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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반전여신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벨라송
작품등록일 :
2019.12.23 21:10
최근연재일 :
2020.04.17 14:59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4,947
추천수 :
158
글자수 :
402,501

작성
20.01.1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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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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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신입사원 연수 (4)

DUMMY

집으로 가면서 신 실장에게 연락했다.


「오여수 인턴은 집으로 잘 귀가했어요.」

「정말 송구합니다······. 다들 몇 번 들다보니 힘이 빠졌고 저는 사정이 있었···.」

「괜찮습니다.」

「내일 단단히 인턴을 혼내···.」

「아. 그리고 내가 집까지 데려다줬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주세요. 어차피 말해도 날 모를 테니.」

「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날 이후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갔지만 하연이의 병세는 차도가 없었고, 난 지루했다. 재미난 일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일어날 생각이 없는지 무료한 시간만 매일매일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날라리 지승이의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이온, 한국이라며.」

「어.」

「얼굴은 언제 보여주냐.」


지승이 놈은 꼴에 날라리지만, 재미가 없는 녀석이었다. 만나면 여자 이야기나 할 게 뻔했다.


「바빠.」

「바빠? 그럼 부탁은 못하겠네.」

「뭔데.」

「면접 좀 대신 봐주라.」

「뭐?」

「면접관. 아빠가 억지로 시킨다. 내 꿈은 소박하게 재벌 2세가 되는 건데, 아빤 자꾸 나를 노가다꾼으로 만들려고 하네. 시브럴 짱나게.」

「그래서 면접관을 대신 해달라?」


날라리 녀석다운 부탁이었다.


「넌 좋아할 거 같아서 말해봤다. 싫음 말고.」

「콜이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내일이다. 디테일은 문자로. 신세는 언젠가 갚으마.」


그렇게 해서 나는 넘버원은행의 일일 면접관으로 면접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오여수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시 만난 오여수는 여전히 인턴면접 때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서 조용히 또‘열심히’였다.

하지만 면접장에서 나는 뜻밖에도 그녀의 반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면접관님, 먼저 고견 감사합니다. 집에 가서 거울보기 전에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해보세요.」

「넘버원은행에서는 면접관님처럼, 면접관이 되려면 직급이 팀장 정도는 되어야 하나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오여수가 과할 정도로 눈으로 면접관을 훑자 면접관이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면접요.」

「네?」

「참 훌륭하시네요.」

「······네?!」

「숱이요.」

「······.」

「그걸로 순위 매기시면 아주 1등 하시겠는데요?」

「이거 봐요! 오여······!」

「면접관님은 누가 봐도 대머리시네요.」

「이봐요, 오여수 씨,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면접관님은 훌륭한 머머리를 소유했지만, 나름의 뛰어난 업적으로 팀장이 되었을 테고, 이제는 회사의 외모를 책임질 신입사원을 뽑는 자리에까지 앉으셨어요.」


짝! 짝!


「역시 넘버원은행 직원채용의 핵심요소는 외모라는 걸 몸소 증명하시고계시군요. 하! 하!」


당돌했다.

그래서 재밌었다.

통쾌하게 면접관에게 ‘말’ 싸대귀를 날리는 오여수가 꽤 멋있게 보였다. 마치 오리 알인 줄 알고 오리를 기대했는데, 백조가 태어난 느낌이랄까.

집에 돌아와서도 여수가 박수 치던 모습이 잔상처럼 남아 머리를 계속 휘저었다.

정말 재밌는 여자야. 모르긴 몰라도 나만 합격점을 줬을 테니 넘버원 은행은 최종에서 분명 떨어졌을 거 같고······.

부동엔 지원을 안 한 건가. 이력서엔 4학년 2학기 재학 중인 걸로 나와 있던데.

그저 흥미가 생겨서 신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혹시 오여수라고, 이번 하반기 부동그룹 전체로 이력서 올라온 거 있는지 조사 좀 해주세요.」


있었다.

하지만 사브르 사 하반기 신입사원 전형 서류에서부터 불합격 처리된 상태.

아예 서류 탈락?

이력서를 좀 더 꼼꼼히 살펴봤다. 이력서에도 그녀가 얼마나 살면서 ‘열심, 열심’이었는지를 눈에 선하게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국내에선 최상 아닌가.

그런데 왜?

이유는 한 가지겠군.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날 그 술 먹고 고양이 요가 자세를 그렇게 민망할 정도로 해댔으니 말 다했지.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 내가 해줄 수 있는 시간적 마지노선이 이미 한참을 지났으니 더 이상 해줄 게 없다, 오여수.

그렇게 또 한 번 그녀를 잊고 살아갔다.

시간은 역시 약이었다. 하연이의 병세가 마침내 호전을 보였고, 해외로 도피할 수 있는 기회도 불쑥 찾아왔다.

러시아 석유재벌 아나똘리 뽀뽀프가 부동그룹 인사 몇몇을 파티에 초청했고, 그 파티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발해 헬싱키로 향하는 페리에서의 진행될 예정이었다.

우리 쪽에서는 대표로 나와 부동건설 사장 염희왕이 참석하기로 했다. 파티 당일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염희왕은 다른 해외 일정과 겹쳐 아들 태성을 대리인으로 보냈다.

나는 파티도 파티지만 러시아에 살고 있는 MBA 동기들도 만날 겸 상트페테르부르크로가 아닌 모스크바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약속된 파티 일정보다 며칠 일찍 출발했다.

비행기 출국장에 들어섰을 때였다. 여자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왜 자꾸 눈에 띄는지 모르겠지만, 또 오여수였다.

게다가 같은 비행기.

난 1등석 라인에, 여수는 이코노미 플러스로 입장하는 줄에 서 있었다.

1초도 생각하지 않았다. 티케팅 부스에 서 있는 스튜어디스에게 이코노미 플러스로 좌석을 강등해달라고 했다. 더불어 붙어 있는 3좌석이 아직 예약된 좌석이 아니라면 같이 티켓을 발권해달라고 했다.

러시아 승무원이 미친놈이라고 ‘눈욕’을 했지만, 무슨 상관인가.

재밌는 여자가 저기 있는데.

3자리를 예매하는 데 성공했다. 워낙 덩치가 커 한 좌석만 예매하면 옆 사람이 고욕일 게 뻔 하니 어쩔 수 없다.

비행기 안에서의 내 좌석은 여수와 꽤 떨어져 있었지만 맞은 편 복도 라인에 앉으니 여수가 있는 자리가 꽤 잘 보였다.

앉자마자 보드카를 주문하는 오여수.

저 독한 술을 원샷하다니. 순간 아차, 싶었다.

또 행여나 고양이 요가 타임이 올까 싶어 손에 땀을 쥐고 여수를 지켜보는데 이번엔 요가가 아니었다.

반주 없는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가.

저 예측 못할 그녀의 반전이란······.

비행기 소음이 워낙 커서 내게까진 잘 들리진 않았지만, 다들 조용히 가는데 혼자 노래를 부르니 눈에 띌 수밖에. 그녀 주변 승객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여들었고, 뒤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누구도 항의하지 않고 가만히 그녀를 지켜볼 뿐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땐 잘 몰랐지만 후에 헬싱키 페리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진짜 그 이유를······.

노래가 끝났을 땐 작은 박수소리마저 여기저기서 쏟아졌고, 그걸 또 자장가 삼아 잠에 빠진 여수는 비행기가 도착지에 착륙했을 때가 되어서 겨우 잠에서 깼다.

택시 승강장에 서 있던 여수가 이제는 정말 마지막 모습일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의 인연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르바트 거리의 어느 한 펍에서 MBA 동기들을 만나, 창가 테이블에 앉아 반주로 맥주 한 잔을 하며 한창 추억놀이를 하던 중이었다.

알렉세이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창밖을 바라보다 우리들에게 고갯짓을 했다.


「저기.」

「······?」

「앞뒤가 하켄크로이츠랑 스킨헤드고, 그 사이에 동양 여자애가 껴있어.」

「······?!」

「완전 샌드위치네. 과연 누가 여자애를 요리할지. 오늘 아침 신문엔 스킨헤드가 어떤 동양인 남자를 대로에서 총으로 죽였다던데.」


나는 무심하게 창밖을 바라봤다. 젠장.

이 맹꽁이!

진짜 한시도 눈을 못 떼게 하네!

이번엔 정말 화가 났다. 왜 화가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화가 나서 뛰었다. 그녀가 있는 방향을 향해서.

미친 듯이.

그리고 구했다.

미친 듯이 뛰었던 것처럼 폭풍 잔소리를 퍼부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내 모습에 흠칫 놀랐다.

하켄크로이츤지 하겐다즌지 하는 놈들 보다, 그리고 스킨헤드 보다 그녀가 나를 더 무서워했을까봐 덜컥 겁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로 그녀를 겁준 채 혼자 숙소로 보내버렸다.


「여기선 혼자 다니지 말라고. 죽고 싶지 않으면.」


보내고 나서 백번 후회했다. 나의 존재를 몰랐어도 같이 갔어야 했는데, 많이 놀랐을 텐데······.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게 싫었다. 이런 감정이 생소하고 화가 났고, 쉬이 가라앉지도 않았다.

망각의 힘을 빌려 낯선 내 모습과 오여수를 잊기 위해 밤새 동기들과 술을 마셨고, 낮에는 실컷 자버렸다.

초저녁에는 기다리다 지친 MBA 동기들이 자는 나를 깨워 볼쇼이 극장으로 강제로 끌고 갔다. 발레하면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로 싫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또 오여수를 만나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어제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린 듯 구름 한 점 없는 말간 얼굴로 앉아 두리번거리는 그녀를 보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지.

발레 공연을 보는 내내 집중을 하지 못했다.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이 무대에서 점프를 하면 나는 ‘쿵, 쿵’ 거리는 소리가 마치 내 가슴에서 나는 소리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흡사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받고 있는 사람처럼 미친 듯이 벌렁거렸다.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첫 쉬는 시간에 공연장을 뛰쳐나왔다.

그렇게 ‘오여수’라는 신종 몹쓸 병에 걸린 사람처럼 러시아에서의 백수노릇을 시작했다. 하루를 쉬고 하루를 더 쉬었다. 그런데 더 쉬었다간 MBA 동기들에게 강제로 어딘가로 또 끌려갈 거 같았다.

그래서 동기들과의 예정되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일정도 취소하고, 혼자 밤 열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기로 했다.

레닌그라드 역사에서도 병은 계속 지속되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다 결국 오여수란 꼬리에 물렸으니깐.

이 추운 겨울에 혼자 여행 온 오여수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런 오여수가 혼자 어디를 헤매다 큰일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자정이 넘으면 러시아 정교회에서 지내는 크리스마스 연휴의 첫 날인 이브라 역사엔 사람들이 많았다. 가족들을 기다리는 사람들, 혹은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단 한 사람, 오여수를 만나길 바랐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 눈은 월리를 찾듯이 계속 여수를 찾고 있었다.

월리 없는 월리 찾기······.

맥 빠지는 게임이네.

그만두려던 그 순간!

거지꼴을 한 맹꽁이가 매표소 앞에 서있는 게 아닌가!

기적 같았다.

너와 나 사이에는 줄이라도 엮여 있는 걸까? 무슨 인연인데 이렇게 자꾸 내 눈앞에 나타나는 거냐.

오여수!

눈비라도 맞은 걸까? 비에 홀딱 젖어 있는 월리를 찾았지.

상당히 춥고 피곤했던지 히터 옆자리의 벤치에 자리를 잡은 맹꽁이는 5분도 안되어 고개를 숙이고 꾸벅꾸벅 졸았다.

너를 어쩌면 좋냐.

그녀의 옆자리 사람에게 양해를 구했다. 오뚝이처럼 쓰러졌다 제자리를 뱅글 도는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내 어깨에 살포시 기대게 했다. MBA 동기가 챙겨준 무릎담요도 덮어줬더니 쌕쌕거리며 더 잘 자던 오여수였지.

뭐에 놀랐는지 갑자기 잠에서 깬 그녀가 나를 보고 얼마나 더 놀라던지.

그냥 아무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다시 만나면 보드카를 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도통 내 마음을 나도 알 수가 없다.

여수는 대답은 않고 눈꼬리를 손으로 당겨 찢어진 눈을 만들고선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당장 달려가 앉아주고 싶었다.

인간에게 이성이 있다는 건 정말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미친 놈 소릴 들을 뻔 했다.

예약한 객실에 타서도 오여수 때문에 나는 좌불안석이었다. 한겨울에 젖어 다니다가 감기에나 걸리지 않을까, 또 하필이면 남녀혼용실을 예매 했을까, 싶어 걱정이 되었다.

당연히 별일이야 없겠지만 오여수가 손에 꼭 쥐고 자던 열차 티켓의 객차 번호를 기억 속에서 꺼내 찾아가려고 막 객실을 나서던 참이었다.

밖에서 소음이 들렸다.


「멈춰. 앞 문 열고 들어가.」

「네? 여기가 어딘가요?」

「잔말 말고 열어!」

「밀지 마세요! 알아서 열 테니깐.」


러시아 경찰과 오여수였다.

앞으로 오여수를 ‘또 오여수다.’라고 불러야할지 고민이 될 정도로 그녀를 만나기는 참 쉬웠다.

바로 차장실을 쳐들어가긴 그렇고 해서 밖에서 기다렸다 상황을 보고 들어갈까 싶었다.

워낙 기차 소리가 커 안의 소리가 잘 들리진 않는데 그 와중에도 책상을 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시 안은 잠잠해졌다.

딱 5분만, 더 참자.

그리고 차장실 문을 열었다.


「누구야!」

「잠깐 밖에서 볼 수 있을까?」


경찰은 순순히 밖으로 나왔고, 차장실의 바로 옆 객실인 나의 객실로 그를 안내했다.

자초지정을 물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별일도 아닌 일이었는데 사람을 그렇게 취조했구나, 싶었다.

흔하디흔한 러시아 경찰들의 1년 치 용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행해지는 ‘똘깡패’짓이란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경찰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말하며 보스턴백에서 파티초대장과 금색 메달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아나똘리 뽀뽀프······ 당신을 겨울 페리 선상파티로 초대합니다.]


금색 메달까지 확인하자 그의 눈이 화등잔 만해지더니 입술을 달달달 떨었다.

거기에 나는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네가 삥 뜯으려던 그 여자가 바로 내 여자야.」

「돈을 갈취한 적 없어. 맹세코 아무 일도 없었어! 네 여자는 이제 자유야. 마, 마음대로 데려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턱수염을 휘날리며 사라졌다.

통했다. 비록 자력으로 해결하진 못했지만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야하니깐.

아나똘리 뽀뽀프. 그는 석유재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쟁쟁한 러시아의 현직 국회의원이기도 했다. 돈과 권력의 힘이 아직도 그 어느 나라보다 막강한 힘인 러시아니깐, 경찰이라면 더더욱 무서워할 자였겠지.

그런 그가 초대한 사람이라면, 나 또한 대단한 사람인 줄을 멍청하지 않은 이상 눈치를 챘겠지.

손 하나 까딱해서 경찰을 처리하고 여수에게 소식을 전하려고 차장실로 갔다.

차장실에선 역시나 예상을 뒤집지 않고 졸고 있던 오여수를 깨워 그녀가 예매한 객실로 데려다주려고만 했다.

웬걸? 객실은 러시아인들의 술판이 벌어져 난리였고, 하필이면 여수 혼자 여자였다.

안되겠다 싶어 설득해서 데려오려는데 술 취한 러시아인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며 나를 밀어버리는 게 아닌가.

제길.

그러면서 여수까지 떠밀려 불쑥 그녀의 허리를 잡아버렸다. 넘어지게 하지 않기 위해 발과 발가락에 힘을 어찌나 줬었던지.

그 순간 내가 ‘철인’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동시에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간지러웠다.

정말 이상했지. 위험한 상황인데도 간질간질······. 마치 새하얀 백조의 깃털이 바람에 날아와 내 가슴을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그래.

모순 그 자체였다.

혼란한 내 마음과 달리 그녀는 제 첫 백허그를 빼앗겼다고 마냥 울상이었지. 그게 또 얼마나 귀엽던지.

그런 얼굴에다 대고 고양이 요가 사건을 말하며 ‘사실은 두 번째야’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젖은 신발에 여수의 발이 동상에 걸릴까봐 객실로 돌아와서도 제일 먼저 일회용 슬리퍼를 눈에 띄는 장소로 옮겨두었다. 다행히 그녀가 잘 찾아 갈아 신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 좋은 뿌듯함이 전신에 기분 좋은 아드레날린을 생성시켰다.

그리고 한 번 생성된 아드레날린은 밤을 새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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