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대륙 전쟁기 제 89화: 고원 지대의 풍운 (44)
“찾았다! 찾았어! 내가 배교자 크로토스를 찾았다고!”
크로토스 일행이 토굴 안에서 쑥덕쑥덕 의논하면서 말소리를 내는 바람에, 그만 근처를 수색하고 있던 무장 수도사 한 명에게 입구가 발각되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대놓고 떠들었으니 이렇게 되는 게 너무나 당연했다.
세 명 모두 인질로 잡힌 늙은 마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어서 저지르고 만 실수였다.
“놈이 여기 있다! 내가 찾았어! 이제 상은 내 거야!”
그 수도사는 기뻐서 날뛰면서 자기 동지들에게 빨리 와보라고 소리쳤다.
곧이어 다른 수도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 교활한 배교자 놈, 여기 숨어 있었구나! 어서 빨리 나오지 못해!”
무장 수도사들은 날카로운 창과 칼로 토굴 안을 마구 쑤셔 대면서 험악한 말을 쏟아냈다.
이쯤 되자, 크로토스 일행은 더 이상 비티고 싶어도 버틸 수가 없었다.
“나가겠소! 나갈 테니 이제 그만하시오! 여긴 여자애도 있고, 다친 사람도 있단 말이오!”
크로토스는 이렇게 소리치면서 가장 먼저 토굴 밖으로 나갔다.
무장 수도사들은 그의 몸이 절반쯤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야말로 원한에 사무친 표정으로 난폭하게 확 잡아 끌어서 흙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때까지도 어찌어찌 가지고 있던 짐보따리는 당연히 즉각 압수되었다.
“이제야 잡았다. 독한 놈! 수도에서 여기까지 도망쳐 오다니!”
무장 수도사들이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 욕을 퍼붓는 가운데, 뒤이어 플라테스가 발목의 고통을 참으면서 엉금엉금 기어서 토굴 밖으로 나왔다.
“이 사람은 발목을 다쳤소. 제발 살살 다루어주시오!”
크로토스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자기 친구를 더 걱정하면서 최선을 다해 호소했다.
물론 무장 수도사들은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화가 난 듯, 사정없이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입 닥쳐라! 이 배교자 놈! 어디서 감히 명령이야!”
“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느냐?”
“네 놈은 발목이 아니라 다리를 부러뜨려주마!”
거친 말투와 행동거지만 보면, 이들은 수도사가 아니라 불한당이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크로토스는 무장 수도사 집단에는, 신에게 헌신하면 죄를 용서해준다는 말을 듣고 입교한 범죄자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범죄자들의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을 체포하고 두들겨 패는 것만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으니 좋고,
카스트레아 정교회의 입장에서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앞잡이들이 생기는 셈이니 좋고,
이렇게 서로 손해 볼 것이 없어서 성립된 거래라는 소문이었다.
평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 생각해 보니, 그게 그냥 헛소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바탕 호되게 얻어맞고 순식간에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크로토스의 눈에, 퍼뜩 플라테스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면서 질질 끌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장 수도사들은 그가 꾀병을 부린다면서, 사정을 봐주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더 거칠게 다루었다.
심지어 여기가 아픈 거냐 하면서 일부러 발목을 걷어차고 즐거워하는 수도사까지 있었다.
부상당한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한 순간 한 순간이 견디기 힘든 고문 그 자체였다.
“이것 봐! 소문이 사실이었어!”
마지막으로 토굴 가장 안쪽에 있던 프리세아가 밖으로 나왔다.
짐작했던 대로, 수도사들은 그녀의 외모를 보자마자 놀라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배교자 놈, 이런 더러운 혼혈 여자를 데리고 다녔단 말이지?”
살짝 붉은빛이 감도는 검은색 머리카락,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피부, 선혈처럼 새빨간 빛깔을 지닌 눈동자와 입술.
프리세아의 모습은 평범한 사람들조차 지독히 불길하게 여기면서 가까이하기를 꺼려하는 외모였다.
그런데 바로 그런 불길함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교회 조직에 소속된 수도사들의 입장에서 그녀의 외모가 어떻게 보일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 내 발로 걸어가겠다!”
프리세아는 먼저 끌려 나간 두 사람이 험한 꼴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수도사를 가장한 불한당들 앞에서 한심한 꼴을 보이긴 싫다는 오기가 솟구쳤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녀의 불길한 외모에 수도사들이 겁을 먹었기 때문인지, 다른 두 사람 보다 오히려 직접적인 해코지는 별로 가해지지 않았다.
심지어 새빨간 눈동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겁쟁이 수도사까지 있을 정도였다.
크로토스는 그걸 보고 그나마 다행이라면서 약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세 사람은 무장 수도사들에게 이끌려서, 지난 밤에 힘들게 걸어왔던 산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플라테스는 물론이고, 크로토스도 한바탕 실컷 두들겨 맞은 터라, 둘 다 몰골이 정말 말이 아니었다.
당연히 산길을 걷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
“이게 어디서 엄살이야!”
특히나 발목을 다친 플라테스가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자꾸만 쓰러지자, 무장 수도사들은 용서 없이 욕하고 윽박지르면서 발로 마구 걷어차기까지 했다.
물론 그러면 그럴수록, 그 불쌍한 역사학자는 점점 더 걷기가 힘들어질 뿐이었다.
빨리 이단 심문관이 기다리고 있는 광장으로 이들을 데리고 가야 하는 수도사들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되면 실로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때 크로토스와 프리세아가 나서서 자신들이 양쪽에서 플라테스를 부축하고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조금 난처해하고 있던 수도사들은, 여전히 무서운 표정으로 노려보면서도, 마지 못해 큰 은혜를 베푸는 양 그러라고 허락해 주었다.
이런 식으로 난폭하게 잡혀가는 도중에, 일행은 늙은 마부가 붙잡혀 있는 작은 공터를 지나게 되었다.
그 불쌍한 노인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얼마나 심하게 두들겨 맞았는지, 언뜻 봐서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피에 흠뻑 젖고 군데군데 찢어진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얼굴은 물론이요, 온몸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터지고 찢어진 상태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나쁜 놈이라서 배신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들!”
그 와중에도, 늙은 마부는 세 사람이 자기 앞을 지나서 끌려가는 모습을 보자, 피투성이가 된 얼굴 가득 눈물을 흘리면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기까지 했다.
그런 안쓰러운 광경을 지켜보면서, 일행은 다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이 괴로웠다.
산길 아래로 끌려 내려온 일행은, 어느새 구경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붙잡혀 가는 세 사람을 보면서, 마을 사람들은 다들 저주와 조롱을 퍼부어 댔다.
크로토스는 한숨을 쉬면서 묵묵히 그 모든 모욕을 참아냈다. 나중에는 침을 뱉고 오물을 던지는 사람까지 있었다.
물론 속으로는 불쌍하게 여기면서도, 무장 수도사들이 무서워서 짐짓 모욕을 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이 상황을 즐기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놀거리가 부족한 시골 마을에서는, 자기 가족이 연루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그저 누군가를 조롱하고 놀릴 수 있는 흥미로운 여흥이 되기 쉬운 법이었으니까.
마을 사람들의 저주와 조롱 속에서, 크로토스 일행은 마을 중심부에 있는 광장으로 끌려와서 억지로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플라테스는 발목이 아파서 눈물을 줄줄 흘릴 정도였지만, 수도사들은 전혀 봐줄 생각이 없었다.
그곳에는 이미 임시 심문대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소집된 마을 유지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모여서 지켜보고 있었다.
또한 카스트레아 정교회의 이단 심문관이 권한을 위임 받아 교회법을 집행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깃발이 힘차게 나부끼고 있었다.
크로토스가 보니, 늙은 마부의 조카네 가족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깃발 아래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특히나 마부의 조카는 심하게 두들겨 맞아서 자기 숙부처럼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그 밖에 부인과 애들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릴 기력도 없을 만큼 탈진한 듯, 거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이단 심문관은 높은 자리에 위엄 있게 앉아 그들 가족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네가 바로 교회법에 따른 정당한 사법 절차를 거부하고 도망친 배교자 크로토스가 맞는 것이냐?”
이단 심문관이 이번에는 잡혀온 크로토스를 바라보면서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대략 서른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신관으로 체격이 아주 건장했다.
수염을 약간 기른 얼굴에는 흔들림 없는 종교적 신념이 강하게 배어 있는 것 같았다.
또한 손가락에는 신관의 지위를 상징하는 반지를 끼고 있었으며, 손에는 즉결 심판 권한이 있음을 상징하는 금색 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렇소. 배교자는 아니지만, 내가 당신이 찾는 크로토스가 맞소. 날 잡았으니, 다른 사람들은 풀어주시오.”
아까 흠씬 두들겨 맞아 몸 이곳저곳에 부상을 입은 크로토스가 조금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닥쳐라, 크로토스! 너는 이단 혐의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기소되었으나,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 멀리 도망침으로써 교회법을 무시했다.
그로 인해 스스로 이단죄를 인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음은 물론, 추가로 배교죄를 짓게 되었음을 정녕 모르겠느냐?
잘 들어라. 본관은 카스트레아 정교회의 이단 심문관 페트루스다.
배교자 크로토스와 그의 도주를 도운 공범들을 체포하여 심판하기 위해 이곳에 왔느니라.”
이단 심문관 페트루스가 엄숙하고 장중한 말투로 말했다.
“여보시오. 나에게 무슨 이단 혐의가 있고, 내가 무슨 죄를 인정했다는 말이오? 나는 그저 남쪽으로 여행을 왔을 뿐이오.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서 도망친 것도 아니고, 당연히 도주를 도운 공범 같은 것도 없소이다.”
크로토스가 황당한 표정으로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이단 심문관은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무엄한 놈! 입 닥치지 못하겠느냐? 모든 판단은 어디까지나 본관이 내리는 것이다.
우선 감히 신의 가르침을 거역하고, 배교자에게 숙식을 제공한 어리석은 자들을 처벌하여, 땅에 떨어진 교회법의 위엄을 바로 세우겠노라.”
페트루스의 말이 완전히 사형 선고처럼 들렸기 때문에, 마부의 조카는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듯한 목소리로 애걸복걸했다.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숙부님께서 데려온 손님이라서 여느 때처럼 하룻밤 숙소를 제공했을 뿐입니다!
제발 애들만이라도 살려주십시오!”
물론 페트루스가 이런 말 따위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오늘 그를 처음 만난 크로토스조차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허튼 소리하지 마라! 다른 건 몰라도, 저 여자의 불길한 혼혈 외모를 보고도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냐?
당연히 마을 촌장이나 사제에게 신고하여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어야 했다.
하지만 너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평소부터 올바른 신앙이 무엇이고, 교회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는 방증인 것이다.
모르고 저지른 죄도 엄연히 죄이니, 너희는 도주와 은닉의 죄를 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크로토스와 마찬가지로 배교죄로 가중 처벌받게 될 것이다.”
“억울합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또한 어리석은 백성들을 제대로 교화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이 마을의 촌장과 사제도 교회법에 따라 엄히 처벌할 것이다.
우선 그들의 직책과 명예를 전부 박탈하고 마을 감옥에 가둘 것을 명한다.”
“제발 애들만이라도 살려주십시오! 제발!”
페트루스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할말만 계속 했지만, 그래도 마부의 조카는 마지막 힘을 다해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그때 늙은 마부가 수도사들에게 질질 끌리다시피 하여 광장에 나타났다. 그 노인은 이미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비참한 몰골이었다.
“배교자의 체포에 협력하여 작은 공이라도 세운다면, 그 공에 비례하여 조카네 애들 한 두 명은 살릴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작은 공을 세웠으니, 제발 애들을 불쌍히 여겨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겨울 터인데, 늙은 마부는 어떻게든 어린 애들이라도 살려보겠다는 듯,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간절히 호소했다.
그러자 이단 심문관이 부하 수도사들에게 물었다.
“누가 대답해 봐라. 저 늙은이의 말이 사실이냐?
너희들이 어리석고 무능해서 저런 미천한 늙은이 따위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자칫 배교자를 잡지 못할 뻔했다는 뜻이냐?"
무장 수도사들은 잠시 망설이면서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걸 보고, 페트루스는 혀를 차면서 꾸짖음에 가까운 말투로 다시 물었다.
"왜 대답을 못하는 것이냐?
저 늙은이가 크로토스를 설득하여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와서 자수하게 만든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정말 무능한 너희들을 도와서 교회법 집행에 공을 세운 일이 있느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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