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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99,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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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2
글자수 :
751,747

작성
15.05.22 00:03
조회
875
추천
22
글자
12쪽

여우제국 폴시아.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워어어. 잠깐. 이번에는 산입니까?"

평범한 지구인은 갑자기 작은 바위가 솟아올라도 놀라는 게 일상적인 반응.

"와아. 대충 봐도 한라산 절반 정도는 되 보이겠습니다."

하다 못 해 슬쩍 놀라면 어떠랴.

"근데 움직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표정 좀 봐꿔보면 어떠랴.

"지금 덤비는 겁니까?"

이 놈은 그런 거 없다. 아직 제 몸의 성장도 안 끝난 놈이 인간이 하늘을 날고, 동물들이 말을 하고, 칼에 맞는 게 일상이다. 섬천은 죽어라 잡아당기면, 더 강하게 팽 하고 돌아가는 고무 같은 놈이다.

땅이 뒤틀리며 산이 바닥을 짚고 오른다. 물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거대 악산은 웬만한 동네 뒷산은 껄렁 되지도 못할 크기와 위용을 뿜는다. 산꼭대기에 밧줄에 묶여 펄렁이는 노란 부적이 기괴하다.

드드드득.

산이 움직였다. 섬천은 놀라우리만큼 빠른 산의 속도에 까무러치며 몸을 뒤로 재꼈다. 그리고 정확히 2.3 초만에 다시 뒤로 돌았다. 산의 이동 경로에 공호가 꿈틀거리고 있다. 공호의 모습이 그리 건들기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챙겨야 할 거 아닌가.


형인데.


"아오, 썅."

산이 미쳤는지, 노란 부적 붙이고 다리도 없이 땅을 긴다. 섬천은 지금 처음으로 뭐 이리 미친 상황이 다 있나 싶었다. 아무리 돌려봐도 놈은 산이건만, 행동은 동물이다. 붉은 색으로 한자 비스무리 한 게 흘려 적혀져 있는 누런 부적을 보면, 동양 설화에 나온다던 마물들이 생각난다.


공호가 머리를 부여잡는다. 저기도 완벽히 미쳤다.


'왜 내 주변은 갑자기 다 미친거지?'

섬천은 더욱 빨리 달렸다. 이대로라면 공호는 쥐포처럼 뭉개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막상 공호에게 다가가려니, 한 발 뻗을 때마다 모공 하나하나 섬세히 한기가 찌른다. 그러나 섬천은 망설이지 않고 뛰었다. 포기할 걸 포기해야지, 차라리 공호를 만나기 전에 비밀스럽게 들리던 기루를 포기하라고 해라.


섬천은 스스로 풍의 마나를 이용해 속도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뛰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공호의 몸이 활대처럼 꺾인다. 섬천은 '오, 유연하네?'라며 더욱 빨리 달렸다. 워낙 섬천이 안전거리 확보에 철두철미 했으니, 공호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갈수록 공호의 상태는 더 괴이해지더니, 어느순간 작은 아이스 스피어 하나를 입에 물었다.어처구니 없게도 공호의 입 방향과 섬천의 달려오는 방향은 일치했다.

뭐야, 그거. 위험하잖아. 빨리 그거 저리 치워.

섬천의 목에서 땀이 구슬피 떨어진다. 잔잔히 퍼지던 위험신호가 섬천의 뇌리에서 쓰나미가 몰아치듯 몰려온다. 섬천이 히죽 웃었다.

"그거. 안 날릴 거죠, 형님?"

파앙!

기가막힌 타이밍이다. 애교 섞인 섬천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아이스 스피어가 돌진한다. 새로 만들어진 2개는 덤으로.

'왜 갑자기 늘어나는 겁니까! 설마 말장난 한 번 했다고? 저거 일부러 그건 거 아닙니까?'

순간 인간의 목소리로는 불가능한 고주파가 섬천에게서 퍼져 나온다. 당연히 섬천도 덤으로 욕까지 끼얹어서 말이다.


그때였다.

"아아아!""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공호가 비명을 지르며 잠시 두 눈을 뜨더니, 아이스 스피어의 방향을 뒤바꿔버렸다. 아이스 스피어는 달려오던 거대한 악산에게 냅다 꽂혀버렸다.

산이 얼은 듯 움직임을 멈췄다. 부르르 떠는 것이 고통을 느끼는 듯 했다.


근데 이놈 봐라.


산이 방향을 바꾼다. 흡사 먹잇감을 바꾼 맹수와 같았다. 부적이 섬천을 향하도록 돌더니 드르륵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왜 괜히 짜증이 나지?"

섬천은 투덜거리며 손을 아래로 뻗었다. 뻗어 내린 오른손에서 강한 바람이 뿜어진다. 공호가 위험하지 않은 지금, 피할 방법은 많다.

하늘 높이 떠오른다. 눈치라는 게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써먹으라고 있는 거다. 산 꼭데기에 적나라한 부적이 섬천의 눈에 들어온다. 섬천은 검에 풍의 마나를 담아 휙 저었다. 몇 번을 하니 익숙한 듯 바람 가르기가 대기를 찢어발기며 이동한다.

촤아악.

섬천의 바람가르기는 완벽하게 산 정상에 묶여있는 부적을 반으로 갈랐다. 조금 질긴 듯 하더니, 금세 찢겨버린 부적. 역시나, 산이 고요히 움직임을 멎는다.


'지가 무슨 강시도 아니고 부적 붙치고 다닙니까.'

왜 공호가 위험할 때는 이 생각이 안 났을까. 왠지 모를 공호의 위압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 부적에 신경썻더라도 부적을 가르기 전에 공호가 쥐포가 되는 것이 먼저였을 것이다. 물론 그때도 공호가 아이스 스피어를 때려 박았을지는 의문이지만.


어쨌거나 어디까지나 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이템의 위력이란, 화장을 장착하지 않은 여자와 화장을 장착한 여자의 차이와 같달까. 본래의 능력이 아닌데도 섬천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레벨이 10 상승하셨습니다.


매우 오랜만에 들어보는 기쁜 레벨 상승의 알림음. 섬천은 약은 고양이 마냥 재빨리 스텟을 투자했다.

섬천은 천천히 턱을 짚었다.


저 미친 여우들은 공호와 같이 으깨질 상황에서도 꿈쩍도 안 했다. 더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 하는 공호. 뭐가 그리 고통스러울까. 타들어 가는 종이처럼 일그러진 공호가 가혹하다. 그렇기에 저 여우들이 거슬린다. 혹 저놈들이 공호에게 고통을 주는 건 아닐까.


쓰릉.

섬천의 검이 뽑힌다. 같잖은 동물 따위에게 형이 고통받는다? 어림없는 소리. 그래선 안 됀다. 고작 동물 따위에게 공호가 고통받는단 생각에 섬천은 피가 한쪽으로 쏠렸다.

푸욱.

망설임 없는 깔끔한 찌르기. 여우 하나의 목이 피로 그림을 그리며 날아간다. 그러나 다른 여우는 꼼작도 안 한다.

곧 3개의 여우가 반 토박 난다. 지구에 있었다면, 막 중학생이 됐을 아이가 하는 짓치고는 섬뜩하다. 세상엔 미안하지만. 아니, 이런 가혹한 세상에는 미안할필요는 없지만, 이 소년은 이게 일상이다. 무엇을 죽이고, 가족을 얻는다.

윤리적인 방법은 재쳐둔다. 세상에 더럽혀진 이 소년에게 그 보다 최악의 방법은 없었으니. 섬천은 다음 여우를 향해 검을 겨누고 다른 여우들을 살폈다. 목석같이 꿈쩍도 안 한다.

그리고 다시 공호를 돌아봤다. 여전히 괴로워 한다.

화가 확 치민다. 전부 동강을 내주리라.

섬천도 '정상'인의 범주에는 훨씬 벗어나는 정신 상태를 지니고 있었다. 형에게 방해가 된다는 심증만으로 여우를 잔인하게 죽이는 그런 아이다.


섬천의 검이 울며 바람이 인다. 나른히 늘어지며 검이 선을 긋는다. 그 순간, 섬천의 바람 가르기가 여우를 칠 듯하더니, 방향을 홱 바꾼다.

쉭, 바람 가르기는 섬천의 뒤를 향해 나아갔다.

"으와앗! 들켰네."

진주의 반짝임 같은 비명을 뒤로, 능청스런 소리가 섬천의 귀를 찔렀다. 섬천은 초원의 산들처럼 잔잔하면서 빠르게 발로 땅을 스쳐 가며 뒤로 빠졌다.

서걱.

긴 머리칼이 공중에 흩날린다.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평했다.

"여우는 머리가 생명인데!"

앞뒤 가리지 않고 검을 휘두른 섬천도 충분히 사이코 지만, 이놈은 사이코 같은 섬천의 행동을 씹어 먹었다.


"여자?"

큰 눈과 조금 전 섬천이 잘라버려 어깨에서 지저분하게 살랑이는 머리카락. 붕대처럼 빙빙 두른 머리의 천. 그리고 나른한 선을 긋는 한개의 여우 꼬리. 음.. 좋다. 꼬리만 빼고 본다면 사막에서 온 미인같았다. 이 정도면 적어도 섬천의 외모 분기점에는 합격이었다.

그녀가 두 손가락을 펴며 웃었다.


"악의는 없었..."

퍽, 섬천의 주먹이 유연하게 그녀의 얼굴을 직격한다. 그리고 섬천은 칼등으로 고기 다지듯 그녀를 사정없이 내려찍었다.

그녀가 손에 시퍼런 독이 묻은 독침만 숨기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냥 넘겼을텐데. 기본적으로 여자를 선호 하지만, 조금이라도 적대한다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잔인해 지는 게 이 소년이다. 그녀의 왼손에 조심스럽게 숨겨져 있는 독침을 그 짧은 시간에 발견하는 섬천의 관찰력. 육감 스텟이 거기에 한 몫 했다.


그런데 칼등으로 다져지는 그녀도 보통은 넘었다. 다져지며 신음소리 하나 흘리지 않았다. 정말로 큰 고통에는 장사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꿋꿋이 버텼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었다. 그녀의 손에서 푸른 빛 비도가 튕겨져 나오더니 섬천의 볼에 상처를 내며 지나쳐 산바위에 푹 박혔다.


섬천이 머리를 피하지 않았으면 시원한 바람구멍이 날 뻔 했다. 피해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스친 푸른 빛 비도는 공호의 얼음과 닮아있었다. 스치기만 했는데도 볼이 일부분 얼어붙었다.


섬천이 재차 손을 쓰기 전에 비도와 이어진 푸른 실이 당겨지며 그녀를 끌어당겼다. 마치 첩보영화에나 나오던 와이어처럼 간드러지게 벗어나는 그녀의 모습에 섬천은 시원하게 바람 가르기를 날려줬다.

그러나 그녀는 산에 박힌 비도에 도착한 직후, 다시 비도를 날려 고정하고 비도에 있는 로프를 이용해 몸을 끌어당김으로 섬천의 바람 가르기를 피했다.

드르르르륵.

산의 일부분이 무너져 내린다. 그녀는 튀어나온 산의 요철에 거꾸로 매달려 피가래를 뱉었다.

퉤.

"이야, 성격 봐? 내가 훨씬 누나인 것 같은데 가차 없이 패네."

"누나인게 뭔 상관입니까. 아니, 애초에 너 뭡니까."

그녀는 눈을 또르록 굴리더니 공호를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우요괴."

그녀가 비도를 잡고 몸을 좌로 휙 넘겼다. 섬천의 바람 가르기가 보란 듯 그녀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다.

"더럽게 사납네. 누나가 친절이 뭔지 알려줄까?"

그녀가 머리를 위로 쓸어내렸다. 관능미가 넘치는 그녀였다. 동시에 비도를 날려 오른쪽 바위로 이동한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섬천의 바람 가르기가 날카롭게 스며든다.

"아? 잡소리 집어치라는 뜻이야? 까다롭네."

그녀가 입을 열 때마다 나오는 나른한 말투와 유들유들한 목소리는 주유소에 있는 기름을 다 처부은 듯이 미끌미끌했다.

"저기. 검은 꼬리 세개. 네 형지?"

그녀가 공호를 손끝으로 가리키며 슬쩍 웃었다.

"저게 참 무서운 현상이야. 저주받았거든."

"미친년."

저주를 받기는 누가 저주받았다고. 섬천은 육상선수처럼 스타트 끊어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한 표정을 지었다.

"워워. 진정해. 네가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 순간에도 네 형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으니까."

고통을 받는단 말에 섬천은 속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공호의 모습은 '고통스럽다'라는 사전적 의미의 조건을 완벽히 충족했으니까.

표정을 읽힌건지 아니면 그냥 질러보는 건지, 그녀는 섬천이 원하는 대답을 꿰뚫었다.

"인간. 너희 형제는 지금 생각보다 위험한데... 그, 뭐다냐. 제국에서 신탁을 때렸거든. 흑미호가 폴시아에 왔다고. 조금 있으면 여기에 황실 특수 기동대가 개거품을 물고 몰려올 걸?"


섬천은 검을 봤다. 언제고 생각할 때면 은은히 빛나는 무언가를 쳐다보는 버릇이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는 정확히 모른다. 상황을 조합해 봤을 때 '도망가지 않으면 조진다'라는 결론만이 확실했다. 그녀의 말이 거짓 같지는 않았다.


'아닌가? 거짓말인가?'

능구렁이를 기름칠 해 먹었을 여자다. 애초에 섣불리 믿을 수 없는 부류다.

"그런데 너는 황실 특수 기동대라는 것보다 어떻게 빨리 여기에 온 겁니까?"

그녀가 비도를 손 위에서 팽팽 돌렸다.

"그야... 이 근처에 있었으니까?"

섬천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어떻게 제국에서 신탁을 때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황실 특수 기동대는 거북이 인가 봅니다. 네가 신탁이 퍼졌다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느리니 말입니다."

그녀가 휘파람을 불었다.

"오, 역시 인간. 어느 여우 대가리처럼 멍청하지는 않네."

싸악.

섬천의 검에서 방출된 날카로운 바람이 그녀를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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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여우제국 폴시아. 15.07.21 423 7 19쪽
58 여우제국 폴시아. 15.07.20 834 60 14쪽
57 여우제국 폴시아. +1 15.07.19 379 8 13쪽
56 여우제국 폴시아. +1 15.07.19 418 8 15쪽
55 여우제국 폴시아. +3 15.06.28 403 10 21쪽
54 여우제국 폴시아. +2 15.06.28 459 10 15쪽
53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394 9 18쪽
52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387 10 30쪽
51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390 10 15쪽
50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500 1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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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09 551 14 17쪽
47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07 606 17 13쪽
46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06 518 12 12쪽
45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31 643 1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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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여우제국 폴시아. +4 15.05.29 597 2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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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여우제국 폴시아. +3 15.05.25 745 19 13쪽
»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22 876 22 12쪽
39 여우제국 폴시아. +3 15.05.14 840 25 8쪽
38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13 767 20 12쪽
37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11 954 28 18쪽
36 여우제국 폴시아. +5 15.05.07 1,060 23 8쪽
35 여우제국 폴시아. +3 15.05.06 850 23 10쪽
34 여우제국 폴시아. +1 15.05.06 956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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