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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99,817
추천수 :
2,582
글자수 :
751,747

작성
15.07.22 15:09
조회
457
추천
8
글자
10쪽

여우제국 폴시아.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한심하다 생각했다.

날뛰다가 지쳐 쓰러지다니.

이렇게 비효율적이고 감정에 휘말린 한심한 경우가 어디 있나 싶을 정도로 나 자신이 한심했다. 어두운 땅에 틀어박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이 길에 이정표는 없는 것인가.

솔직해지지 못해 속으로만 누군가 도와졌으면 좋겠다고 부르짖었다. 이정표가 되어 줄 누군가 필요해 방황했다. 처음 보조 바퀴를 땐 자전거를 타는 아이처럼 위태위태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심리였다. 나 자신이 불쌍하다 생각한 적은 많았다. 지옥에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불쌍하니까, 조금 다쳐도 괜찮다고 넘겼다.

나는 불쌍하니까, 가족이 죽은 거라 넘겼다.

불쌍하니까.

그리 한심한 생각으로 위로하며 살았다. 지옥에서 3년 차가 다 될 때까지. 손 위에서 얼음을 피었다. 남을 공격할 의도도 아니고, 딱히 뭔가 목적 없이 얼음을 손 위에서 피워 본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 같았다면 낭비라고 냉소를 지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나란 존재는 너무도 모순덩어리였다.

가족을 지킨다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장난도 재밌어하는 철없는 아이. 얼음은 꽃으로 변하고, 그 꽃은 나비로 변하기도 했다. 훨훨 나비가 어둠을 젖고 살랑인다. 푸른 빛 음의 마나를 품고 날개를 젖는 나비 주위로 어둠을 물러났다.

어릴 적 축제의 폭죽처럼 화려하게 아름답지 않았으나 수수한 아름다움이 멍하니 눈에 틀어박혔다. 그 나비가 살랑이며 공호의 코에 앉았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울상이 풀렸다. 사실 코로 앉도록 조종한 거지만.

아, 이거였지.

가족을 찾기 전에 내가 좋아하던 건 이거였지. 숲. 숲을 좋을 좋아했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은 많이 잊었지만, 숲이 말을 걸어주던 그 때. 이렇게 개인적인 생각도 너무 오랜만이었다.

그 개인적인 생각이 답을 이끌어 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조금 마음이 진정되니 처음과 같이 차갑게 굳어갔다. 용암 같았다. 무척 뜨거운데 조금이라도 진정되면 차디찬 돌덩이가 되어 버린다.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건 죄다. 인간이 말하는 윤리에서, 누군가를 해하는 것은 확실히 죄다. 그러나 이제껏 그리고 앞으로 할 짓은 죄가 맞다. 그리고 그 답은 가족을 찾고서. 가족에게서 얻기로 했다.

포기하지 않는다. 뭐든지. 어둠 속에서 걸어나왔다.

어느새 하루가 지났는지, 날은 밝았다. 따사로운 햇살이 반겼다.

하루가 지난 오른은 약속의 날.

가족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왔는가."

황제는 제국민과의 일은 타협을 잘 봤는지, 표정이 훨씬 밝아져 있었다. 섬천이도 보였다.

녀석은 실리아를 지근지근 발로 밟고 있었는데, 섬천의 등에는 실리아의 것으로 보이는 암기가 몇 개 꽂혀있었다.

'사이가 좋군.'

나름 재미있게 놀고 있는 듯 했다.

"가자."

"어."

뻥. 섬천이 실리아를 발로 찼다. 흑연호를 잡으며 상당한 스텟이 올랐기에, 실리아는 멀리도 날아갔다. 목이 꺾여 죽지 않으면 다행으로 보일 정도다.

황제가 공호를 안내한 곳은 황궁의 중심에 있는 작은 못이었다. 시릴 정도로 푸른 물이 출렁이는 못은 일반인의 시력으로는 한치 앞도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준비해 놓았네. 가고 싶은 이의 곁이나 장소를 생각하고 이 연못에 뛰어들면 되네. 그렇다면 그 근처로 가게 될 거야. 혹여나 의심은 하지 말아줬으면 하네. 그대에게 미움을 사버린다면, 나는 어머니를 뵐 면목이 없네."

예상했지만 쓰다. 역시나 가족 중 한 명만 만날 수 있다.

"잠깐 나 좀 볼 수 있겠나."

황제는 공호를 잠시 따로 불렀다.

"완전히 기억이 돌아와서 이제야 전해줄 수 있는 말이네."

공호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일체라도 시간이 지연하는 것이 싫었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환생하기 전에 이런 유언을 남기셨지. 500년 쯤 후에 폴시아에 들어올 인간과 여우요괴에게 이것을 선물하라고."

뭔가를 건네받았다. 손목시계.. 인줄 알았으나 그와 매우 유사한 팔찌였다.

"이게 뭔가요."

"언제든지 폴시아에 올 수 있는 신기. 언제 쓸지는 묻지 말게나. 그냥 나는 전해주란 대로 전해줬을 뿐이네."

공호는 정신이 번쩍 들어 물었다.

"그런 그것을 써서 폴시아에 온다면 이 연못을 한 번 더 사용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안타깝게도 한번 지정된 장소나 인물에게로 옮겨줄 뿐이네. 연못은 백 년에 한 번 하루 동안 열 수 있고, 그것도 맨 처음 뛰어드는 생물이 원하는 곳으로만 좌표가 지정될 뿐이네."

황제는 또 하나의 물건을 건넸다. 기괴하게 생긴 부적 한 장.

"이거 역시 정확히 모른다네. 위급할 때 쓰라고 준 것 아닐까 지레짐작해 보겠것만.."

기묘한 기운을 풍기는 부적이다.

"그럼, 갑니다."

공호는 푸른 연못 앞에 섰다. 누구를 먼저 만나야 하나. 공호와 섬천은 가족 중에서 가장 잘 죽을 것 같고 약한 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가장 반대되는,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가족.

답은 하나였다.

"셋째."

파앗.

공호는 망설임 없이 연못에 뛰어들었다. 뒤따라 섬천도 뛰어들었다. 꽉진 주먹이 부르르 떨리며 음의 마나가 폭사 되며 퍼져나갔다.

콰르릉.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 순간 아스페티아의 모든 개척자에게 똑같은 알람이 떠올랐다.


-시스템 오류.


-원인 분석 중...


-원인분석: 실패. 세상의 틈에서 온 영향으로 추정.


-제재 체계 확보중..


-제재: 실패.


-실패 원인: 사유부족.


-경고! 저주받은 여우, 고통의 주인이 강림합니다.


-경고! 세상을 가르는 날카로움. 바람의 주인이 강힘합니다.


-성장하는 재앙을 조심하십시오.


#


"갔다."

타닥.

섬천과 공호가 폴시아에서 사라지고 30분. 사뿐히 내려오는 한 마리의 학이 날개를 접어가며 내려왔다.

"저쪽과 이쪽의 시차는 상당해. 지금 가면 흑미호는 없을 거야."

물결이 출렁이고, 반짝이는 깃털이 고고히 연못에 내려 앉았다. 반짝. 연못에 닿은 깃털은 은은한 빛을 내며 증발해갔다. 압도적인 아름다음에 주위 공기조차 숨을 멎은 것 같았다.

"꼭 흑미호를 따라가야 하는가?"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황제는 주위의 꽃이 시든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신의 아름다음이란 저런 것일까. 다른 종족이지만 고귀하게 아름다웠다.

"공호.. 지구, 숲.. 불... 약속."

거기까지 말하고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화사한 눈이 처음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그 웃음. 이번만큼은 그녀는 고귀하지 않았다. 단지, 작은 아이같이 순수하게 귀여웠다.

황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심장을 부여잡았다.

"하아. 언어장애인 거야, 아니면 그냥 공주병이야?"

목을 두드리며 그 말을 내뱉은 실리아는 그 즉시 황자들에게 밟혔다.

"왜! 왜! 설마 다시 황제의 자리 같고 그러는 거야? 이미 다 끝난 일인데.."

"아니, 그냥 밟고 싶어서."

"거울 좀 보고 오는 걸 추천한다. 막내야."

실리아는 짧은 비명을 질렀다.

"내가 어때서!"

물론 아름답다. 그렇다고 저 소녀에게 비교할 수 있을까. 일황자는 실리아를 실컷 밟은 다음, 황제에게 다가갔다.

"가겠느냐?"

"네."

"이 밖은 너희가 상상도 못한 것들이 널려 있다. 흑미호도 이 밖에선 아무것도 아니야. 무지막지하게 강하고 무서운 녀석들이 살고 있지. 게다가 폴시아를 나가면 축복이 사라져 수명이 줄어든 단다. 그래도 가겠느냐."

"네. 가봐야겠습니다."

"그래, 다녀와라. 녀석들아. 이 아비 신혼여행 다시 보내주는 셈 치고."

일황자는 머리도 식힐 겸 거대한 여행을 하기로 했다. 황제라는 자리는 이제 토악질이 날 정도로 싫어진 자리니까.

"나는 그래도 노려보겠어. 황제."

욕심 많은 이황자는 결국 황제를 노리기로 했고.

"우리는 선배님들을 따라가기로 했지."

"그렇게 됐구먼. 허허."

삼황자와 사황자는 노인들을 따라 은거하기로 했다.

"...."

일황녀는 여전히 세월의 배를 타고, 여유롭게 차나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로 한 듯싶고.

"덤벼! 둘째!"

나불대는 오황자도 황제의 자리를 노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실리아, 너는?"

모두 물끄러미 실리아에게 눈을 모았다.

실리아는 입을 삐죽 내밀고 코와 입사이에 연필과 비슷한 모양의 암기를 끼우고는 고개를 갸우뚱 삐걱였다.

"음..."

그 사이 실리아의 뒤로 이미호 군단이 행렬했다. 강렬한 인상의 50명으로 이뤄진 이미호 군단. 아직 실리아의 이미호 군단을 알지 못했던 황자들이 대경실색했다.

"저런걸 숨겨두고 있었다니!"

"잘 못 건드렸으면 죽을 뻔 했군."

오황자만이 그때의 악몽을 떠올리며 덜덜 떨었다.

"젠장, 나는 알고 있었지."

군단은 실리아의 선택을 기다리듯 진득히 긴장했다.

"황궁에서 이만한 이미호들 이끌고 황녀님 노릇도 나쁘지 않은데..."

실리아는 일황녀를 손짓했다.

"저 언니는 너무 조용하단 말이야. 나는 시끄러운 곳이 좋은데. 그럼 역시..."

파바밧!

실리아가 연못에 뛰어들었다.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망설임 없이 이미호 군단도 전부 뛰어들었다.

첨벙!

고요함을 되찾아가던 연못이 또 한 번 파문을 일으킨다.

한차례 소란을 뒤로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황제는 굳게 오른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황제는 황후의 어깨위에 손을 얹었다.

이상하게 눈이 뜨거웠지만 상관없었다. 지금은 따스한 태양이 얼굴을 가려줄 거니까.


작가의말

공호의 가족. '셋째'의 이야기.
에피소드 '월묘'. 이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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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여우제국 폴시아. 15.07.21 423 7 19쪽
58 여우제국 폴시아. 15.07.20 835 60 14쪽
57 여우제국 폴시아. +1 15.07.19 380 8 13쪽
56 여우제국 폴시아. +1 15.07.19 418 8 15쪽
55 여우제국 폴시아. +3 15.06.28 403 10 21쪽
54 여우제국 폴시아. +2 15.06.28 459 10 15쪽
53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395 9 18쪽
52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387 10 30쪽
51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390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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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07 606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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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여우제국 폴시아. +4 15.05.29 598 20 20쪽
42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27 723 17 9쪽
41 여우제국 폴시아. +3 15.05.25 745 19 13쪽
40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22 876 22 12쪽
39 여우제국 폴시아. +3 15.05.14 840 25 8쪽
38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13 767 20 12쪽
37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11 954 28 18쪽
36 여우제국 폴시아. +5 15.05.07 1,060 23 8쪽
35 여우제국 폴시아. +3 15.05.06 850 23 10쪽
34 여우제국 폴시아. +1 15.05.06 956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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