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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지오 디 오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0.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3.04.2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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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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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7쪽

지오 디 오리진 -60화-

DUMMY

백만장자의 사랑이야기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백만장자와 삼천궁...은 아니구나. 어쨌든 부자의 화려한 사생활은 좋은 이슈였고 방송만 할 수 있다면 높은 시청률을 보장했다. 이 백만장자 시리즈는 미국에서 크게 히트했었다.

신데렐라를 꿈꾸는 아름다운 여자들의 열정적인 경쟁을 바라보는 시청자는 크나큰 대리만족을 얻었다. 서민은 결코 가질 수 없는 한정판 명품이라든가 1박에 수천 달러가 넘는 럭셔리 휴양지, 다이아몬드가 알알이 박힌 장인의 주얼리 등 대중의 판타지를 충족시켰다.

물론 조작이다 뭐다 말이 많았다.

가짜 백만장자의 양심고백도 있었지만 그 자체로 엄청난 이슈를 몰고 왔으니 제작자 입장에는 남는 장사였다. 대중의 허영을 자극하는 멋진 연출 뒤에는 그 제품을 협찬한 기업의 정교하고 세밀한 마케팅 전략이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애초에 백만장자 시리즈를 만든 목적은 효과적인 명품 광고였다. 하지만, 진짜 부자가 이런 싸구려 쇼에 나올까? 그러니 조작하고 은폐하다 발각되는 병크를 터트렸다.


-근데 우리 주인공놈은 그 나올 리 없는 진짜 부자란 말이지. 목표가 뭐야?

-서민 친화적인 브랜딩이죠.

-경일 때문에?

-경일 본가는 무너지기 직전이지만 경일과 관련된 일로 먹고살던 한국인은 많고 앞으로도 계속 그 일에 종사할 겁니다.


직장인의 비애는 누가 내 밥그릇을 걷어차도 쉽게 다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10년, 20년씩 일해온 업무를 하루아침에 바꿀 순 없다. 그럴 능력이 있었으면 진즉 창업했겠지.

도둑놈이 계속 도둑질을 하듯 직장이 한 번 정해진 순간 천직天職이 되는 셈. 뭐 젊을 때야 여러 가지를 경험해도 좋지만 서른이 넘으면 업종이 바뀌는 이직은 쉽지 않았다.

사람의 성격도 일도 관성이 있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듯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은 잘 바뀌지 않았다. 그 모든 인고와 배움의 시간이 곧 경력이 되는 것이다. 주인공과 경일 사이에 있었던 싸움의 여파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직장과 일을 잃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지는 않았다.

그러니 팬 이상으로 안티도 늘어났으리라.

아니, 딱히 주인공이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잘나가는 그를 향한 맹목적인 시기와 질투가 판쳤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데 재벌 하나를 꿀꺽했으니 얼마나 부럽겠는가.

거기에 예쁜 여자들이랑 놀아나면 단순히 부럽다는 시선만 있진 않을 것이다. 재수 없으면 국민밉상으로 찍힐지도 모른다.


-도리어 역효과 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출연자는 한국인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했죠. 국뽕에 환장하는 한국인에겐 그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의 뭔가가 세계에서 유행하다! 우효! 한국최고! 그러니 한국인인 나도 최고! 내셔널리즘이 유전자에 각인된 한국인이니만큼 주인공의 능력은 어느새 한국남자의 표준이 됐다.


-에이! 설마 진짜 그렇게까지야... 어?

-...


다시 말하지만 주인공의 모든 스펙은 탈아시아였다. 피부색만 다를 뿐 잘난 엘리트양놈들 사이에서도 절대 안 꿀렸다. 그 사기적인 스펙을 들고 고작 버라이어티쇼에 나왔으니 언론도 대중도 눈이 돌아갔다.

★대한민국1등재벌! 성조황태자의 예능나들이!

☆고모는 재벌 총수! 아빠는 월스트리트의 공룡!

★억만장자, 아니 조만장자가 간택할 신데렐라는?

☆전 세계 미녀 한국행! 최후의 승자는 어느 나라?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쏟아졌다.

테러당한 파리로 골머리를 앓는 유럽과 달리 아시아를 넘어 북미에서도 주인공의 소개팅에 열광하는 중이다. 그동안 조작된 백만장자만 봤는데 진짜 부자가 등장했으니 일반인 출연자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도 난다 긴다는 여배우도 관심을 보였다.

주인공의 인지도와 영향력은 미국에서 더 크니까.

뭐 주인공놈은 주인공놈이고 나는 나대로 바빴다.


“한중겸 의원의 외동딸 한채원과 오석현 성조물산 부사장의 맞선이 성사됐습니다. 부회장님과 한중겸 의원이 비밀리 회동한 걸 확인됐습니다.”


홍준영의 말에 지오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뭐지 꿩 대신 닭인가? 주인공 대신 오석현과 인연이 닿았다고? 히로인 후보였던 한채원이 오석현과 이어진다? 거물과 거물의 2세끼리 이어지는 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이 역시 기득권의 완성을 위한 혼맥 비즈니스다.


“본가는?”

“따로 받은 지침은 없습니다만... 영천그룹에서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영천그룹은 한중겸에게 꽤 오랫동안 공을 들였었다. 그리고 오석현의 동생 오현우가 사고를 쳤는데 한중겸을 폭행한 것이다. 맞다. 현직 국회의원을 때렸다.


-계산된 행동 같은데?

-맞습니다. 계산된 행동입니다. 오현우는 형만 총애하는 부친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업계 지지는 덤이죠.

-그러니까 형이 유력정치인의 딸과 이어지는 것도 막고 한중겸을 패서 뿔난 건설족에게 지지를 얻겠다?


미친놈인가?


“대응은?”

“대관 2팀과 3팀이 협력 중입니다. 본가에서도 따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피바람이 불겠네.”


현직 국회의원이 매를 맞았으니 본가가 움직여야 했다. 아들놈이 친 사고에 오장군의 체면은 말이 아닐 것이다. 오현우의 도박이 어디까지 통할까. 돈과 권력 앞에선 피붙이도 남보다 못했다.

지오는 폰을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성 실장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볼까요?”

“지금 출발하죠.”


누가 뭐래도 오채령은 성조 총수고 성준일은 그녀의 오른팔이다. 성조 본사가 위치한 강남대로는 성조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재벌은 다 한 다리씩 걸치고 있었다.

본사에 도착하자 성준일이 마중 나왔고 곧장 회장실 한편에 붙은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명예회장님 혼외잡니까? 오 이사.”


와! 우리 성 실장님 노빠꾸 상남자시네.


“그럴 리가요.”

“흠. 그럼 오 본부장의 대역입니까?”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생겨 먹어야 대역을 맡기겠죠”


성준일은 알 수 없다는 눈빛을 던져왔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지오 때문에(정확히는 전미란이 그를 이사로 지목한 이후) 성조그룹 내 파워밸런스에 빨간불이 켜졌다.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누구 편도 아니라는 겁니다.”

“누구 편도 아니다?”

“독립계약자, 프리랜서? 받은 만큼만 일하고 입도 무거운 편이죠. 그러니 오채령 회장님과도 좋은 비즈니스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상대의 눈빛이 사나워졌지만 살기는 전장에선 흔했다.

똑똑-

회의실을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비서 한 명이 열린 문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실장님.”


성준일은 마지못한 태도로 지오를 회장실로 안내했다.

오채령은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20대의 싱그러움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우아함과 농염함 사이의 뭔가다.


“앉지.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저도 회장님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서시와 왕소군 뺨 싸대기를 갈길 엄청난 미인이라고 난리였죠.”

“하하. 아부도 잘하네.”


오채령은 호탕하게 웃었다. 아름답다는 칭찬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잘생기고 예쁘다는 칭찬이 질린다? 그건 기만자의 개소리다. 여자는 평생 늙고 싶지 않았다.


“부회장이랑 한 의원 때문이지?”

“한중겸 의원은 문제가 안 됩니다. 진짜 문제는 부회장이죠. 회장님도 알고 계실 겁니다. 부회장은 욕심이 많은 분입니다.”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명예회장님께서 건재하셨을 땐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후계를 거론한 순간 부회장 안의 작은 아이가 속삭였겠죠. 그리고 그 욕망은 어느새 억누를 수 없을 만큼 크게 자랐습니다.”

“계열분리는 불가능해.”

“창업을 돕기로 약속한 건 여사님께 들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시죠.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이면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한중겸이 대통령이 될 거란 뜻이야?”

“부회장은 그럴 힘이 있습니다.”


정치권에 성조장학생만 있는 건 아니지만 절반 이상은 성조를 단단한 동아줄로 여겼다. 여·야를 떠나 성조 동기동창회가 난립할 정도로 이 나라 전반은 성조라는 신앙에 잠식당했다.

오천명 명예회장은 정치를 혐오했다.

대놓고 표출하진 않았지만 내가 그렇게 설정했다.

그래서 정계를 향한 성조의 기조가 불가근불가원인 셈이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 그런데 오장군은 그룹 승계라는 혼란한 상황을 이용했다.

가신家臣 따위가 지엄한 가주家主의 명령을 무시한 것.


“작은아버지... 부회장을 내칠 순 없어.”

“경고는 필요합니다. 아니면 계속 선을 넘을 겁니다.”

“오 이사가 경고하겠다고?”

“전 아닙니다. 대신해줄 곳이 있죠.”

“누가?”

“영천 주 회장입니다.”


영천그룹은 범성조였다. 그리고 주기영 회장은 오장군 부회장에게 악감정이 많았다.

지오는 파일철을 건넸다.

파일을 한 장씩 넘기던 오채령은 연신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성준일에게 다 읽은 파일철을 넘겼다. 그의 반응은 더욱더 극적이었다.


“이게... 사실입니까?”

“백 퍼센트.”

“주 회장은 굉장한 다혈질입니다. 협박당하고 가만있을 양반이 아닙니다.”


성준일의 손에서 다시 탁자로 올라온 파일철은 주기영 회장의 사생아 김준강에 대한 정보를 담았다. 이건 죽은 브라이스가 지오에게 의뢰했던 일인데 클럽 메릴랜드가 최치수에게 넘어가기 전에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파기됐다.

배우 김준강은 다시 만난 소꿉친구와 불륜을 저질렀다.

세간에 알려지면 체면은 구길지 몰라도 딱히 법적으로 문제 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체면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주 회장에겐 큰 문제가 맞다.


“협박은 계획에 없습니다.”


둘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뜨는 착시가 보였다.

지오는 빙그레 웃었다.


“주둥이를 놀리지 못해 환장한 노인네가 한 명 있거든요.”

******




“최치수?”

“명동에 기반을 둔 정보상입니다.”


성조 본사를 떠나 성조 본가에 도착한 지오는 전미란 앞에서 똑같은 얘길 떠들어야 했다.


“애란아?”

“최치수는 정보계통으로 잔뼈 굵은 인물입니다.”


전미란의 질문에 답한 이는 한쪽에 우두커니 선 중년 비서였다.

고애란

성공한 인물에겐 유능한 비서는 필수였다. 주인공에겐 이택기가 있고 오채령에겐 성준일이 있다면 전미란에겐 고락을 함께한 고애란이 있었다.


“이름을 들어본 거 같은데... 가물가물해.”

“군부정권의 망령입니다. 젊었을 땐 독재자에게 충성했고 나이 들어선 돈을 좇는 속물이죠. 사납고 거친 늙은입니다.”

“사냥개는 모름지기 사나워야 쓸모가 있어.”


사납게 짖지 않는 사냥개는 쓸모가 없다.


“놈을 이용해 기영이를 움직이겠다고?”

“네.”

“영천은 남이 아니야.”

“반대하시면 손 떼겠습니다.”


전미란은 고민되는 표정이다. 무엇보다 혈족을 우선하는 그녀의 성격상 방계라도 가족은 가족이다.


“크게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전미란은 결국 허락했다.

지오가 떠나자 고애란은 전미란과 마주 앉았다.


“기영이가 넘어올까? 애란아.”

“주 회장은 체면에 죽고 체면에 사는 양반입니다. 이번엔 맞선을 가로챈 부회장에게 정면으로 대거리했죠. 한국에서 누가 감히 성조 부회장에게 삿대질할 수 있겠습니까. 영천 주 회장쯤 되는 인물이 아니면 어렵습니다.”

“서방님도 너무했지. 기영이가 한중겸에게 공을 들인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들이댔어. 염치가 없는 건지. 쯧쯧.”


전미란에게 주기영은 예전부터 귀여워하던 사돈이고 오장군은 음습한 시동생이었다. 사람을 잘 보는 그녀의 눈엔 일찍부터 오장군의 욕망이 보였다.

형제의 정을 중시하는 바깥양반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오 이사의 말마따나 따끔한 경고가 필요합니다.”

“그건 그렇고, 용케 이런 걸 물어와.”


전미란은 지오가 놓고 간 파일철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비서실은 몰랐대?”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고... 이런 흠결이 있을 줄이야.”


승부사 혹은 대쪽 같은 이미지로 유명한 주기영에게 혼외자가 있다? 세상이 놀랄 일이고 폭로되면 주기영 개인에게는 도덕적 자질 논란이 일 것이다.

그 다혈질이라면 화병으로 죽을지도 몰랐다.


“파리도 난리였다며?”

“이슬람 테러범이 도시 한복판에서 총질했답니다.”

“직원들은 괜찮고?”

“괜찮답니다. 오 이사가 챙겼다더군요.”

“마음에 들어. 미혼이면 더 마음에 들었을 텐데... 우리 하령이랑 잘 어울리지 않아?”

“혼사를 마음대로 정하시면 아가씨가 화낼 겁니다.”


오하령은 오채령 회장이 비밀리 낳은 딸이다.

태생이 비밀이다 보니 보통의 혼사는 어려웠다.


“계집 팔자는 서방 하기 나름이야.”


전미란의 꼰대질에 고애란은 고개를 저었다.

진심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반항아를 좋아했다. 그래서 자신을 어려워하지도 않고 하고픈 말은 다 하는 지오를 높게 샀다.


‘저런 놈은 뭐를 맡겨도 잘해.’


입만 살아 나불대는 소인배는 아니다.


“잘 살펴줘.”

“네. 잘 살펴서 돕겠습니다.”


주어가 빠진 말이지만 고애란은 찰떡처럼 알아들었다.

밖으로 나온 고애란은 비서들을 호출했다.


“당분간 대상기획에 사람을 더 붙이세요.”

“알겠습니다.”

“천 실장은 나 좀 보죠.”


고애란은 천나래와 독대했다.


“부회장 쪽 작업은 중지해.”

“네?”

“오 이사가 맡기로 했어.”

“아.”


천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수긍하는 그녀를 고애란은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넌 그가 잘할 거라고 봐?”

“이상한 사람이지만 유능합니다. 그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분석하면 두려울 정도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습니다.”


승부욕이 강할 뿐만 아니라 남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천나래의 긍정적인 평가에 고애란은 피식 웃었다.


“반했니?”

“...유부남입니다.”

“농담이야. 농담.”


고애란은 평생을 전미란을 모셨고 오래지 않아 은퇴가 예정됐다. 성조의 장손이 누구와 이어질지는 아직 모르지만 천나래는 이 거대한 가문의 다음 안주인을 위해 준비된 인재다.


“앞으로 오래 볼 사이니까 다음부턴 니가 응대해.”

“알겠습니다.”

******




-최치수를 작업할까요?

-누가 들으면 불쌍한 노인네를 괴롭힌다고 오해하겠어.


전미란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빨리 처리하고 퇴근하고 싶다.


-명동으로 통하는 모든 정보 파이프라인을 통제합니다.


G가 하려는 작업은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했다.

심장마비로 말미암은 익사를 유도하거나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은 G의 인간조종은 예술의 경지에 다다랐다. 사고를 당하는 사람들은 그저 불운한 운명을 탓할 뿐 누군가의 악의적 장난질임은 깨닫지 못했다.

연쇄살인마 AI의 탄생.

훗날 지오는 인류를 멸망시킨 대마왕으로 기록될지도.


-김준강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최치수가 영천에 접근 중입니다.


오장군이 김준강을 이용해 주기영을 엿 먹이려고 한다는 아주 악의적인 정보공작이 실행됐다. 한채원과 오현우의 맞선사태와 맞물려 오장군을 향한 주기영의 분노를 키울 계획이다.

최치수는 정보의 신빙성을 높이는 증인 역할이다.


-근데 왜 사이가 나쁜 거야?

-오 부회장의 아내는 원래 주기영 회장과 먼저 약혼했습니다. 파혼 후 부회장과 결혼했죠.

-...


사이 나쁠 만했다.


-성조금융그룹에 더미를 심는 중입니다.


성조금융그룹 서버와 부회장의 개인PC 등에 주기영에 대한 사찰을 지시했다는 흔적을 문서로 남겼다.


-주기영이 오 부회장 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왜?

-분위기로 봐선 물리적 충돌이 예상됩니다.

-진짜?


와! 이거 진짜 팝콘각 지대론데?


-풀 스크린!

-스캔 중... 화질과 음질이 다소 떨어질 수 있습니다.


오장군이 자기 치부를 캐고 다닌다는 최치수의 정보를 확신한 주기영은 곧장 성조금융그룹 사옥으로 쳐들어갔다. 정보를 얻자마자 바로 당사자와 협상한 최치수도 대단하지만 바로 방망이를 들고 쳐들어간 주기영의 박력은 대단하단 표현으론 부족했다.


-강대성 회장과 함께 빠따회장님으로 유명하죠.


대성그룹 강대성 회장이면 몇 년 전 낙도 연수원 경비로 근무할 당시 본 적 있다.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국회의원이랑 진짜 국K-1을 찍어 실형을 산 폭력전과자기도 했다.

진짜 상남자다.

이번만큼은 세계창조알고리즘에 따봉을 주겠다.


-주기영과 오장군이 대면합니다. 어?

-오오! 원! 투! 스트레이트!


만나자마자 오 부회장의 면상에 원투가 작렬한다.

깜짝 놀라 만류하는 비서들을 제친 주기영이 다시 스트레이트를 꽂았다. 와! 혼자 보기 존나 아깝다. 스포츠채널에 틀어주면 시청률 50%는 그냥 돌파할 것 같은 명장면이다.


-소개팅 같은 거보다 링 위에서 싸우면 어떨까?

-재벌끼리 말입니까?

-어때? 시청률 폭발할 거 같지 않아?

-그걸 기획한 당신 머리통도 폭발하겠죠. J.

-칫!


부러워서 이러는 건 아니다... 진짜다!

폭행당한 오장군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건 때린 놈도 맞은 놈도 법정으로 끌고 갈 맘은 없다는 뜻이다. 대중이 알면 얼마나 쪽팔린가. 중재를 위해 결국 전미란을 찾을 수밖에 없으리라. 웃참하는 그녀의 표정이 상상이 된다.

지오는 뒤늦게 최치수를 찾았다.

뜬금없는 방문에 상대방의 긴장이 여실히 느껴진다.


“메릴랜드, 아니 이젠 클럽 로열인가요? 잘 굴러갑니까?”

“괜찮게 굴러가네만...”


최치수는 떨떠름한 태도로 답했다. 그는 브라이스의 반쪽짜리 장부를 이용해 괜찮은 수익을 내는 중이다. 외국인 손님은 반토막이 났지만 다른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한국에 거주 중인 외국인이 300만을 넘어 400만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외국인과 범죄는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특히 외국인 접대부를 동원한 매춘산업은 나날이 확장일로였다.

최치수는 생각했다.

말 많고 탈 많은 내국인보다 발각돼도 추방 등 뒤처리가 쉬운 외국인을 매춘부로 대량 고용하는 건 어떨까? 외국인 매춘부를 고용하는 건 딱히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최치수는 자기를 대단한 사업가로 착각하지만 그냥 덩치 큰 포주 나부랭이일 뿐이다.


“본인 사업체를 어떻게 굴리던 나랑 상관없죠. 다만 약은 안 됩니다. 파트너십을 체결한 우리까지 싸잡아 욕먹을 테니.”

“약은 안 해.”

“그래요? 난 깡패와 양아치는 안 믿습니다.”


왜냐면 절박하고 비겁한 인생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늘어놓는다. 입만 열면 구라를 친다.


“...확인해보지.”

“또 하나.”


지오는 검지를 들어 까딱거렸다.


“인신매매도 안 됩니다.”

“그 정도로 밑바닥은 아닐세.”


글쎄?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외국인 매춘부 수요가 늘수록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 마음은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달랐다.


“알아서 하시고... 알죠?”

“뭘 알아?”

“에이, 알면서.”


최치수의 눈알이 데룩데룩 굴러다녔다.


“김준강.”

“음.”

“과욕은 화를 부릅니다.”

“...”

“영천은 범성조고 윗분은 외부인이 나대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최치수가 더 신중했다면 오늘 바로 사달이 나진 않았다. 그러나 인간조종에 통달한 G는 저 노회한 구렁이조차 안달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렸다.


-신중한 최치수가 왜 이리 쉽게 자길 드러냈지?

-신중하니까 덫을 잘 깔아야죠. 그 혼자만 김준강의 정보를 손에 쥐었다면 여러 번 검토하느라 시간을 들였겠지만 오장군이란 변수가 노인네를 조급하게 만든 겁니다.


오장군이 김준강을 이용해 주기영을 친 다음이라면 그 정보는 쓸모가 없어진다. 하지만, 오장군은 김준강이 누군지도 몰랐고 애초에 주기영을 공격할 계획도 없었다.


-이 공작의 실체는 오랜 옛날부터 지속된 오장군과 주기영의 불화를 증폭한 겁니다. 그리고 기회주의자 한 명이 미끼가 된 거죠. 최치수의 섣부른 욕심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이게 맞아? 김준강을 아무리 비싼 값에 팔아도 성조 부회장과 적이 되는 위험을 너무 쉽게 선택했어.


일개 정보상 따위가 대大성조의 부회장과 싸움이 될까?


-최치수의 빠른 계산엔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의 권력이 커질수록 부회장과 부딪칠 거란 판단이 섰겠죠. 뭐 충성심은 아닐 겁니다. 미래의 성조 회장님에게 베팅한 거죠.

-얼마나 오래 살려고 미래까지 챙기나.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은 게 사람 아니겠습니까.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

G는 그 똑똑하단 것들을 가지고 놀았다. 재벌이 거느린 씽크탱크와 영향력 있는 비밀을 주무르는 정보상을 제 마음대로 부렸다. 아마 그들은 본인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했다 굳게 믿을 것이다.


-최치수에겐 분명 경고가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브라이스가 죽은 후 그를 견제할 세력이 없죠.

-갑자기 휴머니즘에 눈뜬 건 아닐 테고...

-앞으로 손발이 되어줄 양아치가 필요합니다. 기를 죽여 얌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갑자기 눈앞의 노인네가 불쌍해졌다.


“좀 적당히 나대세요. 최 회장님. 눈치껏 알아서, 센스 있게! 오케이?”

“...”

“믿고 가겠습니다.”


지오가 나간 뒤 회장실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척했다. 개빡쳤나보다. 하긴 젊은 놈이 와서 씨부리는데 뭐라 반박할 수도 없으니 울화통이 터질 만했다.

이래서 다들 힘 있는 자리에 앉으려고 노력했다.


“으그그!”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고 허리를 폈다. 오늘 하루도 참 보람찬 일과를 마쳤다. 직장인에게 퇴근은 항상 옳다. 종일 기분 나쁘다가도 퇴근이 다가오면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지오는 아내에게 전화했다.


“뭐해?”

“경복궁 투어 중이야. 자기는?”

“난 지금 퇴근. 경복궁으로 갈까?”

“어딘데?”

“명동.”

“가깝네. 차 가지고 왔어?”

“필요해?”

“아니, 경호원이 많아서 불편해. 좀 어떻게 안 돼?”

“참아줘. 에밀리가 꽤 중요한 인사거든.”

“알았어. 이따 봐. 사랑해.”

“나도 사랑해.”


솔로일 땐 절대 하지 못할 낯간지러운 표현이다.


-...많이 변했군요. J.

-너보다 많이 변했겠니.


양자컴퓨터를 손에 넣은 G의 변화는 더욱더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어쩌면 가까운 시일에 인간과 다름없는 완벽한 안드로이드를 보게 될지도 몰랐다.


-프랑스군이 이라크 반군 점령지를 폭격했습니다.

-보복?

-네. 발표는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했습니다.


파리는 여전히 애도와 추도의 물결로 가득했다.

이제야 정확한 집계가 나왔다.

사상자 1271명.

부상자를 뺀 사망자는 310명.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테러였다. 파리를 공격한 테러리스트 31명은 현장에서 전원 사살됐다. 파리 공격 직후 이라크 반군의 테러 성명이 발표됐고 프랑스군은 즉시 보복에 들어갔다.


-프랑스 정부는 발두르 산업에 엄청난 세금을 물릴 계획입니다.

-걸렸구먼.

-또 맥스콤 역시 징벌적 배상금이 부과될 예정입니다.


주인공을 견제하는 건 견제하는 것이고 공권력이란 본래 사병조직과 좋은 관계일 수가 없었다. 반돌프의 야망과 유럽 유력자들이 뜻을 같이한다 해도 국익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래도 맥스콤은 발두르 산업보단 싸게 막은 셈이죠.

-드뷔시는 누가 뭐래도 프랑스인이니까.


내국인과 외국인이 같은 취급을 받을 리 없다.


‘응?’


광화문으로 향하던 지오의 발걸음을 붙잡는 아주 이상한 광경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부처와 각국 공관이 밀집한 광화문은 이 나라의 심장이나 다를 바 없다.

당연히 경찰도 많고 순찰도 많아 치안 수준이 높았다. 그런데 그의 눈엔 질서는 온데간데없는 난장판이 보였다. 밀고 밀치고, 일어나다 다시 넘어지고 기어 다니는 혼란의 도가니. 비명은 덤이다.

인파의 쓰나미가 사방으로 물결친다.


-뭐야? 영화 찍나?

-실제상황입니다.

-뭔?


망막디스플레이로 확대된 장면에 지오는 입을 떡 벌렸다.

며칠 전 파리에 총기난사범이 있었다면 오늘 서울에는 사무라이, 아니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칼 든 미친놈이 사람들을 썰고 있었다.

현대전은 총의 시대지만 그렇다고 칼이 위험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칼 든 적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나? 천만의 말씀. 맨손과 칼 든 사람이 싸운다면 99% 칼 든 사람이 이긴다. 어지간히 맨손 격투에 자신 있지 않고는 무기를 든 적과 싸우는 건 어리석은 행위였다.

어떤 상황에선 오히려 총보다 칼이 더 치명적이다.

사람이 썰리는 잔혹한 현장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좋아요에 미친 인간들. SNS를 현실과 구분하지 못하는 젊은 놈들은 자극적인 영상에 환장했다.

경찰 사이렌이 사방에서 울린다.

오래지 않아 진압되겠지만 그새 발생할 인명피해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것이다. 지오는 폰을 들었다.


“자기? 광화문이야? 우린 경호팀이랑 차로 이동해. 허! 진짜 세상이 왜 이래? 파리도 그러더니 세상이 미쳐 돌아가나 봐.”


강선아의 목소리는 의외로 침착했다.

진짜 테러를 경험한 덕분인지 그냥 칼부림은 평범하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어쨌든 아내는 한층 성장하고 강인해졌다.


“다친 사람 없지?”

“응. 자긴?”

“괜찮아. 어디로 가는데?”

“엄마는 집으로 가재.”

“뒤따라갈게.”


서너 명을 더 썰어버린 흉기난동범은 경찰이 쏜 테이저건에 맞아 부들부들 떨며 쓰러졌다. 예전 뉴스를 보면 용감한 시민들이 난동범을 제압했다는 미담도 여럿이던데 오늘은 날이 아닌가보다. 아니면 이번 난동범이 든 흉기가 너무 크고 날카롭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커터칼이 아니라 대도大刀다.


-정신병자야? 히키코모리?

-실연당한 남잡니다.

-실연당했다고 길거리에서 칼질한다고?

-실연, 해고, 시한부 3종 세틉니다.

-...


처지를 비관한 남자는 자살 대신 타살을 원한 건지도. 그렇다면 더한 개새끼다. 자살은 그래도 혼자 죽었으니까.

택시를 잡아타려던 계획은 까톡! 하는 소리와 함께 멈췄다.


소희:어디야?

나:?

소희:대답!

나:?

소희:대답해!

나:퇴근 중.

소희:충무로로 와!

나:?

소희:오라고! 빨리!

나:왜?

소희:쫌 와주면 안 돼? 뀨!

나:미쳤니?


미친년이 혓바닥을 어디다 팔아먹은 거야? 지오는 윤소희팀 팀장인 강윤태에게 전화했다.


“어딥니까?”

“아, 오 이사님. 오늘 대고려 미팅 있는 날인데 끝나고 갑자기 회식이 잡혀서요. 대낮부터 좀 달렸습니다.”

“그래도 톱스탄데... 괜찮아요? 사진 많이 찍힐 텐데.”

“괜찮습니다. 얘 지금 연기 중입니다.”

“전 왜 찾습니까?”

“선호 캐피탈이라고 투자자 중 한 곳이 강짜를 부렸거든요.”

“왜요?”

“예전부터 소문이 안 좋은 사람입니다. 여배우에게 추근대는 걸로 유명하죠.”


내가 또 병신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주소는 톡으로 찍어줘요.”

“진짜 오시게요?”

“친구라고 한 명 있는데 기 좀 살려줘야죠.”

“그럼 주소 보내드리겠습니다.”


주소는 금방 톡으로 날아왔다.


-...

-왜?

-오늘 사용자는 화가 많습니다.

-아닌데? 나 화 안 났는데?

-주인공이 미녀들을 독점해 화났습니까?

-아닌데?


아니다. 나 진짜 화 안 났다. 안 났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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