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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지오 디 오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0.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3.04.2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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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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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39,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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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9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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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4쪽

지오 디 오리진 -80화-

DUMMY

한·중·일 3국과 미국 그리고 유럽이 뒤얽힌 기업전쟁은 갈수록 가관이었다. 체면에 죽고 사는 중국과 일본은 절대 굽히지 않았고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봤다. 뒤늦게 참전한 유럽은 처음엔 중국을 신나게 팼지만 전 세계에 걸친 방대한 중화 네트워크를 무시한 대가는 컸다.

카오스! 혼돈!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손해를 보지 않았다. 아니, 겉으론 손해 본 것 같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단 1도 잃은 것이 없었다.

활빈당 사건

신한국 호텔 테러의 공식적인 명칭은 없지만 대중은 그들을 활빈당으로 불렀고 언론은 눈치껏 활용했다. 활빈당이 한국에 던진 메시지는 묵직했다. 돈과 권력, 인맥으로 무소불위한 특혜를 누리던 기득권층은 이 반란 같은 혁명에 잔뜩 움츠러들었다.

잃을 것이 없는 자를 자극하면 정말 목숨 걸고 저항할 수도 있다. 재벌 배때기는 칼이 안 박히냐? 하는 의문을 실행에 옮긴 그들을 보고 용기를 얻은 자의 모방범죄가 잇따랐다.

부자를 증오하는 빈자는 차고 넘쳤다. 마치 정의를 실현했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사적제재가 급증했다. 얼핏 무법천지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도리어 주가는 올랐고 강력범죄는 감소했다.

모방범죄가 급증했는데 왜 전체 범죄율은 감소했을까?

왜냐면 체면을 구긴 경찰과 검찰이 잡범이라고 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도 경험이라고 경력자는 체포되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대충 감이 온다. 어떤 범죄자는 광복절 특별사면까지 고려해 일부러 자수하기도 한다.

자수는 감형 점수가 높으니까.

6개월 나올 형량이 2년, 3년이 되면 엄청난 손해다. 옛날이면 집행유예가 나올 상황이 지금은 빼도 박도 못하고 교도소행이다. 전문범죄자?들이 집중단속기간에 몸을 사리듯 지금은 체포되면 안 될 시기였다.

활빈당 배후는 은폐됐다.

다 죽었으니 수사도 난항이거니와 진실이 드러나게 두고 볼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은 선하지 않았다. 엄밀히 따지면 그는 선악의 경계에 선 회색이다. 상황에 따라 얼마든 잔인해질 수 있다.

시나리오는 분명 달라졌지만 큰 뼈대는 바뀌지 않았다.

주인공은 여전히 주인공이었다. 그는 다양한 사건을 겪으며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성장하고 변할 것이다.

나는 어떻게 변했을까?


‘난 여전히 오만해.’


G를 욕할 것도 없다. 이 세계의 창조자로서 난 은연중에 인류를 무시하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시나리오를 고쳐 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단 자신감이 있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지금 내 삶에 만족하니까.

매일 새롭게 다가오는 삶.

매일 새롭게 다가오는...


“꺄핫!”


매일 새롭게 똥오줌을 갈기는 딸.


“아빠!”

“컥! 중구가 시키드나.”


매일 새롭게 몸통 박치기하는 아들을 위해 옆구리를 부여잡고 쓰러지는 연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오스카를 탈 수 있을 만큼 연기력이 늘었다.


-...

-아님 말고!


그래도 발연기는 아니잖아.

요즘 이수영은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다. 오스카 5관왕 작품에 출연했다는 필모를 바탕으로 인지도를 얻은 이수영은 나름 괜찮은 작품을 골랐는데 개봉 후 평론가의 질타를 받았다.

연기력이 형편없다는 반응.

왜?


-홀로서기가 그만큼 힘들지. 첫 작품이야 친분 있는 배우도 많고 소희가 잘 가르쳤으니 대본도 어색하지 않았을 거고.

-기본이 부족한 거군요.

-맞아.

-도와줍니까?

-누굴? 수영이? 왜?

-...냉정하네요.

-인생은 원래 좆같은 경험도 좀 해보고 그래야 성장해. 하나부터 열까지 둥개둥개 해주면 나중엔 대책 없는 응석받이가 된다고.


에밀리야 코르센코가 대표적인 응석받이다.


-오늘 약속이...

-스트라스버그가 주선한 약속이 있습니다.

-일라이자 존스였나?

-일라이자 존스, 아역부터 시작한 중견배웁니다.

-알아봤어?

-네. 어떻게 된 일이냐면

-잠깐!


지오는 G의 부연을 막았다.


-스포일러 아웃!

-...


시작부터 다 알면 재미없다. 원래 이런 추리·수사는 알아가는 과정이 곧 즐거움이다. 이제 와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육아 스트레스를 지우는데 탐정만큼 좋은 것도 없다.

인간행동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걸 AI만이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나는 과거에도 작가였고 지금도 작가다. 뭐 언젠가 세상에 발표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글은 항상 쓰고 있다.

애들을 두고 나가려니 눈에 밟혔다.

그래서 둘을 안고 나왔다.

일라이자 존스의 집은 멀지 않았다. 그래도 오랫동안 할리우드에서 빌어먹은 만큼 허튼짓에 낭비하지 않았으면 돈이 없을 리 없다.

경호원을 물린 지오는 애들을 안고 혼자 들어갔다.

벨을 누르자 사진으로 본 일라이자 존스가 마중했다.


“일라이자 존스?”

“네? 예... 네.”

“머리를 받치고 조심스럽게 안으면 됩니다.”

“아, 네.”


멍청한 표정의 일라이자에게 딸을 안기고 아들은 스트라스버그에게 안겼다. 지오는 주방으로 향했다. 딸을 먹일 분유를 만드는 일은 중요했다. 아내는 모유 수유를 원했지만 매끼 모유를 먹일 순 없었다. 시간도 없고 양도 모자란다.

아들 때는 허둥지둥거렸지만 육아도 경험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전문가가 되었다. 지오는 G가 거느린 사업체를 총동원해 새로운 분유를 만들어냈다.

친환경! 영양 UP! 맛도 UP!

오로지 내 자식을 위한 맞춤 분유!

아들은 아몬드 맛을 좋아했고 딸은 딸기 맛을 좋아했다.


-아들이라서 아몬드? 딸이라서 딸기? 쿡쿡.

-...

-웃어. 씹쌔야.

-하. 하. 하.


룰루! 분유 제조는 하나의 예술이다.

알맞은 물의 온도, 배합비, 끝으로 모유를 약간 섞는다. 이때 공기와의 마찰이 중요했고 디켄터는 훌륭한 조리기구였다. 애가 좀 더 크면 죽처럼 만드는 고형재료를 쓸 예정.


-생각해보니 육아용품 회사도 나쁘지 않은 듯.

-이미 있습니다. 전에 말하지 않았나요? 치매?

-...

-사용자가 쓰는 육아용품이 대체 어디서 온다고 생각한 겁니까?


어? 그런가.

완성된 분유를 딸에게 물리고 소파에 앉았다.


“자! 본론으로 넘어가죠. 실종자를 찾는다고요?”

“...”


응? 분위기 왜 이럼?


“제이.”

“미스터 스트라스버그?”

“우리... 따로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러죠.”


아들은 일라이자에게 맡기고 딸만 안고 옆방으로 향했다.

스트라스버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찾을 수 있겠나?”

“라이언 존스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곳은 자코뱅입니다.”

“자코뱅이면... 게이 클럽?”

“정확히는 혁명과 자유 클럽이죠.”


클레브 데 자코뱅!

프랑스 혁명의 대명사는 어째선지 미국 남부에선 게이 클럽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걸 역설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풍자라고 해야 할까.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성소수자의 자유는 미디어가 전하는 것처럼 무한히 자유롭진 않았다.

게이는 차별받는다.

아니라고? 그건 ‘법’이 관여하는 선에서의 자유일 뿐 진정한 자유는 없었다. 관용이 넘치는 관대한 사회는 이상향이다. 말 그대로 꿈꾸는 세상일 뿐 현실은 달랐다.


“라이언이... 게이라고?”

“몰랐습니까?”

“...”


스트라스버그는 충격받은 얼굴이다.


“몰랐군요. 미스터 스트라스버그.”

“녀석은... 하이스쿨 스타 쿼터백이었어.”


게이도 운동을 잘할 수 있다. 하지만, 씹마초로 가득한 하이스쿨 운동부에 게이가 있다? 쫓겨나는 건 차치하고 집단 린치를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잔인하기로 따지면 애들이 최고다.


“설마 사랑의 도피 같은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이유야 어쨌든 끌려갔거든요.”

“뭐?”


지오는 폰을 넘겼다. 영상이 하나 재생됐는데 의식을 잃은 사내를 질질 끌고 가는 괴한들이 찍혔다.


“납치라면 왜 몸값을 요구하지 않지?”

“몸값을 노린 납치가 아니니까.”

“그럼?”


답하기에 앞서 지오는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스포일러 아웃이라고 했는데 이건 스포일러를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주제다. 라이언 존스는 게이가 맞다. 일생을 마초로 살아온 과거는 철저한 연기였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며 깊은 고민의 흔적을 엿봤다.

커밍아웃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든 어디든 결코 환영받지 못했다.


-그래서 사라지기로 했군.

-조악한 영상은 경찰이 찾길 바라며 남긴 겁니다. 마치 납치된 것처럼 꾸민 거죠. 근데 마이애미 경찰은 이 영상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무능해서?

-무능 반 우연 반이랄까요.


라이언은 새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사라진다면 사랑하는 누나는 그를 평생 찾아 헤매리라 걱정했다. 그래서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된 것처럼 꾸며 나름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계획했다.

문제는 마이애미 경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것.

경찰은 우리 기대보다 사건에 별 관심이 없고 열정적이지도 않다. 물론 소명과 사명에 불타는 경찰도 있지만 대다수는 느긋했다. 특히 성인 실종의 경우 들이는 품에 비해 성과가 미비하기에 더 꺼리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1년 실종자 총합을 알면 기겁할 것이다.

한국처럼 주민등록시스템이 정교한 나라는 몇 없고 미국처럼 주 경계선만 넘어가도 외국과 다름없는 대국大國은 신분세탁이 그리 어렵지도 않다.

시시각각 얼굴색이 변하던 스트라스버그는 혼자 밖으로 나갔다. 뒤이어 아들이 아장아장 걸어 들어오더니 일라이자 존스의 고성이 들렸다. 지오는 영능갑의 일부 기능을 활성화해 소음을 차단했다.


“아루룽! 까꿍!”

“꺄핫!”


공간의 지배자 임페리얼나이트-프레임!

전 우주를 누비며 황제의 위엄과 제국의 영광을 떨치던 이 연금과학의 정수는 아이들을 허공에 띄웠다. 무중력을 경험한 사람만이 아는 즐거움이 있다.

인류 대부분은 중력의 속박이 얼마나 강력한지 몰랐다.

황제는 한정된 땅과 한정된 자원에 갇힌 인류의 무지를 일깨워 우주 저 너머의 미지로 향했다. 우주는 위험천만한 곳이다. 파괴 중인 별이 내뿜는 무시무시한 거력巨力, 창조의 순환이 만드는 우주의 신비를 영원히 다 알지 못할 것이다.


-...

-왜?

-고작 아이와 놀아주는 것뿐입니다만 우주의 신비는 좀...

-그래! 나 고졸이다! 좀 배운 AI라고 휴먼 무시하니?

-...


일라이자의 고성과 흥분이 가라앉지 않자 지오는 애들을 데리고 자택으로 돌아왔다. 동생이 게이라는 진실이 그렇게 충격받을 일이냐고 묻는다면 케바케다.

자기 가족을 다 안다는 착각은 자칫 깊은 사랑만큼 배신감으로 바뀔 수 있으니까. 잠깐의 외출로 노곤해진 아들을 재우고 딸은 원래 잠이 많을 시기다.

잔디를 깎고 정원을 관리한 뒤 마시는 맥주 한 캔은 천국이 아닐까. 오늘 이웃의 특이사항은 건너 건너 건넛집 부부가 대판 싸웠다는 정도다. 경찰을 부르는 난장판으로 발전하진 않았는데 딱 봐도 남편이 잘못했다.


-외도군.

-비서와 잤습니다. 정확히는 비서의 유혹에 남자는 못 이기는 척 바지를 내린 거죠.

-왜?


건너 건너 건넛집 여자는 나름 유명한 미녀 배우다. 비서의 외모를 확인한 지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은 항상 새로운 자극을 갈망하니까요. 사용자는 안 그럴 거 같습니까?


신랄한 비판이다. 맞다. 나도 새 이야기와 캐릭터를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일라이자 존스를 다시 만난 건 이틀 후였다. 이번에는 혼자 갔다. 마침 장모님이 돌아와 아이들과 놀아주셨으니까. 스트라스버그와 눈인사하곤 소파에 마주 앉았다.


“살아있나요?”

“살아있습니다.”

“만날 수 있을까요?”

“추천하지 않습니다.”

“왜죠?”

“당신을 보면 또 숨을 테니까.”


라이언 존스는 에이든 윌리엄스란 이름으로 바꿨다. 신분세탁에 꽤 거금을 줘야 했을 것이다. 납치와 실종으로 위장했는데 누나가 떡하니 눈앞에 나타나면 어떨까? 감금하지 않는 한 또 도망칠 것이 뻔했다.

일라이자 존스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자조했다.


“...왜 내게 말하지 않았을까.”

“비밀은 여자에게만 필요한 건 아닙니다. 미스 존스. 라이언은 평생 고민했고 커밍아웃은 쉽지 않죠. 현실과 당신의 리얼리티쇼를 착각하지 마세요. 진짜 현실은 훨씬 가혹합니다.”


게이를 이해한다고? 개소리.

커밍아웃하는 순간 모든 인간관계와 환경이 무너질 것이다.


“동생은 당신을 사랑했기에 둘 다 크게 다치지 않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말도 안 돼!”

“어떤 사람들은 그냥... 사라지죠. 사라지는 게 꼭 나쁜 해결책만은 아니니까.”


일라이자 존스가 속한 세계에서 파파라치와 언론, 극성팬을 막을 방법은 없다. 배우를 은퇴해도 사람들은 그녀를 놔주지 않을 것이다.


“유명한 여배우의 게이 동생이 라이언만 있진 않겠죠. 그렇다고 그들이 행복할까요?”

“...”

“당신은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배웁니다.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동생을 영원히 지킬 순 없어요. 그걸 라이언도 똑똑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라진 거죠.”


일라이자 존스는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우는 것 같진 않다. 한참을 그 자체로 있다 손을 내렸을 때 그녀의 표정은 처음보단 나았다.


“...행복하던가요?”


지오는 말없이 사진 수십 장이 든 봉투를 건넸다.

사진 속 라이언, 아니 에이든 윌리엄스는 환하게 웃었다. 물끄러미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라이자 존스를 뒤로한 채 두 남자는 밖으로 나왔다.

칼 스트라스버그는 니코틴이 필요한지 서둘러 담배를 찾았다.


“후우.”

“알뜰살뜰 챙기는군요.”

“죽은 절친의 딸이니까.”

“정말 그게 답니까?”

“...”

“귀신은 속여도 난 못 속입니다. 미스터 스트라스버그.”


칼 스트라스버그는 한 10년은 늙은 얼굴이다.


“어떻게 알았나?”

“요즘 유전자 검사는 돈만 주면 됩니다.”


뻥이다. 그런 귀찮은 짓을 할 리가 있나.


“...하룻밤 실수였어.”

“진짜 어메이징 아메리카라니까.”


친구 마누라랑 바람나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는 미국클라스?에 지려버렸다.


“그런데 라이언은 아닌가 보네요?”

“두 번은 없었어. 그건... 진짜 실수였거든.”

“미스 존스는 알고 있습니다.”

“...”

“그녀가 알고 있다는 걸 당신도 알고 있군요? 하지만, 서로가 알고 있다는 걸 밝히진 않는다? 참! 재밌는 집구석이네.”


아메리칸 라이프 스타일은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다. 언젠가 내 아들과 딸도 상식 밖의 사건에 엮일지도 모른다.


“분명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우린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순 있지만 무엇을 좋아할지는 선택할 수 없다고.”

“운명인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닙니다. 인과는 당신이나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하죠.”


시뮬레이션이 제공하는 운명 공식 즉 배경설정을 위한 백그라운드 프로그램은 가격에 따라 복잡함의 정도가 달라졌다.

뭐 난 싸구려를 쓰긴 했다. 그래서 이 모양 이 꼴인지도.


“어쨌든 고맙네.”

“고마워할 필욘 없습니다. 거래니까.”

“걱정하지 말게. 약속은 지켜질 거야.”


당연히 그래야지! 안 그러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떠들고 다닐 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뜻밖의 얼굴을 마주했다.


“리?”

“오랜만입니다. 이사님.”


이택기와 함께 근처 노천카페를 찾았다.


“바쁠 텐데 어쩐 일이야?”


한국은 여전히 어지러웠고 주인공의 심복인 이택기는 엄청나게 바빴다. 회사원의 표상! 하드워커! 노비는... 너무 심했고 어쨌든 이택기는 미국에 있으면 안 되는 친구다. 그런 친구가 여기 있다는 건 큰 문제가 생겼단 방증이다.


“잭 다니엘, 기억하십니까?”

“잭 다니엘... 아, 위스키 씨.”


카르텔을 털어먹고 은퇴했다가 봉변당한 전직 군인이자 용병.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난 잭 다니엘의 아내가 과거 주인공의 과외 선생님이자 연상 썸녀다.


“해결된 거 아니었어?”

“그런 줄 알았습니다.”


지오가 건넨 정보로 상황을 파악한 이택기는 곧장 브로커를 동원해 카르텔과 잭 다니엘 사이를 중재했다. 아무리 막장 카르텔이라도 주인공이 작정하고 방해하면 미국 내 공급망은 한순간에 무너질 테니 중재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다.

문제는 합의에 찬성한 카르텔 보스가 죽으면서 발생했다.

쿠데타든 내전이든 수장의 죽음에 조직은 갈가리 찢겼고 서로의 주장이 엇갈렸다. 전쟁의 여파로 돈이 급해진 그들은 돈줄을 찾아 헤맸고 잭 다니엘은 조금은 뜯어먹을 것이 남은 고깃덩어리였다.


“두 딸을 납치하고 아들 셋은...”

“미쳤군.”


카르텔놈들이 전부 미쳤거나 아니면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 것. 주인공이 중재를 선언했는데 어깃장을 놨으니 그 분노는 허리케인이 되어 카르텔을 몰아치리라.


“우리 위스키 씨는?”

“동료와 함께 국경을 넘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분노는 총알세례로 대신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스페셜포스 출신이라도 압도적인 물량에는 대적할 수 없었다.


“조직의 많은 간부와 공장을 파괴했지만...”

“전사했군.”

“목을 잘라 대사관 앞에 전시했습니다.”

“뉴스는 없던데?”

“조만간 특종으로 전해질 겁니다.”

“난리 나겠어.”


미국인 시체를 미국대사관 앞에 전시한다? 이건 뭐 그냥 싸우자는 거다. 잭 다니엘이 뭐 하는 인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미국언론은 전직 군인이자 다섯 아이를 둔 그를 영웅이자 순교자로 만드는 일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아들 셋이 죽고 납치당한 두 딸을 되찾기 위해 콜롬비아 밀림을 헤맨 아빠! 누가 봐도 카르텔은 악이었다.


“총잡이가 필요한 건 아닐 테고?”

“전쟁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럼 두 딸을 찾아달라는 거구먼.”

“살아있을까요?”

“분풀이를 당했으면 진즉 죽었겠지.”


콜롬비아에서 그렇게 깽판을 쳐놨으니 홧김에 죽였을지도.


-살아있습니다.

-빠르네. 빨라. 어딘데?

-마이애밉니다.


또 마이애미? 거긴 뭐 납치·실종 맛집인가.


-아직은 둘 다 멀쩡합니다.

-다행이네.


윤간이나 안 당했으면 다행이다.


-멀쩡하게 데리고 있는 목적은?

-협상 재료죠. 아시다시피 조직 내에서도 파벌은 갈리고 주인공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은 전쟁 이후를 대비하는 겁니다.


어깨 위에 달린 물건으로 생각이란 걸 할 줄 안다면 주인공의 분노에 대비할 것이다.

지오는 일단 알았다는 답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당장 정보를 넘기는 것도 이상하니까.


“나 내일 마이애미 가.”

“또?”

“또?”

“아니, 아니야. 마이애미는 왜?”

“여행.”

“오디션은?”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거든요?”


윤소희 외 3명은 마이애미 여행계획을 세웠다. 또 마이애미라니... 이쯤 되면 또이애미에 뭔가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구랑?”

“초롱 언니랑 은미 언니랑 주희 언니.”


강선아가 골D미드단을 탈퇴하자 한초롱이 새로 합류했다.


“짐꾼이군.”

“아니거든!”

“남자를 꾈 때 쓸 얼굴마담이거나.”

“...”


미국에서 어린 남자를 좋아하는 유부녀나 돌싱, 나이 많은 여자를 Cougar라고 부른다.


“놈팡이들 조심하고.”


그런데 아내도 내가 모르는 여행계획이 있었다.


“엄마랑 애들 데리고 여행 갈 거야.”

“나는?”

“여자끼리 가는 여행에 남자는 필요 없어.”

“선오는 남자.”

“아아! 시끄럿!”


방에서 쫓겨났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이게 말로만 듣던 황혼이혼의 전조일까?


-아직 황혼은 아닙니다만...

-시끄럿!


육아만 신경 쓴다고 아내를 소홀히 하진 않았다.


-사용자에게 휴가를 주는 겁니다. 배려죠.

-...

-울지 마!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아내를 더 사랑할 것이다.

모두가 여행을 떠난 집에 홀로 남았다.

외롭진 않다. 오래지 않아 돌아오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뭐 할까?

-글이나 쓰시죠.

-그럴까?


따듯한 햇살 가득한 테라스에 앉아 눈을 감았다. 시뮬레이션만큼 자유롭진 않지만 그나마 자유로운 심상을 들여다본다.

******




“...자는 것 같습니다.”

“낮잠인가. 부럽군.”


누군 불편한 장소에서 종일 감시하는데 누군 형편 좋게 낮잠이나 자고 있다. 불공평한 세상이다.


‘재수 없는 칸고쿠진.’


지난 며칠 목표를 감시하며 알게 된 건 주변에 미인이 득실거린다는 사실이다. 본국의 훈령대로 잘하면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 약점을 잡을지 모른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근데 이 새끼는 목석인지 아니면 성인군자인지 도통 한눈을 팔지 않았다.

눈 돌아가는 미녀가 널렸는데 어떻게 일편단심일 수 있나.

하지만. 그 어려운 걸 해냈다.


‘거시기가 작은 게 분명해!’


자신이 없으니 여자를 후리지 못하는 것이라 믿었다.


‘응?’


망원경을 보던 사내는 깜짝 놀랐다. 왠지 목표와 시선이 마주친 기분이다. 다시 보니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오랜 잠복에 피곤한 걸까?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또 낮술 먹은 이웃집 알콜중독자의 깽판이라 생각했다. 양키놈들은 도대체 매너를 모르는 야만인이었다. 역시 일본만이 유일한 선진국! 그러므로 아시아의 맹주는 중국이 아닌 일본이어야 한다. 한국은 이를 위한 발판이 돼야 했다.


‘주제도 모르는 칸코쿠진 같으니!’


한국 1위 재벌가의 일원이자 감시 대상의 상급자는 물론 법적으로 미국인이지만 그에겐 미개한 한국인일 뿐이었다. 국적을 바꾼다고 미개한 한국인의 피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니뽄이 위대한 다이코쿠진이라면 칸코쿠는 어리석은 쇼코쿠진일 뿐!’


오직 야마토민족만이 아시아를 대표해 양키야만인과 대결할 자격이 있다.

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양키새끼들은 매너도 모르, 컥!”


매너를 가르쳐주려고 문을 연 사내는 안면을 강타한 진압봉에 널브러졌고 나머지도 금세 제압됐다. LAPD와 FBI가 새겨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은 사실 CIA였다.

모니카 그레이스는 팀원들에 눈짓하며 폰을 들었다.


“처리했습니다.”

“죽이진 말고.”

“...막 죽이는 건 아닙니다.”

“네네. 대충 처리하고 넘어와.”


전혀 안 믿는 말투에 미간을 모았다. 모니카 그레이스는 한숨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지오의 집 앞이다. 문은 열려있었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지오는 모니카의 기척에 눈을 떴다.


“땡큐.”

“스스로 해결할 수 있잖습니까?”

“거래지. 내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 상대방이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단순하고 명확한 거래.”

“닉 홀츠는... 실패했습니다.”

“위치까지 알려줬는데 실패했다고?”

“배신자가 더 있었습니다.”

“하긴 자기만의 조직망을 가진 베테랑 요원을 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닉 홀츠가 당신을 노릴 수도 있습니다.”

“죽고 싶으면 그러라지. 하지만, 안 그럴 거야.”


난 닉 홀츠의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그는 날 안다. 그것도 아주 잘 안다. G로 말미암아 강제로 주입되고 왜곡된 다크웹의 정보를 철석같이 믿었다.

닉 홀츠는 지오를 두려워했다.

범죄자와 정신이상자로 득실거리는 그곳에서조차 내 이미지는 볼드모트와 동급이거나 더 지독한 악마로 각인됐으니까.


“원하는 정보가 있나? 모니카.”

“닉 홀츠.”

“가격이 안 맞잖아.”


귀찮은 파리를 치워준 것으론 값어치가 안 맞는다.

모니카는 장고에 들어갔다.


“개인적인 일도 상관없어.”

“...”

“바네사 그레이스.”


모니카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가 알려줬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모니카. 바네사가 살아있다는 사실이지.”


그녀의 인내심이 깊지 않았다면 멱살을 잡혔으리라.


“살아있으면서 왜 그 오랜 세월 동안 숨어지냈을까.”


라이언 존스를 들여다보며 내 주변엔 실종자가 없는지 살폈더니 꽤 많더라. 개중 바네사 그레이스는 흥미로운 케이스다.

스톡홀름 신드롬

위키백과엔 인질로 잡힌 사람이 인질범에게 심리적으로 동조하는 증세나 현상이란다. 바네사 그레이스는 열일곱 살 어린 나이에 실종됐고 어느새 7년이 흘렀다.

바네사의 부모님은 딸의 죽음을 받아들였지만 모니카는 아니다. 그녀는 틈만 나면 바네사를 찾아다녔다. 정보국의 감시자산을 동원할 수 있는 엘리트 요원이 찾지 못할 정도면 죽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겠나.

하지만, 바네사는 살아있었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모니카는 그 이유를 한 장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들이네요.”

“알프레드, 올해 여섯 살이지.”

“어딥니까?”

“뉴올리언스.”

“멀리도 갔군요.”


버지니아와 루이지애나의 거리는 900마일이 넘는다.

지오는 주소가 적힌 쪽지를 건넸다.


“죽이진 말고.”

“...”


어째 아까랑 비슷한 대화다.

모니카가 떠나자 지오는 다시 눈을 감고 오후의 햇살을 즐겼다.


-감정적인 행동은 인사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알아.

-유도한 겁니까?

-그냥 리크루트라고 해두지.


내 주변에 여자들이 많은 관계로 여자경호원은 항상 부족했다. 단순히 총질하고 싸움 잘한다고 좋은 경호원이 아니다. 엘레나와 모니카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험악한 세계를 겪고 살아남았다. 그건 어디서도 얻기 힘든 놀라운 경험이다.

더구나 엘레나 혼자서는 애들을 다 커버할 수 없다. 모니카는 일종의 보험이다.

붉은 황혼을 띈 늦은 오후.

예상치 못한 방문객을 맞았다.


“미스 존스?”


일라이자 존스의 차림새는 산책 나온 사람처럼 가벼웠다.


“들어오시죠.”


문전박대하기엔 보는 눈이 많다. 우린 밖이 훤히 보이는 테라스에 마주 앉았다.


“꼴이 말이 아니네요.”

“동생을 보고 싶어요.”

“도망칠 겁니다.”

“보기만 할게요.”

“미스터 스트라스버그랑은 얘기가 된 겁니까?”

“...”

“아니군요.”

“아저씨는... 상관없어요.”

“미안하지만 내게 의뢰한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미스터 스트라스버급니다.”

“얼마면 되죠?”

“하.”


지오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이봐요. 아가씨. 내가 돈에 움직이는 사람처럼 보이나요?”

“...”

“돈은 나도 많아요.”

“그럼 뭘 어쩌면 되죠? 잠이라도 잘까요?”

“와! 이거 큰일 낼 사람이네. 이게 연기면 만점 드리고 아니면 내 앞에서 당장 꺼져주세요.”

“...미안합니다.”

“작은 유부남을 화나게 하면 아주 좆되는 겁니다. 잊지 마세요. 미스 존스.”


그녀의 절박함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만 유부남에게 유혹은 너무 자극적이었다.


‘나니까 넘긴 거지 다른 유부남은 바로 침실로 갔다.’


예쁜 여배우가 한번 자주겠다는데 안 넘어갈 남자 있나?


“보기만 하는 겁니다.”

“네. 약속할게요.”

“내일 자택으로 가이드를 보내겠습니다.”

“고마워요.”


목적을 달성한 일라이자 존스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저거... 일부러 도발한 거 같지 않아?

-Positive.

-당했군.


그녀의 유혹은 어쩌면 누군가의 코칭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도울 겁니까?

-수영이에겐 아군이 필요해.


대한민국에서도 원래 톱스타였던 윤소희는 할리우드라고 꿀릴 건 없지만 이수영의 커리어는 미국에서 시작했고 할리우드에서 쭉 활동해야 했다. 그러니 우호적인 배우 인맥을 관리하지 않으면 자칫 왕따 당할 수도 있다.

트러블이 생길 때마다 지오가 도와줄 순 없으니까. 아니, 그래도 되지만 그건 자기 인생이 아니다.


-일라이자 존스 정도면 든든한 인맥이지.


배우들 사이의 교류? 경쟁? 미묘한 분위기는 제작자도 에이전트도 간섭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이수영은 이제 됐고 진짜 문제는 막내 이수현이다. 같이 영화를 찍고 배우로 데뷔한 이수현은 요즘 노래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는데 꼴을 보니 얘는 금사빠다.

그때그때 관심사가 변한달까.

남자로 태어났으면 100% 한량이다. 에밀리야와 죽이 잘 맞는 걸 보면 딱 비슷한 과였다. 약은 안 했으면 좋겠지만 쫓아다니면서 말릴 순 없으니 믿어보는 수밖에.

참! 미즈키 형수가 LA에 왔다.

1년의 반은 일본에서 나머지 반은 미국에서 보내는 빡센 일정을 소화하는 슈퍼우먼이다. 배울 점이 많은 육아 선배였다. 사카가와 모녀는 현재 아내를 따라 여행 중이다.

여자끼리 함께하는 여행이라...

남자끼리 함께하는 여행을 생각하다 바로 접었다.

땀내 시발!

부를 사람도 한정적이다. 내가 아는 사내놈들은 어딘가 문제가 많다.


‘어디 전쟁하러 가는 원정대도 아니고.’


피와 죽음으로 가득한 여행지를 상상해보라.

끔찍했다.

다음 날은 잔디를 깎고 약속한 가이드를 미스 존스에게 보내고 제니퍼의 에이전트인 팀 레이튼과 점심을 같이 먹고 오랜만에 미용실에 들러 머리카락을 다듬었다.

아내와는 수시로 통화했다.

버리고 갈 땐 언제고 그래도 걱정되는지 자주 전화했다.

저녁엔 산타모니카 해변을 바라보는 레스토랑에서 일리야와 랍스터를 뜯었다. 남자 둘이 앉아 밥을 먹다니 내가 유부남이 아니었으면 언론이 일리야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기웃거리는 팬인지 안티인지 모를 사람이 많다.


“스테이시는?”

“뭘 물어. 깨졌지.”

“진짜... 존나 빠르구나. 넌.”


5G, 기가인터넷도 울고 갈 논스톱 연애다. 고백하고 사귀고 헤어지는데 석 달도 길었다.


“너도 지금 혼자라며? 제이.”

“오해할 말은 하지 말고.”

“오늘 나랑 뜨밤?”


양성애자가 저딴 말을 하니 존나 소름 끼친다.


“밥이나 처먹고 서로 갈 길 가자.”

“정 없네. 한국인은 정이라며?”

“정? 어디서 또 주워들은 건 있어서. 마! 난 이제 코리안이 아니라 양키다. 양키.”


랍스터용 망치를 들어 뚝배기를 깨려는 자세를 취하자 일리야는 찌그러졌다.


“좆같은 소리하지 말고 문제가 뭐야? 문제가.”

“...”

“뭐 부탁할 거 있으니까 밥 먹는 거 아니여?”

“...”

“내가 널 모르겠니? 좆대가리야.”


스테이시와 일찍 깨진 것도 새 애인이 생겨서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일리야의 병명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섹스중독

요즘은 섹스의존증이라고 부르나?

이 새끼는 돈 많은 미남이자 톱스타가 아니었으면 강간범죄자로 이름 날렸을 것이다. 근데 웃긴 것이 뭐냐면 주인공놈도 여자를 존나 밝힌다는 사실이다.


‘끼리끼리 노는 거지.’


둘은 나이를 떠난 친구지만 또 경쟁자다. 이택기가 내게 일리야를 경계하라고 조언한 것도 아마 주인공 입에서 나온 명령일 것이다.

두 놈이 섹스를 경쟁하든 말든 나랑은 관계없다.

내가 아끼는 이들만 장난감처럼 건드리지 않으면 하렘을 만들어 궁녀 3000명을 채우든 말든 뭔 상관인가.


“애슐리랑 잤어.”

“근데?”

“애슐리랑 잤다고.”

“그래서 뭐? 애슐리든 애니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니가 아는 애슐리랑 잤다니까.”


내가 아는 애슐리?


“...애슐리 터너?”

“맞아.”

“잠깐.”


뭔 개소리야? 걔는.


-CIA가 데리고 있지 않아?

-아직 계획을 실행하기 전입니다.

-빌어먹을 공무원!


애슐리 정신차리기 프로젝트의 시작은 일단은 매춘으로 체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감옥에서 좀 괴롭힘당하다가 CIA 훈련캠프로 옮기는 걸로 마무리.


“너... 콜걸도 불러?”

“그런 파티가 있어. 모임 같은 건데... 거기서 애슐리를 봤거든.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지.”

“그래서 잤다고?”

“...어. 많이 취했다 보니까.”


지오가 랍스터 망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자 일리야는 움츠러들었다. 대가리를 깨? 말아?


“설마 빚 갚아준 건 아니지?”

“...”

“미치겠군.”


일리야는 바보가 아니다.

애초에 애슐리가 나와 친분이 없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리라. 이 새끼 이거... 50만 달러로 애슐리를 건드린 걸 퉁치려는 것 같다.


“지금 데리고 있어?”

“어.”


그래도 용케 파파라치는 피했다.


-어쩔까요?

-CIA에 통보하고 접어.

-알겠습니다.


프로젝트 내용을 바꿔야겠다.


“일어나.”

“만나게?”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




애슐리 터너

과거 미모로 따지면 제니퍼와 1, 2위를 다투던 미인이었지만 이제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보였다. 뭐 그래도 본판은 괜찮으니 화장하면 봐줄 만했다.

일리야의 저택에서 우린 꽤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났다.


“오랜만이네.”

“...제이.”

“나갔으면 잘살아야 할 거 아니야. 꼬맹아.”


이제껏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잔뜩 움츠러들어서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또 눈에 밟혔다.


“돌아와.”

“...”

“거절은 거절해.”


쓸데없는 오지랖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접 대면하니 신경 안 쓸 수가 없게 됐다.


-미셸에게도 사람을 보내.

-얍.


지오는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보던 일리야에게 다가갔다.


“데리고 갈 거야.”

“잘됐네.”

“50만 달러는 지금 이체해줄게.”

“그럴 필요까지는.”

“두 번은 안 돼. 로빈.”


지오는 일리야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상대가 망설이자 그는 고개를 삐딱하게 누였다.


“애슐리와 사귈 거야?”

“...”

“온 세상 여자를 다 따먹고 다녀도 상관없어. 단! 내가 아끼는 애들은 안 돼.”

“애슐리는 어린애가 아니잖아.”

“뒤지고 싶다고?”

“놉!”


작은 반항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옷을 다 입은 애슐리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짐은?”

“숙소에...”

“제임스.”


지오의 부름에 경호원 한 명이 다가왔다.


“둘 더 데려가서 짐 챙겨.”

“예스. 보스.”

“따라가.”


제임스를 따라가는 애슐리를 지켜보다 때마침 진동하는 폰의 발신자를 확인하곤 통화를 눌렀다.


“말해.”

“미셸 베넷은 이틀째 출근하지 않았답니다. 보스.”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식당에 미셸이 이틀이나 출근하지 않았단다.


-G?

-추적 중... 확인! 미셸 베넷은 현재 크림슨 앤 맥켄지 본사에 구금된 상탭니다.

-거기가 어딘데?

-애슐리 터너가 속했던 에스코트 서비습니다.

-빚 다 갚았잖아?

-그걸로 끝내면 양아치가 아니죠.


이래서 남의 몸 가지고 장사하는 새끼들은 믿을 수가 없다.

애슐리가 잠수 타자 친구를 납치했다.


“문자로 찍어준 주소로 이동해. 완전무장.”

“Yes!”


유난히 힘찬 예스다.


-LAPD에 통보할까요?

-되겠어?


고급 에스코트 서비스는 부유층과 권력자가 애용하니 뒷배도 만만찮았다.


-테러와 관련된 경보는 시장도 못 막습니다.

-Good.


포주들이 테러와 무슨 관련이 있겠냐만 없는 죄도 만들 수 있는 존재가 G였다.


-작전계획 수립 중.... 완료! 명명하시겠습니까?

-작전명이라...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고래사냥.

-작전명 고래사냥! 시작할까요?

-Go.


Whale hunting!

자아! 떠나자! 동해, 아니 고래 잡으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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