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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한량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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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한량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9
최근연재일 :
2021.08.23 11:0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8,569
추천수 :
182
글자수 :
247,784

작성
21.08.01 21:48
조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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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0쪽

44화

DUMMY

잘 자란 독수리의 경우 두 날개를 펼치면 사람의 몸체를 뒤덮을 정도이며, 세계에서 제일 거대하다는 콘도르가 활강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에라도 사람을 덮쳐서 잡아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위용을 보인다.


펄럭


[인간이라... 인간이 이곳에 온 건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군]


하얀 기운은 일렁거리며 거대한 두 날개를 펄럭이며 대지에 내려앉는 거대한 새의 늠름한 모습은, 그야말로 신성함이 절로 느껴지는 자태였다. 거기에 나이를 지긋이 먹은 현명한 노인과도 같이 나직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까지.


새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진 않았지만, 저 나무의 다른 모습이라는 건 모두가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그렇게 당장에라도 무릎을 꿇고 경의를 드려야 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말캉


“이야~ 털 한 번 보들보들하네.”


언제 움직였는지 모를 크로우가 거대한 새의 턱과 등 부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저 양반 드디어 돌았나?”


“가. 감히 아인님의 화신체를 만져대다니 불경한...!”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들고 달려들 것 만 같은 자세를 취하는 리피. 하지만 아인이라 불린 새는 손을, 아니 날개를 들어 그녀의 행동을 제지했다.


[괜찮다. 그래, 본디 인간이란 이런 존재였지 않느냐.]


“하지만...”


“리피씨. 지금은 본래의 목적을 우선해야 할 때입니다.”


“...칫.”


알렌의 말에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망설이던 리피는 한 차례 심호흡을 통해 마음을 가다듬으며 아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안다. 그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굳이 말 하지 않아도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당도한 것인지 알 수 있단다.]


‘역시, 괜히 신목이니 뭐니 하는 취급을 받는 게 아니었나?’


[답을 내리기 전에, 한 가지 문답을 하고 싶구나.]


“문답... 말씀이십니까?”


[그래. 흐음... 어디보자...]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훑어보던 아인의 눈이 머문 건


[네가 좋겠구나.]


“...응? 나?”


바로 알렌이었다.


‘아니 왜 나를...’


[만약, 자신의 아이가 실수를 저질렀을 경우, 실수를 저지른 그 아이를 보듬아 줄텐가 아니면 따끔히 혼을 낼텐가?]


갑작스런 질문. 하지만 알렌은 그 질문의 대답을 가볍게 내뱉어서는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저라면 보듬을 겁니다.”


[그렇군. 나와 같으니 다행일세. 그것이 이 늙은이의 생각이자 결론이자 대답일세.]


숲속을 활보하는 바람같이 상쾌한 목소리. 하지만 그 속에는 태산의 바위같이 지극히 단호한 결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군요. 크로우씨! 교섭은 결렬이니 이만 물러납시다!”


“뭐야, 텄어? 이봐 신목 나으리, 당신네 동족을 위한 건데 너무한 거 아냐? 생각 좀 유도리하게 굴려봐 좀? 응?”


[허허허. 이 늙은이의 생각도 좀 헤아려 주게나. 게다가 자네의 마음 또한 순간의 충동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이래서 늙은이들이란... 헛늙었으면 모를까 죄다 능구렁이들이란 말이야... ”


“자! 돌아가자!”


“에에!? 얻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 돌아가는 겁니까 대장!?”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 됩니까?”


“시끄러! 나라고 좋은 줄 아냐? 명령이니까 빨리 움직여 임마들아!”


그렇게 한 가득 소란을 피우며 움직이는 가운데, 알렌이 갑작스레 알렌이 뒤를 돌며 질문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음? 무언가?]


날개를 접은 채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알렌은 심정에 담겨있던 말을 내뱉었다.


“당신께서는 아이를 보듬고 계신 겁니까? 아니면 울타리에 가두고 계신 겁니까?”


[......]


쉽사리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대답. 그에 알렌은 짧은 인사말을 남기며 다시금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조용해졌구나]


시끄럽게 웅성거리던 상황이 거짓이기라도 했던 것 마냥, 적막함이 감도는 초록의 밝은 공터. 하얀 새는 그 한복판에 두 발을 딛고선 알렌과 크로우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인이시여.. 생각을 달리 하실 수는 없으십니까.”


리피가 말했다.


[허허허- 애먼 곳에 정념을 쏟지 말거라 아이야. 이 노부의 마음과 생각은 ‘아직’ 견고하단다.]


“하지만...”


[그보다 너도 이만 가보거라. 저들이 나갈 길을 안내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이 숲은 외부인에게 불친절하니 말이다.]


“......”


잠시 망설이며 입을 달싹이던 그녀는 깊게 고개를 숙이고선 등을 돌려 사박사박 발걸음을 옮겼다.


[울타리에 가두고 있다라... 허허. 의표를 찌르는 당돌한 대답이구나. 이래서 인간과의 만남은 매번 흥미롭구나... 너도 이런 마음이었더냐 호박나무의 아이야.]


보일 듯 말 듯 부리를 달싹이며 작은 미소를 지어보이던 아인은 뭔가를 감지한 듯 머리를 돌렸다.


[허나, 모든 만남이 좋을 수는 없는 법. 유쾌한 손님이 가니 불쾌한 손님이 왔구나.]


초록이 한 가득 빽빽한 숲 너머, 어딘가를 향해 바라보았다.


* * *


“너무 쉽게 단념한 게 아닌가요 알렌님? 조금 더 설득할 방법이 있었을 것 같다 생각됩니다. 하다못해 겁박을 해서라도...”


한나의 질문에 알렌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 못해. 저 늙은이 완전 옹고집이야. 게다가 겁박 같은 건 저어기 순순히 물러나는 크로우씨한테 물어보지 않겠어 한나 경?”


“겁박? 그래 악역 전문 배우 크로우 로웬님 등장이시다. 그래, 뭐가 궁금한 건데?”


“아. 저기 그게...”


“아아 됐어, 굳이 말 하지 않아도 뭔 말을 하려는 건지 잘 알겠어. 겁박? 자고로 겁박도 겁박 나름이지, 아무리 본체가 늙은 나무라 해도 저런 복슬복슬한 새를 어떻게 겁박하냐? 그건 동물학대야 동물학대! 알겠어?”


“...헤?”


“뭐, 방금 말은 반쯤 농담이고, 겁박이라... 참고로 말하자면 사실 겁박은 우리가 당하고 있었던 게 맞는 표현 일 걸?”


“예? 그게 무슨...”


“겁박이니 뭐니 흉흉한 소리는 그만 두고, 자, 이거나 보면서 어떻게 사용할지 생각이나 해봐.”


“응?”


자신의 품을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꺼낸 크로우, 그의 손에 들린 한 물건의 모습에 그를 제외한 모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거... 설마...?”


“아니, 진짜? 진짜로?”


하늘하늘 바람결에 흩날리는 은은한 백색의 자태. 그것은 바로 깃털. 어느 조류의 깃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최근 마주하고 겪은 새라고는 단 한 마리(?)뿐 그것은 바로


“그래, 그 고고하신 새대가리님의 깃털이다.”


“대체 언제? 아니, 어떻게?”


“그건 말이지...”


“뭐.. 뭐라곳!?”


비명을 지르는 듯 터져나온 하이톤의 목소리. 어딘가 익숙한 음성을 따라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니, 그곳엔 경악에 가득 찬 얼굴의 리피가 서 있었다.


“아인님의 깃털을 뽑아? 그것도 세 개나? 이... 이 불경한 자가!!”


분노에 가득차 활을 꺼내 화살을 내기는 그녀의 모습에 크로우가 다급히 손사레를 치며 진정에 나섰다.

“워어 잠깐, 이건 내가 뽑으려고 뽑힌 게 아니라 저절로 뽑힌 거라고? 살살 쓰다듬으니까 손에 딸려 나온 걸 어떻게 해? 응?”


“자, 잠깐 그 말 사실이죠 크로우씨?”


“내가 거짓말 하는 거 봤어 카슈발 남작?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알아서 손에 잡혔다니까? 내가 굳이 뽑을 필요도 없이 말이지.”


“......”


뒷말이 매우 껄끄러웠지만, 크로우로 하여금 추가 진술을 토해내게 만든 알렌은 시선을 돌려 리피를 바라보았다.


“...매우 껄끄러운 발언이지만 거짓은 없는 것 같군. 믿도록 하지.”


“휴우-”


“그러니 깃털을 내놓아라.”

“..뭐시기?”


“한낱 깃털이라 할 지라도 아인님의 신체에서 나온 것. 당신들이 함부로 할 것이 아니다.”


“그건 좀 선 넘는 발언이야 아가씨 이건 내가 열심히 노동해서 얻은 정당한 대가라고?”


다시금 험악해지는 분위기. 그 상황에 알렌은 그저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알렌님. 지금 이 상황이... 그... 음... 바보 같다 여겨지는데 제가 이상한 걸까요?”


“아니, 지극히 정상이야 한나 경 새 깃털하나 가지고 죽자 사자 싸우는 모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비록 저 깃털이 엄청나게 중요한 무언가라고 해도 말이지.”


격해지다 못해 당장에라도 무기를 뽑아들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먼저 움직인 건 리피였다.


“,,음?”


무언가를 감지한 듯 심상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에 헛소리를 장전하던 크로우 또한 뭐라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


그렇게 침묵을 일관하던 리피는




아무 말도 없이 어딘가를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


“..쫓을까요 대장?”


“당연하지! 저 여자가 뭔 생각으로 달려나가는 건진 모르겠지만 반드시 쫓아야한다, 달려!”


그렇게 갑작스레 때 아닌 추격전이 펼쳐지게 되었다.


숲을 내달리는 그녀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지만 추격에 일가견이 있는 크로우와 그의 병사들이었기에 그녀의 뒤꽁무니를 간신히 따라갈 수 있었고, 그런 크로우의 뒤를 알렌들이 따라갈 뿐이었다.


타악


그렇게 한참을 쉴 새 없이 움직이다 그녀의 발이 멈춘 곳은, 검은 숲의 바깥이자 숲의 초입부였다.


“후우... 후우... 드디어 멈췄네. 대체 뭣 때문에 여기까지...”


타닥 타닥


공간을 아우르는 후덥지근한 열기와 함께 사그러든 잿빛의 나무. 그리고 채 마저 타오르지 않은 잔불. 그곳은 그야말로 검은 숲이라는 이름에 걸맞을 정도로 재와 숯이 가득한 검은 대지가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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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0화 21.07.16 61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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