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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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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5.03.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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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
14쪽

섬천(剡天)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티에든 항구, 사시사철 순백의 백사장은 언제나 레스토들에게 변치 않는 희망을 선사한다. 다가오는 봄 내음에도 백사장은 덤덤히 흰 모래바람만을 휘날렸다. 싸늘하고도 분위기 있는 백사장.

그 백사장을 크게 가르는 이가 있었다.

어깨에 걸린 밧줄을 잡아매어 자이언트 터틀을 질질 끌고 다니는 소년.

상당히 무거울 텐데도 소년의 눈빛은 뭉텅 하지 않으며, 되려 칼날 같기만 했다. 상당히 깨끗하고도 수려한 외모의 소년은 날카로운 속눈썹을 내리깔고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무지막지하게 넓은 이 행성에서 가족을 찾을 확률은 얼마나 되냐는 것인데.. 소문이란 것이 사람당 3명에게만 퍼트린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10차례만 옮겨가면 177,147명이고, 100차례를 옮겨가면 약 100억..."

소년은 머리를 탁 쳤다.

"하아. 젠장."

이 세계의 레스토들의 숫자는 정확히 헤아리는 것은 현재로서 불가능하다. 아니, 대충 헤아리는 것도 어렵다. 지구처럼 인구조사가 가능할 리 없다.

마법사들의 지하도시에 따르면, 그들이 마법으로 파악한 공식적인 레스토의 수는 약 10^22.

넓디넓은 땅이라서 이해야한다만은.... 레스토들의 머릿수는 그야말로 욕 나올 지경으로 난감했다. 특히 저 수는 일반 마나를 지닌 레스토들의 수다. 측정대상에 들기 위해서는 일정수준 이상의 마나를 지녀야 했으니까.

아마 여러 특수마나 사용자와 마나가 부족한 이까지 합한다면, 그 결과는 두려울 정도다. 생각을 해봐라. 그 많은 사람들이 한 장소에 오줌을 눈다 생각해 봐라. 그럼 미친, 태평양과 대서양. 그리고 인도양까지 3대앙이 생기고도 넘어간다. 어이가 없을 정도의 물량.

소년이 뒤통수를 지그시 누를 때였다.

온통 허연 백사장에 청빛의 천이 보였다. 무질서하게 뜯긴 천이다. 꽤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소년은 매의 눈으로 그런 사소한 것까지 잡아내었다.


어? 어디선가 많이 본 천인데...


신경이 써질 찰나.

푸아아! 달빛을 머금은 바다를 깨트리고 험악한 자이언트 터틀이 바다 위에 떠올랐다. 하얀 기포들이 올라오며 달이 비친 바다는 심히 흔들거렸다. 자이언트 터틀이 올라오며 솟아오른 막대한 물이 주변을 샤워시켰다.

무질서하게 넘치는 바닷물에 백사장의 흙이 모두 감당하지 못한다. 수압이 만든 인력에 청빛 천은 바닷속으로 끌려가버린다.

소년은 고개를 돌리고 검을 빼들었다. 이윽고 차갑고 매력 있는 웃음을 흘렸다.

"가족 이야기 할 때는 미친놈도 안 건드립니다. 설마, 모르십니까?"

어라? 그런데 뭔가 조금 이상하다.

자이언트 터틀의 덩치가 맞지 않는다. 보통이 작은 조약돌이라고 하자. 놈은 사과다. 아주 새빨간, 무르익지 않아 단단한 사과. 놈의 몸은 붉었고, 덩치는 거의 작은 산만 하였다.

소년은 검집을 바닥에 살포시 내려 놓았다. 진지하게 임하겠다는 소년의 각오였다.

"그놈은 아니고.."

소문의 붉은 자이언트 터틀은 아니였다. 그렇다고 하기엔 덩치가 턱없이 작다. 붉은 자이언트 터틀은 섬 하나가 떠다니는 것과 같은 덩치였다. 떠다니는 거대 해상몬스터.

"놈의 새끼 쯤 되겠군."

어째서 놈과 마주쳤는지는 몰랐다. 녀석이 위협하고, 그것을 맞아줄 뿐이다. 단지 수상한 점이라 한다면, 이마에 해당하는 부분에 무언가 적혀있다. 소년은 아직 조금 미숙한 아스페티아어를 최대한 쥐어짜며 부족의 글자를 읽었다.

"폭(暴)?"

소년의 머리가 슬쩍 뉘었다.

'모르겠습니다.'

대충 판단을 한 소년은 자세를 잡았다. 뭔가를 이론상으로 배운, 그런 자세는 아니였지만 나름의 경험에서 나오는 자세다. 왼발을 뒤로 조금 빼고 오른손을 내밀어 검을 머리까지 들어 올린다.

놈은 성질이 급한 놈이었다. 먼저 공격해왔다.

투두두두, 움직임 하나하나에 무게가 담겨있다. 정말로 몸 자체가 무거워 생기는 지진. 놈이 거대한 앞발을 허우적거리며 수면위로 올라왔다. 바다가 넘실거리며, 심지어 지면이 거침없이 흔들렸다. 놈이 마침내 육지에 올라왔다.

그 거대한 몸집이 소년의 앞에 도달할 때까지 소년에게 움직임이란 없었다. 날카로운 눈매 속의 구슬만이 쉭쉭 하고 돌아갔을 뿐이다. 소년은 놈이 살결이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하자, 온 힘을 손에 모았다.

이쯤이다 싶을 때 검을 찔렀다.

자이언트 터틀을 밧줄로 메어 끌고 다닐 힘이다. 거기에 극의 속도까지 결합한 소년의 찌르기.

검이 자이언트 터틀의 미간에 박혀 들었다.

보통 검이였으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덜컥 부러졌을 터. 평범하게 만들어진 검은 아닌 듯싶었다. 그틴의 역작 중 하나였다.

드득.

섬뜩한 소리를 무시하며 힘껏 검을 쑤셔 넣던 소년은 이상함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 검이 미간에 박혀 들기를 멈추어버렸다. 등골의 써늘함이 온몸으로 번졌다.

크릉.

콧바람에 소년의 머리칼이 휘날렸다.

"더럽게 질긴..."

소년은 말을 잇지 못했다. 놈은 급격히 목을 쉭 하고 젖었다. 그 엄청난 무게의 목이 움직이는 반작용에, 검을 잡고 있는 소년의 몸도 같이 솟아올랐다.

소년은 그 상황에도 검을 놓지 않았다.

"피부.."

어찌나 세고 날쎄던지 소년의 손아귀가 찢겼다. 소년은 막간의 순간을 이용해 적절히 몸을 움직여 안전하게 자리 잡았다. 자이언트 터틀의 머리 위. 소년이 안전하다며 믿는 장소였다.

나름 사뿐히 자이언트 터틀의 머리 위에 안착한다.

머쓱 적던지 소년은 말을 이었다.

"..군요."

튀어나오는 소년의 강박증. 소년은 끊긴 말을 다시 한 번 이었다. 이어 말하면, '더럽게 질긴 피부군요.'. 그 말을 끝내고 나서야 소년은 만족하며, 대책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두 가지 대처법이 떠올랐다.


눈을 찌르고 입안을 찌르는 도박을 다시 한 번 한다, 도망간다. 그 두 가지였다. 일단은 후자 쪽을 택하고 싶었다. 소년은 요령껏 검을 자이언트 터틀의 피부에서 빼냈다. 퍽, 그때는 이미 늦었다.

강력한 몸통 박치기에 소년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친다.

쿨럭.

속에서 솟구쳐 나오는 뜨거운 피를 입을 통해 내뱉는다. 소년이 상당히 집중해야 보였을 자이언트 터틀의 빠르기였다.

영악한 소년은 바로 생각을 굳혔다.

튀어라. 임자 만난 거다.

일반 자이언트 터틀을 부엌칼로 패닭 썰듯이 썰던 소년이었다. 소년은 오기로 되는 일이 있고, 안되는 일이 있음을 알았다.

눈에라도 검을 박아야 하는데, 저 정도 속도면 닿기도 전에 경을 치러야 한다. 몸이 멀리멀리 날아오른 것으로 보아 감당 안될 힘까지 갖추고 있다.

어찌할 상대가 아니였다.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소년은 공중에서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상긋한 마음으로 술래잡기를 한다고 생각하자. 단지, 잡히면 죽는 벌칙이 있는 술레잡기


놈이 술레고 내가 도망가야 했다.


이런, 쌍. 필사적으로 살아야 한다. 다시 한 번 죽는 경험을 하기는 싫을뿐더러, 아까운 능력치도 떨어진다.소년은 돌고래처럼 공중을 수영하는 듯한 몸동작을 보였다. 몸이 아래로 낙하하는 동안, 허우적거려 조금씩 좌우로 움직였다.

탁, 소년은 필사적인 노력을 했음에도 좋지 않은 곳에 착지했다. 자이언트 터틀의 등껍질 한가운데. 질릴 정도로 몸집이 큰 녀석이다.

어? 이거 진짜 위험한 데...

원숭이 날뛰어봤자 부처 손바닥. 퍼억! 소년의 몸이 물수제비 할 때의 돌 처럼 물 위에서 퉁겨졌다.

퉁, 퉁, 퉁!

잔잔한 물결에 물수제비를 해 본 적 있는가. 한 두 번 던지고 있으면 주위에 친구가 몰려든다. 꼭 있다. 특별히 잘하는 놈. 남들은 돌을 두세 번 튕길 때, 혼자서 두 자릿수는 가벼이 튕구는 놈들 말이다.

그런 놈이 던진 돌은 그야말로 사정없이 물의 표면에 부딪히며 튕겨진다. 그 광경이 지금의 소년과 딱 들어 맞았다.


수십 번을 튕겨졌다.


소년은 물의 표면장력에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받았다. 갈비뼈가 몇개 나갔고, 내장을 찌른 것 같았다. 죽을 상처는 아니었다. A급 육체의 회복력이 있을 테니. 소녀는 붉게 핏줄이 선 눈으로 놈을 노려봤다.

마나를 팔에 옮겼다. 따스한 느낌이 팔에 몰려들었다.

마나란 참 신기하다. 기존의 힘에 상당한 힘을 더해준다. 소년은 안면에 강렬한 바람을 맞으며 억지로 열리지 않는 눈을 열었다. 아직 상처는 아물지도 않았는데, 욕 나올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자이언트 터틀이 다가왔다.

아직 소년은 공중에서 떨어지고 머물러있었다. 최악이라면 정말 최악의 상황. 소년은 죽을 힘을 다해 검을 뻗었다.

카가가각!

또 다시 막강한 방어력의 가죽에 검의 전진이 막힌다. 마나를 더해 속도와 힘을 올렸어도 두꺼운 피부를 뚫진 못한다. 대신 지지대의 역할을 할 정도는 되었다.

검을 잡아당기며 소년은 자이언트 머리 위로 다시 한 번 안착했다. 이번엔 바다 한가운데다. 정말 떨어지면 답이 없다. 넙죽 엎드려 자이언트 터틀의 두꺼운 목덜미를 잡았다.

당연히 팔에 차고 넘쳤지만, 거친 자이언트 터틀의 피부는 뭔가가 마구 두두러기 처럼 올라와 있었다. 이놈은 크기가 크기이기 때문에 그것마저 손잡이로 탈바꿈 할 정도다. 놈이 미칠듯한 속도로 머리를 돌려됀다.

원심력에 소년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검을 꺼내 박아넣었다. 그러자 자극을 받은 녀석이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거 아닌가.

싸아아아.

소년의 피부가 허옇게 질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


모든 것이 허옇게 질린, 어울리지 않는 봄이 가까운 날의 밤. 공호는 그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경험자든 뭐든 그 무엇의 겉치레도 벗어던진 체 무릎을 꿇었다. 이 순간 공호는 머리속에 온통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그틴은 근엄히 뻐금뻐금 담배를 피우며 공호를 맞이했다.

"공호라고 하셨소?"

매번 내뱉던 담배 연기를 그틴은 깊게 들이마신다. 공호에게는 천 년 같은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그틴이 터벅터벅 어디론가 걸어간다. 숨이 턱 막혀가는 공호를 두고 그는 검 한 자루를 꺼내온다. 자이언트 터틀의 등껍질로 이루어 진 그 검.

"아직 미완성인 검이외다."

우웅.

분명 공호의 심장박동에 반응하던, 그 검이었다. 아직 손잡이 부분도 다듬어져 있지 않은 검이다. 그러나 예기만큼은 멀리서도 느껴졌다. 무언가를 베기위한 검, 예기가 멀리서도 느껴지는 검 치고는 검의 느낌은 차갑지 않았다.

"아마 지금쯤 가장 가까운 백사장에 있을 테지. 이 시간쯤 자이언트 터틀을 밧줄에 동여 매고 돌아오던 녀석이었으니까."

공호는 검을 집었다.

우웅.

이토록 오래 심장이 격렬하게 박동한 것은 오랜만이다. 그 박동에 여전히 검이 공명한다. 검 자체에서 따스한 기운이 올라온다. 착각일 지도 몰랐다.

"감사합니다. 진짜로."

공호는 검을 들고 죽어라 달렸다.

파아앙!


흥분이 극에 달한 공호는 힘 조절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밟아버린 지면이 움푹 페였다. 그러다 넘어질 뻔도 하였다. 다금함이 빈틈을 만들고, 빈틈이 공호의 덜렁거림을 보여주었다. 공호가 백사장의 모래를 본 것은 더욱이 금방이었다.

아까 전의 다른 이들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있었어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두근!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몸 속의 음의 마나가 찌르르 울린다. 여우구슬 이었던 그것이, 마치 안내하기라도 하듯 울렸다. 아마 숨도 쉬지 않았을 것이다. 달이 중천에 걸렸다. 어슴푸레한 달빛이 희미하게 각막을 때렸다. 주변이 환했다. 그리고 저 멀리, 거대한 붉은 자이언트 터틀이 보였다.


눈이 고장 난건가.


왜인지 시야가 흐려 보인다. 자이언트 터틀의 목에 뭔가가 보였다. 싸한 달빛의 소리가 들렸다. 멍해지며 다가갔다. 마치 영혼이란게 몸에 덧씌어진 것처럼 멍해졌다. 바다의 짠내가 눈을 찔렀는지, 자꾸만 눈이 따끔거렸다.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공호는 달리지도 못했다. 천천히, 그저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백사장의 길이 끝나고 바다에 발을 담갔을 때.

쩌저저적,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얼음의 길이 만들어졌다. 공호는 그 얼음 위를 걸었다. 저 멀리 소년의 그림자가 이쪽을 응시했다. 주변이 더욱 환하게 빛났다. 그림자가 달빛에 죽어간다. 눈빛과 눈빛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공호는 기어코 눈에서 투명한 구슬이 떨어짐을 막을 수 없었다.

달빛에 희미해진 그림자가 멍하니 이쪽을 바라봤다.

공호는 이 상황을 방해하는 방해자에게 분노없는 손짓을 하였다.

싸아아아, 주변을 모두 얼려버렸다. 달빛마저 얼음 속에 가둔다. 공간 전체가 얼음으로 메었다.

얼음은 형태를 갖추어간다. 정확히 3,000개의 아이스 스피어가 만들어진다. 공호가 집고 있던 검까지 주위에 얼음에 휩싸여 아이스 스피어가 되어 버린다.

공호는 손을 내뻗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먼저 닿고 싶었다.

주변이 격동했다. 마치 심장마냥 공간이 두근두근 울렸다. 공간은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다. 소년은 이 황홀함에 어쩔 줄 몰라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얼음의 창, 3000개의 아이스 스피어 모두가 부르르 떨었다.

이윽고 쏘아져 나간다.

파바바바박!

살을 뚫는 타격음이 들렸다. 이제, 뭐든 상관없었다.

공호는 내뻗은 손에 감촉이 느껴졌다.

무작정 끌어당겼다.

털썩.

공호는 소년을 품에 끌어안았다. 순간 시간과 달빛, 모두 무겁게 내려앉아 버린다. 목소리도 멎어버렸다. 얽히고 얽히는 눈빛과 그 깊은 동공만이 거칠게 흔들렸다.

미안하단 말따위를 하기에는 지금이 아까웠다.

"..."

"..."


그저 살아나줘서 고마웠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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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리셋 +4 15.04.12 1,397 5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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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섬천(剡天) +2 15.03.21 1,492 39 25쪽
» 섬천(剡天) +3 15.03.20 1,767 54 14쪽
22 섬천(剡天) +1 15.03.19 1,667 43 13쪽
21 섬천(剡天) +2 15.03.19 1,657 4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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