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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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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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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51,747

작성
15.07.25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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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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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1쪽

월묘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3년 전 두 소년에게 박살이 난 불법 조직, 폭매.

굴욕적인 패배를 맛보고 뒷 세계에서 매장된 비운의 조직이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전쟁이 터졌다. 개척자와 레스토간의 전쟁.

폭매는 그 틈을 타 엄청난 이윤을 챙겼다.

작은 물자를 털거나, 간간이 전장에서 뭔가를 건지거나.

수많은 개척자 집단과 손을 잡기도 했으며, 수익을 배분하기도 했다.

폭매는 개척자까지 포함한, 제국에서 토벌령을 내리기까지 할 정도로 상식 이상으로 거대해졌다.

세력이 커진 폭매는 본래의 항구도시 말고도, 헤이콘까지 발이 닿게 됬다.

월묘와 진을 압박한 B급 개척자들과도 은밀히 손이 닿아있는 게 실정.

그걸 알면서도 월묘는 활기찬 모습을 유지했다.

초라한 막사.

직접 부러뜨린 나무와 추위도 막지 못하는 너풀대는 천으로 둘둘 감겨 있는 게 고작이다.

진은 싱글벙글한 월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뭐라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언제나 밝은 것은 저 소녀의 커다란 매력이었으니까.

월묘는 막사를 나왔다.

혹시 또 모를까, 당분간은 위험하다 느낀 진이 보호를 위해 조용히 따라 나왔다.

소녀가 모를 정도로 기척을 죽이고 조심히, 또 조심히 말이다.

노란 달이 하늘에 떠올랐다.

소녀는 모닥불 앞에서, 마치 보이기라도 하는 듯 불 앞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진."

소녀의 부름에 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있는 거 알아. 대답해, 진."

진은 아리송한 표정을 만들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잉."

진의 푸른 머릿결에 모닥불의 불빛과 달빛이 내려앉는다.

암묵의 약속이라도 있는 듯 주변도 조용했다.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해 본다.

힘든 것에 관해 이야기 할까? 그건 아니다. 월묘는 심란한 이야기로 남을 가라앉히는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월묘의 성격이라면.. 짐작하지 못하겠다.

이 녀석의 장점이 그것이었으니까. 언제나 명랑하고 짐작하지 못한다.

눈이 안 보이는 C급 개척자가 최상위 B급 개척자의 은밀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심리를 읽고, 나오리라 확신했다는 얘기다.

"내 이름이 신기해?"

뜬금없다. 푸른 머리 소년은 습관처럼 쿠나이를 돌려가며 대답했다.

"어. 정말 신기합니다잉."

월묘(月卯)라니. 솔직히 이 이름을 지워준 소녀의 부모님이 하시는 생각이 궁금할 정도다.

"내 이름 처음 들었을 때 어땠는데?"

"장난인지 알았습니다잉."

소녀는 피식 웃었다.

"아빠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런 이름으로 호적을 올리셨더래. 신기한 건 우리 오빠들도 그랬고, 동생들도 그랬어. 이름을 정할 때는 마치 자기가 자신이 아닌 것 같았데."

대화의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어색함에 진이 인벤토리를 열어 음료를 꺼냈다. 그래 봤자 개척자 입맛에 맞지 않는 떨떨한 열매즙이지만.

"더 재미있는 건, 그 이름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거야. 큰 오빠는 정말 숲을 좋아하는 여우 같았고, 둘째 오빠는 정말로 날카로워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너는?"

월묘는 말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나는.. 나도 조금 특이했어. 어렸을 때부터 신기한 재주가 있었지."

달빛이 만든 월묘의 가는 팔의 곡선이 사라진다. 정확히 달을 향한 팔은 달빛을 손끝에만 받았기 때문이다.

"어디 있든지, 무엇을 하는지. 지금 달이 어디 떠 있는 지 정확히 안다는 거야."

고장 나버린 소녀의 눈이 달빛에 투영된다. 그러한 데도 한 치의 오차 없이 달의 중심을 손 끝으로 찌른다. 정말로 믿을 수밖에 없는 재주.

"어렸을 때는 내가 달에서 온 줄 알았어. 그렇게 믿었지. 달에 사는 토끼, 그래서 월묘였다고."

보통 개척자들은 달 이야기만 하면 질색한다. 붉은 달의 영향에 달은 불경한 것이 되어 버렸으며, 반갑지 않았다.

그렇기에 보통 달 이야기를 한다면 딱 하나, 공통으로 상기되는 것이 있다.

레드문(rad moon). 타락해버린 붉은 달.

그리고 이런 상황이라면,

"붉은 달이 떠올렸을 때는.."

역시나.

"이상하게도 알 수 없었어. 그 달이 어디 떠 있었는지."

이야기의 목적이 뭘까. 진의 푸른 눈동자가 또륵 구른다.

"아, 모르겠다. 그냥 이걸 말하고 싶었어. 만약에 있잖아, 지옥에서 너를 죽이려 했던 가족을 만나게 된다면 너는 어떻게 할 것 같아?"

소녀는 그 말과 함께 유난히 목을 매만졌다.

"음.. 조금 기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잉."

"만약 그 가족이랑 붉은 달이 떠오르기 전날 약속을 했다면? 어른이 되면 부자가 돼서 달이 잘 보이는 집을 사주겠다고."

소년은 괜히 쿠나이를 모닥불 위에 올렸다. 검은빛 쿠나이가 붉게 달아올랐다.

달에 관련된 약속.. 민감한 약속이다.

위의 질문과 연관이 잘 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소녀에게는 솔직함으로 대해주는게 가장 도움이 된다는 거다.

깨끗하고 물을 더럽히지 않으려면 깨끗한 물을 넣을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물은 변색해 버리고, 그것은 더 이상 깨끗한 물이 아니게 되니까. 넣는 것이 다르면, 나오는 결과도 다를 수밖에 없다.

"네가 평소에 하던 말이 뭡니까잉?"

"누구든지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였지?"

"그래, 누구든지."

누구든지.

그 말이 녀석의 사고관 전체이자 끝 부분을 장식하는 종결어미였다.

진은 소녀를 가엽게 바라봤다. 이런 유형에게는 크나큰 난관이 있기 따름이다.

밖에서 부수려고 하면 너무도 올곧고 굳건한데, 한에서 썩어들어간다면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예를 들면..

"그럼 나도 한 번 만약을 물읍시다잉. 만약 네 가족이 살인자라면 어떻게 받아들일 겁니까잉?"

소녀는 두 다리를 손으로 껴안고는 머리를 그사이에 푹 넣었다.

"몰라.."

진이 날카로워진다.

"지옥은 무섭습니다잉. 살아남기 위해서는 살인은 한 번쯤은 했을 겁니다잉."

소녀는 여전히 고개를 들어 올리지 않았다.

"10일 째에는 미쳐버린 정부에 의해 러시아 대부분이 핵으로 인해 초토화돼 버렸고, 한 달째에는 동북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남아메리카와 유럽 끄트머리를 제외하고 초토화 됐단 말입니다잉."

소녀는 귀를 막았다.

"그만.."

회피하고자 하는 모습에 소년은 울컥 뭔가 치밀어 올랐다. 알 건 알아야 한다.

"일본 열도까지 방사능이 떡칠한 그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슨 짓을 못 할까요잉? 정신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방사능을 차단하는 '보호구역'에 들어가기 위해 혈전을 벌이고, 미쳐버린 이는 그들을 보며 즐겼습니다잉. 가끔 보호구역에서 미쳐버리는 이가 나오면 그 가족까지 전부 추방당했고.. 남은 사람들은 추방당하는 가족을 보며 자리가 늘어났다고 좋아하고.."

"알았어. 이제 제발 그만해!"

소년은 멈추지 않았다.

"식량이 부족하면 인간 사냥을 하고.. 수분이 부족할 때는 죽어버린 가족에 두개골에 고인 물을 먹어야 했습니다잉. 시간이 가면서 더욱 치열해졌는데, 과연 미쳐버린 네 큰 오빠가 목을 졸라서 하루도 버티지 못한 네가 그 지옥을..."

소녀는 덜덜 떨며 발끝까지 움츠렸다.

"제발.."

소년은 눈을 감았다.

"... 미안."

진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아마 진짜로 미친 건 자신이었나 보다.

멍청한 날벌레가 모닥불 무서운 줄 모르고 달려든다. 타닥. 나약한 날벌레에게 기적은 없었다. 그저 몸에 불이 붙어 단숨에 한 줌의 재가 되어 버리고 만다.

"중요한 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 겁니다잉. 나도 깨끗한 손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잉. 가족에 관한 건 제가 끼어들 수 있는 게 없습니다잉. 나는 지금 가족이 없으니까잉."

진의 가족은 교통사고로 죽었다. 지옥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그래서 부활은 할 수 없었고, 진은 통곡했다. 한 시간만 더 살아 계시지 하고.

분위기가 축 가라앉았다.

갑자기 진이 손가락을 퉁겼다.

딱.

월묘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아,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알려 있습니다잉. 이건 정말 뒤통수 맞은 기분 들 겁니다잉."

월묘는 반응을 보였다. 절대 놀라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으며.

".. 뭔데."

"전선에서 사냥할 때, 정말 우연으로 S급을 만난 적 있습니다."

"S급을?"

월묘의 몸이 한 번 들썩거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내 자기가 흥분했다는 사실을 알고 휙 하고 다시 머리를 다리 사이에 파묻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S급이 '현자'였다는 겁니다잉."

괜히 까칠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그래."

"우연히 그분과 이야기도 나눴습니다잉."

"진짜?"

당했다. 평소의 활기찬 모습이 나와버렸다. 구태여 변명을 하려다가 말았다. 괜히 패배자가 된 느낌이다.

이번만큼은 월묘의 마음을 예측한 진은 빙그레 웃고 말았다.

"어,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놀랐지 뭐입니까잉."

반쯤 포기한 월묘는 파묻은 얼굴에서 눈만 빼곰 내밀고 말했다.

"그게 뭔데?"

"이상하지 않습니까잉? 우리가 죽은 건 8살 때. 그리고 지금은 지구의 시간으로는 8년이 지난 시점입니다잉. 우리는 우리를 16살로 보고 있고요잉."

"어."

"그럼 잘 들으세요잉. 우리가 죽었던 것은 8살이고 그 공백 기간은 분명히 5년 입니다잉.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우리는 아스페티아에 부활했을 때는 우리 스스로를 13살로 인지했고, 실제로도 그런 판단능력을 지니지 않았습니까잉? 본래 정신연령은 8살이어야 맞는데 말이죠. 아니, 육체조차 8살의 육체가 아니지 않습니까잉. 우리가 죽은 뒤에, 공백기간 5년을 전부 채운 13살 정도의 육체지 않습니까."

벼락을 맞은 느낌이다. 분명히 맞다. 그런데 왜 나는, 아니 우리는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자, 예를 들어 지금까지 1살 때 죽은 아이들은 있어도, 왜 1살 같은 육체는 없습니까잉? 왜 아이들은 전부 6살 이상입니까잉."

스산하게 진이 말을 이었다.

"현자는 각성으로 인한 능력으로 알아낸 진실이라고 말입니다잉. '현자'는 말했습니다잉."


쿤은 우리의 뭔가를 조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인지 불가능한 뇌의 한 영역에 묶어뒀다.


오도독 소름이 돋는다. 말도 말이었지만, 진의 스산한 표정과 말투가 마치 깊은 바닷속에 수장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겁먹어야 합니다잉. 이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이리저리 날뛰다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잉."

"S급도?"

"어, S급도."

월묘는 항상 지니고 있는 천 조각을 주머니 속에서 꾹 쥐었다.

"그래..."

헤이틴의 앞바다에 떠밀려온 찢어진 옷조각.

우연인지, 그것에는 어머니가 옷을 수선하실 때마다 늘 집어넣는 문양이 들어가 있다.

우연이라도 좋다. 그저 그때를 떠올리며 간직했을 뿐이다.

진이 쿠나이를 빙글빙글 돌렸다.

이제 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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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월묘 15.07.23 511 9 11쪽
60 여우제국 폴시아. 15.07.22 457 8 10쪽
59 여우제국 폴시아. 15.07.21 423 7 19쪽
58 여우제국 폴시아. 15.07.20 835 60 14쪽
57 여우제국 폴시아. +1 15.07.19 379 8 13쪽
56 여우제국 폴시아. +1 15.07.19 418 8 15쪽
55 여우제국 폴시아. +3 15.06.28 403 10 21쪽
54 여우제국 폴시아. +2 15.06.28 459 10 15쪽
53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395 9 18쪽
52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387 10 30쪽
51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390 10 15쪽
50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500 10 20쪽
49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487 15 16쪽
48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09 551 14 17쪽
47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07 606 17 13쪽
46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06 518 12 12쪽
45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31 643 17 16쪽
44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30 1,123 45 14쪽
43 여우제국 폴시아. +4 15.05.29 598 20 20쪽
42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27 723 17 9쪽
41 여우제국 폴시아. +3 15.05.25 745 19 13쪽
40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22 876 22 12쪽
39 여우제국 폴시아. +3 15.05.14 840 25 8쪽
38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13 767 20 12쪽
37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11 954 28 18쪽
36 여우제국 폴시아. +5 15.05.07 1,060 23 8쪽
35 여우제국 폴시아. +3 15.05.06 850 23 10쪽
34 여우제국 폴시아. +1 15.05.06 956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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