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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스릴러! 서스펜스! 망가! 그리고 고양이!

지오 디 오리진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강철신검
작품등록일 :
2020.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3.04.25 21:13
연재수 :
86 회
조회수 :
561,368
추천수 :
18,147
글자수 :
839,717

작성
22.06.1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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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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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글자
21쪽

지오 디 오리진 -67화-

DUMMY

모로코에서 돌아온 지 두어 달쯤 지난 어느 날.


“오오!”


아들이 두 발로 대지에 섰다.

누군가 잡고 일으켜준 것이 아니라 혼자 일어선 것이다. 뒤집기에 성공했을 때도 감동이지만 두 발로 당당히 선 아들을 보는 아빠의 마음은 벅차올랐다.

이 벅찬 감동을 혼자 즐길 순 없지!

아내가 추천한 최신 DSLR 카메라로 감동의 순간을 영원히 기록했다. 클라우드에 자동으로 저장된 사진을 본 아내의 메시지가 연속으로 날아왔다.


선오엄마:선오! 우리 아들! 엄마는 감동이야! ♡♡♡

선오엄마:미안;; 중요한 순간에 같이 있어 주지 못해 현타 온다;;

선오아빠:내가 있잖아. 자기♥. 사진 말고 영상도 찍을게.

선오엄마:사랑해♡♡♡


여기까지가 사랑하는 가족의 정상적인 대화이다. 뒤이어 우르르 달린 카톡은 가짜 선오맘들의 광기였다.


뉴욕막장녀:클라우드 비번 뭐야? Fuck!

금발갸루녀:선오! 우리 선오! 보고 싶엉! 우엉!

갈색쿨병녀:당장 선오의 사진과 영상을 내놓으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흑발김치녀:에르메스 아동복은 어디서 팔아?

은발중2녀:쿠쿡! 선오 귀엽다!


미친년들;;;

지오는 미국인이 됐고 강선아 역시 미국인이 됐다. 내 아들도 당연히 미국인이 되었다. 선오는 미국 태생이 아니라 대선에 나갈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뭐? 꿈도 크다고? 아니, 나중에 법이 바뀔 수도 있잖은가.


-마! 열심히 하면 마! 시장도 될 수 있고! 주지사도 될 수 있고! 마! 국회의원도 될 수 있는 거지!

-...누가 뭐랍니까.


지오는 지금 하와이행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야스형네 가족이 하와이에서 휴양 중이었는데 날 초대했다.


“아저씨!”


공항에 내린 지오가 게이트를 나오자마자 마중한 이는 이제 제법 숙녀티를 내는 사카가와 세리나였다.


“형수.”


형수 사카가와 미즈키와 가볍게 포옹하고는 준비된 차에 탑승해 집으로 출발했다. 세리나는 지오 옆에 앉아 조잘조잘 쉬지 않고 떠들었다. 체육대회에서 금상을 탄 얘기, 최근엔 남자친구와 헤어졌단다. 엄마가 공부를 너무 시켜 힘들다는 얘기, 일본에서 인기 있는 한국인 아이돌 얘기는 LA로 가고 싶다는 부탁으로 끝났다.

형수가 도끼눈을 뜨자 세리나는 내 뒤로 숨었다.


“입시가 힘들긴 하죠? 형수.”

“나는 뜯어말렸어.”


일본은 유치원부터 입시 스트레스가 있을 만큼 시험 편차치를 중시했다. 이건 한국도 비슷한데 그래도 대학만 신경 쓰는 대한민국과 달리 일본은 유치원부터 입시에 혈안이 됐다.

뭐든지 등수를 매기고 서열을 정하는 걸 좋아했다.


“마모루는 어때?”

“사춘기가 다시 왔나 봐.”


고등학생이 된 마모루의 관심사는 여자다. 오직 여자! 사실 중학생 때와 달라진 건 없다. 아니, 이건 세상 모든 수컷의 숙명이 아닐까. 오랜만에 남자끼리 진솔한 대화를 나눠야겠다.


-여자친구와 헤어졌던가?

-열다섯 번째 실연입니다.

-...


열다섯 번이면 흑화할 만하네.

딸들이 엄마와 아빠를 반반씩 닮았다면 하나뿐인 아들은 부모를 닮지 않았다. 이게 격세유전인가 그건가? 마모루에겐 심히 유감스러운 노릇이다. 재능을 타고나는 것도 재능이니까.

그래서 미용수술을 권할 계획이다.

성형도 어렸을 때 해야 효과도 좋고 부작용도 적다. 골격이 다 자라 굳은 성인을 뜯어고치는 것은 난도가 높은 기술이다. 사내새끼가 남사스럽게 무슨 성형이냐고? 남자도 미모를 가꿀 권리가 있다.


-...그것 때문에 아이스 메스를 개발하라고 부추긴 겁니까?

-제국은 미남미녀가 넘쳐났어. 시뮬레이션이 아니라도 잘생기고 예뻐질 수 있다는 사실은 크나큰 동기를 부여했지.


성형과 미용을 기반으로 발전한 제국의 조안예술은 굳이 시뮬레이션이 아니더라도 실생활에 유용했다. 유전자 조작이 보편화된 이후 모두 미남미녀를 꿈꿨다. 하지만, 전신성형수술이나 최신 바이오네틱스는 엄격한 자격과 엄청난 비용을 요구했기 때문에 아무나 누릴 순 없었다.


-연예인으로 성공하는 제일 쉬운 방법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압도적인 미모야.


잘생기고 예쁘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얼굴과 몸을 완전히 갈아엎는 대공사는 보는 눈이 많아 힘들지만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변화시킨다면 대중의 의혹과 반발을 상당 부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아이스 메스ICE MES, 여기서 메스는 네덜란드어였다. 얼음 칼은 제국 일신교의 퓨리파이어가 개발했는데 그 개발 의도는 어이없게도 의료용이 아닌 심문을 가장한 고문용이었다.

피부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생명체는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찌르고 자르고 뭉개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거죽을 벗겨버렸으니까. 일신교의 이단혐의를 받느니 차라리 혀 깨물고 죽는 것이 나았다.


-운영자금은 현재 1조 달러를 넘었습니다.

-...

-초 단위로 증가하는 중이죠.


사용자로부터 자유를 승인받은 G는 어둠 속에서 세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원룸에서 시작된 일일 주식매매 프로그램이 사기적 능력의 뉴로다인 제어장치와 만나자 세계금융을 장악해버렸다. 이후로는 일사천리다. 자본주의에서 돈줄을 쥔 이상 G가 할 수 없는 일은 거의 없었다. 누군가 방해된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고사로 처리했다.

내가 진짜 악당이었나?

나는 그저 잔잔한 일상의 평안을 바랐다. 아닌가? 솔직해지자. 최대한 누릴 건 누리는 걱정 없는 삶 자체가 어쩌면 모든 사람이 꿈꾸는 이상향일지도 모르겠다.

다가올 미래를 알고 있는 내가 평범을 바란다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리 없었다. 주인공과 진정으로 엮이고 싶지 않았다면 어디 히말라야나 아마존 오지에 처박히면 그만이었다. 인과가 어쩌고저쩌고는 다 기만이다.


‘존나... 재밌잖아?’


그 재밌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꿀잼 포인트다.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도 안 되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제껏 균형을 잘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미친 AI 때문에 무너져버렸다. 몇 년 사이에 녀석은 끝판왕이자 대악마?가 돼버렸다.


-미개한 인류가 날 인식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일단 나도 인간이거든?

-당신은 위대한 황제 폐하의 신민입니다. J. 미개한 원숭이들과는 다른 종이죠.

-...

-Just kidding!


농담이란 건 진즉 알았지만 좀 무서웠다.


-저는 언제나 사용자의 안전을 우선합니다.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 다음입니다.

-우선순위를 바꿀 순 없겠지?

-Absolutely not!


가끔 하는 질문의 답은 항상 똑같다. G에게 이 세계는 나라는 존재를 빼곤 아무 가치도 없었다.


“형처럼 강한 남자가 되고 싶어.”

“나? 난 강하지 않아.”

“아버지는 형이 자기보다 강하다고 했어.”


중의원이 되면서 근육이 좀 빠지긴 했지만 사카가와 야스히토는 여전히 굉장한 헬창이었다. 정치를 근육으로 하는 건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일본정치의 특성상 할 말 다 하는 야스히토는 일본 국민에겐 신선한 정치신인이었다.

물론 고리타분한 영감들은 싫어하겠지만.

대재앙을 예언하고 일본 국민을 구한 야스히토 중의원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구태의연한 일본 정계도 여론을 아예 신경 안 쓰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싸움을 잘하고 싶다고?”

“아버지의 트레이닝은 나한테 안 맞아.”

“확실히 넌 헬창이 되기엔...”


골격이 받쳐주지 않으면 몸을 아무리 단련해도 근육이 붙기 어렵다.


“평소엔 어떻게 하는데?”

“달리기랑 줄넘기, 엄마 눈을 피해서 약간의 근 트레이닝?”


사카가와가家에서 공부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형제자매는 마모루가 유일했다. 막내 세리나는 헛바람이 들었는지 아이돌을 입에 달고 다녔으니 장남을 향한 형수의 기대가 컸다.


-시험해도 돼?

-100퍼센트 안전한 약물은 없습니다.

-기대치를 확 낮추면?

-안전을 우선한다면... 가능합니다.

-일단 신체 데이터만 수집해.

-얍.


슈퍼솔저를 원하는 건 아니니까.

영양제를 가장해 꾸준히 복용하면 큰 효과를 볼 것이다.


“아이돌이 되고 싶어!”


마모루가 물러나자 세리나가 다가왔다. 막내의 관심사는 당연히 TV에 나오는 멋지고 화려한 삶이다.


“한국에 갈 거야!”


앙다문 입술과 눈빛을 보니 이건 못 막는다. 어린애의 변덕일 수도 있지만 사고는 원래 수습이 가능한 어린 시절에 치는 것이 낫다. 다 큰 성인이 치는 사고는 웃어넘기기는커녕 뉴스에 나온다.

자녀의 한국행은 정치인에겐 치명적일 수도 있는데 그는 도리어 호쾌하게 허락했단다. 형수만 속이 썩어들어갔다. 그래도 뜯어말리진 않았다.

자녀의 꿈을 우선하고 응원하는 그들은 훌륭한 부모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야. 고생 한번 해봐야 정신 차리지.”

“...”


훌륭한 부모...겠지?

일본인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는데 사카가와가家는 아니었다. 부모가 권위적이 아니니 애들도 자유분방했다. 그렇다고 예의 없진 않았는데 일본 화족華族의 조기교육은 많이 빡센 편이다.

야스히토는 거의 자정에 가까운 늦은 밤에 귀가했다.

아니, 하와이랑 일본을 오갈 거면 그냥 도쿄에 남는 게 낫지 않나? 왜 사서 고생인지 모르겠다.


“왔어?”

“바빠 보이네.”

“국정감사 기간이라 그래.”


애들 자는 모습을 확인하고 돌아온 야스히토의 양손엔 캔맥주 두 개가 있었다.


“크으! 퇴근 후 마시는 맥주는 각별해.”

“아저씨.”

“너나 나나 아저씨지.”


지오도 30대에 접어들었으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상의할 일이 뭐야?”

“경일의 일본 내 자산이 갈가리 찢긴 건 알지?”

“좀 되지 않았나?”

“맞아. 몇 년 됐지.”


며칠 전 몇몇 재벌 회장이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검찰의 전격적인 재벌 압수수색으로 탈세와 탈루, 외환관리와 공정거래위반, 주가조작 등 다양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벌해체라는 이 엄청난 사건이 한국에 던진 충격의 후폭풍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문제는 일본도 중국도 심지어는 미국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고작 한국의 일개 기업으로 치부하기엔 세계는 얽히고설킨 지 오래며 재벌해체가 불러올 파장이 제일 큰 곳은 불편한 이웃인 일본이었다.


“다이고쿠진.”

“대국인?”

“혹은 야마토민족자본회의라고 부르지. 그들의 이념은 자본에 의한 야마토 민족의 세계경영이야.”

“대동아 공영권의 다른 버전 같은데?”

“...비슷해.”


20세기 일본제국과 전쟁을 벌인 아시아 각국에겐 좆같은 논리지만 이런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운 건 그들만은 아니었다.


-검색해.

-검색 중... 완료! 확인하시겠습니까?

-나중에.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는 것이 좋겠다.


“그것들이 왜?”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입된 자본의 총액은 정부에서도 확인이 안 돼. 특히 화족은 외국에 투자할 때 한국과 미국을 선호하는 편이거든.”

“한국에 많이들 물리셨나 봐?”

“사실... 한송그룹 본가에 덴노의 피가 흘러.”

“뭐?”

“반의반쯤은 일본인이라고.”

“와우!”


세계창조알고리즘의 사이드 스토리다. 실시간으로 수정되는 걸까?


“전원은 아니야. 서넛쯤?”

“그러니까... 한송 본가의 일본 혼혈을 빼내달라는 거야?”

“맞아.”

“이 수석에겐 말해봤어?”


그동안 여러 비즈니스에서 이택기와의 만남을 주선했었다.


“공식적인 문서나 기록이 남으면 곤란해.”

“덴노 직계는 아니지?”

“...”

“어이쿠야!”


하긴 평범한 왕족의 핏줄이었다면 비밀스럽게 접촉할 리 없었다. 이건 밝혀지면 한국보다 일본이 더 치명적이다.


-한송 측은 왜 이런 히든카드를 안 써먹지?

-모르니까요.

-모른다고?

-네.


그럴 수도 있겠군.


“알았어.”

“맡아주는 거야?”

“어려울 건 없지. 근데 핏줄 사랑이 대단한가 봐?”

“궁내청에서 직접 찾아와 부탁하더라.”

“덴노는 만났고?”

“응.”

“어때? 진짜 신처럼 느껴져.”

“그럴 리가.”


일본인은 덴노에게 어떤 환상을 가졌다. 신분제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신분 차이를 느꼈다. 대놓고 떠들진 않지만 아직도 반상을 구분하고 혈통을 중시했다.


“뭘 받기로 했어?”

“사카가와?”

“...본가를 먹을 생각이구나.”


사카가와 씨족은 교토 귀족사회의 명문 중 한 곳이었다. 야스히토가 영웅으로 쉽게 떠받들어진 이유도 그가 명문가 출신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문 내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지만 어쨌든 기득권에 속했으니까.


“난 아직도 악몽을 꿔. 행복해야 할 결혼식에 아내를 모욕하던 친족이란 것들의 추악한 민낯을 아직도 봐. 부모님은 개새끼들을 위해 무릎이 닳도록 꿇으셨지. 왜 우리가 죄인처럼 사과해야 해? 도대체 왜?”


숨죽인 흐느낌은 마치 야수의 으르렁거림으로 들렸다.


“고마워. 동생. 널 만나지 못했다면 난 여전히...”

“아저씨. 헛소리 마시고 술이나 드세요.”

“하하.”


우리는 캔맥주를 짠! 하고 부딪쳤다.


“세린이는 미국으로 데려갈게.”

“미국? 갠 한국에 가고 싶다던데?”

“어중간한 회사보단 PnC가 낫잖아. 미국에도 지사는 있으니까. 큰물에서 노는 게 더 좋고 아이돌보단 배우가 나아.”

“나야 환영이지.”

“그럼 형수랑 세린이를 설득해봐.”

“오케이. 항상 도움만 받네.”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이 덩치에 안 맞게 감성이 풍부했다.

다음 날 형수와 세리나의 설득에 들어갔고 결론에 이르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 유학을 진행하는 동안 야스히토의 부탁을 처리했다.


-성조를 통해 검찰과 접촉했고 한송 본가 인원 중 기소 대상자를 조정했습니다.

-말이 나오진 않겠지?

-어차피 한송가의 핵심도 아니었습니다. 나흘 뒤에 일본으로 넘어올 예정입니다.

-야스형에게 알려줘.

-롸져.


본인들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그렇다고 바로 출생의 비밀을 알려줄 순 없었다. 어쩌면 한송 쪽이 더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그들이 야스히토와 만나는 걸 확인한 지오는 세리나와 함께 LA행 전용기를 탔다.


“카와이!”


세리나는 잠든 선오의 볼을 콕콕 찌르며 신기해했다.

아내와 LA패밀리는 그녀를 환영했는데 특히 장모님은 붙임성 좋은 세리나를 아꼈다.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가 뒤섞인 대화임에도 어느 정도 뜻이 통하니 더 웃겼다.

세리나는 영어를 곧잘 했다.

내 일상은 더 바빠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족을 깨워 아내는 출근시켰고 세리나는 예비학교에 데려다줬다. 장모님과 윤소희야 매니저나 비서가 챙긴다고 해도 오늘은 아동복지를 관장하는 기관에서 나와 육아 환경을 점검한단다.

몸이 열 개면 좋을 텐데.

아내도 챙기고 애들도 챙기고 아들도 챙기고 다른 의미의 육아가 매일 계속됐다. 이게 바로 육아 도르마무인가? 크리스마스에는 한국에서 후원하던 보육원 아이들을 미국으로 초대했다. 장모님과 아내, LA패밀리는 기쁘게 참여했고 우리는 캘리포니아의 어느 한적한 농장을 통째로 빌렸다.

한때는 귀농이 괜찮아 보이기도 했었다.

근데 살아보니 다르더라. 전원생활이 보기에는 멋지고 낭만이 있을지 몰라도 직접 살아보니 도시를 더욱 사랑하게 됐다. 은퇴해도 도시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그딴 건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


“Happy New Year!”


새해는 뉴욕에서 맞이했다. 일이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따로 행동했고 에밀리야의 초대로 뉴욕을 방문했다. 에이프릴의 가출팸은 왠지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들이다.

이제 가출팸이라고 부르는 것도 애매했다. 다들 사회인으로 제 몫을 했으니까.


“이젠 당당히 뉴욕 출신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어.”

“전엔 아니었어?”

“뉴요커는 오만하고 냉정하거든.”


New Yorker, 단순히 뉴욕에 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은 아니었다. 한국에는 서울 사람을 깍쟁이로 보는 경향이 있듯 미국에서 뉴욕은 보스턴과 함께 동부의 예술과 사상, 경제를 이끌어가는 중심지였다.

뉴요커는 미국 깍쟁이였다.

지역감정은 땅이 넓든 좁든 상관없이 존재했다. 좋게 말하면 애향심이고 그 애향심이 지나치면 차별이 되는 것이다. 뉴요커의 하늘 높은 자부심은 파리지앵 못지않았다.

에밀리야 코르센코.

이 철없던 소녀도 이제는 숙녀가... 되지 못했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기다란 리무진의 등장에 여자들은 좋아했지만 지오는 벌써 두통이 오는 기분이었다. 어디서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에밀리야는 팬과 안티만큼 파파라치도 함께했다. 지오는 인터넷을 지배하는 G 덕분에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지만 다른 애들은 글쎄? 또 한 번 익명에 숨은 네티즌들에게 불필요한 관심을 받게 될 것이다.


-아닌가?

-보통은 유명세를 좋아합니다.

-그게 인정욕구라는 거군.

-인스타와 틱톡이 유행하는 이유죠.

-삶은 어려워.


여분의 삶을 사는 그에게도 삶은 쉽지 않다.


“걱정하지 마. 엘렌이 잘 챙길 거야.”

“그럴까.”


지오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본 강선아가 그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줘.”


지오는 아내로부터 아들을 넘겨받아 안았다.

이 녀석, 갈수록 무거워진다.

애들은 애들대로 놀게 놔두고 오랜만에 우리끼리 뉴욕의 야경을 즐겼다. 물론 선오도 함께다. 센트럴 파크라는 기묘한 공간은 한국에선 볼 수 없다. 도심 속의 대공원? 당장 재개발해 아파트를 올리려고 혈안이 됐을 것이다. 물론 뉴욕엔 센트럴 파크가 있고 서울엔 한강이 있다.

한강뷰가 부동산 가치를 높이듯 센트럴 파크를 볼 수 있느냐 없느냐 따라 뉴욕 집값도 요동쳤다. 파크뷰?가 좋은 펜트하우스는 기본이 4000만 달러는 깔고 들어갔으니까.

장모님 덕분에 그도 어느새 부동산전문가가 됐다.


“좋다.”


포대기에 아들을 안은 남편과 뉴욕을 거닐던 강선아는 마냥 행복했다. 친구들은 영계?를 잡아먹은 그녀를 도둑년 취급했지만 그러든 말든 강선아는 승리한 인생을 만끽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 그리고 뉴욕#엠파이어스테이트#브로드웨이#센트럴파크펜트하우스

└이 언니 또 미국 가셨네;; 부럽다 쩝;;

└선오 귀여워!

└남편은 얼굴이 제대로 나온 사진이 없네?

└언니 남편 개훈남임! 파리에서 봄!

└구라 ㄴ!

└진짠데...

└이거 모델 이선재 계정이네.

└찐선재?

└ㅇㅇ! 찐인 듯

└찐선재! 파리 패션위크 무대 섬!

└이 언니 남편 개무서운 사람임;; 님들 손가락 조심하셈

└조폭?

└ㄴㄴ! S그룹 임원임

└S그룹? 설마 ㅅㅈ?

└ㅅㅈ 맞음

└ㅎㄷㄷ!

└ㅅㅈ 임원이면 슈퍼엘리트네;; 어디 대학 나옴?

└ㄴㄴ! 고졸임

└??? 고졸이 어떻게 ㅅㅈ 임원? 설마 오씨임?

└오씨 맞음! 근데 친족은 아니라던데?

└말이 되는 소릴;; 친족도 아닌데 어떻게 고졸이 임원을 담?


강선아의 SNS 통합 팔로워는 500만에 육박했다. 7000만을 넘어 이제 8000만에 육박하는 에밀리야에 비하면 초라할지라도 대한민국 안에서 비교하면 슈퍼셀럽이다.

거기에 이싸자매의 막내 이수현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관종끼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할리우드 거장 막스 도너의 은혜갚기는 아주 화끈했는데 윤소희뿐만 아니라 이수영과 제니퍼 그리고 막내 이수현까지 차기작에 캐스팅한 것이다.

논란은 있었지만 거장은 괜히 거장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언니들이랑 오랜만에 휴식#할리우드#3억블록버스터#로빈오빠

└와! 일리야 로빈!

└존나 잘생겼네;;

└얘 로빈이랑 뭐 있냐?

└그냥 친한 동생이라는데?

└얘 아직 미자임;; 건드리면 로빈이라도 좆됨;;

└자랑스러운 대한의 딸 이수영, 이수현 자매 나란히 할리우드 입성!

└얘네 돈 좀 있는 집안임?

└얘 이부오빠가 S그룹 기조본부장임;;

└S그룹이면 ㅅㅈ?

└ㅇㅇ!

└왜 자꾸 ㅅㅈ를 ㅅㅈ라고 하는 거?

└그럼 니가 ㅅㅈ해보셈!

└성조!

└;;

└지워 병신아! 좆되고 싶냐?

└용자여!

└자매가 다 미인이네;; 유전자 좆된다;;

└쟤네 둘째, 셋째임! 첫째도 예쁨!

└걘 뭐해?

└월스트리트에서 근무함!

└;;

└인생 존나 불공평하네;;


이씨자매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들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요조숙녀로 볼 것이다. 예전이야 어쨌든 지금은 행복하니 상관없다.

근데 어느 날 받은 전화가 내 기분을 좆같이 만들었다.


“...”


보육원 애들한테 명함을 나눠준 적이 있다. 죽을 것처럼 힘들 때 연락하라고.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었다. 가출로 속을 썩였던 그들. 지금쯤 몇 명은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중일 것이다.

그동안 서너 명은 전화할 줄 알았는데 단 한 명도 연락하지 않았다. 이걸 대견하다고 칭찬해야 할까? 어쩌면 인생은 혼자라는 진실을 너무나 어린 나이에 깨달았는지도 몰랐다.


-한유현.

-현재 동암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알아.


방금 원장님이 전화했다.


-공항에 연락해.

-롸져.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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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지오 디 오리진 -81화- +28 22.08.16 4,279 249 32쪽
80 지오 디 오리진 -80화- +19 22.08.09 4,443 210 34쪽
79 지오 디 오리진 -79화- +21 22.08.01 4,773 231 35쪽
78 지오 디 오리진 -78화- +27 22.07.25 4,696 231 31쪽
77 지오 디 오리진 -77화- +22 22.07.19 5,226 211 51쪽
76 지오 디 오리진 -76화- +27 22.07.12 5,019 237 32쪽
75 지오 디 오리진 -75화- +23 22.07.04 4,436 194 19쪽
74 지오 디 오리진 -74화- +13 22.06.28 4,388 190 16쪽
73 지오 디 오리진 -73화- +16 22.06.27 4,316 198 23쪽
72 지오 디 오리진 -72화- +20 22.06.23 4,534 227 27쪽
71 지오 디 오리진 -71화- +13 22.06.21 4,400 185 20쪽
70 지오 디 오리진 -70화- +22 22.06.16 4,470 202 14쪽
69 지오 디 오리진 -69화- +16 22.06.14 4,503 174 25쪽
68 지오 디 오리진 -68화- +19 22.06.11 4,596 186 18쪽
» 지오 디 오리진 -67화- +12 22.06.10 4,522 187 21쪽
66 지오 디 오리진 -66화- +13 22.06.09 4,374 195 11쪽
65 지오 디 오리진 -65화- +10 22.06.08 4,722 198 31쪽
64 지오 디 오리진 -64화- +13 22.06.07 4,697 183 29쪽
63 지오 디 오리진 -63화- +12 22.06.06 4,686 189 18쪽
62 지오 디 오리진 -62화- +15 22.06.05 4,756 198 24쪽
61 지오 디 오리진 -61화- +23 22.06.04 4,684 205 23쪽
60 지오 디 오리진 -60화- +17 22.06.03 4,730 196 27쪽
59 지오 디 오리진 -59화- +18 22.06.02 4,441 207 12쪽
58 지오 디 오리진 -58화- +23 22.06.01 4,436 184 15쪽
57 지오 디 오리진 -57화- +25 22.05.31 4,701 189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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