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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한량 님의 서재입니다.

흔하디 흔한 영지물

웹소설 > 자유연재 > 게임, 판타지

한가한한량
작품등록일 :
2021.05.12 14:59
최근연재일 :
2021.08.23 11:0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8,570
추천수 :
182
글자수 :
247,784

작성
21.07.19 01:50
조회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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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9쪽

41화

DUMMY

엘프


숲에서 태어나 자연과 일련탁생을 같이 하는 귀인貴人


뛰어난 지성과 외모를 지녔지만 지극히 수가 적은 종족으로, 그랜드 심포니아에서 목격하고 접했다는 경험담은 극히 적었다. 타종족에 대해 배타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아무 이유 없이 검과 활을 들이미는 일은 없다는 게 만인의 관점이다.


그렇다면, 한 명도 보기 힘든 엘프들이 다수로 몰려와, 적의를 한껏 드러내며 활시위를 메기고 있는 건 대체 무슨 연유일까?


“그러니 크로우씨? 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길레 이런 상황이 발생한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건데?”


“여기 있는 인원들 중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가장 큰 존재가 당신이니까요.”


알렌과 한나, 다니엘은 물론, 크로우의 부관인 발러까지도 그를 바라보자, 크로우는 못 이기겠다는 듯이 두 손을 들었다.


“그래! 내가 쫌 막나가는 편이긴 해! 그런데 저들이 여길 왜 온 건지는 나도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혹시... 그거 아닐까요 크로우님?”


“그거?”


“이틀 전에 있었던 일 말입니다.”


“그거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듣... 아 그거! ...그거라고? 겨우 그런 일 가지고 이런 소란을 벌인다고?”


크로우와 발러, 둘 만의 대화를 지켜보던 알렌은 다급히 그 속을 끼어들었다.


“자기들끼리만 아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지금 당장이라도 화살이 날아올 거 같으니 뭐가 뭔지 빨리 이야기 해봐요.”


“아, 이틀 전에 저들 동족 한 명이랑 칼부림 난 적이 있었는데 그거 때문에 온 거 같아.”


“......”


“......”


덤덤하게 말을 내뱉는 크로우. 그런 그의 모습에 아- 그렇구나- 별 거 아니네- 하고 넘어 갈 뻔 한 알렌은 다급히 정신을 부여잡고서 현실과 자신의 머릿속을 재점검했다.


“그런 중요한 일을 왜 이제야 이야기 합니까!?”


“내가 당일 식사로 뭘 먹었나- 그런 소소한 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잖아?”


“그게 그거랑 같은...!”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는 알렌과 크로우, 그러는 사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다니엘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엘프들이여! 어째서 제 영지를 둘러싸고서 위협을 벌이고 있는 겁니까!”


“제 영지라... 재미있군.”


사박.


아름다운 목소리와 함께, 한 여성이 나무 그늘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뾰족한 귀. 등허리까지 오는 자줏빛의 머리칼과 새하얀 피부. 그리고 새하얀 이마를 감싼 나무줄기를 닮은 은제 장신구가 인상적인 한 엘프였다.


약관에서 이립. 그 언저리로 보이는 외모였지만, 무게감과 함께 절제미가 느껴지는 동작과 이치가 느껴지는 은색의 깊은 눈동자를 통해, 그녀가 살아온 세월의 깊이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이 땅이 언제부터 그대들의 것이었지? 그대들이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건 우리가 아량을 베풀어 그대들을 퇴거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니 착각하지 말도록 인간들이여.”


숲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만 같이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그 목소리에는 냉랭한 적의가 담겨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와서 우리들을 퇴거 시키겠다 이건가? 거 참 악취미도 정도껏이어야지? 안 그래?”


“겨우 그런 일로 이딴 곳에 왔으리라 생각하나 인간? 착각하지 말라!”


“...이딴 곳...”


자신의 영지를 이딴 곳으로 취급 당해버린 다니엘. 그러거나 말거나 엘프들의 지도자는 이어 입을 열었다.


“주제도 모르고 감히 우리들의 동족을 해한 죄. 반드시 그 죗값을 받고 말겠다.”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과 함께 만약을 바랬던 알렌이었지만, 그 마음은 무참히 짓밟혀버리고 말았다. 허나 정작 상황을 이렇게 만든 크로우는 당당했다.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 엘프? 단순히 정당방위를 행했을 뿐인데?”


“정당방위라?”


“그쪽이 먼저 다짜고짜 화살을 겨누기에 칼침을 선사했을 뿐이야. 상대방을 향해 칼을 뽑았으면 자신이 칼에 찔릴 수도 있다.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잖아? 게다가 해만 입었을 뿐, 죽지는 않았을 텐데?”


“......”


말없이 눈빛을 매섭게 빛내는 엘프들의 지도자와 자신의 칼집을 만지작거리는 크로우. 그런 둘의 분위기에 반응하듯 주변 또한 한층 적의를 불태웠고, 상황은 당장에라도 전투가 벌어질 것 같이 격화되어갔다.


알렌은 그런 상황을 훑어보며, 이 상황을 타개할 자는 자신뿐이라는 걸 직감했다.


‘저쪽이 좋아할 만한 단어와 어투로 최대한 고상한 어법이... 으음... 좋아 해보자!’


“걱정 마십시오 알렌님. 알렌님만큼은 제가 어떻게든...”


“한낱 필멸자가 경이롭고 고결한 숲의 귀부인께 대화를 청합니다.”


[알렌 카슈발 남작이 상황을 중재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외교스킬과 언변, 카리스마가 작용합니다!]

[......스킬레벨이 부족합니다!]


'젠장.. 실패인가?'


“...등불을 지피는 자인가.”


[‘이르하 교’의 특성 효과으로 인해 적개심이 누그러졌습니다.]

[상황이 조금 진정됩니다.]


‘여기서 희망의 신이!?’


“저치들과 관련이 없다면 당장 물러나도록 그것까지는 관여치 않겠다.”


그런 그녀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 알렌이었지만, 알렌은 자신이 할 일을 위해 재차 입을 열었다.


“위대한 호박나무의 마지막 자손.”


멈칫


“그 봉인을 풀고 싶습니다.”


“그걸 어떻게... 그렇군, 최근 숲의 기운이 심상찮아진 것은 그대들의 짓이었나?”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알렌과 크로우. 그런 모습을 보며 엘프들의 지도자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광석 속에 갇힌 그녀 또한 그대들의 동족 아닙니까? 우린 그런 그녀를 봉인에서 풀어주기 위해...”


“놔두도록.”


“..에?”


“그 아이는 그곳에 잠들도록 놔두어야 한다. 우리는 물론, 그대들을 위해서 말이지.”


“그게 대체 무슨...”


“인간들이 대체 어째서 그녀를 깨우려하는가? 대체 어째서... 아니, 그것이 정해진 수순인가?”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녀, 궁금하기 그지없는 말들이었지만, 심상찮은 분위기에 다들 말을 아꼈다.


“...오늘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다. 그대들은 내 충고를 명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게 사박사박 나무 그늘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녀를 필두로 마을을 옥죄던 기운이 단번에 사라지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조용해진 마을. 다행히 아무런 피해도 없었지만, 그 흔적은 결코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이었다.


* * *


“좋아. 부수자.”


그것이 바로 엘프들이 마을을 떠난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을회관에 모인 모두들 앞에서 크로우가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거죠 크로우씨?”


“어째서라니? 봉인을 푸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했던 엘프들이 오히려 반대하는 상황에서, 부수는 거 말고 다른 방도가 있나?”


“그건...”


나름 정론을 내뱉는 크로우의 말에, 알렌은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자, 그럼 동의하는 걸로 알고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처럼 지금 당장 광물을 채굴하러 가보실...”


“안 돼!”


낯선 목소리. 내부에서 들린 말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 모두 귀를 자극하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창 밖에서 낯선 한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 한 엘프 여성이 놀란 얼굴로 입을 막고 있었다.


“핫!”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에 정신을 차린 건지, 뒷걸음질과 함께 자리를 내빼려던 그녀였지만


“어딜!”


크로우가 누구보다 잽싼 움직임으로 그 엘프 여성의 팔목을 우악스럽게 붙잡았다. 그리고


“으랏차!”


콰앙!


한 차례 기합과 함께 그야말로 내팽개치기라도 하듯, 온 힘을 다해 엘프 여성을 탁자 위로 패대기를 쳤다.


“후우-”


“나이스 샷입니다 크로우님.”


“그렇지 발러?”


“뭘 뿌듯하다는 듯이 만담을 주고받고 있습니까! 여자를 이렇게 내팽개치는 사람이 어딨어요!”


“남녀평등! 남녀평등 모르냐 다니엘? 그리고 창 밖에서 우리의 말을 엿듣고 있었다는 건 첩자라는 뜻이잖아 첩자.”


“......”


“자, 그럼 어디 심문을 시작해 볼...”


“거기까지 해 주시죠.”


그런 크로우를 막아서는 알렌과 한나.


“..그 쪽도 이제 와서 도덕심이라던가 그런 걸 운운하며 막을 생각이야? 응?”


“아니 그게 아니라...”


지극히 차분한 알렌의 손짓에 따라 미심쩍은 얼굴로 시선을 옮긴 크로우. 그런 그가 목격한 건


“.....”


강렬한 충격으로 인해 정신을 잃은 채 널브러져 있는 엘프 여성의 모습이었다.


“......”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크로우는, 말없이 한 손으로는 허리를 짚고, 한 손으로는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감쌀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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