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지오 디 오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0.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3.04.25 21:13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561,392
추천수 :
18,147
글자수 :
839,717

작성
22.07.04 18:19
조회
4,436
추천
194
글자
19쪽

지오 디 오리진 -75화-

DUMMY

“박성식의 죽음을 확인했습니다.”

“어떻게 죽었지?”

“이마에 딱 한 발이었습니다. 고통은... 없었을 겁니다.”


수하의 보고에 이상택은 관자놀이를 눌렀다.


‘뭘 놓친 걸까...’


건방진 녀석은 내 똥을 치우는 중이라고 으르렁거렸다.

국제파는 성조와 VG 그리고 이상택의 회사인 상원을 드러내지 않고 암흑가를 통제하려고 내세운 일종의 괴뢰군이었다. 박성식 등 국제파 핵심이 VG 출신이지만 높은 자리에 앉았던 간부는 아니었다.


‘관계를 부정하라고?’


왜?

어차피 몇몇을 빼고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크고 작은 이권을 두고 밑바닥에서 서로 물어뜯는 개싸움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됐으니까. 혀는 차면서도 손가락질은 뜸한 이유는 그 손가락을 물어뜯을 만큼 사나운 개기 때문이다.

눈 뒤집힌 개를 성토할 정도로 용감한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못 본 척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 일쑤다. 복지부동이 공무원만의 특징일까? 사회인이자 소시민인 대다수 국민은 자연스럽게 복지부동을 마스터했다.


“성식이에게 문제가 있었어?”

“몇몇 행적에 의문점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처음 듣는군.”

“확인 결과 큰 문제는 아니라 판단해 보고를 미뤘습니다. 제 실책입니다.”

“뭘 확인했는데?”

“자기와 비슷한 불행을 겪은 이들을 도왔습니다.”

“...”


안타까운 노릇이다.

가족을 잃는 고통을 감히 이해한다고 위로할 수 있을까? 자신은 상상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구칠 것 같다. 하지만, 동정은 동정으로 끝. 이상택이 모집한 병사는 하나같이 불행을 겪고 망가진 환자였다.

일부러 그런 사람만 모았다.

비열한 적을 상대하려면 우리도 비열해질 수밖에. 이상택은 미쳐버린 군인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살인기술을 극한으로 연마했던 자가 미쳐버린다? 조폭이 아니라 조폭 할아비라도 살려달라고 빌어야 할 것이다.


“회장님!”


다급히 달려온 다른 비서가 벽에 걸린 TV를 켰다. 평소 특유의 무표정으로 인기를 얻었던 앵커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뉴스 속보를 전했다.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현재 신한국 호텔에서 무장괴한들이 경찰과 대치 중입니다! 신한국그룹이 주관하는 문화예술의 밤 행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저명인사와 정부 고위급 관계자들이 인질로 잡힌.”


이상택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맙소사!”


안갯속을 헤매는 것처럼 캄캄하던 머릿속이 맑아졌다.

사고! 박성식! 신한국! 똥!

상관없었던 단어들이 하나의 공통점으로 이어진다.

박성식이 박성식으로 변신하기 전의 과거.

바로 안현민의 불행으로부터 시작된다.


“성조! 성조 연결해!”

******




“사, 살려! 악”

“닥쳐!”


구석에서 눈치껏 찌그러졌던 고경환은 괴한들이 총구를 들이밀자 작은 반항을 해봤지만 돌아온 건 발길질과 주먹질이었다. 온몸을 두들기는 고통을 피해 이리저리 바닥을 구르는 모습이 애처롭다.


“악악!”

“나, 난 잘못한 게 없어!”

“살려줘! 살려줘!”


파티장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끌려 나왔다.

눈물 콧물 흘리며 바닥을 구르는 이들은 고경환에겐 익숙한 얼굴이었다. 재벌과 준재벌 그리고 이 나라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고관의 자제들. 신한국그룹이 주최한 파티에 어중이떠중이가 참석할 리 없지만 끌려 나온 사람은 모두 고경환과 친분이 깊었다.


“조용!”


괴한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하회탈의 강한 외침에 흐느끼던 이들은 자기 입을 막았다. 장내는 금방 침묵이 내려앉았다.


“원하는 게 뭔가!”


이때다 싶어 고남성 부회장이 앞으로 나섰다.

파티를 주최한 호스트인 그에겐 싫든 좋든 오늘 벌어진 일에 책임이 있었다. 차후 언론과 대중의 반응을 고려하면 면피할 변명이 필요했으니 보는 눈이 많은 지금 어필해야 했다. 총구는 무섭지만 설마 대大신한국의 부회장인 자신을 함부로 쏘겠는가.

탕-

근데 진짜 쐈다.


“억!”

“부회장님!”


허벅지를 스친 총알에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지자 측근이 부랴부랴 상관을 보호하려고 둘러쌌다.


“또 나대고 싶은 사람?”


하회탈의 입 부분은 그대로 맨살이 드러났고 입꼬리는 위로 올라갔다. 광기가 엿보이는 비웃음. 상대는 미친놈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상기했다.


“똑바로 서!”


괴한들은 끌려 나온 이들을 좌우로 줄 세웠다.


“읽어!”


하회탈 한 명이 엉거주춤하게 선 첫 번째 이에게 종이를 건넸다.


“어?”

“읽으라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밀고 소리치자 종이를 든 사람은 더듬거리며 읽었다.


“나 손종현은 3년 전 강원도 속초 관광나이트에서... 악!”


마지막에 우물거리자 뒤에 있던 하회탈이 개머리판으로 등을 찍었다. 괴한들은 앞으로 널브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읽어!”

“제발, 으윽... 악악!”


신음으로 얼버무리는 상대를 가차 없이 짓밟았다.

퍽퍽-

사람을 다진 고기처럼 다뤘다.


“나와!”

“사, 살려주세요!”


근처에 있던 여자를 끌어내자 일행이 반항했지만 역시나 총구 앞에선 무력했다. 부들거리는 여자에게 종이를 건넸다.


“읽어.”

“네? 네. 어... 나 손종현은 3년 전 속초 관광나이트에서 만난 김유미 외 3명을 약물로 납치해 강간했다. 이후 속초 인근으로 그녀들을 끌고 다니며 윤간했다.”


여자는 두려움도 잊고 바닥에 널브러진 남자를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곁눈질했다.


“미성년자를 돈으로 샀으며 일부러 유부녀의 가정을 망가뜨렸다.”


악행을 줄줄이 읊자 믿을 수 없단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고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도 있었다. 고경환은 익히 아는 이야기였다. 왜냐면 만날 때마다 무용담처럼 떠들던 얘기니까.

따먹은 여자 자랑은 오늘 바꾼 자동차와 같은 것.

일종의 트로피? 업적?

하회탈 한 명이 손종현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더니 탈을 벗었다.


“나 기억하지? 손종현.”

“으으.”


손종현의 부어터진 눈두덩이가 놀라 경련했다.


“유미. 불쌍한 내 동생... 아빠 없단 싫은 소리 안 듣게 하려고 내가 업어 키웠어. 근데 네깟놈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망가뜨렸지.”

“나, 내가...”

“네 녀석이 무죄로 풀려난 날 유미는 자살했어. 엄마는 딸을 잃고 정신을 놓으셨지. 그리고... 오래지 않아 따라가셨어.”

“난...”

“사과하지 마. 아니, 살려달라고 빌지 마. 안 해.”


동시에 네 정의 총구가 손종현을 향했다.

김유미 외 3명, 총 4명의 복수자.

타타탕- 탕-

꿈틀거리던 손종현의 몸이 금방 잠잠해진다.


“읽어.”

“으아! 으악!”


손종현 옆에 있던 사람에게 종이를 건네자 놈은 발작적으로 거부했다. 그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본인들이 왜 끌려 나왔는지. 사형수?의 소소한 반항에 비웃음을 뱉은 하회탈은 근처 있던 다른 사람을 끌어냈다.


“읽어.”


새롭게 끌려 나오는 이는 꿀꺽 침을 삼키고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나 박정균은.”

“살려줘! 잘못했어!”


똑같은 일이 연이어 반복됐다.

죄목이 낱낱이 까발려진 이의 마지막은 총알구멍 난 몸뚱이로 바닥을 뒹굴었다. 학살의 현장! 하지만, 아무도 용기 있게 나서거나 말리지 못했다.

고경환은 손발이 덜덜 떨렸다.

무용담을 자랑했던 친구들이 하나씩 싸늘한 주검으로 변하자 주마등처럼 옛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내 과거는 어땠을까? 저기 죽어 나자빠진 놈과 비교해 조금도 모자라지 않은, 아니 더한 개새끼였다.

신한국그룹 부회장 고남성의 차남으로서 화려한 삶과 갑질은 일상이다. 마침내 그의 차례가 다가오자 저도 모르게 지렸다.


“얼씨구.”


본인의 복수를 마친 우두머리 하회탈은 고경환이 지리자 헛웃음을 흘렸다. 두 아들을 비명에 떠나보낸 이후 잠들지 못했는데 오늘부턴 숙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직 끝난 건 아니다.


‘형님이 못 마친 일을 마무리해야지.’


박성식, 아니 안현민은 비상호출을 보냈다. 혹시라도 꼬리가 밟혀 발각된 사람이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 그건 조심하란 경고이자 자기 복수를 부탁하는 절절한 마음이 담겼다.

나약했던 과거를 버리고 복수자로 새로 태어난 우리는 모두 ‘박성식’이 되었다.


“읽어.”

“그만! 그만!”


총알이 스친 허벅지를 치료받던 고남성은 아픈 다리를 붙든 채 비틀거리며 현장에 난입했다. 측근이 부회장을 만류했지만 총구가 무서워 적극적으로 나서진 못했다.


“애타는 부정이구먼. 근데 경고했을 텐데? 나대지 말라고.”


하회탈 우두머리는 총구를 빙글빙글 돌렸다. 쏠까?

고남성을 죽이면 안현민이 좋아할까? 모른다.


‘마음 약한 분이지. 우리 형님은.’


전국구 폭력조직 보스가 마음이 약하다니 웃긴 말이지만 그가 아는 안현민은 악당인 척할 뿐 진짜 악당은 될 수 없는 사람이다. 왜냐면 진짜 악당이었다면 다른 복수자를 끌어들이진 않았을 것이다.

내게 100억 원이 있고 배경이 돼줄 세력이 있다면 복수 따윈 잊고 현재를 즐겼을 테니까. 복수는 낭만이다. 그래서 더욱 안현민의 마지막 메시지가 마음이 아팠다.


‘결국 남 좋은 일만 하다 간 거요? 형님.’


호구는 끝까지 호구였다.

고경환을 죽이면 안현민의 복수는 완성된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놈들은 더 고통받아야 했다. 그것이 존경하던 형님이자 좋은 사람인 안현민에게 바치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끌어내.”


우두머리의 총구가 향하자 괴한들은 한 사내를 끌어냈다.

고경민

고경환의 형이자 고남성의 장남이었다.


“안 돼!”


발작을 일으킨 건 고남성의 아내 서현주였다.

그녀는 한 명도 아니고 두 아들 모두 위험해지자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물론 여자라고 봐줄 하회탈이 아니다. 개머리판은 남녀노소 자비가 없었다.


“악!”

“어머니! 윽!”


서현주가 나동그라지자 얌전히 끌려 나오던 고경민도 반항했고 대가는 즉각적이었다. 고경민은 코피를 줄줄 흘렸다.


“우애 좋은 집구석이군. 근데 남한테는 왜 그리 잔혹해?”


서로를 위하는 애틋한 가족애에 왜 구역질이 날까.


“...뭘 원하나?”


고남성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뭘 원하냐고? 흠. 안현민이란 이름은 알아?”

“...아네.”

“하긴 제 자식을 감옥에 보냈으니 모르진 않겠지.”

“안현민이 시켰나?”

“아니, 우린 모두 자발적으로 동참했어.”

“안현민은 어딨지? 그에게 무릎 꿇고 빌면 되나?”

“안타깝게도 그분은 오늘 못 왔어.”

“어디로 연락하면 되나?”

“못 본다니까. 다시는...”


순간 울컥했다. 잘나시고 대단하신 우리 신한국그룹 부회장님께서 이렇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모습을 형님이 직접 봤어야 했는데, 아쉽다.

고경민을 고경환 옆에 세웠다.


“둘 중 한 명만 살릴 수 있으면 누굴 살리겠어?”

“무슨 말도 안 되는! 경민이는 죄가 없잖은가!”


엇나간 차남과 달리 장남 고경민은 단 한 번도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적 없었다. 고남성의 부친인 신한국그룹 고일구 회장도 장손을 총애했다.


“과연 그럴까?”


하회탈의 총구가 고경민에게 향했다.


“죄를 고백하면 살려주지. 물론 아주 좆같은 죄여야 해.”

“...”

“생각이 잘 안 나? 이러면 생각이 날런가.”


탕-

돌아간 총구가 불을 뿜자 서현주가 팔을 잡고 쓰러졌다.


“악!”

“미친!”


고남성은 쓰러지는 아내를 붙잡고 같이 넘어졌다.


“고경민, 네가 감추고 싶은 죄는 뭐지?”

“...”


고경민은 심각한 표정으로 갈등했다.

상대는 뭔가 알고 있는 뉘앙스다.


“네 입으로 말 못 하겠다면 내가 말해줄까? 미국?”

“...혼외자가 있다.”

“그게 끝이 아니잖아?”

“...혼외자가 더 있다.”

“하하!”


하회탈은 가면을 탁! 치며 즐거워했다.

안현민이 고씨 집구석을 조사하며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는데 망나니 둘째와 달리 반듯한 첫째로 칭찬받던 고경민에게는 사실 유학 시절에 얻은 세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둘도 아니고 자그마치 셋이다.

재벌의 혼외자나 사생아 루머는 흔하지만 하나도 아니고 셋은 확실히 놀랍다. 다친 아내를 부축하던 고남성은 장남의 고백에 놀라 입을 벌렸고 서현주도 자랑스러운 첫째아들의 커밍아웃에 고통도 잊은 채 경악했다.


“더! 더 말해봐!”

“...”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나? 그럼 내가 말해주지! 고경민. 넌 한국에서 이 사실을 알까 두려워졌어. 즐기고 싸지를 때는 좋았는데 막상 책임지려니 무서워진 거야. 그래서 모두 없던 일로 만들고 싶어졌지.”


안현민에게 이 얘길 들었을 때 하회탈은 큰 충격을 받았다. 재벌이 서민과는 다른 세상을 산다는 건 어렴풋이 느끼긴 했는데 이 정도로 상식 밖일지는 몰랐다. 영화와 드라마가 표현하는 재벌의 막장은 도리어 축소되고 희석됐으며 미화됐다.


“넌 킬러를 고용해 애들과 걔들 엄마를 죽이려고 했어.”

“헛소리!”


고남성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하회탈을 노려봤다.


“헛소리라고?”

“내 아들이 그럴 리 없다!”

“당신 둘째는 백주에 교통사고를 내서 두 명을 죽였잖아?”

“그건!”

“당신 첫째는 둘째보다 똑똑해서 안 걸린 것뿐이야. 결국 똑같은 개새끼지.”

“믿을 수 없어!”

“믿지 마. 그냥 선택해. 둘 중 누굴 살릴지.”


하회탈의 총구가 다시 고경환과 고경민 형제에게 돌아갔다.

고남성은 딜레마에 빠졌다.


‘미친!’


한낱 테러리스트의 말 따위를 얼마큼 신뢰할까.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도 한번 싹튼 의심은 고남성의 영혼을 갉아먹었다. 고남성 본인도 젊은 시절 일본 유학 당시 긴자의 고급요정과 오사카의 유명 환락가를 매일같이 들락거렸으니까.

고경환의 여성편력 유전자가 누구에게서 비롯됐겠는가. 그래도 자기 여자와 자식에게 킬러를 보내는 건 상상할 수 없는 미친 짓이다. 고작 루머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다.


‘듣는 귀가 너무 많아.’


이제 속이 타는 건 자식의 생사가 아닌 오늘 이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 고씨집안의 치부였다. 알고 봤더니 장남은 차남보다 더한 망나니였다? 혼사 얘기가 오가는 한성은 차치하고 다른 재벌에게도 경원당할지 모르겠다.


“똑딱, 똑딱.”


하회탈은 장난스레 형제를 겨눈 총구를 좌우로 번갈아 흔들었다.

아버지 고남성의 가슴은 둘 다 살려야 한다고 외치지만 경영자의 냉정한 이성은 첫째가 아니라 둘째를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고경민의 루머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까발려졌으니 진실은 상관없다.


‘둘째는... 수습할 수 있어.’


고경환이 일으킨 교통사고는 이미 법적으로 끝난 일이다.

재벌치고는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이력은 잘 만지면 대중의 동정을 끌어낼 수 있고 실제로 현재 고경환의 평판은 괜찮다. 하지만, 잘나가던 고경민은 이제 추락할 일만 남았다. 말했듯이 진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남성의 번뜩이는 촉이 대답을 망설였다.


‘이 미친놈들은...’


답이야 어쨌든 제멋대로 굴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넌... 애초에 내 답은 들을 생각이 없군?”


하회탈에서 보이는 유일한 입 부분이 히죽 비웃었다.


“맞아.”

“날... 가지고 논 건가? 감히!”

“감히? 하하.”


하회탈은 파티장에 붙잡힌 다른 이들을 둘러봤다.


“내일부터 사람들은 고씨놈들을 조롱하겠지. 여자와 아이를 죽이는 개새끼라고. 첫째도 둘째도 똑같은 쓰레기야. 굳이 우열을 나누자면 역시 형만 한 아우 없다는 거?”


그는 먼저 간 안현민을 위해 복수와 관련 없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는 조직의 대의를 어길 계획이다. 고경환뿐만 아닌 고경민, 고남성, 서현주까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고씨 집구석을 싹 지옥으로 보내버리겠다.

하회탈은 고남성에게 총구를 겨눴다.


“장유유서. 아빠부터 시작할까?”


계획 밖의 행동에 하회탈 내부에서도 작은 소란이 일었다.


-무슨?

-이건 예정에 없던 일입니다!

-대장을 말려야지 않을까?

-큰형님이 계셨어야 해!


명백한 폭주다.

하지만,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왜냐면 어차피 그들은 오늘 이 자리에서 남은 삶을 끝내길 결의했기 때문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굳게 마음먹었지만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선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안현민이란 절대적 리더를 잃은 조직에서 새 우두머리를 거역할 담력을 가진 조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이런! 늦어버렸네.”


뒤통수에 닿은 차가운 느낌에 하회탈의 움직임이 멈췄다.

괴한들도 인질들도 다들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갑자기 허공에서 뚝 떨어진 듯이 나타난 자.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마술쇼라고 착각했으리라.


“움직이지 마. 대가리 뚫린다.”


지오는 주변을 둘러봤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품은 사람들. 이래서 히어로 무비가 잘 팔리나보다. 빠르게 온다고 왔는데 현장은 이미 피바다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니? G.

-삐빅! 저.는.8.세.대.뉴.로.다.이.어

-코스프레 하지 마! 개새꺄!


이제 와 평범한 AI인 척하다니!

괴한들의 총구가 지오를 향했다. 소총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 수십을 상대로 달랑 권총 한 자루 든 그가 일순 불리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임페리얼 나이트-프레임이라고 하면 무슨 판금갑옷을 입은 중세기사나 유명한 애니메이션 건담을 떠올릴 수도 있는데 그런 건 없다.

아! 아닌가?

부피와 질량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으니 상상력이 뛰어난 착용자는 판금갑옷과 건담을 만들 수도 있다. 이래서 시뮬레이션 감응도가 중요했다. 뛰어난 시뮬레이션 라이더는 나이트-프레임이 요구하는 영능을 충족할 수 있으니까.

Spiritual-Soul

제국일신교의 썩을 사제놈들은 그걸 황제를 향한 신실한 믿음의 산물로 선전했다. 하지만, 글쎄? 난 우리 폐하를 향한 절실한 믿음이 없음에도 높은 감응도를 기록했다.

그냥 운빨 아님?


-G.

-세퍼레이션! 올 타겟팅!


수많은 빨간 점이 괴한들의 머리와 가슴에 반짝이자 서로를 보며 허둥거렸다. 영화와 드라마를 봤으면 이게 뭔지 모를 수가 없다.

레이저 조준점!

공간을 장악한 프라이머리 웨폰 컨트롤러!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는 순간 음속을 돌파한 충격이 상대를 찢어발길 것이다. 파티장 전체가 내가 장악한 내 전장이다.

얼굴을 가린 전술마스크.

눈이 보이지 않는 검은색 전술보안경.

새카만 피복은 프로페셔널한 요원의 표본.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 오징어, 어휴! 시발. 많이도 쐈네. 사람이 과녁판이여. 뭐여? 아주 걸레짝을 만들어 놨어.”


사람들의 눈빛에 잠깐 피어난 희망이 빠르게 꺼지는 것 같은 기분은 뭘까.


-...

-?

-멘트가 많이 저렴하네요.


푸헹! 오글거리는 것보단 낫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지오 디 오리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6 지오 디 오리진 -86화-(완) +29 23.04.25 3,724 195 17쪽
85 지오 디 오리진 -85화- +18 23.04.24 2,937 144 30쪽
84 지오 디 오리진 -84화- +17 23.04.18 3,048 161 38쪽
83 지오 디 오리진 -83화- +44 23.04.15 3,637 189 44쪽
82 지오 디 오리진 -82화- +63 22.08.22 5,582 216 37쪽
81 지오 디 오리진 -81화- +28 22.08.16 4,280 249 32쪽
80 지오 디 오리진 -80화- +19 22.08.09 4,443 210 34쪽
79 지오 디 오리진 -79화- +21 22.08.01 4,774 231 35쪽
78 지오 디 오리진 -78화- +27 22.07.25 4,696 231 31쪽
77 지오 디 오리진 -77화- +22 22.07.19 5,226 211 51쪽
76 지오 디 오리진 -76화- +27 22.07.12 5,019 237 32쪽
» 지오 디 오리진 -75화- +23 22.07.04 4,437 194 19쪽
74 지오 디 오리진 -74화- +13 22.06.28 4,389 190 16쪽
73 지오 디 오리진 -73화- +16 22.06.27 4,317 198 23쪽
72 지오 디 오리진 -72화- +20 22.06.23 4,534 227 27쪽
71 지오 디 오리진 -71화- +13 22.06.21 4,400 185 20쪽
70 지오 디 오리진 -70화- +22 22.06.16 4,470 202 14쪽
69 지오 디 오리진 -69화- +16 22.06.14 4,503 174 25쪽
68 지오 디 오리진 -68화- +19 22.06.11 4,597 186 18쪽
67 지오 디 오리진 -67화- +12 22.06.10 4,522 187 21쪽
66 지오 디 오리진 -66화- +13 22.06.09 4,375 195 11쪽
65 지오 디 오리진 -65화- +10 22.06.08 4,723 198 31쪽
64 지오 디 오리진 -64화- +13 22.06.07 4,697 183 29쪽
63 지오 디 오리진 -63화- +12 22.06.06 4,687 189 18쪽
62 지오 디 오리진 -62화- +15 22.06.05 4,757 198 24쪽
61 지오 디 오리진 -61화- +23 22.06.04 4,685 205 23쪽
60 지오 디 오리진 -60화- +17 22.06.03 4,730 196 27쪽
59 지오 디 오리진 -59화- +18 22.06.02 4,441 207 12쪽
58 지오 디 오리진 -58화- +23 22.06.01 4,436 184 15쪽
57 지오 디 오리진 -57화- +25 22.05.31 4,701 189 2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