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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반전여신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벨라송
작품등록일 :
2019.12.23 21:10
최근연재일 :
2020.04.17 14:59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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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2
추천수 :
158
글자수 :
40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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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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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신입사원 연수 (8)

DUMMY

언덕 위에서 우리 세 사람은 일렬로 서 있는 멈춘 기차처럼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다만 나는 염태성을 등졌고, 이온을 바라봤을 뿐.

내가 도발한 긴장감인데 이온의 서늘한 표정에 숨이 막힌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이온에게 미안한 마음이 소록소록 싹이 트려할 때였다.

이 긴장감 사이로 갑자기 고음의 여자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반사적으로 촬영장 쪽으로 돌렸다.

김로미가 뛰어온다.

촬영으로 풀 메이컵을 했고 지난 존 피에서와는 달리 조신한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전히 예쁜, 그녀다.


“오빠아아아. 태성이 오빠아아.”

“······.”


어느새 도착한 김로미가 꽃갈치의 옆에 찰싹 붙어 팔짱을 끼며 나와 이온을 대놓고 바라본다.


“이 오빤. 선상파티에서 봤던······. 그 떼부자 오빠네?!”

“······.”

“어? 얘는? 걔잖아. 그때 밤늦게 존 피로 오빠 찾아온 오···. 오···.”

“오여수.”


염태성이 김로미의 뒷말을 대신 메운다.


“맞다. 오여수. 너 여기 무슨 일로 왔어? 연예인 시켜달라고 이 먼 곳까지 따라왔어? 진짜 어이없다.”


그리곤 뭐가 웃긴지 혼자 까르르르, 웃는다.


“정말. 못 봐주겠네. 옷은 또 그게 뭐야. 저번에도 아주 촌티 쫙~나게 입고 있더니. 또네. 어린 애도 아니고.”


예쁜 얼굴에서 예쁜 말만 나오는 건 아닌가보다.

저번엔 내가 어이없었던 거 같은데······.

돌려줄 차롄가.

이번엔 내가.

예의를 밥 말아 먹은 사람에겐 예의가 오히려 빅 엿이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존 피에서 잠깐 만났었죠. 우리. 오여수에요. 그땐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요.”

“뭐야. 어이가 더 없네. 웬 인사?! 웃긴 애네. 지금 저게 나한테 욕하는 거지? 어? 우리가 통성명할 사이야?”

“로미야. 너 밖에서는 그러지 말라고 말했지. 말 곱게 해라. 진짜 쪽팔리게.”


뒷말은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던 염태성이 자신의 몸으로 로미의 시선을 확 막아선다.


“오빠가 얘랑 있으니깐 내가 이러는 거잖아. 얘가 왜 또 여기 있는 건데! 말해. 지금 당장.”


등진 염태성이 손을 흔들었다.


“간다. 다음에 보자. 가자.”

“내가 왜 가야 돼. 안 가. 안 간다고오. 오여순지 오여신지 쟤가 왜 여···.”


졸지에 오여시가 되었다······.


“따라와.”


염태성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는 촬영장 쪽으로 끌고 간다.


“오 사원.”


말 없던 이온이 어색하게 입을 뗐다.

이 사람은 또 왜 이래.


“그냥 이름 불러요. 뭘 또. 오 사원이래.”

“부동인으로서 대우를 해주는 거야. 네 말대로.”

“이번엔 사장님이 맹꽁이 짓하고 있는 거 알고 있죠?”


내 눈을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촬영장의 반대편으로 돌아간다.


“그냥··· 예의를 갖춰달라는 거예요. 그러니깐 벽은 치지 마요.”

“······.”

“우리 여사친, 남사친. 아직 맞죠?”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그가 내 눈을 다시 바라봤다.


“맞아. 그리고 미안하다.”


그의 볼이 볼그레하다.

이 사람의 보호색은 붉은 색인 걸로.


“뭘 또 미안하대요. 앞으로 안 그러면 되쥬우.”

“어. 조심할게.”


그의 사과가 고맙다.

내가 웃자 그도 사과 같은 미소를 내게 짓는다.

썩은 게 하나도 없는 게 순도 백프로 예쁜 빨간 사과 같다.

참나, 뭘 해도 잘생겨 보이는 게 내 눈이 삔 거겠지?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

삔 게 맞어.

확실해.


“그럼 갈까요? 그 가자는 곳으로?”

“······.”

“오늘은 어디로 가요?”

“······.”

“삐진 거 아니죠?”

“나도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할지.”

“에?”

“정말 모르겠다.”

“······?”

“······.”

“진짜 모르는 구나. 막 질렀던 거예요?”

“어.”


도대체 뭣 때문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원래 휴게공간에 가서 쉬려고 했는데······. 그냥 우리 바다 보러갈까요? 바다 보는 것도 쉬는 거나 마찬가지니깐. 괜찮을 거 같아요.”


이번엔 아예 이온은 대답을 않는다.

싫은가?

사과는 했지만, 아직도 화가 많이 났나?

사람 있는데서 핀잔을 줘서?


“사과했으면 사람이 뒤끝은 없어야지.”

“뒤끝 없다. 날 뭘로 보고.”

“그럼 저어기 절벽에 가 봐요. 촬영 팀 트럭들이 좀 서 있긴 하지만 사람들이 저기 가면 바다가 아주, 아주 잘 보인대요.”

“······.”

“가요.”

“······.”

“아 진짜 날파리 앞에 ‘쪼잔한’이란 수식어 붙여버릴 거예요?!”

“누구 맘대로.”


풋!

귀여워.


“진짜 잘 보여?”

“소안미도는 처음 와 봐요?”

“아니.”

“근데 몰라요?”

“어.”

“그럼 가요. 뭐든 있겠죠.”


그와 함께 절벽으로 걸어가는데 왜 이렇게 하늘이 푸른지.

아-.

내 기분, 하늘같다.



우리는 방송사 트럭 바로 뒤에 놓여 있는 거대한 바위 위에 나란히 앉았다.

아래로 배 선착장도 보였고 그 주변으로 동기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배 떠날 시간이 다 되어 가는 걸까. 배가 이쪽으로 오는 모습은 안 보이는데······.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40분 정도는 남았네.

내려가는데 20분 정도면 충분하니깐, 조금만 더 있다 내려가자.


“우와. 진짜 바다 완전 잘 보이네요. 배 선착장도 잘 보이고. 여기가 이 섬에서 제일 꼭대긴가 봐요.”

“합숙 프로그램에 넣길 잘 했네.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마자요. 다들 콧구멍에 바람 넣으러 간다고 엄청 좋아들 했어요.”

“······.”

“바람도 불고 시원하다, 그죠?”

“······.”

“아까 배 탈 땐 안 보이더니 언제 배 탄 거예요?”

“차 선적하다 보니깐 늦게 탔지.”

“그럼 원이도 데려왔어요?”

“어.”

“원이 본지 오래됐네요. 잘 있죠? 그때 존 피에서 무시무시한 견인차한테 끌려가고 나선 못 본 거 같은데.”

“어. 잘 있긴 한데 사물에 뭘 그렇게 감정이입하냐. 너도 참.”

“좋으니깐. ······좋으니깐 그런 거예요.”

“그렇게 숨도 안 쉬는 원이는 걱정하고 인간인 나는 뒤에서 뒷담화나 하고.”


눈이 저절로 확장 되었다.

무슨 욕했지?

내가?

언제?


“네가 욕하는 거 다 들었다.”

“욕한 적 없는 거 같···은데···요?”

“어. 있어.”


진짜 ‘쪼잔한’을 붙여야 될까보다.


“나도 나. 름. 사장이긴 하거든. 별걸 다 기억하는.”

“푸훗!”

“······.”

“그게 무슨 욕이에요.”

“그래도 기분 안 좋아.”

“하하. 정말 별걸 다 기억하네요.”

“웃을 일이냐?”


정색한다. 그가 또.

중2도 아니고.

나는 작게 한숨을 쉬듯 대답했다.


“알았어요. 미안해요. 됐죠?!”


그가 만족스러운 듯 옅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완전 애네, 애야.

그 순간 염 대표와 김로미의 목소리가 꽤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둘은 투닥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듯 했다.


“오빠. 왜 이렇게 나 못살게 굴어? 나 오빠가 다른 여자랑 있으면 연기 못해. 절대 못 한다구!”

“연기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로미 목숨이 오빠 거잖아. 오빠 없으면 로미는 숨도 못 쉬는데. 다른 여자한테 뺏길 걸 생각하면 아주 빡 돌아버리겠다고.”

“로미야. 로미는 로미인 거야. 누구의 것이 아니라. 연기랑 개인적인 감정을 분리하라고 말했잖아. 못 알아듣겠어?”

“못해. 아니, 안 해.”

“좋게 말하면 못 알아듣지? 씨댕! 너 때문에 지금 촬영 정지된 거 안 보여? 이 작품에 단역이라도 넣으려고 내가 돈을 얼마나 뿌리고 다닌 지 너 알아, 몰라?”

“몰라. 난 모를 거야.”

“씨댕! 나 완전 도는 꼴 보고 싶어?”


이제는 그들의 말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느낌이다.

그들의 위치는······.

바로 우리 등 뒤로 파킹되어 있는 트럭의 보조석 쪽 방향이자 드넓은 바다만 보이는 쪽이다.


“화내지마. 오빠가 그러니깐 다른 여자 안 만나면 되잖아. 응? 그딴 사탕 그만 빨고, 로미를······.”


뾰족한 절벽 같던 로미의 목소리가 어느새 바다에 휩쓸려 둥그러진 듯 누그러지자 그들의 발소리가 이윽고 멈추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을까.

민망한 키스소리가 ASMR 급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내 인생 첫 라이브 야··· 동쪽을 보는 구나······.

야··· 동쪽이 정말 진하네···. 어우 진해.

그러니깐 동쪽 바다색이 진하단 말이죠.

하하··· 하하하하하······.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어쩌나 하고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그 순간 이온이 내 손을 덥석 잡고 진짜 작게 내 귀에 속삭인다.


“이번엔 화내지 말고 그냥 내 말 들어줘.”


대답을 채 하기도 전에 그가 내 허리에 손을 얹고 번쩍 들어 트럭 짐칸에 나를 집어넣었다.

그리곤 사뿐히 뛰어 자신도 짐칸으로 들어와서는 문을 조용히 닫는다.

이 모든 동작이 일사 분란하여 나는 첩보영화 속 요원을 보는 것 같았다.

웜마야. 톰 크루즈가 따로 없네.

근데 우리가 왜 이래야 하는 거죠?


“왜···.”


내가 입을 막 열자, 그가 엄지를 세워 입에 대며 ‘쉿!’이라는 사인을 보낸다.

아차.

밖은 한창 로맨스 영화 상영 중이었지.

것도 19금으로다가.

우리는 로맨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말 없이 서로의 눈을 피해야만 했고.

트럭짐칸은 점점 더 더워졌다.

잊진 않았지만 지금은 한 여름이라서 더운 거다.

8월의 뜨거운 여름이라서.

그래서 이곳이 그렇게 핫한 거라고······.


● ● ●


더웠다.

목이 마르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 발이라도 잡아당기는 걸까 몸이 아래로 자꾸 쏠려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언덕을 내려가는 느낌적인 느낌!

그 순간 뭔가와 부딪혔고 눈이 번쩍 뜨였다.


“헉!”


잤어?

말도 안 돼.

이 더운 데서. 그 짧은 시간에 잤다고?

부딪힌 건 벽 같은 이온이었다.


“오여수? 괜찮냐?”

“네. 사장님도 혹시··· 잤어요?”


그에게 딱 달라붙어 있던 몸을 떼어 옆으로 이동했다.


“어? 뭐. 어쩌다 보니.”


그에게서 인간미가 느껴진다.

가끔은 철벽에서도 작은 돌 부스러기 하나가 파스스하고 떨어지기도 하는 구나.

그래도 그렇지.

하필 지금.


“둘 다 같이 정신줄 놓으면 어쩌자는 거예요? 난 약 먹어서 그렇다 치고. 사장님은 도대체 왜 잔 거예요? 딱 보면 잠도 없어 보이는구마.”

“······.”

“꼭 불리하면 대답 없어요! 우리 트럭짐칸에 갇힌 거 같다고욧!”

“어.”

“‘어’라니! 대답만 하지 말고 어떻게 좀 해봐요. 날파리라면서요.”

“알파 Lee.”

“이 와중에 알파리를 고집하고 싶어······.”


갑자기 가슴 언저리가······.

숨··· 숨 못 쉬는 거 아냐?

하악. 하악.


“오여수! 괜찮냐! 왜 그래!”

“숨이 쉬어지는지 보는 거예요. 사장님도 해봐요. 하악. 하악. 가슴이 답답해요.”

“근데 왜 굳이 하악질이야?”

“아. 너무 놀래서······.”

“숨 잘 쉬어지네. 말도 잘하고. 맹꽁이 정신은 또······ 고양이 별에 있는 거 같으니깐. 좀 더 두고 봐야겠네.”

“이 와중에 농담을!”


어두워서 그가 잘 보이진 않겠지만 그가 있는 방향을 향해 나는 눈을 흘겼다.


“괜찮아. 이 차가 갈 곳은 뻔하니깐.”

“······?”

“배. 그리고 육지.”

“하···! 초등학생도 알겠네요. 여기서 갈 곳이 그곳 밖에 더 있어요?!”

“기다려. 한 시간이면 문 따줄 거니깐. 운 좋으면 배에 차 선적할 때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까 배에다 원이 파킹하면서 이 트럭 기사가 통화하는 걸 들었거든. 서울에서 가져온 짐들 지라도에 내려놨고, 그걸 몇 번에 걸쳐서 소안미도로 옮길 거라고.”

“아······.”

“그러니깐 우리 안 죽어. 그리고 저기 빛 들어오는 거 보이지? 저기로 공기가 다량은 아니지만 우리가 숨 쉴 정도론 순환되니깐. 숨 못 쉴 걱정도 없다고.”

“누가 죽는 거 걱정했어요. 그냥······. 그랬어요.”

“어. 그냥 그런 줄 알았어.”

“역시 슈퍼 날파리. 칭찬해요.”

“알파 Lee.”

“그건 그렇다 치고. 소리라도 질러볼까요?”

“아니. 운전자 쪽 벽에서 들려오는 음악 안 들리냐?”

“아. ······들려요.”


머쓱타드를 짜 먹겠습니다요.


“속은 괜찮고?”

“네. 약 먹었더니 괜찮아요. 게다가 짧지만 강렬하게 잤나봐요. 피로도 싹 가시는 기분이에요. 이렇게 갇혀 있는데도 말이에요.”

“갇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색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해.”

“하긴 평생 트럭짐칸에 갇히는 경험을 누가 해보겠어요.”

“그것도 나랑 같이.”

“아, 진짜. 물에 빠진 고기를 삼일 밤낮으로 한번 먹어볼래요?”

“어디 한번 먹어나보자. 그 고기 네가 요리해주냐?”

“말을 말자.”

“······.”

“덥다, 그죠?”

“어. 조금.”

“모자 좀 줘 봐요.”

“어? 모자?”

“아까 밀짚모자 쓰고 있었잖아요.”

“······.”

“없어요?”


그가 핸드폰의 손전등 기능을 켜고 짐칸 내부를 훑는다.


“없네. 아까 거기서 떨어진 모양인데?”

“아깝다.”

“왜?”

“그냥 모자로 부채질이라도 하려고 했죠.”

“내가 손 부채질이라도 해줘? 아까 부드럽게 대해달라며?”

“뭘 또 가슴에 담아 두고 그러세요. 사장님. 잊으세요. 신입사원 객기라고 생각하시고.”

“그래. 생각은 잊고 행동으로 보여줄게.”


말은.

잘해요.


“아참. 젤리! 젤리가 걱정하겠는데요? 배 놓쳐서 다음 배 타고 간다고 말해둬야겠어요.”

“메시지 보내. 나도 보내야겠네.”


두 개의 빛이 짐칸을 비춘다.

그 순간 이미 동기들 사이에서 벌써 호랑이 선배로 알려진 함 부장의 매서운 눈초리가 떠올랐다.

안 그래도 신입사원 합숙 들어와서 내내 나를 지켜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이 일로 막 불려가서 회사 생활 시작도 하기 전에 시말서부터 쓰는 건 아니겠지?!

만약 시말서를 쓰게 된다면, 사장님도 써야한다고 물귀신처럼 물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젤리의 답 메시지를 기다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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