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 도전기.-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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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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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35세....
뭔가를 시작하기에도 애매한 나이였다. 이대로 나이만 먹어가는가? 남자로 태어나서 뭔가 남들 앞에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는가? 누가 나를 알아주는데? 물론, 알아주는 사람이야 많다. 그들의 첫마디가 너무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도를 믿으세요?"
"조상덕이 좋으십니다. 한번 진지하게 저와 이야기 좀 해 보시죠?"
이렇게 실재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박종성님. 저희는 제 2 금융권..."
"박종성 고객님.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알지 텔레콤 박어콤입니다...."
정도가 굳이 나를 알리지 않아도 나를 알아봐(?)주는, 나의 존재감을 확인 해주는 사람들이었다.
제대하고 마땅히 할일이 없어 청원경찰로 한미은행에 들어갔다가 경비대장이 바뀌면서 마음에 들지 않아 단체 행동을 한답시고 뛰쳐나왔다. 뭐, 젊은 놈이 시작부터 비전없는 직장에 눌러 앉을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했다.
이왕이면 경호원이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제복 입고 현금 경호를 주로하는 경호 업체에 들어갔다가 운전 공포증으로 그만두고....
공항에 비행기 부품도 닦아보다가 띨띨한 상관이 답답해 밥먹다가 밥풀이 붙은 수저로 상관의 머리통을 쥐어박고 뛰쳐나오기도 하고....
그 뒤에 이왕이면 넥타이는 못메고 다니더라도 조금 머리쓴다는 직장에 들어가보자!라는 생각에 은행의 전산실로 들어가기도 했다. 그나마도 얼마 못버티고 IMF 한파에 버티다가 은행이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그렇게 20대 중반을 맞이한 나는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업체에 인력관리 및 제품 품질 관리 업무를 맡아 10년 넘게 한 직장에 종사하는 평범한 블루 칼라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이시대의 가장 평범한 사람 중의 하나다.
2006년 겨울....
나는 오늘 오토바이 타고 물건을 걷으러 갔다가 2층집 지붕에 뭐가 있나 확인하고 내려왔다. 헬멧이 보기 흉하게 깨져 나갔고 오토바이는 앞바퀴가 'ㄱ'자로 꺾였다.
절뚝거리며 나를 치고 앞에서 쓰러져버린 중국집 배달부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안 다치셨어요?"
"으...... 괜찮습니다. 아저씨는 많이 안다치셨어요?"
"아파 죽겠습니다. 그 좁은 골목길에서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달려나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나는 몸이 욱신거려 투덜거렸다. 치이려면 최소한 벤츠정도는 되야 쓰러져서 일어나지 않고 버틸텐데, 이건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 시티 100 이니 서로가 손해라고 생각했다.
하도 내게 들이받는 차들이 많아 갈래길이 나오면 무조건 일단 정지하는 내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오늘도 재수 무지하게 없는 날일 것 같았다. 등부터 떨어져 욱신거리는 몸이 분명 정상은 아니리라.
"어차피 둘 다 별볼일 없는데 그냥 헤어지죠? 아니면 보험처리하든가요. 제가 단가가 더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실래요?"
"네... 정말 죄송합니다."
내가 몸이 아파 좀 말이 삐딱하게 나왔나보다. 상대 청년은 미안해하며, 거듭 사과했으니 말이다.
배달부를 보내고 나서, 근처의 오토바이 수리점에서 사람을 불러 구겨진 오토바이를 끌고 가는데 참 처량맞다. 절뚝거리며 오토바이 가게로 걸어가 수리비를 주고 밖으로 나서서 전화를 걸었다.
- 뚜뚜뚜....철커덕!
"여보세요? 사장님.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오늘 오후 일은 못할 것 같습니다."
- 많이 다쳤어? 병원 안가봐도 돼겠냐?
"괜찮습니다. 아프긴 하지만, 걸어다닐만 합니다."
- 그래 알았다. 쉬어라. 무리하지 말고.
휴대폰을 덮고 아픈 몸을 이끌고 걸었다. 참 평화롭고 한가한 오후다. 몸이 아픈것과 이짓을 앞으로도 계속해야 한다는 자괴감이 내 가슴에 가득하다는 것을 뺀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웅~ 웅~ 웅~
"누구지? 여보세요?"
- 나다.
"창환이구나? 어쩐 일이여?"
- 시나리오 좀 써줘야 되겠다.
"됐어. 인마! 한 번 당했으면 됐지 무슨..."
- 이번엔 현찰 박치기다.
"그래? 진짜야?"
- 그래 이따 보자. 철산역으로 7시까지 나와라!
"그래 알았다. 이따 보자."
20년지기 친구인 창환은 게임을 개발하는 일에 10년 넘게 일해온 친구다.
재 작년이던가? 3월 쯤에 무협 게임의 시나리오가 필요하다면서 잘되면 인센티브 좀 주겠다고 해서 한 이주일정도 투자해서 대략적인 게임 설정과 캐릭터 특성 및 아이템을 잡아 준적이 있었다. 묵후라는 게임이었는데 나중엔 투쥐 온라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누적 가입 유저 80만에 이르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어쩐 일인지 중간에 흐지부지하게 사라지고 만 게임이었다.
당시에 시나리오 작가랍시고 회사에 찾아갔다가 별다른 이야기없이 되돌아 왔던 기억에 게임쪽 사람들은 날로 먹는 걸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돌아섰던 기억이 났다.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일단은 만나기로 했으니 만나봐야 할 터였다.
시간이 애매해서 일단은 이른 저녁이나 먹고 파스라도 한 장 목에 붙여야 할 것 같았다.
약국에 들러 파스를 사다가 식당에서 목에 붙이고 힘들게 밥을 먹고 일어서니 어느덧, 시간은 5시가 넘어있었다. 철산동이면 넉넉 잡아도 1시간이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절뚝거리며 전철역으로 걸어가 몸을 싣고 창환이 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디냐?"
- 새꺄! 회사지 어디긴 어디야.
"나 오늘 아프니까 일찍 만났다가 일찍 헤어지자. 6시 반까지 나와라. 일찍 간다고그래 그냥. 나 지금 철산동 가는 중이야."
- 씨발. 알았어. 간다.
"그래 이따보자."
- 어.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힘이 들었지만, 어찌어찌해 전철을 타고 7호선으로 갈아타고 나니 철산역을 알리는 안내음이 들려왔다.
철산역에서 나와 도깨비 호프집으로 들어가 생맥주를 한잔 시키고 창환이를 기다렸다.
두 잔째 생맥주를 마실때쯤, 호프집의 문이 열리면서 창환이가 들어왔다.
"여어! 잘 있었냐?"
"그래. 어서와라. 아줌마! 여기 생맥주 한잔 더 주시고 마른 안주 하나 주세요."
나는 창환이 놈의 의사도 묻지않고 생맥주와 마른안주를 시켰다. 늘 그렇게 마시던 버릇이 되놔서 안주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았다. 안주를 잘 먹지 않는 스타일이라 무슨 안주가 나오건 어차피 탁자 꾸미기용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인마! 갑자기 또 무슨 무협 시나리오야? 또 게임이냐?"
"새끼! 이번에 현찰 준다. 사장이 괜찮은 사람이거든. 일단 MMORPG로 만들 거니까 지난번처럼 대충하고 뒤에 준비된 시나리오 많아요. 이런거 안해도 시나리오 나오면 바로 통장에 꽂아준다. 어때?"
나는 창환의 말에 고민했다. 사실 고민이랄 것도 없었다. 시간 좀 빼서 시나리오 만들고 수익 모델 잡고, 이벤트 구상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게임 시나리오라는 것은 작가가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줄기를 뽑고 기획자들이 거기서 게임적인 내용을 추출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묵후를 써줄 당시에야 많은 기획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시나리오를 작업 했지만, 개발사에서 내부적으로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맛보기로 건네준 자료만으로 게임을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는 시나리오 작가가 필요없다고 했던 기억이 새삼 솟아 올라 선뜻 작업을 진행하기가 싫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창환이 놈이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생맥주를 쭉 완샷하며 식탁위에 내려 놓고 말했다.
"인마! 이번엔 진짜야! 한번 믿어봐!"
"진짜? 인마! 작가가 쌔고쌨는데 왜 무명한테 이래? 유명한 애들 많잖아?"
나는 못 미더워서 창환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아 그 새끼 사람말 참 못 믿네. 작가들이 게임을 아냐? 너 게임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잖아? 그리고 묵후 온라인 초기 시나리오 작가잖아. 그럼 됐지 더 뭐가 필요해? 묵후 성공했잖아! 중간에 뭉그러져서 그렇지."
"그러냐? 그래도 이번에 쓰는 게 잘 된다고 어떻게 보장하냐?"
"너 하루에 책 몇권 읽어? 게임 몇시간 해?"
"글쎄 책은 보통 하루 두 세권씩 읽지. 게임은 지금 하고 있는 게임으로 보통 하루 4시간 정도 하고.... MMORPG라는게 레벨업하는 동안 책을 봐도 충분하니까 그렇게 되지."
"거봐 인마! 내가 너 그렇게 사는거 본게 10년이 넘어간다. 10년이면 읽다가 책에 흘린 라면국물로도 사람하나 익사해 인마."
창환은 내가 계속해서 미심쩍어하자 화를 내며 말했다.
"알았어, 인마! 그럼 내가 어디까지 하면 돼냐? 지난 번처럼 설정부터 이벤트까지? 그건 좀 잔인하던데..."
"지랄하지 말고, 일단은 전체적인 시놉시스 잡고 주 시나리오 만들어와라. 그런 다음에 가지고 와! 지금 그 게임 만들겠다고 40명 모았다."
"엥? 그게 말이돼? 무작정 MMORPG만들겠다고 사람 모아놨다고?"
나는 황당해져서 창환의 말에 갑자기 신용이 팍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원래 묵후 만들던 팀원들 다 모였어. 묵후에 있을 때 사정이 안좋아져서 흩어져 있다가 이번에 지금 사장 만나서 MMORPG만들기로 하고 모두 모였다."
"알았어! 그럼 일단 내일부터 쓰기 시작할게. 한 3개월 정도면 대충 틀이 나오겠다. 그때까지 해도 되겠냐?"
"그래, 그때쯤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웬만하면 너도 우리회사 들어오고."
창환의 말에 평소같으면 콧방귀도 뀌지 않았을 테지만, 오늘 같이 사고를 당한 날이면 일을 관두고 싶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섣불리 옮기기도 뭣했다. 10년을 익숙하게 해오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기에는 집에 있는 아내와 딸아이가 아른 거리기도 하거니와 게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가기가 두려웠다.
"그 문제는 조금 생각해 보기로 하자. 게임 업계 더럽다고 니입으로 그랬잖아."
"여기는 좀 달라. 올인 할 만하다."
"그래?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마셔라!"
"자식! 재기는...... 나 이사달았다."
"구멍가게냐? 나이가 몇 살이라고 벌써 이사야?"
나는 황당해서 창환이에게 비아냥거렸다. 들어가자마자 이사자리를 차지할 정도라면 수상했기 때문이었다.
"아냐, 인마! 우리 본청은 직원이 600명이고 자회사인 윔스타에만 직원이 40명이야 그 중에서 내가 이사고, 알았냐? 마셔 새꺄!"
"그래? 일단, 알았다. 마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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