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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bot 님의 서재입니다.

형의 사령마를 떠맡게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WritingBot
작품등록일 :
2020.05.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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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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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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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유사품9

DUMMY

충분히 가능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던 첫 번째 마왕도 그렇고, 대대로 왕조를 연 마왕들도 결투로 세력을 확장했었다. 이는 르포틴 산의 사제들도, 여러 유지들도 연회에서 한 번씩 했던 말들이었다.



시간이 좀 흐른 지금은 낡은 관습이 되었지만, 조직이 흔들리는 위기에는 이런 낡은 관습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는 법이다.



"형의 암살이란 게 이런 식이지?"

"뭐, 그렇-슴다. 분위기와 동기는 많이 다르지만 말임다."



손시훈도 사상교육에 세뇌된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다.



다만 그런 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일 요소일 뿐. 적진에 잠입해서 우두머리를 대놓고 박살 내는 건 적들에게 공포를 심기 위해서다.



때문에 비슷한 건 1대 1의 승부라는 것뿐. 세세하게 따진다면 많은 것이 다르다. 가령 손시훈이라면 한밤중에 마왕을 끌어낸 다음, 결계로 봉쇄를 한 상태에서 싸울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 부하들은 처참하게 박살난 시체를 보는 식이다.



반면에 자신은 남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마왕과 싸우게 될 것이다.



"난이도는 당연히 이쪽이 더 높다는 것을 알고 있슴까?"

"당연하지."



단순히 마왕과 싸우는 선을 넘어서 마왕이 자신과 싸우게 만들어야 한다. 기껏 결투하자고 했는데, 싫다고 거절하면 별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예지가 있으니 어떻게든 싸우게는 되겠지만, 그 모양새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건 별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케르베한 앞에서 즉석 연기 지시도 하는데, 이 정도의 유도쯤은 간단한 일이잖아?"

"아, 네...."



멍한 대답을 보니 잠시 블루베리는 자신의 존재를 잊었나 보다. 그런 다음에 블루베리는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시우 도련님도 슬슬 다른 도련님, 아가씨들처럼 자연스럽게 저를 부려먹으실 수 있게 됐군요.."

"어..."

"시연 아가씨도 그러니 너무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슴다. 음! 아래를 향한 자연스러운 명령 하달은 지도자의 자질 중 하나인 검다."



진지할 때의 마경태의 모습이나 블루베리를 제지하는 손시연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유쾌한 사실이 아니라 기분이 나쁠 뿐. 괜히 한 번 이기려 들었다가 본전도 못 찾은 시우였다.



그렇게 뭔가 찜찜한 기분으로 시우는 블루베리와 함께 계획을 한 번 짜보았다.



일단 자신들은 기다리면 그만이다. 자신들이 대충 길은 알려줬으니 조금만 시간이 지난다면 이 곳은 금세 포위가 되고도 남는다. 그 상황에서 시우가 모든 것을 건 결투를 제안하면 거부하기 힘들게 뻔했다.



케르베한같이 빳빳한 경우만 아니면 마왕의 잔당들도 본인들이 열세란 것을 인정하는 상태. 결투는 한 번에 역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럼 그 사이에 정찰이라도 해 보는 게 어떻겠슴까?"

"우리, 말단 아니야?"

"선배님이 있지 않슴까. 선배님?"



일단 부르니까 모습을 드러내기는 했다. 그러나 적운흉풍은 영 찜찜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우의 말대로 일행은 언제 불려갈 지 모르는 말단이다. 그런데 잠깐이라도 사라진다면 누구나 수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연한 이 지적을 듣자 블루베리는 걱정할 것 없다는 표정과 함께 자신의 복장을 바꾸었다.



"아, 야."

"사람의 성욕은 위기상황에서 더 강렬해지는 법임다."

"지금 그게 좋은 핑계라고 생각해?"

"잠깐만요....문이 잠김다! 제가 약간의 신음소리와 함께 시간을 끌면 돌아오면 되겠슴다!"



말을 하면서 자신의 어께 위에 양 손을 턱 올리는 블루베리의 시선을 피하는 시우였다. 그 상태로 몸에 힘을 확 주자 블루베리는 곤란하다는 목소리를 꺼냈다.



"저 수준으로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수준으로 벗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한 쪽이 너무 차려입으면 곤란하지 않겠슴까?"

"다른 방법은 없어?"

"도련님이 30초안에 생각해내서 말해 보십쇼."



영화에서도 종종 나오지 않는가. 일부로 애정행각을 해서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위장. 이보다 더 괜찮은 방법은 30초는커녕 3분이 지나도 떠오를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마지못해서 이를 받아들인 시우는 얇은 반팔 셔츠와 바지만 입게 되었다.



"어차피 도련님에게 옷은 장식이지 않슴까."

"너만큼 장식이지는 않겠지."

"오호. 그렇다면 여기서 더 수위를 높여도 되겠슴..."



지퍼를 잠그듯이 적운흉풍의 혀가 블루베리의 입을 한 번 쓸었다.



그러나 그걸로는 블루베리의 침묵을 이끌어 낼 수 없다. 차마 무표정으로 듣기는 힘든 상스러운 말들이 조금 이어지고, 시우는 처음에 신음소리 운운할 때 부터 막었어야 했다고 후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하나도 유익하지 않고 쓸모없는 대화와 시간을 잠깐 보낸 다음, 손을 흔들면서 시우를 보내주는 블루베리였다.



"형의 이성관계의 면에서 딱히 문제 있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집을 나가기 전에 스스로를 억누르기 전의 손시훈에게 그런 기미는 하나도 없었다.


"푸릉"

"그렇다고 블루베리가 원래 그런 쪽으로 능글맞지도 않았던 것 같고."

"푸르르"



딱히 적운흉풍의 대답을 듣고자 하는 혼잣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점점 적운흉풍의 울음소리가 불안한 톤으로 변한다. 그 때문에 말을 멈추지 못한 시우였다.



"설마, 형의 아이들이"



울음소리가 뚝 끊기고 몸이 딱딱하게 굳은 상태로 움직인다. 얼떨결에 정답을 말해버렸다.



"아아...."



적운흉풍이 이런 쪽에서는 더 착잡할지도 모른다. 따져보면 적운흉풍은 블루베리의 선임. 블루베리가 적운흉풍을 부르는 애칭이 '선배님'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녀석이라면 충분히 주인님의 아들, 딸들이 후임을 망치는 모습에 죄책감을 가지고도 남는다. 당장 자신만 하더라도 블루베리에게 미안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블루베리를 망친 주범은 아가씨들, 딸들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영혼과 뒤섞인 형의 영혼이 그것을 알리는 것을 희미하게 느끼는 시우였다.



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이성에게 하는 게 어렵다. 반면에 동성이라면 그 심리적인 한계가 풀리는 게 사실이다. 똑같은 여자라고 아가씨들은 블루베리에게.....좀 상스러운 농담을 했겠지. 적운흉풍은 사람이 아니라 말이라고 그 자리에 끼여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이 아니라, 주인님,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복종하는 적운흉풍이 말릴 수 있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여기서 말을 막 했다가는 이 녀석만 더 무안해질게 뻔하다. 그걸 뒤늦게 파악한 시우는 정신을 딴 쪽으로 집중하기 위해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다행히도 신경을 돌릴만한 구석은 이리저리 많았다.



"비밀 기지는 이렇게 지어야 하는 것 같아. 안 그래?"

"히힝!"



자신도 무안함을 달래려는 것인지 적운흉풍의 울음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런 울음소리와는 별개로 비밀 연구소의 구성은 시우의 눈에 꽤나 괜찮은 구성이었다.



우선 블루베리의 예측과 제나의 예지를 피한 시점에서 평균 이상은 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건 이 기지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어디에나 있을 수 있지만, 어디인지는 모르는 곳.



겉으로 드러난 부분과 숨겨진 부분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결과물이다.



'단순히 유지들이나 르포틴 산의 사제들만으로는 공략하기 힘들었겠어.'



지금 마왕의 잔당들을 공략하기 위한 군대가 집중될 수 있는 이유는 시우라는 구심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토벌군의 집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소수의 토벌군으로 공략하기에 이 연구소 겸 비밀 기지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기존의 마왕성의 설계를 그대로 땅에 파묻은 형태. 그리고 보급을 받을 수 있게 여러 통로들이 근처의 작은 마을들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다.



모든 외부 통로를 공략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정도다. 시우가 보기에 전체적인 구조는 개미집을 떠오를 수준이니 말이다.



괜히 마왕의 잔당들이 한 번만 버티면 된다는 태도를 가졌던 게 아니다.



위를 이렇게 살펴본 시우는 아래를 살펴보았다. 이런저런 외부의 보급로와 탈출로로 연결된 위쪽보다는 덜하지만 아래또한 만만치 않게 복잡하다.



그러나 시우의 눈길을 잡아 끄는 건 구조의 복잡함이 아니었다.



'저게...복제된 육체들인가?'



사령이 일반적인 생명체를 보는 것과는 다른 빛나는 점들. 그것들이 가지런하게 정열 되어 있는 상태다. 그 점들을 향해서 시우는 적운흉풍의 고삐를 몰았다.



가까이 가서 보이는 건 통들에 담겨 있는 것 같은 희미한 몸뚱이들. 빌려온 사령마의 시선은 넓은 대신에 흐릿하게 보인다. 때문에 자세하게 보기 위해서는 잠시 허상화를 해제할 필요가 있다. 그를 위해서 주변을 살펴본 시우는 감시의 시선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허상화를 해제했다.



그와 함께 보인 장면은 미리 각오를 했는데도 섬찟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판타지보다는 SF에 적합한 모습. 양 쪽으로 쭉 늘어져서 마주 보는 수조 속에는 살아있는 사람의 몸이 담겨 있다. 그 몸은 눈을 반쯤 뜬 상태였다.



초점 없이, 부들부들 떨듯이 움직이는 눈동자. 그건 살아는 있지만 영혼이 없다는 것을 잘 설명해 준다. 복제품, 유사품이라는 소리를 듣고 말했지만,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속이 금세 안 좋아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끄음..."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연구실의 일부분일 뿐이다. 부활의 핵심은 복제된 육체에 영혼을 옮기는 것. 시우는 아직 성공한 연구의 절반밖에 보지 않았다.



실패하고, 미완성된 부분. 영혼을 육체에 옮기는 과정. 그 과정은 노예가 필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자 그를 꼭 확인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시우는 잠깐 들었다.



'봐야 해.'



예지라고 해서 절대적이지는 않다. 결투를 피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블루베리는 전이 마법으로 빠져나오고, 자신은 허상화로 빠져나온 다음, 위치만을 알려서 다 같이 이 기지를 습격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래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노예들도 휩쓸릴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진심으로 구하기 위해서는 저들이 얼마나 노예에게 처절한 짓을 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필요성을 인식하자마자 시우는 자신에게 살짝 역겨움을 느꼈다. 결국 명분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봐야 하니 말이다. 머리로는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가슴까지 묵묵히 그걸 받아들이는 건 별개의 일.



잠시 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시우를 지긋이 바라보는 적운흉풍이었다. 대충 이만하다면 충분하다는 의미가 담긴 시선으로 보고 있다.



"떳떳하게 말하려면 끝까지 다 봐야 해."



진짜 유사품은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적운흉풍의 고삐를 쥔 시우는 여러 희미한 점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쪽에서는 꺼져가는 듯 한 꽤나 많은 점들이, 다른 한쪽에서는 빛나고는 있지만 깨져있는 점들이 보인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등장한 두 무리는 한 곳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건 또 뭐지?'



먼저 그 장소에 도착하니 보이는 건 SF와 판타지, 둘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모를 장치들이었다.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니 뭐가 뭔지를 모르겠다.



그를 살펴보던 도중 먼저 빛나고 있지만 깨져있는 점들의 주인이 먼저 도착했다. 딱 봐도 비틀거리면서 상태가 좋지 않은 걸음걸이. 로브를 뒤집어쓴, 과학자보다는 마법사처럼 보이는 자들이 그를 부축시키며 힘들게 기계의 한 쪽 통에 집어넣었다.



다음으로 이 자리에 끌고 온 노예들을 마왕의 잔당들은 비슷한 통에 하나씩 집어넣었다.



'하나가 남았다.'



마왕의 복제품과 노예들. 그것들로 통을 가득 채우고도 빈칸이 하나 남았다. 그 빈칸의 자리를 알려주려는 것인지 요란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연결된 기계장치가 움직이고, 꽤나 떨어진 곳인 복제된 육체들이 보관된 수조들 중 하나가 이곳까지 오는 건 순식간. 그렇게 마왕의 봉인된 육체가 들어있는 수조가 마지막 칸을 채우자마자 기계장치는 본격적인 작동을 시작했다.



"그르르릉...."



그 작동하는 과정을 보자마자 적운흉풍의 사나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우였다. 물론 시우는 그 울음소리에는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시우 또한 적운흉풍과 동급의 분노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이건 단순한 실험 수준의 참혹함을 뛰어넘었다.



수 십 명의 노예를 갈아서 마왕의 영혼을 복구시킨 이 작업을 마왕의 잔당들을 몇 번이고 반복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 수 십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희생시키는 일. 이건 영혼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 하나의 유사품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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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바캉스2 20.09.17 29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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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유명인3 20.09.14 27 0 14쪽
114 유명인2 20.09.11 29 0 13쪽
113 유명인 20.09.10 3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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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결투 20.09.04 30 0 13쪽
» 유사품9 20.09.03 28 0 13쪽
107 유사품8 20.09.02 30 0 14쪽
106 유사품7 20.09.01 28 1 13쪽
105 유사품6 20.08.31 36 0 13쪽
104 유사품5 20.08.28 35 0 13쪽
103 유사품4 20.08.27 39 1 13쪽
102 유사품3 20.08.26 37 1 14쪽
101 유사품2 20.08.25 32 1 14쪽
100 유사품1 20.08.24 3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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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예지와 예측3 20.08.20 3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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