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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bot 님의 서재입니다.

형의 사령마를 떠맡게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WritingBot
작품등록일 :
2020.05.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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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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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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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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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잠깐

DUMMY

"그건 어찌 보면 내 덕이 9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살짝 콧대가 올라간 목소리, 대놓고 기세가 끌어올리는 티를 내고 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는 이는 그가 그럴 자격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심연의 한가운데에서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손시훈의 공이 워낙 컸으니까. 주변의 심연에 색을 칠할 정도의 그 힘이 아니었다면 꽤나 비극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영혼의 일부만으로, 스스로의 의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정속의 심연에 색을 칠한 것은 엄청난 위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검은 머리의 청년과 청회색 머리의 소녀는 눈앞의 한 환생자가 살짝 들뜬 목소리로 떠벌거리는 것을 막지 않았다.



"정신적으로도 내 덕이 있었으니까!"



그래. 그것도 인정해주자. 인정할 수빡에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손시훈에 비해서 심연의 지성체들은 상당히 쉬운 상대였으니까. 상황 지배력은 평상시의 손시훈에 비해서 훨씬 뛰어났지만, 그 지배력을 가지고도 심리적인 주도권을 제대로 가지고 오지 못한 것은...



명색이 신이라면 신인데도 한심하다고 부를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손시연이 손시훈에게 당하고, 당하고, 또 당하며, 그 손시훈은 아버님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수준 차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시우와 하늬가 묵묵히 들어주고 있는 것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쾌활하게 떠들고 있는 손시훈의 눈가에서 미묘한 극대노의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전이라면 놓쳤을 미묘한 떨림. 그것이 그들의 눈에 희미하게 보인다.



그 떨림과 함께 손시훈은 차라리 화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웃는 목소리로 시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너 진짜로 마신 것 맞냐?"

"한 모금 마셨다고."

"진짜로? 입술과 혀만 살짝 적신 수준이 아니고?"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하고 또 하는데, 나는 분명히 한 모금을 마셨어."

"맞아요! 다들 부정하지 않던걸요!"



거드는 하늬. 하지만 손시훈의 눈은 여전히 반신반의인 상태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험한 소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조약이 어쩌고저쩌고...



상당히 흐트러진 목소리라 뭔 말을 하는지 알아먹기 힘들다. 그런 시우와 하늬의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 정보들이 입력되었다.



우물은 심연의 지성체들이 인위적으로 심연의 힘을 모은 곳이 형상화된 것. 그래서 우물의 물은 순수한 심연의 가호와, 심연의 지성체들에 의해서 변질된 가호가 뒤섞여 있다.



이를 다시 순수한 심연의 힘으로 정제하는 것이 컵이다. 그렇기에 컵에 담겨진 물에만 닿는다면 순수한 심연의 가호만을 받게 된다.



닿는다면



즉, 원칙적으로는 입술을 적시면서 마시는 척만 했어도 충분한 예의를 차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조차 삐딱하게 볼 수 있으니 마셨는지를 계속 물은 것이다.



"그런데 한 모금이나 마시고도 그런 개같은 짓을 했다고? 이건 나를 무시하는 짓이고, 키잔트헤임을 무시하는 짓이야. 애..."

"하늬 앞에서 욕은 그만 해 줬으면 좋겠는데."

"후우..."



동생의 그 말에 손시훈은 심호흡을 하면서 힘겹게 진정을 했다. 그런 형에게 시우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래서. 이제는 괜찮은 것 맞지? 이것저것 요란한 짓을 했잖아."



시우나 하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해당 유적을 탐사한 전원이 나름대로 조치를 취한 것이다.



조엘 시몬과 카닌을 제외한 헌터 전원은 남들에게 이 일을 말하지 못하게 마법적 처리를 받았고, 일반인인 대학원생들과 윌리엄 시몬 교수는 정신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 부분적인 기억 소거 조치를 받았을 정도다.



그에 하늬는 모르겠지만, 자신도 나름대로 마법적인 처리를 받지 않아야 생각하는 시우. 지금 이렇게 나름대로 상담까지 받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그런 동생에게 시훈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지금 심연의 문제에서 제일 안전한 건 너와 하늬야. 어떻게 보면 그 문제에서 만큼은 나보다도 더 안전하다."

"진짜로?"

"입술만 맞춘 정도로도 심연에서 나와 동급의 정신적 방어력을 얻어. 전문 용어로 키서(Kisser)라고 하지. 하물며 한 모금이라도 마신 드링커(Drinker)라면 더더욱 말할 것도 없겠지."



전문적인 용어까지 들으니 조금 더 안심이 된다.



그렇게 완전히 안심한 시우와 하늬를 두고 손시훈의 투덜거림이 다시 이어졌다.



.

.

.



"그럼 진짜로 괜찮은 거 맞아?"

"아눕롤. 잠깐 청각기능 꺼주실래요? 30초 정도"

-... 네. 됐사옵니다. 마음껏 말씀하시옵소서.

"괜찮을 거야. 그다음에 한 이야기는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나중에 지구가 안정화되면 자신이 쓸 수 있는 키잔트헤임의 힘을 써서 박살을 내겠다고 했었죠."



시우와 하늬가 이 일을 꾸민 심연의 지성체들은 이미 박살이 났다는 사실을 전해주고도 한 말이다. 처음부터 막지 않은 꼰대들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말이다.



최소한 자신의 앞에 단체로 무릎을 꿇은 꼴을 보고 말 거란다.



이해가 영 안되는 건 아니다.



공적으로 키잔트헤임과 그 칠현을 무시한 것도 있지만, 사적으로 자신의 가족, 그 지인을 건드리고도 화가 안 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물며 그 사람은 마왕을 맨몸으로 두들겨 패서 죽이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시우와 하늬는 거의 발작을 하는 손시훈을 그저 달래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지금 당장은 안전할 거다. 공적으로 중요하고 위험한 일을 먼저 처리하는 손시훈의 성격을 고려해보면, 지금 시우와 하늬의 일은 그렇게 공적으로 중요하지도, 위험하지도 않다는 뜻이니까.



거기다가 손시훈의 나중은 인간의 기준하고는 멀리 동떨어져있다. 자연 수명만 해도 700년에서 900년, 과학적, 마법적 방법을 추가적으로 쓰면 그 몇 배도 살 수 있는 인간이니 말이다.



본격적으로 본 때를 보여주겠다... 하면서 나설 때면... 하늬는 살아있어도 시우는 이미 늙어서 죽어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 때 자신들의 자손이 있다면 자신의 형이 걔들한테 폐나 안 끼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시우였다.



-이야기 끝났나요?

"네. 청각기능 다시 키셔도 돼요."



그렇게 모두가 다시 대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맥이 살짝 끊겼는지 어색한 침묵이 퍼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람이 된 하늬를 빤히 쳐다보는 카닌. 그런 카닌을 향해서 하늬는 단호하게 말했다.



"언니"

"아냐, 하늬야. 다시 말해봐. '엄마'"

<엄마>



은근슬쩍 자신이 한마디를 끼워 넣는 N. 이 가벼운 농담에 바로 사람 죽이고도 남을 눈빛으로 N을 바라보는 카닌이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는 왜 안 돼?'라는 말조차도 못 꺼내게 만드는 압박감이 풍겨져 나온다. 그 눈빛을 중심으로 얼어붙은 표정에 N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가 카닌의 얼굴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카닌은 다시 따뜻하게 녹은 표정을 짓고는 하늬를 향해서 말했다.



"자, 엄마"

"언니"

"엄마"

"언니"

"엄마"

"언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대치상태가 이어진다. 일반적인 정신상태로는 버티기 힘들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절묘하게 탈출을 한 것은 김송현이었다. 이렇게 기척을 완전히 죽이고 탈출하는 모습만 두자면 과연 이것이 C랭크의 적합자, 어정쩡한 고수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의 능숙함으로 말이다.



이어서 용종 중 독보적인 너커 특유의 생존본능으로 N 또한 슬그머니 도망간다.



그리고 시우 또한 이 자리에서 발을 빼려고 했다. 이미 김송현도 N도 도망갔는데 자신이라고 이 자리에 계속해서 있을 이유도, 필요도 없으니까.



전에 심연에 침식됐던 무당이 보여준 수, 검은 연기 속에 숨어드는 것이다.



정확히는 현실과 심연의 경계 사이에 끼는 방법. 검은 연기를 풍기는 건 그 과정에서 심연의 힘이 흘러나와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아무튼, 지금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 방법을 써보기로 하는 시우. 하지만 하늬와 카닌이 한 수 앞서서 시우의 양 손목을 각각 붙잡았다.



거기서 먼저 입을 연 건 하늬였다.



"아빠- 언니가 자꾸 무리한 부탁을 하면서 괴롭혀-"

"시우씨!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왜 하늬의 엄마가 될 수 없는 거죠?"

"하늬, 정답! 아빠 둘이면 충분하니까?"

"안 충분해!"



그리고 아주 뜬금없지는 않은, 가족의 구성과 아이의 정서적 영향에 관한 토론이 시작된다. 카닌도 카닌이다만, 하늬도 그 사이에 뭔가를 본 모양인지 나름대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아마도 그 사이에 N이 평상시에 보는 인터넷 시사 프로그램으로 뭔가를 배운 모양. 지금 이 상황을 멀리서 관측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가 예상이 되는 시우였다.



대충 N은 그만 말대답을 하라면서 짜증을 낼 거고, 김송현은 그 옆에서 밉살스럽게 깝죽거리고 있겠지. 그렇게 머릿속을 비우려는 시우를 두 소녀는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있었다.



졸지에 원하지도 않는 토론회에 끌려온 방청객과도 같은 처지가 되었다.



정신줄을 놓는 건 불가능. 지금도 두명의 소녀는 시우의 손목을 꼭 잡고 있다. 그것도 평범한 비적합자라면 손목뼈가 비명을 내지를 힘으로



상당히 단련된 김송현이라고 하더라도 가볍게 고통이 섞인 신음을 흘리고도 남을 있을 정도의 힘이다. 그것을 시우가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내공으로 단련된 육체와 심연의 가호 덕분이다.



이런 긴-토론의 끝에 반 걸음 물러선 사람은 하늬였다.



딱히 카닌이 훌륭한 논리를 내세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

.

.



"치사해요! 아무리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그걸 나름대로 딸이라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말하다니!"



10살 또래의 소녀에게서 아빠라는 소리를 듣고, 그 소녀에게는 또 다른 아빠가 있다. 어느 아빠이든 간에 확실히 결혼하기 좀 힘들어 보이기는 하다.



문제는 그런 불편한 소리를 딸내미인 소녀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만, 그걸 왜 나한테 따지는 것인지 모르겠네?"



정색을 하고 말하는 손시훈. 나름대로 자신이 아이에게 약한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기에 딱딱하게 나온다. 미리 기선 제압이라도 하려는 걸까.



그런 형에게 시우는 '나만 이런 상황에 빠져있을 수 없지'란 심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형이 종종 나한테 그런 말을 했잖아? 지금은 솔로지만 내가 여태껏 쭉 솔로였겠냐고."

"그래서?"

"아무래도 유부남이 재혼하는 것보다는 노총각이 결혼하는 게 더 쉽지 않겠어?"

"바로 그거예요! 경험이 있는 사람이 시훈이 삼촌밖에 없었다고요!"



시훈이 삼촌이라.



평상시라면 푸근한 미소를 지었겠지만 앞에 붙어있는 말의 내용이 문제다. 그렇기에 하늬의 말에 바로 정색이 돌아왔다. 그러든지 말든지 시우는 꿋꿋이 자신들의 사정을 밀어붙였다.



"이런, 일반적인 사람들은 맞이하기 힘든 경우를 도와주는 게 환생자의 역할 아니겠어?"

"이미 도와주고 있는데? 혹시나 모를 심연의 오염을, 머나먼 스위스까지 직접 와서 점검하고 있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와... 우리 동생, 언제 이렇게 뻔뻔해졌는지 모르겠네?"

"누굴 보고 배운 탓이지. 여기까지만 할게."



더 치사한 논리가 있다.



스물을 넘어간 남성이 하기에는 좀 쪽팔리는 논리. 어른이 돼서 부모님께 이른다고 하면 굉장히 찌질해 보인다.



하지만 그 어른이 반쯤 성인의 경지에 닿은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 이하의 비적합자지만, 나름대로 각성한 경지에 닿은 광배가 보이는 인물이니까.



심연의 지식도 손시훈, 손시우, 손시연의 아버지인 손영철이 여러모로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것을 시우의 표정만으로 눈치챘는지 손시훈은 그저 신음소리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끄음...!"

"그래서, 어떻게 할까?"

"가상 가족 데이트로 임상 시험이라도 해보든지..."

"진지하게 말하라고. 나는 휘말린 감이 있어도 하늬는 꽤나 진지하단 말이야."

"나도 진지하게 말하는 거거든? 혹시나 카닌 그 아이가 이걸 계기로 너에게 진지하게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일 아니냐? 뭐든 직접 경험을 해 봐야지 알 수 있는 일 아니겠어?"

"갑자기 무슨 개소리를...."


어이가 없어하는 동생을 무시하고 하늬에게 말을 이어가는 시훈


"하늬야. 시우 아빠와 카닌 언니가 엮인다고 해서, 굳이 경태 아빠와의 연이 크게 끊기지는 않아... 그럼 모두가 좋은 결과가 도출되지 않을까? 카닌 언니는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엄마의 포지션을 차지하고, 경태 아빠에게도 나름대로 열린 문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여지가 생기고..."

"아니, 잠깐, 내 의사는?"



시우가 어이없다는 듯이 계속 말하지만, 한 명의 환생자와, 한 명의 어린 소녀는 차마 들을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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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잠깐2 21.04.21 21 1 12쪽
» 잠깐 21.04.20 25 2 14쪽
270 불청객2 21.04.19 38 2 13쪽
269 불청객1 21.04.16 21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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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유혹3 +1 21.04.14 57 2 13쪽
266 유혹2 +1 21.04.13 52 2 13쪽
265 유혹 21.04.12 54 2 13쪽
264 바닥 아래6 21.04.09 22 1 13쪽
263 바닥 아래5 +1 21.04.08 31 1 13쪽
262 바닥 아래4 21.04.07 22 1 13쪽
261 바닥 아래3 21.04.06 23 1 12쪽
260 바닥 아래2 21.04.05 24 1 13쪽
259 바닥 아래 21.04.02 26 1 13쪽
258 유적2 21.04.01 2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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