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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883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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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2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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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0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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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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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23쪽

갑(甲)의 계산법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90화



태양과 나비효과 제작진 측의 분쟁은 원만하게 끝이 나지 않았고, 결국 두 진영은 사태 해결을 위해 비밀리에 자리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태양 측에서는 소속사 사장과 태양그룹 간부가, 나비효과 측에서는 감독과 방송국 팀장이 나섰으며.


두 팀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나비효과 – 김태양이 싸지른 거 제대로 사과하고 보상해라. 배우 인생이 끝날지도 모를만한 사건이다. 태양 그룹 이미지도 박살이 날 거다.


참고로 태양 그룹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겠지만 김태양이 애비가 운영하는 회사였다.


누가 봐도 김태양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저쪽도 돌대가리만 있는 건 아니었다.


태양 그룹 – 배우? 그런 거 더 안 시켜도 된다. 태양 그룹의 이미지가 나락가는 건 맞다. 그런데 우리만 나락갈 거 같냐?


머리를 잘 썼다. 대기업 사장 아들이 굳이 배우에 집착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태양의 이미지가 안 좋아지면 우리 드라마에도 타격이 있다는 걸 콕 찝었다.


배째라, 같이 죽자 식의 마인드지만 상당히 효과 있는 작전이다.


감독도, 방송국 팀장도 시청률 1%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었으니까.


태양 그룹 측은 기세를 놓지 않고 압박을 이어갔다.


계속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올 거면 이쪽도 다 생각이 있다고.


주연 배우 없이 드라마 촬영이 잘~도 진행되겠다고.


거기에 어이쿠! 손가락만 까딱하면 스폰서 계약도 끊길지도 모르겠네?


불리한 와중에도 큰 소리를 떵떵 치다니. 이래서 가진 놈들이 깡패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팀장은 흐름을 한 번 끊고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건지 점심시간을 핑계로 타임아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나한테 회의 내용을 들려줄 수 있었던 거고.


8살 꼬마 앞에서 대놓고 말하기는 조금 그런지 내용을 조금씩 뭉개서 말하고는 있지만, 그것만 들어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내 나이가 몇인데, 척하면 척 아니겠나.


그래도 아직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여서 다행이다. 협상의 흐름이 나쁘지 않다.


잘만 하면 쐐기타를 박아 넣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직접 출두해서 녀석들의 면상을 뭉개버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 나는 뭐하고 있냐고? 글쎄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굳이 말하자면 시간을 버리고 있는 거 같은데.


그 때, 감독이 제육쌈밥을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내게 물었다.


“상혁아. 태양이한테 사과는 받았니?”

“아뇨.”


그래. 나는 오늘 아침부터 김태양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사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라며 자리를 만들어주는데 딱히 거절할 건덕지가 없더라고.


그렇다고 녀석이 순순히 고개를 숙이냐? 그럴 리가 없다. 저 녀석도 그냥 아빠가 시키니까 억지로 나온 거겠지.


아이들끼리 모아 두면 알아서 화해를 할 거라는 어른들의 착각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냥 돈이나 가져올 것이지. 캐리어 가득 담긴 돈 정도면 만족할 텐데.


지금 협상의 주된 포인트가 ‘사과를 하느냐, 마느냐’인 만큼, 협상이 잘 끝나면 소속사 차원에서 배상이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개인 차원에서 폭행 합의를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감독에게 일임했다.


엄마에게 정보가 들어가는 걸 최대한 차단하기 위함이다.


들켰다간 배상금이 문제가 아니게 된다. 한동안 그녀의 품에 안겨 경제 활동을 금지 당할 것이 뻔하다.


엄마가 보기에는 내 방식은 거칠고, 위험할 테니까.


그래서 지금은 상황이 흘러가는 걸 지켜보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일이 잘못 돌아간다 싶으면 회의 장소에 쳐 들어가 로우킥 – 원 투 펀치 콤보로 상황을 정리할 생각으로 말이다.


식사를 마친 뒤, 다시 태양이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녀석은 여느 때처럼 표독스럽게 나를 째려보았다.


‘팍씨 눈깔을 뽑아버릴라.’


아마 감시역이 없었다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이들끼리 붙여 놨다간 또 치고 박고 싸울 수 있다고, 양 측에서 한 명씩 감시역을 붙여 놓았다.


나비효과 측에서는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막내 스태프 김일신에게 감시역을 맡겼고.


덕분에 녀석과 별 다른 다툼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후 역시 그런 식으로 진행되려나, 또 김일신과 쎄쎄쎄를 해야 되나 생각하던 찰나, 변화가 일어났다.


김태양의 옆을 지키던 남자가 일신에게 다가와 외출을 권유한 것이다.


“담배나 피고 올까?”

“담배 안 피는 데요.”

“그럼 애들 먹을 간식 좀 같이 사오도록 하지.”


무슨 꿍꿍이인가 일신이 인상을 찌푸렸으나, 호위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을 뿐이다.


“들어봐. 나는 지금 분쟁이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해. 결국 욕심을 부릴수록 양 쪽 다 손해를 보게 되거든. 그러니 빨리 화해를 했으면 하는데... 태양이 이 녀석이 남들 앞이라고 사과를 안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결론만 말하면 경호를 모두 떼고 정말 둘만 있게 남겨 주자는 이야기다.


“미행해서 빠따를 갈기는 꼬마를 어떻게 믿고요?”

“못 믿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이 방엔 그런 흉기 같은 건 없는 걸?”


그 말에 일신이 빠르게 태양의 모습을 훑었다. 가슴팍에 꽂힌 만년필을 제외하고는 무기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일신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역시 사건이 빨리 해결되길 바라는 사람이었으니까.


정말 둘만 남김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보다 좋을 게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맞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와 눈이 맞았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웃어보였다.


“괜찮아요. 별 일 없을 거에요.”


안 그래도 가만히 있기 따분하던 차다. 저쪽이 움직여 준다는데 굳이 거부할 필요가 있을까?


내 말에 일신은 걱정을 하면서도 밖으로 나갔다.


이제 방에는 나와 태양 둘 뿐이다. 호위의 말대로 둘만 남자 태양이 입을 열었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내가 맞은 건 사실이란 말이야.”

“그동안 아빠한테 덜 혼나셨나 보네요.”

“뭐 이 새ㄲ... 크흠. 혼날 일이 뭐가 있어. 나는 피해자라니까. 왜. 꼽냐? 꼬워? 그럼 그 때처럼 한 번 때려보지 그래?”


원하는 대로 뺨을 후리려다가 멈추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평소의 태양이였다면 ‘뭘 봐 X발 X끼야.’ 정도로 이니시에이팅을 끊었을 텐데 너무 점잖았다. 그동안 개과천선이라도 한 걸까?


잠시 태양의 눈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여전히 싸가지가 없는 눈이었다.


‘그럴 리가 없지.’


고개를 저어 일말의 가능성을 털어냈다. 그럼 뭘까.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만 같다.


아! 생각났다. 현중일보의 김우식 기자!


한창 공부빵을 팔았을 때, 시비가 걸린 적 있다. 악질 기사를 써 놓고 녹음기로 함정을 파 놓았지 뭔가.


그 기억을 떠올리자, 태양의 행동이 한 없이 어색해보였다.


평소와 달리 점잖은 어조, 내가 때리기를 바라는 눈치.


정점에 이른 두뇌는 이를 토대로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


태양 그룹이 태양에게 결백을 입증할 기회를 준 거라면?


상대는 우쭈쭈 키운 대기업 사장 아들이다. 억울하다고 난리를 피우니 한 번 정도는 기회를 줄법도 하다.


돈은 많을 테니, 촬영과 녹음이 되는 소형 카메라를 구해주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테고.


만약 내가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을 찍기라도 한다면 태양 그룹은 큰 무기를 손에 얻게 된다. 협상의 여부와 상관없이 판을 뒤집을 수 있는 무기를.


다만 녀석들의 비열한 계획에 문제가 하나 있다면...


“바로 김태양의 머저리 같은 연기 실력이겠지.”

“뭐? 머저리? X발 말 다했어?”


저 봐라. 살짝 건드리자마자 피해자 코스프레 연기가 풀리지 않았나.


진짜 이 자식 배우는 맞나 싶다. 배우라는 녀석이 이렇게 연기를 그렇게 못해서야.


한별에게 연기 수업을 들었던 만큼, 태양이 얼마나 연기를 못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사실인 듯하다.


태양이 날뛰는 틈을 타, 녀석의 셔츠에 달린 만년필을 빠르게 회수했다.


“야! 그건 안 돼! 돌려줘!”

“돼!”


태양이 다급하게 달려들었으나 내 행동이 훨씬 빨랐다.


동시에 반격의 DNA를 활성화하여 만년필을 으스러트렸다.


“아! ... 망했다.”


녀석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고, 퓨즈가 뽑힌 전자 기구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매우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모양새다.


역시 이 만년필이 소형 카메라가 맞는 듯하다.


OTL 포즈를 하고 있는 태양에게 다가가 심심치 않은 위로를 보냈다.


“죄송해요. 제가 선단 공포증이 있어서. 만년필을 없애 버리고 싶었어요. 이해해 주실 거죠?”

“야! 이... 미친 새끼야...”


설마 선단 공포증 때문에 가문의 계획을 말아먹을 거라곤 생각을 못한 건지, 어이가 털린 모습이다.


물론 선단 공포증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티배깅을 한 스푼 얹어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제가 부러트린 거니까 제가 배상할 게요. 이거 모델 이름 좀 알려주세요. 가격 배려한답시고 촬영 기능 없는 거 알려주지는 마시고.”


그러자 사색이 된 태양의 표정에 경악이 덧씌워졌다.


“어떻게 알았지...? 너! 누구한테 들은 거야!”


누구한테 들은 건 아니고, 그냥 간단한 추측이다.


만년필이 이 장소에서 가장 이질적인 물건이었을 뿐.


“형 공부 안 하잖아요. 만년필을 왜 들고 다니겠어요?”


태양의 멍청함. 그것이 가장 큰 증거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입이 떡 벌어졌다. 멍청하다는 이유로 카메라를 들킬 줄은 생각도 못했겠지.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태양의 몸을 조금 더 뒤지기로 했다.


“뭐! 뭐하는 거야!”

“에이. 소형 카메라가 하나인지 둘인지 어떻게 알아요. 이건가?”


그의 셔츠 주머니에서 작은 시계가 나왔다. 지체 없이 바닥에 던져 부숴버렸다


“야! 그건 아니야! 그건 아빠가 주신 시계라고!”

“그래요? 청구하세요. 어? 이건 뭐지?”


바지 주머니에서는 웬 기다란 종이가 하나 들어 있었다.


거기에는 ‘영화표 미션 임파서블 2’라고 적혀져 있었지만 나는 거침없이 찢어버렸다.


00년대의 과학기술을 우습게보면 안 된다. 종이로 겉면을 이룬 초소형 카메라인지 어떻게 구분한단 말인가.


“미친놈아! 사라 씨랑 보러 갈 거였단 말이야!”

“청구해요.”


음... 이번엔 단순한 영화 티켓이었던 것 같다. 그보다 사라라니. 어린 놈이 생각보다 글로벌하게 놀고 있다.


영화표를 찢는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한동안 태양이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다 부쉈다.


때론 능청스럽게, 때론 귀머거리와 같이.


근육에 깔린 태양이 바둥거리며 안 된다고 말림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족족 반으로 접거나 찢어버렸다.


즐겁다. 뒤통수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이제야 조금 해소가 되는 것 같다.


역시 나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움직이는 게 적성에 맞는 모양이다.


이제 태양에게 남은 것은 500원짜리 동전 1개 뿐이었다.


“개새끼. 그것도 접어 봐 씨X로마!”


악기가 잔뜩 찬 태양이 울부짖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동전도 접어 보라는 소리다.


창밖을 확인했다. 두 경호원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관객의 성원에 응답해주기로 했다.


엄지와 중지 사이에 500원을 끼우고 태양의 눈앞에 들이 밀었다.


“잘 봐.”


내가 힘을 줌에 따라, 500원 짜리에 그려진 학이 서서히 날개를 접기 시작했다.


“X발...”


관객의 영혼이 잠시 가출한 것 같았지만 쇼는 끝나지 않았고, 이내 동전의 각도가 180도에서 반절로 줄어들었다.


이왕 구부린 거 0도까지 만들고 싶었지만 아직 그 정도 수준은 안 되는 것 같고.


손가락 근육마저 발달한 나라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조금 아쉽다.


여전히 얼이 빠진 태양을 향해 소리쳤다.


“와!”

“히에에엑!”

“태양 씨. 당신도 이렇게 접히고 싶어?”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허리가 반절로 접혀 평생 90도 각도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것 같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지만 의외로 나쁘지 않다. 평생 90도 인사를 달고 살아야 하니, 자연스럽게 예의범절을 갖추게 되겠지.


망나니인 태양에게는 그것만한 처벌이 없다.


그러나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동시에 표독스럽게 눈깔을 떴다. 악과 깡을 긁어모아 최후의 발악을 하는 모양새다.


“아직 안 끝났어! 협상만 끝나면 너는 죽은 줄 알아!”

“왜 그쪽이 이길 거라고 자신하는 거지?”

“태양 그룹이 광고를 넣어주는 한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했거든! 그리고 반말하지 마!”


덜덜 떨면서도 가슴을 내미는 걸 보면 태양 그룹에 대해 꽤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 태양 그룹은 정보 수집이 조금 늦는 모양이다. 그래서 녀석에게 우리가 준비한 소식을 들려주기로 했다.


“바꾼대.”

“뭐?”

“스폰서 바꿀 거라고 등신아. 우리 드라마 인기가 얼마나 좋은데, 광고 넣겠다는 회사가 하나도 없겠냐?”


찰떡같이 믿고 있던 사실이 부정 당하자 태양이 고개를 흔들었다.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아니 믿고 싶지 않다는 듯.


“아니야. 아빠가 분명 우악금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에 그럴 일 없다고 그랬어.”

“우악금? 아 위약금. 야. 그건 약속을 취소한 사람이 내는 거고. 광고 빼겠다고 협박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 안 나?”


원래대로였다면 ‘광고’는 태양의 가장 큰 무기가 되었어야 했다.


이미 묶인 계약이기 때문에 나비효과 측에서 일방적으로 해지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을 받았으니 태양 그룹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좋았을 터. 나비효과 입장에서는 족쇄가 달린 것과 다름이 없었다.


만약 태양이 사고를 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태양 그룹이 기싸움을 할 일이 없었더라면 그런 상황이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똥쟁이 태양은 이곳저곳 뿌직뿌직 싸질러 놓은 게 많았고.


태양 그룹은 제작진과 갈등을 겪으면서 광고를 들먹일 수밖에 없었다. 주도권을 가져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을 테니까.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나름의 근거는 있었을 것이다.


상대방이 태양 그룹과 척을 질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직 시간상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겠지.


설마 드라마가 잘 나가고 있는데, 메인 스폰서를 갈아 치울 준비 하고 있는 제작진이 어디 있겠냐면서.


게다가 주연 배우와 깊은 관련이 있는 회사의 광고다.


그 광고를 쳐낸다는 것은 주연 배우 역시 쳐내겠다는 것과 다른 바 없다.


이는 리스크가 너무 큰 일이고, 이미 순항하고 있는 드라마가 할 만한 선택이 아니다.


그러니 태양 그룹도 배짱 장사를 할 수 있었겠지.


그럼에도 나비효과는 배우와 스폰서를 모두 교체한다는 선택을 내렸다.


태양이 싫었던 것도 있겠지만, 더 나은 대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크흠. 내 입으로 말하기도 조금 그렇지만 훌륭하고 뛰어난 이 몸의 존재가 그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아마 지금 쯤 회의 장소에서도 스폰서교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시종일관 오만한 자세로 나오던 태양 그룹 사람들에겐 말 그대로 벼락과 같은 소식.


만약 나비효과가 정말 대안을 구했다면, 태양 그룹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고 만다.


할 수 있는 게 자폭 공격 밖에 없는데, 상대가 튼튼한 방패를 구해왔으니.


이대로 김태양의 악행을 폭로한다고 해봤자 자기 회사의 평판만 떨어트리는 개죽음이 될 것이다.


지금쯤 그들의 표정이 꽤나 볼만하지 않을까?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주연이 없이는 촬영도 할 수 없다고 그랬다고...”


아직도 현실부정을 하고 있는 태양을 향해 핸드폰을 내밀었다.


버튼을 클릭하자 작가와의 대화가 담긴 음성이 흘러나왔다.


‘허락 받았어. 태양이 비중을 줄여도 된대.’

‘그러면...’

‘그래. 나비효과는 주인공을 바꿀 거야.’


OTL 자세로 고개만 빼꼼 내밀던 태양이 털썩 무너졌다.


아무리 여자를 꼬시기 위해 따낸 주연이라고 하더라도 나름의 자부심은 있던 모양. 충격이 컸는지 Oㅡㅡ 자세로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입이 간지러웠다. 정말 다행히도 아직 아무도 돌아올 기미가 안 보였기에 하고 싶은 말을 대 내뱉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입 근처에 확성기를 만들었다.


“야! 우냐! 엌크크큭. 울어?”


입이 절로 씰룩인다.


맨날 우효~ 하면서 지 꼴리는 대로 살던 난봉꾼의 심신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는 사실은 꽤나 유쾌했다.


짜식. 아마 살면서 자신이 당하는 쪽이 될 줄은 몰랐을 거다.


이런 녀석들은 기회가 있을 때 밟아둬야 한다.


가만있어 보자... 이 다음에 어떻게 하는 거더라?


잠시 괴롭힘 당하던 회귀 이전의 기억을 회상했다.


맞다. 가만히 있어도 다가와 옆구리를 찔러댔지.


나는 곧바로 태양에게 다가가 녀석의 옆구리를 찔렀다.


민감한 부위인 만큼, 건드리기만 하면 아무 의욕이 없는 사람도 움찔거릴 수밖에 없다.


“... 하지 말라고.”

“해지 맬래고~”


일부러 아래턱을 툭 내밀고 눈을 가늘게 떠서 상대에게 정신적 데미지를 입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점점 움츠러드는 태양의 머리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 녀석의 눈동자 깊이 공포와 절망이 각인되어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놔줬겠지만, 나는 미소를 지으며 끝끝내 뱉고 싶던 대사를 내뱉었다.


“선수 교체야 이 새X야.”


태양은 심리적 충격으로 거세라도 당한 건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호위 역을 맡은 두 사람도 돌아왔고, 머지않아 협상에 임했던 사람들 역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결판이 난 모양이다.


감독이 말없이 엄지를 척 치켜드는 걸 보아 나비효과 측의 압승으로 끝난 듯하다.


반면 태양 그룹 사람들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있었니?”


태양은 입을 열려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심지가 부러진 모습이다.


여기서 나만 싱글벙글 입을 열었다간 의심을 받을 것 같아 나 역시 고개만 저었다.


웃음을 참는 게 쉽지 않았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는 상황. 순간 태양 그룹 임원의 눈에 생기가 도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만난 것 같은 모습이다. 일발역전의 기회가 남았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어쩌면 이곳에 오는 내내 차라리 김태양이 처맞았기를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아직 반격의 기회가 있을 테니까.


태양 그룹 임원이 슬그머니 다가가 태양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당연하게도 태양은 고개를 저었고.


“이런 X발 도움도 안 되는 새끼야!”


분노를 참지 못한 임원이 태양에게 싸다구를 날렸다.


에휴. 남들 앞에서 폭행을 서슴지 않는 걸 보니 그쪽 집안 돌아가는 꼬라지도 알만 하다.


잠깐의 훈계가 끝난 후, 태양이 어기적거리며 걸어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알았어요. 그만 해요.”


에휴. 잘 사는 놈들 사과 한 번 받기 더럽게 힘들다. 웹소설로 치면 한 4편 분량정도 나오지 않았을까.


인사를 마친 태양 그룹 사람들은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대로 나가려는 모양새다.


나는 걷기의 DNA를 활성화시켜 그들을 앞질러, 나가는 문을 틀어막았다.


임원이 고깝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과는 끝나지 않았나요?”

“사과는 끝났죠. 사과는. 후속조치는 아직 안 끝난 거 같은데요.”


후속조치. 8살 꼬마가 내뱉기에는 제법 어려운 말이다.


임원이 감독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이것도 니가 시킨 거냐고.


감독은 모르는 일이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그 사이 나는 병원에서 뽑아온 진단서를 임원에게 건넸다.


“착각하고 계신가 본데. 저 배트로 머리 맞았어요? 폭행 사주. 범죄인 거 아시죠?”

“...”

“그런데 사과만 하고 퉁치려 그러신 건 아닐 거라 믿어요.”


입은 있지만 말은 내뱉지 못했다. 은근슬쩍 넘어가려던 치부를 들켰으니 부끄러움이 2배가 되리라.


태양 그룹에게는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었다. 고개를 숙일 거면 확실하게 숙여야 하니까.


“정식으로 회사에 피해보상 건에 대해 건의를 하겠습니다. 연락은...”

“저희 소속사를 통해 해주시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지극히 차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는 문을 나섰다.


오늘 겪은 금전적 손해가 장난이 아닐 것이요, 자존심은 이미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내려갔을 것이다.


복도에서 차진 소리가 들렸다. 승리의 하이파이브는 아닐 테니, 아마 누군가가 뺨을 맞는 소리이리라.


안쓰럽지는 않았다. 이 기회에 녀석도 정신을 차리고 건실하게 살기를 바랄뿐이다.


이제 방에는 우리 나비효과 식구들만이 남았다.


감독과 팀장은 지쳐 보였지만 동시에 개운해 보이기도 했다.


앓던 이를 빼버리고 티타늄 이빨을 새로 끼웠으니 시원할 수밖에.


이제 아무런 외압 없이, 그들의 생각 대로 드라마를 이끌어나갈 수 있으리라.


감독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상혁이가 녀석들한테 한 방을 크게 먹였구나. 똑똑한 걸?”

“헤헤. 만식 아저씨가 시킨 대로 말했어요.”

“그래. 아주 잘 했다.”


싸움에서 승리한 뒤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유독 발걸음이 가벼웠다.


팀장과 감독은 그새 새로운 논의를 하고 있었다.


“우리 새로운 스폰서도 만나봐야 해. 메인은 월성으로 잡을 거고. 사이드도 손을 봐야 할 거 같은데.”


가끔 메인 스폰서 측에서 곁다리로 다른 광고들을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 새롭게 개편하면서 아예 판을 새로 짤 생각인 것 같다.


때마침 좋은 생각이 났다. 주연 배우는 광고를 물어다 온다지?


“팀장님! 혹시 광고에 남는 자리 있을까요? 제가 잘 아는 빵집이 있어서요. 아! 그리고 떡집도요!”

“응? 있기야 한데...”

“좋은 조건으로 좀 부탁드립니다. 헤헤. 아! 이것도 만식 아저씨가 가르쳐 줬어요!”


만식 아저씨가 들었다면 무수한 물음표 핑을 찍었을 말이다. 그 아저씨는 내가 협상에 나갔다는 사실도 몰랐을 테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돈 냄새가 찐하게 나는데 내 사람들을 좀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나쁜 놈들에게서 재물을 약탈했으니, 이번엔 우리 팀에게서 보수를 받을 차례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엄마랑 할머니가 기뻐하면 좋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기분 탓인지 발이 아까보다 더 가벼워 진 것 같다.


그렇게 나비효과는 새로운 체제 하에 드라마 촬영을 이어갈 수 있었고, 이전보다 더 큰 성원을 입으며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흥행을 이어갔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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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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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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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대적자 22.09.15 578 10 17쪽
119 빛이 나는 사람 22.09.14 584 7 26쪽
118 천재는 약점을 극복한다 22.09.13 579 11 19쪽
117 합창 22.09.10 622 9 18쪽
116 별에 관한 고찰 22.09.09 621 10 16쪽
115 아빠 새끼를 만나다 22.09.08 662 9 25쪽
114 가족들이 호강하다 +1 22.09.07 629 11 24쪽
113 가족끼리 왜 이래 +1 22.09.06 597 10 18쪽
112 러시안 룰렛 22.09.03 588 10 20쪽
111 혀어어업상 22.09.02 589 9 18쪽
110 오스틴의 연구실 22.09.01 597 8 17쪽
109 공항에서의 기싸움 22.08.31 607 8 17쪽
108 숨바꼭질 22.08.30 616 9 17쪽
107 제왕과 정점 22.08.27 647 9 20쪽
106 정중지와 22.08.26 633 9 18쪽
105 피와 살육, 대환장의 주주총회 22.08.25 673 8 25쪽
104 유성아의 연구실 22.08.24 684 11 21쪽
103 가만히 있어도 22.08.23 713 13 19쪽
102 운이 좋은 날 22.08.20 747 13 19쪽
101 외양간을 고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1 22.08.19 746 11 17쪽
100 돈이 삭제가 된다니 +4 22.08.18 746 9 18쪽
99 투자는 계획적으로 22.08.17 773 10 28쪽
98 돈이 복사가 된다 +1 22.08.16 756 11 18쪽
97 대역전극 +1 22.08.13 724 11 11쪽
96 역전의 서막 +1 22.08.13 716 10 12쪽
95 구설수 22.08.12 733 12 18쪽
94 박상혁 쟁탈전 +1 22.08.11 765 10 20쪽
93 위대한 령도자 박상혁 동지를 맞이하라! 22.08.10 792 13 22쪽
92 지금까지 이런 판매는 없었다. 이것은 팬미팅인가 판매인가. 22.08.09 766 12 20쪽
91 광고를 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2 22.08.07 801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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