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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부장 님의 서재입니다.

전함 백두산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판타지

개발부장
작품등록일 :
2021.07.26 15:00
최근연재일 :
2021.10.27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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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0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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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프로파간다(2부 끝)

DUMMY

자유국 동맹, 포르모사.


거대한 나무들을 엘프들이 조작하여 만들어낸 '건물'들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마천루들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외교관들이 내심 '중세 수준' 이라고 비웃는 부분은 기술력 뿐만이 아니라 정치체제에 관한 것이 더 컸다.


다만 여기에는 본질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왕이건 귀족이건 죽창 한 방 배때기에 박으면 끝나는 지구와 달리 이 세계의 종족들에게는 참혹힌 수준의 격차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명백했기 때문이다.


사자족의 주먹 한 방이면 절벽에 금이 가고 발을 구르면 하늘을 날다시피 한다. 이런 세계관에서 숫적인 우위나 논리의 합리성으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리우 오브 콜로넬 여백작의 종족인 뱀족 역시 유혹술로 '설득과 합의'에 의해 부를 모으는 종족이었다. 자신의 주먹 하나로 세상을 짓밟는 사자족들이 비웃는 '하찮은 것들' 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사자왕 하트 경이 몰락하다시피 한 지금 뱀족의 콜로넬 여백작이 자유국 동맹의 사실상 수장이 되어버린 것은 개개인은 약한데도 군대로서는 사자족보다 훨씬 강한 일본군이라는 존재가 나타난 것, 그리고 방문자 이현성이 그녀에게 '힘'을 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리우로서는 자신의 가치를 한국과 이현성에게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자유국 동맹의 거목들 아래를 밀물처럼 흐르는 불안감과 의구심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그녀의 손 안에 방문자 이현성이 보내준 영상 메시지가 있다. 어째서 한국이 갑자기 포르모사를 공격하였는지 해명하고, 그것을 막아내겠다고 다짐하는 영상이다. 한국이 방문하기 전까지는 이 세계의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민중을 안심시키고 설득하기 위해 힘을 가진 지배자가 양해를 구하는 내용이다.


한국과 교류하면서 약하지만 수가 많은 민중을 규합하여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방법을 이해한 리우에게는 실로 매력적인 카드였다.


리우는 통신기를 방송 모드로 전환하고 영상을 재생시켰다. 대부분의 종족은 마력 감응력이 있어서 이 방송을 보고 들을 수 있으며, 비교적 마력이 취약한 인간종도 포르모사에 와 있는 기사나 마법사들은 충분히 시청 가능할 것이었다. 아직은 동영상을 수정할 줄 몰랐기에 뒷부분의 하트 경을 도발하는 발언 부분은 보고 있다가 수동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포르모사 전역에 이현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하늘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붉은 눈동자와 그리고 그것이 일으킨 폭발, 진동, 연기 기둥을 만끽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자유국 동맹의 모든 종족들에게 방문자 이현성의 목소리가 스며들어 간다. 그것은 리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나칠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


"일본군의 기지를 파괴했다니 굉장하군요!"


"저를 데려가지 않았다니 섭섭합니다 선배님!"


"크핫핫핫 일본군 놈들 무기가 강할 뿐이지 가까이 붙으면 양떼보다도 못하지! 사자왕 전하께서 인도해주시면 일본군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다! 방금 전 그 이상한 것도 전하께서 해결해주실 거야!"


"물론입니다! 각하가 다 해주실 겁니다!"


과격파의 영역에서는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맹수 종족들이 술과 고기를 뱃속으로 쏟아부으며 왁자하니 떠든다. 밀리환초 기지 습격을 성공시킨 데 대한 축하 파티였다. 습격에 참여했던 자들이 으쓱거리고 그러지 못한 이들은 부러움과 질투심에 몸을 떨었다.


시중을 드는 것은 토끼나 여우, 개와 고양이 등 맹수들에게 복종해야만 하는 약소한 종족들이었다. 말을 할 수 있는 종족을 잡아먹는 시대는 지나갔지만 약한 자들은 강자에게 굴복하고 복종하여 생활을 편하게 해 주기에 살려두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붉은 눈알이 포르모사를 내려다보는 동안은 파티도 잠시 멈추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더욱 왁자지껄해졌다. 이성을 짓누르고 맹수의 호전적인 본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취한 늑대족이 시끄럽게 굴다가 싸움이 나기도 하고, 유부녀인 토끼족 하녀가 어느 손님에게 번쩍 들려져서 구석진 곳으로 테이크아웃 당하기도 한다. 들려지는 순간에는 깜짝 놀랐던 그녀지만 곧 체념한 슬픈 얼굴이 되었다.


약자에게 스스로를 지킬 권리 따위는 없다. 정말로 잡아먹히는 시대가 오래 전에 끝나서 목숨까지 위험하지는 않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르르르릉."


"우헛!?"


난잡한, 공포를 잊기 위해 더욱 유쾌해진 파티는 잠시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가 있던 사자왕 하트 경이 되돌아와 낮은 저주파 울음소리로 모든 부족을 짓눌렀을 때 잠시 조용해졌다. 맹수들도 흠칫하고, 시중을 들던 약소 종족의 하녀들은 저 붉은 눈알에 못지 않은 공포감에 떨며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물론 사자왕은 약소 종족들 따위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동포들이여!"


하트 경이 신경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힘을 지닌 존재들, 과격파의 맹수들이었다. 그의 포효에 힘을 숭상하는 맹수들의 피가 끓어오른다.


"우리의 승리를 다시 한 번 축하하자! 그 일격은 저 허약한 일본놈들과 겁많은 한국놈들을 두려움으로 미쳐버리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지는 놈들에게서 너무 멀었지. 그러니 다음 번에는...!"


밀리환초의 일본군 기지를 습격하는 데 성공하고 다음번엔 한국 본토를 직접 공격한다는 꿈을 꾸고 있던 하트 경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강력한 전파가 포르모사 전체를 뒤덮은 것이다.


ㅡ 안녕하십니까, 포르모사의 여러분. 전함 한라산의 함장, 방문자 이현성입니다...


통신용 전파가 체내의 마력을 흔들자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서 하트 경은 인상을 찌푸렸다. 일본군이 종종 사용하는 마력교란파와 달리 정제되어 있는 깨끗한 음색이었으나 말하는 것이 하트 경이 싫어하는 인간이었다. 게다가 전파의 발신점은 '뱀 여자' 콜로넬 여백작의 나무 빌딩이었다. 두배로 불쾌해진다.


하려고만 하면 체내의 마력을 안정시켜서 듣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포르모사 전체에 대고 외치고 있는데 내용을 몰라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하트 경은 그 불쾌한 목소리를 용납했다.


이현성의 일방적인 발언이 계속되면서 하트 경의 얼굴이 울그락푸르락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밀리환초 기지를 습격했던 과격파 중에서도 과격한 행동파들이 슬금슬금 사자왕의 눈치를 본다. 일본군을 기습해서 살려달라고 우는 것을 가지고 놀다가 찢어죽이는 것은 즐거웠지만 이미 말을 할 수 있는 종족은 잡아먹지 않고, 그것에서 발전해서 사체를 욕보이지 않는 문화가 정착한 시대다.


"..."


방금 전까지 밀리환초 기지 습격의 승전보를 들으며 신나하던 젊은 맹수들이나 암컷들이 슬금슬금 거리를 둔다. 중간 중간 영상으로 갈기갈기 찢겨져서 나무나 기둥에 매달린 일본군들의 사체 사진이 모지이크도 없이 풀파워 총천연색으로 머릿속에 전송되었기 때문이다. 강대한 일본군에게 승리한 영웅들을 바라보던 존경심 어린 시선은 어느 사이엔가 상종할 수 없는 식인종 야만인들을 보는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이게...!"


사실 본인들도 좀 찜찜했으므로 전공을 자랑하면서도 시체 가지고 놀았다는 이야기는 싹 빼놓았었다. 머릿속에서는 하트 경의 말마따나 '세계를 지키기 위해 겁쟁이들을 대신하여 우리 용맹한 자들이 손을 더럽힌다.' 라는 자기합리화까지 하고 있었지만, 전투와 학살의 흥분이 지나간 지금 눈앞에 떠오른 총천연색 초고화질 영상은 양식이 있다면 맹수들에게조차 혐오스러운 장면이었다.


"허, 험. 전장에서 흥분하다 보면 가끔 사고가 일어나는 법이지요."


사자족에서도 존경받는 늙은 사자가 애써 분위기를 돋구었지만 늙어서 힘이 약해졌음에도 그 경험을 존중받을 만큼 문화와 도덕이 발전한 사자족이다. 아무리 상대가 일본군이라도 사체를 난도질한 것은 과했고, 심지어는 사자의 이빨로 물어뜯어 씹어먹은 흔적까지 있었다. 하나같이 공포에 절규하는 표정들은 마치 산 채로 잡아먹히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방금 전에 한국의 공격을 받은 곳을 둘러보아야 하겠습니다. 부디 파티를 즐기시길..."


밀리환초 기습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과격파의 유력자 몇 명이 적당히 말을 남기고 파티장을 빠져나갔다. 뒤이어 하나 둘 사람들이 줄어들자 얼마 가지 않아 파티장에는 밀리환초 기습에 참여했던 초 과격파들만이 남게 되었다. 심지어는 하녀들마저 위험한 꼴을 당할까 슬그머니 도망쳐 버렸다.


심지어는 그들 초과격파에서도 눈치 빠른 녀석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맹수는 강적과는 싸우지 않는 법이다.


ㅡ 마지막으로 요청드립니다만, 한국군이 포르모사를 공격하는 것보다 저를 공격하는 것이 나으므로...


거기에서 영상 송출이 끊어졌다. 이 다음은 정말로 사자왕 하트 오브 라이언 경을 바보취급하는 내용이었기에 콜로넬 여백작이 그야말로 최소한의 배려를 해 준 것이다. 그런 것은 관계없이, 방금 전 붉은 눈알의 공포에 떨었던 모든 종족들은 한라산함이 그 공격을 유인한다는 말에 입밖으로 낼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하트 경의 얼굴은 재차 삐뚤어졌다. 그의 근육이 부풀어오르면서 장인에게서 진상받은 최고급 의복이 안쪽에서 밀려나 조금 찢어졌다. 그의 발 아래에서 멀쩡하던 바닥이 갑자기 와직 찌그러졌다.


차가운 피를 가진 뱀족의 리우 오브 콜로넬 여백작은 사자왕 하트 경이 감정적이고 멍청하다고 비웃으면서도, 어느 정도 감정적이고 멍청한가를 이해하지 못했다. 정치가로서는 큰 실수라고 하겠다.


***


성큼성큼 다가오는 사자왕 하트 오브 라이언 경과 그 뒤를 따르는 십수 마리의 젊은 맹수들.


좀 똑똑한 녀석들은 이미 냉큼 빠져서 젊고 열정적인 바보들밖에 안 남은 것이지만 어차피 가장 앞에서 걷고 있는 하트 경 한 명의 위압감이 나머지 전부를 합한 것을 다 지워버릴 정도였으므로 상관 없었다.


그 위압감에 숲길의 모든 종족들이 도망치거나 숨어 버렸다. 그러나 그러고서도 나뭇잎 틈에서, 땅 아래에서, 나무줄기의 창문 옆에 몸을 감추고 강대한 사자왕을 훔쳐보는 시선들이 끊이지 않는다. 평시에도 늘 그랬지만 지금은 달랐다.


참혹하게 훼손된 일본군의 사체 사진이 머릿속에 비쳐지고 포르모사가 공격받은 원인이 사자왕 일당의 끔찍하고 비윤리적이라는 사실을 머릿속을 전해 받은 자들의 혐오하는 시선이 그들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으르르르... 뭘봐!"


젊은 늑대족 한 명이 거칠게 외치자 여기에서 살며시 눈만 내밀고 있던 종족들이 쏙쏙쏙 숨어버렸다. 거대한 숲에서 지성을 가진 목소리가 사라지고 바람소리와 새소리만이 작게 남았다.


"무, 무슨 일이신지요오~ 꺅!"


사자왕은 뱀족답게 다가와 아양을 떨듯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묻는 뱀족의 시녀를 붙잡아 홱 던져버렸다. 하지만 뱀족이 약하다고 해도 온건파의 중심축이 될 정도는 능력이 되는지라 그녀는 공중에서 몸을 빙글 돌려 자세를 잡더니 중간의 나뭇가지를 잡고 도망쳐버렸다. 맹수들은 모두, 그 뱀족 시녀가 나무 건물의 상층부로 마력통신을 보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뱀족의 족장이자 온건파의 수장인 콜로넬 여백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가오지는 않고 먼 나뭇가지 위에 서서 대놓고 경계하고 있는 것이 젊은 맹수들의 신경을 거슬렀지만, 어차피 그녀가 숨만 쉬고 있어도 화를 낼 작자들만 남아있다.


"네년ㅡ! 침략자들을 쫓아내기 위한 고귀한 노력을 음해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사자왕 하트 경이 포효했다. 애초에 입만 살아있는 영악한 뱀녀에게 비겁한 변명을 떠들게 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말싸움 따위는 약자나 하는 것, 사자왕은 자신의 강력한 마력으로 온 사방에 스스로의 정당성을 설파할 생각이었다.


정치를 모르는 바보라고 놀림받던 맹수 치고는 제법 대단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애초에 네년과 그놈의 주장은 한국놈들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렸다? 네년이 한국놈들의 간첩이라는 의미다! 한국놈들은 언제건 포르모사를 파괴하고 우리들 모두를 가축으로 삼을 작정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면 네년은 한국놈들에게 가랑이를 벌리고 동포들에게는 채찍을 휘두르겠지!"


아, 그건 인정. 이라고 리우는 생각했다.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녀를 압도하는 사자왕의 마력이 실린 포효가 주변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포효만으로도 어지간한 마법은 파쇄되어 버린다.


"사체를 욕보였다고? 그거야말로 한국놈들이 한 짓이다! 우리의 전사들이 놈들에게 산채로 찢겨 죽은지 다섯 해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 놈들의 말을 믿으란 말이냐!"


...한국이 처음 현지인들과 물리적으로 접촉했을 때 접촉 후에 생겨난 사체를 빼돌려 해부한 사례가 좀 많긴 하다. 그걸 어느새 가져와서 물타기를 하고 있는 사자왕의 발상에 리우는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ㅡ 메시지가 도착하였습니다.


그녀의 손에 들린 태블릿이 작게 보고했다. 하트 경이 물리적으로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보고에 급히 이현성에게 부탁했던 것이었다. 아직 열어보지도 못해서 사자왕을 더 도발하는 내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태블릿을 터치해서 이현성이 - 정확히 말하자면 한라산함의 홍보팀에서 보내준 두번째 영상 메시지를 송출했다. 나무빌딩 위에 올려둔 장거리 통신기가 광역 모드로 영상을 재생하자 포르모사 전역의 모든 마력사용자들이 감지할 수 있는 출력으로 퍼트려졌다.


사자왕의 포효를 짓눌러버리는 출력이었다.


***


웅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출항하는 전함 한라산. 포르모사에 정박해 있는 내내 무수히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기에 모르는 이 없는 전함이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오버뷰 모드를 이용해 상공에서 촬영한 스크린샷 무비였다.


"적기 50기 이상, 항공전 영역으로 접근중!"


"요격대 출격!"


어느새 포르모사에서 멀어지고 배경음악은 경쾌한 록음악으로 바뀌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라산함을 향해 날아드는 일본의 기계용과, 한라산의 기계용과의 숨막히는 전투.


"중거리 탄도미사일 경보! 발사점, 한반도 남부! 한국군이 포르모사를 직접 공격합니다!"


"즉각 요격하라!"


"본함이 노출됩니다 함장님!"


"상관없다! 포르모사 방어가 더 중요해!"


포르모사의 모든 이들은 그 붉은 눈알이 탄도미사일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체내의 마력을 진동시켜 인식되기에 마음으로 직접 보이는 영상 속에서, 방문자 이현성은 한라산함이 드러나는 것조차 감수하면서 필사적으로 포르모사를 수호한다. 두 발 중 한 발을 아슬아슬하게 요격하고, 또 한 발이 떨어졌지만 정확하게 포르모사 중심부를 노렸던 것이 한라산함의 요격 덕택에 아주 살짝 빗나가 숲 가운데 인적 없는 곳으로 떨어졌다는 뉘앙스를 끼워넣어 두었다. 정훈장교에게 양심 같은 건 없다.


하늘에 떠오른 붉은 눈알의 공포스러운 모습이 영혼에 새겨져 있던 모두가 영상일 뿐 힘은 느껴지지 않음에도 두려워 떨었고, 한라산에서 발사한 대위성포탄이 아슬아슬하게 스치어 불꽃이 튀는 순간에는 다같이 환성을 질렀다.


"와아아!"


두 번째 탄도미사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낙하하는 탄도미사일을 향해 맹렬하게 다가가는 대위성포탄의 1인칭 시점에는 숨을 죽였다가 거의 빗나갈 것 같았던 포탄이 살짝, 불꽃도 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살짝 스치는 것을 슬로우모션에 CG까지 동원하여 강조할 때는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득한 포르모사의 번화가를 노리던 탄도미사일이 조금씩 각도를 바꾸어 숲 가운데로 떨어지자, 전원이 마법이라도 걸린 듯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어진 영상에서는 포르모사를 지키기 위해 위치가 노출된 한라산함을 향해서 두 발이 아닌 수백 발의 미사일이 우박처럼 쏟아져내린다. 맹렬한 회피기동을 반복하는 한라산함의 발치에 무수히 많은 미사일들이 쏟아져 거대한 물기둥을 이루고 이 와중에 앨리스 공주가 찍어둔 함교에서 지휘하는 이현성의 영상과 교차편집이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미사일 공격을 회피한 한라산함이 아홉 문의 거포로 일제히 반격을 가한다ㅡ


***


워낙에 급히 만들었기에 뒤로 갈수록 기존 홍보영상을 짜집기한 프로파간다성 홍보영상이었지만 이런 것에 내성이 없는 자유국 동맹의 종족들에게는 귀족과 평민을 가릴 것 없이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기세를 올리고 있던 과격파에게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는 사자왕 하트 경 마저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대신 콜로넬 여백작의 요염하고 아리따운 목소리가 마력이 아닌 전파에 실려서 울려퍼졌다. 그녀의 손에는 통신용 무선 마이크가 들려 있었다. 마력이 아닌 전기에 의해서, 하트 경보다 훨씬 적은 마력인데도 포르모사 전역에.


"동포들이여, 우리의 벗인 이현성 함장님께서는 잠시 돌아와 피해를 복구한 뒤 포르모사의 안전을 위해 한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기지를 파괴하러 떠나실 것입니다."


"저와 함께 그분을 맞이하러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곧 밤이 됩니다. 그분이 돌아오실 우리의 항구에 빛을 가득히 밝히고 그분을 기다리고자 합니다. 그것이 구함 받은 우리들의 최소한의 감사의 표현이니까요."


리우는 더이상 하트 경을 상대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몸을 돌려 항구 쪽으로 사라지자 무수히 많은 인기척들이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힐끔힐끔 하트 경을 흘겨보면서.


방금 전 파티장에서 도망친 과격파였던 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약하지만 그보다 훨씬, 절대적으로 많은 숫자가 등을 돌렸다. 지금껏 힘이 전부이며 약자들의 지지 따위는 원래 힘이 없는 뱀녀나 집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하트 오브 라이언 경이었지만,


영토를 잃고 무리를 잃고 정치를 깨달았기에 자신이 끝장났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평생 느껴본 적 없는 감각 - 다리에 힘이 빠져서 휘청인다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멍청한 과격파 젊은이들도 결국은 살금살금 도망쳐 버리고, 사자왕 하트 경은 태양이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노을 속에 혼자 남았다.


무릎을 꿇고 웅크린 거체가 석양을 받아 한없이 긴 그림자를 늘어트리는데도, 한없이 작게 보였다.


여름이었다.




추천과 선작과 댓글은 글쟁이에게 큰 의욕을 줍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주세요.


작가의말

이것으로 2부가 완결되었습니다. 스토리아레나에 참여하기 위해 쓴 글인데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신 덕택에 여기까지 왔네요.

이번 주말까지 좀 쉬고, 한라산의 반격으로 이어지는 3부를 집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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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밀리환초 학살사건 21.08.26 173 5 12쪽
33 한일 연합함대 출동! 21.08.25 192 5 11쪽
32 제해권 장악작전 +1 21.08.24 187 6 15쪽
31 인터미션 - 포르모사의 스파이 +2 21.08.23 186 6 11쪽
30 임무종료 - 강평 21.08.22 197 5 12쪽
29 난타전 / 3차 공격대 출격 +1 21.08.22 183 4 14쪽
28 두더지잡기 +4 21.08.22 187 6 13쪽
27 공중전 II +2 21.08.21 204 6 15쪽
26 섬멸, 또는 학살 +4 21.08.20 208 5 14쪽
25 근접전투 +2 21.08.19 210 6 15쪽
24 정면격돌 21.08.18 218 7 14쪽
23 기적이 일어나다 21.08.17 223 7 13쪽
22 포르모사 방공전 +3 21.08.16 238 8 13쪽
21 요격기 발사 21.08.15 237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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