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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bot 님의 서재입니다.

형의 사령마를 떠맡게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WritingBot
작품등록일 :
2020.05.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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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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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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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유혹3

DUMMY

정확하게, 손바닥이 이마에 딱 하고 닿는 순간. 닿기 직전도 아니고, 두개골을 깨부수고 난 이후도 아니다. 그 순간에 시야가 새카맣게 물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바닥이 상대의 이마에 닿았을 때의 일을 세세하게 떠올린다.



시야가 검게 물들기 이전의 미묘한 감각. 온몸이 내지른 장타의 반동과는 다르게 몸이 미세하게 떨렸던 것 같다.



마치... 블루베리의 능숙한 전이마법을 받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환영이 아니라는 강렬한 확신이 든다.



그 확신과 함께 시우는 잠시 자신의 손을 살펴보았다.



빛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검정만으로 가득 찬 공간. 빛이 나오는 조명이라고 할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손이 보이는 기괴한 경험을 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비현실적일 정도로 손과 팔이 또렷하게 보인다. 마치 보이지 않은 윤곽선을 머릿속에서 그린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하지만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이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면 이게 더 위험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 뜬금없이 낯선 공간에 떨어진 셈이니까.



극한의 상황에 갈수록 마법이란 건 빛을 발하는 게 아니니까. 구조 신호를 보낸다던지, 생존을 위한 여러 수단을 마련한다던지... 괜히 비적합자 차별이라는 게 있는 게 아니다.



이럴 때는 D랭크 적합자가 시우보다 더 구출받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그래도 구조 신호 정도는 자신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 있다. 도구는 쓰라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 도구인 품속의 조명탄 발사기를 꺼내는 시우. 이어서 한 발의 조명탄을 높게 쏜 시우는 살짝 굳은 표정을 풀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조졌네...."



검은 도화지에 붉은 점을 찍은 것처럼 조명탄의 빛이 퍼지지 않고 빨려들어가고 있다. 선명하기는 하다만, 저래서는 거리가 조금만 멀어져도 보이지 않을 거다.



그와 함께 형의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아무것도 없다면 D랭크, C랭크는 물론이고, B랭크, A랭크 적합자보다도 더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긍정적이긴 개뿔. 부정적으로 생각해보면 남들보다 더 오래 굶주림에 고통받으면서 가게 생겼다.



.

.

.



진짜로 굶어 죽을까 봐 무서워서 단전을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컴퓨터로 따진다면 절전모드쯤 되겠지.



이 공간에 떨어진 지 시간이 꽤 지났을 텐데 배고픔도, 목마름도 느껴지지 않는다. 불행 중에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제자리에서 버틸 뿐



작게는 길을 잃었을 때부터, 크게는 조난을 당했을 때까지의 중요한 원칙이니까. 딱히 주변에 위험한 것도 아닌데 괜히 이동을 해서 구조대를 난처하게 할 필요가 없다



.

.

.



자신의 시간 감각이 뒤틀린 건지, 아니면 이 공간 자체가 시간을 뒤트는 힘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체감상으로는 3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허기와 갈증이 느껴지지 않고 있으니까.



공간 자체도 여전히 검정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서 변화가 딱 하나 있다면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저 너머의 검정 속에서 달콤하고 시원한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는 것. 무엇이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과일의 향기 같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의 근원지가 제대로 된 것일 리가 없겠지. 그 생각과 함께 시우는 그저 눈을 감았다.



.

.

.



=지독한 녀석

=역겨운 영혼이 고스란히 끼어들어 있으니 어쩔 수 없어

=영혼도 영혼이지만 교육의 영향이 있을지도



어쩌라는 것인지...



눈을 감고 또다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들려온 목소리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앳된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처음에는 힘을 내라는, 기운을 차리라는 뜬 구름 잡는 소리. 하지만 그 모든 목소리를 시우는 깔끔히 무시했다. 처음 듣는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면, 상황이 상황인데 의심부터 해야 할 테니까.



그렇게 몇 시간 정도 또 무시를 하니 이제는 험담을 조금씩 찌르듯이 하고 있다.



이 험담을 하는 이들에게 약간의 불행이 있다면 그 험담이 시우에게는 마냥 듣기 싫은 것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손시훈의 험담과 섞어서 하는 것인데 반은 너무나도 와 닿지도 않는 이야기라서 쉽게 무시할 이야기. 나머지 반은 와 닿지만 너무 맞는 말이라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니까.



다시 말하지만 손시우는 손시훈을 공적으로는 존경해도 사적으로는 영 글러먹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러시던지 하면서 쭉 뻗어있던 시우는 자신의 뺨을 톡톡 치는 감각에 눈을 떴다.



마주하고 있는 건 새카맣게 칠해져 있는 한 쌍의 눈. 적운흉풍의 눈이 흑요석처럼 검지만 빛난다면, 이 눈은 약간의 광택조차도 없다.



어지간하면 화들짝 놀랄만한 모습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라 그다지 놀랍지 않다. 그렇게 일어선 시우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히 드러누워서 움직이지 않았는데, 주변의 풍경이 변해있다.



배경은 여전히 빛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검정의 한가운데다. 하지만 자신이 눈을 감기 전에는 아무것이 없었다면 지금은... 정체불명의 우물가에 와 있다. 마치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세상이 움직이면 된다는 것처럼...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시우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어린 소년, 소녀들이 또다시 자기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머리는 좋아.

=그 녀석은 작게는 욕을 먹고, 크게는 통수를 맞을 위험을 감수하고도 머리 좋은 녀석들을 선호하니까.

=우리가 말하는 그 녀석.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아?



궁금하기에는 은근히 노골적이다.



=피로그라니아

=위센트

=지금 이름은 손시훈이군, 몇 번 썼지?

=시시콜콜하게 따진다면 지구 출신이니까.

=어느 세상이든 쓸 수 있게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은 예옥(霓玉)이지

=아직도 인간이야

=신기하게도

=지금도 충분히 인간을 그만둘 수 있는데

=인간인 상태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란 호기심으로 버티고 있지

=너도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아?



말을 듣다 보니 시우는 어느새 자신이 컵을 하나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기는 흔히 자판기나 정수기에 사용되는 종이컵과 비슷한 크기. 거기에 담겨있는 물은 맑고 투명하다. 양은 대충 작게 세 모금쯤 될까. 목이 마른 이는 적절하게 갈증을 달랠 만하고, 목이 마르지 않아도 부담스럽게 마실만한 수준이다.



그 컵을 쥔 손을 시우는 무의식적으로 입가에 가까이 가져갔다가 멈추었다.



분명히 이 물은 저 우물의 물이리라. 그럼 우선 저 우물의 내용물부터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다가간 우물도 맑은 물을 담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컵에 담겨 있는 물은 아무런 향도 나지 않는데, 우물에서는 미묘하게 달고 상쾌한 향기가 올라온다는 것 정도?



그 미세한 차이점을 구분해낸 시우는 지금까지 꾹 닫고 있었던 입술을 열었다



"뭡니까."

=우리들의 배려지

"배려요?"



다시 우물물을 보자. 여전히 맑고 투명하다. 하지만... 사원의 가장 아래에 있던 웅덩이도 보기에는 맑은 물이었지. 실상은 그 아래에 수많은 시체가 던져지고, 뼈를 뺀 살은 흔적도 없이 녹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배려를 한 것이지.

=그냥 마시기에는 너무 진하니까.

=아니면 잔이 너무 작아서 그런 건가?

=너무 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잔의 크기가 크고 작다가 중요한 게 아닌데.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시우의 고개가 절로 돌아간다.



그 자리에 있는 건 우물 하고는 참 어울리지 않은 작은 진열대.



좀 전에 주변을 살펴봤을 때 저런 게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는 한편 시우는 자신도 모르게 그 진열대를, 그 진열대에 놓여 있는 잔들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있을 건 종류별로 다 있다. 커다란 맥주잔부터 와인잔이나 칵테일 용 잔, 그리고 작은 양의 커피잔이나 찻잔 소주잔까지.



=옛날에는 더 화려했는데 말이야

=하나같이 손을 놓아버리면서 초라해졌지

=아직 있을 건 다 있지만

=더 많이 마시고 싶거나

=더 적게 마시고 싶거나

=그냥 다른 잔에 마시고 싶거나

=원하는 대로 하면 돼



원하는 대로라.



"마시고 좋은 꼴이 되는 걸 못 봤는데요."

=욕심을 내서 그런 거야.

=자기 자신에게 먹혀버릴 정도로 나약한 주제에

=딱 한잔만 마신다면 그런 일은 없지



다시 잔이 시우의 입술에 가까워졌다.



"그래서 마시면 정확히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알면서 왜 물어보는 것일까?

=메마른 땅에 파묻혀서 그저 기다리고 있던 씨앗이

=비를 맞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처럼

=너 자신이 크게 자라나는 것이지

=평범한 비는 아니지

=양분이 섞여 있으니까, 비료와 똑같아

=지나치면 독이 되지.

=물도 소금도 꿀도 너무 먹으면 죽는 것처럼

=하지만 적당히라면 괜찮아



원하는 대로라고 했지만, 그것은 마시는 범주 이내에서 원하는 대로라는 뜻이겠지 아주 안 마시는 건 안될 것 같다.



겉모습은 어린 소년, 소녀들이다만, 본질은 한 사람으로서는 절대로 감당을 할 수 없는 괴물들. 이 자리에서 자신을 해칠 수는 없지만, 반대로 자신 또한 그 배려에 대한 예의를 보여야 한다는 지식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그래, 예의

=중요한 것이야

=성의에는

=최소한의 대답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좋다, 마시자.



아랫입술이 잔의 끝에 닿고, 윗입술이 젖는다. 그리고 한 모금의 물이 시우의 혀를 적시고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시우는 맑은 물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달콤한 맛을 느끼며 자신의 아랫입술에서 잔을 뗐다.



다 마시지는 않았다. 아직 잔에는 두 모금 정도의 물이 남아 있다.



그것을 보지도 않고 알아차렸는지 목소리들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왔다.



=홀짝?

=고작 한 모금이라고?

=모자라지 않아?



세 모금, 총 한 컵의 양은 딱 시우의 영혼에 복제된 손시훈의 영혼을 깔끔하게 녹여낼 만한 양이었다. 마셔보니 확실히 알겠다.



한 모금 정도의 양으로는 자신과 형의 영혼 사이에 경계선만 뚜렷하게 그어졌을 뿐이다. 두 모금을 마셔야지 형의 영혼이 녹아서 자신의 영혼이 자라날 틈이 생길 것이고, 마지막 세 모금에 자신의 영혼이 바로 자라나서는 그 틈을 채울 것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이도 저도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 그래도



"이만하면 충분히 여러분의 성의에 대한 예의를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네가 정하는 게 아닐 텐데



대답하는 차가운 목소리는 하나였지만 분노가 느껴지는 시선은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그러나 그 시선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우는 자신의 생각을 덤덤히 말했다.



"아뇨. 원하는 대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시는 양은 제가 정하는 것입니다."

=기회는 한 번뿐이야.

=네가 순수해질 네가 될 기회 말이야.

=이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사람은 원래 후회를 하면서 사는 것이다...라고 저의 형이 말하더군요."



여기까지 말하자 시우는 스멀스멀 퍼지던 실망의 기색이 확 굳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과 함께 눈을 깜빡이자 수많은 소년, 소녀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이들을 향해서 시우는 확실히 쐐기를 박았다.



"형의 영혼이 더 이상 제 몸에 없다고 하더라도 형의 힘으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형의 영혼이 있든 없든 저는 저라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한번 더 깜빡. 그러자 남아있는 건 생글생글 웃고 있는 딱 한 명의 소년뿐이었다.



하지만 그 소년은 먼저 떠난 이들보다도 더 큰 실망과 분노를 품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래도 시우는 그 소년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좋아. 잘도 저질렀다 이거지?

"그렇게 된 것 같군요. 그래서요?"

=... 우리는 너를 여기에 초대했고, 너는 상당히 무례했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차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이지만, 이곳에서도 주인과 손님 사이에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접대의 관습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마지막 예의를 베풀어주마.

"마지막 예의요?"

=경고다. 나는 나잇값을 해서 점잖게 손을 뗄 생각이다만, 먼저 간 싹수 노란 놈들은 어려서 그런 예의가 좀 모자라거든.

"무슨 뜻이죠?"

=너에게 간접적으로 손을 댈 거라는 소리지.

"예? 아니, 뭐 그딴..."

=난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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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바닥 아래5 +1 21.04.08 3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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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바닥 아래2 21.04.05 2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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