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 도전기.-깍뚜기
아몬드 포커의 일이 끝나고 나는 계속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했다. 이 작업 빨리 마무리 되어야 혈천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던 와중에 4층의 테니스 온라인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사실 평가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내가 게임을 좋아하기는 해도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게임을 평가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획자도 팀장도 있는 마당에 다른 사람이 평가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냉철한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유하게 평가한다면 보는 눈이 없다고 할 것이요. 너무 가차없이 평가한다면 옆자리에 앉아 있는데 관계가 어색해 질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창환이를 찾아가 말했다.
"어이, 좀 그렇지 않아? 테니스 온라인을 나보고 평가하라고 하면 어떡해? 나 독한 놈인거 알잖아?"
"인마, 그러니까 독하게 제대로 평가하라고 너한테 평가서 쓰래는거야."
"에효....... 너 또 이래 놓고 테니스 맡아라 뭐 이런 소리하면 나 화낸다? 남의 밥그릇 건드리는 거 나 안좋아하는 거 알지?"
"개뿔....... 일단 평가서나 써서 제출해. 사장님이 테니스 팀 여지껏 뭐했냐고 들들 볶는다. 아주."
창환이는 한숨을 쉬면서 내게 다시 한 번 평가서를 제출할 것을 당부했다. 사실상 전부터 느낀 건데 작년에 왔을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기는 없었다.
자리에 올라간 나는 모니터를 옆으로 돌리고서 작업을 해야했다. 테니스 팀장을 옆자리에 놓고서 게임을 분석하고 평가서를 작성한다는 것이 왠지 꿀꿀했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으로 테니스게임을 실행하고 직접 게임을 하면서 나는 한숨이 나왔다. 해도 너무 했다. 이런 정도의 게임을 수출하고 수익이 나오고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무엇보다도 테니스 팀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프로그래머들은 의기소침해 있었으며, 기획자들은 내가 눈으로 보기엔 무얼하고 있는지 당최 알수가 없을지경이었다.
이틀동안 게임을 검토하고, 문제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구조가 아닌 캐쥬얼 게임이기에 검토는 간단했다.
문제는 많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커다란 문제점을 이야기하라면 다음과 같다.
첫째, 커뮤니티가 너무 부실하다는 것이었다. 최소한 캐릭터와 캐릭터간에 만나서 상대 캐릭터가 어찌 생겼는지는 눈으로 봐가면서 채팅을 해야하는데 이 게임은 유저 캐릭터가 만날 수 있는 장소라고는 케임룸 안에서 대기하는 대기실 밖에 없었다.
온라인 게임의 장점을 버리고 단점을 취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예전 오락실에서 이인용 게임기에 앉아서 상대가 누군지 흘끔흘끔 쳐다보는 정도의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이 안보이는 채팅은 게임룸에 들어오기 전의 채널이라는 개념에서도 존재하지만, 게임이라는 전제가 깔린 상황에서 단순히 텍스트로만 대화하는 채팅은 매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었다.
둘째, 아이템의 자원 낭비였다. 같은 디자인의 아이템에 색상만 변경하고서 각각 독립적으로 판매를 하고 있었다. 색상에 변화를 주는 것도 아니고 색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개별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건 데이터베이스의 낭비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템의 수익 방식을 살펴보면 더 답답해졌다.
현금을 캐시 포인트로 바꿔서 캐시 포인트로 아이템을 사면 테니스 포인트를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그 테니스 포인트로 능력치가 가미된 아이템을 다시 구입하는 번거로운 방식이었다. 게다가 되팔기 기능이 있어서 포인트를 되돌려 주기까지 하니 수익성이 나쁜게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게임 모드의 세분화가 심각했다. 테니스 게임에대한 모드가 너무 다양했다. 친목 모드(보상 없는 게임모드), 프리미엄 모드(보상이 있는 모드, 능력치 풀로 만들어 싸우는.......), 일반모드(능력치 변화없이 순수레벨로만 게임 진행, 보상 있음.), 스타리그 모드(사행성 모드) 이렇게 4개로 구분된다. 문제는 그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자, 우리가 테니스 장...... 비인기 종목이므로 야구장으로 가장하자, 야구장에 마운드만 4개가 있다면 그 야구장에서 8개의 팀이 겨룰까? 절대로 아니다. 야구장에는 매표소도 있어야하고 화장실도 있어야하며, 남들과 다른 특별한 지정석도 갖춰야 할것이고, 게임을 하다가 체인지 되는 순간에 볼거리도 있어야하며, 생각보다 야구 외적인 요소가 무지하게 깔려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오로지 테니스만 집요하게 강요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놀이터라고 적혀있는 곳에 표를 끊고 들어갔더니 시소만 수십종류가 깔려있는 격이라 할 수 있다. 꽃무늬 시소, 코끼리 모양 시소....생각만 해도 멀미가 나오려 한다.
평가를 하려하면 할수록 단점만 눈에 보여 세가지의 문제점만 지적해서 평가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다른 게임과 비교하기 위해서 다른 테니스 게임의 분석도 겸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국내에 서비스 되었던 테니스 게임이 모두 전멸했다는 사실이었다. 수출이 된것이 용하다고 속으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나왔다. 여기 평가서다. 형식은 어차피 번외로 하는 일이라 형식없이 문제점만 파악했다. 다시 얘기하지만, 이 일 맡기지 마라. 남의 밥그릇 건드리는 거 안 좋아한다."
"몰라, 인마. 사장님이 이 창욱 팀장 싫어하잖아. 능력 없다고."
"하긴...... 너랑 나랑 하는 얘기지만, 그 사람처럼 일하면 남부럽지 않겠더라. 옆자리에서 보니까 죙일 인터넷 검색만 하던데?"
"인마, 기획자는 그게 일이야!"
"그러냐? 난 모르겠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그래 수고해라. 난 올라간다."
'이상하네. 그게 일이면 진짜 일은 언제하지?'
올라가면서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목적성없는 웹서핑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일단은 분석하라고 한 업무를 끝냈으니 다시 일을 시작해야했다. 그렇게 일하는 중에 창환이 놈은 이것저것 일거리를 던져 주었다. 옥션과 연계해 개발할 수 있는 게임(이것은 현재 진행하고 있다고 하니 의리상 공개하지 않겠다.)에 대해 제안을 해달라고 해서 각종 수익모델 제안과 보상등에 대해서 제안하고 실제 옥션과의 연계를 제안했다. 그 작업 역시도 대략적인 추가사항은 연 팀장의 의견을 추가해서 취합해 대략적인 자료를 만들고, 정리는 연팀장에게 맡겼다.
그리고 6월 중순이 되자, 예상했던 일이 터졌다. 일주일 정도 테니스 온라인의 기획 업무에 참가하여 개선점을 건의하라는 것이었다. 한숨이 터져나왔지만, 할 수 없었다. 계급이 깡패인 것을 어쩌랴. 사장님 지시라니 따를 수밖에.......
기획자 한 명과 이 창욱 팀장과 회의에 들어갔다. 결과는...... 슬펐다. 두 가지 안건에 대해서 나왔는데, 조금 무리가 있었다. 기획 의도 자체는 좋은데 방법에서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일단 내 일이 아니라 가볍게 조언하는 형식으로 말했다.
두 가지 제안이란 테니스 코트를 놓고 내기를 벌인다는 기획과 토너먼트를 기획했다는 것이었다.
테니스 코트를 놓고 벌이는 기획에 대한 기획서를 보는 순간, 한숨이 나왔다.
팀 단위로 인원수의 제한을 두지 않으며, 승점을 부과해서 24시간동안 예선을 치른다는 것이다. 물론 목표 점수도 없으며 24시간동안 경기를 치루어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팀이 결선에 오른다는 것이었다. 묻고 싶었다.
'당신이라면 이 조건에 게임을 하고 싶소?'
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저런 게임 못한다. 직업이라면 모를까 즐기자고 접속한 게임에 저런 무리한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테니스 코트를 차지하고 싶지는 않다. MMORPG에서도 보통 공성시간이 2~3시간인데 24시간을 치르고 다시 결승을 치르라니 이, 이건......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좋게 이야기하다가 결국은 토론으로 번졌다.
"이 창욱 실장님, 저 기획은 약간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뭐가요?"
"24시간동안 예선을 치르는데 정해진 인원제한이 없다면 5명이 길원인 팀과 10명이 길원인 팀은 게임 수에서부터 차이가 나니 수가 많은 팀이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일부러 그렇게 기획했습니다. 수가 많을수록 유리하니 길드원을 유치하는데 힘쓰지 않겠습니까?"
당당하게 말하는 이 창욱 실장의 말에 실소가 나왔지만, 참고서 말했다.
"그렇게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시면, 문제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친목 도모로 길드를 창설한 경우에는 아예 참가를 포기하지 않을까요?"
"그거야 어쩔 수 없죠."
"그럼 또 얘기가 틀려지지 않습니까. 포기하는 유저들은 놔두고 하고 싶은 사람만 하라고 한다면 겨우 몇몇 유저들을 위해서 한달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개발을 한다는 얘긴데. 한 달이면 10명의 인력이 소요되니까 대략 2,500만원의 자금을 투자해서 몇몇 사람만 즐기라는 기획은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의 말에 이 실장의 얼굴이 좋지 않아졌다. 이래서 남의 밥그릇에 간섭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결코 호의적으로 느끼지 않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죠?"
"일단, 화내지 마시고 제 말은 뭔가 제한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4시간 게임하라는게...XXX'
욕이 튀어나오려 했지만, 찬찬히 말했다.
"24시간을 예선을 치르더라도 목표점수와 최소한 쓰리아웃 제도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작정 많은 게임을 하는 것보다 정예 선수만 내보내서 3번의 패배를 당하지 않게하는 재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하면, 예선이 일찍 끝날 수 있는 계기도 생길테구요."
"그래서 제 기획이 잘 못 되었다는 겁니까?"
'응!'
속으로야 바로 긍정을 했지만, 겉으로는 아닌척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든 현재 일주일간은 상사아닌 상사니까 말이다.
"뭐, 그렇다기보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니 조건만 조금 추가해서 진행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조건이 시간 뿐이라면 프로그램적으로도 낭비가 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의 이야기에도 이 실장은 의견을 좁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창환이가 나서서 이야기를 결론 지었다.
"일단 나도 조건이 필요한 점에는 동의한다. 24시간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박 과장이 얘기한 걸 100% 수용할 필요는 없지만, 참고하는 게 좋을 거야."
"예, 그럼 5번의 패배를 패널티로 걸고 승점 100점을 목표 점수로 추가하겠습니다."
배, 백점..... 승점이 복식 2점, 단식 1점이니까 50번을 이기란 소린가! 50 경기면 한 게임에 3~5분을 예상해보면....그것도 게임만 주구장창 했을 경우니까...... 게다가 마이너스 점수가 있던 걸 5번 패배 패널티때문에 빼길 다행이었다. 결국, 하나마나한 한계 수치였다. 난 아예 포기했다. 어차피 내 일도 아닌데 더이상 토론할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토너먼트는 더욱 멀미가 날 정도였지만, 아예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 기분으로 토너먼트까지 이야기한다면 쓰러질 것 같았다.
빨리 이 깍두기(뜨내기를 뜻함. 스쳐가는 사람의 의미.) 신세를 면해야 할텐데.....
일주일의 시간이 그저 빨리 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이 다음부터 오전에 아침 일과 전에 진행하는 회의에 참석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한숨을 쉬며, 수긍했다. 회의 좋아하는 회사치고 잘되는 회사 별로 못봤는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물론, 회의는 꼭 필요하다. 대신에 짧은 오전 시간을 생각하면 아주 간략하게 회의를 진행해야 함이 옳은데도 너무 지루하게 회의가 늘어지기 때문이었다. 내가 봐온 바에 의하면 그랬다. 회의에서 한 일이 없으면, '패스'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무조건 뭔가를 발.표.해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으니, 없는 말 있는말 다 말하느라 불필요하게 회의가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은 차후 실제 테니스 팀을 꾸려나가면서 확 바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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