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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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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7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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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리셋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밥을 먹고 몸을 일으켜 식당을 나갔다.

이런 만찬을 즐긴 것도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빵이나 대체식품으로 대충 때웠는데 말이다. 사실상 섬천과의 만남을 자축하기 위한 것 이었다. 공호는 가족을 한 명 한 명 찾을 때마다 이런 만찬을 가지자고 다짐했다.

모든 가족을 만나기 전엔 그 외의 일로 거창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만약 끝까지 못 찼는 다면 끝까지 안 먹을 생각이었다. 그게 공호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어. 여기에도 저런 게 있습니다."

섬천은 주위를 몇 번 둘러 보더니만, 손으로 식당 앞 천막을 가르켰다. 왜소한 천막 위에는 '신통한 예언 마법사.'라고 적혀져 있었다. 이건 뭐, 거의 지구의 '사주 팔자'와 다를 게 없었다.

의외로 섬천이 그곳에 관심을 보였다.

"마법사가 예언도 할 수 있었습니까?"

할 수는 있다고 들었다.

다만, 틀일 확률도 높았고 아주 두루뭉숭하게 예언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도 메간트급정도의 고위 마법사는 되어야 어느정도 시도하겠지만.

마법사의 수가 네트급 최상급이 30% 인 것을 생각하면, 그 위인 메간트급은 상당히 되기 힘든 마법사 일 것이다. 메간트급 중에서도 상급으로 올라가면 말할 것도 없고. 메간트급 최상급 바로 다음 등급이 기간트급이다. 기간트급 마법사는 최하급이 A급 용병 대우를 받는다.

애초에 최하급 기간트급 마법사가 용병이 되면, A급 특수 용병이 아니던가.

"그럼 적어도 메간트급 마법사일 텐데.. 그런 이가 이런 골목진 곳에서 저런 짓이나 하고 있진 않겠지."

..라고 말하고 공호는 갈길을 가려했다. 그런데 섬천의 눈은 이미 저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장난감 가게앞을 지나가는 아이의 눈빛이었다.

저 놈, 저런 면모도 있었나 하고 그곳을 흝어볼 때였다. 아! 공호는 속으로 탄성했다.


섬천은 상당히 머리가 좋다.


'그런 이유가 있었군. 맞아. 이 놈은 머리돌아가는 것과 관찰력 하나는 옛날부터 나보다 낫았지.'

천막의 아주 작은 틈 사이로 안에 한 인간의 얼굴이 보였다. 그 인간의 볼에는 개척자 문양이 어슴푸레하게 자리잡았다. 섬천과 공호의 시력아니였으면, 그냥 지나쳤을 작은 틈이었다.

섬천은 이 식당에 개척자가 있었다는 사실로, 이 주위 어딘가 개척자가 머물 곳이 있다고 가정했다. 이 넓은 땅에 개척자가 동시에 2명이 나타나긴 어려웠을 테니까. 게다가 EG라는 곳의 소속이면 파견나왔을 확율이 높았다.

식당에 있었던 개척자들이 들어간 골목은 막다른 곳이었다. 딱히 어디론가 갈만한 골목이 아니었다. 그런 곳을 갔단 소리는, 일단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레스토가 뜸할 때 어딘가로 갈 때까지 숨어 기다릴 목적이었을 것이다.

천막 자체는 섬천이 식당에 왔을 때부터 봤었던 곳이다. 섬천은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이 천막을 다시 자세히 둘렀고 이 틈을 잡아냈다. 그걸 또 놈들이 눈치채지 않게 태연히 공호에게 의도를 전했다.


무서운 놈이었다.


공호는 적당히 속아주는 척 하며 천막에 다가갔다. 천막안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쉭, 공호는 빠르게 움직여 천막 속으로 들어갔다.

'재밌군.'

아래 쪽으로 뚫린 통로로 내려가던 개척자와, 잔잔한 미소를 짓고 공호를 지긋이 보는 노년의 레스토. 그 둘의 조합은 뭔가 맞지 않았다. 한 놈은 놀라 자빠지는 데, 한 놈은 실실 웃기나 하다니.

레스토가 말했다.

"어서 오시게나. 미래를 볼 텐가?"

공호는 의자를 빼 자리에 앉았다. 도망가는 개척자를 잡진 않았다. 진짜 볼일은 이 놈에게 있었으니까.

노인은 여유만만 했다. 마치 언제든지 나 따위는 죽일 수 있단 듯. 그게 흥미로웠다. 공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여기서 개척자들을 돕는 거지?"

노인은 어깨에 걸친 부드러운 털가죽을 쓰다듬었다. 겉모습은 인간과 닮았는데, 눈이 세개였다. 이마에 난 눈이 신비롭게 빛났다.

"내가 자네의 미래를 보는 것을 허락하면 알려주겠네."

말 한마디에 신비로운 힘이 서려있었다. 고차원적인 힘이었다. 범인이라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빨려들어갔을 기운을 풍겼다.


무슨 수작을 부릴려고?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자네는... 개척자들의 왕이지 않은가. 그런 자네가 그리 겁먹을 일은 없네. 후일엔 세상누구도 100명의 왕들을 막을 순 없을 테니까. 내가 개척자들을 돕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지. 우리 레스토가 살아남는 방법은 개척자들과의 조화밖에 없으니까."

내가 S급 개척자인걸 어떻게 알았을까. 더욱 흥미로웠다. 적어도 어중간한 돌파리는 아니었다.

"좋아. 내 미래를 들어나보고 이야기 하지."

이 놈과는 꼭 할 이야기가 생겼다. 이 놈은 EG와 관련있어 보였다. EG는 개척자들이 우글우글 모인 단체, 혹시 거기서 가족이 나올지도 모른다.

'정보를 살짝 맛보는 거다.'

당장 EG의 본거지라도 알아둔다고, 가서 가족을 찾을 방법은 없다. 모인지 두달도 안 지난 이 시점에서 인원파악이 완벽하게 된 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러니 일단 맛만 보는 것이다. 힘이 생기면 언제든지 칠 수 있도록.

"자, 그럼 바로 시작하겠네. 구슬 세개를 굴릴 거야. 이 구슬이 땅과 닿아 멈는 순간에 자네의 미래를 알려줄 걸세."

어? 이거 어째 가면 갈수록 사기꾼같다. 게다가 왜 하필 구슬인가. 거기엔 좋은 기억도 없는데. 그는 긴말없이 구슬을 굴렸다. 또로록 구른 구슬이 책상을 굴렀다.

또륵, 탁. 하나의 구슬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 멈췄다. 노인이 두 손을 구슬 위쪽 허공에 대고 눈을 지긋이 감았다. 푸른 플라즈마 같은 것이 구슬주위를 소용돌이 쳤다. 구슬 속에 뭔가 투영하기 시작했다. '알?'

그것은 알이었다. 마치 계란처럼 타원의 알.

'그런데 검다.'

눈을 감고 깊은 호흡을 하던 노인이 한쪽눈을 슬쩍 떳다. 그는 흠칫 놀랐다.

"오오! 알은 다시 태어남을 상징하지. 이건 진짜 드문건데... 예언에서 알을 받은 자들은 어떠한 계기로 갑자기 달라지기도 하네. 알이 선명한 것을 봐서는 정말 가까운 미래일텐데... 그리고 보통 다시태어나는 알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는데 이상하군. 완전한 어둠 이야. 단색의 알은 처음이야. 예언에서 그런 알이 있단 이야기는 들어 보지도 못했네."

또로록, 그 사이 두 번째 구슬이 제자리를 돌며 멈출준비를 하고 있었다. 노인은 다시 눈을 감고 구슬에 집중했다.

다시 색을 잃어가며 안을 투영하는 구슬. 이번에도 알이 었다. 검은 알을 검은 꼬리가 휘감고 있었다. 그 꼬리는 여우의 풍성한 털같이 아름다웠다. 공호는 그 꼬리를 홀리듯 지켜봤다. 색이 검은 것을 빼고는,

"흠... 자네, 단순히 개척자의 왕이 아닌 것 같군. 두번 연속으로 같은 형상이 나오는 일은, 그 예언이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이에게나 나오는 법인데... 흠, 흠! 그리고 두번 나온것이 검은 알이라.. 게다가 또 검은 꼬리가 검을 알을 감싸고 있네. 재밌군. 재밌어."

노인은 다시 손을 옮겼다. 그곳에는 마지막 비틀비틀 돌고 있었다.

"어?"

우타타당!

노인은 괴성을 지르며 넘어졌다. 그 안에 있는 예언을 보고 노인은 너무 놀라 모든 근엄을 버려서까지 넘어지고 말았다. 노인은 벌벌 떠는 눈으로 손가락을 펴 구슬을 향해 찔렀다.

"루, 루나."

루나? 그건 달을 뜻하는데. 공호는 고개를 숙여 구슬 속을 보았다. 아주 지극히 정상적인 만월이 보였다. 이게 뭐 어쨋다고.

"이제 점 놀이는 끝났다. 내 질문에 답해줄 때야."

노인은 애써 진정한 다음 의자에 앉았다. 몇번 심호흡을 하며 맥박수를 정상으로 낮추고, 공호를 쳐다봤다.

"왜 레스토가 멸망한다는 예언이 내렸는지... 이해가 가네. 자네 때문이야. 자네 때문에 모든게 무너질 거야. 모든게 개척되며 동시에 모든게 척살당할 거야."


뭔 개소리야.


공호와 섬천은 눈을 마주쳤다. 섬천도 이해할 수 없단 듯 어깨를 들썩였다.

"내가 개척자를 돕는 이유는 그것 뿐이네. 바로 멸망하기 싫어서지. EG의 본거지가 어디있는지는 모르네. 미안하지만,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게나. 제발 이만 나가주게."

명백한 축갱령이었다. 그는 눈을 비비며 고개를 광견처럼 격하게 이리저리 흔들었다. 공호는 어이없어 하면서 일어섰다. 지금 왠지 그를 건드린다면, 나 까지 미쳐버릴지도 모른단 기분이 들었다. 그는 미쳤다.

"내 이름은 리안 드 마헨트리나. 리안이라네."

그러며 그는 목에 걸치고 있던 목걸이를 건넸다. 그의 눈에 흰자는 없었다. 그의 각막은 온통 핏줄이서 혐오스러웠다.

"받게나. 제발 받게나. 나는 살고싶네. 아니, 우리는 살고 싶네. 그러니 그걸 제발 받게나. 자네에게도 혹여나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걸세."

공호는 무시하고 걸었다. 저런 걸 함부로 넙쭉 받고 싶진 않았다. 그러자 놈은 공호의 바짓가랭이를 붙잡고 목걸이를 내밀었다.

"반드시 도움이 될 물건이네. 제발.."

공호는 목걸이를 조심스레 손에 쥐었다. 아무 이상은 없었다.

"정말 도움이 되는 거지?"

"그렇다네. 제발 그걸 차시게나."

주는 건 저쪽인데 애원도 저쪽에서 한다. 공호는 아주 조심스레 온몸의 감각을 되살려가며 목에 목걸이를 걸었다.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고맙네."

공호는 천막을 나갔다. 두 형제의 얼굴은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괴상한 경험이었다.


#


공호는 섬천과 용병 시험소 앞에 발을 디뎠다. 프리아도 대도시에 속하기 때문에 건물이 질리도록 컸다.

의뢰를 청탁하기 위해 낸 돈과 스스료가 쌓이고 쌓인 결과였다.

"용병 등록은 왼쪽, 갱신은 오른쪽 통로로."

공호는 오른쪽, 섬천은 왼쪽으로 길이 갈렸다. 섬천이야 원래 뚝 부러지니 잘하겠거니 하며 공호는 자신에게 집중했다.

특수 용병 시험은 보류. 육체 시험만 치를 생각이다. 공호는 걸으며 정보창을 펼쳤다.


-육체 등급:S 레벨:42 육체랭킹:11위

이름:공호 칭호:11세대 선구자, 그외...


힘:230 민첩:410 순발력:135 체력:70 육감:125

특수 마나 친화도:250 특수 마나 제어력:205

부여 가능 스탯포인트:0


음의 마나라는 능력은 랭킹을 유지하는 것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사냥을 한 달가까이 원활히 하지 못하다가, 한 번에 11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30위 이상을 일주일 안에 치고 올라온 셈이다. 물론 음의 마나의 덕이 컸다. 사냥에 있어선 탁월한 능력이다. 더 들어가 공호는 새로 얻은 칭호를 확인했다.


-학살자: 10초 안에 2명 이상의 생물을 죽였을 때, 5초 동안 육체 능력이 전체적으로 5% 상승한다.


공호는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경우에 따라 상당한 도움이 될 효과다. 특히 일반적인 사냥에는 엄청난 도움이 돼 보였다. 통로의 마지막은 환한 빛과 함께 마주했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접수처가 따로 있었다. 공호는 용병 패를 내밀며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를 작성했다.

서류를 건네받는 안내원이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당황했다.

"B급 이상인 분들은 시험 치기 3일 전부터 예약을 해 놓아야 처리가 됩니다. B급 이상의 감독관을 갑자기 부를 수는 없어서."

"정말 안 됩니까?"

공호가 정중히 물었다. 복잡하지 않게 시험은 섬천과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일 처리에 좋다. 안내원이 갑작스럽게 움찔하며 탄성을 했다.

"아! 그분이라면.. 지금 이 도시에 S급 용병 중 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분에게 부탁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녀는 S급 용병이란 말을 입에 담기도 버거워하듯 말했다. 확실히 그런 가치를 지닌 등급이다. 용병왕의 등급 SSS, 그리고 50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SS 등급. 그 바로 아래에 있는 S등급 용병.

산을 쪼개며 바다를 가르는, 능히 절대자에 반열에 오르는 이다. 이 넓은 세상에 1,000명을 넘지 않는 듯 싶다.

그녀가 방방 뛰어다니며 가져온 것은 마나 수신기였다. 마나를 통해 목소리를 수신하는 그런 도구다. 일반적인 마나를 다루는 용병이 S급 이상이 된다면 이 수신 마나 전파를 몸으로 잡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의도를 보아 분명히 특수 용병이 아닌 일반 S급을 부르려 하는 것이다.

우우웅.

상당한 진동을 하며 형태화된 마나가 미친듯한 속도로 마나 수신기에서 빠져나갔다. 그녀는 마나 수신기를 들고 공호가 없는 뒤쪽으로 나갔다.


-왔나?


"네, 왔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이번 한 번에 끝내는 거야. 내가 놈을 데리고 들어가면 용병소는 페쇠하게.


"알겠습니다."


그녀의 주위에는 기간트급 마법사의 보호막이 미리 쳐져 있었기에 소리는 하나도 새어나가지 않았다. 공호가 아무리 그들의 대화를 들으려 하여도 새어나오는 소리가 없었다.

파아아아!

후폭풍이 불었다. 어느새 어느 한 레스토가 안내원의 곁에 서 있었다. 공호조차 그의 움직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무서운 생물이다.


"자네인가! 당장 시험을 치지."

사고방식이 너무 뜨거워서 괜히 옮을 것 같은 분위기다. 열혈이라 해야할까. 그런 분위기의 사내였다. 공호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그의 걸음을 따라 옮겼다.

재밌는 것은 그가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자네는 혹시 여우 요괴인가! 뼛속까지 시원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마나를 간파당했다. 그의 눈이 어느새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따라갈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인간이다.

공호는 경계심을 마구 끌어올렸다.

문 넘어 시험장.

상당히 넓었다. 시험장안엔 공간 왜곡 마법이 펼쳐져 있었다. 밖에서 볼 때는 작지만, 실제로 안은 공간을 확장하여 엄청나게 넓었다. 아마 기간트급 마법사 열은 갈아넣었을 마법이다.

여기가 나름 제국의 대도시여서 B급 용병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것이지, 어중간한 도시에서도 B급 용병의 시험장이 있기는 어렵다.

"걱정 말고 마음껏 날뛰시게나! 이곳은 5중 결계로 공간이 보호받고 있네! 5중으로 된 결계는 내가 마음을 먹어야 뚫을 수 있는 결계라네."

공호는 고개를 숙여 예를 취했다. 그리고 단도를 들며 말했다.

"공호입니다."

"오! 자네가 그 유명한 소문의 천재 용병이란 말인가? S급의 닐일세."

공호는 자세를 늦추었다.

"자, 오게나."

파앙!

공호의 자리가 움푹 파인다. 막대한 힘으로 단단한 지면이 두부처럼 뭉개저버린다.

공호의 손에는 2개의 단도가 쥐어져 있다.

지옥에서부터의 주특기를 지금에서야 펼칠 수 있게 됐다. 두 자루의 단도를 쥐고 어린 나이에 전장에서 살아갔던 요괴. 광기에 찌든 인간 속에서 단검을 들고 적응해 나간 소년. 그것이 공호다.

까앙!

공호의 두 단검 모두 닐의 검과 부딪힌다. 막대한 양의 불꽃이 튀긴다. 속도만으로도 크레이터를 만들 파워다. 거기에 힘까지 곁들어졌으니 단도가 녹아갔다.

까가가각!

닐이 검을 눕히고 밀어갔다. 공호의 충격에도 어찌 된 건지, 검은 꿈쩍도 안하고 수많은 불꽃 덩어리들만 만들어 내었다.

공호는 다음으로 움직인다.

자연스럽게 손 위에서 팽그르르 회전한 단도가 검을 흘려 무시하고 쭉 나아간다. 허나, 이미 그 자리에는 검의 손잡이가 자리 잡았다. 닐은 교묘하게 손잡이 만으로 공호의 단도를 받아냈다. 이어 공호는 망설이지 않고 다른 손에 있던 단도를 찔렀다.

까드드드득!

화아악.

공호와 닐의 속도 만으로 마찰열로 인해 주변이 땅이 불구덩이가 되어 쾅 내려앉았다. 둘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공방을 예측해가며 검과 단도가 있을 자리를 찾아보낸다.

깡!

이제는 검과 단도가 붉게 닳아 올랐다. 미칠듯한 마찰열을 제어하지 못하고 불이 솟구쳤다. 불구덩이가 마구 떨구어진다.이제는 공호가 입고 있는 불의 기숙사의 외투까지 연소되어갔다. 용암의 온도도 견디는 외투가 활활 타들어간다.

일반인이 본다면 공호와 닐은 보이지 않고 불꽃이 사방에서 화르륵 발생하는 기이한 광경일 것이다. 불나방이 날뛰는 대련장.

뿌득.

공호가 이를 악물었다. 닐은 신기하게도 옷조차 불에 타지 않았다. 그때 닐이 검을 가르며 조언을 꺼내왔다.

쉬이익!

"언제까지 열을 발생시킬 건가. 그 때문에 몸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를 못 내지 않은가. 열을 피해 가게나."

열을 피해 가라. 대기 마찰을 줄이란 이야기다. 어떻게? 죽을 힘을 다해서 빠르게 움직였다. 한계를 넘어선 속도에 소닉붐과 함께 충격파가 발생한다. 지구에서는 마하의 속도를 넘어서야 소닉붐과 충격파가 발생하지만,아스페티아는 아니었다. 적어도 마하 8은 넘어야 나오는 것 같았다.

특이한 점은 위력도 남달랐다. 고막이 터질 듯 큰 소리가 연속적으로 생겨난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충격파를 견디느냐 쩌릿쩌릿 한 몸을 주체하지 못 했다.

파앙! 파앙!

연속적으로 충격파가 터져나간다. 그럼에도 쉽게 쉽게 검을 다루는 닐이 괴물같이 보였다. 닐의 검에는 소닉붐도, 충격파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공호의 모든 공격을 받아치고 남을 정도로 빨랐다.

공호는 무의식적으로 말을 흘렸다.

"... 괴물이군."

파앙!

이건 이미 검과 단도가 부딪혀서 날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15살이라고 했나? 자네가 할말은 아니네."

까가가각.

닐은 인상을 썻다.


이 아이. 처음과 다르다. 초반에는 소닉붐과 충격파를 주체하지 못하더니 이런저런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번에 충격파를 극대화시켜 이용할 기교까지 부린다. 이 아이는 괴물 같은 아니, 그것을 뛰어넘는 적응력을 갖고 있다.

무한 적응 능력.

모든 것에 적응한다. 어려움이든, 감정이든 모든 사소한 것부터 상당히 난해한 것까지 아주 조금의 경험으로 적응해 버린다. 그러나 이제 곳 불살라질 재능. 닐은 혀를 차며 아까워했다.

'쯧, 하필 이런 같은 재능을 가진 이가...'

힘을 주어 밀고 나간 단도가 검을 밀치고 닐의 미간까지 도달했다.

아압!

"평가는 끝났다네. 그만 끝내지."

차장.

그가 검을 눕혔다. 이후 야구하듯 공호를 검면으로 쳐 가볍게 날려보냈다.

퍼억! 공호는 마하 10를 넘나드는 속도로 벽에 처박혔다. 쿨럭, 막대한 피가 솟구쳐 나왔다.

동시에 닐의 소맷자락이 갈라졌다.

"이건 대단하군! 좀 쉬게나. 어차피 정신이 없겠지만."

갈라진 벽의 틈에서 돌헤쳐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닐이 섬뜩하게 동공을 풀었다. 쓰윽, 공호가 닐의 등에 나타났다.


보지 말고 읽어라. 다음 수를 읽어라. 그리고 하나를 적응하라.


닐은 공중에 옆차기를 날렸다. 그러나 이미 공호의 몸은 아래에 있었다. 이번에는 위. 허나, 이번에도 공호는 다른 곳에 이미 몸을 움직여놓았다. 닐의 각력에 터져나간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공호는 닐의 등 뒤에서 단도를 내려그었다. 베었다. 흩날리는 내 머리카락을.


파앙! 다시 한번 충격파가 터진다. 이번에는 닐이 고의적으로 발생한 충격파였다. 공호는 아까의 2배되는 속도로 벽에 처 박혔다. 쾅! 그러나 이번에도 공호는 벽을 박차고 나왔다. 얼굴에 코피가 파앗 터져 나왔다.

"한 번더?"

닐이 극도로 흥분했다. 동시에 속으로는 굉장히 아까워했다. 공호는 다시 땅을 박찼다.


하나를 적응 했으면 둘까지 늘려라. 하나씩, 하나씩 계속 늘려라.


파앙! 공호의 속도에 충격파가 터져나갔다. 방안의 모든 먼지가 솟구쳐 올랐다. 의지가 불타는 듯 눈빛이 모든 것을 비쳤다. 닐이 검으로 공호를 베었다. 허공이었다. 발로 강하게 그었다. 이번에도 허공이다. 검의 손잡이를 갑작스럽게 뒤로 뺐다.

차악!

공호의 바짓자락이 충격파에 부서진다. 그때, 공호가 닐의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빠악! 공호의 다리가 닐의 뒤통수를 타격했다. 쓰러질 듯 휘청거린 닐이 제자리를 찾았다.

"결정했다."

""

분명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헌데 상상을 불허하는 에너지가 배에서 느껴졌다. 그것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몸이 벽에 박혀있었다. 막대한 충격이 몰려온다. 그러나 상식을 넘는 충격에도 마지막까지 공호는 정신을 놓지 않았다. 다만 더 이상 달려들지 않았다.

"시험은 끝일세."

닐이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뒤돌아 말했다.

공호가 벽에서 빠져나오며 돌 부스러기들이 두두둑 떨어졌다. 닐은 정신을 잃지 않은 공호를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자네는 지옥에서 기어올라온 건가?"

터무니 없는 정신력이다. 닐은 뒤통수를 매만지며 자꾸만 괴이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됐든 압도적인 실력 차이에서 뒤통수를 내주는 일이 벌려졌다.

"용병이 된 사유 중에 유명해지고 싶다가 있었나?"

힘이 모두 빠진 공호는 바닥에 드러누워 대답했다.

"예."

"축하하네. S급 용병의 뒤통수를 발로 찬 신입 용병이라. 유명해지겠군."

닐이 검을 세웠다.

"A급 용병의 자격을 주겠네."

주변의 마나가 닐의 검에 빨려 들어간다.

'뭐지?'

콰아아! 닐의 몸에서도 무지막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에너지가 검에 집약되었다. 타닥. 타닥. 검이 견디지 못하고 부르르 떨었다.

"일반적인 S급 용병은 대부분 마나가 초월점에 도달했지."

점차 검이 떨며 짙은 푸른색에 물든다. 일반 마나가 몸 밖으로 배출된 상태. 초월점을 넘어야만 보일 수 있는 기교.

공호는 느낌이 안좋았다. 급히 단도를 들 때었다.

"자네는 음의 마나도 같고 있는 것 같더군. 그런데 그런 육체적인 능력을 보인다?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지."

압도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콰앙! 닐은 분명 자리에 있건만, 공호의 얼굴이 땅에 짓이겨졌다. 공호가 쥐고 있던 단도는 허무하게 튕겨 날아갔다. 닐은 공중에 붉은색 가루를 흩뿌렸다.

'젠장.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화르르륵.

볼을 인두로 지지는 느낌이 들었다. 공호는 본능적으로 무슨일이 일어난지 깨달았다. 쩌적, 작은 원형 모양으로 대기를 얼렸다. 거울처럼 변한 얼음에 비친 얼굴을 봤다. 붉게 드러난 개척자의 문양.

"개척자새끼들."

틀렸다. 여기서 들킬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 했다. 너무나도 완벽한 최악의 상황. 힘도 대부분 빠져버렸고 실력 차이도 엄청나다. 개미핥기 앞의 개미의 기분이었다.

"아아압!"

공호는 무형의 압력을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머리는 어떻게든 도망칠 생각만 하고 있다.

"묻겠다. 자네는 어떤 개척자인가. 지능이 있는 자네들은 어떤 개척자인가."

단도를 꽉 집었다. 캉! 가벼운 소리와 함께 단도가 저 멀리 날아간다. 손에서 단도를 놓쳐버렸다. 항상 영혼같이 꽉 쥐었던 단도를 파괴된 것도 아니고 단순히 놓쳐버렸다. 공포감에 반사적으로 손톱이 솟아올랐다.

"여기서 죽던가."

닐이 검을 뽑은 순간 푸른 섬천이 레이저검처럼 일렁이며 스쳐간다. 촥! 땅에 무언가 떨어진다. 거칠게 공호의 눈이 흔들렸다. 영원히 부러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공호의 손톱이 허무하게 베었다.

공호는 주위를 둘렀다. 어느샌가 입구와 가장 먼 곳에 있었다.

"피의 맹세를 하던가."

콰득.

닐의 주먹이 공호의 명치에 틀어박힌다. 너무나 빠른 속도에 신경세포가 따르지 못한다.

파앙!

용병시험소의 가장 높은 곳, 5중 결계가 쳐져 있는 공중. 명쾌한 소리가 나며 공호의 몽뚱어리가 부딪힌다.

결계가 막심한 충격에 우웅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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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리셋 +2 15.05.03 1,091 32 11쪽
30 리셋 +4 15.05.03 1,071 40 14쪽
29 리셋 +8 15.04.29 1,139 31 17쪽
28 리셋 +4 15.04.12 1,397 51 15쪽
27 리셋 +6 15.04.10 1,250 40 11쪽
» 리셋 +7 15.03.27 1,712 44 23쪽
25 리셋 +6 15.03.22 1,716 41 9쪽
24 섬천(剡天) +2 15.03.21 1,492 39 25쪽
23 섬천(剡天) +3 15.03.20 1,767 54 14쪽
22 섬천(剡天) +1 15.03.19 1,667 43 13쪽
21 섬천(剡天) +2 15.03.19 1,657 46 14쪽
20 섬천(剡天) +5 15.03.17 1,596 49 14쪽
19 섬천(剡天) +2 15.03.17 1,563 50 23쪽
18 섬천(剡天) +3 15.03.17 1,854 52 11쪽
17 전환점 +4 15.03.14 1,696 60 13쪽
16 전환점 +3 15.03.14 1,653 50 9쪽
15 전환점 +2 15.03.14 1,634 51 10쪽
14 전환점 +2 15.03.14 1,622 47 15쪽
13 전환점 +2 15.03.14 1,562 51 14쪽
12 전환점 +4 15.03.14 1,773 54 12쪽
11 전환점 +4 15.03.14 1,887 56 16쪽
10 각오 +2 15.03.14 1,701 52 20쪽
9 각오 +3 15.03.14 2,246 71 8쪽
8 각오 +1 15.03.14 1,788 59 22쪽
7 각오 +3 15.03.14 1,918 55 17쪽
6 각오 +3 15.03.14 2,203 79 9쪽
5 각오 +3 15.03.14 2,055 62 15쪽
4 각오 +6 15.03.14 2,143 6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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