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 도전기.-사람은 아는 만큼만 본다.
"박 과장! 테니스 게임에 가장 필요한 인력이 뭐야?"
사장은 나와 연 과장을 불러 진지하게 물었다. 테니스 게임은 너무 열악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리뉴얼 작업을 위해서는 UI의 교체와 신규 아이템 출시가 절실했다.
"UI 디자이너와 모델러가 필요합니다. 가능하다면 애니메이션 인력의 지원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거면 충분한거야?"
"충분하진 않지만 최소한 구색은 갖출 수 있습니다. 사장님."
사장의 반문에 나 대신 연 과장이 대답했다. 사장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너희 둘이서 UI 디자이너 인력 찾아봐."
"네! 그럼 일 보러 가겠습니다. 충성."
나는 인사를 하고 사장실을 나섰다. 그래픽실의 꼬장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테니스 팀의 그래픽적 작업을 요청하면 개구리 팍팍 프로젝트 때문에 작업이 어렵다 말하고 개구리 팍팍에서 일을 맡기면 테니스팀의 작업때문에 어렵다는 핑계를 대었다.
처음에 테니스 게임의 상태를 설명한 적이 있지만, 절망적인 게임이었다. 어떻게 이런 게임이 상용화 되었는지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래픽적인 작업은 1년 전을 끝으로 업데이트 되었던 적이 없으며 신규 아이템은 출시 된 적이 없었다. 이 게임을 하고 있는 독일의 유저들이 너무 착하다는 생각밖에는 할 수 없었다.
난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그래픽 인력에게 굳이 기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나는 맡겼던 그래픽 작업물을 전면 폐기했다. 두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매번 다른 팀을 이유로 작업물의 진척이 없으니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나았다. 일이란 것은 일하고 싶은 자에게 맡겨야 한다. 모든 아이템은 일단 그래픽적인 작업을 거의 없다시피해서 진행하기로 했다. 프로그램실의 인력이 가라앉아 있지만, 그들을 활용해 기능적인 것으로도 충분히 상품성을 갖출 수 있기에 굳이 비협조적인 팀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이콘만 40개 정도를 작업해 달라고 그래픽팀에 부탁했다. 보통 아이콘 작업은 아무리 탱자탱자 논다고 해도 하루에 3-4개는 충분히 그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작업을 맡기면서 이미지까지 첨부했으니, 그 작업 마저 크레임을 건다면 정말 회사에 놀러온 것 밖에 안되기 때문에 그래픽 실장은 작업 의뢰를 수용했다.
아이콘이라는 것은 단순하다. 그저 작은 점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이미지 일뿐이다. 이 이미지를 가지고 기능을 추가해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해 유저에게 돈을 갈취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나는 단순하게 나가기로 했다. 프로그래머들이 조금만 코드를 추가하면 돈이 될 수 있도록 아이콘 하나 하나에 기능들을 넣기 시작했다.
테니스 라켓의 그립 이미지에 능력치를 추가했다. 아이콘을 가져다가 라켓에 놓으면 능력치가 라켓에 부여되는 방식으로 아이콘 외에 다른 그래픽적인 작업은 필요치 않다. 물론 이펙트가 필요하긴 했지만, 그런거야 기존에 있는 이펙트를 대충 쑤셔박으면 그만이었다.
그 외에도 신분증 재발급이라는 명목으로 캐릭터의 이름을 바꿀 수 있는 아이템을 주어 캐릭터 생성 초기의 네이밍 판넬 UI를 띄워 이름을 바꿀 수 있는 아이템을 추가했다. 이름의 색상을 변경할 수 있는 크레파스를 설정했으며, 게임의 전적을 초기화 할 수 있는 선수등록증을 설정했다. 그 외에도 나머지 30개의 아이템은 모두 아이콘 하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종류로 기획 해버렸다. 하긴 아이템이란 것이 기획자의 일에 포함되기는 해도 비중있는 역할은 아니기에 기획이라고 말하기도 뭣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이름을 짓는 것이 어려웠다. 타당한 이름이 없다면 아이템의 설명란을 채워야하는데, 여러 개의 언어로 서비스 해야하기 때문에 번역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아이템명으로만 명확하게 사용법이 드러나도록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전에 있던 기획자들이 그래픽팀이 비협조적이라 일을 할 수가 없었다는 변명아닌 변명을 하는 바람에 게임에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인수인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저 알아서 찾아 일을 처리하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나는 게임을 분석하면서 한숨밖에 안나왔다. 실제로 테니스라는 프로젝트를 맡아 처리하면서 없었던 새치가 지금은 손대기조차 무서울 정도로 늘었으며, 흰수염에 콧털까지 흰털이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도 원치않는 자리를 차지하면서 인수인계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데다가 자신들은 열심히 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게임을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처음 게임을 훑어보기 시작한것은 아이템과 실제 보이는 아이템이 일치 하는가 였다. 물론 전에 언급한 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답답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캐릭터의 상점 판매 이미지와 실제 착용아이템이 틀린 것이 여러 개였다. 한번만 이렇게 찬찬히 훑어봐도 발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안경 아이템에 당당하게 귀걸이라고 적혀있는 이상황은 뭐란 말인가.
혹시나해서 데이타 베이스를 뒤졌다. 테니스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로 개발되어야 하는 게임이었다. 영어와 몇개 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람이 관리한 데이터는 엉망이었다. 외국어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이상했다. 모르는 언어였지만 규칙성이라는 것이 있었다. 척보기에도 규칙성이 다른 언어가 네임 항목에 들어 있음에도 수정하지 않은 상태로 서비스 되고 있었다.
화일 관리조차 엉망이었다. 대체 최신 업데이트 판 화일은 어디에 있는지 SVN(여러 사람이 공용으로 열람할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을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비슷한 이름들의 화일을 모두 열어 하나씩 대조하고 최신 업데이트 데이터를 직접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작업이 끝나자 UI 디자이너를 물색하기 위해서 게임잡을 뒤졌다. 그 중에서 두 명의 후보를 찾았는데 둘 다 저렴한 연봉에 훌륭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테니스에서 3D 로비를 구현하는 데 플래쉬를 사용해 UI를 적용하겠다고 해서 스크맆터에 대한 업무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했기에 두 명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사장실에 들어갔다.
"응? 박 과장. 무슨 일이야."
"괜찮은 UI 디자이너를 발견했습니다. 여기 한 번 보시지요."
나와 연 과장은 두 사람의 포트 폴리오를 사장님게 보여 주었다. 한 사람은 스포츠 게임을 만들던 회사에 다니던 사람이었고 한사람은 정확히 기억 나진 않지만, 다른 캐쥬얼 게임의 UI 디자이너 였다. 둘다 아기자기한 색감을 가지고 있어 연 과장과 내 마음에 쏙 들었었다. 그래서 사장한테 보고한 것이다. 사장 역시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둘 다 불러서 그 중 한사람 뽑아라. 괜찮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사장실을 나와 둘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 가를 놓고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은 베이스 볼 게임 UI를 디자인한 남자를 뽑기로 했다. 아무래도 작업을 하기엔 남자가 우리에게 더 유리했기 대문이었다. 그러던 중 네이트 온으로 사장의 호출이 들어왔다. 나는 곧바로 댓글을 넣고 사장실로 직행했다. 사장실에서 나온지 30분도 안되어 또 들어간 것이다.
-똑!똑!똑!
"들어와!"
"찾으셨습니까. 사장님."
나는 들어가자마자 인사부터 했다.
"거기 앉아."
"네, 사장님."
"이 창열 실장이 둘은 안 되겠다던데? 유행이 지난 디자인이라고 하더라고......"
"그럼 사장님게서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제가 보기엔 그 두 사람 다 유능해 보입니다만."
"일단 이 실장하고 얘기해봐."
"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의 말에 나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이 창열 실장에게 걸어갔다.
"이 실장님. 두 사람 다 마음에 안드신다고 했는데 이유가 뭡니까?"
"형...... 아니 박 과장님 그 정도 실력은 저희 그래픽팀 중에 누가해도 다해요."
'엿 먹고 있네. 그럼 해봐. 색맹아!'
속으로 나는 욕을 퍼부었다.
"우리 테니스 게임에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보입니다만....... 따로 생각해 두신 사람이라도 있습니가?"
"예. 제가 한 명을 발견했는데 경력이 7년정도 되고 색감도 훌륭합니다."
"제일 중요한 스크맆트 경력은 있다고 합니까?"
"물론이죠. 그 정도는 경력 7년차면 다 할 줄 압니다."
이 창열 실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물러 나왔다. 플래시를 사용한 UI가 나오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정도는 할 수 있다고 말하니 그냥 믿기로 한 것이다. 뭐...... 결론적으로 말하면 뒷통수 맞았지만 말이다.
얼마 후 회사에 나타난 UI 디자이너는 여자였으며, 나이도 좀 있었다. 계속 붙어서 일을 해야하는데 약간 부담스러웠다. 아무래도 남자들과 일하는 편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정혜진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테니스 팀을 맡고 있는 박종성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많이 도와 주시길 바랍니다."
어찌 되었든 같이 일 할 사람이니 정중하게 인사했다.
"네, 저도 잘 부탁합니다."
"우선 테니스 업무 얘기는 며칠 후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일단 자료 찾고 컴퓨터도 세팅해야하고 할 일이 많으실테니 일 얘기는 잠시 미뤄두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팀장님."
인사를 하고 정혜진씨가 자리에 가자 나는 4층으로 올라가 테니스 회의를 시작했다.
"자 모두 편하게 회의 합시다. 회의는 짧게 하시고 억지로 어제 한 일을 꾸미시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못 알아듣는 말이 많아 오래 얘기한다고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예."
모두 나의 말에 짧게 대답했다. 아직도 나를 신뢰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앞으로는 기획서에 기획 목적과 예외처리같은 기본적인 사항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찢어 주십시오. 앞으로 여러분들이 누가 지금 제자리에 오더라도 명심하셔야 할 겁니다. 여러분들이 그간 어덯게 일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전까지 받아보신 땡깡서는 모두 잊으시고 앞으로는 여러분이 요구하십시오. 어떤 식으로 기획서가 나오는 것이 가장 편한지 말씀하시면 제가 그 방식대로 기획서를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회의 도중 상대방에게 질문하는 것은 자제해 주시고 필요할 때는 회의 도중 '이따가 얘기합시다'라고 말씀하시고 회의가 다끝난 뒤에 따로 하시기 바랍니다."
"진짜요?"
테니스 팀의 클라이언트를 맡고 있는 곽철승씨가 반문했다. 이 사람은 나와 입사 동기인데 하도 조용해서 존재감이 희미했다. 나중엔 이사람때문에 술을 밥먹듯이 해야 한다는 것은 넘어가기로 하자.
"당연하죠.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지 회의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회의 좋아하는 회사치고 일 잘하는 회사를 본적이 없습니다. 회의는 안건과 의문점을 인식하는 작업이지. 결론을 내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결론이 필요한 회의를 이렇게 매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알겠습니다."
아침 회의는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전에 회의를 할때는 보통 15~20분 정도를 진행하던 회의를 10분 이내로 줄여버렸다. 짧게 말하고 서로 할 일들을 확인하는 것으로 간소화하였다.
"자 오늘은 3D 로비에 관련해서 오후 2시에 회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모두 시간들 괜첞으신가요?"
"네, 팀장님께서 정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소회의실에서 회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잊지말고 참석해 주세요."
그렇게 회의 일정을 잡고 회의 자료를 준비하느라 오전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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