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만의 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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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49년 9월 21일은 모든 이주민들이 각자 100만명씩 5개의 주에 완전히 편입된 날이었다. 자잘한 혼란과 범죄율의 상승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전부 진압된 지 오래였다.
대왕국의 대군주는 이에 9월 21일을 '백성의 날'로 지정. 그 날 하루만큼은 모든 노동을 면제받고 하루 종일 놀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오늘은 진정으로 기쁜 날이다! 1700만이나 되는 백성들이 퓨레스트 대왕국의 토지에 살고. 퓨레스트 대왕국의 말을 하며. 퓨레스트 대왕국의 문화대로 사는 오늘을 어찌 기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잔을 들어라 백성들이여! 1700만 백성들이여 잔을 들어라! 성부와 성모와 성자의 이름 아래 9월 21일이라는 날짜를 너희에게 바치나니!"
"""와아아!!! 대군주 폐하 만세! 만만세!"""
휴일이 늘어난다는 것은 국민 모두에게 좋은 날이었기 때문에. 백성은 대군주의 명을 받들어 창고에서 포도주와 고기를 꺼내와 신나게 먹고 즐기고 춤추기 시작했다.
여인들은 아름다웠으며. 청년들은 열정적이었다. 군인들조차 창과 활을 내려놓고 시민들과 팔짱을 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즐기고 있었고. 모두가 행복했다. 1700만 백성들 모두가 말이다.
2.
"전혀 행복하지 않아...."
루시타니아 연방 삼두회의원 중 하나인 베네딕트 폰 제스펜은 머리를 쥐어싸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옆 나라 인구가 500만이나 늘어났으니 말이다.
루시타니아 연방의 인구가 아무리 잘 쳐 줘봐야 700만이 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사실상 실질적인 인구는 1000만명 정도 나는 셈이다.
기존에는 빠듯해도 어느정도의 전력비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예고도 없이 훅 들어와버리니 더 이상 군대를 늘릴 수도 없는 막다른 길에 몰린 느낌이었다.
같은 크기인 레이리아 대공국은 그나마 인구가 1000만명 정도는 된다는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인구가 적은 루시타니아 연방은 말 그대로 유사시에 쓸려나갈 것이 분명했다.
"뭐. 지금 걱정해도 별 수 없지 않소. 그들도 섣불리 전쟁을 걸지는 않을 거요. 그들의 옆에는 제국이 있지 않소."
"요즘 제국도 새로 즉위한 루돌프 황제 때문에 뒤숭숭하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전대 황제는 정말로 성군이었는데..."
전대 황제. 다시 말해 루돌프의 아버지인 타르크 황제는 정말로 유능한 황제였다. 실제로 그가 유능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옆의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면 곧바로 도움을 주었다.
기근에 처하면 식량을 주었고. 경제난에 처하면 일자리 수출과 일감을 주었다. 정치적 불안을 겪고 있는 나라에게는 적절한 자를 내세워 불안을 잠재우는 등. 말 그대로 대륙을 주무르는 황제에 걸맞는 인물이었다.
타르크 황제의 시절에는 제국이 패권주의적이라며 비난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폭군이라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을 반증했다.
"그런데 지금 황제는! 제 아비를 죽이고도 철이 덜 들었는지.. 괜히 다른 나라에게 집적거리다 의회한테 징세권마저 빼앗겼으니..."
"실바니아에 근위대를 투입한 것도 결국 의회를 통제하지 못해서 아니오! 그자는 참주에다 폭군일 뿐이오! 황위는 루돌프 그 자식이 아니라 원래대로 라인하르트 폰 발렌시아가 이어받았어야 했는데!"
이후의 행보가 어떻든. 자신의 아비와 친 형을 죽이고 즉위한 군주는 쓴소리를 듣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루돌프 황제는 거기다 더해 이후의 행보도 막장이니. 다른 군주들은 루돌프 황제를 결코 좋은 시선으로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의회에게 처발려 징세권까지 빼앗긴 사실이 대륙 전체로 퍼졌으니. 루돌프 황제뿐만 아니라 제국의 권위가 바닥에 처박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튼. 지금 우리가 멀고 먼 제국의 일을 걱정할 처지는 아니지 않소. 이 난관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얘기합시다."
"레이리아 대공국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퓨레스트를 견제하는 수밖에 없소. 그쪽과 이쪽을 합치면 1700만이니. 어찌어찌 전쟁 억지력을 발생시키는 정도는 가능하겠지."
"레이리아 대공국 측도 우리와의 동맹을 거절하지는 않을테고.. 무엇보다 그쪽은 제국의 우방이잖소."
레이리아 대공국은 제국에서 떨어져 나온 대공이 건국한 국가였다. 다행히 서로 사이가 나쁠리가 없고. 서로간의 긴밀한 협조 체제는 모든 동맹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레이리아 측에서 굳이 우리와 동맹을 맺을 필요는 없지 않소? 어차피 제국이 지켜줄 터이니.."
"그것도 다 옛말이지. 제국도 이제는 쇠락해가고 있소. 루돌프 황제를 보면 견적이 나오지. 그쪽도 살기 위해 필사적일 테니.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지는 못하겠지."
3.
"또 줄이겠다는 소리냐?"
"송구하옵니다만 대공 전하.. 요즘 저희도 사정이 어려운지라..."
"아니다. 상국에서 줄이겠다는데 우리가 뭐라 할 권한은 없지. 이만 물러가 보거라."
"그럼..."
레이리아 대공은 심기가 좋지 않았다. 제국에서 내려오는 지원이 또 다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저번에 비해서 상당히.
"아마도 퓨레스트에 사람들을 보내서 그런 것이겠지.. 그 거대한 덩치를 유지하는 것도 버거울 테니..."
그동안 형님으로 모시면서 온갖 귀한 약재들과 비단. 그리고 귀금속들을 황실에 바쳐왔는데. 돌아오는 것은 줄어들고 있다니. 뭔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퓨레스트가 실바니아를 이겼을 때 제국을 손절해야 했는데...지금 와서 노선을 갈아탈 수도 없고."
대륙에는 제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제국의 국제 질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는 국가들도 있지만. 그 반대. 제국의 내정 간섭을 차단하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려는 중립 국가들도 널려있었다.
그리고 퓨레스트 대왕국은 칼렌 왕국 시절부터 제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중립 국가로서. 제국에 조공은 커녕. 특별한 일이 없다면 서로 연락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냉랭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그런 국가와 가까워지려 한다면. 지금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는 제국에게는 크나큰 위기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의 위기는 견딜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중에 제국이 다시 원래대로의 위엄을 되찾고 나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이다.
독자 노선을 걷기에는 힘이 부족하고. 명분도 부족하다. 그렇다고 편을 바꾸기에는 받아줄 편이 없고. 가만히 있자니 말라죽을 판이다.
"이를 어찌한다?"
그렇게 고심하고 있던 대공에게. 루시타니아 연방의 사절이 찾아오는 것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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