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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586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08.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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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2
추천
11
글자
21쪽

유성아의 연구실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04화



인천 범죄조직 소탕은 한동안 큰 화제가 되었다.


인터넷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온갖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유능한 경찰의 출범이라느니, 인천의 새로운 조직이 구시대의 유물을 없앤 거라느니, 힘을 숨기고 살고 있던 히어로의 등장이라느니.


그렇게 떠들썩한 모습을 보면 내가 했음을 밝힐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명예와 관심은 이미 충분했으니. 지금은 잃어버린 돈에 집중할 때였다.


인천에서 한바탕 날뛰고 온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날 아침을 기다렸다.


정확히는 아침 9시. 주식 장이 열리는 시간을.


아니 솔직히 기대를 할 수밖에 없지 않나. 가만히 있어도 범죄조직을 소탕시켜버리는 힘인데.


이미 반토막을 넘어 무릎 부근까지 내려가려고 하는 주식을 빨딱 일어나게 해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을 했건만. 역시 인생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만은 않는 듯하다.


행운의 DNA를 전력으로 개방한 뒤, 방에다가 물을 떠놓고 기도까지 했음에도 극적인 반등은 없었다.


저항력. 두뇌는 행운을 일종의 저항력이라고 했다.


이미 일어난 일에는 효과가 없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긍정. 그러니 내가 추천을 안 한 것.’


이때다 싶어 행운을 까내리는 두뇌. 그럴수록 자신만 추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뭐.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너무 꽁으로 먹으려 들긴 했어.”


범용성이 너무 좋았기에. 효과가 탁월했기에 질러본 것일 뿐. 플랜 A는 엄연히 따로 있었다.


그나저나 슬슬 전화가 올 타이밍이 되었는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핸드폰이 울렸다. 유성아의 전화였다.


그녀는 전화를 받자마자 괴상한 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흐히힛? 변화! 변화가 생겼는데! 이게 하루만에! 어떻게!!”


성아 씨랑 대화하면 언어 능력의 200%를 발휘해야 한다. 공부도 잘하는 사람이 말이야.


이번에도 찰떡같이 알아들은 결과, 별에 변화가 생겼음을 감지한 것 같다.


하루 만에 벌어진 변화치고는 너무도 극적이었기에 놀람을 금치 못하는 중이고.


“알고 있어요.”

“역시 대단해요! 혹시 만날 수 있을까요?”

“곧 촬영이 있어서 불가능하고, 위치 알려주면 끝나고 찾아갈게요.”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앓는 소리가 들렸다. 보지 않아도 안달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게 보인다.


연구자란 원래 저런 생명체다. 탐구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런 부류의.


“최대한 빨리 가 볼 게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꼭. 꼭이에요?”


어차피 나도 볼일이 있었기에 최대한 여건을 봐주며 다독이기로 했다.


시간 약속을 잡기에는 촬영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성아의 연구실로 내가 찾아가기로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흐읏쨔! 그럼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 볼까?”


의욕이 솟구친다. 이런 기분이 얼마만이지.


역시 사람은 땅이 아닌 하늘을 바라볼 때 의욕이 솟구치는 것 같다.


성아를 놀리기는 했지만 나 역시도 살짝 흥분을 했나보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촬영장으로 향했고, 기어코 감독의 눈물을 끄집어냈다.


억지 텐션으로 촬영할 때와는 뽑아내는 연기의 퀄리티가 달랐으니.


합을 맞추던 한별 누나가 미소를 지으며 등짝을 세게 칠 정도였다.


“상혁!!! 고민은 다 해결된 거야?”

“이제 해결할 기미가 보이는 것 같아요.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해요.”


그동안 말은 안했지만 한별 누나도 내 상태가 메롱한 것을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정이 있음을 눈치 채고, 원래 잘하는 아이니까 금방 돌아올 거라며 기다려 준 것이 참 고마웠다.


“흥! 그렇다니까. 슬럼프인가? 번아웃? 차기작 징크스인가? 내가 얼마나 고민이 많았는지 알아?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네가 떡볶이를 쏘는 걸로...”

“미안해요. 다음에 살게요. 제가 오늘 정말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요.”

“그럼 어쩔 수 없지이이. 그런데 여자 만나러 가는 건 아니지?”


아닌 척 하지만, 그녀의 힘이 쭉 빠지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여자랑 만나냐는 질문에도 머뭇거리자, 그 기세가 더욱 심해졌다.


참으로 애매한 걸 어떡하란 말인가. 생물학적 여성이긴 하지만, 결코 남녀 관계로 만나는 건 아니었으니까.


“다음에 두 배로 갚을 게요. 꼭! 약속!”

“약속...”


그녀랑 엄지손가락 도장을 찍고 배우 대기실을 나섰다.


바로 떠나려다가, 한별 누나가 마음에 걸려 문 앞에서 대기했다.


설마 우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저렇게 당차고 어른스러워도 이제 막 11살이 된 꼬마였으니까.


그런데 안에서 흉흉한 소리가 들려왔다.


“응. 승윤아. 상혁이가 또 새로운 여자를 찾은 것 같아. 응. 알겠어. 만나서 이야기 하자.”


저게 무슨 소리일까. 내가 그렇게 설명을 했건만, 이미 한별에게 나는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떠도는 난봉꾼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승윤이라니. 내가 그러라고 둘을 붙여준 게 아닌데 말이다.


남을 돕고 살았을 뿐인데, 어느새 목 근처에 호랑이가 그르렁거리고 있다.


참으로 심각한 오해가 아닐 수 없지만, 나중에 풀기로 했다.


지금은 다른 급한 일이 있었으니까.


내일의 폭탄은 내일의 상혁이 해체할 것이다.


고개를 털어 상념을 흩은 뒤, 버스를 탔다.


성아의 연구실은 경기도에 있었다.


일일이 이동하긴 귀찮지만 어쩔 수 없다. 서울의 탁한 하늘을 뚫고 별을 보는 건 어려웠을 테니까. 봐 봤자 인공위성밖에 더 보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동하니, 어느새 성아의 연구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연구실은 어디 가고 다 낡은 건물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음. 주소는 여기가 맞는데...”


연구실이라 그래서 스마트하고, 깔끔한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왜 건물이 담쟁이 넝쿨에 집어 삼켜진 걸까. 자연의 위대함이란 이런 걸까?


하긴 돌무더기 첨성대도 천체를 관측하는 기관이었으니까, 겉모습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어디 보자. 여기 화분 밑에 열쇠가 있다고 그랬지?”


미리 성아에게 들었던 위치에서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크흠.”


문을 열자마자 시큼한 냄새가 내 예민한 코를 강타했다.


내부는 심각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그래도 연구실이니만큼 공간은 꽤 큰 편이었는데, 그 큰 공간을 쓰레기가 발 디딜 틈 없이 메꾸고 있다.


주로 빵 봉지, 라면 부스러기, 즉석 밥, 이런 것들이 많았고. 특히 커피. 커피가 압도적으로 많이 쌓여있었다.


거기에 대충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걷는데 상당한 방해가 되었다.


“으휴. 내가 온다고 그랬는데 속옷 정도는 정리하지.”


당장이라도 불러서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어디 간 건지 유성아도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실내를 뒤져봐야 할 것 같다.


짚이는 곳은 있다.


쓰레기의 산 중, 우뚝 서 있는 천체 망원경과 온갖 첨단 기구들이 있는 곳.


그곳에만 쓰레기가 없었으니, 뭘 찾으려면 그곳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살다가 방안에서 탐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네.”


인디아나 존슨처럼 장애물들을 해치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점차 나아갈수록 수많은 책들과, 사진들이 담긴 앨범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쓰레기의 숲 속에서 고고히 자고 있는 성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뭐하나 했더니.”


기본적으로 천체를 관측하는 사람들은 낮과 밤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망원경이 있으니 낮에도 연구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겠지만,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자고 있는 사이에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현상이 일어날지 누가 아는가.


이와 같은 대참사를 방지하기 위해 보통은 낮, 밤 교대로 관측을 하겠지만...


딱 보아하니 성아에게 그런 동료는 없어 보인다.


별로 운명을 관측할 수 있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한 번 죽었다 다시 태어난 나정도 되는 사람이니까 믿지.


그래서 저렇게 망원경을 옆에 끼고 살다시피 하는 것이리라.


“유성아씨?”

“흠냐... 흐헤헤.”


그런데 유성아는 깨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


푼수 기운이 다분하더니, 손이 많이 가는 양반이다.


나는 저 사람이 깰 동안 청소나 하기로 했다.


다른 생각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이런 곳에 있으면 나까지 병에 들 것 같았기에.


“어려운 싸움이 되겠네.”


나는 모처럼 전신의 DNA를 모두 활성화시켰다. 전쟁의 시작이다.


* * *


성아가 눈을 뜨기 전에 청소를 끝낸 건,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업적이었다.


폐허에 가깝던 곳을 이제 좀 연구실 같게 만들어 놓았으니.


성아는 부스스한 머리로 멍하게 있다가 한 마디 툭 내뱉었다.


“꿈?”

“현실이에요. 어제 제 별에 변화가 생겼다면서요.”

“아 맞다!”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당장이라도 별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이내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혹시 거기 있던 거 다 버린 거에요?”

“걱정 마요. 자료는 하나도 안 건드렸어요.”

“흐으으 그건 다행인데, 혹시 먹을 건...?”

“먹다 남긴 것들은 다 버렸어요. 으휴. 쓰레기를 그렇게 내버려두면 어떡해요. 파리 생겨요.”


성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혹시 파리를 키우는 실험이라도 하고 있던 걸까?


“아니에요. 흑. 우리 별 이야기 해요.”


아쉬움을 억지로 꾹 누르고 화제를 전환하는 것만 같다면 착각일까?


설마 저걸 먹으려 한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일단 별의 이야기부터 해볼 생각이다. 애당초 이곳에 온 목적이 그것이었으니.


“자 이게 어제 사진이에요. 다른 사진과의 차이점을 아시겠나요?”


성아는 어느새 쌩쌩해져서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엔 똑같이 어둠 속에 빛나는 알갱이들이 박힌 걸로 보인다만, 전문가가 이렇게 자신만만하는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 믿고 조금 더 살펴보았다.


그리고 미세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커졌나요?”

“네에에엣!!!!! 커졌죠!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이 정도면 못해도 몇 천 년 정도는 흘러야 하는 변화라구요!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어찌나 흥분을 했는지, 혈압이 조금만 높았으면 그대로 숨이 넘어갔을 것 같다.


그녀는 탐욕스러운 눈으로 스스슥 다가와 나에게 들러붙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에요? 뭔가 한 거 틀림없죠?”


당장이라도 옷을 벗기고 몸을 구석구석 살피기라도 할 기세다. 피도 성에 찰 때까지는 뽑을 것 같고.


평범한 9살 꼬마였다면 성인 여성의 완력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평범한 꼬마라면.


나는 반격의 DNA를 활성화 시킨 후,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에서 그녀의 머리에 촙을 날렸다.


“으악! 죄 죄송해요. 제가 흥분하면 뭐가 안 보여서.”

“진정해요. 그렇게 잡아먹을 것처럼 안 들러붙어도 알려줄 테니까.”

“정말요?? 정말인가요?”


방금 내가 한 말을 까먹기라도 한 건지 성아는 또 다시 들러붙었고, 기어이 한 번 더 정수리에 손날이 내리꽂히고 말았다.


으휴. 정말 이런 사람을 믿어도 될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승윤이가 유일하다.


아직 성아에게는 충분한 신뢰를 쌓지 못했지만, 도움을 받을 거라면 들려주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의사한테 치료를 받기 전에 환자가 있었던 일이나 증상을 말하는 것처럼.


나의 대강적인 상황을 들려주어야 보다 정확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회귀에 대한 내용이나 자세한 능력은 숨길 생각이다.


밝히는 건 대충 내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 정도. 나중에 보다 깊은 관계가 되면 들려줄 생각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만한 정보였고, 실제로 성아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허억! 원래 운명에서 벗어난 길을 걷고 계셨구나. 그래서, 그래서 그랬던 거였어. 하아으 다행이다. 이런 사실을 들을 수 있어서. 이 사람과 만날 수 있어서! 검증할 수 있어서!”


따로 증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별다른 의심 없이 납득했다. 거기에 사고를 확장시키고 있다.


그녀도 내게 이야기를 듣기 전에, 나름대로 추측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초능력이라니 믿기 힘든 사실이었고, 의심을 하던 차 본인에게 확답을 들은 것이다.


그 때문인지, 성아는 지금까지 본 모습 중에 가장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앞으로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내가 발표하기 전까진 다른 학자들에겐 숨기고 싶은데. 가능할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성아가 자신만의 완전히 세계에 빠지기 전에, 궁금한 점을 물었다.


“크기가 커지면 뭐가 달라지나요?”

“달라지죠!!!”


그녀는 나를 끌고 근처의 화이트보드로 끌고 가더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질량을 가진 물체는 다른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학교에서 배웠나요?”

“대충은요.”


그녀는 중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9살이 배웠을 리가 없지만 대충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기로 했다.


“항상 질량이 큰 물체가 다른 물체를 끌어당긴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경우가 그래요.”


지구가 달을 도는 게 아니라, 달이 지구를 도는 것처럼.


“여기서 중요한 건 큰 질량에는 큰 힘이 생긴다는 점이에요. 이는...”

“흐름을 강제하는 다른 힘에 저항할 수 있다?”

“정답! 상혁님 공부해 볼 생각 없어요? 제가 마침 연구를 도와줄 사람이...”


손날을 들어 올리자 그녀가 히익 소리를 내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성아의 설명 덕에 의문점이 해결되었다.


나는 화이트보드에 정리한 내용을 적어내렸다.


별 – 사람.

운명 – 별들의 흐름을 제어함.


내가 힘을 각성 – 별의 크기가 커짐(비정상) – 인력이 강해짐 – 운명의 강제력에 저항이 가능.


“맞을까요?”

“정답입니다!!! 역시 공부를... 히익!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좋아. 이론은 확실하게 이해했다. 이제 응용만이 남았을 뿐.


내가 샘숭 전자를 쳐 들어가기 전에 굳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하나.


내 계획의 성패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행운이 범용성은 넓지만 들쭉날쭉한 능력이라는 걸 오늘 아침에 알게 되었다. 두뇌도 누누이 경고를 하고 있고.


방심하다가 큰 코 다치는 것만큼이나 멍청하고 한심한 게 또 없다.


혹시 모르지 않나. 신이 준비한 운명의 흐름이 내 행운보다 강할지도.


그러니 이곳을 찾았다. 오랫동안 연구를 해왔고, 첨단 기구도 있으니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녀에게 그 의사를 전달한 뒤, 샘숭 전자 주가 상승 계획에 대해 대략적으로 들려주었다.


그러자 성아가 히죽 웃었다.


“그거. 재밌겠네요.”

“할 수 있겠어요?”

“그럼요! 시뮬레이션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돌리는 거에요. 그런데 제게 있는 건 데이터뿐이죠. 이보다 쉬운 일이 또 있을까요?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성아는 머리를 대충 묶은 뒤, 커다란 컴퓨터 앞에 앉아 신나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호언장담한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성아가 버튼을 누르자, 커다란 모니터에 밤하늘이 떠올랐다.


일부만을 구성한 작은 우주였지만, 실제 별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다.


“저게 상혁님의 별이에요. 점선이 이동 경로고, 경로에 있는 별무리가 샘숭 그룹의 별들입니다. 이제 움직일게요?”


멈췄던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유독 빛나는 별 하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힘차고 거침이 없어, 주변의 별들에게 짙은 흔적을 남기며 유유히 나아갔다.


머지않아 그 별이 별무리에 도착했다.


작은 별이 보기에는 우주 전체로도 느껴질 만큼 커다란 별무리는 어느새 광채를 잃어 은은히 꺼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의 빛나는 별이 별무리를 헤치고 안에 몸을 집어넣은 순간. 한 줄기 빛이 별무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찬란했던 이전의 광채처럼 번쩍이고는 사라졌다.


지켜보는 이들에게 향수만을 남기는 찰나의 순간.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빛이 번쩍였다.


한 번, 다시 한 번.


밝게 점멸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더니 이내 응축된 것이 터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빛이 별무리의 어두운 부분을 채우며 쭉 뻗어 나아갔다.


폭발과도 같은 빛의 행진은 쇠락했던 별무리의 부활을 알렸다.


규칙적으로, 또 불규칙적으로 반짝이는 별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 모든 게 하나의 별이, 별무리에 몸을 던짐으로써 일어난 결과였다.


“어때요?”

“... 아름답네요.”


어째서 유성아가 미친 사람처럼 별에 매달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0과 1로 이루어진 모니터 속의 별에 넋을 빼앗길 뻔 했으니.


내가 이룩할 경치가 저와 같이 아름다울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내 행동에 자신감이 생겼다. 확신이 생겼으니 내 발걸음은 더욱 거침이 없을 것이고, 가서 모든 것을 취하고 돌아오리라.


* * *


별의 움직임 시뮬레이션은 내게 큰 감명을 주었다.


덕분에 성아와의 관계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단순히 돕고 돕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전문적인 파트너십 관계를 맺기로.


앞으로도 성아는 내 옆에 붙어, 운명의 억까를 예고해주는 탐지기가 되어줘야겠다.


거기에 가끔 지금처럼 중요한 활동을 하기 전,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점쳐 준다면 그 이상 좋은 것이 없으리라.


상대는 이미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더 깊은 관계로 엮이기 위해서는 보다 더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럴듯한 먹잇감을 찾는 중, 어디선가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내 배는 아니었으니 당연히 성아의 배에서 나는 소리겠지.


“우리 밥이나 먹을까요?”


원래 큰 규모의 협상은 음식집 테이블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간단하게 짜장면을 먹으려 했는데 성아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짜... 짜장면?”

“어? 중국집 음식 싫어해요?”

“아뇨. 좋아요! 너무 너무 좋아해요! 이게 얼마만인가 싶어서요.”


아기처럼 방방 뛰고 있는 그녀의 입가에는 침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번 만남 때 과자를 허겁지겁 먹던 성아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순간 머릿속에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혹시...?’


“굳이 오늘만이 아니라도 괜찮아요. 유성아 씨만 괜찮다면 제가 정기적으로 먹을 걸 제공하고 싶은데요.”

“네? 저 정말요? 진짜 진짜요?”


그녀는 이제 거의 울먹거리기까지 한다.


역시. 지금까지 먹을 것 때문에 고생을 한 것이 틀림없다.


아까 청소를 하면서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버렸을 때, 아깝다는 표정을 지은 게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먹을 걸 살 돈이 없는 모양.


성아는 코를 훌쩍이면서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게 천체를 관측하는 기구들이 너무 비싸거든요. 대여를 하는 것만 해도 입이 안 다물어지게 비싸요!”

“그렇군요.”

“그렇다니까요! 제가 별 볼 때 말고는 모든 시간을 다른 교수님들 논문 써주는 알바하고 있는데도 돈이 없어서... 그런데 투자자는 나타나지 않고... 흑. 흐아아앙.”


결국 그녀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사람으로써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에게는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유능한 인력의 마음을 쉽게 얻을 수 있게 생겼으니까.


나는 그녀가 좋아할만한 말을 고민한 뒤, 자연스럽게 건넸다.


“그럼 제가 성아 씨에게 투자할게요.”

“네?”

“저는 성아 씨의 연구가 정말 감명이 깊었거든요. 제 투자금이 당신의 생활에 도움이 되면 좋을 것 같은데.”

“흐. 흐어어엉. 고마워요! 흐흑. 제가, 제가 꼭 보답할게요!”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 때 꽃이 만개한다고 한다.


환경이 갖춰졌으니 앞으로 성아의 연구는 더욱 발전할 것이고. 내게 도움이 될 것이다.


돈이야 한 달에 50 ~ 100만 원 가까이 깨지겠지만 목숨 값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이번 일만 해결하면 돈 문제는 걱정을 안 해도 될 것이고.


확신도 생겼겠다. 이제 내 돈을 되찾을 시간이다.


샘숭 전자와 일면식도 없는 내가 주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바로 주주총회에 참석하는 것이다.


민심이 지하실을 뚫고 나락에 떨어진 뒤의 첫 총회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피 터지는 회의가 되리라.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댓글, 선호작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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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아의 연구실 22.08.24 683 11 21쪽
103 가만히 있어도 22.08.23 711 13 19쪽
102 운이 좋은 날 22.08.20 745 13 19쪽
101 외양간을 고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1 22.08.19 745 11 17쪽
100 돈이 삭제가 된다니 +4 22.08.18 745 9 18쪽
99 투자는 계획적으로 22.08.17 771 10 28쪽
98 돈이 복사가 된다 +1 22.08.16 755 11 18쪽
97 대역전극 +1 22.08.13 722 11 11쪽
96 역전의 서막 +1 22.08.13 714 10 12쪽
95 구설수 22.08.12 731 12 18쪽
94 박상혁 쟁탈전 +1 22.08.11 764 10 20쪽
93 위대한 령도자 박상혁 동지를 맞이하라! 22.08.10 790 13 22쪽
92 지금까지 이런 판매는 없었다. 이것은 팬미팅인가 판매인가. 22.08.09 764 12 20쪽
91 광고를 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2 22.08.07 799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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