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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bot 님의 서재입니다.

형의 사령마를 떠맡게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WritingBot
작품등록일 :
2020.05.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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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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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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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불청객2

DUMMY

도박이라면 나름대로 도박이었다.



이론상으로도 그렇다. 시우의 영혼 속에 복제된 손시훈의 영혼에게도 권리가 있기는 한데, 그건 어디까지나 반쪽짜리 권리니 말이다.



그래도 그 권리는 훌륭하게 발휘되어서 이 심연 속에 다시 빠져드는 데 성공했다.



다만...



"... 안녕하십니까?"



시작부터 빡빡하다. 빠져들자마자 자신을 향한 악의들과 마주하게 되었으니까



검정 속의 똑같은 검정이지만 선명하게 윤곽이 느껴진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혀가 안쪽으로 말릴 정도의 거대한 짐승들. 여러 모습을 지닌 그들이 똑같이 보이는 반응은 어중간한 권리로 끼어든 시우를 굉장히 못마땅해한다는 기미가 흘리고 있다는 거다.



만약에, 평범한 이가 이렇게 끼어들었다면 그들은 그 사람을 바로 흔적도 없이 찢어버렸을 것이다.



그 사실에 살짝 몸이 떨려왔다. 하지만 심연의 지식에 따르면 이들은 시우를 해치지 않을 거다.



조금 속된 말로 하자면 그들은 꼰대들 중에 꼰대들이고, 나름대로 원리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자들이니까. 늘 하던 대로 시우의 속을 읽고, 돌아가는 상황을 알았기에 그들은 못마땅해도 시우의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이윽고, 잠시 뒤 그들은 시우의 앞에 너덜너덜하게 갈려진 짐승을 끌고 왔다.



그와 함께 사라지는 짐승들. 대충 빨리빨리 끝내고 사라지라는 기세가 느껴진다.



이런 시우를 두고 남겨진 짐승은 꼴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흉하게 된 아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시우에게 마지막까지 남아서는 경고를 날렸던 그 소년. 인간이었다면 진작에 시체가 되었을 그 모습에서 좀 전의 기세 등등함은 완전히 사라져 있다.



=너... 기껏 경고를 해 줬더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꼰대분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단순한 뒤통수라면 제가 건방지다면서 갈기갈기 찢겼겠죠."



말대답에 시우를 노려보는 소년. 그 시선을 덤덤하게 받아준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조금 더 유리한 건 자신이니까. 빨리빨리 시우의 용건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더 곤란한 건 저쪽이다. 그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지 '애새끼들의 뒤처리를 왜 내가 해야 하는 거냐.'며 중얼거리는 소년의 손이 움직였다.



이 손길에 맞춰 주변의 풍경이 통째로 휙휙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마도 자신 또한 이렇게 그 우물가로 데려다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을 더 해보자 시우는 나름대로의 지독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가만히 쭉- 뻗은 상태로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움직이겠지. 하지만 그 움직임은 부질없는 움직임이다. 아무리 걷고, 달리고, 심지어 날더라도 세상을 통째로 움직여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사람인 이상 결국 계속해서 움직이면 지치기 마련. 물리적인 시간은 멈춰있어도 정신적인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정신적인 허기와 갈증을 느끼고 있을 때 우물가가 눈앞에 딱 나타나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예의범절 운운을 꺼내면서 마실 것을 반쯤 강요했지만, 대부분은 그럴 필요도 없다.



아니, 은근슬쩍 경고를 한다.



컵으로 걸러서 마시면 괜찮지만, 우물의 물을 직접 퍼 마시면 안 된다고 말이다.



그에 컵으로 한잔을 마시고, 달콤한 맛에 조금은 괜찮을 거라면서 컵을 두고 우물의 물을 두레박으로 직접 퍼 마시고, 그러다가 우물에 뛰어들게 되겠지.



그럼 어떻게 되냐고? '주인님' 운운하던 무당처럼 노예가 되는 것이다.



=노예 운운하는데, 그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아.

"..."

=깊은 물의 가호로도 죽음을 쉽게 극복할 수 없지. 수명이 늘긴 해도 완전한 불로불사가 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우리가 가공한 가호라면 죽음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넌 무례와 함께 그 기회를 걷어찬 거다.

"너무 뻔뻔하신 것 아닙니까?"



실패한 시점에서 바로 목숨을 거둬가는 모습을 보여준 주제에 잘도 말한다. 하긴 노예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말했지, 노예가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우린 그런 쪽으로 거짓말을 하지는 않아. 사실만 말했고, 말할 거다. 너에게는 솔직하게 깊은 물의 가호가 있다면 온전한 네가 될 수 있다고 했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 심연의 가호와 당신들의 가호는 다르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않지 않았던 것 같은데.

=물어는 봤냐? 안 물어봤잖아? 그리고 깊은 물의 가호가 결국에는 알려줬잖아? 뭐가 문제지?



이쪽으로는 아예 말을 말자.



단지 엉덩이를 걷어차 줄 뿐이다. 그 거친 행동에 소년은 얼굴에 불쾌함 대신 비열함을 꺼내 들었다.



=아아, 좋아. 내가 적절히 시간을 끌고 있다는 걸 알았군. 그런데 네가 이렇게 재촉을 한다고 해도 결국 선택지는 그 병아리에 달려있는 거 알지?

"기대라도 하고 있는 건가?"

=당연하지. 아빠가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딸은 스스로의 본능에서 올라온 유혹을 견뎌내지 못하고 우물 속에 몸을 던지는 그 모습! 그때 아빠의 표정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3류 다운 말 많은 악당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소년. 하지만 저 말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험들을 살려서 그는 절묘한 때에 맞춰서 시우를 그 우물가에 데려다 놓았다.



보이는 것은 살짝 안절부절못한 상태의 한 소녀. 처음 보는 소녀지만 청회색의 머리칼이 사람이 된 하늬라는 것을 시우에게 알려주고 있다.



상태는 좋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눈꼬리가 살짝 쳐져있고, 숨이 흐트러진 것이 지친 상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니까.



거기다가 주변에는 수없이 많은 소년, 소녀들이 몰려와 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주변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으면 불편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런 하늬에게 재빨리 다가가려는 시우를 향해서 검정 속에서 그림자가 꿈틀거리면서 촉수처럼 일어섰다.



=너를 죽이는 건 곤란한 일이지만, 조금의 고통을 주는 건 문제가 없거든



가시처럼 날카로운 끝부분을 꿈틀거리는 모양새가 딱 봐도 영 좋지 않아 보인다. 그 끝이 노리고 있는 것은 팔다리. 혈관은 피하는 대신 신경이 많이 몰려있는, 손상 시 끔찍한 고통을 유발하는 자리다.



그에 반사적으로 방어자세를 취하려는 시우였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더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이 말과 함께 촉수들이 시우를 향해서 뾰족한 끝을 쭉 뻗는다. 그리고 어림도 없다는 듯이 시우의 머리 위와 뒤에서 빛이 쭉 퍼지며 촉수들을 몰아냈다.



=무, 무슨...?



시작은 비아취월의 날과도 같은 연한 초록색의 빛. 원형 고리와도 같이 펼쳐진 그 테두리에서 무지갯빛이 흘러나온다. 그렇게 흘러나온 무지갯빛은 검정으로 채워진 이 공간에 색색의 빛을 칠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가려져 있던 수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작은 사라졌던 것으로 보였던 수많은 짐승들의 모습. 관심 없는 척, 짜증 나는 척했지만 그들 또한 이 상황이 흥미진진한 연극 같았나 보다.



본질의 한쪽은 짐승이지만, 다른 한쪽은 아이 같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왜 이런 말 있지 않은가. 순수한 아이들이 나쁜 짓을 하지 못하는 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착해서가 아니라 몸이 못 따라줘서라고. 그런데 그들은 여러모로 능력이 따라주고 있다.



그런 그들이 원했던 건 여러모로 악의로 가득 찼던 상황. 이리저리 촉수에 꿰뚫려서 고통의 신음을 흘리는 시우와, 그를 보고 패닉에 빠진 하늬에게 어린 애송이들이 부추기는 모습



그리고 아빠를 구하고자 한 행동이 자신의 파멸을 부르는 결말일 것이다.



이 결말을 위한 연극이 절정의 시작에서 뭉개졌다.



반응은 가지각색. 엄청난 실망을 보이는 이도 있고,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안타깝지만 이 또한 재밌는 전개라며 흥미를 보이는 쪽도 있다. 그리고 수는 정말로 적지만 처음부터 시우를 응원했는지 이래야지 공평하다면서 만족을 하는 이도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약간은 여유는 있다는 것. 어차피 자신들은 관객이지, 배우가 아니다.



그 배우들 중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소녀가 입을 열었다.



"... 아빠?"



마치 나쁜 짓을 하고 있다가 들킨 것처럼 안절부절못하지 못하고 있다.



딱 봐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긴 하다. 머리 위에 떠 있는 고리와 머리 뒤에 떠 있는 빛의 고리.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만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 빛의 손시훈의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 테니까.



그에 네 잘못은 없다는 말을 하려는 시우. 하지만 입이 열리고, 성대가 떨리고 혀가 움직여도 소리가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소리가 공기째로 딱딱하게 얼어붙은 것 같다.



누가 막고 있는지는 뻔한 일. 이 연극의 또 다른 배우들인 소년-소녀들이다. 표정에는 시우와 비슷한 초조함이 흐르는 것이 극본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을 하려고 노력하는 티를 숨기지 못하고 있다.



하늬도 하늬다만, 나름대로 관객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처지가 상당히 비참해질 테니까.



그렇기에 그들은 나름대로의 화법을 최대한 교묘하게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기다리고 있네

=착한 아이라면 아빠도 곤란하게 하지 않고

=친구들도 곤란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자, 어서.



자신들의 가슴속에서 터질 것 같은 조급함을 최대한 억누른 말들. 그런 말을 하는 얼굴들과 시우의 얼굴을 번갈아서 쳐다본다.



그렇게 수상함을 느끼고 망설이는 하늬에게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벽화를 봤잖아.

=충분한 의지가 있다면 사람인 상태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

=이제 경태 아빠와 함께 그저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다고?

=아빠와 최대한 많이 있고 싶잖아?



이 말을 하자마자 시우의 주변에서 얼어붙은 공기가 풀린다. 그리고 시우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라는 목소리가 목구멍에 튀어나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것이 정답이었는지 소년들과 소녀들의 표정들이 딱딱해진다. 대충 시우가 부정적인 말을 하면 아빠라서 걱정하는 거고, 너는 할 수 있다면서 부추기려고 했겠지. 그리고 그들이 시우의 입을 다시 막자마자



불편함이 공기를 가득 채웠다.



하늬가 나락으로 굴러 떨어 지기를 원하는 쪽이든, 중립적인 쪽이든, 정말로 소수인, 시우를 응원하는 쪽이든 슬슬 짜증이 나는 거다.



극의 절정에서 멈춰 선 꼴이니 슬슬 질리기 시작할 때



이 가운데서 하늬가 말했다.



"아빠는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저들이 그러했듯이 단호하게 사실로 답해주자.



"글쎄. 중요한 건 네가 정하는 거야. 참고로 나는 한 모금만 마셨어."

"좋아요."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



바로 한 컵의 물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입안에 잔뜩 퍼져나가는 달콤함에 자연스럽게 황홀한 표정을 짓는 하늬. 살짝 지쳐있는 상황에서 갈증이 해소되는 것 이상의 반응이다.



그 모습을 보며 손에 땀을 꽉 쥐는 시우를 두고, 소년-소녀들이 말했다.



=맛있지?

=조금 더 차분하게 마셔도 괜찮지 않을까?.

"괜찮... 을지도"



살짝 혼이 빠져나간 표정. 그 얼굴과 함께 하늬는 천천히 우물가로 천천히 다가간다.



그렇게 컵을 내려놓고 두레박의 줄을 잡는다.



모두가 여러모로 끝났다고 생각할만한 모습. 분위기도 나름대로 굳혀진다. 거기서 하늬의 몸이 멈춰 섰다.



=....

"..."

=....

"저기. 제가 계속해서 사람인 상태로 있으려면 얼마나 더 마셔야 하나요?"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하늬가 나지막하게 질문을 던진다. 아마도 충분히 사람이 될 때까지 마실 생각인 모양.



그 질문에 굳혀진 분위기가 뒤집혔다.



만약에 하늬의 질문이 '얼마나 마셔야' 하냐는 것이었다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틈이 있었을 텐데. '얼마나'와 '마셔야'사이에 '더'라는 단어가 추가되면서 그 틈이 막힌 것이다.



여기서 딱 한 사람을 빼놓은 전부는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 한 사람도 여기서 거짓말을 말할 이유는 없었다.



"계속해서 사람이 되려고 하면, 사실 한 모금으로도 충분하지?"

"그런가요? 다들 감사했습니다."



바로 정중하게, 소년-소녀들에게 인사한다. 그에 주변에서 난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탄식, 실망, 분노, 환호, 쾌감



여러 감정들이 섞인 이 난리는 순식간에 큰 다툼이 됐다. 연극의 결말에 어떻게든 납득한 쪽과, 납득하지 못한 쪽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 고래들 사이에서 새우처럼 터져나가는 소년-소녀들은 덤이다.



이 난리의 틈 사이를 재빨리 파고드는 시우.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달려온 하늬의 손목을 붙잡고는 빨리 외쳤다.



"끝났으면 저희는 이만..."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이, 동시에 불청객은 이만 꺼지라는 듯이 시우와 하늬를 검은 손길들이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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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바닥 아래2 21.04.05 24 1 13쪽
259 바닥 아래 21.04.02 26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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