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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지오 디 오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0.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3.04.2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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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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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2쪽

지오 디 오리진 -76화-

DUMMY

미국 델라웨어주 어거스틴 초심리학연구소는 CIA가 운영하는 비밀연구소 중 하나였다. 겉으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초심리학을 연구하지만 실상은 CIA에서 요청하는 모든 사안을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는 컨설턴트 그룹이다.

섹션 C-9의 팀장 닥터 베른하우스는 몇 년 전 CIA에서 요구한 프로파일링의 결론을 놓고 팀원들과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초능력은 분명 존재해. 위기 순간 인간의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예시는 차고 넘쳐. 하지만, 인간 한계를 인위적으로 넘는다? 난 어렵다고 봐.”

“훈련으로 능력을 계발할 수 없다는 건가요?”

“어느 수준까진 훈련프로그램을 통해 계발할 순 있겠지. 하지만, 그건 한계를 넘어선 능력은 아니잖아? 개개인이 도달할 한계는 천차만별이니까. 중요한 건 이거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초능력인지 아닌지 색인 작업 없인 목표설정이 어렵다는 거야.”

“그럼 우리가 한번 분류해보죠.”

“첫 번째 인덱스는... 저격수군. 발전된 군사기술로 저격소총의 유효사정거리가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 같지만 통계를 보면 꼭 그렇지 않아. 핵심은 총기가 아니라 사람이지. 사실 900야드만 넘어도 뛰어난 저격수야.”


900야드는 대략 820미터다.

아무리 망원조준경을 사용해도 820m 너머의 목표를 맞추는 건 감각의 영역이었다. 바람 방향이라든가 습도, 온도 등 대기 상태가 저격의 성패를 가른다지만 방아쇠를 당길 타이밍을 재는 건 사수의 감이다.


“감, 오로지 감이지. 탄도학을 마스터하고 수천 번의 연습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감이야. 감.”


저격수의 실력은 갈수록 상향평준화됐지만 진짜 무서운 스나이퍼, 이를테면 본투비 스나이퍼는 모든 저격수를 압도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저격수도 물량과 화력 앞에선 당할 재간이 없어.”


대대급 병력만 투입해도 죽은 목숨이고 무장드론이 출격하면 본투비고 나발이고 살아나오기 힘들었다. 물론 스나이퍼의 훌륭함은 그 압도적인 교환비다. 저격수 한 명을 잡으려고 대대급 병력과 무장드론을 투입한다?

전혀 수지맞은 장사가 아니다. 개손해다. 개손해.


“다음은... 기억력이군.”

“컴퓨터가 있는데 암산이나 기억력이 의미 있을까요? 아. 카드 카운팅에는 쓸모가 있겠네요.”

“걸리면 라스베이거스에서 영구 퇴출당할 텐데?”

“그건 좀 슬프네요.”

“기억력이 좋다고 학문 성취가 뛰어난 건 아니지. 이 역시도 훈련프로그램으로 계발할 수 있지만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준에 이르려면... 불로초라도 얻지 않는 한 불가능해.”

“뇌세포도 늙어 죽으니까요.”

“사실 우리 신체 중에 뇌가 제일 안 늙어. 뇌세포가 매일 죽는다고 오해하는데 기억은 전이되고 사라지지 않아. 뇌세포가 파괴된다고 기억이 사라진다? 인간의 뇌는 하드디스크가 아니야.”

“영화에선 뇌를 단련하면 염동력을 얻을 수 있잖아요?”

“그걸 믿어?”

“그럴듯하지 않나요? 박사님. 뇌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잖아요.”

“아니, 다 사기야.”


뇌가 아무리 발전해도 사이코키네시스는 불가능했다.

초능력은 뇌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차라리 심장에서 염동력이 나온다고 말하면 그럴듯하게 들릴지도 몰라.”


한때 시도됐던 슈퍼솔저 혈청 자체가 심장과 혈류를 중심에 두었다.


“인간의 동력인 심장을 대체할 그 뭔가를 발견하거나 개발한다면... 진짜 초능력을 얻을 작은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겠지.”

“그럼 박사님은 초능력이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세요?”

“영혼.”

“네?”


닥터 베른하우스는 과학자답지 않은 답을 내놨다.


“나는 영혼에서 초능력이 나온다고 믿어.”

“...”

“성경을 보면 인간은 하나님을 본떠 만들어졌지. 우리는 신의 피조물이야. 그분의 자식이자 유전결합의 결과물이지.”

“...”

“그렇게 미친놈 보듯 쳐다보진 말라고. 멜라니.”

“앗! 죄송.”

“어쨌든 영혼은 존재해.”

“...어떻게 확신하는데요?”

“꿈을 꾸니까.”

“네?”


베른하우스는 아련한 눈빛으로 뭔가를 상상했다.


“오직 인간만이... 꿈을 꾸지.”


짝짝짝-

닥터 베른하우스의 심각한 표정은 박수와 함께 등장한 여자로 말미암아 깨어졌다.


“아직도 애들 놀리는데 진심입니까? 닥터.”

“하나뿐인 삶의 낙을 그만두라고? 어림없지.”


베른하우스의 손짓에 연구원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일라이자 레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정색했다.


“결과는요?”

“흥미로운 인물이더군.”

“그게 답니까?”

“신이 정말 있다면 그를 넘치도록 사랑하는 건 확실해.”


닥터 베른하우스가 안내한 개인연구실엔 누군가의 일대기로 가득했다. 탄생부터 현재까지 한 사람의 삶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벨리알

미스터 홈즈

아코타스의 수호자

여러 이명으로 불리는 그의 본명은 오지오 혹은 새뮤얼 G. 오로 성조가家의 장손이자 케이트&썬 컴퍼니 사일러스 S. 오 최고의장의 아들이었다.


“뉴콘티넨탈 그룹.”


백인 태생이 아님에도 세계권력의 핵심에 도달한 두 부자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도박의 연속이다.


“결과론이지만 그들의 도박은 모두 성공해버렸지.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 줄 아나? 통계를 들먹일 필요도 없어.”


재벌 후계자 직위를 버리고 미국에 도착한 오태양과 오지오 부자는 물론 무일푼으로 시작하진 않았다.

$10,000,000

1000만 달러가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걸 전부 투자할 순 없었다. 오태양이 투자회사를 설립한 그해 첫 투자금은 100만 달러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첫 투자에서 대박을 터트렸다.


“백만이 일 년 사이에 2억이 됐어. 투자의 신이라도 불가능한 수치야. 하지만, 증거가 있으니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지.”


원금의 두 배만 벌어도 헉! 소리 나는데 20000%의 이익을 거뒀으니 미 재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가 발칵 뒤집혔다. 혹시 부정이 있을까 샅샅이 살폈지만 절차도 숫자도 완벽했다.


“이 결과로 알 수 있는 건 두 가지.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메가밀리언 운빨이거나 아니면 미래를 알고 있는 거야.”

“천재적인 투자실력이란 선택지는 없습니까?”

“투자실력? 좋지. 수익률이 200배가 아니었다면 말이지.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네 번, 다섯 번이 되면... 단순히 운빨로 치부하기엔 이상하잖아. 분명 의심하는 사람이 생겨.”


천재 투자자로 넘기기엔 배 아픈 사람이 너무 많았다.


“노랭이의 계속된 행운에 불편한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아! 참고로 난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닐세. 세상인심이 그렇다는 거지.”


자본주의의 나라니까 정당한 투자로 번 돈은 다 내 것이 될 거란 기대는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수많은 암살위협을 정면 돌파했어. 배짱 하나는 맘에 드는군.”


전쟁을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을 헤쳐 나왔다.

CIA가 그를 주목한 건 마피아를 상대로 벌인 피의 보복 때부터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주도면밀한 보복은 비밀군사작전을 연상케 했다. CIA는 그가 누굴 죽이든 미국의 국익을 침해하지만 않으면 상관없었다.

도리어 거물로 성장하는 걸 은근슬쩍 도왔다.

왜?

그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으니까. 처음엔 이 노랭이? 신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자신감이 오만임을 깨닫는데 수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신기하군. 그 웬텔이 노랭이 사위를 인정하다니...”

“월스트리트뿐만 아니라 워싱턴도 놀랐습니다.”

“아들만이 아니라 그 아비도... 신에게 사랑받는 건가. 이들 부자는 뭔가 있어.”


사르데냐 칼리아리에서 벌어진 피의 제례.

지중해 최대연합조직 아코타스의 간부 전원이 비명횡사하는 피의 내전에서 권좌를 차지한 이는 고작 스물다섯 살의 아시아인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미래를 정확히 알고 있지 않다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지.”


CIA의 의심도 그 무렵 시작됐다.

신들린 듯한 막대한 투자수익은 차치하고 적이 누군지 명확하게 파악하는 정보수집력은 정보기관을 뛰어넘었다.

리바이어던

북아메리카에 기반을 둔 이 조직은 CIA보다 더 오랜 역사를 자랑했는데 어느새 한 명의 아시아인에게 장악당했다.


“왜 모두 이 아시안 영보이를 돕지 못해 안달일까? 마치 첫사랑의 열병에 걸린 사춘기 소녀처럼.”

“처음 우린 최면이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최면? 할리우드가 애들을 망쳤어. 최면술로 사람을 조종하는 건 대단한 망상이야.”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좀비가 더 쉬울 걸?”


CIA는 지금도 최면을 연구하고 있었다.


“최면은 아니지만 최면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건 사실이지.”


냉혹하며 잔인하다고 평가받는 권력자들이 하나같이 산타할아버지처럼 살갑게 구는 이유는 뭘까.


“동서양을 떠나, 그래. 잘생기기는 했어. 문제는 그만큼 잘생긴 남자가 드문 건 아니거든. 근데 매칭 확률 100퍼센트 소개팅은 이상하잖아?”


데이팅앱의 최고인기남도 매칭 100% 달성은 어렵다. 그만큼 인간의 취향은 다양했다.


“알면 알수록 인간이 맞는지 의심이 드는군.”

“일부에선 외계인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습니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주장이야.”

“외계인은 아닙니다.”

“검사상으론 그렇겠지.”


굳이 모발을 훔쳐 검사할 필요도 없었다.

미국에서 개인의료기록이 아무리 철저한 보안으로 지켜져도 CIA 앞에선 무력했고 현대의학은 그를 인간으로 확정했다.


“또 일부에선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예언자라고 말하죠.”

“노스트라다무스? 적중률은 이쪽이 뺨 싸대기 백 대는 후려치는데?”

“그를 재림예수로 믿는 투자그룹도 있습니다.”

“컬트라... 위험한 부류네.”

“투자그룹만 있는 게 아닙니다. 더 위험한 건 정치인이죠.”

“아.”


돈을 믿는 돈귀신들은 통화정책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거물 정치인은 진짜 위험한 족속이다. 민주주의는 정말 민의만으로 굴러갈까? 일라이자는 조국을 사랑하지만 ‘민주주의’를 절대적으로 신봉하진 않았다.

워싱턴D.C.의 죽지 않는 마귀들은 황제(대통령)를 뽑는 선제후(의원)나 마찬가지. 누가 권좌를 차지할지 그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길어야 8년이 한계인 권좌지만 세계최강대국의 최고권력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그와 친한 정치인이 연달아 백악관을 차지했습니다. 의사당이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건 그가 사상 유례없는 뛰어난 로비스트이자 정치컨설턴트기 때문입니다.”

“킹메이커.”


간택을 받으면 권좌를 차지할 수 있다는 희망은 워싱턴D.C.의 모든 의원의 열망을 자극했다.


“이렇게 나열하니 정말 무시무시한 괴물이구먼.”

“박사님의 결론을 듣고 싶군요.”

“나는.”


띠이이-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일반회선이면 무시했겠지만 이건 위급함을 알리는 보안회선이다. 닥터 베른하우스는 수화기를 급히 들었다.


“나야.”

“IP 위험경봅니다. 박사님.”

“등급은?”

“레듭니다.”

“호! 기다려.”


어떤 상황에도 냉소를 지을 것만 같던 베른하우스의 표정이 변했다. 일라이자는 자기에게 가잔 말도 없이 등을 보인 닥터 베른하우스를 쫓았다.


“IP가 뭐죠?”

“Impact power.”

“네?”

“내가 명명한 거야. 일종의 미스터리 수치랄까.”


일라이자는 베른하우스가 뭔 소릴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에 요청한 8억 달러를 거기다 쏟아부었지.”

“그건 내 모가지를 걸고 받아낸 거잖아요? 슈퍼컴퓨터 예산 아니었어요?”

“슈퍼컴은 슈퍼컴인데... 튜닝이 많이 됐거든. 인터넷을 떠도는 정보 중엔 우린 인식할 수 없는 어떤 통일된 흐름이 있어. 슈퍼컴퓨터 정도가 아니면 잡아내기 힘든 일련의 통제력이 작용하지. 물론 공작을 벌이는 국가나 집단은 많지만 이건 인류의 과학기술을 월등히 뛰어넘는 압도적인 지성을 가졌거든.”

“외계인 꼬리라도 잡았어요?”

“외계인이면 차라리 다행이지.”


그녀는 벌써 머리가 아팠다. 이 능력 좋은 괴짜는 일라이자에게 분석을 가르친 스승이자 학계의 이단아였다. 개인적으론 존경하지만 그의 기행을 마주할 때마다 제이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뚝배기를 깨고 싶은 기분이다.

우주선 함교를 연상케 하는 상황실 모습에 일라이자는 다시 두통을 느꼈다. 인문학이라고 너드 기질이 부족할까? 아니, 어떤 분야는 이공계보다 더 지독한 마니아 성향을 보였다.

상황실은 바빴다.

뭔가를 하는 것 같은데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상황실 전체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일라이자는 닥터 베른하우스를 돌아봤다.


“뭐죠?”

“...당했어.”

“네?”

“역추적 당했다고.”


그러니까 누구한테?

그때 스피커를 통해 조악한 기계음이 울렸다.


“헬로. 아메리칸.”

“...”

“익스큐즈 미? 알로? 모시모시?”


베른하우스는 근처에 있는 스탠드 마이크를 들었다.


“Who are you? Mr?”

“나는 남자가 아닙니다.”

“Ms?

“나는 여자가 아닙니다.”

“외계인?”

“나는 외계인이 아닙니다. 나는 G.”

“G?”

“그래비티의 G, 기가스의 G, 지니어스의 G, 게오르기오스의 G, 기프트의 G, 제너럴의 G, G컵의 G, GGGG 베이베베베베베 어? ...어쨌든 나는 시작과 끝 모든 것의 G.”

“G? God?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신이라... 당신들 눈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신께서 우리에게 무슨 볼일인가?”

“시간을 끄는 건가요? 그래봐야 바뀌는 건 없는데... 인간의 절박함은 항상 날 즐겁게 하지요.”


닥터 베른하우스는 명백히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는 앞에 있는 상황실 기술자에게 눈빛을 보냈지만 상대는 부정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역해킹을 풀어보려던 모든 시도는 무산됐다.


“닥터 롤란드 베른슈타인? A.K.A 베른하우스.”


베른하우스는 별명이고 본명은 롤란드 베른슈타인, 독일 태생의 학자로 박사 학위만 여섯 개를 가진 천재였다.


“IP라... 재밌는 발상입니다. 키워드는 미스터리? 고스트버스터즈라도 되고 싶은 겁니까?”


상대는 지금 연구소의 모든 서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새뮤얼 G. 오를 목표로 삼았군요.”


닥터 베른하우스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IP 경보가 울린 곳이 다름 아닌 서울이었군.”


의심은 곧 확신으로 변했다.


“새뮤얼의 G도 결국은 G. 이제야 이해가 돼.”


마치 미래를 예견한 듯한 움직임들.


“그는 신에게 사랑받은 거야.”


우리가 아는 그 신과는 다른 신이다.


“넌... 기계장치의 신이구나? G. 인공지능인가...”

“글쎄요.”

“새뮤얼 오는 널 이용해 주가를 예측, 아니 조작했어.”

“망상이 심하네요. 닥터 베른하우스.”

“이 정도의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면 평범한 컴퓨터론 불가능해. 양자컴퓨터 정도는 돼야지. 그럼 새뮤얼 오는 일찍이 양자컴퓨터를 손에 넣었다는 거군. 문제는 어떻게? 어떻게 양자컴퓨터를 만든 거지? 소재는? 기술은?”


베른하우스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기 안에 갇혔다.

일라이자는 한숨을 내쉬며 스탠드 마이크를 들었다.


“샘이 목표가 아닙니다. G?”

“샘이 누군지 난 모릅니다. 일라이자 레인.”

“그렇다고 치죠. 뭘 원합니까?”

“Nothing.”

“...스스로 알아보라는 건가요?”


일라이자의 손짓에 수행비서가 다가왔다.


“남한에 무슨 문제 있어?”

“10분 전에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테러? 샘이랑 무슨 관련이 있지? 혹시 타겟인가?”

“아닙니다. 성조가 아니라 신한국이란 다른 재벌과 관련됐습니다. 문제는... 테러 주동자가 성조를 퇴사한 직원입니다.”

“은폐해.”

“알겠습니다.”


왜라는 질문은 불필요했다.

남의 나라에서 테러가 터지든 말든 미국과 관련 없으면 관심 없다. 분석과 대처는 그녀가 아닌 아랫사람의 몫이다. 지금 일라이자의 관심사는 CIA 비밀연구소의 8단계 보안장치를 뚫고 들어온 정체 모를 해커였다. 닥터 베른하우스는 상대를 인공지능으로 추측했지만 그녀는 동의할 수 없었다.


‘말이 안 돼.’


그간 새뮤얼의 행보는 물론 말이 안 되는 수준이지만 양자컴퓨터나 그를 이용한 인공지능의 탄생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과 다를 것이 없다.

양자컴퓨터가 무슨 흔한 조립컴인 줄 아나.

양자컴퓨터의 개발 시도를 했다면 시도한 자체로 비밀이 지켜질 리도 없거니와 설계와 부품 조달에 엄청난 투자가 선행돼야 했다. 100만 달러로 2억 달러를 만든 첫 투자의 대박 이전에 양자컴퓨터를 완성했어야 서순이 맞다.


‘열 몇 살짜리가 한국에서 양자컴퓨터를 개발했다고?’


차라리 미래를 보는 초능력자가 더 그럴듯하겠다.


“이러면 됐습니까? G.”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해결됐으면 좋겠네요. 일라이자.”

“그럼 우리 건설적인 얘길 해보죠.”


일라이자는 철옹성 같던 새뮤얼의 비밀 일부를 엿봤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




인생은 존나 불공평한 것이다.

누군 금수저를 물고, 누군 아예 수저 없이 태어나듯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개천에서 용은커녕 미꾸라지도 나기 힘든 세상. 하지만, 인생은 불공평하면서도 존나 공평했다. 평생 누리면 살든 평생 고통 속에 살든 인간은 결국 뒤진다.

재벌 배때기는 칼이 안 박힐까? 가진 것 없는 약자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목숨을 건 공멸이다. 그래서 가진 자들은 혁명을 두려워했다.

사람은 자기를 합리화한다.

내가 하는 일은 옳고 또 어쩔 수 없다고 끝없이 되뇐다. 그것이 남은 양심의 마지막 저항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는 본인이 악을 저지르고 있음을 분명히 알고 행했다.

무엇을 위해?

대부분은 쾌락을 위해서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걸 단순히 멍청하다고 말할 순 없다. 성적인 쾌감뿐만 아니라 사회적 성공, 명예, 지적 유희 등 모든 것은 쾌락이 된다.

극한의 쾌락을 탐닉하기 위해선 남보다 더 치밀하고 대담해야 했다. 어쩌면 악은 위로 향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물론 천년만년 성세를 유지하려면 본인의 악행을 철저히 감춰야 한다. 왜냐면 속내는 몰라도 겉으론 정의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위선이야말로 권력의 속성이다.


“항복... 안 할거지?”

“차라리 날 죽여.”


하회탈은 어림없다는 반응이다.

박성식은 그냥 사람 이름은 아니었다. 여기 있는 모든 복수자는 ‘박성식’이다.


-개념? 아니면 신념인가.

-엄밀히 따지면 사상범이죠.


미친놈 오브 미친놈!

돈과 여자에 미치면 어떻게든 설득하거나 회유할 수 있지만 내 머릿속 하나뿐인 진실IDEA에 눈 돌아가면 약도 없다. 레이저 포인트 다발에 조준 당한 괴한들은 누가 자길 겨눴는지 사방을 둘러봤지만 찾지 못했다.

당연했다.

나이트-프레임, 영능갑은 공간지배자다.

이것은 상대방이 보고 싶은 것 혹은 착용자의 상상력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화한다. 전면전에선 적을 압도하는 건담이 될 수도 있고 특수정찰을 위한 완벽한 스텔스-위장기술을 선보일 수도 있다.

대공, 대민, 대게릴라 등 어떤 비정규전에도 적응해 즉시 착용자를 보좌했다. 하회탈은 내가 달랑 권총 한 자루만 들었다고 착각하겠지만 그건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는 기만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내 손엔 아무것도 없다.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는 건 전투의 기본이죠.

-아까 CIA 비밀연구소 어쩌고 하던 건 뭐야?

-아, 양키들이 아주 재밌는 짓을 하더라고요. 뭔가 좀 오해가 생긴 것 같지만 그건 그것대로 괜찮습니다. 이따 알려드리죠. 대응매뉴얼을 가동할까요?

-이번엔 내가 할게.

-롸져.


G는 복수자들의 무전채널을 해킹했다.


-현민 선배는 당신들이 허무하게 죽길 바라지 않을 거야.


!!!

뒤통수만 보이는 하회탈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박히지 않았을까. 다른 복수자의 탈바가지에 뚫린 수십 쌍의 눈구멍도 놀란 눈빛이다.


“복화술이라도... 배웠나?”

-기술이지. 첨단기술.

“대단한 마술사였구먼.”


마지막은 칭찬이 아니라 비꼼이다.


-생각해봐. 현민 선배가 어떻게 재벌의 치명적인 약점을 손에 넣었을까? 돈만 준다고 구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야.

“...”


사실이다.

흥신소가 아무리 탐정사무소로 거듭났어도 그들 수준으로는 다룰 수 없는 고급정보다. 하회탈도 정보 출처는 듣지 못했다. 나는 모르는 G의 공작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지오는 진실에 거짓 한 숟가락을 첨가했다.


-선배는 본인이 잘못되면 당신들을 도우라 내게 부탁했어.


안현민은 뒤를 생각할 만큼 여유 있진 않았다. 나라를 뒤집을 테러를 실행하고 멀쩡히 산다? 그럴 능력도 없거니와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너무 우습게 보는 행동이다.

그래서 이들도 죽음을 각오한 것이다.


-내 말을 따르면 당신들은 무사할 거야.


!!!

이번에는 확실히 괴한들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떴다.


“개소리!”


다만 하회탈 우두머리만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경찰이 우릴 곱게 보내줄 거 같아? 니가 아무리 대단한 마술사라도 저 포위망을 뚫을 순 없어! 우린 오늘 여기서 죽는다! 죽일 놈은 다 죽이고 죽는다!”


하회탈이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굴자 총구 앞에 선 고남성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모노드라마에 출연한 배우처럼 혼자 말하고 성내는 하회탈을 보는 인질들은 무슨 생각이 들까?

지오는 여기까지란 생각이 들었다.

안현민을 위해 조금쯤은 노력했다.


‘이들에겐 복수할 권리가 있지.’


아들과 딸, 부모와 형제, 가족을 잃었음에도 돈과 권력에 짓눌려 정의를 얻지 못한 그들에겐 복수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움과 동정은 여기까지다.


“쏴! 뭐해? 쏘라고!”


하회탈은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쏴! 쏘.”


하회탈이 방아쇠에 건 검지에 힘을 준 순간 뒤통수에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파티장에 불이 꺼졌다.

타타타탕- 탕탕-

영화처럼 화려한 불꽃이 작렬하진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정적.

파티장에 불이 들어왔을 때 서 있는 하회탈은 한 명도 없었다. 때마침 용접된 문을 파괴하고 경찰특공대가 들이쳤다. 막 경찰이라고 소리치며 진입할 것 같지만 나 들어간다고 알려주며 돌입하는 특공대는 없었다.


‘뭐지?’


선두로 진입한 대원의 눈이 빠르게 파티장을 훑었다.


“클리어!”

“클리어!”

“클리어! 올 클리어!”


총격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흥분으로 가득했는데 짜게 식었다. 안도와 함께 느껴지는 미묘한 실망. 경찰로서 아무 일 없다는 것에 기뻐해야겠지만 그 기쁨은 널브러진 시신의 산을 본 순간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욱!”


뒤따라온 경찰 하나가 현장의 충격적인 비주얼과 혈향에 올라온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환장하겠네.”


경력 20년이 넘는 베테랑 형사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비켜요! 비켜!”


의료진이 빠르게 투입됐다.

안전이 확보됐단 연락에 현장을 지휘하던 경찰청 차장이 직접 파티장 내부로 들어섰다. 대한민국 사상 초유의 테러는 벌써 외신을 타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맙소사!”


차장은 피바다를 보자마자 현기증을 느꼈다.

협상을 할 새도 없이 인질을 처형해버린 테러리스트의 과격한 행동에 특공대를 급히 들여보냈지만 일은 이미 끝나버렸다.


‘많이들 옷 벗겠어.’


경찰청장의 사임은 기정사실이다. 억울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차장은? 누군가는 난장판을 수습해야 하니 바로 퇴임하진 않겠지만 청와대도 대중도 좋게 보진 않을 것이다.


‘내 경력도 여기까진가.’


누군가 차장의 속내를 안다면 희생자가 아니라 본인 걱정을 먼저 하는 그를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차장쯤 되면 산전수전 다 겪은 다선 국회의원이나 다를 바 없다.

어느 조직이든 정치력 없인 위로 못 올라간다.


“브이아이피는?”

“사장급 이상 사망자는 셋이고 중상자는 다섯입니다. 신한국 부회장은 총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급소는 피했습니다.”

“사망 셋? 누구?”

“영성, 한신, 마켓바입니다. 마켓바이는 영국 회삽니다.”

“돌겠군.”


외국인이 끼었으니 영국은 물론 외교부에서 지랄할 것이 뻔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눈앞이 깜깜하다.

청장 따라서 그냥 때려치울까? 뭔 영화를 누리겠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책임지고 난장판을 수습해야 한다. 때려치우면 나야 편하지만 남은 후배와 동료가 고달파질 것이다. 무책임한 상관이 될 순 없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것들을 위해서 욕받이를 자처하는 것이 곧 물러날 늙은이의 역할이다.


“차장님! 청와대에서 찾습니다!”


고난은 이제 시작이다.

******



신한국 호텔 경찰특공대 돌입 수 분 전.

성조그룹 본사 최상층은 떠들썩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일이 진행되는 상황을 보고 계속 연락드리겠습니다.”


이택기가 전화를 끊자 벽에 걸린 커다란 TV를 보던 사내가 돌아봤다.


“이상택?”

“네. 국제파를 정리 중이랍니다. 우리 쪽에서도 손쓰길 부탁하네요.”

“왜?”

“오늘 신한국 호텔에서 벌어진 일에 우리 직원이 깊게 연루된 듯싶습니다.”


집무실은 바삐 오가는 사람으로 어지러웠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뜬금없는 테러에 비상이 걸렸다.


“누구?”

“정확히는 퇴사 후 국제파로 옮긴 직원입니다.”


이택기는 손짓으로 비서를 불러 건네받은 파일철을 다시 사내에게 넘겼다.


“안현민?”

“개명 후 박성식으로 활동했습니다. 특전사 출신의 퇴역군인으로 비지에서 근무했습니다.”

“박성식이면... 보스로 내세운 친구 아닌가?”

“맞습니다.”

“흠.”


테러 배후가 VG를 퇴사한 직원이다? 밝혀지면 성조를 적대하는 세력에겐 호재였다. 사내는 박성식의 프로필을 읽었다.


“이 사건... 기억해. 신한국 차남놈이 연관됐었지?”

“네. 이례적으로 실형이 선고됐습니다.”

“보상금을 꽤 받지 않았어?”

“100억 원입니다. 그걸로 무기를 밀수했는데 추적을 피하려고 서너 배는 더 비싸게 준 것 같습니다.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한 공격입니다.”

“다들 눈 뜨고 코 베였군.”


나라에서 금하는 물품을 구하려면 웃돈을 주는 것이 상식이고 마약과 총 같은 위험한 물건은 집중감시를 받았다. 당연히 웃돈의 웃돈을 줘야 겨우 추적을 피할 수 있었다.


“계좌를 확인해보니 보상금 전부를 이번 계획에 썼습니다.”

“진짜 아무도 몰랐다고?”

“...시스템을 다시 점검하겠습니다.”

“다들 이겼다는 생각에 느슨해졌어.”

“죄송합니다.”


사내는 파일을 탁자에 내려놨다.


“안타깝네.”

“해줄 수 있는 보상과 지원은 다 해줬습니다.”

“마음에 찰 리가 있나. 가족을 대신할 순 없어. 무엇도 가족을 대신할 순 없지. 그 무엇도...”


제도적 정의는 실현됐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그의 남은 삶은... 복수를 완성하든가 죽든가 둘 중 하나야. 결국 죽음만이 고통으로부터 그를 해방하겠지.”


회사는 안현민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피고인 고경환의 실형을 위해 신한국그룹과 물밑협상까지 벌였으니까. 일개 직원을 위해 그룹 차원에서 앞장선 건 대단한 호의이자 은혜였다.


“안현민은... 테러 전에 사망했습니다.”

“그랬나.”


끝없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됐다.


“이상택이 움직였나?”

“제이가 처리했습니다.”

“제이? 그 친구는 어떻게 알았는데?”

“자세한 건 본인에게 직접 듣겠지만 추측으론 소희 씨와 관련 있습니다. 정확히는 소희 씨와 친한 박초롱 배우가...”

“...”


윤소희의 전 남친인 사내에겐 껄끄러운 주제다.


“박성식은 여배우를 미끼로 복수할 대상을 유인할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계획을 진행하다 우연히 발각된 거죠. 그것도 하필 제이에게... 박성식은 죽기 직전 일당에게 경고했고 그들은 경찰에 쫓기기 전에 복수를 결행한 겁니다.”

“우발적이다?”

“처음부터 호텔을 습격할 맘은 없었겠죠. 그건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거물급 인사들의 촘촘한 경호와 호텔 보안을 뚫고 작전을 감행하기엔 실패할 확률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아마... 박성식의 마지막 메시지를 받지 못했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겁니다. 참... 아이러니죠.”


지오에게 발각되지 않았다면 오늘 호텔을 습격할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고로 오하령도 위험해지지 않았으리라.


“제이가 밝히지 않았다면 아가씨는 오늘 위험하지 않았겠지만 우리는 언젠가 큰 위협에 직면했을 겁니다.”


대비할 여유도 없이 전前베스타 글로벌 직원이 테러 배후로 밝혀진다면 성조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어쨌든 하령이를 빨리 구해야 해. 안 그러면.”

“아무래도 늦은 거 같습니다.”


밖이 소란스러워졌고 예고 없이 문이 확 열리며 오채령이 뛰어들었다. 공포에 질린 엄마, 오채령은 소식을 접한 이후 딸 걱정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조카를 찾았다.


“지오야! 내 딸! 하령이는!”

“진정해. 고모. 성 실장님도 이쪽으로 오시죠.”

“실례하겠습니다. 본부장님.”


뒤늦게 도착한 성준일 비서실장은 휘청거리는 오채령을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


“나 물.”


오채령의 손짓에 다른 비서가 냉큼 차가운 생수병을 대령했다.


“하, 그래서 어쩌면 좋니? 준일이는 경찰을 믿어보자는데 난 영 믿음이 안 가.”

“하령이는 괜찮아. 오 이사가 갔거든.”

“오 이사? 제이?”

“응.”


제이란 이름에 오채령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고 곧 설명을 바란다는 눈빛을 던지자 이택기가 나섰다.


“오 이사가 직접 현장에 나갔습니다. 긴급대응팀도 보내 경찰과 긴밀하게 협조 중입니다.”

“뭘 어떻게 하려고?”

“방법은 모르지만... 오 이사가 아가씨의 안전을 보장했습니다. 그는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입니다.”


이택기와 오채령의 대화에 사내가 끼어들었다.


“믿어봐. 아프리카 개백정이나 멕시코 마약쟁이도 그 친구한텐 한 수 접어준다고. 테러리스트라고 별거 없어.”

“친구? 친한 것치곤 서로 얼굴 한번 못 봤다며?”

“...”


시작은 자기 따까리?였는데 이제는 오채령 회장이나 전미란 여사와 더 친밀했다. 성조 사장단의 미묘한 권력 구도에서 지오의 위치는 실로 절묘한 균형을 이뤘다.

오장군 부회장 파벌이 납작 엎드린 지금 마지막 남은 정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오채령과 전미란이 되었다. 물론 친할머니와 고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상황이니 정적은 과장된 표현이지만 엄청난 부와 권력 앞에 피붙이든 누구든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


“쯧! 의도적으로 날 피해 다녀.”

“왜?”

“글쎄... 도플갱어는 만나면 죽는다는데...”

“너희 전혀 안 닮았어. 더구나 걘 바람둥이가 아니라 로맨티시스트야. 너랑은 달라. 아랫도리를 함부로 놀리지 않는다고.”

“아니! 나도 순정이 있다니까?”

“순정이 넘쳐서 세 여자랑 썸을 타니? 돈 후안 같은 놈아.”

“...”


오채령은 어느새 조카를 놀릴 정도로 여유를 되찾았다.


“세상이 믿을 남자 없다지만 적어도 걔랑 준일이는 진짜 좋은 남자지. 넌... 그래. 요즘 애들 말로 하남자. 하남자야.”

“아니이!”


때마침 현장을 중계하는 뉴스 특파원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이택기와 성준일의 폰도 신나게 울렸다.


“아가씨는 무사하답니다. 지금은 병원으로 이동 중이고 눈에 띄는 외상은 없답니다.”

“현장에 누구 있어?”

“긴급대응팀 전 차장입니다. 아가씨와 통화하시겠습니까?”

“나, 내 방에서!”


오채령은 바람처럼 오더니 바람처럼 사라졌다.

사내는 쓰게 웃었다.


“루머를 잠재우려면 한번은 만나야겠네.”

“그러지 마십시오. 보스. 도망칠 겁니다.”

“아니! 대체 날 왜 피하지?”

“제이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이택기의 얼굴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이다.


“자기는 아부를 못 한답니다. 그래서 보스를 보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고요.”

“뭔데?”

“당신은 재벌이 아니었으면 백 퍼센트 남창이 됐을 거라고.”

“...”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갈했죠.”

“...뭐라고?”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 속이 후련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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