 나와.”

“...”

“샘에게 엿 먹이고 싶은 기분은 알지만 장소와 사람을 잘못 골랐어.”


뉴콘티넨탈 그룹의 대표주자인 주인공을 향한 그들의 증오는 엄청났다. 그래도 함부로 방아쇠를 당기진 않았는데 그 결과가 어떨지 서로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비밀작전과 계략, 모략, 함정 등이 계획되고 실행되며 폐기됐다.

성공하면 좋고 실패도 부담 없는 사소한 음모.

대표적으로 인터넷 악성댓글이라든가 루머를 퍼트려 평판을 떨어뜨리든가 하는 귀여운 수준의 테러를 일삼았다. 전면전을 벌이기엔 미흡하지만 신경은 거슬리는? 거기서 더 나가면 진짜 전쟁이다.

안타깝지만 LA패밀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주인공과 관련 있다. 크든 작든 싫든 좋든 그녀들의 삶은 주인공과 그 적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악성댓글이나 루머 같은 사소한 일도 누군가의 의도가 있었다. 평소엔 웃어넘겨도 상관없다. 진짜 사소하니까. 하지만, 이런 모략이 조금씩 누적돼 어느 정도 실체를 드러내면 웃을 수 없게 된다.

그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였다.

애슐리와 미셸이 겪은 일은 어떻게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운이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굴곡이 있고 남녀상열지사를 모략으로 치부하는 건 너무 음모론자 같은 관점이니까.

그러나 거슬러 거슬러 거슬러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면 분명 누군가의 의도가 있다. 사실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건 정신병자 같은 강박증이지만 끝내 악의가 있음을 증명했다.


“보스.”


게일의 부름에 돌아보자 엉거주춤 서 있는 제프리 하그리브스를 볼 수 있었다. 지오는 그에게 손짓했다.


“제프리.”

“미스터...”

“제이라고 불러. 우리 구면이지? 제프리.”

“분명 사무실 앞에서...”

“맞아. 마주쳤지. 사실 널 아리에게 추천한 사람이 나거든.”


아리엘과 면접을 보기 전에 스치듯 지나갔었다.


“네가 테러를 지시한 사람이기도 해.”

“그건!”

“걱정하지 마. 추궁하려고 부른 게 아니야.”


지오는 제프리 하그리브스에게 다가갔고 상대는 더욱 엉거주춤했다.


“위로 올라가고 싶어? 제프리.”

“...”

“저기 기회가 있어.”


지오는 제프리 하그리브스의 어깨와 목을 팔로 감으며 의자에 묶인 사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알아내고 빼앗아. 그럼 그건 다 니꺼야.”


떨리는 몸과 반대로 제프리의 눈동자는 위험하게 번뜩였다.


“능력을 보여주라고, 친구.”


비열한 놈은 더 비열한 놈에게 빼앗기는 거다.

크림슨 앤 맥켄지를 폐쇄해도 시간이 지나 이름만 바뀐 똑같은 회사가 영업할 것이다. 왜? 돈과 기회를 주니까. 몸을 한밑천 삼은 매력적인 여자는 지금도 끊임없이 욕망의 도시 LA로 몰려왔다.

단 한 번의 기회만 잡으면 된다.

그리고 그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옷 벗는 건 간절한 누군가에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기회를 잡을 수만 있으면 백 번이 아니라 천 번도 벗을 수 있다.


-압수수색이 끝났습니다.


잭 라이먼은 쇠고랑을 찼다.

그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극복한다면 잭 라이먼은 거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아카이브엔 그의 이름은 없었다.


-일라이자 존스가 동생과 만났습니다.

-만났다고?

-네.

-결국...


남매의 우애가 얼마나 깊은지 난 모른다. 동생을 향한 애틋함을 품은 일라이자 존스는 격정을 참지 못하고 동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결과는?

-...

-뻔하군.


잠시나마 맛본 자유와 해방의 참맛을 잊지 못한 라이언 존스는 누나를 피해 다시 도망쳤다.


-모니카 그레이스는 경찰서에 구금됐습니다.

-왜?

-납치범과 물리적인 충돌이 있었습니다. 출동한 뉴올리언스 경찰에게 체포됐습니다.

-연방요원을 체포한다고?

-신분은 위장된 상탭니다.

-그래도 회사로 경보가 갈 텐데?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를 블랙요원? 관리에 철저한 CIA니만큼 모니카의 위치는 실시간으로 보고될 것이다.


-CIA에선 모르는 신분이고 뉴올리언스로 넘어오기 전 백업을 따돌렸습니다.

-...

-모니카 그레이스의 현재 심리는 매우 불안정합니다.

-친형제도 아니고 사촌을 그리 신경 쓴다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입양에 관대한 미국에서 가족의 범위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고 깊었다.


-납치범이란 사실을 밝히지 않았나?

-지역사회에서 그자는 친절하고 유능한 자영업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위선자군.


가면을 쓴 위선자가 너무 많다.


-제트기를 준비해.

-얍.


뉴올리언스에 도착했을 때 막 해가 떴다.

난 상관없지만 수행원들은 휴식이 필요했다. 호텔에 자리를 잡고 하루를 통으로 비웠다. 혼자 움직이겠다는 말에 3팀장이 반대했지만 명령을 내리는 건 어차피 나다.

경찰서에서 만난 모니카는 많이 흐트러진 상태다.


“죽이진 않았더군.”

“...”

“대신 강냉이를 털었나? 평생 틀니로 살아야겠구먼.”


농을 건넸지만 그녀는 웃지 않았다.


“기대는 항상 우릴 배신하지. 바네사에겐 바네사만의 사정이 있지 않을까?”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같이 살 수 있죠? 자길 납치하고 강간한 인간이랑.”

“확률은 낮을지언정 불가능은 없어.”


미안하다! 내가 구매한 백그라운드 프로그램이 싸구려였다! 진실을 말할 순 없어 조금은 찔렸다.


“...그 애는 행복해 보였어요.”

“납치범이 잘해줬나 봐?”

“이웃에게 평판 좋은 사람이더군요.”


개과천선? 인간이 바뀔 수 있는지 묻는다면 난 확답하지 못한다. 아니, 바뀌지 않음에 마음이 기울 것이다.

그래도 확신은 없다.


‘어쩌면 바뀔 수 있을지도...’


어쨌든 모니카를 경찰서 유치장에서 빼냈다. 주차장으로 나오자 사진으로 봤던 바네사 그레이스, 지금은 바네사 길퍼드와 마주쳤다. 경찰서로 들어갈까 말까 서성이던 그녀는 모니카를 보더니 굳어버렸다.

창백한 얼굴색, 곧 눈물을 흘릴 듯 슬픈 표정이다.

모니카는 천천히 다가가 바네사를 와락 끌어안았다.


-용서했군.

-모니카 그레이스의 현재 심리는 안정적입니다.


사람 마음은 갈대라더니 인간사 희로애락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렸다. 서로를 끌어안은 그녀들은 한참을 그 상태로 체온을 나눴다. 말하지 않아도 대화하는 듯 보이는 건 착각일까.

지오는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다.

웃고 울고 또 끌어안고, 한 한 시간쯤 반복된 행동은 미소로 헤어지며 끝났다. 차량에 탄 그녀는 벌게진 얼굴을 가리느라 지오의 눈을 피했다.


“용서했어?”

“내겐 용서고 자시고 할 자격은 없습니다. 단지 행복하길 바랄 뿐이죠.”

“좋은 언니네.”

“...”

“워! 부끄러워?”


이거 의외로 츤데레네? 냉혹한 암살자 가면을 한 꺼풀 벗기니 예상 밖으로 순진한 속살을 드러냈다.


“어디로 가죠?”

“일단 회사에 보고 먼저 해. 탈주로 찍히면 너보다 내가 곤란해.”

“알겠습니다.”


호텔로 돌아와 모니카에게도 휴식을 권했다.

오늘 하루는 모두 휴식을 취했다.


-뉴올리언스면... 재즈와 마녀로 유명하지 않아? 할로윈 말이야.

-미디어가 만든 환상입니다.

-원래 이쪽 동네가 실종사건이 많나 봐.

-유명한 관광지니까요.


이왕 뉴올리언스에 온 김에 또이애미도 방문할 계획이다.

이택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사님.”

“찾았어. 위스키 씨 딸들.”

“...살아있습니까?”

“용케도.”

“위치를 알려주십시오.”

“마이애민데... 내가 직접 넘어가는 중이야.”

“의외네요.”

“사실 집에 혼자 있거든.”

“...”

“미혼남의 동정은 사절이야. 어쨌든 내일 중으로 끝나.”

“마이애미에 우리 거점이 있습니다. 이용하십시오.”

“땡큐.”


마이애미는 로스앤젤레스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LA가 풋풋하면 여기는 좀 더 농염하고 이국적이었다. 관광객이 뒤지게 많은 건 두 도시의 공통점이지만 연령층은 마이애미가 훨씬 높았다.

이택기가 언급한 거점은 마이애미 중심가였다. 마이애미 부동산은 몰라도 중심가 매물은 가격이 만만찮다. 역시 돈이 많으면 여러모로 편했다.


“타격목표는 멘델슨 빌딩입니다.”

“요즘 카르텔은 부동산도 거래하나?”

“세탁이 끝난 자금은 양지에서 굴리는 편입니다.”


약으로 시작했지만 약만 팔면 그 끝은 뻔했다.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범죄조직은 많지만 작업을 끝까지 완수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였다.


“꼬투리를 잡히면 자금이 바로 묶일 텐데?”

“세탁이 끝난 자금을 추적하는 건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단일투자가 아닌 지분투자로 엮이면 함부로 제재하기도 힘들죠.”

“그러니까 진짜 사이에 가짜를 섞는다?”

“네. 일반인을 방패로 세우는 겁니다.”

“짱구 잘 굴리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은 곧 모든 것이었다. 그게 범죄조직의 은닉자금이라도 위법성을 적발할 수 없다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엘에이에서처럼 경찰과 연방수사국을 움직여 압박할 수도 있습니다. J.

-아니, 걔넨 그래도 상식이란 게 있는 놈들이고... 약쟁이들은...


미친놈들.

폭탄을 껴안고 자폭하는 테러리스트 못지않은 정신병자, 애초에 약에 취해 해롱거리는 놈들이 제정신일 리가 없다. 총질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혼자 들어간다.”


지오의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반대해봤자 말릴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은 듯싶다.


“나머지는 빌딩 밖에서 대기해.”

“인질 위치를 아십니까?”


지오는 터치스크린에 띄운 빌딩 청사진에 손가락을 찍었다.


“여기.”


멘델슨 빌딩은 정상적으로 영업 중인 호텔 겸 카지노 겸 클럽 겸 은행이었다.

카르텔이 은행까지 굴리다니 말세다.


“시간을 맞춰. 20시 10분, 셋, 둘, 하나, 지금.”


서로의 시계를 맞췄다.


“개시는 20분 후.”


중화기는 챙기지 않았다. 방탄조끼도 없고 달랑 권총 한 자루가 전부다.


“상황이 발생해도 진입은 금지, 퇴로만 확보하도록.”

“Yes, Sir.”


지휘관급 팀장들은 마지못해 답했다.


-미덥지 못한 반응이네요.

-당연하지. 깡패소굴로 달랑 권총 한 자루 들고 뛰어들겠다는 놈을 누가 정상이라고 보겠어. 나라도 미친놈 보듯 할 걸?


그걸 고용주란 놈팡이가 지껄이고 있으니 답답한 반응은 당연했다. 그렇다고 일일이 설득하는 건 너무 귀찮다. 이럴 때는 그냥 지위로 찍어누르는 것이 낫다.

멘델슨 빌딩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전원 대기.”


날 너무 숨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좆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전설을 한번 써볼까?

-모드 활성화할까요?

-Go.


임페리얼 나이트-프레임!

엘리미네이션! 디펜스!

모드-온!


-영능! Spiritual-Soul! 개방합니다!


영혼의 세계를 엿보는 영락零落의 환희는 도리어 사용자를 냉정·침착하게 강제한다. 전혀 다른 세상의 관점에서 필멸자의 세계를 내려다보는 건 꿈꾸는 것과는 별개의 몽롱함이었다.

뭘까? 이 기시감은.

항상 궁금했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의 부존적 환상일까.


‘하찮다.’


오늘도 어김없이 인간의 하찮음을 역설했다.

이것은 하나의 주장이다.

인간은 하찮고 어리석으며 경멸적이라고.

보통의 인간은 강제로 주입된 감정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낀다. 그러므로 감응력을 훈련한 시뮬레이션 라이더만이 스트레스를 견디고 이겨낼 수 있다.

그럼에도 마치 생명을 깎는 더러운 기분이다.

지오는 택티컬 코만도에 전승되는 한 기도문을 떠올렸다.

아니, 기도문이라기보단 주문에 가깝다.

황제를 별로 신봉하지 않지만 전투에 나서는 모든 제국군은 장갑복이든 나이트-프레임이든 가슴에 새겨진 헤븐리 체인에 손을 얹고 주문을 왼다.


‘나는 강철이다.’


칼날도 총알도 부술 수 없는 강철.


‘지치지 않는 야수의 심장을 가졌다.’


그것은 용서도 자비도 모르고.


‘오직 피와 죽음으로 안식을 얻는다.’


빛을 삼키고 어둠을 뱉는.


‘나는 한 마리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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