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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580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09.10 22:00
조회
620
추천
9
글자
18쪽

합창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17화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까아앙충, 까아아앙↗충↘ 뛰어서어엇! 어디루을 가느냐!!!”


전설과도 같던 노래가 끝이 났다. 관객석의 모두가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박상혁! 박상혁! 박상혁!”


무대에서 가장 빛이 났던 것은 다름 아닌 이 몸.


나의 목소리는 천사가 잠깐 지상에 강림한 것과 같았고.


사람들은 인간의 언어로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를 찾아야만 했다.


“멋져! 상혁아!”

“최고였어!”


나는 잠시 서서 그 칭송을 앞에서 만끽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이 튀어나와 내 귀에 속삭였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뭐를? 설마... 세계의 모순을 인식하자마자 필름이 뚝 끊겼다.


“X바...”

“상혁아 일어나.”

“흡. 하아. 네.”


반사적으로 나오려는 욕을 빠르게 주워 담았다.


어쩐지 합창곡이 산토끼더라. 유치원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지.


최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노래만 불러서 저런 꿈을 꾼 것 같다.


“... 쩌업.”


현실도 저렇게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꿈속이었지만, 모두가 환호를 보내는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짜릿했다.


그런데 현실은... 노래방 최대 점수 39점.


아주 오랜만에, 노력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현실과 마주하고 말았다.


언제였지, 내가 아직 사회 초년생이었던 시절 공장의 아저씨들과 노래방에 간 적이 있다.


그 당시 내가 아무리 못 배운 놈이라고 해도, 막내가 분위기를 띄워야한다는 건 알고 있었고.


마이크를 잡고 기깔나게 땡벌을 불렀다.


멜로디만 들어도 엉덩이가 씰룩거릴 정도로 신나기에, 게다가 중년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트로트 아닌가.


자신은 있었다. 회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며칠간 준비를 했었으니까.


이 기회에 이쁨을 받아,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고자 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박수가 아닌 원성과 주먹이었고, 나는 노력과 성과가 꼭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뒤 노래는 아예 포기를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인생 2회차를 맞아 정점에 이르었으니 노래도 괜찮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었건만, 어려졌다고 해서 없던 노래주머니가 생기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이 상황을 깔끔하게 해결해줄 방법을 하나 알고 있다.


정점의 DNA.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


만약 노래의 DNA를 개방하면 내일 아침이라도 파바로티 뺨치는 천상의 목소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7개였던 정점의 DNA는 어느덧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히 현재의 삶에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위협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작 합창회를 위해서 쓰기는 아쉽다.


“아. 정점의 DNA가 5개만 더 있으면 좋겠다.”


그랬다면 이미 천계에 쳐들어가 신이랑 맞다이를 까고 있을 텐데.


“우리 손주! 밥 먹어!”

“네.”


잠기운에 취해 멍을 때리고 있자니, 할머니가 밥을 먹으라며 부르셨다.


나는 상념을 털어내고 밥상으로 향해 수저를 들었다.


고민을 한다고 해서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 * *


큰 행사가 다가옴에 따라, 학교가 더욱 시끄러워졌다.


평소에는 떠드는 소리, 장난치고 우는 소리가 주를 이루었다면 요즘은 거기에 노래 소리가 더해졌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우워우예~ 오오오!”


굳이 미국 드라마를 찾아볼 필요가 없다. 이곳이 바로 하이틴 뮤지컬 촬영 장소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인도 발리우드에서 이 광경을 봤다면 감탄을 하며 같이 노래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2학년 3반 녀석들도 나에게 기대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 학교의 군림자이자, 최고 인기인인 나의 노래실력이 궁금한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의식적으로 콧노래조차 부르지 않았다.


가오가 떨어질 테니까.


선 굵은 중년의 마피아 보스 목소리가 세 살 배기 애기마냥 뀨뀨꺄꺄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공포의 상징이 아니라 웃음벨이 될 것이다.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권위를 형성하기 어려울 터.


때문에 나는 그냥 입을 닫고 무게를 잡고 있었는데, 그게 또 의도치 않은 소문을 형성하곤 했다.


“역시 우리 슈퍼 반장님은 경거망동하시지 않으시다니까.”

“한낱 필멸자들 앞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싶지 않으신 거야.”

“무슨 소리야? 내가 알기론 세이렌의 목소리라고, 들으면 너무 좋아서 넋이 나간다 그랬어. 그래서 우릴 위해 참고 계신 거야.”


내 행동이 수많은 루머들을 생산하고 있었다.


창의력이 좋기도 하지. 만일 내 목소리가 뱃사람들을 홀린다는 그 세이렌의 것과 같다면 합창대회는 어떻게 열겠는가.


학부모의 넋을 빼어 놓는 역대급 대참사가 날 텐데 말이다.


“내 말이 맞지?”

“아냐 내 말이 맞지 상혁아?”


다들 눈을 빛내며 질문을 던졌다. 대답할 말이 없던 나는 그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멋져...”

“우리는 평생 상혁이를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냥 열심히 따라가자!”


이 쯤 되면, 다빈이를 필두로 하는 정보부대를 풀어 여론조작을 할 수도 없다.


이미 합창대회는 주된 흐름이었으니, 이를 거스르려 하면 오히려 더 큰 이목을 끌고 만다.


지금도 충분히 눈덩이가 열심히 굴러가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미래의 내가, 정확히는 방과 후에 노래방에 갈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그 여유가 얼마 남지 않았단 말이지.”


교장은 이번 합창회를 꽤나 열심히 준비한 게 틀림없다.


그는 내가 돋보이기 위한 구성을 준비했는데 내 독창 파트와, 혼성 2부 합창이 바로 그것이다.


일단 명색이 합창인 이상, 노래하는 인원이 최소 2명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장은 나를 이 합창의 전면부에 세우고 싶었고, 그래서 코러스를 사용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다른 아이들을 ‘화음’ 담당으로 채택해 내 목소리를 돋보이게 만든다는 생각이다.


잘못했다간 100점 만점에 –20점인 내 노래 실력이 –200점으로 증폭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건 어떻게든 한다고 쳐도, 혼성 2부 합창이 남아 있다. 사실 이게 더 큰 문제다.


학교 최고의 남자아이와 매력적인 여자아이의 조화로운 하모니, 관객들에게 꽤나 감미롭게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합창의 하이라이트 부분이었기에, 혼성 파트를 맡은 여자 아이와의 연습은 필수적이다.


그러면 나도 더 이상 내 실력을 숨길 수 없을 것이고.


때문에 혼성 파트너가 뽑히기 전에 실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그런데 바로 오늘이 그 혼성 파트 여자애를 뽑는 날이다.


듣기로는 지원자가 거의 백에 달했다고 한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노래 좀 부른다 하는 애들은 다 모였다고.


나는 최종 심사위원으로써 엄격한 심사위원들이 고르고 고른 이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와의 혼성 합창을 동경하여 그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아이에게 내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구찌 종이가방을 받았는데, 그 안에 콩순이 가방이 들어 있는 걸 발견한 경우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사기지 사기야.”


나였으면 이게 뭐냐고 엉엉 눈물을 터트렸을 것이다.


물론 나는 억울하다. 내가 독창 한다고 그런 것도 아니고. 내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자랑한 것도 아니다.


올 한해 고생하신 엄마를 위한 콘서트라기에 깽판을 참고 있는 거지.


“그럼 어떡한다...”


도망? 강자는 도망가지 않는 법이다. 그럼 로우킥 – 넥 슬라이스 필살 콤보로 제압을 해야하나?


“아 몰라. 될 대로 되라지.”


설마 우리의 품격 있는 삼길 초등학교 학교 사람들께서 노래 좀 못 부른다고 9살 꼬마를 비웃겠어?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일단 웃는 새끼들 얼굴을 다 기억해 둘 것이다.


그리고 차례차례 찾아가 끔찍한 고통을 안겨 주리라.


그렇게 음악에 대한 견식이 높으신 분들이니, 전봇대에 묶어두고 24시간 동안 저X틴 비버의 baby만 듣게 만들 것이다.


“크흐흐흐흐. 나만 죽을 줄 알고? 절대 안 되지. 갈 땐 다 같이 가는 거야.”


어쩌면 교장은 스스로 삼길초의 파멸을 불러온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어느 상황이라도 내가 갑이고, 정의며, 질서다. 누가 오던 상관없다. 다 찢어버리면 되는 거니까.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혼성 파트너 콘테스트가 열리는 회장으로 향했다.


“상혁이 파트너는 누가 될까?”

“몰라. 경쟁이 치열하던데. 설마 6학년 언니들까지 이 악물고 덤빌 줄은 몰랐어.”

“히히. 그럴 만하지 상혁이 파트너면 거의 공주님 아냐. 나도 공주님 하고 싶은데.”


아이들은 수업을 안 한다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어쩐지 우리 학교는 이런 축제? 행사?가 많은 것 같다.


분명 회귀 이전에는 안 이랬던 거 같은데. 누군지 몰라도 학생 복지에 큰 공헌을 한 게 틀림이 없다. x발.


도대체 정보는 또 어디서 모은 건지, 이제는 자기들끼리 누가 우승할지 내기를 하기까지 한다.


“음. 나는 1학년 진서연이 될 거 같은데. 어머니회 소속 학생 중에서 유일한 여자 애잖아. 상혁이랑 나이도 같으니까 그림도 예쁘고.”


우리 학교가 권력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꼬마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 분야가 합창이라는 걸 생각하면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안경을 낀 5학년 꼬마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안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과연 그럴까? 나는 조금 다르다고 보는데. 각종 음악 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있는 윤보라 누나가 1등할 거야. 결국 중요한 건 무대의 수준이니까.”


예리한 지적이다. 실력자가 중요한 배역을 맡으면 무대의 질이 대폭 상승할 것이다.


다만 쇼맨십을 좋아하는 교장이 단순하고 삼삼한 무대를 반길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다른 의견 또한 제시되었다.


“너네 6학년 강예빈 언니 못 봤어? 진짜 예뻐. 공주님에 어울리는 건 예빈 언니 말고는 없을 거야.”


그래. 어쩌면 외모를 더 중시할 지도 모르고.


심사위원들이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여 리스트를 올리겠지. 그럼 내가 그 중 하나를 고르면 되는 거고.


뭐가 어찌 되었든 관객들 사이에서는 앞서 말한 세 명이 가장 확률이 높은 이들이라고 한다.


나는 그 점을 염두에 두며 심사위원 석으로 향했다.


중간에 지훈이가 ‘상혁이의 파트너로 어울리는 건 나뿐이야!’라며 난입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큰 이변은 없었다.


예상대로 올라갈 사람이 올라가는 분위기였다.


슬슬 선발 대회도 끝이 날 즈음이었기에 분위기가 처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남은 참가자들이 아닌, 누가 우승을 할 것인지로 넘어갔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너구리 승윤이가 등장했다.


그녀는 무대 위로 올라와서 주위를 기웃거리더니, 나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요 근래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게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항상 무슨 일만 있으면 쪼르르 달려와 이야기를 해주는 승윤이 치곤 오래 참은 듯하다.


“안녕하세요! 2학년 3반 장승윤입니다! 저는 반드시 상혁이의 옆자리를 지킬 거에요! 꼭!”


당찬 포부였다만 사람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애초에 선발 대회에 참여한 사람 중,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까.


거기에 같은 노래만 주구장창 듣게 되니, 관객들은 유명한 실력자가 아니고서야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직 나와, 교장만이 박수로 그녀를 맞이해줬을 뿐.


승윤은 그래도 좋다며 히히 웃음을 흘렸다.


혹여나 그녀가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교장에게 언질을 줘야겠다.


언제나 의지와 실력이 비례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나만 해도 그렇고.


그러니 일단 지인 찬스로 최종 후보까지 올려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차에 승윤이 노래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승윤이가 노래하는 건 처음 보...”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그녀가 음색을 드러내는 순간, 모든 사고가 멈추었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서 기교는 떨어지지만, 진심을 다한 목소리는 순수함을 담고 있어 더욱 그녀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결국 승윤이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그저 멍하니 지켜보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승윤이가 이렇게 노래를 잘했던가? 붙어 다닌 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었음에도 전혀 모르던 사실이다.


그 때문인지 충격이 꽤나 컸다. 그녀가 이렇게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


아니,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놀라기는 했을 것이다.


분명 그녀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명백하게 한 단계 위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끝났는데요...”


비단 놀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 듯, 모두가 박수 치는 걸 잊고 있었다.


혼성 2부 합창 자리의 주인공이 정해졌다.


아무리 심사위원들이 엄격하고, 까탈스럽고, 설령 뒷돈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변함없다.


제대로 귀가 달려 있다면 모두가 승윤이를 뽑았을 테니까.


그녀는 3명으로 축약되던 우승 후보의 자질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에 삼길동에서 가장 이쁜 소녀로 뽑힐 아이다.


원래는 중학교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었을 테지만, 어쩐 이유에서인지 초등학생 때부터 그 미모를 발하고 있다.


노래 실력이야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던 6학년 윤보라를 가뿐히 제쳤다. 참가자들 중 제일인 셈이다.


권력은... 내 친구니까 프리 패스로 하고.


본래는 심사위원들이 최종 후보 리스트를 뽑고, 그들 중 한 명을 내가 고를 예정이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른 심사위원들에게 시선을 던지자,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남은 참가자들이 있어서 발표를 못했지만, 우승자가 내정된 순간이었다.


“힝... 열심히 했는데.”


끝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에 승윤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려갔다.


‘조금만 기다려 이 친구야.’


곧 있으면 모든 영광이 그녀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럼 기쁘다고 헤헤 미소를 지으며 방방 뛰겠지.


그 동안은 조금 시무룩해 있겠지만, 그녀도 나를 놀래켰으니 쌤쌤인 셈이다.


다음 참가자가 무대 위로 올랐다. 그러나 앞서 승윤이가 무대를 휘저어 놨기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또 다른 이변 없이 승윤이가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와!!! 해냈다! 내가 공주님이야!!”


역시 그녀는 우승 소식을 듣고 기쁨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얼마나 기쁜지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다.


내가 활동 반경을 넓히며, 나의 옆자리는 빌 틈이 없게 되었다. 그 때문에 경쟁도 빈번하게 발생했고.


그런데 하나같이 비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고전하던 승윤이 자력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에겐 뜻깊은 일임이 틀림없으리라.


“상혁아 우리 연습하러 가자! 교장 선생님이 음악실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대. 히히히.”


승윤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대를 드러냈다. 얼마나 바랐던 순간인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


나는 눈부신 그녀 앞에서 잠깐 답을 고민해야만 했다.


처음 승윤의 실력을 목격하고 가장 먼저 든 감정은 경이, 그 다음은 안도였다.


그녀는 내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승윤이라면 내가 음치라는 사실을 들켜도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저렇게 찬란한 재능 앞에서 내 실력을 선보이긴 부끄럽다.


‘하하하. 상혁이 노래 정말 못 불러.’ 정도로 웃고 말면 그나마 괜찮다.


혹여나 진심으로 실망하고, 아쉬워한다면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평소와는 정반대다. 이제는 내가 먼발치에서 그녀를 올려다봐야 하는 상황.


이 자리에 이르니, 평소 승윤이가 어떤 위치에서 나를 봐 왔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대단한 아이다. 스스로 뒤쳐진다는 걸 알고서도 항상 해맑게, 티 없이 다가와 주는 건 그녀의 분명한 장점이다.


그에 비해 나는 그녀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기대를 하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오늘은 그냥 돌려보내야 할 것 같다.


“승윤아. 오늘은 내가 목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런데, 내일 아침에 같이 연습해도 될까?”

“응! 나는 언제든 상관없어. 그런데 많이 아픈 거야? 같이 병원 갈까?”

“아냐. 정말 괜찮아. 내일이면 다 나을 거야.”

“히잉. 아프지 마 상혁아.”


거짓말로 그녀를 보내려니 조금 양심에 가책이 느껴졌다.


나는 승윤이를 배웅해준 뒤, 음악실로 향했다.


옛날에 작곡가로 꽤나 이름을 날렸다는 노년의 선생님이 음악실 문을 잠그고 있었다.


“음? 오늘은 안 하는 거 아니었니?”


그녀 역시 심사위원이었기에 우리와의 대화를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젓고, 단도직입적으로 요구사항을 밝혔다.


“음악실을 조금 쓰고 싶습니다.”


도망? 정점으로 가는 길에 그런 선택지는 없다.


승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건, 도망가기 위함이 아니다. 향상심일 뿐이지.


내일 아침까지 어디 가서 욕먹지 않을 정도로 실력을 올린다.


태생적 음치? 엿이나 먹으라지.


어쩌다보니 최근 DNA를 의지하는 빈도가 많았던 것 같다.


능력이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가? 아니. 그런 게 없이도 나는 천재고 정점이다.


설령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만들 것이다.


정점의 DNA가 없다고 해서 하류인생을 떠돌던 그 시절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천재에게는 천재의 방식이 있다. 이번 합창회가 그 시작이 될 것이다.


나는 음악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궜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명절 음식은 맛있게 드셨는지요. 부디 풍성하고 행복한 명절이 되셨길 바랍니다.


언제나 추천도 댓글도 선호작도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다음 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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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대적자 22.09.15 577 10 17쪽
119 빛이 나는 사람 22.09.14 583 7 26쪽
118 천재는 약점을 극복한다 22.09.13 578 11 19쪽
» 합창 22.09.10 621 9 18쪽
116 별에 관한 고찰 22.09.09 620 10 16쪽
115 아빠 새끼를 만나다 22.09.08 661 9 25쪽
114 가족들이 호강하다 +1 22.09.07 626 11 24쪽
113 가족끼리 왜 이래 +1 22.09.06 596 10 18쪽
112 러시안 룰렛 22.09.03 585 10 20쪽
111 혀어어업상 22.09.02 588 9 18쪽
110 오스틴의 연구실 22.09.01 596 8 17쪽
109 공항에서의 기싸움 22.08.31 606 8 17쪽
108 숨바꼭질 22.08.30 615 9 17쪽
107 제왕과 정점 22.08.27 645 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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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유성아의 연구실 22.08.24 682 11 21쪽
103 가만히 있어도 22.08.23 711 13 19쪽
102 운이 좋은 날 22.08.20 745 13 19쪽
101 외양간을 고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1 22.08.19 745 11 17쪽
100 돈이 삭제가 된다니 +4 22.08.18 745 9 18쪽
99 투자는 계획적으로 22.08.17 771 10 28쪽
98 돈이 복사가 된다 +1 22.08.16 755 11 18쪽
97 대역전극 +1 22.08.13 722 11 11쪽
96 역전의 서막 +1 22.08.13 714 10 12쪽
95 구설수 22.08.12 731 12 18쪽
94 박상혁 쟁탈전 +1 22.08.11 764 10 20쪽
93 위대한 령도자 박상혁 동지를 맞이하라! 22.08.10 790 13 22쪽
92 지금까지 이런 판매는 없었다. 이것은 팬미팅인가 판매인가. 22.08.09 764 12 20쪽
91 광고를 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2 22.08.07 799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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