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422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09.08 22:00
조회
660
추천
9
글자
25쪽

아빠 새끼를 만나다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15화



오늘은 12월 19일. 샘숭과의 협업 계약을 맺은 뒤, 오픈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덧 눈이 내리는 날씨가 되었다.


‘대한제일 빵집 in 샘숭 백화점’ 프로젝트는 얼마 전에 정식으로 출범했다.


봉식 아저씨는 걱정을 하며 잠을 못 이뤘지만, 그런 걱정을 불식시키듯 빵집은 크게 흥행했다.


요새 막 주가가 상승하고 있는 샘숭이다. 광고에 참여한 이 몸 역시 겁나게 인기 스타였고.


세간의 주목을 모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게임 끝이다. 봉식 아저씨의 빵은 굉장히 맛이 있으니까. 한 입 먹으면 빵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다.


백화점 매장 직원들을 제빵 경력이 있는 사람들로 배치했기 때문에 맛이 떨어지는 일도 없었다.


그 결과 폭발적인 흥행에 성공했다. 입소문이 났으며, 품귀 현상을 일으키고,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백화점 근처의 사람들은 그 유명한 ‘대한제일 빵집’의 빵집의 빵을 먹어보자며 백화점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백화점에 방문하여 빵만을 사들고 나가지는 않았기에 자연스레 샘숭의 매출이 올랐고.


대한제일 빵집의 빵에 감탄한 전국의 빵돌이, 빵순이들은 성지순례를 한다며 서울로 찾아와 1호점과 2호점을 찾기도 했다.


전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와 줄을 서는 가게가 되었으니, 이제는 정말 전국구 빵집이라 봐도 무방하다.


물론 대전의 성X당과는 엎치락뒤치락 하는 관계다.


남쪽의 ‘성심X’과 북쪽의 ‘대한제일’이라며 2강 체제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


그러나 그 유명한 X심당과 비교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가게의 체급을 방증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봉식 아저씨와 진숙 아줌마는 틈이 날 때마다 매장 앞에 나가, 손님들이 다양한 사투리를 사용하며 빵을 즐기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엄마도 빵이 주는 행복함을 전파할 수 있다며 기뻐하셨고.


여러모로 샘숭과 빵집 모두 윈윈인 프로젝트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래서 오늘도 학교를 마치고 빵집에서 일을 돕고 있던 차에, 제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혁아. 지금 만나볼 수 있을까?”

“엥? 저 바쁜데요?”


남들이 들으면 9살 꼬마가 대기업 사장보다 바쁠 일이 뭐가 있겠냐고 하겠지만.


원래 바쁜 건 상대적인 개념이니까. 회사에 가기 귀찮으면 바쁜 거지 뭐.


이제는 제이와의 관계와도 익숙해 졌기에 대충 전화를 끊고 모른 척을 시전하려 했지만, 심각한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네 아빠와 관련된 문제란다.”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형체 없는 무언가가 나를 꽉 붙잡기라도 한 것처럼.


아빠라는 개념을 잊고 산지가 거의 20년 가까이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와서야 만나자고 하면... 솔직히 말해서 별로 감흥이 없다.


주머니를 뒤졌는데 예전에 버렸어야 할 쓰레기를 발견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었다.


“저 아빠 없는데요.”

“... 생물학적 아빠는 있을 거 아니니.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저 알에서 태어났어요. 박혁거세 아시죠?”


나름 잘 둘러댄 것 같은데 제이는 납득하지 않았다.


같은 박씨에 비범한 재능이면 21세기의 박혁거세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들은 바로는 아무 연락 없으면 본점에 직접 찾아갈 예정이라고 한다. 본점에 없으면 2호점으로도 가겠지.”


X발. 갑자기 왜 나타나 귀찮게 하는 걸까. 열이 뻗쳐 머리를 벅벅 긁었다.


손님들과 즐겁게 이야기 하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지금이야 티 없는 미소를 짓고 계시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때때로 수심어린 표정을 지으셨던 분이다.


그런데 그런 분한테 또 걱정거리를 드려야 한다니.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피할 수 없다니 부딪힐 수밖에. 일단 제이를 만나봐야 할 것 같다.


“지금 갈게요.”

“그래. 준비하고 있으마.”


엄마에게는 친구랑 약속이 잡혔다고 가게를 나선 후, 샘숭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네. 반가워요. 고생이 많습니다.”


샘숭 전자 로비로 들어가자 직원들이 아는 체를 해왔다.


아직 정식 직원도 아니고, 일개 꼬맹이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나를 대우해주고 있다.


드라마에서의 인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회사에 방문할 때마다 흔들리던 회사가 안정되고,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서는 어느새 성공의 요정이라며 암암리에 소문이 퍼져 있었다.


나는 직원들을 독려한 뒤, 사장실로 향했다. 제이와 비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의 경과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래. 일주일 전, 양평 백화점에서 한 남자가 난동을 피웠다는 보고가 들어왔단다. 빵집에 걸려있는 여자가 자신의 아내라면서 말이지. 처음에는 우리도 무시했다만... 남자는 계속해서 고객센터를 찾았고 그 때마다 증거를 제시했다는구나.”


제이는 그 말과 함께 글자로 한 면을 가득 메운 종이를 내밀었다.


“네 어머니 이은주 점장님의 신상을 알고 있더라. 혹시나 싶어 교차검증을 해보았는데 모두 사실로 드러났고. 이 사람이 정확하게 네 아버지인지 아닌지는 모른다만, 너희 어머니와 연관이 있다는 건 확실해. 그래서 너를 부른 거다.”


혹시나 아는 게 있는지, 만날 것인지 여부를 묻기 위해서.


제이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빠와의 재회라며 멋대로 자리를 주선했을 텐데, 그는 그저 내게 선택지를 내밀 뿐이다.


내게는 그 편이 달가웠다.


내가 뱃속에 있을 때 도망간 사람이기에, 상식적으로 아빠에 대해 알 리가 없지만.


나는 녀석을 알고 있다.


회귀 이전, 어머니 지갑에 박힌 사진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내 아버지구나. 나는 애비 없는 고아새끼가 아니구나. 하며 멋대로 친근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사진이 사라져 있더라. 그 뒤로 본 적은 없지만 그 사람의 얼굴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다.


“사진이 있을까요?”

“그래.”


제이가 건네준 사진 속 남자는 내 기억 속 모습보다 조금 늙긴 했지만, 그 사람이 맞았다.


“맞네요. 이 사람.”

“만날 거니? 자리를 잡을까?”

“잠시만요.”


빈말로도 좋은 감정은 아니다. 물론 호기심이야 있지만, 원망스러운 감정이 더 크다.


다만 쉽사리 선택을 못하는 건 어머니 때문이다.


그녀가 모르고 넘어가는 편이 좋을 일이었지만, 그걸 내가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건 기만이니까.


승낙도 거부도 그녀가 할 문제다.


“끄으응. 엄마한테 제안은 해 볼게요.”

“그래.”

“그런데 그 전에! 부탁 하나만 드릴 게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잘못한 건 아빠 새끼고, 소란을 일으키는 것도 아빠 새끼다. 굳이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러니 이쪽은 최소한의 준비를 마치고 그저 기다릴 뿐이다.


나는 제이에게 부탁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가 엄마와 할머니를 불렀다.


“뭐니. 어쩐 일로 가족회의야?”

“아빠한테 연락이 왔대요. 만나고 싶다네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두 사람의 얼굴이 못 들을 걸 들은 것 마냥 일그러졌다.


“그 씨ㅂ... 크흠. 자식이 말이냐? 흐음. 어쩐지 그이를 빼고 가족회의를 연다 싶더라니.”


참고로 할아버지는 이 두 사람보다 아빠를 더 싫어한다.


항상 웃는 사람이 화가 나면 무서운 것처럼. 아마 이 사실을 듣는다면 총부터 꺼내지 않았을까.


그나마 이성적인 할머니마저 욕부터 박고 볼 정도니, 우리 가족의 아빠 혐오가 얼마나 심한지를 알 수 있다.


“난 모른다. 지금 봐서 해줄 건 욕 밖에 없고. 은주랑 우리 손주가 결정하렴.”


할머니는 관심 없다는 듯 손을 들고 물러났다.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잘라내는 것, 저것이 어른이 살아가는 방법이었기에.


그러나 엄마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멍하니 천장과 나를 번갈아 보던 엄마는 30분이 지나고서야 결정을 내리셨다.


“한 번 정도는 만나보고도 싶네?”


분명 좋은 감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련은 남았던 모양.


... 아닌가?


아빠라는 작자와 엄마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정확히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음... 이러다가 다시 감정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설마.


양쪽 부모가 다 있는 아이들은 감사할 필요가 있다. 그 애들은 엄마의 연애사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럼 나처럼 기분이 멜랑콜리하지는 않겠지.


어쨌든 엄마가 만나고 싶다니 자리를 주선해야겠다.


제이한테 문자를 남겨 두면 적당한 곳에 예약을 잡아 주리라.


나는 그동안 잡생각을 좀 비워야 할 것 같다.


“상혁아 어디 가려고?”

“잠깐 좀 뛰고 올게요.”


불확실한 일을 계속 생각하고 있어봤자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이럴 땐 몸을 좀 움직이는 편이 좋다.


기왕 나온 거 홍 사범네 도장이라도 갈까?


생각난 김에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지금 가려고 하는데. 계시죠?”

“뭐? 상혁이 네가 어쩐 일이냐? 진짜 오는 거야?”


홍 사범은 평소에는 신경도 안 쓰더니 무슨 바람이 불었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내 대답을 듣고는 조금 차분해졌다.


“샌드백이 필요해서요.”

“... 샌드백이 필요하구나. 어쩐 일로?”


나는 질문으로 대답을 대체했다.


“죽이지 않는 선에서 어딜 때려야 제일 아플까요?”

“... 누구 때리려고? 임마. 네 피지컬로 누구 때리면 그거 범죄야!”


아이. 괜찮다. 사람 좀 팬다고 해서 아기 유기하는 것보다 더 심한 범죄겠는가? 죽이지만 않으면 또이또이다.


“아 됐고. 샌드백 좀 준비해 둬요.”


그대로 킥복싱 도장으로 쳐들어가 보이는 대로 다 두드려 팼다.


전직 일진 짱 광언이 역시 오늘도 참패를 당했고.


킥복싱 계의 거목 홍 사범 역시 불패의 커리어를 마감할 뻔 했다.


그렇게 아드레날린을 뿜어내며 살심殺心을 억누르는 시간을 보냈다.


* * *


“오늘 굉장히 멋진 걸 상혁아?”

“엄마는 언제나처럼 예뻐요.”

“으으. 우리 아들은 천사임이 틀림없어. 난 정말 행복한 엄마야. 흐윽.”


아빠와의 약속 당일. 우리는 아침부터 샘숭 그룹의 미용실에 방문해 단장을 마쳤다.


그 덕에 안 그래도 예쁘신 엄마는 한층 더 미모를 발하고 계셨다. 뭐 나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니 생략하도록 하자.


외모의 DNA를 적용한 내가 잘생긴 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 TV덕에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처음엔 단장을 할 생각이 없었다. 애비 새끼가 뭐 예쁘다고 꽃단장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녀석에게 잘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니까짓 녀석 없어도 우리는 이렇게 행복하고 잘났다고, 증명을 하고 뻐기고 우롱까지 하고 싶었다.


인터넷에서나 보던 ‘전 남친 결혼식에 참석하는 여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멋지게 차려입고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에서 기다렸다.


VVIP만 이용하는 레스토랑이라니까 개인 정보가 유출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잠시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입구에서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아빠라는 사람과는 처음 만난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운명적이지는 않았지만 심장이 둥둥 울리며 쉽게 진정하지 않았다.


이 지구의 인류는 70억 명 정도라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 나와 피가 섞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야말로 한 줌의 모래와도 같이 몇 안 될 것이다. 그런 특별한 존재가 가족이다.


선한 인상의 남성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왔다.


“상혁아! 은주야! 정말... 오랜만이다. 보고 싶었어.”


감정이 벅찬 건지 두 팔을 크게 벌렸던 그는, 우리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회수했다.


“하하. 나야 TV에서 모습을 봤다지만 너는 실제로 처음 보는 거겠구나. 네 아빠란다.”

“안녕하세요.”

“참 어른스럽구나. 그러니까 드라마도 찍고 그런 거겠지. 처음 네 존재를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아빠는 나와의 인사를 마친 후, 엄마에게 시선을 던졌다.


“은주 너는 옛날보다 예뻐진 것 같다?”

“찬우 너는 더 늙었고.”

“하하. 뭐 그렇지. 고생 좀 했거든. 자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밥이나 먹을까?”


찬우는 원래 입담이 좋은 남자인 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도했다.


“양평으로 내려가고 나서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하루 한 끼나 먹었으면 성공했다고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


음. 이 집 요리를 좀 잘 하는 것 같다. 오리구이가 굉장히 맛이 안정적이다.


찬우가 민망한 표정을 지었기에 예의상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정말 운명이 아닐까 싶더라고. 내가 준비가 되자마자 은주 너와 만날 수 있을 줄은 몰랐어.”

“상혁아 물은 마셔가면서 먹어야지.”

“넹.”


엄마는 첫 만남 이후로 입을 열지 않으셨다. 찬우가 하는 말을 묵묵히 들으며 나를 챙겨줄 뿐이다.


의도적으로 무시를 당하는 걸 찬우도 알고 있을 테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어떻게 지냈니?”

“힘들었지.”


상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가 말을 내뱉었다.


생각할 가치가 없다는 듯,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내뱉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물꼬를 튼 엄마의 말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집에는 의절을 당해. 의지할 사람은 없어. 통장 잔고는 갈수록 떨어지고. ... 세상에 홀로 남은 기분이었지. 지금이야 남는 게 돈이지만.”

“미안...”

“사과하지 마. 사과 받고 싶지 않으니까. 필요 없어.”


엄마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만약 그 선을 넘는다면 당장이라도 베어버릴 기세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건 딱 두 가지 때문이야. 하나는 네 쓰레기 같은 행동 덕분에 상혁이라는 소중한 보물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내 지금의 삶과 행복은 모두 상혁이에게 받은 거거든.”


장난으로 난생이라고 말을 했지만, 엄마 혼자서 나를 잉태할 수는 없다. 유전자를 제공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엄마는 그 부분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진지했다. 설령 시간을 돌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날의 선택을 바꾸지 않을 것처럼.


그 모진 고통과 힘든 시간을 기꺼이 겪어서라도 나를 다시 만나겠다는 것처럼.


그 기백에 찬우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럼 두 번째는?”

“상혁이에게 아빠가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내 욕심 때문에 그 경험을 빼앗을 수는 없으니까.”


이심전심이다. 내가 엄마를 생각했듯, 엄마도 나를 배려하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마주보고 미소를 지었다.


쿵!


눈치를 살피던 찬우가 대뜸 대가리를 박았다.


“미안해. 그 날 떠난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내 잘못이야. 내가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게 무서웠어. 이제야 먹고 살만 하니 두 사람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찾으려 했어.”

“...”

“그리고 이야기하고 싶었어. 너희는 어떻게 지냈는지. 용서받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어.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만나서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응? 아빠로써. 내게 기회를 줘.”


그의 목소리에 물기가 서렸다. 절절한 울부짖음에 엄마는 지긋이 나를 보았다. 나에게 선택을 맡기겠다는 뜻이다.


울컥했다. 찬우의 말은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아비가 없다고 괴롭힘을 당하고 무시당할 때, 현실을 도피하며 그런 상상을 했다.


멋지게 차려입은 아빠가 나타나 내게 미안하다고, 이제부터는 같이 지내자고 말하는 상상을.


그럼 내가 맞고 다니지 않아도 될 텐데. 엄마가 반찬 가게에서 노예처럼 부림을 당하지 않아도 될 텐데.


이제는 희미해졌다 생각했는데, 가슴 깊이 박혔던 탓에 조금만 건드려도 감정을 진탕 뒤흔든다.


그래서 내 대답을 정할 수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찬우에게 메인 목으로 대답을 들려주었다.


“거짓말하지 마.”


아무리 애절하게 말하고, 머리를 박으며 매달리는데도 저 말이 거짓말이라는 점이 참 슬펐다.


자리를 잡으면 우리를 찾으려 했었다고? 대충 그럴듯한 말을 지껄이면 진위를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거겠지.


그런데 놈은 알까? 녀석이 자리를 잡고, 나이를 먹어도 나를 찾지 않은 세계선이 있다는 걸.


그 때는 내가 아역배우가 아니지 않았냐는 핑계도 소용없다. 당시의 엄마는 돈이 없었기에, 처음 찬우와 살았던 단칸방에서 오랜 기간 살았거든.


마음만 먹었다면 우릴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거리낌 없이 녀석을 노려볼 수 있다. 날 것의 감정을 부딪칠 수 있다.


“거짓말이 아니야! 정말 찾고 있었다고.”


탐욕을 위해 거짓을 말하는 쓰레기에게.


“지랄.”


이라 욕을 내뱉을 수 있었다.


욕을 들은 찬우는 격분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빠한테! 싫어도 네 피에는 내 유전자가 흐르고 있어. 이렇게 성공한 것도 다 나의 영향을 받은 거라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나는 이를 드러내며 경고했다.


“내가 이 자리까지 오는 데에 당신의 DNA는 한 톨도 쓰이지 않았어.”


아니라면 회귀 이전에 비루한 삶을 살지 않았겠지.


내가 성공을 이룬 것은 순전히 정점의 DNA 덕분이다. 엄마가 잘 키워주신 덕분이기도 하고.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엄마 역시 뒤따랐다.


“잠깐만! 상혁아! 은주야!”


찬우가 다급하게 붙잡으려 했으나, 시도가 무위로 돌아갔다.


어느새 엄마가 나를 감싸며 품속에서 칼을 꺼냈기 때문이다.


“칼? 네가 그러니까 아들이 저 나이에 욕을 하고 지랄이잖아!”

“더 이상 오면 죽어.”


어쩌면 엄마는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레스토랑의 직원들이 달려오고 있으니 실제로 사용할 일은 없겠지만, 그 칼은 엄마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더 이상 무기력한 여자가 아니라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칼을 들고 피를 볼 거라고.


그 기백에 찬우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머지않아 직원에 의해 제압을 당했다.


레스토랑을 예약한 VVIP가 우리였으니 갑자기 분쟁이 일어나도 우리 편을 드는 것이다.


엄마와 나는 미련 없이 가게를 나서 집으로 향했다.


“참. 별로네요. 다시 볼 일은 없을 거 같아요.”

“맞아. 오늘 이렇게 끊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찬우가 직원에게 제압을 당한 채 무어라 소리쳤으나, 우리는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언젠가 그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 * *


날이 어둑해졌을 즈음 한 꼬맹이가 집을 나섰다.


샘숭에서 부른다는 이유 때문이다. 어머니는 걱정을 하셨지만 꼬마가 갑자기 나가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몸조심하라는 당부를 남길 뿐이었다.


꼬마는 집 앞에 대기하고 있던 검정 차량에 탑승했다. 그리고는 서울의 외곽, 버려진 공사장으로 향했다.


늘 가던 샘숭 전자의 건물은 아니지만, 어머니께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가는 곳 또한 샘숭의 연락을 받고 이동하는 것이었으니까.


9살 꼬마 상혁은 찬우와의 만남 이전 제이에게 부탁을 하나 했었다.


‘뒷조사를 해달라고?’

‘네. 이 사람이 뭘 하려는 건지 알아야겠어요.’


버릴 때는 언제고, 부자가 되었다니 만나자고 한다. 누가 봐도 속보이는 행동 아닌가.


그 때문에 진의를 파악하고자 했다. 요즘 시대는 돈만 내면 사람의 진실도 판별을 해주었으니까.


제이는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경호 팀에게 부탁해 두마.’

‘넵. 감사합니다.’


이런 건 보통 흥신소가 하지만, 샘숭의 경호 팀은 다재다능했다.


얼마 걸리지 않아 찬우의 정보를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쓸어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이름을 걸고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시작 이래로 계속해서 우하향을 그리며 꼬라박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빚도 꽤나 늘어, 같이 지내던 내연녀에게 버림을 받기까지 했지만. 꼴에 사장이라면 사장인 셈이다.


그래서 어떻게 돈을 융통하던 중, 엄마를 발견한 것이다. 내가 인기 스타라는 것도 이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와 관계를 수복하여 빚을 때우려 했다는 게 사건의 전말이다.


우리가 바보 등신은 아니기에, 일부러 만남에는 깔끔하게 차려 입고 왔겠지. 아쉬운 소리도 안 하고.


그러다 관계가 깊어지면 슬쩍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거절할 수 없도록.


생각할수록 얼척이 없는 쓰레기 새끼였다. 그러니까 지 피가 섞인 아이도 거리낌 없이 버린 게 아닐까?


사실 그럴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미수로 그쳤으니 굳이 다시 얼굴을 볼 생각도 없었고.


그런데 찬우가 계획이 실패하자 짱구를 다르게 굴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된 거, 인기 스타 박상혁이 애비 없는 새끼라는 정보를 신문사에 퍼트려 돈이라도 뜯어야겠다면서.


그게 아니면 어머니와 관계를 가져 아이를 하나 더 낳게 해야겠다면서. 그럼 빼도박도 못할 거라고.


그 때 녀석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경호 팀에게 임무를 부여했고.


그 결과 아빠 새끼와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레스토랑이 아니라 허름한 폐공장이고, 그의 손발이 묶여 있다는 게 차이점이겠지만.


폐공장에 들어가자마자 경호 팀들이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반갑군.”

“네. 저도 반가워요.”


찬우는 재갈이 물린 상태에서 고함을 꽥꽥 지르고 있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떻게 할래. 직접 보는 건 아무래도 좀 꺼림칙하지 않겠어?”

“아뇨. 제가 할 게요. 죽지 않는 선에서 사람을 패는 법을 얼마 전에 배웠거든요.”


내가 주먹을 쉭쉭 뿌리자 경호 팀 부팀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맞다. 너 총으로 갱단 간부 협박하던 녀석이었지. 그래. 네가 해. 그 대신 빨리 끝내고 그 때 못한 한 잔 하러 가자.”

“그래요. 얼마 안 걸릴 거에요.”


일정을 논의한 후, 찬우에게 향했다. 재갈을 풀자 둑이 터지듯 말이 쏟아졌다.


“이거 불법인 거 알지! 남도 아니고! 아빠가 아들 덕 좀 보자는데! 왜 그러는 거냐!”

“맞죠. 불법은 아니죠. 그런데 때로는 멀리 있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이 있더라구요.”


반격의 DNA를 활성화시킨 뒤, 찬우의 배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생각보다 묵직한 주먹에 찬우는 침과 눈물을 토해냈다.


“크흑. 이... 패륜아 새끼야.”


패륜아. 나를 버린 사람이 이제 와서 아빠를 자처하는가?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나타나 아빠라고 주장하는데. 그를 때리면 패륜아가 되는 것인가?


X발. 그런 거면 그냥 패륜아 할란다. 그쪽은 개새끼 하시고.


그러니 얌전히 죗값을 치루길 바란다.


그의 재갈을 다시 물렸다. 미리 대비할 수 없도록 눈에도 천을 씌웠다.


언제, 어디로 주먹이 날아올지 오직 청각만을 의존해야 하는 상황.


파르르 떠는 찬우를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러게 조금만 일찍 오시지. 한 30년 정도만.”


찬우는 그날 자신의 죗값을 모두 치루었다.


그러나 그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의 태양이 떴음에도, 감히 보복을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제 더 이상 그와 상혁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기에.


* * *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가 따스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었다.


“일은 잘 끝났니?”

“네. 엄마.”


도도도 걸어가 엄마의 품안에 안겼다. 생각보다 심력 소모가 컸던 것 같다.


“어머. 상혁이가 어쩐 일이지?”


엄마는 당황하면서도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아들이 안기는 게 그렇게 좋을까.


엄마도 아직 젊은데, 엄마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물었다.


“엄마는 재혼하실 생각 없어요?”

“글쎄 없는데 왜?”

“엄마가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서요.”


그러자 나를 안는 힘이 조금 더 강해졌다.


“상혁아. 엄마는 지금도 행복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음.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상혁이보다 멋진 남자가 나타나면 재혼을 생각해보지 뭐.”


음. 아무래도 엄마는 재혼 생각이 없으신 것 같다. 뭐 본인의 선택이니까 존중해드려야지.


그 대신 내가 더 노력하는 수밖에. 애비의 몫까지. 아니 그 이상으로.


세상 모든 명예와 영광을 어머니에게 드리리라. 삶이 끝나는 날까지 괴로운 순간이 없게 하리라. 누가 보아도 부러울 수밖에 없는 화려한 삶을 살리라.


이전에 힘들었던 몫까지. 행복하게. 우리는 두 사람이지만 완벽한 가족이니까.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추석 연휴네요. 독자님들 모두 풍성하고 행복한 한가위 되시기 바랍니다!


추천과 선호작, 댓글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0 대적자 22.09.15 576 10 17쪽
119 빛이 나는 사람 22.09.14 582 7 26쪽
118 천재는 약점을 극복한다 22.09.13 578 11 19쪽
117 합창 22.09.10 620 9 18쪽
116 별에 관한 고찰 22.09.09 619 10 16쪽
» 아빠 새끼를 만나다 22.09.08 661 9 25쪽
114 가족들이 호강하다 +1 22.09.07 626 11 24쪽
113 가족끼리 왜 이래 +1 22.09.06 596 10 18쪽
112 러시안 룰렛 22.09.03 585 10 20쪽
111 혀어어업상 22.09.02 587 9 18쪽
110 오스틴의 연구실 22.09.01 595 8 17쪽
109 공항에서의 기싸움 22.08.31 605 8 17쪽
108 숨바꼭질 22.08.30 614 9 17쪽
107 제왕과 정점 22.08.27 644 9 20쪽
106 정중지와 22.08.26 630 9 18쪽
105 피와 살육, 대환장의 주주총회 22.08.25 671 8 25쪽
104 유성아의 연구실 22.08.24 682 11 21쪽
103 가만히 있어도 22.08.23 711 13 19쪽
102 운이 좋은 날 22.08.20 745 13 19쪽
101 외양간을 고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1 22.08.19 745 11 17쪽
100 돈이 삭제가 된다니 +4 22.08.18 744 9 18쪽
99 투자는 계획적으로 22.08.17 771 10 28쪽
98 돈이 복사가 된다 +1 22.08.16 755 11 18쪽
97 대역전극 +1 22.08.13 722 11 11쪽
96 역전의 서막 +1 22.08.13 713 10 12쪽
95 구설수 22.08.12 731 12 18쪽
94 박상혁 쟁탈전 +1 22.08.11 763 10 20쪽
93 위대한 령도자 박상혁 동지를 맞이하라! 22.08.10 788 13 22쪽
92 지금까지 이런 판매는 없었다. 이것은 팬미팅인가 판매인가. 22.08.09 763 12 20쪽
91 광고를 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2 22.08.07 798 1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