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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458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08.27 22:00
조회
644
추천
9
글자
20쪽

제왕과 정점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07화



샘숭의 후광을 믿고 깝치던 집사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을 때리자니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의 가게를 들먹이며 위협하는데 이 정도 응징은 당연하다.


손속을 봐 주어 이 정도지, 에누리가 없었으면 벌써 집사의 틀니 구경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팍 씨!’


누구든지 작은 상혁이를 건드리면 아주 그냥 X되는 거다.


나는 여유롭게 집사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병원으로 돌아온 이유는 단순히 뒤통수를 후리기 위함은 아니다.


상대가 이제이의 행방을 끝까지 숨기려 들기에 이쪽도 실력행사에 나섰을 뿐.


행운의 DNA를 100% 개방하고, 사람들이 나를 찾지 못하기를 희망하자 마치 은신을 사용한 것 같은 효과가 일어났다.


병원의 수많은 사람들도, CCTV도, 심지어 코앞에 있는 집사마저도 나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정말 우연히. 상대의 의식이 나에게 닿지 못하여, 기계에 결함이 일어나서.


가능성이 극히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는 행운이 현실로 만들 수 있었고.


덕분에 샘숭 일가가 숨기려고 하는 정보를 케이크처럼 쉽게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정말 행운의 DNA는 사기적이다. 왜 여태껏 개방을 안 했는지 모를 정도로.


두뇌가 야료를 부리지 않았다면 이미 행운과 함께 세계를 발아래 두지 않았을까 싶다.


쓸모없는 두뇌 같으니라고.


‘부정 – 예로부터 조강지처를 버리는 사람 중에 성공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이 있음.’


거기다가 요새는 이상한 말만 늘어가지고. 하여튼 도움이 안 된다.


두뇌와의 만담은 여기까지 하고, 슬슬 집사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아까 보고를 한다는 말을 중얼거렸으니, 이제이한테 연락을 할 거다.


그 대화를 엿들어서 이제이에 대한 정보를 모은 뒤, 개인적으로 그를 찾는다는 계획이다.


집사는 내가 있던 개인실을 나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흠. 대면보고는 안 하는 건가?’


보고할 내용이 심각한 만큼, 어쩌면 집사가 병원을 나서 이제이의 은거지로 향할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무래도 보안이 확실한 공간으로 향해 전화를 하지 않으려나 싶다.


만남도 최소화하고, 보고까지 저렇게 조심스럽게 하다니. 확실히 뭔가 있긴 있다.


엘리베이터에 탄 집사는 망설임 없이 맨 윗 칸의 빨간 버튼을 눌렀고, 그렇게 도착한 곳은 바로 VVIP 실이었다.


여타 다른 층과는 다르게 한 층에 한 병실밖에 없었으며.


경호원이 있어 극소수의 인원 말고는 접근이 불가능하고, 24시간 의사와 간호사가 대기하고 있는 곳.


그야말로 최고로 중요한 인물을 모시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곳에는 또 처음 와봤기에 신기했다.


‘이곳에 이제이가 있는 건가?’


처음엔 집사가 전화를 하러 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곳에 도착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만약 이제이가 지금 쓰러져 있는 거라면 그동안 미디어에 얼굴을 비치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간다.


거기에 샘숭 측이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하는 이유도.


비행기가 이미 난장판이 되었는데, 조종사까지 쓰러졌다는 걸 알릴 수는 없을 테니까.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뇨. 차도는 좀 어떤가요?”

“후우. 여전히 좋지 않습니다.”


여기 입원한 사람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다.


집사와 전문의의 대화를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옛날에 입원했던 곳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화려한 곳이었다. 병실의 입구에는 ‘이은하’라고 적혀져 있었다.


“응? 이제이가 아니네?”


모든 상황이 이제이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이건 또 의외였다.


뭐, 들어 가보면 알게 될 내용이다.


“김윤호 집사입니다.”

“... 들어와.”


나는 집사가 문을 닫기 전에 병실 내부로 쏙 들어갔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병실은 어두웠다.


그럼에도 방 내부를 살피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한 꼬마의 몸에 수도 없이 달린 기계들의 불빛이 방을 밝혀주었기 때문이다.


그 옆에는 지쳐 보이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토록 찾았던 이제이였다.


이제이는 익숙한 것처럼 집사를 데리고 병실의 내부 별실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환자의 옆에서 대화를 했다가는 환자에게 악영향이 갈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나가서 보고를 듣기에는 그 사이 환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으니.


아마 그래서 굳이 방 안에 다른 방 하나를 만들어둔 모양이다.


문 너머로도 이야기는 들려왔기 때문에, 두 사람을 따라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병실의 탐색이 우선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제이의 딸이겠지.”


곱게 자란 티가 나는 여자 아이였다. 건강했다면 꽤나 미인이었을 그녀는 현재 기력이 쇠해 쓰러져 있다.


아마도 이 꼬마 아이의 상태가 현재의 상황을 불러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아까의 추측에서 아픈 대상만 다를 뿐, 결은 비슷하다.


이은하는 6개월 전 쓰러졌고, 그 때문에 이제이는 이곳에 묶여 있다. 이제이가 일을 대충 처리하는 탓에 샘숭은 몰락하고 있고.


혹시나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나 이은하에 대한 정보를 되짚어 보았는데, 전혀 짚이는 게 없었다.


아마 회귀 이전에도 제이가 꽁꽁 싸매며 소중하게 키운 탓인 듯하다. 샘숭과 연관 없이 금이야 옥이야 소중하게 키웠으리라.



Q.E.D 증명 종료. 현 상황에 대해서 확실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신이라는 작자가 참 독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을 사용했다.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인지를 초월한 행동을 벌이지는 못한다.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반으로 갈라져 죽어!’라고 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구의 절차를 거쳐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샘숭 주식 하락 사건은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율을 뽑았다고 할 수 있다.


고작 사장의 가족의 건강을 건드렸을 뿐인데 회사 전체가 흔들리고 있으니.


내 입장에서는 날벼락이 따로 없지만 말이다.


탐색을 마칠 즈음, 두 사람의 대화도 끝이 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 정상적인 대화라고 부를 수 있냐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지금 곤란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아무래도 적절한 조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건 김 집사가 알아서 하세요.”


집사가 오랜 시간 동안 길게 말을 하면, 제이가 가볍게 대꾸를 하고 끝날 뿐이다.


여러 말로 포장을 해도 결국 집사에게 일임하고 자신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방임에 가까운 행동이다.


어째 이제이는 정신이 다른 곳으로 팔린 것만 같았다. 딸을 걱정하느라 일에 대한 의욕이 사라진 건가.


“이제이 사장님!”

“아. 됐고. 그, 미국 신약 건은 어떻게 되었어요. 이번엔 확실한 거겠죠?”


집사가 호소하며 매달려 보았지만, 제이는 가볍게 손을 내저어 쳐냈다.


딸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에서 신약을 공수하려는듯하다. 그래도 샘숭인데 국내의 약은 모두 써 봤겠지.


평소에도 인상이 밝지 않던 집사의 표정이 더욱 변을 씹은 것처럼 어두워졌다.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번엔 실패하면 안 되어요. 아시죠?”

“매우 높은 확률로 성공 할 수 있을 겁니다.”


쨍그랑!


집사의 말이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뭉그러졌다.


그 파열음을 가르고 내지르는 제이의 목소리는 피를 뚝뚝 흘리는 것만 같았다.


“높은 확률? 반드시여야지. 그동안 몇 번을 실패했습니까? 해당 분야의 권위자가 교통사고가 나고, 하필이면 우리 은하가 특이한 체질을 가지고 있어서 약을 처음부터 다시 조합해야 하고 이게 말이 되어요?”


꽤나 긴 수난이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하나뿐인 자료가 토네이도에 날아가고! 샘플을 이송하다가 사고로 인해 깨지고! 그것도 정확히 13번씩이나! 이게 말이나 되냐고요! 세상이 날 버린 게 아니고서야! 말이! 말이!!!”


제이는 격양된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딸이 죽어가는데 일이 자꾸 꼬이니, 부모 된 입장에서 속이 말이 아닌 것 같다.


나도 그 심정 이해한다. 나는 저런 현상을 억까라고 불렀으니.


이제이도 운명의 집중 공세를 받고 있는 중이 틀림없다.


제이의 눈치를 살피던 집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반드시 신약을 가져오겠습니다. 그러니 그 일은 저한테 맡기시고, 잠시만 미디어 쪽으로 출현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사는 이미 적어 두었으니 그냥 읊고만 오시면...”


쨍그랑! 퍽!


유리가 하나 더 깨졌다. 그런데 누구의 머리에 부딪히기라도 한 건지 둔탁한 타격음도 같이 들렸다.


방 안에서 상처입은 짐승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지금 몇 달째 저 상태가 지속되는 지 알고 있기는 하나? 저러다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 바로 오늘 죽을 수도 있다고. 그런데 나보고 일을 가라고? 일분일초가 아까운 순간에?”

“하지만!”

“하지만이고 자시고! 나는 샘숭 전자의 사장이기 이전에! 우리 은하의 아빠란 말일세!”


덜컹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곳에 동방의 용은 없었다. 지치고 피로한 한 아버지가 있을 뿐이었다.


이제이와 관련된 일화가 하나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뒤, 그의 부친 이권희 회장이 회장직을 내려놓으며 그 자리를 두고 전쟁이 벌어진다.


누가 보아도 제이가 가장 뛰어났음에도 승계 다툼은 오랜 기간 이어졌는데, 그 이유가 바로 제이가 빠르게 형제들을 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손속을 두고 유하게 대응했기에 유리한 상황을 빠르게 굳히지 못했고, 계속 구도가 뒤흔들렸다고.


능력이 천부적이며 능히 제왕의 자리에 오를만하다고 평가를 받으나, 자신의 소중한 사람한테는 약한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런 제이였기에 회사의 일을 다 내팽개치고 딸한테만 매달려 있는 모습이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집사가 착잡한 눈으로 보았다.


아무리 집사가 샘숭을 끔찍이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아비의 부성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그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루 빨리 약을 들여와 은하를 치료하는 것일 터.


그 전까지는 회사의 내부를 가다듬으며 오늘 같이 똥을 치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던 이제이의 방황이 벌써 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집사의 낯에 한 번 더 직언을 해야 하나 고민이 어리던 찰나.


청아하면서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하나가 두 사람을 멈춰 세웠다.


“아빠...? 무슨 일 있어요?”


분쟁이 격해졌던 탓에 자고 있던 은하가 깬 것이다.


제이는 집사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고, 잠시 후 세상 다정한 아빠의 모습으로 변해 은하에게 향했다.


“아니야 우리 딸. 무슨 일이 왜 있겠어. 그냥 집사 아저씨랑 방에 물건을 들이다가 떨어트렸을 뿐이야.”

“다행이다... 집사 아저씨 안녕하세요.”


집사는 떠름하게 고개를 숙였다. 집사의 입장에서야 안타깝긴 하지만 원망스럽기도 한 존재일 테니.


제이는 일부러 그런 집사를 무시하며 은하의 신경을 돌리려 했다.


“우리 은하 아프지는 않아요? 의사 선생님이 자고 있어야 한댔는데.”

“으응. 계속 자기만 해서 심심해요.”

“아, 그러면 아빠랑 같이 드라마나 볼까? 우리 은하가 좋아하는...”

“나비효과!”

“그래. 우리 나비효과 보자.”


여기서 의외의 상황이 펼쳐졌다. 설마 이런 곳에서 우리 드라마 팬을 만나게 될 줄이야.


재벌 집 사람들도 드라마를 보는 줄은 몰랐다. 아마 누워만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접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상황파악은 끝났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던 차, 마침 좋은 타이밍이 찾아왔다.


나는 행운의 DNA의 방향성을 바꾸었다.


나를 숨기고 있던 기운이 사라졌고, 병실 내부의 인원들이 모두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너 이 자식!”

“... 박상혁?”

“우와! 민수다!!!”


순서대로 집사, 이제이, 은하의 말이다.


다들 적지 않게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그들 입장에서는 내가 갑자기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들의 시선을 웃어넘기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필요한 건 아역 배우로써의 박상혁이다.


“안녕하세요. 나비효과, 비밀정원에 출연한 배우 박상혁이라고합니다. 이곳에 제 팬이 있다고 들어서 찾아왔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어이! 밖에 사람...”


집사는 빠르게 외부의 경비원을 불러 오려고 했지만 제이에 의해 가로막혔다.


은하의 표정이 최근 본 모습 중에 가장 밝았기 때문이다.


시름시름 앓으며 투병생활을 하던 평소와는 달리, 얼굴에 기쁨과 환희가 가득하다.


장난감을 사주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도 힘들어하던 은하가 웃고 있다. 그 사실 만으로 제이는 모든 걸 허용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갑자기 허공에서 배우가 튀어나온다고 해도 말이다.


“나가서 의사 좀 불러 와요.”

“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요.”


결국 나를 쫓아내려던 집사는 의사를 부르러 허겁지겁 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의사가 도착했고, 제이가 건강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외부 인원과 접촉해도 됩니까?”

“체력을 생각하면 30분 정도가 한계일 것 같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웃거나 감정 변화가 심하면 무리가 가는 건 아니겠지요?”

“현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은하님의 의지와 기분입니다. 웃음만큼 좋은 게 없을 겁니다.”


어느새 산삼보다 좋은 남자라는 칭호를 획득한 나였다.


제이는 그 말을 듣고 내게 아무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초대를 한 것처럼 은하와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은하는 얌전히 침대에 누워 해야 할 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얼마나 감정이 벅찼는지 고르고 또 고르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 옆에서 얌전히 기다렸고, 은하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이거 꿈은 아니죠?”


기껏 열심히 질문을 정리했는데 꿈이면 상실감이 클 것 같다는 말이 너무 깜찍했다.


“물론 아니죠. 저는 여기, 은하 양을 만나러 왔어요.”

“흐윽! 너무! 너무 좋아요! 제가 나비효과만 거짓말 안 하고 10번은 더 봤어요. 특히 미래를 걱정하는 다연이한테 다가가서...”

“괜찮아. 얼마나 시간이 지나고, 네가 어느 곳에 있더라도. 내가 함께할게.”


은하가 말하는 파트가 어디인지 알 것 같아 대사를 읊어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심박수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가장 좋아하는 배우의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들었다. 성덕이라면 누구나 꿈꿨을 상황에 은하가 황홀경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실제 배우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 없었어요?”

“있어요! 있는데, 뭐부터 물어봐야 하지?”


그녀는 허둥거리며 노트를 찾았다. 그 노트에는 나비효과에 대한 질문이 빼곡이 적혀 있었고, 나는 이를 받아 들고 대답해주었다.


중간, 중간 지루해질 즈음에 촬영장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들려주니 은하가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덕분에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30분이 다 지나고 말았다.


“은하야. 시간 다 되었다.”

“아! 아빠 저 괜찮은데. 네? 정말 괜찮아요!”


은하의 간절한 부탁에 제이가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의사의 권고대로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환자의 건강을 뺏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또 올 테니. 오늘은 이만 쉬세요.”

“정말이요? 정말 또 올 거에요?”

“그럼요. 시간 나는 대로 또 올게요. 다음에는 한별 누나, 그러니까 다연이랑 같이. 그러니까 그동안 약 잘 먹고 의사 선생님 말 잘 듣기에요?”


성사만 된다면 눈앞에서 가장 좋아하는 남주와 여주를 같이 볼 수 있게 된다.


그 약속은 은하에게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다음 만남까지 힘을 내서 버티려 노력하겠지.


은하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


“정말 행복했어요. 감사합니다. 상혁 오빠.”

“아뇨. 감사는 이제이 사장님께 해야죠. 절 부른 게 바로 사장님인 걸요.”

“진짜요? 와! 아빠 정말 감사해요! 사랑해요!”


제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딸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약속을 마음대로 취소할 수도 없고.


다음번에 내가 또 방문을 하더라도 이제는 막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떠들썩했던 은하와의 만남은 끝이 났다.


제이는 나를 데리고 응접실로 향했다. 샘숭의 응접실답게 꽤나 훌륭한 다과 세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제이와 나는 잠시 말없이, 집사가 내어주는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고맙네.”

“별 말씀을요.”


뜬금없는 감사였지만 덤덤하게 받았다.


아이가 아픈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 정도야 별로 수고로운 일이 아니다.


제이는 조금 더 뜸을 들이다가 경계가 섞인 눈빛을 던졌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였지만 확인할 게 있었으니.


“왜 이곳에 온 건가? 집사가 데려왔나?”

“그럴리가요. 저 사람이 저에 대해 보고한 거 기억 안 나시나요?”

“... 그렇군.”


잠시 기억을 되짚던 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사가 원망스런 눈빛을 보냈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어딜 주인과 대화하는데 부하가 끼어들고 있나.


“그럼 왜?”


제이는 계속해서 이유를 찾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물을 법도 하지만 그에게는 그런 정보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미 일어났으니, 납득할 뿐. 그보다는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으려는, 실로 효율적인 움직임이다.


나 역시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밝혔다.


“도우러 왔습니다.”

“나를? 은하를?”

“은하를 구하는 게 곧 당신을 구하는 일이고, 샘숭을 구하는 일 아닐까요?”

“그래. 그렇지.”


제이는 참으로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담담하게 물었다.


“어떤 방법으로?”


이 역시 타당한 의문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나는 잘 나가는 아역 배우에 불과했으니.


뭐, 매일 은하의 곁에서 광대 역할이라도 맡으려나 싶을 것이다.


배우가 아닌, 나에 대해서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은하를 고치지 못하는 이유가 불운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거기까지 들은 건가?”

“어쩌다 보니요. 바로 그 부분을 제가 해결해드릴 수 있습니다.”


제이의 미간에 내 천자가 그려졌다. 당황스럽겠지, 9살 꼬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싶을 것이다.


그래도 딸의 은인이라 그런지, 아니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인지 대답을 해주기는 했다.


“내가 국내에서 안 찾아 본 종교가 없네. 기독교, 불교, 천주교, 무당, 사이비까지. 그런데 하나같이 실패했고.”

“저를 안 찾으셨잖아요?”

“자네에게 뭐가 있기에.”


의심과 혼란이 가득한 제이에게 간단하고 명료하게 설명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뭐?”

“아주 조금의,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다면 그걸 현실로 끄집어 낼 수 있어요. 제게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어디선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앞이 아닌 옆 쪽, 집사면 차나 열심히 따를 것이지 쓸 데 없이 웃고 자빠졌다.


그러나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여기는 건 제이 역시 마찬가지.


그는 어르고 타이르듯 말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네. 세상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차 있던 시절이.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나?”


자조가 섞인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잘난 줄 알았던 자신 역시 운명에 지고 말았다. 그런데 고작 너 따위가 할 수 있겠느냐. 그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저는 할 수 있습니다.”


고개를 펴고, 대한민국 최고의 경영인과 똑바로 마주하며, 당당하게 선언한다.


상대가 제왕이라면, 이쪽은 정점이라고.


동 나이 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내가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보여줄 수밖에.


“우리 간단한 내기를 하는 건 어떨까요?”


아주 오랜만에 서열정리에 나설 생각이다.


상대는 최고의 기업 중 하나인 샘숭. 나와 대결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존재였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호작 댓글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이번 주도 끝이 났군요! 그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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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외양간을 고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1 22.08.19 745 11 17쪽
100 돈이 삭제가 된다니 +4 22.08.18 745 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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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돈이 복사가 된다 +1 22.08.16 755 1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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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구설수 22.08.12 731 12 18쪽
94 박상혁 쟁탈전 +1 22.08.11 764 10 20쪽
93 위대한 령도자 박상혁 동지를 맞이하라! 22.08.10 789 13 22쪽
92 지금까지 이런 판매는 없었다. 이것은 팬미팅인가 판매인가. 22.08.09 763 12 20쪽
91 광고를 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2 22.08.07 798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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