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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bot 님의 서재입니다.

형의 사령마를 떠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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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Bot
작품등록일 :
2020.05.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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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3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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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유사품6

DUMMY

'잠깐'이라는 말을 꺼낼 틈도 없이 퍽퍽 거리는 소리가 뒷골목을 채웠다. 좀 전까지만 해도 시우와 블루베리 단 두 사람에게 긴장했던 사람들이 했다고는 믿기 힘든 일이었다.




살찐 남자가 몽둥이에 엉망진창으로 다져진 고깃덩이가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더 소름 돋는 건 그 짓을 한 괴한들이 죄책감을 가지기보다는 두려움에 차 있었다는 것. 그리고 시우는 잠깐이지만 저 괴한들을 따라 케르베한이란 자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꼿꼿이 서 있는 블루베리를 봐서 아직은 때가 아닌 듯 했다.




"길을 비켜주셨으면 합니다, 케르베한 천부장님"

"나를 아나?"

"해방자가 말 한 마리로 우리 사이의 길을 뚫을 때 건너편에 계셨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건너편이라. 그 잘난 해방자 놈이 뚫은 부대가 미르거 천부장의 부대. 불쌍한 나칭 천부장의 부대도 거기에 휩쓸렸지. 용케 부대의 반이 휩쓸렸는데도 살아남았군?"

"해방자는 마왕을 죽이는 것에만 신경 쓰고 있었"




블루베리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순식간에 케르베한이 블루베리의 목을 낚아채서 들어 올린 것이다.




"마왕'님'이다."




목소리에 감정이 실려있지 않은 만큼 행동에 박력이 느껴졌다. 잠깐이지만 블루베리가 온몸이 하나의 근육덩어리라는 사실을 잊어버렸을 정도다.




시우가 그렇게 느낀 건 블루베리의 연기도 한몫했다.




정말로 자연스럽게 목 위로 돋아나기 시작하는 핏줄, 그 주변으로 점점 보랏빛으로 변하는 얼굴의 눈썹은 파르르 떨린다. 그 눈썹의 움직임에 맞춰서 힘겹게 올라간 양 손은 케르베한의 손을 붙잡기만 할 뿐, 이렇다 할 저항조차 못하고 있었다.




좀 전의 시우의 허세를 허접하게 만드는 수준의 모습이다. 그렇게 아슬아슬해 보이는 모습과는 전혀 딴 판인 침착한 목소리가 시우의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우선, 한쪽 무릎을 지금 바로 꿇으십쇼.'




이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딱딱하게 굳힌다. 마지막으로 숨을 거칠게 내쉬라는 블루베리의 지시까지 따르자, 시우는 뒤쪽에서 척척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보아하니 뒤쪽의 괴한들이 단순히 시우의 행동을 따라 하는 모양이다. 사람을 죽이라는 말도 따르는데, 단순히 장교인 자신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쯤은 어려울 게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던 시우는 블루베리의 몸이 철퍼덕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케르베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겁한 무능력자지만 눈치는 있는 녀석과 당당한 유능력자인데 눈치가 없는 녀석이라. 혼자서는 살아남기 힘들지. 명색이 함께인 소꿉친구라 살아남았던 건가."




그런 자세한 설정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막상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아마도 케르베한이 이렇게 말하는 건 시우의 몸에 한 줌의 마나도 없다는 것을 느끼고 하는 말일 것이다.




자신의 짐작을 감안해서 시우는 나름대로 말을 꺼냈다.




"말씀하신 대로 들염소를 모는 재주만 있는 제가, 태자 전하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태자 전하라. 마왕님께서는 첩은 있으셨으나, 정식 왕비는 없으셨다. 이거, 눈치가 있는 수준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비굴한 수준이 아닌가."




말을 하면서 가볍게 블루베리의 머리를 밟는 케르베한은 비꼬는 내용의 말을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이어나갔다.




"그래도 꽤나 능력이 있어 보이는데, 왜 이런 것 옆에 있는지 모르겠군. 마음 같아서는 네 머리가 아니라 네 기둥서방의 머리를 밟고 싶다만 그랬다가는 가볍게 터질 것 같구나."


'잘 하셨슴다, 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됨다.'




시우의 머릿속으로 들리는 목소리는 쾌활했지만, 귀에 들리는 뿌득거리는 소리는 쾌활하지 못했다. 사람의 머리와 신발이 문질리면서 뿌득거리는데 신경을 안 쓰는 건 불가능하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근처에 있는 적운흉풍을 불러다가 박살을 내고 싶다. 케르베한이 강하다고 해 봤자 간신히 A랭크에 들 정도의 실력자일 것이다. 그 정도라면 적운흉풍 혼자서도 늑대가 송아지를 뜯듯이 유린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바로 당하고 있는 S랭크의 당사자가 묵묵히 있는데 자신이 욱해서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다. 때문에 꾹 참은 시우에게 케르베한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운이 좋게도 들염소를 모는 제주가 있는 네놈이 태자 전하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저, 제가 실수하여 태자 전하에게 폐가 되는 일이 있을까 걱정됩니다."


"그때는 네놈의 목숨으로 사죄하면 되겠지. 르포틴 산의 땡중들은 네놈이 항복을 하기도 전에 머리를 깨트릴 테니 말이야."




무능력자라고 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르포틴 산의 사제들은 손시훈이 이 세계에 오기 전부터 마왕에게 저항을 하던 몇 안되던 세력. 이 도시에서 마왕이 죽었는데도 마왕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쪽에는 마왕이 살았을 때부터 마왕놈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즉, 케르베한의 말은 지금부터 미리 목숨을 던지는 용도로 쓰겠다는 말을 대놓고 한 것이다 다를 바 없다. 그걸 충분히 이해한 시우는 무능력자지만 눈치는 있게 곤란하다는 표정만 지었다.




"어쩌면 이번에도 네 소꿉친구가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거부할 권리는 없다는 듯이 케르베한은 따라오라는 말도 하지 않고 등을 휙 돌렸다.




자리를 옮긴 곳은 상태가 그럭저럭 양호한 여관. 마왕에 대한 민심이 괜찮은 지역이라도, 잔당이 머무르기에는 대범한 장소다. 공식적으로 시우가 머무르는 곳과 그렇게 멀지도 않으니 말이다.




블루베리에게는 다른 요소가 더 중요한 것 같지만 말이다.




"침대가 한 개 임다."


"그러게."


"우후훗, 기둥서방이라, 우후훗. 자기야."


"..."


"낮이밤져란 말이 있잖아. 안 그래?"


"푸르르릉"




적당히 하라는 듯이 적운흉풍의 머리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좋슴다. 그럼 향후에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봅시다."




이 와중에 자신의 손을 잡은 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시우였다.




아마도 블루베리는 지금 손을 단순히 잡고 있다는 것에만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풋풋한 소꿉친구인 소년소녀의 사이, 혹은 한쪽이 무능력하고 그쪽에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연인. 혹은 기타 등등의 어떤 관계의 감정도 블루베리의 손을 통해서는 느낄 수 없었으니 말이다.




굳이 의미를 담는다면 자신을 놀림으로써 긴장을 풀게 하려는 의도가 전부일 것이다. 그러니 적운흉풍도 적당한 울음소리를 내뱉은 선에서 멈췄겠지. 이를 짐작한 시우는 바로 직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머리와 목은 괜찮아?"


"괜찮슴다. 전 주인님보다도 더 튼튼함다. 기분이야, 사람 목숨 살리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잖슴까."




어차피 케르베한이란 놈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처리할 수 있으니 상관없다는 블루베리였다.




"느끼시지 않기를 바라지만, 살다 보면 무례한 적보다 무능한 아군이 더 빡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됨다."


"진짜 느끼고 싶지 않은데."


"대한민국은 그나마 중앙 헌터 협회가 유능하니 안 느낄 수 있을지도..."




말끝을 흐리는 것을 보니 영 자신은 없는 듯하다.




그래도 자신이 중앙 헌터 협회와 직접적으로 얽히는 날은 멀기만 하다. 반면에 복제된 마왕의 육체와 싸우는 것은 코 앞의 일. 우선은 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얼떨결에 태자 전하라고 말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천부장이 낮은 위치는 아니잖아?"


"연구진들 몇몇은 마왕의 상태를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슴다."




영혼이 복구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 그래서 마왕의 육체와 불완전한 혼이 뒤섞인 것을 보고 유사품이라 불렀다.




때문에 가능한 모든 조치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잿더미에 가까운 영혼 속에 남은 기억을 복구시키기 위해서 마왕성을 그대로 복원했다. 흘러들어오는 기억은 마왕의 힘을 물려받는 반동이라고 설명하겠지.




그리고 연구진들과 상층부들이 무심결에 흘러낸 유사품이라는 단어는 아래로 내려가며 시우를 가리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바뀐 것이다.




"아마 곧 그 단어는 이 도시에서 사라질 것이겠지만 말임다."




의도적으로 흘러낸 표현이라 먼저 공급을 하는 사람만 사라진다면 자연스럽게 소멸한다.




"아마도 곧 대규모 철수를 위한 난동이 있을검다."




.


.


.




"마왕님의 아드님을 위한 1보 후퇴다. 전쟁에서 궁극적인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때때로 물러나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




생긴 것도 그렇고 하는 말과 행동도 그렇고, 케르베한은 후퇴하고는 엄청나게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런데도 실질적인 이유로 작전을 짜는 모습은 엄청나게 위화감이 드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입을 함부로 놀린 상인을 바로 때려죽이라고 명령하고, 블루베리의 목을 조른 건 그 나름대로 실질적이기 때문에 했다는 뜻이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손시훈의 마이너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전체적인 후퇴 계획에서 케르베한이 맡은 역할이 굉장히 신경 쓰이는 시우였다.




"천부장님께서 후퇴하는 부대의 지휘를 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왕이면 네 곁에 붙어있으면 좋겠고?"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은 아닙니다. 정 안 되면 제가 병력을 지휘하는 것도..."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네놈이 병력을 이끌었다가는 5분도 되지 않아서 제압되겠지."




솔직히 말하면 30초도 버티지 못할 자신이 있다. 갑자기 해방자의 동생이 자신들 한복판에서 나타나면 마왕의 잔당이 버틸 수 있을까? 그 생각을 억누르기 위해서 걱정을 섞은 얼빵한 표정을 지은 시우였다.




"겁쟁이 녀석. 그런 네 놈을 위해서 최대한 많은 유지들을 붙잡고 있어 주마. 운이 좋다면 해방자의 동생이라는 그 유사품도 붙잡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네 여자는 네 곁에 붙여두마."




그 와중에 케르베한은 일부로 섞은 걱정이지만 그 또한 진지했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물론 걱정의 방향은 케르베한의 짐작하고는 상당히 다르다. 유지들의 가족들을 인질로 붙잡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제나도 그 위험범위에 들어간다.




'괜찮을까?'


'글쎄요. 이건 그 범생이의 후손을 믿는 게 최선일 것 같슴다. 운이 좋다면 화려하게 역습을 가할수도 있을검다.'




시우네 일행 중 케르베한을 제압할 수 있는 건 카닌과 아눕롤, 둘이나 있다. 이론상 내부에서 카닌이 압도하고, 바깥에서 아눕롤이 들어 친다면 케르베한이 의도한 폭동은 단숨에 박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 건은 선배님을 통해서 경고하고, 우리는 우리의 걱정을 해야 하지 않겠슴까?'


"네 놈은 노예들과 보급품의 절반을 마왕님의 아드님께 전달하는 것에만 집중해라."




블루베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시우는 눈 끝만 살짝 찌푸리는 케르베한의 표정 변화를 보았다. 아마도 그 변화는 자신과 블루베리만이 간신히 느꼈을 수준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시우는 쉽게 자신의 목을 움켜잡은 케르베한의 모습을 상상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케르베한은 찌푸린 눈 끝을 펼친 다음 다시 전체적인 계획을 말했다.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은 계획이다. 인력의 반이 내부에서 난동을 피워서 시선을 끌면, 나머지 반은 실험체용 노예와 물자와 함께 탈출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우의 걱정이 좀 지나쳐 보인다. 그러나 이 계획에서 배치된 인원을 자세히 살펴보면 시우는 던지는 패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한 방향으로 탈출하는 건 어리석은 행위다. 때문에 탈출하는 절반의 인력은 또 반으로 나누어진다.




책임자는 시우와 케르베한의 오랜 부관. 생판 처음 보는 도망자와 오랜 부관을 동일한 취급하고 있는데도 수상히 여기지 않으면 바보다. 당연히 그 아래의 인원 배치도 한 쪽은 정예, 한 쪽은 폐급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이 외에도 케르베한은 여러모로 기밀 유지라면서 시우에게는 자신이 해야 할 일만 알려주었다.




시우가 아는 자신의 임무 이외의 정보는 자신은 이 도시의 동쪽으로 탈출, 케르베한의 부관은 북쪽으로 탈출한다는 것뿐이다. 어지간해서는 배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처지다.




'내가 처음부터 마왕의 잔당이었다면 말이야...'


'웬만했다면 적이라도 불쌍한 상황임다.'




웬만한 적이라면.




이미 노예들이 예비 실험체임을 아는 이상 누가 봐도 철저히 박살내야 하는 상대. 블루베리와 논의를 하기도 전에 시우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더 철저히 박살낼지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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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유명인3 20.09.14 2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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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결투 20.09.04 30 0 13쪽
108 유사품9 20.09.03 28 0 13쪽
107 유사품8 20.09.02 30 0 14쪽
106 유사품7 20.09.01 29 1 13쪽
» 유사품6 20.08.31 37 0 13쪽
104 유사품5 20.08.28 35 0 13쪽
103 유사품4 20.08.27 40 1 13쪽
102 유사품3 20.08.26 37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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