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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492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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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21,531

작성
22.08.25 22:00
조회
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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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25쪽

피와 살육, 대환장의 주주총회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05화



주주총회. 주주들이 모여서 안건을 선정하고, 기업의 미래를 듣는 자리.


샘숭 전자의 분위기가 현재 좋지 않은 만큼, 이번 주총은 분위기가 험할 가능성이 높았다.


말 그대로 칼부림이 일어나, 누구 한 명 죽는 사람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주총에 참석하기에 앞서 변장을 할 필요성을 느꼈다.


TPO라는 말이 있지 않나. 좋은 자리에 갈 때는 모습을 드러내도 상관이 없지만, 흉흉한 자리에 갈 때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괜히 불똥이 튈 수도 있으니까.


거기에 내가 평범한 사람인가. 대 인기 스타, 떠오르는 샛별과 같은 배우가 아닌가.


그렇기에 더욱 더 공을 들여 정체를 감출 필요가 있다.


사실 행운의 DNA에 탑재된 인지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편하겠지만 이번에는 그 기능을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다.


오랜 시간 같은 장소에 있는데, 영원히 내 존재를 숨기는 게 어렵기도 하고.


주가를 상승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개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까 말한 대로 정체를 적당히 숨길 필요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동네 시장에서 유아용 정장 한 벌과 선글라스를 구매했다.


007 같은 곳에서 보니까 잠입은 이런 식으로 하더라고.


그런데 입고 나서 보니까... 생각보다 눈에 띄었다. 역시 영화는 영화인가.


그렇다고 산 걸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얼굴은 가려야겠고.


그래서 다른 방안을 하나 더 준비했다.


나무는 숲에 숨겨야 하는 법. 내가 눈에 띄면? 나보다 더 눈에 띄는 사람을 준비하면 된다.


“... 그래서 나보고 이걸 입으라고?”

“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주주총회로 가서 구경거리가 되라 이 말이지?”

“맞아요! 역시 경영학과 졸업생! 대화가 빨라서 좋네요!”


봉식 아저씨의 딸, 우리 엄마의 조수. 유리 누나는 내 제안을 듣고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믿고 의지해 주는 게 그렇게 기쁜 걸까?


“아니! 오랜만에 도와달라고 부르더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앗! 내가 바보 등신도 아니고 어째서 사서 수치스러움을 겪어야 하는데?”

“쳇. 거의 다 넘어 왔었는데.”

“전혀 아니거든? 하나도 아니거든?”


유리 누나는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더 열심히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나라고 좋아서 그녀를 호출한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자. 아이는 성인 여성의 곁에 붙어 있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그게 설령 주주총회에서 양복과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아이더라도.


그런데 내가 아는 성인 여성이 그렇게 많지 않다.


어머니는 이런 험한 곳에 데리고 오고 싶지는 않고.


유성아 씨는 잘난 척을 해둔 게 있어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명을 잉태하신 공아린 쌤을 불러올 수도 없고.


그래서 소거법으로 남은 게 권유리 누나라는 소리다.


하지만 부탁을 하는 입장에서, 상대에게 떨거지라고 부를 수는 없었기에 두 손을 모아 부탁하기로 했다.


“옷은 가지셔도 되요.”

“이런 옷 누가 가지니?”

“에이. 이게 조합을 촌스럽게 한 거지, 옷 자체는 좋은 거에요. 와. 이거 예쁘고 몸매가 좋은 사람이 입으면 소화할 수도 있겠다. 주위에 그런 사람 어디 없나?”


내가 눈을 반짝이고 있자니, 유리 누나의 콧잔등이 씰룩였다.


“확실히. 주변에 그런 사람은 나밖에 없지.”

“맞아요. 누나 잘 생각했어요. 일만 잘 풀리면 크게 보답할게요.”

“그래. 조금 더 고마워하는 편이 좋아.”


그녀가 순순히 의뢰를 수락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저 사람도 유명 빵집의 일원이다. 돈이 없을 리는 없고.


평소에 내게 당하기만 하다가 거드름을 피울 수 있으니 몸에 전율이 흐르는 모양.


흠. 앞으로 더 열심히 괴롭혀야겠다는 생각이 샘솟았다.


평소 잘 괴롭혀다 보니까 중요할 때 부탁이 잘 들어 먹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주총이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주총이라 길이 헷갈렸지만, 이내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눈에 핏발이 선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가면 나오더라.


“으휴. 저러다 누구 하나 죽는 거 아니가 몰라요.”

“상혁아. 네 모습도 별로 다르지는 않아.”

“어허! 조용히 하세요!”


나도 사람인데 어쩔 수 없다. 1만 3천주의 주주인데 속이 타들어갈 수밖에.


내 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두근 펌핑되고 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회의장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는 어깨가 떡 벌어진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었는데, 샘숭 녀석들도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와 별개로 기자들도 진을 치고 있었는데, 부외자인 그들에게는 이만한 기삿거리가 없을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입구에서 난동이라도 나오길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혹시나 내 정체가 들키는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다행히 노림수가 잘 통했다.


“크큭. 저 아줌마 옷이 왜 저래?”

“몰라. 벼락부자라도 되나보지.”


단 한 명의 기자들도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밀지 않았다.


유리 누나의 우스꽝스러운 옷차림을 보며 킥킥 웃을 뿐이다. 누나의 목이 더 없이 빨개졌지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입구에 도달하자 가장 떡대가 큰 정장남이 다가와 물었다.


“초대장을 보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원하는 대로 초대장을 보여주자 상대의 표정에 유의미한 변화가 생겼다.


그는 바로 각을 세워 자세를 바로잡더니 꾸벅 허리를 굽혔다.


“VIP 석은 맨 앞줄입니다. 자리가 지정되어 있으니 그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신 경우 언제든지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주주와는 다른 응대 태도다. 남한테는 초대장을 보고 담담하게 안내를 할 뿐이더니. 나에게는 진심을 담은 예의를 갖추고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참 맛이 아닐까.


대개 샘숭 계열의 사장들이 5~7만주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오늘 같이 욕먹기 좋은 날에 모습을 드러낼 리가 없으니, 나 정도면 큰 손님으로 대우를 받는 것이다. 1.7만 주가 적은 양은 아니었으니까.


일반석에는 안내 책자와 간단한 쿠키, 음료수가 놓여져 있었는데, 그에 비해 VIP석은 화려했다.


과일과 고급 음료수, 딱 봐도 고급 디저트 가게에서 공수해온 케이크. 기념으로 가져가라고 선물 세트까지 마련해두었다.


근처에 신변을 보호해줄 경호원과, 편의를 봐줄 도우미가 배치되었음은 물론이고.


아무리 휘청거린다고 하더라도 샘숭은 샘숭인 모양이다. 손님 대우가 남다르다.


생전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 없는 유리 누나와 나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케이크를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우리 가게 빵과 비교를 하고 있자니 오늘 총회의 의장이 들어왔다.


샘숭 쪽의 사람이 들어오자마자 일반석의 흉흉한 분위기가 한층 더 강해졌다. 어찌나 강렬한지 등이 따끔거릴 정도.


의장은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장황한 말을 늘어놓았다.


“우선 피해를 입으신 많은 주주님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리며 01년도 상반기 긴급 총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말로만 사과하면 다냐!”


다른 곳도 아니고 샘숭 전자의 주주총회다. 평소였다면 감히 상상도 못할 만행이지만.


이번에는 별다른 제지가 없었다. 실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장은 주주들이 진정할 때까지 허리를 숙이며 기다렸다.


“이번 사태는 저희의 잘못이 맞습니다. 그러니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의 의도는 무엇이고 왜 이렇게 되었는지. 주가를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부디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회사답게, 욕받이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여론이 바뀌었다. 사납던 사람들도, 일단은 말이나 들어볼 생각이 든 모양이다.


“일단 들어 봅시다!”

“앉아요! 듣고 욕합시다!”


그 뒤로 의장의 설명이 이어졌는데, 뉴스에서 보던 것보다 자세한 내막을 들을 수 있어 상황파악에 도움이 되었다.


들어보니까 원래라면 저렇게 망할 사안들이 아니었던 것 같다.


검수 과정에서 미스가 있어서, 마감이 미뤄져서, 원재료가 제 때 못 도착해서.


실제로 있을 만한 자잘한 실수들이 모두 겹쳐서 큰 피해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 피해를 만회하려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지만 무리수라며 외면을 받았고.


마지막은 그냥 우리가 잘 하는 거 하자며 기존의 성능을 지닌 물건을 냈다가 받은 평가가 ‘샘숭은 혁신을 잃었다’였다.


3번이나 헛발질을 한 기업은 더 이상 기대도, 주목도 받지 못했고. 바닥에 구멍이 뚫린 배처럼 밑으로 가라앉고만 있단다.


여기까지가 현 상황에 대한 설명, 의장은 물을 마신 뒤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연구소에서 인터넷을 핸드폰과 융합시키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그 기술을 토대로 새로운 핸드폰을 개발해서 다시 일어설 생각입니다. 이번 도약을 통해 국내에서 머무르지 않고, 세계의 핸드폰 시장에 도전하는 세계적인 샘숭이 되겠다고 약조드립니다. 여러분!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샘숭이 몰락했다고 해서, 미래의 예정까지 달라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의장은 지금 스마트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이야 핸드폰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전화기라 혁신적인 물건 취급을 받지만, 머지않아 판도가 바뀔 것이다.


폴더폰, 슬라이드폰은 묻히고 스마트폰이 업계를 집어삼키겠지.


대기업다운 한발 빠른 선견지명이다.


그렇다만... 스마트폰이 유행하는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어째서 의장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리는 걸까?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닌지, 다른 주주들도 손을 들고 우려를 토로했다.


“이미 그렇게 시도를 하다가 망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희보고 어떻게 믿으라는 건가요?”

“이번에는 다릅니다. 저희 우수한 개발자들이 전력을 다해 매달리고 있으니...”

“그러면 저번까지는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소리인가요?”

“아니 그건 아니고...”


주주와 의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시감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계획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언제까지, 어떤 단계를 거쳐, 무슨 성과를 낼 거라는 자세한 계획이 빠져 있었다.


하다못해 그럴듯한 청사진, 탄탄한 입증 자료만 갖춰져 있었어도 저렇게 못미덥지는 않을 텐데.


샘숭 전자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런 기본적인 상식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여건이 안 좋다는 이야기이리라.


아예 구상만 하고 있고 실질적인 이야기는 하나도 안 되어 있다던가, 이번 주총을 넘기기 위해서 급하게 준비했다던가.


방향은 제대로 짚었지만, 왠지 가만히 내버려두면 이전과 같이 폭삭 망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 무슨 샘숭이 구멍가게도 아니고,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주주와 의장의 말씨름을 들으며 근본적인 문제를 깨달을 수 있었다.


“프로젝트 지휘를 하는 사람이 없는 거 같은데?”


각 부서에서 실수를 저질러도 이를 체크하지 못했고, 비전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이는 프로젝트의 책임자의 부재를 의미한다.


보통 책임자는 전체적인 일의 처리 속도나 진행과정을 체크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이끌어줄 장수가 없으니 잘 훈련된 병사들도 오합지졸이 되는 것이고. 갈피를 못 잡고 우왕자왕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현재 삼성에는 지휘관이 부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회장인 이권희가 무슨 일에 휘말린 걸까?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요 근래 사건을 수습한다고 바쁘게 활동하는 것을 뉴스를 통해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회장급이 아닌 샘숭 전자와 관련된 사람이라는 소리인데...


회장의 그늘에 숨어 직접적으로 노출이 되지 않으면서도, 샘숭 전자를 총괄하는 책임자라...


순간 한 인물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이.


이권희 회장의 아들이자 샘숭 전자의 사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수재로 유명했으며 제왕학을 모두 익혀 끝내 샘숭의 왕좌를 스스로 얻어낸 인물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 담력과 선구안에 존경을 담아 한 마리의 용, 제이드래곤이라고 부른다고.


어쨌든, 참사가 이렇게 났는데 이제이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게 이상했다.


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유리 누나의 옆구리를 찔렀다.


“저 잠깐 밖에 좀 나갔다 올 게요. 찾아볼 게 있어서.”

“야! 그럼 나는 여기서 뭐해?”

“자리 지키고 있어요. 아니면 멋지게 대화에 끼어들던가. 경영학과잖아요?”


말을 남긴 뒤 곧바로 바깥으로 향했다.


유리 누나는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얌전히 음료수만을 홀짝였는데, 고고한 척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졸업한지 6년이 지나 전문 지식을 모두 잊어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근처 피씨방에서 정보를 모은 결과 이상하리만치 이제이에 대한 기사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기사가 6개월 전, 그 당시의 신제품 설명회였고 그 이후로 종적이 묘연하다.


느낌이 왔다. 이번 샘숭의 문제는 이제이와 연관이 있다고. 드디어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제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되는데... 난이도가 쉽지는 않다.


주주총회에서 끝낼만한 문제는 아니다. 이제이를 만나봐야 도움을 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주주총회로 돌아가 묻는다고 해서 순순히 대답하지는 않을 테고.


그렇다고 행적을 특정할만한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상황을 타개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 말은, 비정상적으로는 해결할 수 있다는 소리다.


답답할 때는 화공이 최고다. 등껍질이 집인 거북이조차도 불을 지르면 고개를 내민다.


이제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으리라. 동남풍. 오랜만에 동남풍이 불었다.


* * *


대충의 계획을 설립한 뒤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갔는데, 그 잠깐 사이에 분위기가 많이 험악해져 있었다.


“지금 누구를 속이려 듭니까. 나눠주신 유인물의 3페이지부터 5페이지까지는 순 거짓말만 써져 있고만!”


그 중심에는 날카로운 지적을 하는 중년이 한 명 있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환경이 육체에 드러난다고 한다.


고생한 사람은 피부가 거칠고 주름이 많아지고, 부유한 사람은 인상이 둥글둥글하고 통통해진다던지.


지금 샘숭의 엘리트 들을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입을 털고 있는 중년은 지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사무직을 한 것 같은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전문지식들이 그 추측에 힘을 실어주었다.


“저 사람 꾼인가?”


주주총회에는 심심치 않게 주총꾼들이 출몰한다고 한다.


그들은 동종 업계에 종사했었던 관계자로, 치사하게 팩트로 조목조목 따지며 회의의 진행을 막는 게 주된 업무라고 한다.


그럼 회사 측에서 입을 막기 위해서 돈을 꽤 쥐어준다고.


아니면 경쟁 회사에서 아예 깽판을 치라고 사주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저 아저씨가 둘 중 어느 측에 해당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샘숭의 입장에서는 눈에 가시와 같을 것이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개인의 영달을 위해 1주만 구매한 뒤, 이곳에 잡입 했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


덕택에 샘숭이 감당해야 하는 분노는 더욱 강해져만 갔다.


“이러면 이야기가 쉬워지지.”


안 그래도 불을 지필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알아서 불이 붙었다.


이제 이 불길을 키우기만 하면 된다. 속칭 장작을 넣는다고 하는데 그 역할은 내가 훌륭하게 처리할 수 있다.


장작이 뭐 별 거인가. 화력만 좋으면 되지. 여기서 나만큼 파급력을 가진 사람이 또 없다.


나는 선글라스를 벗고 행운의 DNA에 내 의지를 불어 넣었다.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기를.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시선이 내 쪽으로 쏠렸다. 한창 침을 튀기며 연설을 하고 있던 주총꾼조차.


뒤이어 곳곳에서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다.


“저거 걔 맞지. 나비효과.”

“비밀정원에 나오는 상혁이다.”

“와. 앞 열에 앉은 거 보면 꽤나 지분이 높다는 소리인데.”


나는 이들의 시선을 받아 넘기며 천천히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청했다.


그러자 의장에게로 시선이 넘어갔다. 한창 주가가 높은 아역 배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의장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발언권을 넘기려 했지만, 그 때 방해가 들어왔다.


“아직 내 말 안 끝났어요!”


주총꾼이다. 그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이곳에 온 만큼 이뤄야 하는 목적이 있었다.


골라인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아마 조금만 더 공격을 가했다면 원하는 바를 이뤄낼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딱 그 때 내 방해가 들어왔다.


기껏 자신이 노력해서 분위기를 달궈놓았는데, 옆에서 알맹이만 쏙 빼가려 하니 참을 수 없는 게다.


그래서 어떻게든 말을 이어가려고 했으나.


“그 쪽 말은 충분히 들었어!”

“나는 상혁이가 무슨 소리를 할지 궁금한데?”


이미 이 회의장은 내가 장악한 뒤였다.


사람에게는 격이라는 게 있다. 격이 높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아우라를 쏟아내는데, 주총꾼은 이에 짓눌릴 수밖에 없었다.


‘고생하셨네. 그런데 이만 빠져줘야겠어.’


불 지피는 사람은 불 지피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그 이상을 탐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는 결국 전희만을 달성하고 본 게임은 이루지 못한 종마처럼 쫓겨나고 말았다.


“말씀하시죠.”


나는 발언권을 얻은 뒤 일부러 뜸을 들였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관심이 최고에 이를 즈음 입을 열었다.


“말씀해주신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가 누군지 알고 싶습니다.”

“... 당연히 이제이 사장님이시죠. 그건 왜?”

“최근, 이제이 사장님의 행보가 묘연하다고 들었습니다.”


의장은 낭패를 당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꼬치꼬치 물고 늘어지는 주총꾼을 쫓아 내길래, 도움을 주려는 건가 했더니 더 민감한 안건을 꺼내고 있다.


그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받아 넘기려 했지만 어림도 없다.


“워낙 공사다망하신 분이라...”

“그러시겠죠. 그런데 이렇게 회사가 휘청거리는 와중에도 얼굴 한 번 안 비치시다니. 저희 주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의장의 표정이 어두워짐과 동시에 주주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안 그래도 욕을 내뱉고 싶었는데 그럴듯한 건덕지가 생겼으니 좋지 아니할까.


“맞아! 최근에 그 분 얼굴을 못 봤지?”

“이제이 나오라 그래! 나와서 그 사람이 설명하라 그래!”


사람들은 거의 반쯤은 일어난 상태로 흥분하며 외쳤다.


유명 아역 배우가 자신과 뜻을 함께 한다며 용기를 얻은 것이다.


나는 그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한 발자국 의장과 대치했다.


의장은 고개를 저으며 결사항전의 태세를 갖추었다.


“본 회의와 관계없는 내용입니다.”

“관계없지 않습니다. 총책임자에게 상황 설명과 비전을 듣는 게 이상한 일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직장인에게는 틀렸음을 알고 있어도 주장을 굽히지 못하는 순간이 있는 모양이다.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저희는 회사의 가치를 믿고 돈을 투자했음에도 외부인 취급을 하시는 거군요.”


방금 의장의 발언은 명백한 실언이었다.


어떻게든 정보를 숨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하면 안 되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일반석의 사람들의 표정이 종잇장 구겨지듯 구겨졌다. 돈도 잃었는데 상대가 모른 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같은 공동체라는 생각에 불만을 토로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그런데 저쪽에서 끊을 자른다? 그럼 정말 거리낄 게 없어지는 것이다.


의장은 그 광경을 보며 다급히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으려 했다.


“아뇨!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알까? 그 아니라는 말 마저도 실수라는 사실을.


“그렇죠? 아니시죠? 그럼 이제 들려주시죠.”

“뭘...”

“이제이 사장의 행방, 혹은 전면에 나설 예정에 대해 들려줄 것을, 만 삼천 주를 가진 주주로써 정당하게 요구하는 바입니다.”


설마 한 식구라고 말해놓고 바로 자신의 말을 부정하는 선택을 저지르겠는가?


그는 스스로 자신의 퇴로를 막고 말았다. 체크메이트다.


“...”


의장의 얼굴에 모든 감정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친 사람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이를 내놔라!”

“우리를 무시하지 마라!”


사람들이 격앙되어 있고, 논리에서도 밀린 지금. 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잠시 쉬었다가 진행하겠습니다.”

“지랄하지 마라!”

“도망가려는 거 누가 모를 것 같냐!”


분을 못 이긴 주주들이 하나같이 들고 일어섰다.


“진정하세요!”

“여기가 어디라고 난동입니까?”


경호원은 그들을 가로막았고 한바탕 몸싸움이 일어났다.


폭동, 대난투의 시작이다.


나는 한 발 물러서서 내가 피운 불을 감상했다.


“아직 모자라.”


이 정도는 아직 소화기로 진압이 가능한 상황이다. 집주인을 끌어내려면 이 정도로는 턱없이 모자라다.


물론 나에게는 불을 피울 수단이 남아 있다.


“아직 한 발 남았다.”


계획을 세울 때는 철저해야 한다. 때마침 봐둔 재료가 있다.


열심히 싸우고 있는 저들이 불씨고, 내가 장작이라면, 아직 기름이 남아 있다.


나는 슬그머니 입구로 다가가 문을 활짝 열었다.


그 덕에 입구에서 대기중이던 기자들은 내부의 소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들은 하나같이 특종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내부로 진입을 시도했다.


경호원들이 막으려 했지만 이미 회의장에 많은 인원들이 투입된 상황이라 모두를 막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분노한 주주들에게 기자들이 오고 있음을 알렸다.


그러자 주주들은 각자 신체 부위를 붙잡으며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악 샘숭이 사람 팬다!”

“아이고 내 팔이야! 돈 없는 게 죄지!”


쉴 새 없이 플래시가 터졌다. 이 장면은 내일 신문 1면에 실릴 것이다.


주주들을 취재하다보면 이제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겠지.


그럼 자연스레 세간의 이목이 이제이에게 쏠릴 것이고, 샘숭도 답을 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준비한 방화계획.


의장도 그 흉악한 계획을 눈치챘는지 경호원들에게 소리쳤다.


“카메라부터 빼앗아!!!”


그런데 인력은 한정적이다. 카메라에 경호원들이 몰리면 주주들이 비교적 자유로워진다.


의장은 분노한 주주들에게 머리털과 옷을 뜯기는 처지가 되었다.


“흠. 보기 좋구만.”


이제야 내가 원하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화룡점정을 찍을 방안이 떠올랐다.


“상혁아! 빨리 피하자!”


밖으로 나가자는 유리 누나에게 씨익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래도 교류한 기간이 오래 된 만큼, 그녀는 내 웃음의 의미를 바로 파악했다.


“... 아니지?”

“맞을 걸요?”

“너는 씨 왜 나랑 있을 때만 이러는 거야!!!”


건치 미소로 답변을 대신하고 소동의 중심으로 향했다.


보다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흐름에 몸을 던졌고.


경호원의 팔꿈치에 머리를 맞고 저 멀리 날아갔다.


떨어진 곳에 때마침 기자들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상혁아!!!”


유리 누나의 외침에 의해 기자들도 내 정체를 눈치 챌 수 있었고.


뒤 이어 눈을 감고 있음에도 대낮과 같을 정도로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했다.


‘유명 인기 배우, 몰락해가는 샘숭에 의해 폭행을 당하다. 도대체 이제이는 어디로?’


벌써 신문 1면의 제목 뚝딱이다.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수호의 DNA를 꺼 두었다. 그래서 평범하게 아팠지만 기분은 좋다.


나의 마무리로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에서 중요 사건으로 격이 올랐다.


아무리 샘숭이라는 대기업에서도 무시를 할 수는 없을 터.


이제이? 동방의 용? 이 몸은 아역배우 박상혁이다.


원래도 선동과 날조가 주전공이었는데 이제는 탁월한 연기력까지 갖추어 그 위력이 더해졌다.


과정도, 결과도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갔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잘난 사람이 내 주식 하나 못 지킨 걸까?


이제이. 이제는 그 낮짝을 보여줄 시간이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추천과 댓글 선호작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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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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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대적자 22.09.15 577 10 17쪽
119 빛이 나는 사람 22.09.14 583 7 26쪽
118 천재는 약점을 극복한다 22.09.13 578 11 19쪽
117 합창 22.09.10 620 9 18쪽
116 별에 관한 고찰 22.09.09 620 10 16쪽
115 아빠 새끼를 만나다 22.09.08 661 9 25쪽
114 가족들이 호강하다 +1 22.09.07 626 11 24쪽
113 가족끼리 왜 이래 +1 22.09.06 596 10 18쪽
112 러시안 룰렛 22.09.03 585 10 20쪽
111 혀어어업상 22.09.02 588 9 18쪽
110 오스틴의 연구실 22.09.01 596 8 17쪽
109 공항에서의 기싸움 22.08.31 606 8 17쪽
108 숨바꼭질 22.08.30 614 9 17쪽
107 제왕과 정점 22.08.27 645 9 20쪽
106 정중지와 22.08.26 630 9 18쪽
» 피와 살육, 대환장의 주주총회 22.08.25 672 8 25쪽
104 유성아의 연구실 22.08.24 682 11 21쪽
103 가만히 있어도 22.08.23 711 13 19쪽
102 운이 좋은 날 22.08.20 745 13 19쪽
101 외양간을 고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1 22.08.19 745 11 17쪽
100 돈이 삭제가 된다니 +4 22.08.18 745 9 18쪽
99 투자는 계획적으로 22.08.17 771 10 28쪽
98 돈이 복사가 된다 +1 22.08.16 755 11 18쪽
97 대역전극 +1 22.08.13 722 11 11쪽
96 역전의 서막 +1 22.08.13 714 10 12쪽
95 구설수 22.08.12 731 12 18쪽
94 박상혁 쟁탈전 +1 22.08.11 764 10 20쪽
93 위대한 령도자 박상혁 동지를 맞이하라! 22.08.10 790 13 22쪽
92 지금까지 이런 판매는 없었다. 이것은 팬미팅인가 판매인가. 22.08.09 763 12 20쪽
91 광고를 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2 22.08.07 799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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