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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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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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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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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29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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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여우제국 폴시아.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A급 개척자의 간을 흡수했습니다. 고통이 정지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30 상승합니다.


-동일 등급의 개척자의 간은 단 한번만 섭취할 수 있습니다.


주위에 있는 여우들이 움직였다. 목석같이 꿈적도 안하던 놈들이 가득 모여, 섬천을 등 위로 싣는다. 공호는 조용히 앉아 그런 여우들의 머리를 쓰다듬곤 섬천이의 배를 눌러 잡았다.

"꿈에서 저 여우들이 말해줬어. 셋째.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거짓말이다. 저 여우들이 정말 제대로 미치지 않도록 정신을 붙잡는 역활을 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 녀석은 벌써 알았을 거다. 똑똑한 아이니까. 이게 무슨 뜻인지는 벌써 파악했을 총명한 아이다.

폴시아는 가족을 찾을 뭔가를 갖고 있어야 한다.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한다. 이건 분명 명백한 억지지만, 그가 방도를 갖고 있지 않다면 '나쁜 짓'이라도 서슴없이 하리라.

싸아아.

공호가 손을 젖자 깨끗한 얼음이 섬천과 여우를 감쌌다. 덮어오는 얼음들 사이로 공호는 잠든 섬천의 이마를 한 번 쓰다듬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길게 찢어진 상처가 보인다. A급 개척자의 회복력으로도 쉽게 아물지 않는 것을 보니 좀 깊은 상처다. 공호는 인벤토리에서 약초를 꺼내 직접 즙을 짜내었다. 즙이라 해봤자 공호의 힘이면 그냥 주먹으로 꽉 쥐어 짜내면 될 판이니.

짜낸 즙을 음의 마나로 공중에 띄어올려 온도차를 이용해 간단한 정수를 한다. 정수된 즙을 공호는 새끼손가락으로 찍어 섬천의 상처에 정성스레 발랐다. 그렇게 15분 가량을 섬천을 치료하며 좀 속을 정리했다. 사실 텅 비어버린 동굴같은 느낌이라 정리란 말을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몰랐다. 그냥 비워낸 것 뿐이니까.

섬천을 조용히 얼음 위에 눕혀놓고 자리에 일어섰다.


일어선 공호는 기동대가 움직였던 흔적을 찾았다. 기동대가 스스로 지워버려 흔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공호의 눈에는 그들에게서 흘러나왔던 음의 마나가 보였다. 푸른 빛으로 일렁이는 그들이 동선이 흐릿하게 보였다. 공호는 그 빛들에게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반응했다.

이 푸른 빛의 끝에는 황제가 머무는 황궁이 있다.


#


스템플러로 찝은 듯 펴지지 않는 눈을 떳다. 역시 예상대로 반겨준 건 형의 얼음 속이 아니라 포근한 짚덩어리로 만든 침대 위다. 건물 내부는 목조건물인데, 마치 한옥이라해도 믿을 것 같다. 형이라면 또 어딘가 안전한 곳에 맞겨놨겠지. 섬천은 침대에서 차분히 걸어나왔다.

분명 어딘가의 방이다. 섬천은 식물줄기를 꼬와 만든 듯한 방문을 열고 나왔다.

방문을 열자 섬천은 꼭 이말을 하고만 싶었다.

"아주... 이건 뭐, 어린이 특집 전래동화를 찍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흰털이 휘날린다. 털을 따라 눈을 옮기자 희뿌연 안개가 가시며 거대한 마을이 드러난다. 나무로 이뤄진 집들, 흰 꼬리를 살랑이며 평화롭게 움직이는 여우요괴들. 마을 뒤를 아우르는 장대한 폭포와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나비들.

순간 넑을 잃은 섬천은 발밑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내렸다.

"여우?"

아까 공호에 딱 붙어 다니던 여우다. 처음에는 원수로 보였지만, 지금은 둘도 없는 은인으로 보이는 여우였다. 섬천은 쭈그러 앉아 한 여우를 안아 올렸다. 정확히 남은 8마리의 여우가 섬천을 따른다.

목이 날아가 죽었던 녀석들을 제외하고는 아까 그녀석들 그대로다.

"야생의 여우는 폴시아에서 희귀해. 몸에 음의 마나를 품고 있는 여우가 아니면, 폴시아에 있을 수 없지."

섬천은 뒤에서 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곱게 딴 머리의 반반한 얼굴의 소녀 여우요괴가 뒷집을 지며 걸어나왔다. 옷이 약간 특이 했는데, 약간 토테니즘이 묻어나는 전통복장 같았다. 전체적으로 겉모습은 섬천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여긴 어디입니까?"

"폴시아?"

장난끼가 많은 소녀다.

"제가 어째서 여기 있습니까?"

"아까 어떤 소년이 널 맡기고 떠났어. 지금은 같이 있으면 네가 피해를 본다라나 뭐라나."

지금은 찾지 마. 공호의 목소리가 머리속에 직접 들이는 것 같았다. 동생의 간을 먹였다. 쓸데없이 상처를 줘버린 걸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 정도는 각오했었다.

소녀는 꼬리가 없는 소년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인간아. 어떻게 폴시아에 들어왔어?"

섬천은 소녀의 말을 무시하고 물었다.

"이 마을의 책임자는 누구입니까?"

소녀는 약간 토라진 듯 대답했다.

"장로님."

"어디 있습니까?"

소녀가 꼬리로 땅을 탁탁 쳤다. 섬천의 말투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식이다. 여우요괴라면 알아듣겠지만 섬천은 모르기에 가볍게 넘겼다.

"우리 아빠야."

"댁 아버지와 말 좀 하자 합시다."

뭔가를 알아야 이쪽도 움직인다. 공호는 무슨 짓을 하든 할 것이다. 폴시아란 곳이 왕국이면 궁궐에 쳐들어 갈 것이며, 제국이면 황궁에 쳐들어갈 것이다. 좋아, 결론은 처들어간다군. 처음부터 그런 위험한 짓을 할 거니까 나도 여기에 맡기고 같을 테니... 그러나 얌전히 있을 섬천이 아니다. 일단 여기가 뭔지부터 파악해야겠다.

소녀의 꼬리가 나무바닥을 쳤다. 나무 바닥을 이루던 판자가 우득하며 뜯겨 나갔다.

"그 전에 나랑 먼저 이야기 하자. 안 그러면 더 이상 안 알려줄 거야."

섬천은 저 말광량이 느낌이 나는 소녀를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촌장의 딸이라니 힘껏 눌러 참았다.

"말하십시오."

"저 여우는 어째서 너를 따르는 거야?"

"모릅니다."

"흠.. 그럼 너는 어떻게 여기에 왔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너 답 없구나."

"그렇습니다."

단호박도 푹 삶은 누런 단호박인 섬천이었다. 소녀는 배 안에 있는 심통이 부르르 떨어오는 것을 느꼈다.

"너를 데려다 준 소년이 말했어. 나랑 놀래. 네가 움직이면 더욱 복잡해진다고."

분명 공호는 잠시 쉬라고 전했지, 저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소녀는 그저 인간인 소년과 놀고 싶었다. 폴시아는 여우요괴에게 평화가 함께 하는 곳. 폴시아에서는 자급자족을 최소한의 일을 제외하면 놀고먹는 것이 삶의 대부분이다.

'더욱 복잡해 지는 겁니까..'

확실히 움직이는 것은 공호 단독 행동이 더 이득일 지도 모른다. 공호에 비하면 난 너무도 약하니까. 나름 A급이라며 자부심이 부렸을 때는 사라진지 오래다.

뭔가 공호에게 도움이 될 방법이 없을까.

섬천은 생각했다.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건, 정보를 모으거나 조금이라도 사냥을 해서 강해지는 방법이 있다. 사냥을 하여 조금 강해진다 한들, 현재로서는 공호에게 아무런 쓸모도 없겠지.

입안에 씁쓸함이 맴돈다.

섬천은 표정을 바꾸었다. 공호는 큰 그림을 그리려 하고 있다. 무슨 짓을 하든 폴시아란 곳이 울릴 짓을 할 인물이 공호다. 그럼 난 뭘하면 될까. 큰 그림을 뒷받치는 잔그림을 그리면 된다. 이런 사소한 곳에서 정보를 모으는 것이다. 사소함을 영어로 디테일이라 한다지.

디테일함은 섬천의 특징이다. 할 수 있는 한 치밀하고, 공호가 짚어 넘어가지 못하는 부분까지 머리로 커버해 주면 된다.

"그렇습니까?"

태세변환이 수준급이다. 사람 부리는 건 공호가 무슨 짓을 해도 섬천을 따라 잡을 수 없다. 결정적으로 섬천은 여자를 잘 부리지만, 공호는 부릴 줄 모른다. 이쪽 방면으로 말하지면 섬천이 경험자라 해야할까.

섬천이 날카로움과는 살짝 다른 매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여자후리기용 미소. 실리아의 미소와 헷갈릴 정도로 비슷하다.

바야흐로 작은 마을의 섬천 정착기의 시작이었다.


#


공호는 무서운 속도로 황궁을 찾아내었다. 묠드에게 대충은 들은 게 있기에 폴시아의 큰 거 몇개는 구분할 줄 알았다.

여우요괴도 레스토다. 생각이 있고, 집단의식이 있어 단체를 이룬다. 인간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황제에 대해 뭔가를 알고 시작해야 한다. 모르는 건 독이다. 둔갑술로 황궁에 잠입한다 해도, 상황을 알아야 완벽히 모두를 속일 수 있다.

공호는 조금 무식하고 멍청해 보이는 소년으로 둔갑했다.


산만한 덩치의 멍청해 보이는 소년이 황궁 대문에 설렁설렁 걸어갔다. 병사들은 단칼에 소년을 막아서며 창을 들이대었다.

"여긴 축복받은 땅의 중심. 고귀한 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잠깐, 너 꼬리가 없는데... 꼬리를 꺼내 봐라."

소년은 두툼한 입술로 피식 웃었다. 황궁같이 거창한 곳에서 이쪽을 아는 방법은 아주 간편하다. 깽판. 그것만큼 기억에 잘 남는 게 있으리. 이제 절대로 망설이지 않는다. 나쁜 짓이든, 뭐든.

황실 기동대를 없앤 것으로는 부족하다. 신고식은 확실히 치뤄줄 셈이다. 공호가 앞으로 걸었다. 병사들의 입과 발이 얼어붙는다. 아쉽게도 죽이진 않는다. 명분만 만드는 것 뿐이니까.

"읍읍!"

병사들은 일미호. 감히 공호의 음의 마나를 감당할 수 없었다.

공호는 육중한 몸으로 거대한 황궁 대문을 양손으로 민다. 적어도 아파트 6층은 될 듯한 대문이 드르륵하며 힘으로 열린다. 황궁 대문의 황금으로 도금된 육미호 그림이 빛을 받아 금빛으로 한번 반짝인다.

안에 있던 여우요괴들이 소스라치며 놀란다. 곧 수십의 병사가 공호를 둘러쌌다. 공호는 무표정이었지만, 둔갑술의 효과가 너무 만점이었는지라 양 볼의 비겟덩어리들이 공호를 탐욕덩어리에 쉽사인 돼지라는 이미지로 선사했다. 그게 나름대로 위압감이 있었기에 그 누구도 함부로 나서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번 둔갑술은 신의 한 수 였다.


쩌저저적.

공호의 발밑이 얼어붙으며 공중을 걷는다. 허공을 얼리는 것은 이미호가 상당한 경지에 올랐을 때 가능한 일. 누구도 공호를 잡지 못했다.

황궁내의 정규군 이라 그런지 반응은 빨랐다. 수백명의 병사들은 아랫배에서부터 음의 마나를 팔쪽으로 꺼내올렸다. 네트 단위의 음의 마나가 손끝에서 방출되며 대기를 얼리고 공기는 얼어가며 푸른 빛의 활과 화살로 탈바꿈되었다.

"쏴라!"

핑, 소리를 내며 쏘아져오는 수많은 얼음 화살들이 촘촘한 그물처럼 공호를 덤쳐왔다.

그러나 고작 일미호의 얼음. 기껏해야 네트 단위의 음의 마나다. 공호는 몸에 닿기도 전에 얼음의 음의 마나를 흡수해 버렸다.

더 이상의 쓸모없는 방어는 필요없다. 공호는 시원스럽게 해결하기 위해 꼬리를 꺼냈다. 검은 3개의 꼬리.

"흑미호!"

그들은 눈을 의심하고 싶을 정도로 동요했다. 그 검은 꼬리를 직접보니 단순히 입만 벌리고 멍하게 놀라는 수준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수십가지의 생각으로 그들의 뇌는 정보를 바쁘게 연산처리했다. 그중하나는 말초신경으로 전해져오는 차가운 느낌도 있었고, 다른 하나는 기본적인 생물의 본능을 담당하는 뇌의 번연계에서 올라온 살고 싶다는 충동에 대한 대응 처리도 있었다.

여우의 신께서 신탁이 내렸다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타날지 몰랐다. 활시위를 당기지도 않았는데, 화살이 날아간 이 기분.

공호는 잠시 공중에서 얌전히 밑을 내려봤다. 기다림이 클 수록 그들의 상상은 증폭되고 그들의 동요덕에 황궁은 더욱 시끌시끌 해졌다.


"웬 소란이냐."

"저하!"

소란 속에 폴시아의 다섯의 황자들이 동시에 납셨다. 장신구가 떡칠된 그들의 꼬리는 지금까지의 여우요괴와는 달리 2개였다.


폴시아란 곳은 여우요괴들의 제국이다. 언제 부터 있었는지, 언제 부터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폴시아가 생긴 후 부터 아스페티아에서 여우요괴는 극소수만 남았다.

신기하게도 폴시아의 여우요괴들은 대부분 아스페티아의 여우요괴보다 능력이 떨어졌다. 마치 제재당한 것처럼 성장이 아스페티아 여우요괴에 비하면 상당히 느렸다. 그랬기에 일생동안 꼬리하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만인이 일미호인 폴시아에서 이미호란 것은 곧 엄청난 능력과 재능을 뜻했다. 그리고 그들은 곳 폴시아의 실세였다. 공식적인 이미호는 황자들과 황녀들, 또 대공 뿐이고 비공식적으로 두 명의 이미호가 더 존재했다. 황다 다섯과 황녀 둘, 대공과 미확인 실력자 둘. 황제의 막강한 황권을 제외하고는 폴시아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이들이었다.

마치 섬유조직처럼 이들은 복잡하게 엵여서 폴시아가 돌아간다.


황자들과 황녀들이 나섰다는 건 폴시아의 존망이 걸렸다는 뜻.


황위계승권을 두고 세력다툼에 바쁜 그들이 직접나섰으니 일이 어지간히 큰 일이다.

"그럼 뭐야? 저거 진짜 위험한 흑미호아냐?"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이들은 은근슬쩍 몸을 사리기 위해 몸을 뒤로뻈다. 본능에 맞겨 엉겨주춤하는 정도가 아니라 은근슬적말이다. 안탑갑게도 여우요괴 지능은 대부분 인간보다 떨어졌다. 대부분은 당황해 뒤로 주춤거리다 다른 이들의 눈총을 받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저주받은 여우.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황자들의 손에서 음기가 퍼져 나왔다. 얼음의 비도가 날아온다. 황자들의 비도는 공중을 곡예 하며 모든 방향을 포위하며 쏘아져 왔다. 일미호라면 스치기만 해도 살이 얼어갈 강력한 음기를 품은 비도들.

"역시 황자 저하. 능수능란하게 음의 마나를 공중에서 수동으로 다루고 계셔!"

그 와중에도 감탄을 하는 녀석이 있으면, 아부를 떠는 놈이 있었다. 그러나 녀석들의 얼굴은 빠르게 굳어갔다.

튕.

공호는 단도를 꺼내 간단히 튕겼다. 그 강력한 음기를 담은 비도를 튕겨낸 공호의 단도는 조금도 얼어붙지 않았고 그 모습에 병사들은 질겁했다. 공호는 손을 저었다.

콰드드득.

황자들은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붙었다. 그 먼거리에서 손 한번 저은 것으로 음의 마나를 이렇게 까지 제어한 공호. 신하들은 그 상황이 믿기지 않아 멍하니 창만 잡고 멀대같이 서 있었다. 이미호가 이렇게 간단히 제압당하다니. 만약 공호가 그 짧은 순간 단도의 음기를 흡수했단 걸 알면 놀라 옆어질 거다.

"흑미호여."

누군가 부른다.

공호는 소리 나는 곳을 응시했다. 딱 봐도 높아보이는 여인이 격식을 차리며 올려보고 있다.

"뭐가 그리 급한가. 꼭 엉덩이에 불이 붙은 아이같은 꼴이지 않은가."

급해 보였나. 확실히 그럴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실제로도 그렇고. 급하다. 빨리, 더욱 빨리. 이런 강박속에 살고 있으니.

"살생을 하지 않은 것을 보아하니, 뭔가 명분을 얻으려 그런 것 같은데. 대화를 하지 않겠는가."

"실리아 황녀!"

황자들이 부르짓었다. 욕심이 눈까지 올라와 있는 모습이, 배고픈 돼지와 같았다.

"어떤가. 그대는 황궁을 침입한 대죄가 있지만, 아직 살생은 하지 않았네. 분명 죄를 물을 것이나, 변호를 못 하는 건 아니지. 분명 목적이 있을 진데, 어떤가. 잠시 나를 따르지 않겠는가."

공호는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저들을 다 죽이고 협박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얌전히 물리기엔 판을 크게 벌어놨다. 여기서 적당히 손만 보면 황궁에 머무르며 정보를 얻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공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리아!"

"왜 그러십니까. 흑미호라고 해도 삼미호. 꼬리의 개수를 따지자면, 자연적으로 우리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의 자기 의사를 들어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법에 어긋나는 일도 아닙니다. 저는 흑미호를 죄인으로 데리고 있겠습니다."

"황궁을 흡격한 흑미호다! 엄하게 다스려야 할 것 아닌가!"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아니면, 지금 흑미호에게 황궁이 뒤집어 지는 꼴을 보겠단 말씀이십니까. 페하의 옥체가 성하지 못하신 지금, 그 누가 흑미호를 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벌하는게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든 끌여들어 자신의 파로 만들어 황제가 되는 길에 팍팍 써먹어야 하지 않은가. 공호는 힘을 갖고 있다. 그리고 힘이 어떤 것인지 이제 조금은 알아가고 있다.

황위 계승건. 공호의 눈에도 선하게 보인다. 공호는 실리아 황녀를 따라가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순순히 실리아 황녀에 말에 따른다면 마치 힘이 없어 일단 피신하는 꼴이다. 얌전히 알고도 이용당하는 함정에 빠져야 하는가. 그런 허술한 성격은 아니었다. 쇄기를 박을 필요가 있었다.


조금은 찍어 눌러줄 필요성을 느꼈다.


모두가 숨죽이는 가운데 공호가 왼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정말 진심을 다해 집중하는 표정을 지었고 공호의 몸은 몇초가 지나지 않아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만약 이 상태로 공격받는다면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태다. 전력을 쏟아붙는 공호. 모든 여우요괴들은 공호가 뭐하나 집중하다가 팔이 있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에이, 설마..'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공호가 뻗은 손이 향하는 곳에는 해발 824m 정도의 고산이 있었다. 모두 눈을 크게 뜨고 긴장하며 공호의 팔과 그 산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며 속으론 의심을 수백번 되뇌어 삼켰다.

"진짜다."

황궁의 서편에 자리잡은 그 거대한 산이 흔들거리더니 밑둥부터 서서히 퍼렇게 얼어붙어갔다. 얼어붙기 시작한 산은 재빨리 중턱까지 확 얼어붙더니 1분이 지나자 정상에 꽂힌 석비까지 완벽히 얼어붙었다. 완전히 꽁꽁 얼어버린 산은 태양이 내리쬐는 이 더위에 홀로 겨울을 맞이한 듯 했다. 아니, 겨울이라한들 저렇게 눈하나 안싸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얼어붙은 산따위는 없다.

공호는 숨을 헐떡였다. 하지만 너무 높이 떠 있기에 아무도 그걸 목격하지 못했다. 사실은 모든 시선이 산에 가있었기에 그랬다는 게 맞지만. 덕분에 공호는 한번에 음의 마나를 8할이나 탕진했다.

공호는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내내 그 누구도 화살하나 함부로 날리지 않았고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산을 얼리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단 뜻은 이 작은 공간을 얼리는 데는 얼마나 짧은 시간이 걸릴까. 또 그렇다면 이 작은 병사들을 얼리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이미호들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게 생각하였다.

'저 정도 크기의 산을 얼릴려면 단순계산으로도 백 오십명의 이미호가 모든 음의 마나를 쏟아부어야 할 것 같다. 각개 얼렸을 때의 시간과 속도까지 포함하면 오십여명은 더 잡아야 할 테지. 게다가 산에서 느껴지는 음기의 질이 장난아냐. 저 정도 얼음의 견고함까지 생각하면... 역시 흑미호군.'

그렇게 머리가 핑핑도는 동안 간신히 실리아 만이 제 정신을 차렸다. 멀리서 공호의 기행을 지켜봤기에 공호의 실력을 어느정도 갸늠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실리아도 저 패닉하고 있는 무리에 끼어들었을 거다.

실리아는 혀부터 찼다.

너무 쉽게 봤어.

이렇게 된다면 공호를 데려간데도 공식적으로 부리긴 무리다. 함부로 취급하는 건 더 무리고. 대신 공호자체의 위엄이 올라갔기 때문에 대려간다면 무조건 황위는 따 놓았다.

실리아가 낮게 중얼거렸다.

"나 걔 알아. 섬천이."

모두 들을 수 없었지만, 육감 스텟이 차고 넘치는 공호는 똑똑히 들었다. 공호의 청각능력은 언제 알아차린 건지 실리아는 그걸 쉽게도 응용했다.

'바위.. 부적.. 섬천. 황녀.'

아, 그렇군. 너였어.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

꽁꽁 얼었던 산이 녹으며 그곳에서 나온 푸른 기운들이 소용돌이 치듯 공호에게 일반적으로 빨려들어갔다. 공호는 그녀를 따라 걸었다. 황자들은 손 한번 못쓰고 공호가 가는 길을 터줘야 했다.

"궁금한게 많을 거야."

공호가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그 순간을 주위에 많은 눈들이 빠르게 담는다. 한올한올 장인들의 피가 쥐여 짜였을 옷과 장신구를 걸친 실리아는 아름다웠다.


황위 계승권을 두고 다투는 가장약한 세력에, 가장 강한 조력자가 붙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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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22 876 22 12쪽
39 여우제국 폴시아. +3 15.05.14 840 25 8쪽
38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13 767 20 12쪽
37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11 954 28 18쪽
36 여우제국 폴시아. +5 15.05.07 1,060 23 8쪽
35 여우제국 폴시아. +3 15.05.06 850 23 10쪽
34 여우제국 폴시아. +1 15.05.06 956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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