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장 귀백鬼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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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사鬼師가 뒤에 있는 유랑극단 단원을 돌아보며 음침하게 웃었다.
으흐흐흐흐.....
웃음소리가 밀실 안을 채우는 붉은 핏빛 안개 따라서 요기妖氣롭게 꿈틀거린다.
노란 빛이 번들거리는 귀사鬼師의 눈에서 차가움이 쏟아져 나왔고, 유랑극단 단원의 심장은 바늘로 찔리듯이 따끔거려왔는데...
“흐흐흐, 마침 잘 되었구나! 네 놈으로 인하여 백강시魄殭屍가 더 빨리 완성되겠구나, 흐흐흐...”
귀사鬼師가 사발 안에 담겨 있던 마혈馬血 한 모금을 머금더니 유랑극단 단원에게 재빨리 내뿜었다.
그러자,
스스스스스.....
지네가 벽을 타고 기어오를 때처럼, 마혈馬血의 핏빛 안개가 확 일어나더니, 유랑극단 단원의 전신으로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마른 모래 위에 엎질러진 물이 스며들던 아무 저항이나 지체됨이 없었다.
타앗-!
순간적으로 발생한 일에 놀랐을 뿐만 아니라 공포와 위기감을 느낀 유랑극단 단원은 북천회北天會 암중별동대暗中別動隊의 무위武威를 본능적으로 발휘하였다. 삼 개월 전 완주에 유랑극단으로 위장한 비밀 지부가 생기면서 파견된 이후, 최대의 공포감과 위기감에 짓눌린 진칠陳七은 순간적으로 진행된 변괴에 당황은 하였지만,
북천회北天會의 암중별동대暗中別動隊 특수 훈련 과정을 끝까지 소화해낸 무인武人답게 일순간에 최대의 내력을 가동하며 뒤로 빠져서 밀실을 탈출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핏빛 안개와 자신의 몸에 끈끈한 아교를 칠해 놓은 듯 밀착되어 있었다. 요지부동이었다. 간신히 얼굴과 손발 정도만 꿈틀거리는 정도였다.
다만, 몸 안의 내력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돌았다.
아아.....
몸 안의 내력은 더욱 힘차게 가동되는데, 무공을 발휘하거나 신법身法을 사용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피부를 통해 빠져나가는 괴이한 느낌이 들었다.
진칠陳七은 땅과도 붙은 듯 움직이지 않는 두 발과 핏빛 안개무리를 헤치려고 기운을 쓰던 양 손을 멈추었다.
눈길을 내렸다.
자신의 손과 발을 살펴보았다.
아아.....
자신의 피부에서 붉은 핏빛 안개가 몸 바깥으로 비어져 나오고 있었다. 자신이 힘을 강하게 쓰면 더 진한 핏빛이 더욱 빨리 빠져나가고 있었고, 자신이 힘을 빼면 보다 연한 핏빛이 느릿하게 새어나와 허공을 떠도는 듯하다가 백강시魄殭屍의 몸으로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아까 귀사鬼師가 내뿜어서 자신의 몸으로 흡수된 마혈馬血의 핏빛 안개가 자신의 내부에서 내력을 격발시키며 그 진액을 끌어올려 피부 바깥으로 배출하면서 백강시魄殭屍의 몸으로 흡수되게끔 하고 있는 것이었다.
갈수록 창백해지는 피부색에 비해 비어져 나오는 자신의 핏빛 안개는 더욱 붉고 진해지고 있었다.
어찌된 과정인지는 모르나, 자신의 진기眞氣와 생명력이 안개의 형태로 생으로 뽑혀서 백강시魄殭屍의 몸으로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진칠陳七은 말할 힘조차 없었지만 사력을 다해서 말을 했다.
“귀.. 귀사鬼師, 북천회北天會에서 당신을... 가만히 둘 줄...”
사력을 다 해도 겨우 한 마디를 채우지 못한 진칠陳七의 말뜻은 귀사鬼師가 헤아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흐흐흐, 노부가 북천회北天會를 두려워하는 줄 아느냐? 이십년 전의 일로 노부가 공력을 잃지 않았더라면, 이런 허접스런 곳에 몸을 숨기지 않았느니라, 흐흐흐!”
“으... 다, 당신의 정체가...”
“그만 운명에 순응하거라. 사람은 누구나 생멸生滅하느니! 이미 생生이 있었으니 이제 멸滅이 오는 것뿐이고, 그것이 좀 앞당겨졌다고 받아 들이거라! 네 놈은 노부가 말해주어도 노부의 정체를 모를 것이야! 네 놈 따위가 어찌 귀문관鬼門關을 알겠느냐, 흐흐흐...”
“으... 으으...”
대화중에 계속해서 진칠陳七의 몸으로부터 붉은 핏빛 안개는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럴수록 더욱 창백해지다가 이윽고, 밀랍처럼 핏기라고는 완전히 보이지 않는 얼굴이 되었고, 진칠陳七은 잠시 후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예감했다.
공연한 호기심에 뒤따랐다가 피와 함께 진기와 생명력이 안개처럼 붉게 뿜어져 나와 백강시魄殭屍에게 흡수될 줄이야 어찌 알았을까!
무엇보다도 저 귀사鬼師의 정체와 내력에 대해서 몰랐던 게 한恨이었다. 하지만 귀사鬼師의 정확한 정체에 대해서는 북천회北天會도 모르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것만이 아니라 북천회北天會 본회에서는 귀사鬼師가 완주 비밀 지부에 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를 것 같았다.
그저 모산파 계통의 떠돌이 술법사術法師로 전설에나 나오는 백강시魄殭屍 운운하니 완주의 비밀 지부 자체 내에서 속는 셈치고 맡겼던 것뿐이라고 자신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저벅저벅.....
지하 밀실로 누군가 내려오는 계단 소리가 났다.
밀실이 작고 지하에 있었으므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걸음 소리가 울려오는 것이다.
귀사鬼師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앞에 놈의 생기가 다 빠져나오며 세 구의 백강시魄殭屍에게 흡수될 수 있다. 백강시魄殭屍들이 훨씬 온전하게 깨어나면서 교감交感에 원활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은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 줄 수가 없었다. 이곳, 완주의 비밀 지부의 자원을 더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귀사鬼師가 품 안에서 축령퇴환부縮靈退換付를 꺼내더니 촛불에 불 붙이며 중얼중얼 하자.....
밀랍 인형처럼 정신을 잃으며 진칠陳七이 널브러졌고, 그런 진칠陳七을 붙잡아 한쪽에 있던 궤짝을 열고 쑤셔 넣는 순간에...
휘리리릭-!
밀실을 가득 채운 핏빛 안개무리가 일시에 자취도 없이 걷혔다.
삐이걱...
문이 열렸다.
불길한 기운을 몸 주변으로 가득 휘두른 두 사람이 들어서고 있었다.
앞 선 사람은 깡말랐으면서 얼굴이 흙빛처럼 시커먼 사십대 장한이었는데 눈초리에 귀기鬼氣가 서려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귀사鬼師 늙으니, 듣자하니 오늘 백강시魄殭屍가 완성된다며! 저 것들인가?”
호기심 반 비웃음 반의 표정으로 흙빛의 장한이 벽쪽에 나란히 서 있는 시신 세 구를 가리키며 물었다.
“깨어는 났습니다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올시다, 흑상黑喪님.”
“그게 무슨 말이야, 늙은이?”
“깨어나서 동작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완전한 백강시魄殭屍를 이루려면 혈령血靈과 사기邪氣를 더 보강해주어야 하외다.”
“뭐가 그리 복잡해? 깨어난 거면 완성된 거 아냐? 하여간 내가 다 데리고 갈 거다! 준비해줘!”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깡마른 장한이 명령하듯 말했다.
“허엇, 흑상黑喪님! 지부장님께 그런 명령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만...”
“오늘 아침에 못들었어? 내가 지부장을 대신한다고 했잖아! 지부장의 모든 권한이 이 흑상黑喪, 흑백쌍상黑白雙喪에게 있단 말이야! ... 이 늙은이가 정말 사람 말을 잘 못 알아듣나? 귓구멍을 더 넓게 뚫어줘?”
흑상黑喪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높아지며 은근한 살기殺氣가 끈적끈적 흘러 나왔다.
이대로 몇 마디만 더 말을 섞었다간 피를 볼 기세였다.
재기의 발판이 눈앞에서 탈취 당하는 것이어서 내심 초조해졌지만, 귀사鬼師에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흑백쌍상黑白雙喪이 북천회北天會의 완주 비밀 지부 임시 책임자가 되었음을 귀사鬼師도 알고는 있었다.
오늘 아침 비밀 지부의 모든 사람들을 모아놓고 지부장 팔륜도八輪刀 정호일鄭鎬一이 북천회北天會 본회의 명령서를 보면서 흑백쌍상黑白雙喪을 소개하며, 이 흑백쌍상黑白雙喪이라는 무림 고수가 당분간 지부장 역할을 맡으면서 비상 체제로 운영된다고 선언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백강시魄殭屍까지 흑백쌍상黑白雙喪에게 넘어가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귀사鬼師였다.
귀사鬼師의 얼굴에 난감함과 초조함이 배어나오며 경직되는 듯하다가
“알았습니다! 그런데 흑상黑喪님, 백강시魄殭屍 데려가시려면 여기 늙은이까지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제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늙은이가 왜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백강시魄殭屍를 움직이려면 고유한 교감심법交感心法을 익히고 있는 이 늙은이가... 커억!”
멱살을 잡힌 귀사鬼師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안색만 창백해진 채 식은 땀을 흘렸다.
“흐으... 이봐 늙은이, 상문喪門을 뭘로 보는 거야? 내가 정말 늙은이의 사문, 귀문관鬼門關을 모른 척 하니까, 사람이 우습게 보여? 그래?”
“커, 커억... 어찌 귀문관鬼門關을.....”
“후후... 내가 상문喪門의 사람이야, 상문喪門! 자세한 것이야 늙은이의 귀문관鬼門關이 전문이겠지만 기본은 우리의 상문喪門도 알아, 이거 왜 이래, 늙은이!”
말을 하면서 더욱 멱살을 옥죄었기에 숨까지 막혀오는 귀사鬼師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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