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99,819
추천수 :
2,582
글자수 :
751,747

작성
15.06.28 15:44
조회
500
추천
10
글자
20쪽

여우제국 폴시아.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아무리 동생이 보고 싶다 한들 하던 일은 마쳐야 했다. 실리아는 이황자가 모든 재산을 이쪽으로 인계했다는 계약서를 황궁에 제출했다. 이걸 제출하지 않으면 강제로 빼앗은 돈이 되기 때문에 역으로 소송 걸려 올 수 있으니 꼭 해야만 하는 절차였다. 물론 계약서 자체는 반강제적으로 만들어 졌지만.

그 뒤로 실리아는 그 많은 돈을 진짜 바리바리 싸들고 황궁밖으로 나갔다. 실리아의 곁에는 공호가 막대한 훈련을 시켜 곧 이미호에 다다를 병사 50명이 호위했다.

실리아는 그 병사들이 이미호에 다다를 거란 걸 알았을 때, 좋아서 방방뛰며 더러운 입술을 내밀려 해였기에 밥을 먹던 공호는 젖가락으로 실리아의 입술을 집어 책상에 내꽂아 버렸다. 어찌나 돌머리인지 500년 된 강목으로 만들어진 황궁 식탁이 두동강났다.

그 후 공호가 먼저 자리를 벗어났기에 그 식탁값은 실리아가 변상했다. 실리아는 갈갈이 날뛰었는데, 실리아는 곧 머리로 돌담을 부수고 기절했다. 그 뒤로는 공호와 있을 땐 장난으로라로 날뛰진 않았다.


실리아가 황궁을 나가고 난 뒤 공호는 지금 본격적으로 황제에 대해 조사 시작했다. 일단, 당대 황제에 대한 기록을 살피기 위해 공호는 황궁의 서고에 들렸다.

책장의 모퉁이마다 연한 적색의 용이 헤엄친다. 가히 황궁의 서고라 할 곳이다. 신분에 따라 관람할 수 있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지만, 애초에 공호에게는 둔갑술이 있었다.

공호가 원하는 정보는 그렇게 큰 것도 아니였다. 단순히 황제의 일대기가 담겨있는 위인전 같은 책들이었으니. 이 정도는 백성들에게도 널리 보금되는 정도다. 황제가 하는 일은 하늘의 일. 그 책을 신성시 어기기는 백성도 존재한다.

공호는 구석에 박혀있는 책을 끌어당겨 꺼내었다.


-근대 100년 황궁.


책의 상태가 멀쩡한 것을 보아하니, 근래의 것이다. 이 책 외에도 공호는 머리까지 쌓아올릴 정도의 책을 들었다. 책을 들고 서고 밖으로 나가기는 엄격히 금해있다. 공호는 재빨리 책을 인벤토리에 넣으려 했다.

텁.

그 순간 누군가 서고 안에 들어왔다. 재빨리 인벤토리를 허물고 공호는 자연스럽게 책을 들고 서고의 책상으로 향했다. 신중해서 나쁠것도 없고, 여기서 조금 읽는다고 그리 큰 지장은 없을 것 같았다.

텁.

두꺼운 책의 일장이 펴진다. 기본적으로 폴시아도 아스페티아 문자를 쓴다. 아스페티아는 신기하게 모두가 아스페티아어를 쓴다. 지구가 훨씬 작고 언어를 구사하는 종족이 인간뿐이었는데도 다양한 언어가 있다.

그러나 아스페티아는 그 무식한 넓이에도 다 같은 언어를 쓴다. 지역에 따라 사투리 같은 억양이 있다해도,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조금만 생각해도 괴상한 일이다.

마치 모두가 똑같은 프로그램을 주입받은 것 같으니 말이다. 만들어진 것 처럼.

책을 읽는 공호의 책상에 누군가 다가온다. 아까 들어온 레스토다.

웬만하면 육감으로 판단하고 넘기는 공호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호가 고개를 돌려 그 누군가를 쳐다봤다. 공호는 둔갑술로 변한 상태기 때문에 상관없이 쳐다봤다.

어디선가 향긋한, 잊을 수 없는 냄새가 났다. 그녀가 공호를 스치고 지나간다. 공호답지 않게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길고 반짝이는 머리카락이 나른하게 흩날리며 공호의 뺨을 스쳐 갔다. 순간 항상 일정한 박동수를 유지하던 공호의 심장이 빨라진다. 빨아들이듯이 머리카락을 따라 공호는 그녀의 얼굴을 향해 눈을 돌렸다.

소녀. 어디선가 아주 익숙한 듯한 소녀가 지나갔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부 가진다면 저런 얼굴일까. 하늘의 별을 떼어다 논 듯한 소녀를 공호는 멍하니 쳐다봤다. 피부는 사정없이 희면서 고왔고 티끌하나 없는 눈은 은하수를 박아 넣은 듯 거대한 중력처럼 시선을 끌여들였다. 아직 덜 여문 듯한 소녀의 입술은 공호에게 조차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했다. 코는 눈과 입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듯 튀어나와있다.

가족은 아닌데, 그와 같이 심장이 반응하게 하는 소녀.

공호의 안에선 그 소녀와 눈을 마주쳤으면 하는 욕구가 강렬하게 휘감아왔다.

어디선가, 분명 어디선가 느꼈다. 그런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커다란 먹구름이 뇌에서 자리 잡고 생각하는 걸 방해하는 기분이다. 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공호지만, 왜 인지 지금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째서 생각하지 못할까.

소녀는 폴시아에 있지만, 분명 지구에서 같은 기운을 느껴본 것 같다.

그냥.. 그랬다.

아지랑이같이 아니, 그냥 몽환적인 환상이 뇌를 휩쓸고 간 사이. 그녀는 저 너머로 사라졌다. 등 뒤에서 나타난 한 쌍의 날개가, 성스럽도록 빛나는 깃털을 흩뿌리고는 공간을 휘저었다.

순간, 공호는 자신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두루미."

본능도 억누르는 공호다. 어째서인지 말하나 제어하지 못했다. 공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공호는 눈을 돌리며 책을 봤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잠시 동안 글자가 읽히지 않았다. 공호는 인상을 짓고는 책을 노려 보기 시작했다.

두근.

황실의 서고에 누군가의 심장소리가 울려퍼졌다. 마치 고귀한 학이 검고 깊은 바다에 파문을 일으켜 놓은 기분이었다.


#


"흑미호가 황궁을 뒤집었다는데?"

마을로 돌아온 섬천은 신문을 읽으며 대화하는 여우요괴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무슨 일입니까?"

"오, 왔나. 흑미호에 대한 이야기네."

마을에서 섬천에 대한 지지도는 하늘을 찔렀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마을에 비하여 주위에 몬스터가 많은 지리적 특성이 있는 마을이다. 그렇지만 육체능력은 일반적인 여우요괴를 아득히 초월했기 때문에 섬천은 몬스터를 정리해주며 마을의 영웅 격으로 취급받았다.


게다가 그냥 우러러 나오는 섬천의 카리스마는 마을 아이들까지 사로잡아서, 어딜 가도 뭐 하나쯤은 얻어먹는 신세가 됐다. 마을에 온 지 15일. 그 짧은 시간 동안 얻은 명성치고는 높았다. 무려 옆 마을과 그 다음 마을 까지 섬천을 보려고 한 번 찾아와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원하게 황궁을 갈아엎어 주고 있나 봐."

섬천이 그동안 모은 정보는 차고 넘쳤다. 특히, 백성의 삶에 대해 사소한 것까지 알아서 가끔은 섬천을 꼬리잘린 여우요괴로 착각하는 이도 있었다.

"어휴, 황후 마마 실종사건 다음으로 전대미문한 사건이군."

황후실종사건. 워낙 유명하니 여우요괴들의 입에서 쉽게 오르내렸다. 그 덕분에 몬스터를 학살하기 바쁜 섬천도 알고 있는 사건 중 하나다. 어느날 갑자기 황후는 실종되고 황제는 황후에 대한 기억의 일부를 일어버렸다는 전후무일한 괴사건. 섬천은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낡고 검은 책을 의식했다.

'생각보다 엄청난 책을 주워버렸어.'

여우들에게 이끌려져 수상한 곳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황후와 관련된 책이 나올 줄이야. 이게 공호에게 도움 될 지는 몰라도 섬천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잘 간수하고 있었다.

'그럼 대체 이 여우는 뭐야?'

섬천은 아직도 쫄레쫄레 따라다니고 있는 여우들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폴시아에는 여우요괴만 있을 뿐 정작 여우는 멸종에 가까운 상태다. 황제도 보기 힘들다는 여우가 이렇게 많이 갑자기 튀어나오다니..

"으흠, 그렇다면 이번에도 황후마마 추모 축제도 열리겠지."

"물론이지. 실컷 먹고 즐길 시간이 다가오는군."

"그런데 그 전에 할 일이 있지 않나?"

섬천은 그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슬쩍 저었다. 폴시아를 알아가며 한 가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폴시아에서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백성들이 평화롭고 천국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세금은 거의 없다시피 하며, 황제는 백성의 행복만을 추구한다.

황후마마 추모식만 해도 그렇다. 나라의 어머니가 죽었는데 축제? 황제가 미친 듯이 황후마마를 그리워 하는데 황후의 기일에 백성들이 축제를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이처럼 폴시아의 백성은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흥청망청 놀았다. 어떻게 이렇게 평화로운 아니, 낭비스러운 제국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황제가 정치를 아무리 잘한다 한들 한쪽은 피를 흘려야만 백성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군도 징병제가 아니다. 애초에 전쟁할 곳이 없으니 군대를 크게 끌필요도 없겠지만, 일단 입대한 여우요괴의 대우는 후하다. 이렇듯 정말 단점은 보기 힘든 천국같은 폴시아다.

백성들에게 몬스터가 위험하다고는 하지만, 정작 위험한 것은 몬스터를 즉각 처리해주는 황궁의 기사단이 든든히 존재한다. 모두가 평화롭기 위해서는 어딘가 한 부분은 반드시 피를 흘린다.

그런데 백성은 아니다.

'그렇다면 피를 흘리는 건 어딜까.'

뚜렷이 감이 잡히진 않았다. 섬천은 그저 황궁이 있는 방향을 지긋이 바라봤다.

"아, 자네. 오늘도 몬스터 사냥을 나갈 건가?"

"당연합니다."

"붉은 나무의 숲에 드레일이 대거 등장했다더군. 그 흑미호가 딥 드레일을 죽여서 그 잔당 몬스터가 이 마을까지 내려온 듯 하네. 참, 흑미호가 무섭긴 무서운가 보군. 황궁 기사단도 처리 못한 딥 드레일을 죽여서 질질 끌고 다녔다니. 우리 마을은 몬스터들이 늘어났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지. 드레일이 집단을 이뤄서 마을을 부술 위험은 없어졌으니까."

한 건 제대로 했나 보다. 강한 녀석을 잡았으니 막강한 세포포인트가 쌓였겠지.

"자네는 참 이상해. 강한 몬스터만 보면 환장하고 달려드니 말이야. 마치 그 옛날 개척자들처럼."

여기서도 개척자는 천하의 나쁜 놈이다. 섬천은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당연하지만 매일 정오 꼭 마스크 더스트를 볼에 뿌리고 확인한다. 공호가 나눠 준 것이 많으므로 양은 차고 넘쳤다.

이제 이 마을과의 인연도 얼마 안 남았다. 사실 한 시가 바쁜 몸이다. 그리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일도 생겼고 말이다.

"그래도 그렇지 흑미호가 황궁을 휘젓고 다닌 것이 말이 되나. 제국민의 힘을 보여 줄 때지. 무능한 황궁을 대신해 흑미호를 타도해야 되."

흑미호는 저주받은 여우. 정치에 이용이 되든지 어떻든지, 백성들에게는 배척의 대상밖에 되지 않는다.

" 흑미호가 황궁에 들어선 이후부터 병사로 들어간 백성들이 죽어 나가고 있잖아. 제국은 당장 흑미호를 쫒아내야 해."

공호는 황궁 내외적으로도 영향을 많이 끼쳤다. 기본적으로 세금이 없다싶이 하던 폴시아의 행복에 절였던 백성들이다. 그런데 공호가 들어가며 황궁은 긴장상태가 되고, 마치 생태계처럼 황궁 밑 줄줄이 긴장상태에 들게됬다. 황자들과 그 수하들의 은밀한 지시에 따라 물자가 조절되기도 하고, 서로 더 이득을 얻기 위해 경제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백성에게 미친 황제의 제재로 큰 티는 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제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이렇게 쉽게 큰 시위란 일어나기 어렵지만, 지난 500년 동안 평화만을 바라보고 생활한 백성들이다.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쉽게 말해서 500년 동안 짜장면을 먹다가 애굳은 놈 때문에 짜파게티로 갈아타야 한다면 어느 누가 가만있겠는가.

"황후마마의 기일이 다가옵니다. 흑미호를 제물로 삼아 추모를 지냅시다!"

그리고 과격해지는 황궁의 세력다툼에 세금은 점점 더 올라갔다. 뭐, 일황자와 이황자가 동시에 큰 타격을 입으며 그 밑 지지세력들이 별 뻘짓을 전부 시전한 덕이다. 한 편으로는 축제를 앞두고 있지만 다른 쪽으로는 마치 전쟁이 일어나기 전처럼 흉흉한 분위기가 흘렀다.

'시간이 없다. 이제 제 몫을 할 때가 되었어.'

섬천은 빨리 폴시아를 떴으면 했다. 당연하지만, 셋째와 넷째, 다섯째,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도 그리웠다.

한동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섬천은 살벌하게 날카롭고 계산적인 면이 있다. 폴시아를 나간뒤에 가족을 찾을 길과 안전하며 이득을 취하는 길을 대략 생각해 두었다.

그 정도 생각은 있었다.


섬천이 검을 챙길 때었다.

땅이 울리며 마을의 뒤쪽에서부터 군단에 가까운 뭔가가 다가온다. 그 우렁찬 소리에 신문을 읽던 여우요괴들이 발랑 뒤혔졌다.

"오늘도 수고가 많아. 자네."

마을 사람들은 페가 쪼그라들도록 웃었다. 얼마나 재밌는지 좀처럼 웃음을 조절하지 못하고 허파에 바람빠진 소리를 내었다. 이젠 정말 폐가 쪼그라들다 못해 어떻게 됬나보다, 간질 환자처럼 자지러지게 온몸을 비틀고 있으니 말이다.

섬천은 고개를 몇 번 내두르더니, 다리에 힘을 꽉 주기 시작했다.

저기 다가오는 죽음의 군단에게서 태산이라도 갈아버릴 듯한 위세가 마을을 진동한다. 그동안 섬천이 휘두른 수 많은 마을 소녀들의 쇠를 씹어먹을 원한이 풀풀 흐르다 못해 범람한다.

"아, 그럼 저는 몬스터 사냥하러 가보겠습니다."

저기에 잡히면 죽는다. 살이 찢기고, 입에서 단물이 날 때까지 혹사당한다. 섬천이라도 저 무리에는 무용지물. 도망치는게 답이다.

휘잉.

섬천이 사라진 자리에는 푸른 나뭇잎 만이 빙그르 돌며 떨어져 내렸다.


#


-육체등급:A 레벨:40 육체랭킹:?위

이름:섬천 칭호:선구자의 별을 쫓는 자. 그외...


힘:135 민첩:235 순발력:75 체력:85 육감:85

특수 마나 친화도:145 특수 마나 제어력:125

부여가능 스텟포인트:0


그동안 섬천은 몬스터를 사냥하며 적잖은 성장을 했다.

동굴사건 이후로 왜인지 낑낑대는 여우들이 거추장스러웠지만, 그럭저럭 쓸만했다. 아니, 쓸만하게 섬천이 개조를 시켜버렸다. 몬스터를 몰아오는 데에는 이 여우만 한 놈들이 없었다. 굳이 사소한 흠을 잡는다면 폴시아에 들어온 순간부터 육체랭킹이 표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섬천은 폴시아는 세상의 틈이니 그럴 수 있다고 가볍게 넘겼다.

"그리고.. 또."

섬천의 인생역사상 이렇게 황당한 사건을 꼽으라면, 대략 11가지가 있다. 이번에 생긴일은 이 기록을 12가지로 갱신했다.


어느날 섬천은 사냥터를 찾는 겸 여유롭게 하늘에 자유곡선을 그리며 곡예를 하고 있었다. 풍의 마나가 생긴 뒤로는 섬천은 알게 모르게 비행을 즐기는 경향이 있었다.

공중에서 급하강까지 막 방금 소화해 낸 섬천이 좋아하고 있을 때, 웃기지도 메세지 창이 떴다.


-신묘한 알이 당신에게 귀속됩니다.


딱, 딱 저 짤막한 단 마디와 함께 반지에서 듣도보도 못한 괴상한 알이 튀어나왔다. 난데없이 알이라니.

이 알은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아서 움찔거리기도, 재채기하기도 했다. 괴이한 일에 섬천은 소름부터 돋았다. 어린이용 만화에서나 그런다면 모를 까 실제로 누런 알이 재체기를 하고 움찔거리니 등골이 안 오싹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알은 섬천의 세포포인트를 가져가기도 했다. 열의 하나는 알에게 가는 것 같았다. 세포포인트가 쌓일수록 알이 움직이는 횟수가 늘어났다.

'젠장, 이번에는 경험치 강탈입니까!'

귀속됐기 때문에 버리지도 못하고 섬천은 알이 부화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섬천은 손 안에서 움찔대는 알을 지켜봤다. 나이에 알맞지 않은 한숨만이 맴돈다.

"오늘은 외박입니다. 언제나 외박이었지만."

사냥을 열정적으로 하다보니, 섬천이 지내던 마을에 몬스터가 대부분 씨가 말랐다. 마을에 내려왔다던 드레일도 몇 번 죽이니,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버렸다.

그리하여 섬천은 몬스터가 많다는 위험도시를 향해 날아오른 것이다. 위험도시 근처에 도착하기만 했을 뿐인데 몬스터 노다지가 보였다.

여우가 몰아오면 섬천이 쓱싹.

'척'하면 '착'하고 달라붙는 조합이지만, 나름 응용하면 효율적이다. 뭐랄까. 여우의 지능은 이럴 때만 잠깐 늘어나는것 같다. 몬스터를 약 올릴 때만 말이다. 성적은 꼴등이지만 장난에서는 천재 같은 느낌 말이다.


섬천은 그곳에서 죽치고 사냥해 대략 반나절을 사냥만하고 보냈다. 처절한 사투끝에 머리가 3개나 되는 원숭이 몬스터가 빈틈을 보였다. 섬천은 이때다 싶어 오른손에 왼손을 더하여 강하게 검을 밀어 넣었다. 그러나.

파바박!

난데없이 날아 꽂히는 다섯개의 얼음비수.

"오랜만이야, 동생?"

섬천은 목소리만으로 혈압이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지구에 있었다면, 이에 관한 메커니즘을 찾아내어 장대한 논문이라도 써냈으면 싶을 정도다. 만나자마자 세포포인트를 강탈당했다. 이 녀석과의 만남은 정말 더럽다.

섬천은 검을 혁대와 바지의 틈에 꽂아넣으며 말했다.

"냄새납니다. 3m 간격을 유지해서 제 정신건강에 이바지하는게 어떠십니까. 아니, 그냥 죽어주세요. 제발 그냥 죽어주세요."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존댓말에서 정말 간절함이 묻어나왔다.

"입 더러운 건 아직 못 고쳤네. 동생."

실리아 뒤에는 거지꼴을 한 백성들이 우글우글했다. 참으로 행색이 똥 밭에서 몇번 굴러도 되기 어려울 듯한 모습이다. 섬천이 뒤로 돌았다.

실리아의 얼굴은 흰 가면이 대신하고, 청동벳지를 단 실리아의 단조로운 복장.

"아, 봉사한다고 떠들썩하던 게 당신이었습니까?"

요즘 백성들사이에 떠들썩한 여우'천사'로 신망받고 있는 여우요괴가 있다. 그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들이 나돌지만, 그 누구도 정확한 정체를 알아내는 이는 없었다.

그게 실리아 였다니.

"세상에, 구렁이같고, 불여우같고, 눈이 쫙 찢어진 얼굴의 당신이 어떻게 참고 그짓을 합니까?"

"사심이 너무 많이 들어갔어, 동생."

순수한 동심따윈 없었다. 한눈에 실리아가 목적이 있어 그 짓을 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아니, 그냥 당연한 거다. 저 불여우가. 대충 봐도 지금 딱 맞물리는 게 있다. 공호의 등장과 함께 제국이 긴장감이 폭발하는 가운데 백성을 돕겠다고 나타난 신비의 인물.

제국민의 관심이 한번에 확 쏠린다. 우선 제국민의 관심이 목적이라면 벌써 반은 이륙해냈다.

"그런데 그 짓이라니? 아까부터 우리 천사님에게 무슨 막말이야!"

단체로 존경을 넘어선 눈빛으로는 실리아를, 혐오의 눈빛으로 섬천을 노려본다. 극성종교단체에게 걸린 무신론자의 기분이랄까.

아! 이 어리석은 백성들아. 이 무지한 백성들아.

실리아가 되지도않는 친절한 목소리로 그들을 말렸다.

"다 제가 잘못한 탓이지요. 더욱 열심히 하면, 누군가 반드시 저를 알아봐줄까요?"

"알아주다니요! 이미 저희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섬천은 발악하고 싶었다. 저 가면에게 속지 말라고. 저 가면은 사실 구렁이가 쓰고 있노라고. 섬천은 자꾸만 실리아의 가면이 피식 비웃는 것 같았다. 혈압수치가 정상을 벋어날 것 같아 섬천은 말을 돌렸다.

"됐고. 형님은 어디있습니까."

수상한 책도 찾았겠다, 실리아 만났겠다, 이참에 공호에게 완전히 합류할 작정이다. 형님도 무심하시지. 장정 15일 동안이나 동생을 이런 외딴곳에 박아놓다니.

"지금은 황궁에 있을 거야."

실리아가 조용히 다가와가 속삭였다. 황궁이란 단어가 들어간 말을 백성 앞에서 찍찍 뱉을 수는 없는 노릇.

"그럼 언제 만날 수 있습니까."

"오늘 어차피 나에게 올 거야. 잠시 동행하면 되겠네, 동생."

섬천이 실리아의 묶은 머리카락을 당겼다.

"아, 아. 아야얏!"

"저, 불경한!"

실리아를 따르는 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울부짖었다. 천사네, 여신이네 하며 방방 날뛴다. 섬천은 낮은 소리로 실리아의 귀에 찔러넣었다.

"분명 3M 이상 접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만?"

"깐깐하기는. 보여줄 게 있어."

섬천은 실리아를 따라 백성들이 없는 어디론가로 이동했다.

어느순간 실리아의 제스쳐에 50명의 여우요괴가 강대한 기운을 뿌리며 나타났다. 전원 꼬리가 두개, 이미호였다.

"어때, 이제 네 형이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이가?"

삐익, 섬천이 휘파림을 불었다. 뭔가 또 계산을 맞췄는지 표정이 상큼하다.

"네가 얼마나 신명나게 형에게 놀아나고 있는 지 실감이 감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여우와 두루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3 월묘 15.07.25 488 7 11쪽
62 월묘 15.07.25 435 7 12쪽
61 월묘 15.07.23 511 9 11쪽
60 여우제국 폴시아. 15.07.22 458 8 10쪽
59 여우제국 폴시아. 15.07.21 423 7 19쪽
58 여우제국 폴시아. 15.07.20 835 60 14쪽
57 여우제국 폴시아. +1 15.07.19 380 8 13쪽
56 여우제국 폴시아. +1 15.07.19 418 8 15쪽
55 여우제국 폴시아. +3 15.06.28 403 10 21쪽
54 여우제국 폴시아. +2 15.06.28 459 10 15쪽
53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395 9 18쪽
52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387 10 30쪽
51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390 10 15쪽
»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501 10 20쪽
49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28 487 15 16쪽
48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09 551 14 17쪽
47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07 606 17 13쪽
46 여우제국 폴시아. +1 15.06.06 518 12 12쪽
45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31 643 17 16쪽
44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30 1,124 45 14쪽
43 여우제국 폴시아. +4 15.05.29 598 20 20쪽
42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27 723 17 9쪽
41 여우제국 폴시아. +3 15.05.25 745 19 13쪽
40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22 876 22 12쪽
39 여우제국 폴시아. +3 15.05.14 840 25 8쪽
38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13 767 20 12쪽
37 여우제국 폴시아. +2 15.05.11 954 28 18쪽
36 여우제국 폴시아. +5 15.05.07 1,060 23 8쪽
35 여우제국 폴시아. +3 15.05.06 850 23 10쪽
34 여우제국 폴시아. +1 15.05.06 956 28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