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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반전여신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벨라송
작품등록일 :
2019.12.23 21:10
최근연재일 :
2020.04.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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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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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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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반전 시작 (1)

DUMMY

“오여수 씨, 자소서와 스펙을 보니 최상이군요. 연익대 경영학과에 평균 학점은 4.19, 토익 만점, 오픽은 AL이네요. 게다가 제2 외국어 러시아어도 고급 수준이고. 공모전 다수 수상에 봉사활동도 240시간 이상이나 참여했군요. 사브르 사에서 인턴 경력도 있고.”

“······.”

“참 훌륭하네요.”


나긋나긋한 말투. 미세하게 호선을 그린 입술.

드디어, 마침내, 기어코!

굿 시그널!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내내 모니터에 시선을 두던 면접관이 고개를 들었다.

5명의 면접자. 나를 찾는 듯 헤매는 눈동자.


“오여수 씨?”

“네. 제가 오여수입니다!”


왠지······.

이건 그다지 좋은 신호는 아닌 것 같네.

이윽고 찾은 듯 나를 향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면접관이 말했다.


“그런데 오여수 씨는 우리 회사 영업직에 지원을 했네요?”


이번엔 아예 눈살을 찌푸리는 면접관. 눈과 눈 사이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주름이 접힌다. 그리고 한 번 더 ‘영업직’이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왠지가 역시가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불벼락처럼 엄습한다.


“본인이 영업직에 적합하다고 생각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학과 전공으로 영업과 마케팅 과목을 집중···.”

“잠깐만요. 먼저 제 질문에 대답해 보세요. 미국의 연구 통계를 이야기로 풀어보죠. 예쁜 여자와 그저 그런 평범한 여자가 각자 한 고객에게 연필 한 다스를 판다고 생각해보세요. 두 사람의 영업능력은 같습니다. 고객은 당장 연필이 필요한 게 아니라 볼펜이 필요하다고 가정할게요.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고객이 연필을 구매했다면, 누가 판 물건을 샀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융통성 있게 볼펜을 사은품으로 제시한 사람이 영업에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틀렸습니다. 예쁜 여자가 정답입니다.”


예쁜······ 여자!?


“저희 회사는 은행입니다.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외모가 큰 역할을 하죠. 특히, 특히나! 영업직, 더, 더, 더! 그런 의미에서 오여수 씨는 집에서 거울을 한 번 보고, 진로를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군요.”


하-, 거울까지 나오셨어?

역시나 최악의 신호로 연결되는구나.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진로를 다시 고민하라고? 이제 와서?

4학년 1학기, 떨어뜨릴 때에는 스펙이 부족하니 더 만들어 다시 지원하라더니. 스펙을 만들어왔더니 이번엔 외모 지적질이냐.


‘거울도 안 보는 여자 아니거든요. 계란형 얼굴에 잡티 하나 없는 백옥 같은 피부. 그 속에 눈, 코, 입도 오밀조밀 모여 있고. 눈썹은 관리하지 않아도 예쁜 반달라인이고, 숱은 또 얼마나 많다고요. 게다가 키도 제법 커서 160센티 후반 대에요. 오늘을 위해 깔끔한 비즈니스 룩도 입었지요.’


이런 나에게 외모 지적질 할 곳이 어디 있나?

이래봬도 제가 그 예쁘다고 유명한 조세희 딸이라······ 문득 출렁거리는 느낌에 아래를 보니······.


‘아, 있기는 있네.’


내 살. 살이 남들 보다 좀 많다. 좀 보다는······ 더 많이.

나도 살을 빼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누군들 예뻐지는 것을 마다하겠냐마는, 이렇게 사는 데에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그래도!

떨어지더라도 할 말은 하고 나가떨어지자.


“면접관님, 먼저 고견 감사합니다. 집에 가서 거울보기 전에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해보세요.”

“넘버원은행에서는 면접관이 되려면 직급이 팀장 정도는 되어야 하나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나는 책상 위로 보이는 면접관의 상반신을 훑었다.

그런 날 보며 면접관이 기분 나쁘다는 듯 물어왔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면접요.”

“네?”

“참 훌륭하시네요.”

“······네!?”


내가 면접관의 머리를 흘깃 보면서 해죽 웃었다.


“숱이요.”

“······.”

“그걸로 순위 매기시면 1등 하시겠는데요?”

“이거 봐요! 오여······!”

“면접관님은 누가 봐도 대머리시네요.”

“이봐요, 오여수 씨,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면접관님은 훌륭한 머리통을 소유했지만,”


면접관이 ‘머리통?’이라고 반문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아니 외모품평을 이어갔다.


“나름의 뛰어난 업적으로 팀장이 되었을 테고, 이제는 회사의 외모를 책임질 신입사원을 뽑는 자리에까지 앉으셨어요.”


짝! 짝!


“역시 넘버원은행 직원채용의 핵심요소는 외모라는 걸 몸소 증명하시고계시는군요. 하! 하!”

“······이, 이!”


입술에 풍이라도 걸린 듯 부들부들 떨면서도 욕을 뱉지 못하는 면접관을 보며, 나는 그제야 시원하게 엉덩이를 의자에서 뗄 수 있었다.

그래. 이거면 됐다.

그래도 예쁜 여자가 좋다면 그러라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음 날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 여수니?

“······이모.”

- 어제 면접 잘 봤니?

“아뇨. 완전 꽝 났어요.”

- 면접 잘 본 거 아니니? 방금 전에 넘버원 은행 인사팀이라면서 전화가 왔어. ‘오여수 씨 신입사원 면접에 최종합격하셨습니다’라고 말하더구나. 깜짝 놀라서 전화 끊자마자 전화하는 거란다.

“······그럴 리가 없을 걸요?”

- 이번 주 토요일 1시까지 넘버원 은행 반포타운점에 오라고 하더구나. 입사 관련 사항을 들을 수 있다고.

“잘못 들으신 거 아니에요?”

- 사실이란다. 내가 수신번호까지 확인했는걸. 너무 기뻐서 믿을 수 없구나. 호호호. 그나저나 여수야, 오늘 아침에는 문자를 따로 안 보냈더구나.

“아, 깜빡했어요. 몸무게 재봤는데, 84kg이었어요.”

- 아직도니? 뼈만 남았구나. 요새 취업준비하느라 뭘 잘 못 먹니? 이모가 이번 주에 맛난 거 많이 해서 나영이 편으로 한가득 보내마.

“감사드려요······.”

- 그리고 미니 체중계 하나 사 뒀단다. 음식 보내면서 나영이한테 네 책상 서랍장에 넣어두라고 할 테니깐, 혹시 멀리 갈 일 있으면 가지고 다니렴. 어딜 가든지 꼭 잊지 말고 매일 몸무게 체크해서 문자하거라. 이모는, 우리 여수 지금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단다. 조금만 더 잘 먹으면, 훨씬 더 예뻐질 텐데.

“네······. 그럴게요.”


전화를 끊었다.

신기했다.

분명히 합격자 발표는 2주 후 금요일이라고 했는데.

게다가 면접은 봤지만, 본 게 아닌 거나 마찬가지고······.

뭔가 미심쩍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믿고 싶다.

이모를 믿으니깐. 내가 합격한 거라고.

내 스펙이 엄청 괜찮아서 남들보다 먼저 합격 발표를 한 걸 수도 있다고. 그래서 면접관들이 질문을 많이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른다고.



어느덧 핸드폰 캘린더 앱은 대망의 신입사원 소집일을 가리켰다.

오후 1시 넘버원 은행 반포타운점 앞.

스테인리스 셔터로 굳게 닫힌 은행 문을 보며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그 순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빨간 쫄쫄이를 입은 움파룸파족 떼가 나타나, 내 머리를 뱅뱅 돌면서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토요일, 토요일, 토요일, 토요일, 토요일, 토요······.’


공식적으로 은행이 문을 닫는 날.

맞다. 토요일은 은행이 일을 하지 않는다.


‘이런······ 바보!’


뭐야? 비 와?

후두둑- 후두둑-.

하필 슬픈 영화처럼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라니.

오늘 일진 참······. 가지가지 한다.

산만한 덩치의 여자가 은행 앞에서 11월의 추운 빗줄기를 맞고 있는 모습이 처량해 보였는지, 경비 아저씨가 나와 자그마한 우산을 쥐어주었다.

검은 우산 손잡이에 하얀색 글자가 도드라지게 새겨져있다.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만이 살길. 넘버원 은행.’


현실이 꿈같이 허망했다.


● ● ●


- Dreams are my reality. A Wondrous world where I’d like to be(꿈은 나의 현실. 내가 원하는 놀라운 세상이죠), ······.


달리는 차 안을 울리는 벨소리. 무반주의 여자 목소리다.

그러나 운전자는 그저 전방을 주시할 뿐 당장 전화를 받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느 순간 운전자가 입을 다문 채 콧소리를 내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흠-흠흠흠흠-흠흠··· 흠흠흠흠흠···흠흠-흠······.”


- Perhaps that’s my reality(아마도 이게 나의 현실인가 봐요).


이윽고 벨소리가 간주 구간으로 빠져들자 운전자가 핸들의 전화기표시 버튼을 눌렀다.

낮지만 부드러운 음색의 굵은 목소리로 운전자가 수신자에게 먼저 응답했다.


“이온입니다.”

- 오 마이 갓. 전화를 왜 이렇게 늦게 받아. 크레이지.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구.


한국말이 조금은 어눌하지만 흑인 특유의 소울이 담긴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에서 핀잔하는 듯,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게 들려왔다.


“운전 중입니다. 오랜만이에요, 제시.

- 진짜, 운전 중? 오케이. Anyway. 간만에 마이 러블리 선, 준 때문에 ‘스피드 온’에 갔더니 온이 완전히 한국으로 갔다고, 들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완전 쇼킹했다구!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 What!? No, no, no. 완전 실망이야. 나한테 굿바이 인사도 안하고 갔어. 진짜. 이건 말이 안 돼. 완전 크레이지야!

“죄송합니다. 좀 급하게 입국하느라.”

- 그럼. 온, MBA도 졸업 못한 거겠네?

“아뇨. 한 학기는 회사 취업으로 대체가 가능해서 졸업은 어떻게는 될 거 같습니다.”

- 오 마이 갓. 진짜 다행이야.

“······.”

- 어쨌든 섭섭한 건 섭섭한 거라구. 인사도 없이 가다니.


이온이 여전히 대꾸하지 않자 블루투스 수신기 너머에서 내내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치던 수신자가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 Well······ 다음에 한국 가면 꼭 봐. 내가 온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잖아.

“알죠.”

- 7월 초니깐 지금쯤이면 한국은 한참 날씨 좋겠어?

“그렇죠. 날씨 좋긴 했는데. 햇빛도 쨍하고 비도 내리네요, 오늘은.”


이온이 차를 부드럽게 멈추고선 우회전 깜빡이를 넣었다.


- Fox’s wedding day? 한국말로는 여우비. Right? 온이 미국 있을 때 말해줬잖아. 여우비라고.”

“맞아요. 기억하시네요.”

- 당연하지. 내가 비록 혼혈이지만 한국 문화 많이 알고 싶다고 했었잖아. 이것도 기억하지?”

“예. 그나저나 한국에 언제 들어오실 일 있으신가 봅니다.”

- 한국뿐이겠어. 중국이랑 일본이랑 다 가봐야 할 판이야. 왜냐믄. I’m looking for the lady(그 레이디를 찾고 있어).

“The lady?”

- Yes. 온도 지난 1월에 뽀뽀프가 초대한 헬싱키 페리 파티 갔었잖아. Right?”

“그랬죠.”

- 근데······.


제시가 잠시 뜸을 들였다.


- 내가 뭘 좀 놓쳤어. 아주 중요한 거였는데.

“뭘요?”

- 우리 뷰튜브 메이킹 팀이 파티 당일 날 뭘 좀 찍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날 찍은 화면을 봤더니-.

“······.”

- 아니 글쎄. 파티 메인 행사 시작하기 전에 어떤 가수가 노래를 불렀더라고. 그런데 하필 카메라엔 얼굴이 유령처럼 스쳐지나가서 누군지 확인이 안 되고, 노래 소리만 담긴 거야. 아시아권 사람 같은데······.

“······.”

- 혹시 온은, 그때 노래 불렀던 가수 누군지 알아?


제시의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차 안 공기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온은 당연히 노래를 부르던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안다.

왜냐하면 이온 역시도 만나길 손꼽아 고대하는 바로 ‘그녀’니깐.

하지만 제시가 그녀를 찾는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음이라 이온은 입을 다문 채 도로를 주시했다.


- 파티 주체 측으로부터 파티 참석자 명단까지 받아 봤는데, 없어. 플러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녀는 초대가수도 아니었대.

“······.”

- 온은 진짜 모르는 거지? 그녀가 누구인지?


이온은 전방 신호등이 주황색 빛으로 바뀌는 걸 바라보며 브레이크를 서서히 밟았다.


“······글쎄요.”


● ● ●


『······글쎄요. 저도 사실 현장에서 F1 대회를 중개하고 있지만, 올 한 해 동안 단 한 번도 얼굴 없는 드라이버가 공개석상에서 헬멧을 벗은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요? 굉장히 철저한 자기관리 같은데요, 왜 이렇게까지 신상이 공개되는 걸 꺼려할까요?』

『그것 또한 알려진 바가 없어요. 현재까지 10승을 거머쥔 이 선수가 페라리에 소속되었다는 정보 외에는 얼굴 없는 드라이버로 이름뿐만 아니라 얼굴조차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우리들이 알 수 있는 전부죠. 그래서 Unknown이라고도-.』

『말씀드리는 순간 얼굴 없는 드라이버의 블루와 블랙으로 꾸며진 차가 결승점을 막 통과했습니다! 이로써 올해 F1 최종전 이탈리아 몬자 GP에서 얼굴 없는 드라이버가 무난하게 다른 선수들을 따돌리며 챔피언을 확정지었······!』


뷰튜브로 시청하고 있던 화면을 두 번 톡톡 눌러 정지시키자 이내 해설자의 목소리도 공기에서 흩어져 사라졌다.

책상 모서리 쪽에 놓여 있던 지갑 옆에 핸드폰을 놓고 머리를 외로 누이며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기분 좋은 엔도르핀이 뇌에서 생성되었고 일각에 심장을 강하게 가격했다.

온 몸에 전율이 순식간에 퍼진다.


‘벅차!’


3년 전 영상이지만 아직도 내 가슴을 울리는, 나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이자 동경의 대상.

얼굴 없는 드라이버.


‘Unknown 씨.’


그의 챔피언 경기를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다른 경기도 좋았지만 방금 시청한 경기는 내게 단연 독보적이다.

이유는 그를 다시는 F1 그랑프리 경기에서 볼 수 없어 생겨버린 아쉬움 때문······.

해서 나는 그의 마지막 챔피언 경기를 이따금 가슴이 답답해질 때마다 시청하곤 한다.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보고 싶다······. 경기만이라도.

물론 얼굴도 궁금하다.

불루, 블랙과 골든 컬러를 믹스한 화려한 헬멧 뒤에 숨겨진 그의 얼굴. 훗남일까? 아니면······ 모두가 예측하듯 추남일까?

소문에는 얼굴에 큰 화상 자국이 있다는 소문도 있던데.

그래도 까봐야 알겠지.

얼굴이야 무슨 상관있겠는가. 그가 레이스를 지배하는 그 강렬한 자동차 경주 모습에 반한 건데.

······엄마, 나도 얼굴 없는 드라이버처럼 무언가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단 한 번이라도 엄마처럼 강렬하게 살고 싶어.’


연기처럼 사라지더라도.

······엄마 보고 싶다.

핸드폰 옆에 놓인 갈색 지갑으로 손을 뻗어 올리며 기를 불어넣듯 꽉 잡았다 놓으며 살포시 눈을 감았다.

요즘도 스크랩한 신문을 접어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정답은 ‘있다.’이다.

그게 바로 나, 오여수니깐.

나는 스크랩한 신문을 두 장 예쁘게 접어 지갑 속에 넣어 다닌다.

첫 번째 신문은,

실체는 2D지만 내게만은 3D 홀로그램처럼 엄마를 만날 수 있게 해준다.


······희는 QBC의 대하사극 ‘장희빈’에서 주인공역······ 큰 사랑을 받았으며, 첫 앨범을 발매하여 큰 히트를······

이후 조세희는 ‘시베리아의 사랑’으로 스크린 첫 데뷔······ 작품을 연출한 감독 오영수와 연인으로 발전했으며, 결혼 후 허니문 베이비로 딸 오여수를 출산······.

······연말 불우이웃 성금으로 거액을 기부한 것도 외동딸의 돌을 기념하기······.

······와 인터뷰 중 딸 오여수의 사진을 바라보며 “재산은 물론이고, 저의 다재다능한 끼까지 물려주고 싶어요(웃음). 왜냐고요? 여수는, 나의 사랑하는 딸이니까요.”라며 딸에 대한 애틋함을 전했다.

한편, 조세희는 6월에 방송될 ‘욕망의 거미줄’에 출연할 예정이다.


나를, 정확히는 갓난쟁이인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는 신문 속 엄마 사진을 바라봤다.


‘울 엄마. 참 예쁘다.’


근데 명색이 엄마 딸인데, 난 왜 이렇게 다를까.

너무 달라서 딸랑구 조금 슬퍼지려고 하네. 그래도 엄마 웃는 거 보니깐 나도 막 웃게 돼.

나머지 한 장에는······.

내가 풀어야 하는, 답이 없는 수수께끼 하나가 숨어있다.

언젠가는 풀 수 있을까? 이 수수께끼.

그나저나 취업부터 해야지 이모가 좋아하실 텐데······.

취업할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감았던 눈을 떴다.

창밖으로 여름의 시작을 알리듯 여우비가 후두둑후두둑 내리고 있었다.


‘시간 참 빠르지.’


지난겨울에 넘버원 은행 취업 사기를 당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이후로도 서류는 여러 곳에 꾸준히 제출했다.

아예 가타부타 연락이 없는 회사도 있었지만, 면접 기회도 몇 번 찾아왔다.

모두 다 피박이었지만······.

졸업 후 상반기 취업시즌 막바지.

남은 건 오늘 볼 제약회사 면접뿐인데.


‘마지막이라도 최선을 다하자! 뺘샤!’


어두운 생각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몸을 일으켜 세워 씻으러 욕실로 갔다.

너무 과할 정도로 기합을 넣어서 그런 건지 욕실 슬리퍼를 신다 그만 미끄덩 넘어져 버렸다.

아팠다. 넘어진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이제껏 참아왔던 것들이 봇물처럼 터진 걸지도.

어쨌든 속은 후련해졌다. 뭔가, 실패에 대한 달관이 찾아온 느낌이랄까?

정신을 차리고 발바닥을 욕실 바닥에 비벼봤다. 미끄러웠다. 밤새 자는 동안 누가 몰래 욕실 타일에 왁스라도 칠해놨나 싶을 정도로.

그래도 뭐, 이 정도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벌떡 일어나 거울을 보는데 참 가관이었다.

어퍼컷과 훅 공격을 불시에 당한 얼굴 같달까?

입술은 퉁퉁 부어있고, 입 안에선 피가 흐른다. 특히 앞 이의 상태가 매우 좋아보이진 않다.

면접 때 자신 있게 큰소리 빵빵 쳤는데, 거울로 이런 얼굴이나 보고 있자니 한심했다.

게다가 부은 얼굴과 입술은, 뭐 말 그대로 취준생에겐 실로 엄청난 데미지.


“아아아악, 내 면저저어어어어업!”


욕실 안에서 괴성을 고래고래 질렀다.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여러 생각들이 미친 행렬처럼 교차했다.

졸업하고 반년이 지났으니 대기업은 이제 영영 끝난 건가?

내 꿈인 직장인 루트를 타다 마지막에 경영자가 되는 건 어떻게 되는 거지?

아악! 도대체 100곳이 넘는 곳에 원서만 넣으면 뭐하냐. 면접만 가면 말짱 도루묵인걸.

생각을 하며 거울로 보이는 얼굴의 다친 부위를 만졌다.

오늘 하루 중에는 회생이 불가능한 상처였다.


‘오늘 면접은 아예 참석하기도 글렀구나.’


요즘 내 세상은 온통 엉망진창이다.

지난 1월. 러시아 여행만 해도 그랬다.

쉴 겸해서 기분 좋게 출발했다가 별 희한한 일들이 연거푸 일어나는 바람에, 아예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국제 미아가 될 뻔했다.

좋게 말해 다이내믹해진 여행이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아홉수의 운수가 찾아와도 너무 일찍 찾아온 것만 같았었다.


“피휴우-.”


풀이 팍팍 죽네. 기분도 뉴뉴하고.

되는 일이 없어서.

취업만 해도 그렇지. 누가 봐도 스펙은 완벽한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걸까?

말하는 스타일이 별로일까? 요즘 취준생 사이에서 대세인 스피치 학원이나 발성학원이라도 다녀야 하나?

그러기엔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내 외모가 문제? 뛰어난 스펙조차도 밥 말아 먹게 하는 살 때문인 걸까?

아침에 몸무게를 재 봤지만, 혹시나 해서 다시 한 번 재봤다.


[84.00]


요즘은 많이 먹어도 수치가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소수점조차 바뀌지 않고 있다.

도대체 몇 일짼지. 이놈의 만성 취업 스트레스.

그래도 만약에, 정말 만약에.


“84kg이 48kg이 된다면?”


말도 안 되는 상상이야. 어느 세상에 몸무게 숫자가 앞뒤로 바뀌겠어.

그리고 내가 정말로 48kg이 되려면, 먼저 이모가 손수 만들어 주는 집밥 맛집이 자진 폐업 선언을 해야 될 테니깐.

그때였다.

드르륵.

문자 한 통이 왔다.


[안녕하세요. 부동그룹

인사팀입니다. 면접 전형과

관련하여 전달사항이 있습

니다. 문자 확인하시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부동그룹 인사팀 드림.]


헛웃음이 난다.

요샌 보이스피싱이 취준생을 대상으로 다양하게 개발된 모양이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참 바쁘게 사네.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짓을 하는지. 쯧쯧쯧.


“나쁜 사람 같으니라고.”


화가 나서 핸드폰을 냅다 침대에 던졌다. 잠시 후 여자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 여보세요? ······여보세요? 부동그룹 인사팀, 장현아입니다. 잘 안 들리시나요? 여보세요?


이런. 전화가 걸렸네.


“안녕하세요. 문자 받고 연락드립니다. 오여수라고 합니다.”

- 아, 오여수 씨. 혹시 부동그룹에서 보낸 메일 확인 못하셨어요?

“······무슨 메일이요?”

- 오여수 씨, 부동그룹 신입사원 서류 및 인적성검사에서 합격하셨어요. 면접은 서울 본사가 아닌 지라도에 있는 에메랄드 호텔에서 있을 예정이라 하루 전날 오셔야 되세요. 듣고 계시죠?

“···네.”

- 저희가 제공하는 에메랄드 호텔 숙박이 전날 필요하시면 답변을 보내달라는 메일을 합격 사실과 함께 안내해드렸는데, 마감까지 답변이 안 와서 연락드렸어요.

“그렇군요.”

- 메일로 답변주시면 인사팀 담당자가 숙박 관련 안내를 드릴 거예요.


믿어도 될까?

일단 확인부터 해보자.


“전화 끊고 확인해보겠습니다.”

- 네. 오늘 중으로 답변 부탁드려요.


합격은 사실이었다.

광고에 파묻혀 있던 합격통지메일이 번쩍거리며 광명의 빛을 발했으니까.

면접 날짜가······ 당장 내일이라니. 잠은 다 잤네.

하지만 진짜 마지막 골든 찬스야.

이번엔 제대로 반전영화 한 번 찍어보자, 오여수!


그리고.

반전영화는 예고도 없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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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베이 여신 (1) 20.04.07 42 2 17쪽
52 퐁당퐁당 할래요 20.04.03 35 1 16쪽
51 앱솔루트한 걸 좋아하는, 너란 여신 20.03.31 34 2 15쪽
50 무척 휴머니즘하구나 +1 20.03.27 42 2 15쪽
49 합법적인 마약 20.03.24 41 2 16쪽
48 여신은 에코 프랜들리해 20.03.20 32 2 16쪽
47 기회는 평등하게, 결과는 공정하게 20.03.17 33 2 15쪽
46 스티브 온 20.03.13 30 2 16쪽
45 여신이 싫어하는 건 20.03.10 47 2 18쪽
44 뉴 타이타닉 레이디를 찾아요 (3) 20.03.06 30 2 15쪽
43 첫 버스킹 20.03.03 39 1 14쪽
42 절대기타를 획득했습니다 20.02.28 34 2 17쪽
41 할아주머니 20.02.25 35 1 15쪽
40 Once upon a time in Russia (2) 20.02.21 33 1 14쪽
39 Once upon a time in Russia (1) 20.02.14 35 2 17쪽
38 뉴 타이타닉 레이디를 찾아요 (2) 20.02.07 51 2 17쪽
37 뉴 타이타닉 레이디를 찾아요 (1) 20.01.31 51 3 17쪽
36 여신은 철벽도 춤추게 해 20.01.30 46 2 16쪽
35 신입사원 연수 (17) 20.01.24 59 2 16쪽
34 신입사원 연수 (16) 20.01.24 38 2 14쪽
33 신입사원 연수 (15) 20.01.23 40 2 14쪽
32 신입사원 연수 (14) 20.01.23 39 2 16쪽
31 신입사원 연수 (13) 20.01.23 46 2 15쪽
30 신입사원 연수 (12) 20.01.21 48 2 15쪽
29 신입사원 연수 (11) 20.01.20 51 2 14쪽
28 신입사원 연수 (10) 20.01.19 49 2 15쪽
27 신입사원 연수 (9) 20.01.18 60 2 15쪽
26 신입사원 연수 (8) 20.01.17 58 2 14쪽
25 신입사원 연수 (7) 20.01.16 52 3 18쪽
24 신입사원 연수 (6) 20.01.15 43 3 15쪽
23 신입사원 연수 (5) 20.01.14 46 3 18쪽
22 신입사원 연수 (4) 20.01.13 51 4 16쪽
21 신입사원 연수 (3) 20.01.12 60 4 16쪽
20 신입사원 연수 (2) 20.01.11 55 4 16쪽
19 신입사원 연수 (1) 20.01.10 60 4 15쪽
18 신원보증서 (1) 20.01.09 71 3 15쪽
17 여수 밤바다 20.01.08 67 3 15쪽
16 여신도 운동은 필요해 (2) 20.01.07 80 3 15쪽
15 여신도 운동은 필요해 (1) 20.01.06 73 3 16쪽
14 여신은 알바 중 (6) 20.01.05 67 3 16쪽
13 여신은 알바 중 (5) 20.01.04 87 3 15쪽
12 여신은 알바 중 (4) 20.01.03 105 4 17쪽
11 여신은 알바 중 (3) 20.01.02 98 4 16쪽
10 여신은 알바 중 (2) +2 20.01.01 131 4 16쪽
9 여신은 알바 중 (1) 19.12.31 140 4 15쪽
8 가자 (2) +1 19.12.30 168 4 16쪽
7 가자 (1) +2 19.12.29 166 4 16쪽
6 왜 이렇게 애볐냐? 19.12.28 188 5 16쪽
5 러시아에서 만난 그 남자 (3) +1 19.12.27 218 4 17쪽
4 러시아에서 만난 그 남자 (2) 19.12.26 238 4 15쪽
3 러시아에서 만난 그 남자 (1) +1 19.12.25 300 6 19쪽
2 반전 시작 (2) 19.12.24 364 6 16쪽
» 반전 시작 (1) +3 19.12.23 696 7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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