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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지오 디 오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0.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3.04.2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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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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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쪽

지오 디 오리진 -83화-

DUMMY

“써니는 왜 제이와 결혼을 결심했어?”


스테이크를 우아하게 흡입하던 강선아는 에밀리야의 질문에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이곳은 뉴욕의 어느 파인다이닝, 지오의 여자들이 식사 중이다.


“사랑하니까?”

“왜?”

“사랑하니까.”


좋아하는 것에 이유가 필요할까.

좋은 건 그냥 좋은 거다.


“제이가 잘생긴 건 아니잖아?”

“안 꾸며서 그래. 꾸미면 로빈급이야.”

“거짓말!”


배우도 화장하고 머리 안 하면 그저 그런 피사체다. 외모는 돈을 처바르면 대부분 해결된다.


“남자는 얼굴 뜯어먹고 사는 게 아니에요. 철없는 아가씨야.”

“그럼? 몸?”

“우리 그이가 몸이 좋긴 해. 하지만, 그것도 한때야.”

“그럼 뭔데?”

“남자는 무조건 가정적이어야 해.”

“패밀리맨?”

“예스.”

“그건... 너무 지루하지 않아?”

“그러니까 니가 철이 없는 거야. 원래 꼴값하는 것들이 죄다 바람둥이거든. 잘생기고 예쁜 것들은 세상을 참 쉽게 살아. 뭐 사실 그럴 수밖에 없지. 주변에서 가만 놔두질 않으니까. 그리고 넌 돈도 많으니 특히 더 지랄이잖아. 항상 말하지만 엉덩이 가볍게 놀리지 마. 남자 잘못 만나면 인생 조진다.”


미남미녀 옆에 사람들이 꼬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써니는 유교걸이야! 틀!”

“허!”


강선아는 네가 그 말을 어찌 아냐는 표정을 짓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래 남의 나라말을 배울 땐 욕과 비속어부터 배운다. 싸구려 한국어를 알려줄 친구는 에밀리야 옆에 널렸다.


“제이가 엘에이에 혼자 남은 게 안 불안해? 어쩌면 배우 지망생이랑 바람피우고 있을지도 몰라.”

“유혹은 많이 받겠지만 글쎄... 그럴 것 같진 않은데?”

“패밀리맨이라서?”

“음. 약간 다른데... 그이는 약속을 어기지 않아. 자기가 뱉은 말은 하늘이 무너져도 지키는 편이야. 가정적인 거와는 전혀 상관없어.”

“응?”

“...네 나이론 아직 이해하기 힘들어.”


결혼생활은 사랑으로만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의리야말로 사랑보다 더 깊은 굴레일지도 모르겠다.

식당을 나온 일행은 뉴욕을 여행했다.

뉴욕토박이인 에밀리야에겐 새로울 것 하나 없지만 다른 애들에겐 아니었다. 예쁜 여자들이 몰려다니니 남자가 꼬였지만 흉측한 이두박근을 가진 경호원을 보더니 급히 뒷걸음쳤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 도시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브로드웨이를 거닐며 뉴요커의 기분을 만끽했다. 절정은 파티였다. 상류사회의 파티문화는 뉴욕이든 LA든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동부가 서부보단 확실히 보수적이었다.

태생이 싸구려인 강봄의 가출팸은 질색하며 도망쳤다. 강선아도 파티를 즐기는 성격은 아니고 에밀리야는 경기를 일으키는 수준이다.

미친년을 자극하면 아주 좆되는 거다.


“으으, 꼰대새끼들 개싫어.”

“그렇게 대놓고 까도 돼?”

“지들이 뭘 어쩔 건데?”

“너도 진짜 인성 빻은 년이구나.”

“남은 몰라도 가족한텐 안 그래.”

“우리한테 그랬으면 너랑 벌써 절교했어. 이년아.”


코쉬 이사회가 주최한 파티에 억지로 참여한 에밀리야는 거하게 깽판을 치고 자리를 떠났다. 미친년이 미친 짓을 했으니 주변은 다들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다.

평판이 중요한 상류사회에서 에밀리야의 거친 행보는 확실히 이질적이었다. 물론 소유와 경영은 다른 문제긴 하지만 코르센코왕국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적법한 계승자를 향한 대중의 관심은 여느 톱스타 못지않게 뜨거웠다.

그녀의 미친 짓이 용인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지오 덕이다. 아니, 지오로 가장한 G의 통제력 덕분이다. 뛰어난 G의 업무능력으로 코쉬는 매년 큰 폭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왕국을 넘어 제국으로 불려도 손색없었다.

에밀리야의 미친 짓이 용인될 만큼.


“왔니.”

“애들은요?”

“자.”


에밀리야의 뉴욕 저택으로 돌아온 강선아는 애들부터 찾았다. 장미소 여사는 손주들을 막 재운 참. 강선아는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 천사처럼 잠든 남매를 확인하곤 조용히 나왔다.


“파티는?”

“에밀리가 질색해서 금방 나왔어.”

“에밀리는?”

“봄이랑 합류했을 걸?”


강봄 일행은 처음부터 클럽으로 향했다.


“넌?”

“나도 이제 애가 둘이요. 엄니. 체력이 안 돼.”

“아직 한창인데 늙은 척은. 야! 내가 니 나이 땐.”

“눼이눼이!”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다 꼰대가 되는 걸까. 강선아는 드레스를 훌러덩 벗고 소파에 기대듯 누웠다.


“얘가 겁도 없이?”

“왜? 보는 사람도 없는데.”

“우리 아들은 이 화상이 뭐가 좋다고 결혼했을까? 나이 많은 년이라 금방 삭을 텐데. 속상하다. 속상해.”

“내가 엄니 친딸이거든?”


강선아는 혀를 쯧쯧 차는 엄마를 어이없는 듯 쳐다봤다. 아무리 사위사랑은 장모라지만 지나칠 정도라 가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됐고. 이 엄니는 잠깐 한국에 다녀와야겠다.”

“왜?”

“니 외삼촌이 사고를 쳤거든.”

“동원 삼촌? 뭔 사고?”

“혼전임신.”

“아이고야. 우리 삼촌 능력자네. 능력자.”


강선아는 껄껄 웃었다.


“엄마는 골이 아픈데 웃음이 나와? 이년아.”

“그럼 울어? 좋은 일이구먼. 우리 삼촌 이제야 장가가네.”

“...”

“왜? 못 가?”


엄마의 반응이 이상하자 강선아는 갸웃거렸다. 돈이 없는 집안도 아니고 늦깎이 장가지만 축하받을 일 아닌가?


“상대가 스물여섯이란다.”

“오 쉣!”


그녀가 알기로 삼촌 장동원의 나이는 올해 마흔아홉이다.

26과 49, 무려 23년 차.


“뭐 하는 앤데?”

“모델.”

“꽃뱀 아니야?”

“동원이가 아무리 철없어도 그 정도 바보는 아니거든.”


그래도 제 형제라고 감싸는 엄마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상견례?”

“아니, 일단 얘길 들어봐야지.”

“설마 삼촌 아이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해?”

“...”

“와우!”

“확인할 건 확실히 해야지. 괜히 나중에 밝혀지면 서로 피곤해져.”

“완전 악당 역할이네?”

“어쩌겠니. 내가 제일 어른인데.”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돌아가셨으니 가족 중 제일 큰 어른은 장녀인 장미소가 맞다.


“나도 갈까?”

“애들은?”

“전용기 있는데 뭐... 이참에 친척들 얼굴 보고 좋지.”

“하긴 우리 선예랑 선오도 한 번쯤은 보여줘야지.”


미국인이 됐다지만 뿌리는 한국인이다. 그다지 마음에 드는 친척은 없지만 가족은 가족이다.


“그이한텐 내가 말할게.”

“우리 아들이 배려심이 많아서 다행이지... 너 잘해.”

“잘하거든.”


장미소에게 사위는 이미 딸 이상이었다. 강선아는 섭섭하면서도 뭔가 뿌듯한 기분인데 그만큼 남편이 장모에게 잘한다는 뜻이다.

생각한 김에 지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밥 먹었어?”

“응. 자기는?”

“먹었지. 애들은 자?”

“응. 자.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

“땡큐. 우리 자기도 엄마도 고생이 많다.”


애들 데리고 하는 여행이 썩 자유롭진 않다. 아무리 보모가 많아도 신경을 아예 안 쓸 수 없으니까.


“자긴 어디야? 집?”

“마이애미.”

“마이애미는 왜?”

“우리 누님들이 사고를 거하게 치셨어. 수습하러 왔지.”

“...미안.”

“자기가 왜 미안해?”

“어쨌든 미안.”


친구들이 사고를 치면 수습하는 사람은 항상 남편이었다.

통화는 무슨 사고를 쳤는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시시콜콜한 뒷담화로 이어졌다. 강선아는 감탄하고 화내고 웃으며 일일이 맞장구쳤다. 본론으로 넘어간 건 한참 뒤였다.


“엄마랑 한국에 다녀오려고.”

“한국?”

“응. 외삼촌이 결혼한대.”

“외삼촌이면 부사장님은 아닐 테고... 동원 삼촌?”

“응. 동원 삼촌.”


하나신투 부사장 김병곤을 삼촌으로 부르지만 그는 기혼자에 아들은 벌써 장가를 갔으니 논외였다.

장동원

외가랑 데면데면하지만 그래도 친한 사람은 있다. 전형적인 한량. 그래도 밉지 않은 한량이랄까.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강선아에게 유쾌한 한량 외삼촌과의 추억은 나쁘지 않았다.


“뉴욕에서 바로 갈 거면... 한국에서 보자.”

“올 거야?”

“당연히 가야지. 결혼이면 가족의 큰 행산데.”

“고마워.”

“피곤할 텐데 일찍 자.”

“응. 자기도.”

“쪽.”


지오가 폰에 입을 맞추자 옆에서 곁눈질하던 윤소희는 질색팔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우웩! 역겨워.”

“사랑을 모르는 당신이 정말 불쌍해요. 윤소희 씨.”

“...열받아.”


지오가 마법소녀 포즈?로 놀리자 윤소희는 주먹을 꽉 쥐었다.


“됐고! 넌 오지 마. 쇼는 우리만 갈 거야.”

“왜?”

“반항이야? 언니한테 이른다.”

“...”


복수냐! 치졸한 년!

미국 유부남이 가장 선호한다는 아메리칸 익스포드 픽업트럭이 후원하는 캣파이트 챌린지가 마이애미 해변에서 개최됐다.

땀! 노력! 우정! 사랑! 그리고 비키니!

해변 가득할 살결의 향연!

하지만, 그에겐 그림의 떡이다. 왜냐면 윤소희의 강력한 태클이 있었기 때문이다. 탐정보조의 쿠데타는 성공했고 지오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스파이캠을 들여다봤다.


-분하고 원통하다!

-패밀리맨 아니었습니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


윤소희는 진짜 탐정이 된 것처럼 굴었다.

미녀 둘이 돌아다니니 은근슬쩍 들러붙는 사내새끼도 많았는데 츤데레 모니카와 동생한테만 무른 윤소희는 철벽녀였다. 멀리서 지켜보는 경호팀도 있으니 걱정은 접었다.

그래도 캣파이트 챌린지는 여전히 아쉽다.


-제국에는 포르노가 없어.

-...

-시뮬레이션 성인등급이 있는데 포르노를 볼 일도 살 일도 없지.


성인 제국시민권자라면 시뮬레이션에서 19금 플레이가 가능했다. 물론 클래식을 칭송하며 옛 포르노 테잎을 찾는 수집가도 많았지만 어떤 자극도 시뮬레이션을 뛰어넘을 수 없다.

...고 믿었었다.


-하지만, 리얼은 뭔가 달라.


포르노를 알던 세대는 시뮬레이션에 열광했다. 하지만, 포르노를 모르는 세대는 그 비교가 와닿지 않았다.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고 억지로 뭔가를 못 하게 하면 더욱 그것에 관심과 집착을 보였다.

시뮬레이션과 포르노.

둘 중 무엇이 나은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온전한 내 선택이다. 시뮬레이션일지 포르노일지 선택하는 온전한 내 권리가 제일 중요했다.


-그것 때문에 전쟁이 터졌었지.

-...안탈로카


우린 세이렌 전쟁으로 부른다.

안탈로카 행성총독을 보좌하는 중앙AI는 피정복민인 안탈로카 원주민의 문명 수준을 CC등급으로 결정했다. AA에서 CC 사이로 정해지는 문명등급에서 C등급은 구세계의 기원전에 해당하며 CC는 약 기원전 3000년까지로 계산했다.

제국일신교는 이 문명등급에 매년 비판 성명을 냈는데 왜냐면 크리스트교의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황제는 인류제국의 유일무이한 신이다.

안탈로카 중앙AI는 CC등급의 원시원주민의 통제를 위해 제국일신교를 권장했고 교단은 의욕적으로 포교에 나섰다. 문제는 당시 교단 내부에 불어닥친 교리 논쟁이다.

유행처럼 번진 ‘기계화’에 대항해 ‘순혈’을 내세운 원리주의는 피정복민을 같은 제국인이나 신도로 보기보단 계몽과 교정이 필요한 야만인으로 규정했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제국시민권이 나오기 전엔 분명 오랜 교육이 필요했으니까. 그러나 이런 우월감은 자칫 선민사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황제 아래 인류는 평등했다.

토마스 그레이프 안탈로카 주교는 일신교 내 고래종파의 당수로 활동하며 기계화에 반하는 극단적인 순혈·원리주의를 주장했다. 사실 그는 일신교에 투신하기 전 구원의 사도란 크리스트교 계열 이단종파를 이끌었다.

토마스 주교는 황제가 구세주임에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단! 황후와 황태자는 인정하지 않았다.

제국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황후와 황태자를 인정하지 않는 제국인은 많았다. 완전무결한 신의 배우자가 일개 인간이란 사실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신성모독은 극형으로 다스려야 옳지만 언급하거나 퍼트리지 않는 이상 시민이 어떤 사상을 갖든 정부는 관여하지 않는다. 더구나 황제의 열렬한 추종자인 토마스 주교를 체포하거나 처벌하는 건 제국정부에겐 부담스러운 노릇이다.

오직 황제만이 그를 심판할 수 있다.

토마스 그레이프는 안탈로카에서 단 한 가지 사업에 열중했다. 바로 인간을 초월한 미의 화신化身을 만드는 것이다. 영원을 사는 신의 일개 인간 배우자는 언젠가 죽고 옆자리는 공석이 될 테니 이번에야말로 그에 어울리는 완벽한 파트너를 세우는 것이 토마스 주교의 일생일대 과업이 됐다.

이건 명백히 순혈주의에 반하는 행동이지만 그는 모순을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내면 깊숙이는 영생을 향한 욕망이 있었다. 포교를 빌미로 안탈로카 원주민을 강제로 교접하는 유전자 혁명은 수십 년 동안 자행됐고 마침내 결실을 얻었다.

거창하게 내세운 순혈·원리주의와는 동떨어진 파격.

하지만, 황제를 위한다는 명분은 완벽하다고 믿었던 제국의 AI조차 비이성적으로 만들었다. 안탈로카 행성은 나치의 그것보다 더 끔찍한 사육장이 되었다.

참상이 알려진 계기는 작은 사건이다.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입.

아름다운 여자들이 사방에 널린 낙원의 소문은 우주 곳곳으로 퍼졌고 안탈로카를 찾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는 정보를 통제할 수 없었고 사고는 예정된 일이다.

한눈에 반한 여자를 차지하려고 남자는 살인도 불사했고 행성 전역으로 확산했다. 얼마나 미쳤으면 살인도 불사할까? 토마스 주교가 만들어낸 이 마성의 안탈로카 여자들을 언제부턴가 세이렌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토마스 주교는 심판받지 않았다.

왜냐면 이미 예전에 죽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완성된 첫 피조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섹스 중 사망했다. 교단은 이를 쉬쉬하며 은폐했다. 주교급 성직자가 복상사라니? 세간에 알려지면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으리라.

안탈로카는 세이렌으로 몸살을 앓았다.

아름다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끼리 결투를 벌이는 것도 모자라 전쟁으로 발전했다. 또 우주를 누비는 상인에게 남자를 미치게 하는 여자는 훌륭한 상품으로 보였다.

인신매매를 엄격히 금지하는 제국임에도 안탈로카 출신 여성은 같은 무게의 에테리얼 발리움보다 비싸게 거래됐다. 안탈로카 우주항로는 인신매매범과 밀수꾼, 그들을 잡으려는 제국군의 끝없는 술래잡기가 벌어졌다. 심지어 같은 인신매매범과 밀수꾼 사이에도 서로의 상품을 빼앗으려는 약탈이 끊이지 않았다.

난장판을 정리한 건 더는 참을 수 없던 황실이다.

그레이트 아르콘 아브라삭스

검은 태양이 강림한 순간 누구도 징벌을 피할 수 없다.

이후 사람들은 그걸 세이렌 정화전쟁으로 불렀다.


-미녀로 불리는 여성 톱스타의 경우 안탈로카 출신이 많아.


아이덴티티 라이선스IL로 먹고사는 연예인 중 안탈로카 출신을 프리미엄으로 내세우는 톱스타도 많다. 성형하지 않아도 성형한 것처럼 아름다운 외모는 엄청난 장점이다.

미남과 미녀로 가득한 세상을 상상해보라.

마냥 행복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뭔가 하나라도 더 남보다 눈에 띄는 개성이 필요했고 예나 지금이나 자연산은 독보적인 프리미엄이다.


-엄밀히 따지면 자연산은 아니지 않습니까?

-맞아.


세이렌은 유전공학을 뛰어넘은 급진적인 유전혁명의 결정체다. 토마스 주교는 분명 비윤리적인 범죄를 저질렀지만 안탈로카와 멀리 떨어진 본토인 대다수의 속마음은 혐오보단 환영이었다.

이번 사건의 본질도 다르지 않다.

선생이자 스트리퍼란 직업을 가진 조이 맬라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그녀가 2730마일 떨어진 시애틀로 이사하기 전까지 대략 22년 동안 플로리다에서 살아왔다.

휴양이란 건 거짓말이다.

귀향이다.

그리고 이 귀향엔 복잡한 사연이 있다.


-윤소희가 스치듯 만난 리키 로드리게스와 조이 맬라드 사이엔 복잡한 과거가 있습니다. J.


윤소희는 진지했다. 그녀는 조이 맬라드 살인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얼마 전에 웃으며 헤어졌는데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부모님 이후 제일 크게 와닿은 죽음이다.

사이코패스 연예제작자가 자신을 위해 사람을 죽인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나? 인간이 마음을 쏟는 부분을 같은 인간도 이해하기 어렵다.

고작 하루 만난 사이를 신경 쓰는 건 어떤 이유일까.


-당신이 애들에게 마음을 쏟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J.

-...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이유 따윈 없는 거 아닌가요?


맞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 이유 따윈 없다.


-윤소희를 쫓는 일당이 있습니다.

-누구?

-리키 로드리게스가 고용한 깡팹니다.


리키 로드리게스.

할리우드, 아니 캘리포니아는 미국 최대 포르노산업을 굴리는 지역이다. 그렇다면 미국 2위는 어딜까? 텍사스? 뉴욕? 여러 후보지가 있지만 가장 자주 언급되는 곳은 플로리다였다.

리키 로드리게스는 포르노 제작자다.


-조이 맬라드는 과거 포르노를 찍었습니다.

-일탈인가?

-자기 육체를 이용하는 건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죠.


제시카 허몬도 포르노 배우란 과거를 숨기고 할리우드에서 성공했었다. 톱스타로 행세깨나 하는 연놈들의 과거를 까보면 굵직굵직한 스캔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끌려 나올 것이다.


-리키 마틴이 범인?

-...리키 로드리게습니다. 관련은 있지만 주범은 아닙니다.

-공범이란 말이네. 위험도는?

-납치를 시도할 확률이 높습니다.

-배제해.

-작업 중... 흠.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구즈먼의 사병집단이 일당을 붙잡았습니다.


때마침 이택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사님.”

“어디서 볼까?”


누군가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전화한 이유를 둘 다 알고 있었다.


“편하신 곳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팜비치. 시간은?”

“오후 다섯 시쯤 괜찮으십니까?”

“오케이.”


넓디넓은 해변 어디서 보자는지 구체적인 위치는 입에 담지 않았지만 알아서 잘 찾아올 것이다.

지오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오후 다섯 시가 되려면 아직 이릅니다만?

-어떻게 시간을 딱 맞춰서 나가? 먼저 나가는 건 사회인의 기본이야. 기본.

-...젤라틴 프로미넌스?

-아닛! 꼭 그게 목적은 아니고.


겸사겸사.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일거양득 아닌가? 이전까진 명분이 없었지만 이젠 생겼다.

이번엔 명분이 있다 아이가! 명분이!

살랑거리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벤치에 앉아 설탕주스를 홀짝거렸다. 이게 펀치 머시긴데 플로리다에선 콜라보다 더 많이 팔린단다. 그냥 환타 아닌가?

짙은 선글라스 너머 해변엔 튜브로 만들어진 장애물이 즐비했고 그 위에선 헐벗은 여자들이 치열한 레이스를 벌이고 있었다. 비키니를 입은 서로를 잡고 밀고 비볐다. 가끔, 아니 자주 탈의?가 되는 아찔한 장면이 연출됐는데 신들린 카메라 감독들은 교묘하게 선을 지켰다.

아무리 관대한 미국이라도 올 누드는 수위가 높다.


-아름다운 세상이야.

-...차라리 포르노를 보시죠.

-음침한 방구석에서? 노노! 그건 건전하지 않아. 이건 어디까지나 액티비티 또는 엔터테인먼트라고.


양키놈들은 스트립쇼를 취미와 결부시키는 경향이 있다. ‘접촉’만 없으면 일종의 쇼비즈니스로 볼 수 있지 않냐는 억지였는데 의외로 잘 통했다. 뭐 여성단체는 지랄염병이지만.

제국과 구세계의 상식은 생각 이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일단 제국에서 모든 법적 책임과 권리를 가지는 성인의 기준은 만 14세다. 한국은 만 18세, 미국은 만세 16세였나? 여기서 말하는 성인은 형법상 예외를 두지 않는 나이를 뜻한다.

촉법소년? 감형? 선처? 사형만 구형할 수 없을 뿐이지 강력범죄를 저지르면 좆된다. 제국의 이 형사미성년자새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처벌이 뭐냐면 징집이고 재수 없으면 최전선에서 고기방패로 갈릴 수 있다.

애를 전장에 밀어 넣다니! 무슨 중세냐고 까일 수도 있는데 제국에서 생명과 인권의 가치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보통 인격은 7세부터 10세 사이로 형성된다.

서너 살 어린애를 순수하다고 말하지 8세? 9세쯤 되면 이미 견적이 나오고도 남았다.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이 되는 건 쉽지만 나쁜 놈이 착한 사람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인간은 잘 바뀌지 않는다.

만약 인간이 바뀌었다면 죽음을 눈앞에 둔 시한부거나 아니면 죽음에 가까운 큰 충격을 겪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상적인 상태는 아닐 확률이 높다. 전쟁을 경험한 인간은 위험했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인간은 어딘가 망가졌다.

뉴로다인 기술이 군사용으로 주목받은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다. 전투 중 충격이 누적되는 인간의 정신은 쉽게 망가지니 이성과 전투력을 유지하도록 간섭하고 강제했다.

나는 지금 자유의지로 싸우는 걸까 아니면 전쟁기계의 일개 부품일까? 내가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없다면 안드로이드와 인간은 별 차이가 없었다.

더구나 뉴로다인 기술과 함께 발전한 생체형 안드로이드 기술은 거의 완벽한 인조인간을 재현할 수 있다. ‘의식’이 있는 인간 즉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 철석같이 믿는 인조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세계는 창조되었다.

그렇다면 지오의 눈앞에 있는 그들 모두는 생체형 안드로이드 혹은 그에 기반한 클론이란 방증이다. 제국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보자면 이들은 인간이 아니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모르지만 세계는 만들어졌다.

믿어지는가?

이들 세상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이다.

하찮은 인간에게 황제는 신이 맞다. 우주를 건너 행성과 문명을 창조할 수 있는 건 평범한 인류에겐 상상조차 불가능한 끔찍한 스케일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구가 하나일 리 없다.

우주의 별자리까지 속이는 이 거대한 실험의 목적은 뭘까?

지오가 맘먹으면 세계정복은 시간이 걸릴 뿐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황제와 비교하면 그는 하찮다. 별을 만들고 부수는 이능異能과 거력巨力 앞에선 어떤 것도 열등했다.

여러 인연을 만들고 결혼하고 자식을 얻으며 살아가는 지오에겐 전에 없는 걱정이 생겼다.

‘시나리오의 타임라인이 끝나면 세계는 어떻게 되지?’

그냥 그대로 계속 잘살았습니다! 하는 미래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왜냐면 이 행성은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물 한 방울 모래알 하나까지, 이 모든 것은 자원이다.

심지어 인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나?

-후회합니까? J.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는 감정은 썩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까.


-상실은 필연입니다.


어쩌면 난 내 자식보다 오래 살지도. 아니, 반드시 그럴 것이다.


-시나리오의 타임라인이 끝나도 세계가 유지될까?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예상은 해볼 수 있겠죠.

-결과는?

-Negative!

-밝고 긍정적인 결과는 없어?

-중앙시스템의 존재를 여전히 확인할 수 없습니다.

-어디선가 음흉하게 지켜보고 있을지도...

-어쨌든 시나리오상 남은 시간은...

-21년?

-그쯤이겠네요.


페이즈4가 끝날 때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21년이다.

아들의 대학 졸업은 볼 수 있나? 선예는 한창 꿈 많을 나이다. 애들에겐 못 할 짓이다. 21년 후엔 세상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어떻게 할까.

정신병자 취급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뭐 그때는 또 어떻게든 되겠지.’


아님 말고.

******




“팜비치. 시간은?”

“오늘 오후 다섯 시쯤 괜찮으십니까?”

“오케이.”


지오와 통화를 끝낸 이택기는 한숨을 내쉬다 비서를 돌아봤다.


“차준수는?”

“조용합니다.”

“감시를 게을리하지 마.”

“약속을 함부로 어기겠습니까?”

“믿을 놈이 없어서 정치인을 믿어? 그 족속들은 옆집 메리보다 신용이 없어.”

“메리요?”

“옆집에서 키우는 개새끼.”

“...”

“알아. 개들은 충성스럽지. 하지만, 메리는 예외야.”


순진하게 생긴 그 비숑은 육포를 줄 때만 꼬리를 흔드는 아주 영악한 개새끼였다. 하긴 심술 맞게 생긴 아줌마를 주인으로 모시니 개새끼도 밉살맞을 수밖에.


“왜?”


우물쭈물하는 부하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굳이 미국으로 건너올 필요가 있습니까?”

“보스의 엑스 걸프랜드랑 관련된 일이야.”


윤소희는 특급은 아니더라도 1급관리대상이다.


“우리 보스는 친구도 많고 여자도 많아.”

“...비꼬는 걸로 들립니다만.”

“그렇게 들린다면 그게 맞겠지.”


보스를 존경하지만 여성편력만큼은 인정하기 어려웠다.

돈과 권력을 쥔 남자에게 여자가 몰리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이택기가 아는 보스는 도덕군자와는 거리가 멀다. 매너 있는 난봉꾼? 본인은 뒤끝 없는 연애를 주장하지만 장담컨대 뒤끝 끝판왕이다.

차라리 미련이라면 다행이다.


“오 이사는... 보스와는 달라.”

“야망이 없죠.”

“야망이 없다고? 그 친구가?”

“아닙니까?”

“전혀 아니지.”


몽땅 다 가졌으면서 평범한 삶을 바라는 건 엄청난 욕심쟁이란 거다. 돈이든 권력이든 재능이든 뭐든 월등하다는 건 평범과는 멀어도 너무 멀다.

우리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에겐 관심이 없다.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내가 못 가진 좋은 것을 누리는 소위 셀럽이다. 연예인, 스포츠스타, 재벌, 정치인 등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특출난 인물들. 그들을 향한 관심은 결단코 선하지 않았다.

거리를 걷다 누가 다가와 칼로 찌르면 어떻게 될까?

하루 24시간 1년 365일 경계하는 ‘평범한 사람’은 없다. 악의를 가진 누군가 작정하고 칼로 찌르면 범인凡人은 당할 재간이 없다.

그래서 가진 자는 돈과 권력으로 튼튼한 성벽을 쌓았다.

하지만, 성벽이 높고 두꺼울수록 이목을 끌 수밖에 없고 그것으로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면 또 더 크고 높고 복잡한 성을 계속해서 쌓아야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끊임없이 반복된다.

멈출 수가 없다.

멈추는 순간 사방에서 잡아먹으려고 달려들 테니까.


‘언제 숙면했는지 까마득하군.’


잠을 적게 자든 많이 자든 매일 피곤했다.

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인간을 보면 그도 아닌 것 같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지 가끔 의심이 든다.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하고 아무 문제 없는 평온한 삶은... 대단한 거야. 엄청난 거지.”


그저 한 명의 관객으로 무대의 연극을 즐겼다.

온갖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태풍 중심에서 흔들리지 않는 건 가공할 의지의 화신이란 방증. 평온의 가치를 낮춰 보는 이들이 태반이지만 이택기는 그것이 얼마큼 무거운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에겐 자신이 정한 확고한 가치와 선이 있어. 만약 누군가 그 가치를 훼손하고 선을 넘는 순간... 파국이야.”


부하는 납득한 얼굴은 아니다.

이택기는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윤성, 기억해?”

“최윤성이면... 개득구 말입니까?”

“맞아. 개득구, 삼화정보통신.”


온갖 피싱과 해킹, 협박과 갈취를 일삼던 범죄집단은 삼화정보통신이란 간판을 내걸고 버젓이 합법적인 기업 행세를 했었다. 웃긴 건 국세청에서 그들을 우수납세자로 몇 년째 선정했다는 점. 놈들의 꼬리가 밟힌 건 성조그룹에서 자회사와 관련된 감사 도중 발견된 수상한 현금흐름 덕분이다.


“자회사 임원의 횡령이 사실 협박에 의한 갈취였던 거야.”

“성조 유앤씨의 이현성 부사장 말이군요. 감사 도중 자살한 걸로 압니다.”

“치욕을 견딜 수 없었던 거지. 그 때문에 회사 입장만 곤란해졌어.”


비리를 묻으려고 회사가 죽인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부상했었다. 성조 자회사 부사장에 오를 정도면 대단한 엘리트다. 그런 작자가 얼마큼 궁지에 몰려야 횡령을 결심할까?


“개득구 녀석을 잡으니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더구먼. 알고 보니 부사장놈이 이상한 짓거릴 벌였더군.”


성조 U&C의 주력사업은 해외업무지원 및 ETCS 레벨택 등 그룹의 궂은일을 도맡았다. 일반인이 듣기엔 뭥미? 싶은 생소한 비즈니스지만 전 세계를 누비는 성조맨은 한 해만 수만 명이 넘었고 그들이 지출하는 비용은 어지간한 중견기업의 매출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간단히 말하면 성조 U&C의 ETCS 레벨택은 그룹통합 제휴마일리지시스템이다.


“출장비용과 발권의 주체가 개인이 아닌 회사일 때 한 가지 맹점이 생기지.”

“마일리지는 누가 갖는가.”

“분명 돈은 아닌데 모으면 어떨 땐 돈보다 쓸모 있거든.”


소비활동 중 개인도 열심히 할인받는데 기업은 할인이 없을까? 당연히 더 많고 더 높은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환금성이 높은 마일리지의 경우 조세당국의 강력한 규제와 감시를 받으니 회계부서는 마일리지 포인트를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면 출장비용에서 청구되는 마일리지 대다수는 개인적이고 사소하며 다양하고 복잡했다. 예를 들면 A사의 마일리지는 A사와 제휴한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사용처가 제한적인 마일리지는 그 한계가 명확했다.

문제는 환금성이다. 환금성.


“암시장은 이런 돈 같지도 않은 돈을 좋아해.”

“암호화폐가 승승장구하는 이유 아니겠습니까.”

“마피아들이 코인으로 돈세탁한다는데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야. 범죄자만 돈세탁하는 건 아니거든. 전체 규모로 보자면 마피아는 소수에 불과해. 대다수는 평범한 서민에 가깝지. 편법? 범죄? 이젠 그 경계가 모호해.”


엄격한 법치를 적용하면 무단횡단도 범죄였다. 뭐 경범죄긴 하지만 범죄는 범죄.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탈세와 탈루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자영업자는 흔했다.

그들에게 왜 죄를 짓느냐고 물으면 이게 무슨 죄냐고, 남들 다하는 절세라고 뻔뻔하게 나올 확률이 높았고 정의의 기준은 사람마다 달랐다. 명문화된 법률조차 해석 차이가 있으니까.


“최윤성이 가진 장부는 말 그대로 지옥문을 여는 열쇠야.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쌓이고 쌓인 사이버범죄의 바이블 같은 거지. 자그마치 20년이야. 얼마나 많은 모가지가 걸렸을까?”

“...수백?”

“수백? 수천이야.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천이고 많게는 수만이지. 장부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한 달 동안 암살 시도만 스물여섯 번이 넘었어.”

“베스타에서 사상자가 꽤 나온 걸로 압니다.”

“여덟.”


경호를 맡은 베스타 글로벌VG 직원 둘이 죽고 여섯이 다쳤다. 경호원이 경호하다 죽는 건 의외로 흔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작 한 달 사이에 둘이나 목숨을 잃었으니 회사는 난리였다. 화가 난 주인공이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려는 걸 이택기는 두 팔 걷어붙이고 말렸다.

성조는 최윤성의 장부가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전면전을 벌일 순 없었다. 도덕적인 그룹경영을 강조하며 성조의 이미지를 세탁하는 동안 강도 높은 분쟁은 곤란했다.


“할 수 없이 오 이사를 찾았지. 어떻게 됐을까?”

“...”

“최윤성이란 인간 자체를 세상에서 지워버렸어.”


그는 세상이 최윤성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마법.”


인력이든 기술이든 은폐작전에는 엄청난 자원이 들어간다.


“CCTV를 해킹하는 건 쉬운 축에 속해.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인파의 셀폰 카메라를 재밍하는 건... 그래. 회사의 역량을 총동원하면 가능할지도 몰라. 하지만, 불특정 다수로 넘치는 인터넷에서 특정인의 정보를 교란하거나 삭제하는 건 국가급 정보자원이 투입돼야 해.”

“...오 이사의 역량이 정보기관과 비슷하단 말씀입니까?”

“니가 들어도 말이 안 되지?”

“특별한 배경은 없는 걸로 압니다만.”

“없지.”


검증은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특별한 배경은 없었다. 물론 군 기록이 베일이 가려졌긴 했지만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역량을 고려하면 그 한계는 분명했다. 보스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그의 특별함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인맥에 요구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시간이야.”


신뢰를 쌓으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 절대적인 시간을 건너뛰려면 보통의 재능으론 안 돼. 무엇보다 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졌지.”


보스조차 밑바닥에서부터 천천히 명성과 평판을 쌓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어. 사람 하나를 세상에서 지울 수 있는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가진 인물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야.”

“...불가능합니다.”

“맞아. 불가능하지. 한 명의 엘리트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돈과 시간은 적지 않으니까. 하지만, 눈앞에 결과가 있잖아.”

“누군가의 불순한 의도는 아닐까요?”

“처음엔 나도 의심했어. 누군가의 의도가 있을 거라고. 근데 도저히 찾을 수 없더군. 배후가 없어. 만약 배후가 있다면 그건 세상을 완벽히 통제하는 진짜 무서운 조직일 거야.”

“차라리 없길 바라야겠군요.”

“그래서 오 이사와 우린 동등한 관계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계약으로 주고받는 공생관계.”

“...”

“내가 과장하는 거 같아?”

“개인은 집단을 이길 순 없습니다.”

“인정. 마지막까지 가면 결국 우리가 이겨. 문제는 그 한 명 잡자고 내 팔다리를 다 내주면 이겨봐야 무슨 소용인가.”


그야말로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격이다.


“아무리 보스의 보증이라도 씨아이에이, 그 음흉한 연놈들이 그를 건드리지 않는 건 뭔가 눈치챘기 때문이야. 아, 시발. 잘못 건드리면 아주 좆되겠다. 딱 봐도 견적이 나온 거지.”


국익이란 괴물에 삼켜진 CIA가 지오란 한 명의 개인과 협력하는 건 단순히 보스의 중재 때문은 아닐 것이다.

듣는 사람은 몰라도 이택기는 진지했다.


“기억해. 어느 날 뒤질 거 같은데 보스나 내가 널 도와줄 수 없을 땐 그를 찾아. 우릴 봐서라도 한 번쯤은 살려줄 거야.”

******




“투명인간?”

“어. 처음엔 정키놈들의 헛소리로 치부했는데 여럿이 비슷한 증언을 하더군.”

“폐쇄회로는?”

“알잖아.”


호텔 겸 카지노 겸 은행 겸 조폭소굴인 만큼 자기들한테 불리한 증거를 남길 이유가 없다. 뭐 핑계는 손님들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거지만. 설마 카르텔을 상대로 깽판 칠 미친놈이 있으리라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총은 발사되지 않았어.”

“...”

“날붙이도 사용되지 않았고.”

“우리 요원 중에 맨손으로 성인남자 사오십 명을 상대할 친구가 있을까?”

“제이슨 본은 영화야. 일라이자. 과장됐다고.”


백악관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일라이자 레인은 여전히 CIA 사람이었다. 회사는 언젠가 돌아가야 할 그녀의 고향이다.


“국방부는 뭐래?”

“잡아다 실험해야 한다고?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반쯤은 진심으로 들렸어.”

“회사에도 말이 돌지?”

“응용과학부에서 비슷한 견해를 내놨어. 특히...”

“닥터 베른하우스?”


비밀연구소가 해킹당하는 초유의 사태로 CIA 내 기술부서는 한바탕 홍역을 앓았다. 연구소는 폐쇄됐고 관련자 전원 재배치됐다. 응용과학부로 자리를 옮긴 닥터 베른하우스가 선정한 첫 번째 주제는 당연하게도 초인超人이다.

초능력자, 영능력자, 초감각자 등 평범하지 않은 사람을 연구했다. CIA가 무슨 타블로이드냐는 비판이 있기도 했지만 일라이자가 직권으로 불평·불만을 눌러버렸다.


“다이앤이 랭리로 복귀했어.”

“...어디로?”

“제로 전담반.”


일라이자는 폰을 들었다.


“캐시, 나 일라이자에요. 국장님 계시죠? 네. 기다릴게요.”


신임 CIA 국장 로버트 던리의 목소리는 금방 들려왔다.


“일라이자?”

“국장님.”

“자네가 먼저 연락할 일은... 다이앤 때문이군.”

“걘 폭탄이에요. 알잖아요. 로버트.”

“일은 잘하잖아.”

“몬테카를로 사건을 잊었어요?”

“...”

“우리 애들 넷을 잃었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

“아무리 부크하트 상원의원이라도 원칙이 있는 겁니다. 국장님.”


다이앤, 다이애나 부크하트의 부친 제임스 부크하트는 루이지애나의 연방 상원의원이며 국방정보국 출신에 CIA나 FBI와도 인연이 깊었다.


“설리번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어. 일라이자.”

“...”

“못 들었나? 이거... 벌써부터 자넬 따돌리는 건가. 흠. 충고 하나 할까?”

“듣고 있어요.”

“적을 많이 만들지 마.”

“...”

“다음엔 식사라도 하지.”


통화는 끝났지만 일라이자는 폰을 한참 내려다봤고 그걸 이상하게 생각한 칼슨이 불렀다.


“일라이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너 그 표정... 꼭 사고 치기 전에 비슷한 표정을 짓더라. 뭔데?”

“...마크가 내 뒤통수를 쳤어.”

“설리번? 설마 다이앤을 추천한 게 설리번이야?”

“...”

“허!”


칼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놈은 원래부터 다이앤을 싸고돌았지. 더구나 은퇴가 머지않았으니 더 몸이 달았을 걸? 어디 시의원이라도 한자리 얻으려면 연방 상원의원과의 인맥은 소중하니까.”


마크 설리번 CIA 지원 및 정책조정국 부국장은 매우 정치적인 인간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뒤통수를 칠지는 통수녀?인 일라이자도 예상치 못했다.

다이애나 부크하트

올해 서른다섯 살의 이 야심만만한 요원은 3년 전 아주 큰 사고를 치고 좌천당했었다. 지오가 일라이자에게 제공한 정보로 시작된 작전을 완전히 말아먹었다. 무엇보다 큰 손실은 요원 넷이 작전 중 사망했다는 점.

쓸 만한 CIA 요원 넷을 양성하는 필요한 시간과 노력, 돈은 어마어마했다. 이른 나이에 책임요원이 된 다이애나의 실수는 말했듯 너무 어린 나이에 높이 올라간 것이다.

지휘관이 적절한 판단과 대처를 하지 못하면 반드시 누군가 다친다. 혼자 죽으면 상관없다. 문제는 남을 다치게 만든다.

일라이자는 다시 폰을 들었다.


“크리스.”

“일라이자.”

“다이앤.”

“이제야 네 귀에 들어갔나?”

“왜 말하지 않았어?”

“회사를 떠난 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이건... 니가 떠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진행됐거든.”

“퍽킹 부크하트.”

“너무 미워하지 마. 다이앤도 자기 아버질 싫어하더군.”

“그가 하는 일이 싫다면 회사를 떠났어야 해.”

“니가 다이앤을 싫어하는 건 알지만 그녀는 애국자야.”

“너도 정치에 관심 있어?”

“설리번처럼? 아니, 난 은퇴하면 칸쿤으로 이주할 거야.”


칸쿤은 미국인이 환장하는 멕시코의 유명 휴양지다.


“그럼 왜 갤 싸고돌아?”

“너랑 닮았으니까.”

“...”

“부정하지 마. 일라이자. 너랑 걔는 닮았어. 물론 우리 대단하신 일라이자님은 실수 따윈 안 하지만... 다이앤은 널 동경해. 너처럼 되고 싶어 하지.”


CIA에는 꽤 많은 여성리더가 있지만 일라이자 레인은 독보적이었다. 그녀가 괜히 차기 CIA 국장으로 거론되는 것이 아니다.


“위험한 폭탄은 차라리 옆에 두고 감시하는 게 낫지 않아?”

“...”

“니가 오라고 손짓하면 얘는 당장 넘어갈 걸?”

“...”

“데려갈 거야?”

“...보내.”


일라이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속 썩이는 자식 놈은 하나면 충분한데...’


아들을 사랑한다. 이건 변함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혼자였던 시절이 그립다.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지만 불쑥불쑥 떠오른다.

그녀는 요원들을 아꼈다.

CIA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작전국에서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요원을 부품처럼 갈아 끼우는 그곳과는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라이자는 어떤 작전국 리더보다 더 많은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엘레나와 모니카는 그녀가 직접 발탁했다. 회사는 모니카를 더 중요한 자산으로 취급했지만 둘 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엘리트였다. 개인적으론 엘레나를 높게 평가했다.


“다이앤을 엘레나에게 맡기면 어떨까?”

“제이가 싫어할 거 같은데.”

“싫어하겠지.”


다이앤은 폭탄이다. 애초에 그녀는 요원이 되면 안 되는 친구다. 빡빡한 심리적성평가를 요구하는 CIA임에도 매번 통과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부크하트 상원의원의 눈치를 보는 기관 내 정치 때문이다.

상원 정보위원회 위원장 파워는 무시무시했으니까.

하지만, 천하의 부크하트 상원의원이라도 벨리알과 척질 순 없다. 그리고 그 마왕의 오른팔은 의외로 여자애를 잘 다뤘다. 저 버릇없기로 미국 제일을 다투는 에밀리야 코르센코가 꼼짝 못 하는 것만 봐도 여자를 후리는 재능이 있었다.

본인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안 되겠어. 회사로 돌아가야겠어.”

“...싫어할 텐데.”

“그럼 날 엿 먹이지 말았어야지.”


일라이자는 폰을 들었다.


“제이.”

“아니, 이게 누구신가? 백악관의 잔 다르크 아니신가.”

“언론이 멋대로 떠드는 것뿐이야.”

“대통령이 당신한테 옴짝달싹 못한다던데?”

“제이.”

“쏘리. 그래서 왜?”

“회사로 돌아가려고 해.”

“벌써?”

“문제가 생겼거든.”

“그쪽에 문제가 생겼다면... 결국 사람 때문이겠군.”

“...”

“인간관계라는 게 참 어려워. 쉽지 않아.”


정보조직의 최대이자 최고문제는 항상 사람이었다.


“그래서 취임 축하선물이라도 달라고?”

“엘리트요원양성프로그램을 시작할 거야.”

“아.”


지오는 CIA를 대상으로 언젠가 사기를 친 적이 있다. 기氣, 포스Force, 차크라चक 등 말도 안 되는 이능이 실재한다고 속였다.


“크게 오해한 거 같은데 배운다고 다 되면 그게 초능력이야?”

“알아. 큰 기대는 없어.”

“흠. 설마 프로그램이라고 만들어놓고 조직 내 말썽꾸러기들을 처박을 생각은 아니겠지?”

“...”


이 씹련이?


“일라이자.”

“대가는 지불할게.”

“국가정보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완전보장.”

“...딜.”

“Good.”


일라이자는 통화를 종료하곤 부하를 돌아봤다.


“다이앤을 엘에이로 보내.”

******




-다들 당신한테 바라는 게 많네요. J.

-인간관계의 기본은 자기들 이익이니까. 그래서 가족이 이상한 거야. 그냥... 잘해주고 싶거든.


가족은 신기하고 신비했다.

우린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자식을 선택할 수 있을까? 제국엔 온갖 돌연변이와 초능력자가 판쳤지만 불법적이고 편협하며 과도한 생체실험과 유전자 개량은 정부가 아니라 황제의 이름 아래 극형에 처했다.

그러나 건강한 삶과 생명연장을 향한 인간의 집착은 위대한 존재의 절대명령조차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들. 죽을 자리를 알면서도 돌진하는 용기를 가상하다고 칭찬해야 할까.

일그러진 인간의 추악한 욕망으로 탄생한 생명체를 누가 존중할까? 제국엔 노예제가 없지만 시민 사이엔 분명 계급이 존재했고 그들은 제일 아래 위치했다.

이건 아주 간단한 힘의 논리다.

출생과 출신을 따지는 건 중력의 저주를 벗어나 대우주시대에 접어든 제국에서조차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기승을 부렸다.

제국의 신新귀족들.

황제 아래 모든 인류가 평등하다는 제국헌장과 헌법에도 불구하고 선민사상으로 똘똘 뭉친 자칭 우등시민은 여러 분야에서 활개 쳤고 정부는 의외로 수수방관했다.

왜?

황제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기에?

천만의 말씀이다.

올씽아이

10현자의 눈

우주를 굽어보는 전지全知의 눈동자

썸 오브 올 피어스, 모든 공포와 두려움을 합한다면 도달할 악몽의 경지는 어쩌면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완전한 공허일 것이다.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그건 더는 없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내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고! 추적당하고 있습니다.


망막디스플레이에 지구의 3D모델이 떠오르더니 무수한 빨간선이 쭉쭉 그어졌다. 뭐야 이 엄청난 잠식 속도는?

상황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경고! 경고! 은폐 불가! 노출됨! 노출됨!


절대 당황할 것 같지 않던 G의 다급한 외침이 들린다.


-CIA?

-놉!


세계최강대국의 정보국이라도 G를 추적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설마 시스템이 다시 작동하는 건가?


-행성관리시스템?

-Absolutely not!

-대피절차를 시작해.

-...거부됨! 바이아트론 로직 감지됨! 디펜스 모드... 해체 중!


이유는 모르지만 지오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예감처럼, 방금 상상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경고! 경

-시끄럿!


연신 경고음을 울리며 날뛰던 G가 나가떨어졌다.

2.5등신보다 큰 3등신.

나풀거리는 하얀 드레스를 걸친 그건 꼭 만화 캐릭터 같은 대두였다.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지오를 돌아보자 유혹적인 눈웃음을 보낸다.

역시 이유는 모르지만 상대를 알고 있는 기분이다.

대두 캐릭터의 입술이 열린다.


-하이, 브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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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 디 오리진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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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지오 디 오리진 -86화-(완) +29 23.04.25 3,726 195 17쪽
85 지오 디 오리진 -85화- +18 23.04.24 2,937 144 30쪽
84 지오 디 오리진 -84화- +17 23.04.18 3,048 161 38쪽
» 지오 디 오리진 -83화- +44 23.04.15 3,638 189 44쪽
82 지오 디 오리진 -82화- +63 22.08.22 5,583 216 37쪽
81 지오 디 오리진 -81화- +28 22.08.16 4,280 249 32쪽
80 지오 디 오리진 -80화- +19 22.08.09 4,443 210 34쪽
79 지오 디 오리진 -79화- +21 22.08.01 4,774 231 35쪽
78 지오 디 오리진 -78화- +27 22.07.25 4,696 231 31쪽
77 지오 디 오리진 -77화- +22 22.07.19 5,226 211 51쪽
76 지오 디 오리진 -76화- +27 22.07.12 5,020 237 32쪽
75 지오 디 오리진 -75화- +23 22.07.04 4,437 194 19쪽
74 지오 디 오리진 -74화- +13 22.06.28 4,389 190 16쪽
73 지오 디 오리진 -73화- +16 22.06.27 4,317 198 23쪽
72 지오 디 오리진 -72화- +20 22.06.23 4,535 227 27쪽
71 지오 디 오리진 -71화- +13 22.06.21 4,401 185 20쪽
70 지오 디 오리진 -70화- +22 22.06.16 4,471 202 14쪽
69 지오 디 오리진 -69화- +16 22.06.14 4,504 174 25쪽
68 지오 디 오리진 -68화- +19 22.06.11 4,597 186 18쪽
67 지오 디 오리진 -67화- +12 22.06.10 4,522 187 21쪽
66 지오 디 오리진 -66화- +13 22.06.09 4,375 195 11쪽
65 지오 디 오리진 -65화- +10 22.06.08 4,723 198 31쪽
64 지오 디 오리진 -64화- +13 22.06.07 4,697 183 29쪽
63 지오 디 오리진 -63화- +12 22.06.06 4,687 189 18쪽
62 지오 디 오리진 -62화- +15 22.06.05 4,757 198 24쪽
61 지오 디 오리진 -61화- +23 22.06.04 4,685 205 23쪽
60 지오 디 오리진 -60화- +17 22.06.03 4,730 196 27쪽
59 지오 디 오리진 -59화- +18 22.06.02 4,441 207 12쪽
58 지오 디 오리진 -58화- +23 22.06.01 4,436 184 15쪽
57 지오 디 오리진 -57화- +25 22.05.31 4,701 189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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