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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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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2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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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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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
추천
11
글자
24쪽

가족들이 호강하다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14화



미국 원정을 갖다온 지 어느새 6개월이 흘렀다.


치료제를 맞기 시작한 은하는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고.


약점이 사라진 제이는 무서운 속도로 회사를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샘숭 그룹 내부의 예산을 다 끌어 모아 샘숭 전자로 돌린 일이다.


당연하게도 다른 사장들의 반발이 작지 않았으나, 제이는 냉철하게 상대를 짓밟고 약점을 헤집으며 돈을 뜯었다.


다소 손속이 과한 거 아니냐, 사람이 달라졌다, 등 소문이 돌긴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보여주고 입증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긁어모은 돈으로 딱 하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시켰으니.


핸드폰의 은하와 같이 무한한 가능성을 이 세상에 실현시키는 것, 이름하야 ‘갤럭시 프로젝트’의 출범이다.


그 출발은 인터넷과 핸드폰의 결합, 즉 스마트폰부터였다.


혁신적인 아이디어, 투명한 개발과정, 전문가의 자문을 통한 실현 가능성까지.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프로젝트 계획서에 샘숭에 등을 돌린 사람들이 하나 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샘숭이 옛날엔 대단했다고, 아직 잠재력은 남아 있다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갤럭시 프로젝트가 샘숭의 명운을 건 마지막 몸부림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지만, 이미 업계 관계자들은 갤럭시의 성공을 점치고 있다.


이게 말이나 되는 디자인이냐면서, 편의성이 너무나도 뛰어나다면서.


거기에 기능들 하나하나가 너무 혁신적이라 제이보고 미래에 갔다 왔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아니면 외계인이라도 잡아서 공장에 넣었냐고.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제이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회사로 돌아가 6개월 전 알게 된 꼬맹이를 회사에 부르는 것이다.


고작 9살짜리가 뭘 알겠냐만, 제이는 그 아이를 인간의 형상을 한 복덩어리라 칭송하며 스마트폰에 대한 의견을 구했고.


꼬마는 마치 10년 넘게 스마트폰을 사용하기라도 한 것 마냥 날카롭고 획기적인 시선을 제공해주었다.


9살짜리가 10년차 경험자처럼 말하는 게 말이 안 되긴 했지만,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제이에게는 큰 영감이 되었다.


그 결과 개발 방향성을 분명하게 잡을 수 있었다.


그 쯤 되자 떠나갔던 투자자들이 돌아와 새롭게 투자를 시작했다.


그 돈으로 샘숭 그룹의 급한 곳을 메꾸고, 그러면 다시 회사가 더 나아지고. 이러한 선순환이 반복되었다.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샘숭에서 뭔가 엄청난 걸 개발하고 있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고.


그 결과 3분의 1가까이 꼬라박았던 샘숭 전자의 주식은 거의 이전의 수준으로 복구를 할 수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아직 개발 중임에도 이 정도 수치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몇 년 내로 샘숭이 스마트폰을 내면, 분명 동아시아의 핸드폰 시장을 집어 삼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가는 원상복구를 넘어 한계점을 뚫고 최고치를 경신하겠지.


그러니 있는 돈 없는 돈을 탈탈 털어 2만 주를 확보한 나는 장밋빛 미래가 예정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후.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네.”


주식만 보면 한숨만 나오던 날들이여 이제는 안녕이다.


앞으로는 밥을 안 먹고 주식만 봐도 배가 부른 날들이 이어지리라.


주가 회복을 위해 애플의 디자인과 샘숭의 성능을 결합시켜 괴물을 만들어 냈다. 이 정도 반응은 당연하다.


스X브 잡스 씨께서는 분통을 터트릴만한 이야기지만, 나는 모르는 일.


기왕이면 한국 기업이 잘 되는 게 좋지. 거기에 내 주식이 많이 들어가 있으면 더 좋고.


어쨌든, 주가가 돌아왔으니 원래의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아무래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세 번째 드라마를 찍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마침 두 번째 드라마 ‘비밀정원’이 끝났으니, 한동안은 배우 쪽 일은 쉬어도 괜찮으리라.


반발이 적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드라마나 영화가 하나, 둘이 아니였기에.


감독들이 하나같이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설득을 했지만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애초에 한탕 해 먹고 뜰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으니까.


막상 하다 보니 재미있고, 많은 사랑을 받아 가끔 정도는 작품 활동을 이어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조금 쉬고 싶다. 1년이 넘도록 쉬는 날 하나 없이 달려왔으니까.


감독의 말도 일리는 있다. 돈을 벌 수 있는데 일부러 안 버는 건 미련한 일이지.


굴러 들어온 복을 뻥 차버리는 것만큼이나 바보 같은 일이다.


그런데 그 복주머니 하나 찬다고 해서 내가 빈털터리가 되는 건 아니라서.


주위를 둘러보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게 복주머니다.


가만히 있어도 재능이 빛나 복주머니가 떼굴떼굴 굴러오더라고.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 바로 샘숭의 복주머니였다.


그 왜, 미로 같은 곳에서 함정을 잘못 누르면 커다란 강철 구체가 데굴데굴 굴러오지 않나.


요즘 나를 향한 샘숭의 행보가 그와 같았다.


부담될 정도로, 과하게 나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덕분에 한동안 돈이 부족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요 근래 이제이에게 받았던 연락을 떠올려 보았다.


‘상혁 군. 한남동에 좋은 단독주택 매물이 나왔네. 이사 오지 않겠나? 싸게 파는데.’


뜬금없는 이사 권유였다. 그래도 샘숭 회장이니만큼 무언가 의도가 있겠지 싶어 물었는데.


‘한남동에 뭐가 있냐고? 하하. 우리 집이 있네. 이웃사촌이 되면 얼굴을 자주 볼 수 있겠지. 하하하.’


제이가 나를 아낀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치료제를 구했을 뿐 아니라 스마트폰 개발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좋아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설마 거처를 옮기라는 제안을 할 줄은 몰랐다.


인형이 마음에 든다고 집에 인형뽑기 기계를 두는 것과 비슷한 생각이다. 부자가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생각.


가게랑 학교가 멀다는 이유로 거절을 했지만 이제이의 러브콜은 끊기지 않았다.


“상혁 군. 뛰어난 학생은 좋은 환경이 필요한 법이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은하가 다니는 학교로 오는 건 어떤가?”


친구인 승윤이가 들었으면 크르릉 소리를 내며 볼따구를 부풀렸을 소리다.


이제야 학교에 자주 나온다고 기뻐하던 반 친구들인데, 전학 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크게 슬퍼하리라.


그런 이유로 거절을 하자 제이가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럼. 우리 회사 인턴십이라도 참여하는 건 어떤가. 용돈을 비롯해 온갖 혜택이 기다리고 있다네.”

“아저씨. 저 아직 9살이거든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20살이 되기를 어떻게 기다린단 말인가. 지금도 충분히 제 몫을 하는 아이를!”


아무리 서구적 열린 마인드라고 하더라도 9살 꼬마를 스카우트 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렇게 할 일이 없나. 샘숭 전자는 요새 바쁠 텐데.


그런 어조로 물었더니 제이가 확신에 차서 답했다.


“바쁘지. 하지만 훌륭한 인재를 모으는 것보다는 중요하지 않네. 자네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무슨 그런 당연한 말을 하냐는 듯한 어투다.


“게다가... 자네를 샘숭에 묶어두면 우리 은하가 정말 좋아할 것 같거든.”


... 어쩌면 이쪽이 본심일지도 모른다. 부녀가 사람 보는 눈이 비슷한지 둘 다 나를 참 좋아한다.


이놈의 인기란. 죄가 많다. 죄가 많아.


고민해 보았지만 인턴십 제안 역시 거절하기로 했다.


아직 어딘가에 묶여 있는 건 싫다. 지금은 보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으러냐...”


계속된 거절에 제이는 풀이 죽은 듯하다.


돈도 명예도 다 가진 대기업 사장임에도 가지지 못하는 게 있어 불만족스러운 모양.


그는 다음번에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준비해 오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는 그 말을 완벽하게 지켰다.


“샘숭에서 협업 제의가 왔다고요?”

“그래.”


중대한 논의 사항이 있다고 대한제일 빵집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은 봉식의 발언이었다.


어제 샘숭의 사람들이 1호점을 찾아 협업을 제안했다고 한다.


“아빠 그런 거 싫어하잖아요.”


봉식의 딸 유리의 발언에 모인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봉식이 누구인가. 장인이라는 자부심 하나 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빵집은 빵만 잘 만들면 된다며 홍보도 꺼리던 사람이, 대기업의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봉식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싫어하지. 당연히 거절도 했다. 그런데 제안을 들어보니... 그 정도면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래서 이렇게 너희들을 모은 거란다.”

“말도 안 돼.”


이번엔 엄마가 깜짝 놀랐다.


대한제일 빵집의 일거리는 주로 내가 물어오는 편이다.


때문에 봉식 아저씨를 설득하는 일은 주로 우리 엄마가 담당하고 있다. 빡빡이 아저씨가 그래도 하나뿐인 제자한테는 좀 약한 편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엄마는 봉식 아저씨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잘 알고 있다. 그런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다니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샘숭이 제시한 계약 조건을 듣자 모두가 납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을(샘숭)은 소유하고 있는 백화점에 갑(대한제일 빵집)의 빵을 진열한다.

- 을은 갑에게 생지를 받아와 지시받은 대로 구워 판매한다.

- 갑의 직원이 보기에 미흡한 경우 을은 즉각 수정하도록 한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 수익 분배는 을이 10%, 갑이 90%를 가져간다.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제안이다.


보통 대기업이 유명 가게와 콜라보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름값을 빨아 수익을 거두기 위함이다.


그 과정에서 품질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아무래도 본사가 만드는 것보다는 맛이 떨어지겠지.


때문에 봉식과 같은 장인은 수많은 협업 제의에도 항상 칼같이 거절을 했던 것이다.


자신을 믿고 찾아온 손님이 혹여나 실망이라도 했다간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뿐인가? 정말 악질 기업의 경우, 레시피를 빼앗아 사용하기도 한다.


적당히 돈을 쥐어주고, 레시피를 훔쳐낸 뒤 팽하고 버린다.


그렇게 속보이는 일도 있기에 기업과의 협업은 경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샘숭이 제시한 계약은 달랐다.


생지를 1호점과 2호점에서 받아와 그대로 굽겠다고 한다. 이미 만들어진 걸 파는 것이기 때문에 레시피가 유출될 건덕지가 없다.


그렇다고 판매를 개떡같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계약서에 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으니까.


품질이나 맛이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샘숭이 성심성의껏 판매를 할 테니까.


봉식이 체면을 구길 일은 없으리라.


그럼 수익이 많이 남냐? 그것도 아니다.


수익 배분이 1대 9다. 만약 이 계약을 지시한 게 이제이 사장이 아니었을 경우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당했을 수준의 계약이다.


샘숭이라는 대기업이 자신의 유명세를 살려 홍보를 해주는 것인데 그마저도 홍보비를 최소한으로 취하다니.


샘숭과 계약을 하고 싶어 줄을 선 기업이 하나 둘이 아님에도 말이다.


흠을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는 혜자 계약이다.


제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음 제안은 거부할 수 없을 거라더니. 이런 뜻이었나.


더 이상 저자세로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저자세로 나왔다. 그냥 거저먹으라는 소리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의심이 들 정도로.


그 때문에 봉식이 우리를 소집하지 않았나.


거절하기엔 조건이 너무 좋고, 그렇다고 덥석 물기엔 의심이 들고.


사람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너무 조건이 좋아도 미심쩍기 마련이다. 요즘같이 물질이 전능하다고 여겨지는 세상에 누가 기꺼이 손해를 감수한단 말인가.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거라고 의심을 하는 게 정상이다.


그래서 우리를 불러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샘숭이 왜 이런 제안을 했을까. 뭐 아는 거 있니?”


봉식의 아내 진숙과, 딸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생각해도 제안이 이상했으며, 그렇다고 뭐 샘숭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직 엄마만이 조용히 손을 들 뿐이다.


“우리 상혁이가 샘숭이 주관하는 영재 합숙 캠프에 다녀오긴 했어요.”


그러자 시선이 내게 쏠렸고 나는 담담히 긍정했다.


“제이 사장님이 절 참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러나 돌아오는 건 침음뿐이다.


“끄응. 보통 캠프에서 만났다고, 그 아이 가게에 협업을 제시하나? 그것도 최고 대우를 해주면서?”

“그건... 아니죠.”


미국이라도 가서 딸을 구해주고, 회사 발전에 어마어마하게 도움을 준 게 아니고서야 어림도 없는 일이다.


진실을 밝힐 수는 없으니 봉식에게 공을 돌리기로 했다.


“에이. 사장님이 저를 좋아하시긴 하지만. 또 그래서 우리 빵집을 안 거겠지만 그래도 이런 제안을 한 건 봉식 아저씨가 빵을 맛있게 만들어서 그런 거죠.”

“그럴까?”

“당연하죠. 아저씨 빵이 좀 맛있어요? 샘숭 사장도 반한 게 틀림없다니까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결정하세요. 위험한 건 아닌 거 같으니까.”


내가 활약한 덕에 식구들이 득을 보는 건 좋다. 하지만 그것도 강제되어선 의미가 없다.


내가 계약을 체결하는 건 빵집 식구들이 아닌 제이의 손을 들어주는 게 되어버리니까.


제이가 울상을 짓든 말든 나는 내 사람들이 우선이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의견인지 온전히 봉식에게 결정을 맡겼고, 그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일단 만나봐서 이야기라도 해봐야겠다. 만약 무슨 꿍꿍이가 있으면 뭔가 티가 나겠지.”

“좋은 생각이네요.”


아저씨가 보는 눈이 없지는 않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난했던 엄마와 나를 키운 게 바로 봉식 아저씨였으니까.


... 아니 진숙 아줌마였나? 계약 미팅 때 아줌마도 같이 가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결론이 났고, 봉식은 샘숭에 그러한 의사를 전달했다.


결과적으로 내 당부는 실현이 되었다. 샘숭 측이 계약 이야기를 하자며 봉식 아저씨와 진숙 아줌마를 모두 초대한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샘숭이 직원 모두들, 거기에 내 할머니 할아버지께도 초대장을 보낸 것이다.


가문끼리 맞다이를 까자는 것도 아니고, 계약 자리에 왜 지인들을 부른단 말인가.


그 이유는 초대장에 적혀 있었다.


‘샘숭 리조트 이용권’


보다 편한 분위기에서 심신을 회복하며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이다.


리조트가 작지 않으니 지인들이 있으면 부르라는 뜻이었고.


“보통 계약할 때 리조트에서 휴양을 즐기면서 하나...?”


유리 누나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지. 내가 보기엔 이제이가 내 지인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돈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왜, 목표를 포섭하려면 그 주위부터 공략하라는 말이 있지 않나.


빵집 사람들은 계약을 할 일이 많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며 넘어갔다.


내가 빵집에 합류한 이래로 8년이 넘게 휴가다운 휴가가 없었으니, 이번이 좋은 기회였기도 하고.


봉식은 그래도 장사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주장했으나, 빵집 여성진들의 불같은 성원에 못 이겨 다 같이 휴가를 가는 걸로 결정이 났다.


* * *


계약 미팅의 날이 되었다. 리조트로 향하는 인원은 총 8명.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나. 이렇게 우리 가족과.


봉식, 진숙, 유리, 거기에 유리 누나 남자친구 홍관우 사범까지. 8명이다.


리조트는 따뜻한 남쪽의 바닷가에 자리했다.


우리는 입구에 도착을 하자마자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는데, 정장을 입은 수많은 직원들이 일렬로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대한제일 빵집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이렇게 다 나와 있으면 다른 손님들은 누가 봐주나...”


할아버지의 중얼거림을 받은 것은 다름아닌 이제이였다.


그는 딸과 같이 등장하며 우리를 직접 맞이해 주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리조트에 다른 손님은 없을 테니까요.”

“그래도 되는 겁니까?”

“누구를 모시는데, 당연한 일이죠.”


말을 마치며 제이가 나에게 윙크를 날렸다.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욕심을 드러낼 수가 없을 정도다.


제이가 인사를 하며 우리 가족과 통성명을 하는 동안 은하가 달려와 내 손을 붙잡았다.


“오빠! 안녕하세요! 보고 싶었어요.”

“은하 양. 여기 나와도 괜찮아요?”

“네! 오빠 덕분에 이제 튼튼한 걸요!”


그녀는 내 옆에 꼭 붙어서 흐흥 웃었다.


“오늘은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아빠가 오빠 온다고 정말 준비 많이 했거든요!”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리조트의 내부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호사가 잔뜩 깔려 있었다.


우선 들어가자마자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는 고급스러운 내부 장식물에 기품을 더해주었는데 놀랍게도 오디오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리조트 홀의 미니 오케스트라가 즉석에서 연주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 모습에 우리는 넋을 놓고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가까이에서 들으니 음의 선율이 귀를 어루만지는 것만 같았다.


‘이게 귀호강이라는 건가?’


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호사스러움에 내성이 없는 식구들은 벌써부터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그런데 리조트의 휴양 코스는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었다.


직원들 중 7명이 나서 우리 식구 앞에 정렬했다.


딱 봐도 다른 직원들보다 숙달되고, 경험이 많아 보이는 이들이었다.


제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소개시켜주었다.


“안내를 도와드릴 이들입니다. 절대 실망시켜드릴 일 없을 겁니다.”


잠시 후 우리 가족과 빵집 식구들은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각자의 휴가를 즐기러 떠났다.


기본적으로 언제든지 산해진미를 즐길 수 있었고, 최고급 시설을 갖춘 방에서 휴식할 수 있었으며, 리조트 밖 바다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라 개개인을 위한 맞춤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흐어어어. 오래 사니까 이런 호사도 겪어보는구먼.”

“다 손주를 잘 둔 덕분이잖아요.”


연세가 있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안마 시설을 이용하는 중이다.


전문 안마사들이 별의 별 향초를 피우며 뭉친 부분을 풀어준다.


몸에 좋은 것은 물론이고, 노폐물이 빠지며 한층 젊어진 느낌마저 들 거라며 제이가 옆에서 자랑했다.


엄마가 향한 곳은 미용시설이었다. 원래는 카메라를 들고 내 옆에 붙어 있을 생각이었는데, 직원의 거듭되는 권유에 마음을 바꾸셨다.


관리를 안 해도 이 정도인데 관리를 하시면 어떻겠냐고. 아마 사람들이 상혁 군 언니로 알 거라고.


그 말에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에게는 젊고 아름다운 엄마로 남고 싶었기에. 그래서 오래오래 같이 사는 게 엄마의 꿈이었으니까.


엄마에게는 특히나 여러 여성 직원들이 붙어 화장품을 추천해주었다.


본판이 좋으니 꾸미는 맛이 난다고.


해외에서 비싸다는 물건들을 원하는 만큼 챙겨갈 수 있었던 건 물론이다.


거울을 보는 엄마의 표정이 만족스러웠기에, 나 역시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흠... 이건 우리 매장에서 신제품으로 내도 될 것 같은데.”

“어머님. 고기가 참 맛있습니다. 하하하.”


진숙 아줌마와 홍 사범은 식당을 탐방하는 중이다.


아줌마는 미식에 관심이 많았고, 사범은 무도가답게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


리조트에서의 식사는 두 사람의 기량을 크게 발전시킬 것이 확실하다.


유리 누나는 의외로 리조트 직원이 아닌 샘숭 가의 비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종이에다가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것을 보니, 공부라도 하는 모양새다.


“기업의 경영 방식이 궁금하시다고요.”

“네! 건방진 꼬맹이 하나가 가게 규모를 확장시키라고 하는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훗. 마음이 맞는군요. 특별히 샘숭의 성장 비법을 들려드리도록 하죠.”


뒷담화를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봐주기로 했다.


대기업의 노하우는 듣고 싶다고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저 집사에게서 단물을 쪽쪽 빨아 먹는다면 대한제일 빵집도 단순한 가게를 넘어 브랜드로써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처벌은 나중에. 이 휴가가 끝나는 대로 엉덩이를 때리는 걸로 하자.


다들 즐기고 있는 와중, 봉식 아저씨는 꿋꿋하게 계약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실한 아저씨다운 행동이다.


뭐 이야기 할 것도 없이 거의 다 끝난 것 같다만.


“정말 그런 조건으로 괜찮은 겁니까?”

“물론이죠. 뿐만 아니라 광고도 무상으로 찍을 예정입니다. 전국의 대도시에 권봉식님의 빵이 알려지겠지요. 한국 최고의 빵집이 서울에 탄생을 하는 겁니다.”

“한국 최고...”


빵집의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한국 제일의 빵집을 만드는 건 봉식 아저씨의 꿈이었다.


그 꿈이 어느덧 목전에 와 있었다. 감회가 남다른지 봉식은 잠시 눈을 감고 감정을 다스렸다.


잠시 후 그는 굳은 결연한 얼굴로 제이의 손을 붙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사장님의 영광스러운 여정에 참여할 수 있다니 제가 더 영광스러운 걸요.”


리조트를 찾은 모두가 각자에 맞게 행복한 휴가를 보내고 있다.


나? 나는 이곳에서도 평소랑 다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직원이 붙었는데, 나한테는 은하가 붙었거든.


그래서 리조트 물놀이 시설에서 은하랑 놀아주는 중이다.


그래도 보람은 있다. 같이 헤엄치고, 물장구를 치는 것만으로도 은하가 좋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놀고 있자니 제이가 계약을 마치고 다가왔다.


“어떤가.”

“최고네요. 두 손 두 발 다 들었어요.”

“그렇지. 자네가 내 사람이 되어준다면 이 정도는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네. 그러니...”

“좋아요.”


제이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원하는 말을 들려주었는데, 너무 쉽게 대답을 해서 놀란 걸까?


그런데 별 생각 없이 응한 것은 아니다.


오늘 가족들이, 빵집 식구들이 행복해하는 걸 보며 굉장히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처음으로 내 덕에 내 사람들이 호사를 누린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의 노력에 보상받는 것만 같았다.


행복했다. 그런 감정을 주는 파트너를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다.


샘숭 정도면 어디서 꿀리는 기업도 아니고, 대한민국 최고의 회사였으니까.


거기에 내가 있으면 더 크게 성장할 테고. 장기적인 비전으로 봐도 내가 몸을 담기에 적합한 곳이다.


그러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다고요. 샘숭 인턴십.”

“... 하하. 난 또 우리 동네로 이사 온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네.”


능청맞기는. 귓불까지 닿을 정도로 올라간 입꼬리나 단속하고 말을 하지.


나한테 침을 바른 게 그렇게 좋을까.


“나중 가서 후회해도 저는 몰라요?”

“그럴 리가.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냥 해본 말이었으니까.


앞으로도 나의 미래는 찬란할 것이다. 내가 샘숭에 몸을 담는다면 샘숭 역시 빛나는 별의 무리가 되겠지.


그 날이 오기를 그리며 노력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 * *


평생의 추억이 될 휴가가 끝이 났다. 샘숭과의 협업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전국에 대한제일 빵집의 이름이 퍼져나갔다.


그런데 그게 새로운 분쟁을 불러올 줄이야.


12월의 어느 날. 평생 만날 일 없을 줄 알았던 아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또 고맙습니다.


댓글과 추천, 선호작은 언제나 큰 힘이 되고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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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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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대적자 22.09.15 577 10 17쪽
119 빛이 나는 사람 22.09.14 583 7 26쪽
118 천재는 약점을 극복한다 22.09.13 578 11 19쪽
117 합창 22.09.10 621 9 18쪽
116 별에 관한 고찰 22.09.09 620 10 16쪽
115 아빠 새끼를 만나다 22.09.08 661 9 25쪽
» 가족들이 호강하다 +1 22.09.07 627 11 24쪽
113 가족끼리 왜 이래 +1 22.09.06 596 10 18쪽
112 러시안 룰렛 22.09.03 585 10 20쪽
111 혀어어업상 22.09.02 588 9 18쪽
110 오스틴의 연구실 22.09.01 596 8 17쪽
109 공항에서의 기싸움 22.08.31 606 8 17쪽
108 숨바꼭질 22.08.30 615 9 17쪽
107 제왕과 정점 22.08.27 645 9 20쪽
106 정중지와 22.08.26 630 9 18쪽
105 피와 살육, 대환장의 주주총회 22.08.25 672 8 25쪽
104 유성아의 연구실 22.08.24 682 11 21쪽
103 가만히 있어도 22.08.23 711 13 19쪽
102 운이 좋은 날 22.08.20 745 13 19쪽
101 외양간을 고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1 22.08.19 745 11 17쪽
100 돈이 삭제가 된다니 +4 22.08.18 745 9 18쪽
99 투자는 계획적으로 22.08.17 771 10 28쪽
98 돈이 복사가 된다 +1 22.08.16 755 11 18쪽
97 대역전극 +1 22.08.13 722 11 11쪽
96 역전의 서막 +1 22.08.13 714 10 12쪽
95 구설수 22.08.12 731 12 18쪽
94 박상혁 쟁탈전 +1 22.08.11 764 10 20쪽
93 위대한 령도자 박상혁 동지를 맞이하라! 22.08.10 790 13 22쪽
92 지금까지 이런 판매는 없었다. 이것은 팬미팅인가 판매인가. 22.08.09 764 12 20쪽
91 광고를 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2 22.08.07 799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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