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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478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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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21,531

작성
22.09.14 22:00
조회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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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26쪽

빛이 나는 사람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19화



노래 실력을 짐승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으로 복구시킨 후, 합창회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새로 산 장난감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세상 사람들에게 보란 듯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일이 어긋났다. 학부모들만 모일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그들의 의도는 다양했다.


우선 내가 음치라는 소식을 듣고 모인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


한국을 강타한 드라마가 끝난 지 채 6개월이 안 지났다. 이래 뵈어도 따끈따끈한 인기 배우라는 소리다.


그들에게 있어서 나의 참담한 노래실력은 좋은 기삿거리가 되리라.


인터넷에 뭐라고 적혀져 있었더라? 맞다. ‘세 달 굶은 고라니가 지옥에 떨어져서 바싹 구워지는 동안 내는 비명에 비견된다’였던 것 같다.


X발 새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보자마자 샘숭가에 IP 추적을 부탁했다.


짐작이 가는 곳은 있다. 내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사람이 얼마 안 되거든.


프로페셔널한 집사가 그런 말실수를 했을리는 없으니, 노래방 아줌마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


아줌마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서운 사람이었다. 확실한 증거만 나오면 가만 안 둘 것이다. 선처는 없다.


두 번째 유형은 박상혁을 사랑하는 팬들이다.


내가 합창회에서 솔로 파트를 맡았다는 소문이 팬 카페에서 퍼졌다.


애초에 삼길초에서 공공연한 소문이었기에, 이건 추적할 엄두도 못 내었다.


이게 태권도장 간 코찔찔이 영훈이가 퍼트린 건지, 시장에 간 학부모 순자 씨가 퍼트린 건지 알 수 없기 때문. 예고된 수순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잘못을 따지자면 생각 없이 판을 벌린 교장의 탓이겠지. 그에 대한 필벌은 결정을 내려두었다.


내가 당하고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그 몸에 새겨주도록 하자.


그래도 다행히 팬들은 양호한 편이다. 내가 음치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듣고도 모인 거니까.


반응을 보니까 ‘상혁이가 노래를 못 부른다고? 오히려 좋아’나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라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부디 문제만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 부류는 그냥 인파가 생겨서 축제인 줄 알고 모인 사람들.


‘아따 이게 뭐시여?’, ‘축제인가요?’라고 물으며 삼길초에 모여들고 있다.


“에휴.”


신기하게 내가 뭔 일만 하려고 하면 일이 커진다. 이게 바로 슈퍼스타의 숙명이라는 걸까?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음치를 극복해 냈다는 사실.


하마터면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국민 수치 플레이를 선보일 뻔 했다.


대비를 마친 위기는 더 이상 위기라고 할 수 없다.


내가 망하길 바라는 기자들 앞에서 멋지게 보여주면 되는 일이다.


동시에 ‘기자가 정보 갱신이 이렇게 느려서야 홋홋홋’ 웃으면 그만.


문제는... 물밀 듯이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공연을 할 수가 없다는 사실.


체육교사들이 강당의 문을 막고 통제를 해보려 했지만, 한낱 인간이 인파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


합창회 장소가 시장바닥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학부모들이 불안에 찬 눈빛을 하고 있다. 선생들은 노력하고 있지만 방법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고.


어른들의 불안은 보통 아이들에게도 전염이 되는 법이다. 산타 복을 차려입은 꼬마들이 이쪽을 힐끔힐끔 보고 있다.


특히 승윤이는 ‘못하는 거야?’, ‘상혁이랑 노래 부르고 싶었는데’라고 중얼거리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교장이 벌인 일이니 해결도 교장이 해야겠지만, 그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리가 없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향하고 있다.


후... 어쩔 수 없지.


“장소를 바꿔야겠네.”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좁아터진 강당에서 일을 해결하려 해봤자 머리만 아플 뿐.


우선은 사람을 모두 수용할만한 큰 공간으로 장소를 변경해야 한다.


“운동장 정도면 다 채울 수 있지 않을까요? 거기 단상으로 위치를 옮기죠.”

“하지만 탁 트인 공간에서는 합창의 의미가 없지 않나요?”


합창단의 지휘자 역할을 맡고 있는 음악 선생님이 난색을 표했다.


그의 말대로 노래는 실내에서 하는 것이 기본이긴 하다.


소리가 벽과 부딪히며 더 멀리, 크게 퍼지기 때문이다.


수백의 아이들이 허공을 향해 목소리를 틔우겠지만, 과연 맨 뒤의 관객들에게까지 들리느냐?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없는 것은 채우면 되는 법이며, 나에겐 누구보다 듬직한 후원자가 있었다.


야외 공연? 구조적 한계 빵빵한 마이크와 앰프로 작살을 내버리면 된다.


단순히 관객들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에게까지 황홀한 감정을 선사할 수 있으리라.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상혁아!”

“고맙다 상혁아. 정말 고마워.”


교사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나는 그들의 의지를 받들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제이는 이번에도 전화벨이 3번이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니?”

“제가 갑자기 운동장에서 합창을 할 일이 있을 거 같은데요. 마이크랑 앰프, 단상 근처에 세울 구조물을 구할 수 있을까요? 아. 거기에 관객들이 앉을 좌석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말하고 보니 조금 필요한 게 많긴 하다. 단순히 친분을 근거로 요구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제이는 내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고,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흠. 너무 걱정하진 말렴. 방법을 찾아보마.”


말을 마치고 잠시 전화를 끊었던 제이는 10분이 지난 후 다시 연락을 주었다.


그런데 그는 대기업 사장답게 한 단계 큰 스케일의 방안을 준비했다.


“음... 새로운 무대를 꾸미느니 차라리 공연장을 대관하는 게 낫지 않니?”

“아. 그것도 그렇네요.”


생각해보면 공연장을 대관하는 게 더 수월하긴 하다.


공간이 넓지, 세팅도 다 끝나 있지, 좌석 충분하지.


현 상황을 타개하는데 있어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듯하다. 다만 원래 이렇게 크게 공연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바로 떠올리지 못했을 뿐.


돈이야 들겠지만, 교장의 카드로 결제할 거니 문제없다. 자기가 벌린 일인데 설마 거절은 못하겠지.


문제는 장소 섭외가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점인데, 그것도 문제없다. 장소를 구해주는 이가 다름 아닌 샘숭 전자의 사장이었으니까.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래. 장소를 구하고 연락주마.”


잠시 후, 제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때마침 근처 공연장에 시간이 나서 빌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특가로 구했다고.


과연 정말 공연이 없었는지, 자의적으로 특가로 내놓았는지는 모르지만 굳이 내가 알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냥 아싸 신난다 하면 된다.


이제 사람들에게 안내를 하고 이동시키기만 하면 되는데, 무언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장도 큰 걸 빌렸고, 애들은 연습을 열심히 했고, 본다는 사람도 많은데. 이정도면 판을 더 키워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럴 것 같다. 예를 들면 촬영을 해서 영상으로 보관한다던지.


그러면 정말 아이돌 콘서트 같은 느낌이 되겠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거나 이거나 비슷하다.


방문하신 학부모님들께 하나씩 챙겨드리고, 남은 건 팬 분들께 전해드려도 괜찮으리라.


이번 콘서트의 목적은 ‘고생했던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감사’이니까.


날 위해 노력한 분들께 한 해 동안 고생 많았다고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앞으로 활동이 드물어질 텐데, 지금까지 보내준 열과 성에 나도 보답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물론 전문적으로 촬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한 게 아니며, 부른다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만.


내가 또 방송 쪽에서 일하던 사람이라 아는 사람이 꽤나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를 뒤졌다.


“여보세요? 상혁이니?”

“네. 일신 형. 혹시 아시는 분들 중에 지금 촬영이 가능한 사람이 있을까요?”

“어? 있기야 있지. 너 뭐 촬영하니?”

“학교 행사긴 한데...”

“에이. 너를 찍는 건데 학교 행사면 어때. 내가 사람들 데리고 금방 갈게.”


일신은 나비효과를 찍을 때 만든 인연이다.


장래희망이 감독인 만큼 촬영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에게는 든든한 인적 자원이 생기는 것이고, 그에게는 큰 무대를 촬영하는 좋은 경험이 되리라.


급하게 달려와 주는 만큼 봉급은 섭섭지 않게 챙겨줄 생각이다. 물론 교장의 돈으로.


공연장도 내가 빌려, 촬영 기사도 내가 섭외해. 인맥을 통해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했으면 돈이라도 내야 하지 않겠는가. 응당 그러는 게 도리에 맞다.


나는 삼길초 인원들을 불러 모아 일의 진행상황을 설명했다.


선생님들은 커져버린 스케일에 당황하면서도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든 일을 수습한 거니까.


아이들도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았다며 방방 뛰며 기뻐했다.


“역시! 상혁이가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있었어!”


반면 교장은 일이 잘 해결되었음에도 표정이 파리하게 질렸다.


“그... 내가 돈이...”

“에이. 그건 제가 생각할 일이 아니고. 어차피 뒷주머니 빵빵하잖아요.”

“아니! 그걸 이렇게 공공연하게 말하면 내 체면은...”

“됐고! 이동이나 합시다.”


우리는 모인 사람들에게 불가피하게 장소를 변경해야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공연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교장이 무릎을 꿇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가만히 있을 걸 그랬다며 눈에서 물을 줄줄 흘렸지만 그를 위로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 제이 아저씨가 버스도 두 대 보내준다는데요? 저희랑 학부모님들은 이거 타고 이동하면 되겠네.”

“크으. 상혁아! 너란 녀석은 정말...”


다들 버스를 향해 우르르 떠났다. 강당에 홀로 남은 교장의 모습이 오늘따라 쓸쓸해보였다.


* * *


인근 공연장이었기에 이동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다만 이동하는 게 귀찮았던 구경꾼들 사이에서 간혹 불만이 터져 나오긴 했지만 금방 진압할 수 있었다.


“와. 누가 그래요? 이동을 왜 하는 거냐고? 합창회는 애초에 우리끼리만 하려던 건데 누가 쳐들어와서 기껏 장소를 마련한 건데. 누가 뭐라 그런다고요? 얼굴 좀 보자 그럴까요?”


당연히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몇몇이 조용히 자리를 뜰 뿐.


결과적으로 심심해서 학교에 왔던 구경꾼들이 떨어져 나갔기에 보다 원활한 환경에서 공연을 준비할 수 있었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이미 세팅이 진행되고 있었다.


집사 할배가 사람들을 진두지휘하며 설비들을 점검하고 있었고, 일신 형은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촬영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있다. 언제 통성명을 하고 또 친해진 걸까?


뭐 문제는 없나 살펴보는 중,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상혁 오빠! 안녕하세요!”

“은하? 거기에 이제이 사장님까지? 여긴 어쩐 일이에요? 안 바빠요?”

“바쁘긴 해도 딸이 꼭 보고 싶다는데 시간을 내야지.”


두 사람 다 VIP석에 앉을 예정이라는데, 어쩌면 장소를 옮긴 것도 두 사람이 참여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제이는 내가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테니까. 도움을 준만큼 성과를 확인할 자격이 있다.


은하는 나의 열혈 팬이었으니까 온다고 하더라도 막을 이유가 없고. 그냥 갑작스러웠을 뿐이다.


제이는 웃으며 다가와 일의 진척 상황을 알려주었다.


“세팅까지 빠르면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더구나. 그 전에 리허설을 하면 될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이 남을 것 같긴 한데...”

“아. 그거라면 제게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크리스마스 관련 옷들 좀 준비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성인용으로요.”

“어렵지 않지. 그럼 공연 기대하마.”


나 역시 멋진 미소로 대답한 뒤, 대기실로 향했다.


몇 아이들이 불안한 듯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장소가 변했고, 카메라도 돌며, 관객들도 많아졌다. 순진무구한 어린애들은 몰라도 조금 나이가 있는 아이들은 겁을 먹어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었다.


“걱정 마. 내가 앞에 설 테니까. 사람들의 모든 관심은 내가 다 감당할게.”

“흐윽. 그래도 실수하면?”

“실수하면 합창회를 다시 열지 뭐. 장소도 빌리고, 사람들도 불러 모으고 당장 내일이라도 다시 열 수 있어.”


기회가 이번뿐만이 아니라는 말에 그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차피 내 돈으로 여는 게 아니라 마음껏 써도 상관없기에 호언장담을 할 수 있었다.


훌쩍이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일어나 모두에게 선언했다.


“안심해. 내가 해결해 줄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말이야. 나를. 믿어.”


가라앉았던 대기실의 분위기가 한순간 크게 치솟았다.


“응!”

“나는 상혁이 믿고 있어!”


아이들 사이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오른 것이다.


설령 실수를 하더라도, 내가 어떻게든 보상을 해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제 리허설만 잘하면 학생 쪽은 큰 문제는 없으리라.


남은 건, 1시간 가까이나 되는 대기 시간 뿐.


이건 앞서 말한 대로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때마침 제이가 준비해준 옷이 도착했다.


“이게 뭐니?”

“선생님들도 분장을 하시고 무대에 오르시는 건 어떨까요? 학부모님들께 저희가 어떻게 준비를 했는지 설명도 하면서 말이죠.”

“그래. 그거 괜찮다.”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연말의 분위기도 맴돌고 있고, 선생님들도 무언가 공헌을 하고 싶기 때문이리라.


나는 옷들을 하나씩 선생님들께 분배하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건 권력 순으로 챙겨가지만, 이번엔 내가 친히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었다.


“체육 선생님은 눈사람이에요.”

“좋지.”

“2학년 부장 선생님은 나무.”

“허허. 이런 건 또 오랜만이구나.”


옷들이 줄어들자 교장은 초조한 듯 참견하기 시작했다.


“나는 산타! 산타가 어울리겠네.”

“아뇨. 1반 담임 선생님이 체격이 더 좋으시니까요.”

“그럼 루돌프?”

“에이. 교장 선생님께 썰매 끄는 일을 맡길 수는 없죠.”

“그러면?”

“아~ 있어 봐요.”


옷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어느덧 하나만을 남겨두었다.


산타 복장이다. 산타 복장이긴 한데 옷의 면적이 적고, 군데군데 망사가 들어가 있다. 결정적으로 거기에 검정 나비 가면까지.


행사복이긴 한데 보다 야릇하고 은밀한 성인들을 위한 옷으로 보인다.


나는 이를 집어 들어 교장에게 건넸다.


“입으세요.”

“... 이걸? 내가?”

“네. 참고로 입지 않으시면 제가 많이 속상할 것 같아요. 그럼 샘숭이 주관하는 학교로 전학을 가겠죠? 아, 마침 이제이 사장님도 여기 계시니까 이야기가 빠르겠어요.”


교장의 낯이 딱딱하게 굳었다. 완전히 제대로 된 함정에 빠졌음을 인지한 것이다.


“하. 하하. 네가 친구들을 두고 전학을 갈 거라고 믿지 않는단다.”

“다 데리고 가죠 뭐. 삼길초는 인원 수 부족에 시달리겠네요.”

“그래도 교장의 체면이라는 게 있는 법이란다!”

“이 기회에 교장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변태 같은 옷을 입고 학부모 및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교장.


생각만 해도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범법과 합법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합법 쪽에 발가락을 거치는 수준이다. 징계는 받지 않겠지만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림 당하겠지.


하지만 시비를 먼저 건 것은 교장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음치일 수도 있는데,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멋대로 일을 진행시켜? 그것도 엄마를 이용해서?


그게 괘씸해서라도 합의는 없다. 사과를 받지도 않을 것이다.


이번 일에 대해 책임을 질 방법은 오직 변태 복장을 입고 무대에 올라 수치사를 당하는 것 뿐.


어쩌면 내가 겪었을지도 모르는 치욕을 그대로 돌려줘야 마음이 풀릴 것 같다.


나쁜 건 내가 아니다. 꿍꿍이를 꾸민 교장이지.


이번을 기회로 다시금 서열정리를 하려 한다.


내가 그동안 얌전히 학교를 다녔던 건, 사람이 착해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마.


1학년 때의 악몽, 그 이상을 선사하도록 하지.


모든 선생의 시선이 교장에게 향했다. 진짜 입을 거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나를 질책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대부분 교장이 잘못한 게 있을 거라 추측하고 있었다.


수치스러운 안식과 평온한 파멸. 둘 중에서 고민하던 교장의 입이 열렸다.


“2학년이 되더니 더 심해진 것 같구나.”

“저도 성장이라는 걸 하니까요. 앞으로 3학년, 4학년, 5학년 그리고 6학년이 남았네요?”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서 더 성장하면 어떡할지 어질어질한 모양.


그러니 포기하면 편한데 말이다.


“아 힘드시면 이야기하시고요. 저 가요?”

“... 다른 방법은 없겠니?”

“네. 네버. 낫띵.”


결국 교장은 옷을 집어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꺄악!”

“미친 변태다! ... 당신이 교장이라고요?”


아직 무대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시끄러운 걸 보면 의상의 효과가 대단한 것 같다.


그가 어그로를 끄는 동안 우리는 차분히 리허설을 할 수 있었고.


모두의 성원을 받으며, 드디어 합창회의 막이 올랐다.


* * *


본격적인 무대에 앞서, 나는 학교를 대표하여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삼길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입니다. 그동안 저희를 위해서 고생하신 분들께 감사를 표하고자 이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부디 즐거운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인사를 마치자 실내가 떠나가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우리는 박수를 받으며 준비해 온 곡들을 선보였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열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최고다! 삼길초!”

“흐흑. 내가 태어난 이유는 이 콘서트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나봐.”


사람들은 목이 쉬어라 함성을 부르고, 온 몸의 수분을 눈물을 통해 흘려냈다. 그야말로 열광적인 반응이다.


... 사실. 우리의 수준은 그렇게 환대를 받을 만큼 높은 편이 아니다.


딱, 연습을 열심히 한 초등학생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음악을 진로로 생각하고 있는, 꽤나 실력 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래봤자 초등학생이었고. 합창에서는 개인의 장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저들의 환호성이 거짓일까? 아니다.


거짓된 감정에 눈물을 흘릴 리가 없고, 실신하는 사람이 나올 수가 없다. 저들은 저마다 최선을 다해 응원을 보내고 있다.


그 광기어린 비밀엔 나의 설계가 숨어있었다.


인스타 맛집이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문외한들이 보기에 어려운 전시회가 칭송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고?


컨텐츠의 충실함은 둘째 치고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교양을 얻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인정과 부러움을 얻게 된다.


실속이 없다고? 상관없다. 내가 아니더라도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많으니까.


남들의 부러움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스스로도 속게 된다. ‘어라?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하고 말이다.


내가 공연을 준비하며 치중한 것들도 그와 비슷한 것들이다.


노래를 뺀 모든 부분에 감동을 채워 넣는 것.


무대에 앞서 관객들에게 전했던 말도 그 중 하나다.


앙증맞은 9살 꼬마들이 그동안 감사했다고 노력을 알아주었다. 거기에 기특하게도 보답하고 싶다고 하기까지.


그 사실만으로도 학부모와 팬들에겐 큰 감동일 것이다.


목소리가 평범하면 어떤가. 실수가 나오면 또 어떤가.


내 자식, 내 배우가 자신을 위해 저렇게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데.


설령 실로폰으로 연주를 하더라도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은 것 마냥 엄지를 치켜세울 것이다.


두 번째 안배는 바로 의복과 율동.


대부분의 아이들, 그러니까 나를 제외한 아이들은 보통 모든 곡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노래를 안 부르는 동안 멀뚱멀뚱 서 있지는 않는다. 다들 간단한 율동을 통해 노래 부르는 이들을 빛내주고 있다.


산타 단체복을 통한 시각적 통일감, 큰 동작을 통한 무대의 풍성함.


이 두 가지가 밋밋한 노래에 혼을 불어넣고 있었다.


마지막 요소는 바로 집사 할배의 신들린 듯한 조명 활용이다.


샘숭의 집사는 할 줄 아는 것도 많은지 무대가 끝날 때, 노래의 하이라이트 때마다 적재적소에 조명을 넣어주었다.


흡사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과 같은 구성이다.


과대포장과도 같은 조명 활용은 우리 무대에 품격을 더해주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합쳐지니 관객들은 홀린 것처럼 우리 무대에 빠져들고 말았다.


초등학생들의 단순한 합창일 뿐이지만, 그들에게는 프로의 공연이나 마찬가지이리라.


사기 아니냐고? 어허. 무대 연출이라는 좋은 말이 있거늘. 누군지는 몰라도 이 무대를 준비한 사람은 참 센스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뭐 정점의 DNA를 가지고 있다던가.


물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관객 중 기자들은 잔뜩 뿔이 나 있다.


그럴 만도 하다. 박상혁이 음치라는 소식 때문에 먼 걸음을 했으며, 오랜 시간 기다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보니 평범하다. 아니, 평범 보다는 조금 뛰어난 편이다. 10명이 들으면 6명 정도는 잘 부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쨌든 근거 없는 소문 때문에 하루를 버린 셈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곳에 죽치고 있을 만큼 노래가 좋냐. 그건 또 아니다. 삼길초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기자들에게는 내가 준비한 마법이 효과가 없을 테니까.


“꺄아 상혁아! 너무 멋져!”

“누가 못 부른대! 당장 데려와! 귓구멍을 파줄라니까.”


괜히 투덜거렸다가는 그대로 반으로 접힐지도 몰랐기에, 기자는 속으로 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니 속이 시원했다. 이대로 끝날 때까지 나가지도 못하고 쩔쩔매게 만드는 것도 재밌겠다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심드렁한 상대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만큼 통쾌한 복수는 없을 테니까.


설마 내가 알량한 무대 연출만으로 이렇게 자신만만할까. 이제 때가 되었다. 전술 핵병기를 투하할 시간이다.


공연장의 불이 모두 꺼졌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 내가 있는 곳만이 다시 환하게 빛이 났다.


혼성 2부 파트의 시작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한 마디 한 마디가 공기를 타고 부드럽게 퍼져나갔다.


그간 피나게 연습했던 나의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간질이는 데 성공했다.


“홀리... 신성해.”

“야. 닥쳐봐. 집중하고 싶어.”


참석한 모든 이들의 시선을 한 순간이나마 끌어낼 정도의 노래였다.


고작 몇 초밖에 지속되지 않을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오늘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으니까. 옆으로 시선을 보내자 승윤이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든든하며, 장난스러운 미소였다.


그녀가 있는 곳에도 나와 같은 조명이 켜졌다. 자연스레 관객들의 시선이 이동했고, 승윤이 입을 열었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그 자그마한 틈새에서 흘러나온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사람들을 압도했고.


노래가 끝날 때까지 그 어떤 사람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깨어 있다 한들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인지 기능을 상회하는 무언가였기 때문에.


그저 눈을 뜨고, 귀를 열어 조금이라도 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려 할 뿐.


“아기 잘도 잔다. 아아기 잘도 잔다아.”


이윽고 노래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이나 관객들은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장 먼저 터져 나온 것은 눈물, 그 다음은 기립박수였다.


아무리 박수를 쳐도 감동을 다 표현하지 못한 걸까. 학부모들도, 내 팬도, 심지어 기자들까지도 오랜 시간 동안 박수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


모두가 승윤이에게, 삼길초 학생들에게 진심어린 환호를 보내고 있다.


작은 산타들은 만세를 부르며 그 환호를 만끽했고, 선생들 역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 환호 중 대다수가 승윤이에게 향하고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그들이 공헌한 바도 적지 않다.


묵묵히 받쳐주는 역할이 있어야 빛나는 역할이 있다. 그게 팀이고, 친구며, 합창이다.


그러니 밝게 빛난 친구를 축하하며 같이 기뻐하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 친구가 자신을 빛나게 해줄 테니까.


이 공연의 목적은 지난 시간 고생한 사람들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하기 위함이다.


오늘의 공연은 엄마에게도, 관객들에게도, 그리고 승윤이에게도 행복한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평소 나의 곁에 붙어서 든든한 우군이 되어준 승윤이다. 오늘만큼은 기꺼이 조연의 역할을 맡아 그녀에게 감사를 보내고자 한다.


... 솔직히 씁쓸한 마음은 있었다. 내 팬들 중 한 명 정도는 나의 이름을 외칠 거라 믿었기에 조금 충격을 받긴 했다.


승윤이가 명품 한우였다면 나는 그래도 잘 조리된 스테이크 소스 정도는 되었다. 공헌도가 적지는 않다.


그 뿐인가? 그냥 스테이크 소스가 아니다. 물구나무를 서서 팔이 아닌 다리로 조리를 해서 겨우 만들어낸 소스다.


조리하는데 이런 노력이 들었다는 걸 알면 사람들도 내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만들었는데 나온 게 평범한 소스냐며 비웃을 수도 있고 X발.


그래도 괜찮다. 저렇게 찬란한 존재가 언제나 나의 곁에서 빛이 날 테니까.


그리고 여느 때처럼 눈을 빛내고 호들갑을 떨며 나에게 찬사를 보낼 테니까.


“상혁아! 상혁아!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고 있어! 우리가 그만큼 대단했다는 게 아닐까?”


그래. 이런 식으로 말이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읽어 주셔서 오늘도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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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가만히 있어도 22.08.23 711 13 19쪽
102 운이 좋은 날 22.08.20 745 13 19쪽
101 외양간을 고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1 22.08.19 745 11 17쪽
100 돈이 삭제가 된다니 +4 22.08.18 745 9 18쪽
99 투자는 계획적으로 22.08.17 771 10 28쪽
98 돈이 복사가 된다 +1 22.08.16 755 11 18쪽
97 대역전극 +1 22.08.13 722 11 11쪽
96 역전의 서막 +1 22.08.13 713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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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박상혁 쟁탈전 +1 22.08.11 764 10 20쪽
93 위대한 령도자 박상혁 동지를 맞이하라! 22.08.10 789 13 22쪽
92 지금까지 이런 판매는 없었다. 이것은 팬미팅인가 판매인가. 22.08.09 763 12 20쪽
91 광고를 했다. 효과는 대단했다. +2 22.08.07 798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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