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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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날 하루는 쉬지 않고 몬스터를 쳐 죽였던 걸로 기억한다.
섬천은 약한 놈 강한 놈 가리지 않고, 전부 도축할 기세로 뼈를 발랐다. 갈갈이 날뛰다 지치면 쓰러졌고, 손을 부르를 떨다가는 다시 일어나 몬스터들을 갈아엎었다. 공호가 끼어들기도 무섭게 섬천이 모든 몬스터를 찢어버렸다. 공호는 레벨을 하나도 올리지 못했지만, 섬천은 상당히 오른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그래서. 얼마더랍니까?"
섬천이 물었다.
휙, 공호는 돈주머니를 공중에 던졌다. 공중에서의 짤랑거리는 맑은소리가 울렸다. 섬천은 잡아 채 액수를 파악했다.
"꼬리가 332개. 322R이 넘게 나왔어."
공호가 동전을 하나 튕겼다. 상당히 번쩍거리는 심상치 않은 금속으로 이뤄져 있어 보였다.
"이게 그 1S야. 1R 250개짜리, 무역용 동전."
공호가 엄지와 검지를 비벼 젖혔다. 그러자 1S 동전 6개가 차례대로 나타났다. 이건 자이언트 터틀의 몸값이었다. 조금 더 있지만 작은 단위의 돈으로 환전하여 쓰기 쉽게 해두었다.
어쩌면 터무니없는 돈을 만지고 있는지 몰랐다. 하나, 앞으로 일상화 될 일이다. 설레발 칠 이유는 없었다.
"우리는 어차피 가족 찾으러 굴러다녀야 되잖아. 일단은 유명하기 위해 이것저것 의뢰를 해야겠지."
섬천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에 새로운 검이 보였다. 공호의 양 허벅지에도 처음 보는 단도가 매달려있다. 한 자루의 검과 한 쌍의 단도.
티에든에서 가까운 도시, 프리아. 프리아의 가장 뛰어난 장인의 솜씨다.
모두 자이언트 터틀의 등껍질의 가장 단단한 부분을 5회 가공하고, 겉은 절삭력에 탁월하다는 모래 사마귀의 앞다리를 이용해 절삭력을 높였다. 공호도 섬천도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다.
"왜?"
"아냐."
공호는 생각했다. 폰의 나이도 14세고 섬천의 나이도 14세다. 그런데 이렇게 다를 수 있나. 물론 폰이 항상 물렀던 것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폰은 지구의 시간으로 42세의 나이다.
하지만 왜인지 이 세계는 레스토의 정신연령도 늦게 발달하는 것 같다. 폰의 연령연령은 지구기준으로 성인은 아니었다. 사춘기의 아이. 딱 그 정도였다.
폰은 귀엽고. 섬천은 상당히 날카롭다. 덤으로 둘 다 이성에게 인기가 많았다. 언젠가 둘이 만난다면 어떤 작용을 할까 궁금했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잠시 식당에 들렀다. 몬스터를 사냥하다 막 들어왔기에, 외각진 곳에 자리잡은 식당이었다.
아스페티아는 고기를 구울 때 연탄보단, '오도어리움'이란 일종의 보석을 쓴다. 오도어리움의 파편을 적당히 뿌려놓은 철판에 불을 붙이면 어떤 고기와도 어울리는 향이 올라와 고기에 베어든다. 오도어리움은 지구의 석쇠구이와는 비교도 못할 풍미가 있다. 게다가 오도어리움은 그렇게 비싼 보석도 아니고, 철처럼 풍부한 자원이다. 동시에 조금의 파편만 쓰기에 효율이 좋았다.
음식이 나왔다.
지글지글 끓는 고기 위로 오도어리움의 향기가 풍겨왔다. 고기의 동그란 기름구슬들이 이리저리 먹음직스럽게 튀었다. 공호는 그 위로 이 지역의 특산품인 붉은 음료를 겉뿌렸다. 치이이 하는 불판의 입맛돗는 노래가 울렸다. 음료는 증발하며 그 찌꺼기가 불판에 남았다. 본래 이 음료는 그걸 먹는 목적으로 나오는 거였다.
그렇게 포크를 들었을 때 공호의 귀에 수상한 소리가 잡혔다. 섬천도 눈치 챘는지 조용히 포크를 내려놓았다. 지글지글. 그 사이에도 먹음직스런 고기는 익어가고 있었다.
공호방향으로 3번째 떨어진 테이블. 두 명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심상치 않았다.
"민첩은 얼마나 올렸어?"
"그래도 C급이라서 다행이네. D급이면 어쩔뻔 했어. 민첩은 20 정도 찍었네. 아주 몸이 날아다닐 지경이야."
"쳇. 나도 C급 이긴 한데 이왕이면 B급이 더 좋았을 텐데. B급은 스텟포인트를 레벨당 5씩이나 준다던데. C급은 3씩밖에 안 주는 건 또 뭐야?"
공호와 섬천은 숨을 죽였다.
이어 계속 소리가 들려온다.
"으그, 미쳤지 미쳤어. 그러니까 왜 지익(地翼) 쪽은 요괴의 제국과 전쟁을 해서 아까운 전력만 떨어뜨리고 있어. 평균레벨이 못해도 5는 떨어졌을 거야. 뭐가 좋다고 공을 세울 생각을 했는 지 선두에 서서 이꼴이야."
"참게나. 그래도 아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냐. C등급도 공만 세우면 대장급이 될 수 있어. 곧 천익(天翼)에서 개혁할 거란 소문도 있고... 여튼, 지익이든 천익이든 EG는 앞으로 괴물같이 불어날 거야. 이만한 세력은 생기기 어렵지. 개척자들의 중심이 될 단체야.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 떡고물이 떨어질 수도 있겠지."
놈들이다.
요괴의 제국과 전쟁을 벌였다던 개척자들.
"가자고. 이제 이 넓디넓은 세상을 인간이 모두 개척하는 거야. 인간의 세상이지. 썩어빠진 지구는 잊어도 돼. 어쩌면 쿤은 우리에게 진정한 천국을 쥐여준 신 일지도 모르겠군."
"어디 가서 그런 소리하면 맞아 죽어."
"죽여봐라? 다시 살아나는데 이제 뭐가 겁나나. 원래 사나이 가는 길 몇 번이고 죽을 수도 있는 거지."
그들이 밖으로 나갔다.
"먹고 있어."
공호는 섬천의 어깨를 살짝 짚은 다음 그들을 뒤따라 나갔다.
두 남녀는 레스토들의 눈을 피해 식당 옆 골목으로 들어섰다. 무슨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게 아스페티아니, 그들은 두 손에 검을 꼭 쥐고 걸었다.
그때였다. 골목의 맞은편에서 기가막히게 생긴 소년하나가 걸어나왔다. 여자는 잠시 멍때리고 소년을 보다가, 그 소년의 걸음걸이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검을 내뻗었다.
두 개의 검이 공호의 목 좌우에서 멈췄다. 공호는 걸음을 멈췄다.
"뭐지?"
'뭐긴, 뭡니까. 저승사자지.'
섬천이 비웃었다. 하필 그게 또 식당의 벽 하나 차이로 섬천과 떨어진 골목길이었다.
"너희는 EG에서 어디 소속이지?"
공호는 대충 말을 던졌다. 뭔가 이상했다. 보통은 개척자라도 이렇게 소속을 묻진 않는다. 확인을 위해 물었다.
"혹시 마혈대 소속이십니까?"
사내는 있지도 않는 부대을 대며 물었다.
'떠보는 군.'
놈이 잠시 머뭇거리며 질문하는 덴 이유가 있다. 정말로 상관을 만나 놀랐거나, 아니면 떠보기 위한 밑밥. 그러나 상관과 만났다면, 저렇게 발의 위치가 앞뒤로 벌여진 체로 도망갈 준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아직 검도 바로 휘두룰 수 있도록 세워져 있다. 공호는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
휙, 공호는 아무말 없이 손을 뻗었다.
너무 빨랐나? 주먹이 닿기까지 놈들은 그 어떠한 반응도 하지 못했다.
쾅!
여자가 옆을 돌아봤을 때는 남자는 저 뒤로 날아가 벽을 관통하고 정신을 잃었다. 그래도 죽지는 않았는지, 심장은 뛰고 있었다.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공호는 나직히 물었다.
"레벨이 몇이야?"
"저, 저는 13. 재, 재는 14 이예요."
"그 정도면 EG에서 어느정도 수준이야?"
"C, C급을 기준으로는 최상위권입니다."
생각보다 낫은 레벨이었다. 육체등급의 차이는 벌써 이런 차이를 불러왔다.
"B급 최상급은 어느정도야?"
"대, 대략 20 정도 됩니다."
공호는 속도를 늦추어 주먹을 뻗었다. 얼굴에 극히 가까이 와서야 그녀는 움찔하고 반응한다. 대략, 그 정도의 반응 능력이었다. 섬천이었다면, 벌써 주먹을 꺽고 배에 칼을 15번은 박아넣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공호 2 레벨 때와 같았다. 차이가 심각할 정도였다.
탁, 공호는 그녀의 어깨를 슬쩍 쳤다. 그녀는 쭈욱 밀려나더니 그대로 남자가 있던 곳에 옆에 처박혔다.
섬천은 생각했다.
'그래도 죽이진 않네.'
생각보다 많이 배려한 형이었다. 공호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곳의 화장실은 신기한 구조였다. 간단한 마법처리된 원통형의 파이프가 물을 강에서부터 끌어들었다. 그 에너지는 대기에 퍼진 마나로 부터 나왔다. 여긴 전기가 없어도 이 정도는 가능했다.
공호는 자리에 앉았다. 마침 고기가 다익어있었다.
포크로 고기 한점을 찍어 먹었다.
생각보다 먹을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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